거칠게 읽습니다.

폴 오스터의 한글 번역본 읽습니다.

폴 오스터 영어원서 읽기와 혼동하시면 아니 됩니다.

일단 한번 제 손을 잡으셨다면 놓기 쉽지 않으니 잘 결정하시고 들어와주세요. 쿠후훗.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2.10.05

리딩 모집 기간. 2012년 5월 1일 ~ 5월 11일

함께 읽는 시간. 2012년 5월 13일 ~ 6월 15일

함께 읽을 사람. 폴 오스터의 문학 세계를 성실하게 탐구하실 분들

혹은 폴 오스터 잠깐 맛보고 싶은 변덕스러운 분들.

리딩 참여 방법. 이 게시물 스크랩 후 링크 주소와 참여하고픈 소망을 댓글로 간절하게 내비친다.

(블로그 없는 분들은 본인의 SNS에 참여글 작성 후 댓글을 남긴다).

멋진 그대들 짱. [거대한 괴물]을 자유롭게 읽는 동안 달궁 카페에서 성실하게 활동한

그대들에게 소소한 선물 준비!!!

성실하고 발랄하고 발칙하게 읽는 회원분들은 달궁의 다른 활동 지원시 가산점이 붙습니다.

2012년 5월 12일 함께 읽을 이들 발표합니다.

어떻게 읽을지 역시 12일 함께 발표합니다.

 

 

 

 

 

 

 

 

 

 

 

 

 

 

 

 

 

 

 

 

나는 특정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면 먼저 처녀작부터 읽는 것을 철칙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터의 작품 발표 연보에 의하면 공식적으로 출판된 작품이 『뉴욕 3부작』(1986년)다. 하지만 '폴 오스터'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무명시절에 '폴 벤자민'이라는 가명으로 1976년에 『스퀴즈 플레이』를 집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스퀴즈 플레이』를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내가 가입했던 '달의 궁전'에서 진행할 독서 프로젝트에서는 『거대한 괴물』을 첫 번째 선정도서로 선정하는 바람에 폴 오스터 읽기의 첫 작품으로『거대한 괴물』을 읽어보려고 한다.

 

『거대한 괴물』은 무명시절에 쓴 처녀작을 포함해서 오스터가 쓴 7번째 작품이다. 거의 '폴 오스터' 특유의 문학적 성숙도가 완성되어가는 시점에서 발표된 소설이라 오스터 문학을 이제 접한 나 같은 '초짜'에게는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일단은 속는 샘 치고(?)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원작이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모티브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홉스의 책도 읽어봐야하나...?   독서를 하게 되면 그 책과 연관되는 내용까지도 알아아하는 성격이라 이왕이면 홉스의 사상도 알아둘 겸 읽어보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이 책 말고도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일단 sk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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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5-0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사진이 안 보이네.
이거 재밌겠다. 하긴 선물이 있어야 참여할 맛도 나지.ㅎ
그래서 폴오스터 전작을 다 훑는 건가?

cyrus 2012-05-04 22:36   좋아요 0 | URL
다시 수정했어요, 그냥 드래그해서 복사해서 붙여넣으니깐
액박이 뜬거 같네요. 전작을 다 읽는건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나온
오스터의 작품 중에 소설만 해도 수십권 넘으니까요. 활동이
유지된다면 전작읽기가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봐요 ^^

지민맘 2012-05-05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네- 폴 오스터의 전작 다 훑습니다.
사이러스님의 이웃분들은 모두 다 참여해주세요~~~~~~~~~~

수이 2012-06-2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이제 곧 읽기 시작할 예정이랍니다.
확인 댓글 부탁드려요. :)
 

 

 

 

 

 

 

 

 

 

 

 

 

 

 

 

 

 

 

 

 




                                        김광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삶은 끊임없는 연속입니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
숨 쉬는 허파
가슴 속에 품은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요
산책을 하다가 피곤하면
길가의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듯이
우리의 삶도 사랑도 그렇게
가끔 쉴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하루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항상 이렇게 살아왔었지만 지금이야말로 제일 바쁜거 같다.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뭐... 지금 남은 생애동안 수많은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우리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바지런하게 박차를 가하는 것도 좋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 지쳐버린 정신의 영혼을 위해서 한번쯤은 쉬는 것도 중요하다.





사족) 요즘 카카오스토리에 푹 빠져서 그런지 짧은 글쓰기에 재미 들렸다.

가끔씩은 이렇게 짧은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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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03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토리에 올리신 글에는 친구분과 이야기중이신듯 하여 선뜻 댓글을 옷 달았는데 여긴 달겁니다. 그때 올린 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았고 이 시도 좋아요. 기분좋은 심장박동의 떨림과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설레네요..루스님이 뽑아주시는 시들도 좋아요. 쉬운 단어를 사용하고있고 그리 어렵지 않지만 아름다운, 예쁜 시들. 어린 제 연령에 딱 맞아요.

cyrus 2012-05-03 22:2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막상 이진님에게 안부인사라도 남기고싶었는데 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참에 이진님이 댓글 달 수 있게 좋은 시나 책 인증샷 올려야겠군요 ^^

카스피 2012-05-0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카카오 톡이라 아직도 2G를 쓰는 저에게는 마치 딴나라 이야기 같네요^^

cyrus 2012-05-03 23:06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얼른 3G로 갈아타시는게 좋을듯해요 ^^
 

 

 

4월에 알라딘 블로그를 뜸하게 활동했던 이유가 중요한 시험 때문인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호기심을 가진데다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향하고 싶은 성격이라서(그렇다고 내가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인맥을 가리킬 뿐이다)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교류에 적을 두는 몇 몇 인터넷 카페가 있다.

 

 

2년 전만 해도 이름만 들어보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출판사의 인터넷 공식 카페에서도 알라딘 블로그 못지 않게 글을 쓰고 댓글을 다면서 열심히 활동하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접속이 뜸해졌다. 간간이 접속해서 들어와서 카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팅만 잠깐 할뿐이다. 안 그래도 학업 때문에 카페 활동에 점점 소홀히 하다보니 어느새 그림자 회원이 되고 말았다. 카페에 글과 댓글을 남기지 않은 채 몰래 접속해서 확인해보는 회원이 된 것이다. 비록 온라인 공간에서의 만남이지만 카페에 활동하다보면 친한 회원들이 늘어나게 되며 친분 관계가 돈독해지만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술 한 잔 할 때도 있다. 작년부터 모 출판사 카페 몇 몇 회원분들과 친분을 맺기 시작하면서 내가 직접 서울에 상경하여 만나기도 했었다. 친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대구에서 서울까지 왕래하는 데 드는 비용쯤은 아깝지가 않았다. 하지만 복학하고 난 뒤부터는 서울에 갈 수 있는 교통비 한 번 마련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내가 운전을 잘 하고 자가용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서울쯤이야 틈만 나면 갈 것이다.

 

 

 

 

 

 

 

 

2012년 5월 1일. 참으로 특별한 날이다. 따뜻한 5월을 시작하는 첫날이면서도 근로자의 날이다. 그리고 울 학교 개교기념일이다.(^^;;)  즉, 오늘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카페 활동 덕분에 친분이 있었던 분들이 따로 모여 새로운 카페를 창설했다.

 

 

 

 

 

 

 

 

 

 

 

 

 

 

 

 

 

 

 

온, 오프라인 독서모임 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카페인데 이름이 '달의 궁전' 이다. 평소에 폴 오스터의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카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카페명답게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고난 후 자유롭게 글을 남기거나 댓글을 달 수 있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회원분들 중에는 폴 오스터의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있다. 아무래도 폴 오스터의 소설을 출판하는 열린책들 출판사를 제외하고 폴 오스터의 소설을 좋아하는 매니아 독자팬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는 '달의 궁전'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폴 오스터의 소설만 읽는 것은 아니다.

 

 

 

 

 

 

 

 

 

 

 

 

 

 

 

 

 

'달의 궁전' 회원분들이 나처럼 새로운 것을 원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을 함께 읽기도 한다. 내가 읽고 있는 세계문학의 범위가 너무 고전에만 한정되어 있다보니 폴 오스터와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번 기회에 폴 오스터 읽기에 도전하고 싶은데, 번역된 작품들만 해도 수십권 정도 되니 과연 몇 권까지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작년까지 읽다만 도스또예프스끼 읽기도 다시 시작해야 되는데...

 

'달의 궁전'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읽고 만나는 단순한 독서모임이 아니다. 책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 리뷰를 읽으면 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카페 BMG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 된다. 이 곳에는 각양각색의 취미를 가진 이야기꾼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다.

 

요즘 학업에 열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지금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들 때가 많다. 각끔 내 자신 스스로조차도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 기회에 '달의 궁전'에서 관심의 폭을 넓혀보고 싶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  

 

2012년 5월 1일, 새로운 경험을 시작하기에 딱 알맞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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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2012-05-0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재미있는 일을 하시는 군요! 제목만큼 산뜻합니다. 저도 이사 준비 중인데 새로운 마음으로 부지런한 일상을 가꾸어 나가야겠네요 ㅋㅋ

cyrus 2012-05-03 19: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새로운 걸 시작해도 늦지 않죠 ^^

비로그인 2012-05-0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경험의 간이역을 발견하셨군요, cyrus님! 북카페 이름이 참 마음에 들어요. 문펠리스, 달의궁전. 주인공이 달걀 떨어뜨리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폴오스터의 다른 작품은 별로 안 읽어봤지만요. 저도 요새 새로운 문학 커뮤니티가 없을까 찾고 있는데, 지금 진행중인 커뮤니티를 더 돈독하게 하는 걸 우선으로 삼아야겠어요. 얇은 문어발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잖아요 ㅎㅎ

cyrus 2012-05-03 19:43   좋아요 0 | URL
저도 최대한 많이 가입하지 않되, 깊으면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것이
카페 활동의 철칙입니다. 사실 말이야 쉽지 바쁜 일상에 치인다거나
또 다시 새로운 것에 몰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요 ^^;;

이진 2012-05-0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판타지 소설카페에서 벌써 4년이 넘게 활동하고 있어요.
이 카페에서만큼은 저도 한 권력(스탭까지는 되지 못했더라도)했었는데 중학교 3학년에 접어들고 나서는 친한 사람들 모두가 학업에 치중한터라 저도 자연스레 뜸해지게 되고 친한 분들이 7~8명 정도 있는데 그 중 한 사람하고만 매일 연락하고 지내요. 그 친구는 제가 서울에 올라갈때마다 만나서 놀기도 하지요 ㅎㅎㅎ

cyrus 2012-05-03 19:44   좋아요 0 | URL
와~~ 4년 대단하시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가입해서 길게 활동해봤자
간신히 1년 채웠어요 ^^;; 이진님도 온라인에서 만난 회원분들을
실제로 만나고 하셨군요. ^^

blanca 2012-05-0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되게 낭만적인 까페네요. '달의 궁전'이라니요. 저는 아직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cyrus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 얘기를 하는 풍경이 그려져 따뜻해집니다.

cyrus 2012-05-03 19:4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 기회에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해요. 취향이 맞을진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해보려고요 ^^

stella.K 2012-05-0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폴 오스터 읽다가 포기했는데. 저 달의 궁전 같기도 하고...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몰라. 예전엔 미국 문학이 그렇게 안 읽혀지더라구.
근데 요즘은 간간이 읽으니까 나름 좋더라구.
네가 딱 좋아할만한 거네. 열심히 잘해 봐.^^

cyrus 2012-05-03 19:46   좋아요 0 | URL
뭐랄까요? 제 생각이지만 미국문학 중에 시기상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시키는
현대 문학들이 뭔가 어려우면서 읽혀지기가 쉽지 않은거 같아요. ^^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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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에 목마른 더벅머리 소년, 정(情)을 그리워한 노학자

 

인연은 바람처럼 스쳐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스쳐지나가는 찰나적 만남은 한때의 마주침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만남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 번 맺어진 인연이 사람의 명이 다할 때까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그 만남으로 인해 인생 전체가 확 달라지게 되는 삶이 연출될 수도 있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도 있다. 사실 우연한 만남이 운명을 바꾸는 기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으며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넘어서 역사의 흐름 한 줄기를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들어가게 할 수 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관계로 발전하는 만남, 그런 만남은 정말 운명을 바꾸는 만남이다. 오랜 기간의 만남은 인연의 폭과 골을 넓고 깊게 만든다. 그런 만남의 인연(因緣)은 아름다운 연인(戀人)으로 바뀐다.

 

비록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만남은 우연의 만남으로 인해서 맺어인 인연이 평생동안 서로를 의지해주는 사제로 이어지게 된 극적이면서도 대단한 관계이다. 역사에서 '만약~했더라면'으로 시작하는 가정법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에 정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지 않은 채 조정 내에서 승승장구한 학자로서의 삶을 유지했다면 지금까지도 불가사의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강진에서 이룩한 학문적 성과물들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단 정다산의 학문 업적에만 손실을 얻는 건 아니다. 진실되게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훌륭한 제자 한 명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1802년,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정다산은 외인이나 다름 없었다. 저 멀리 한양에 살고 있는 부인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너무나고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그가 좋아하는 학문 수양과 시작(詩作)만으로도 관계의 정(情)이 결핍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주막집에 작은 서당을 열어 그 곳 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서당에 모여든 아이들 중에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까막눈들도 있었지만 정다산은 친절하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공부를 시켰따. 서당에 공부하는 아이들 무리 중에는 지방 관아의 하급관리 아전의 아들이었던 열다섯 살 더벅머리 소년도 있었다.

 

어느 날, 서당에서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정다산은 그 더벅머리 소년을 따로 불러 서당에 남도록 했다. 그러자 소년은 스승과 단 둘이 있는 상황 때문인지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스승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억눌린 감정들을 뱉어내는 듯한 고민에 가까웠다. 그러자 정다산은 친절하게 소년의 고민을 들어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 그것이 무엇입니까?

 

 -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34~35 -

 

 

정다산은 소년의 고민과 그에 대한 답변을 글로 남겼다. 글의 제목을 '삼근계'(三勤戒)라고 지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글이었다. 소년은 스승이 써준 글이 적힌 종이 한 장을 받으면서 감격했다. 이 한 번의 가르침 그리고 스승이 제자에게 건내준 종이 한 장이 더벅머리 소년이었던 황상의 인생을 한 번에 뒤바꿔놓게 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오직 황상의 인생 자체에만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황상이라는 정직한 제자 한 명을 두게 된 정다산은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서의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동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정신적 부족함들을 채워줄 수 있는 일생 일대에 있어서 중요한 만남이었다.

 

 

 

 

 '제자바보' 정다산, '스승바보' 황상

 

정다산과 황상, 두 사제의 교류 관계는 정다산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죽을 때까지 실천했을 정도로 정말 대단한 점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들의 관계가 우직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요즘 젋은 세대들이 인터넷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조어 중에 '~바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딸바보'라는 용어는'딸을 바라보는'의 준말. 즉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뜻한다. '딸' 대신에 특별히 사랑하거나 아끼는 사람을 대상을 붙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정다산은 항상 황상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각별히 아꼈고,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려고 했던 유일한 제자였다. 말 그대로 정다산은 '제자바보'였고, 황상은 '스승바보'인 것이다.

 

정다산과 황상의 돈독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황상은 18살에 장가를 가게 되었다.  장가들어 신혼의 재미에 빠진 황상이 그동안 부지런하게 이어져 온 학문 수양에 점점 소홀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러자 이를 잠자코 지켜 보고 있던 정다산은 제자의 태도에 대한 실망감과 한심함을 담은 편지 한 통을 보내게 된다.

 

네 말씨와 외모, 행동을 보니 점점 태만해져서, 규방 가운데서 멋대로 놀며 빠져 지내느라 문학 공부는 어느새 까마득해지고 말았다. 이렇게 한다면 마침내 못나고 어리석은 인간이 된 뒤라야 그칠 것이다. 텅 비어 실지가 없으니 소견이 참으로 걱정스럽구나. (중략) 진실로 능히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뜻을 고쳐, 내외가 따로 거처하도록 해라. 마음을 오로지하여 글공부에 힘을 쏟을 수 없다면, 글이 안 될 뿐 아니라 병약해져서 오래 살 수도 없을 터.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137~138 -

 

 

 

황상의 공부 태도에 못마땅하게 여겨 스승이 그에게 각방을 써라고 훈계를 한 것이다. 이제 막 신혼의 달콤함에 젖은 제자 입장에서는 각방을 요구하는 스승의 훈계에 황당할 터. 하지만 황상은 스승이 보낸 편지 한 통 앞에서도 스승의 격노한 모습이 느껴졌던가 보다. 그는 노한 스승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뒤 신혼집을 뒤로하고 이전에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고성사라는 절로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공부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정다산의 훈계 그리고 그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황상의 반응이 오늘날 현대의 독자가 보기에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유교사회 내에서는 사제 간의 예의 역시 부자 간의 예의만큼이나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기본적인 도리였으며 항상 스승의 가르침을 끝까지 따르려고 하는 황상의 한결같은 성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새신랑 황상에게 각방을 써라고 하는 훈계의 의미 뒤에는 외로움을 참지 못하는 정다산의 말 못하는 심정이 숨어 있다. 오랜 유배생활하는 동안에 부인의 얼굴이 잊혀질 정도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하는 마당에 신혼생활을 하기 시작한 제자의 모습이 살짝 질투가 날 법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상이야말로 자신이 가르쳤던 강진 서당의 제자들 중에 친아들처럼 여길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제자였다. 외로운 스승은 자신의 곁에 황상과 함께 하기를 바랬다. 특히 자신이 직접 인정할 정도로 시작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황상과 함께 시를 쓰면서 관계가 지속되기를 원했다.

 

 

 

 노스승의 마지막 가르침

 

하지만 사람의 관계가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정다산은 길고 길었던 유배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황상은 학식 좀 있는 선비들이라면 가게 되는 벼슬아치가 되는 삶의 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농민으로서의 삶의 길을 선택했다. 이 두 사람은 간간이 편지로 근황을 확인했지만 오랫동안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 당시 지역적 제약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지역만큼이나 이 두 사람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간절한 그리움뿐만 아니었다. 속세의 삶에 집착하는 몇 몇 제자들로 인해서 정다산은 괴로워했으며 일부 제자들은 하나둘씩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황상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사 일에 충실하느라 그동안 충실했던 학문 수양이 예전에 비해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밭과 관련된 복잡한 송사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러나 각자 처하고 있는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간절히 그리워했고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정다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한 황상은 드디어 스승을 찾아 뵙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이 때 정다산의 나이는 75세, 황상의 나이는 49세였다. 황상이 더벅머리 소년 시절 때 정다산을 처음 만난지 34년의 세월이 흘렀고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로 18년 만에 재회하였다. 백발의 스승은 건강이 성치 않았지만 자신이 아끼던 제자의 방문을 알아봤고 크게 반가워했다. 비록 짧은 체류였지만 49세의 황상은 소년 시절 때처럼 변함없이 정다산의 곁을 지켜주었다. 정다산을 만난 지 이틀 뒤에 황상은 작별의 큰절을 올리고 다시 고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정다산은 황상과의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노환과 질병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 속에서도 애제자를 위해서 짤막한 글씨와 작은 선물을 전해주었다.

 

 황자중(=황상)에게 준다.『규장전운』한 건, 중국 붓 한 자루, 중국 먹 한 개, 부채 한 자루,

 연배 한 개, 여비 돈 두 냥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404~405 -

 

 

늙어버린 스승은 예전처럼 제자를 위해서 긴 내용의 시와 편지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힘들지만 간단하게 제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선물의 목록만 썼을 뿐이다. 하지만 이 짤막한 선물 목록에는 애제자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 있다.『규장전운』이라는 책자 한 권을 준 이유는 농사일 때문에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는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배를 곯을까봐 여비까지 따로 마련해주었다. 스승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계'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었다.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자 보은에 49세의 제자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흐를 뿐이었다. 스승과의 작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못난 제자를 위해 끝까지 배려해주는 스승의 고마움에 황상은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뒤에 황상은 또 한 번 울어야했다. 황상이 떠난 지 이틀 뒤에 정다산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스승과 제자, 또 없습니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리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이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 정 민『삶을 바꾼 만남』pp 13 -

 

 

 

황상은 소년 시절 때 정다산이 강조했던 '삼근계'의 가르침을 절대로 잊지 않았으며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항상 '삼근계'를 마음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매진했고,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한마음으로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상은 정다산의 삶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 거처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며 시 짓기 등의 공부를 계속 했으며, 늘그막에는 '일속산방'(一粟山房)이라는 조그마한 거처을 마련하여 그 곳에서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정다산의 제자들이 출세를 위해 공부할 때, 오직 황상은 스승이 입버릇처럼 일러주신 유인(幽人)의 삶을 실천했던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하지만 스승의 날을 맞이해야 할 학교 내 분위기는 예전 같지가 않다. 사제 간의 의리와 정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스승이 어떤 분인지를 묻는 제자가 없는 시대다. 그리고 학교는 더 이상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는 없고 돈과 폭력이 학교를 창고처럼 만들었다. 요즘 정다산처럼 숙제를 어렵게 내주고 토씨 한 개에 변죽을 부리는 선생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몰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학부모위원회에 회부될 수도 있다. 사실 정다산은 까다롭고 쫀쫀하고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특히 두 아들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끼는 제자인 황상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보게 된다면 매번 공부할 것을 권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유배지에 찾아오는 아들들에게 그동아 공부했던 것들을 확인할 정도로 무척이나 깐깐한 스승이었다. 애제자를 위해서 죽을 때까지 보살핀 스승과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까지도 어린 시절처럼 한결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스승의 곁을 지킨 제자 그리고 수십년동안 이어져 온 끈끈한 사제 간의 정(情)은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다산과 황상, 두 사제 관계에서 비롯된 일화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관계에는 신뢰와 존중이라는 핵심 가치가 녹아 있다. 진정한 교육과 만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볼 수 있다.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는 요즘 학교 교육의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연인은 사랑하는 남녀관계를 의미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형성되는 마음 깊은 모든 관계를 지칭한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만남도 가식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적 관계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될 미덕이다. 관계를 아름답게 바꾸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내가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진정한 연인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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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2012-04-3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의 책 속의 스승은 다산이신가 봅니다^^

cyrus 2012-05-01 14:59   좋아요 0 | URL
네, 사실 블로그 메인사진 밑에 있는 문구가 다산이 황상에게 했던
말의 일부에요. 다산이 황상에게 삼근계를 전해주는 이야기는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에서도 잠깐 소개하고 있어요.
저는 그 책을 통해서 다산의 삼근계을 좌우명으로 삼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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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내 얼굴은 그대의 피로 가득하다.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그대가 흘린 땀의 피,

  노동의 땀,

  노예 생활의 노동,

  그대 아이들의 노예 생활

 

  (중략)

 

 

  - 디오프「아프리카」중에서 -

 

 

 

 

 

 

 

 아프리카의 참상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케빈 카터 「독수리와 소녀」1994년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던 아프리카 수단. 카메라를 목에 건 당신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비쩍 마른 여자아이가 보급품을 받기 위해 급식센터를 향해 네발 짐승처럼 기어가고 있고, 그 뒤로 독수리 한 마리가 서 있다. 독수리의 눈초리는 노골적이다. 얼른 소녀가 기력을 잃고 쓰러지길 바라는 포식자의 시선이다. 게걸스러운 독수리는 소녀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줄곧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를 밟고 있다.

 

아프리카 기아 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수단 남부로 들어간 남아공 출신의 케빈 카터는 우연히 기운을 잃고 엎드려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녀 뒤에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런 다음 그는 독수리를 쫓아내고 이 소녀를 아요드 식량센터로 데려갔다.

 

카터가 찍은 사진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반향은 대단했다. 소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편지가 신문사로 폭주했다. 이듬해 카터가 권위 있는 사진작가들에게 수여하는 퓰리처상을 받으며 문제적 사진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사진가에 대한 비난의 여론 또한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굶주린 소녀를 도와주지 않은 채 사진 촬영을 단행한 작가의 선택에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이 작품이야말로 과연 퓰리처상의 수상 취지에 부합되는 사진인지에 대해서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카터를 독수리 맞은편에서 비슷한 눈높이를 한 채 쪼그리고 있었을 카터 또한 독수리와 다를 바 없는 모리배라는 인신공격성 비난이 나올 정도로 그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높아져만 갔다. 그칠 줄 모르는 대중의 냉담한 비난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카터는 결국 퓰리처상을 받은 지 두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Black & Blue, '아프리카'에 대한 이중적 시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끔찍한 광경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질병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으며 정치적 내전으로 인한 잡읍은 아프리카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모습들은 케빈 카터의 사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사진들 또는 그러한 장면을 TV를 통해서 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슷한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아왔기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무덤덤해 져서 그 때만큼 충격을 받지 않는다. 비슷한 장면을 계속 봄으로써 신선함과 충격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이미지 중독' 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우리 대중의 시선은 '이미지 중독'에 빠져 있다.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자신과 관련된 일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지갑 안이나 옷 주머니 구속 어딘가에 있을 단돈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은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 2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성금한 총 금액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모 건설기업 CF '아프리카' 편 장면 중에서

 

 

 

 

'이미지 중독'에 의한 아프리카의 시선 및 인식은 단순히 아프리카의 비극을 알면서도 눈 감고 있는 것만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어떠한 대상을 바라볼 때는 항상 좋은 점만 보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아프리카는 자원의 보고를 넘어 신흥시장으로, 현지 생산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암흑대륙'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5~7%대의 성장세를 이루며 '지구의 마지막 성장엔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중국 일본 미국 등은 제2의 중동으로 떠오르는 아프리카 공략을 위해 원조 및 경제 협력 카드를 제시하며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이제 우리나라도 아프리카 진출 경쟁에 뛰어들었다.

 

작년에 모 건설기업에서는 아프리카 시장 진출 사례를 토대로 한 광고가 제작되었다. 모 건설기업의 '아프리카' 편 TV 광고는 자사기업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통해 남들과 다른 생각과 도전정신으로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광고 배경음악으로 아프리카 유명 어린이 합창단 '지라니 합창단'의 잠보(JAMBO)라는 곡을 삽입했고 광고음악 사용료는 지라니 합창단 어린이들을 위해 전액 후원했다는 점에 있어서 타 기업 광고와 차별화된 방식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TV 광고 한 편 덕분에 기업은 자신들이 이룩한 성공적인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 아프리카는 기업의 이익 창출을 위한 자원이 많은 시장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또 국내 기업이 참여한 개척 사업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며 광고 카피처럼 아프리카의 미래가 밝아지리라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모 건설기업 이전에도 수많은 세계의 기업들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으며 아프리카의 땅을 '수많은 자원의 보고'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그 곳에서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을 개선해주거나 향상시켜줄 수 있는 국제개발적 사업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굴지의 글로벌 은행들마저도 자본창출을 위한 '블루오션'으로 아프리카를 눈여겨 보고 있다. 세계 경기 이중침체 우려 및 유로존 재정위기의 악영향을 받고 있는 글로벌 은행이 아프리카 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JP모건, 스탠다드차타트(SC) 등과 같은 글로벌 은행들이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손실을 피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아프리카 금융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우리는 아프리카를 '가난,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많은 기아의 나라, 끊임없는 발생하는 내전이 일어나는 암흑(Black)의 대륙'이면서도 '풍부한 자원이 있는 블루(Blue)오션'이라는 서로 상반되면서도 이중적인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왜곡된 '블랙 아프리카'를 만들어 낸 서구인들의 편협된 인식

 

요즘 인터넷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조어 중에 '웃프다'라는 말이 있다. '웃기다'와 '슬프다'라는 형용사를 조합한 단어다. 즉 어떠한 상황이나 장면에 대해서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다라는 뜻이다. 우리를 포함한 서구인들이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시선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웃프다'.

 

정작 아프리카를 새로운 사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원이 넘치는 무한한 대륙으로 보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 낙후되면서도 미개한 지역으로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아프리카를 '믿을 수 없는 병으로 신음하는 국가'라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프리카라는 대륙에는 애초부터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의 망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 속에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를 무시하는듯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사업 진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제국주의를 내세운 19세기 정치인들의 사고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사실 지금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된 인식들이 만들어 낸 함축적인 암흑의 결정체다.

 

아프리카인을 검은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라고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부터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검은 피부색을 지닌 아프키라인이 최초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변신 이야기』중 태양신의 아들인 파에톤이 혼자서 태양마차를 모는 장면에서 '아이티오피아(에티오피아)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이 검은 피부색을 가진 이유를 파에톤의 서투른 태양마차 운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이윤기 역, 민음사, pp 73 -

 

 

그리고 17세기부터는 검은 피부색이 생기게 된 이유를 나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문화적 진보를 기준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입증의 시도 역시 등장했다. 검은 피부색을 지닌 아프리카인들을 퇴화된 인종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다. 검은 피부가 인종적 퇴화의 증거라는 인식은 제국주의 시대까지 이어져오게 되면서 열등한 아프리카인들을 지배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로 변화되었다.

 

또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미개한 인종의 역사일뿐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도적으로 세계사에서 삭제시키려고 했다. 아프리카의 역사는 구전 전승되는 형식이라서 이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의 역사가들은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아프리카의 역사 존립 자체를 무시하였다. 다시 15세기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대목에서 잠시 다시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마치 유럽 탐험가들이 도전 끝에 얻어낸 전리품처럼 묘사된다. 기존 세계사에서는 15세기 이전의 아프리카 역사는 애써 기술할 필요가 없는 분야로 취급됐다.

 

이는 헤겔이『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를 유아기의 인류, 고차원적 사고능력이 없는 흑인들의 땅이자 어두운 밤의 장막에 둘러쳐 있는 대륙으로 묘사한 데서 정점에 이른다. 이후 아프리카 인을 성경의 족보에서 지워 유럽의 인종적·종교적 순수성과 우월성을 지키려 했다. 제1차 대전 무렵엔 지능지수 결과가 더해져 흑인들은 저능하고 미개하며 야만적이라는 인식을 확대 재생산했다.

 

 

 

 

 메마른 아프리카에서도 평화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까?


폭력사태와 그에 따른 난민들, 각종 전염병에 신음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얻기 위해 몇 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기아의 땅, 그곳이 아프리카인 것이다. 대부분 아프리카를 정확히 보지 못하고 그저 감상적인 동정주의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익과 헤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보물섬'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하고 있지만, 정작 아프리카를 안다고 하기에는 교류의 양이나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 오랫동안 서구 국가들이 제공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뉴스를 통해 전해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최근 서구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자원의 보고', '미래를 위한 마지막 거대 소비 시장'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현재 아프리카의 많은 상처들은 고무와 금 그리고 노예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로 진출했던 서구 열강들의 흔적들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아프리카 시장 진출 역시 경제적 논리를 앞세운 것으로 과거 서구 열강들의 행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아프리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는 경제적 진출은 아프리카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뿐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곳곳에서 벌어지는 내전이나 해적활동을 조금 자세히 생각해봐도 서구의 경제적 논리가 얼마나 아프리카에 상처를 주고 있는지 알게 된다. 사실 내전이 장기화 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내전 국가들은 스스로 무기를 만들 능력조차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군들은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 대부분 다이아몬드 같은 자원을 선량한 시민들에게 채취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확보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무기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즉 아프리카의 상황을 이용하는 무기 생산국들이 있기 때문에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장기화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되는 내전의 악순환은 아프리카 전체를 병들게 할뿐더러 아프리카인들의 피와 눈물을 온 대륙 전체에 적시게 만들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아프리카 국가 어린이들은 굶주리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를 구입하고 내전이나 종족 간 전쟁 또는 영토 쟁탈전을 위해 쓰는 돈은 넘쳐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차라리 식민통치 시대가 오히려 더 살기 좋았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에서의 경제 발전 및 민주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이후 정권을 잡은 지도자들의 부(富)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이 많지가 않다. 작년에 리비아에서 불기 시작한 재스민혁명으로 오랫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해왔던 카다피가 축출당했한 이후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민주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비극은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 빈곤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명목상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이 되었지만,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과연 메마른 아프리카 대륙에 평화의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까?  쟈스민혁명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이 당면한 현실적 과제는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 식민지적 구태를 벗어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 디오프「아프리카」중에서 -

 

 

 

변화의 흐름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자유'라는 것은 단번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유의 맛이 달콤한 만큼 쓰디쓰기도 하는 인고의 지혜를 알고 있어야하며, 초조하지만 꿈이 성취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유롭고 옹감했던 과거의 역사를 잊은 채 현재는 암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드렝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의 끈을 끊고 끈질기게 일어설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서는 가운데 자유의 참의미를 깨달아, 그 열매 속에 자유를 채워 갈 늘푸른 나무가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아프리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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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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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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