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연극제 대상 기념 앵콜 공연

<평화>

 

연극 저항집단 백치들

원작: 아리스토파네스

연출, 창안: 이상명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2025년 2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플라톤(Plato)의 대화편 향연소크라테스(Socrates)와 그의 친구들이 술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향연(아카넷, 2020)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 플라톤, 천병희 옮김 플라톤 전집 1: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도서출판 숲, 2017)





술 잔치에 참석한 아리스토데모스(Aristodemus)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날이 밝아오는 무렵에 잠에서 깨어난 그가 본 것은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었다. 요란했던 술 잔치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비극 작가 아가톤(Agathon),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였다아리스토데모스의 증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두 사람 앞에서 비극 작가와 희극 작가는 같은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향연》 223d). 지칠 대로 지친 아가톤과 아리스토파네스는 잠들어버렸고, 소크라테스는 집으로 돌아갔다. 향연은 이렇게 끝이 난다
















* 천병희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




그리스 비극과 희극을 모두 번역한 천병희 교수향연의 결말에 나온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비극과 희극을 다 쓸 줄 아는 시인으로 해석했다(그리스 비극의 이해, 16쪽).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13)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투키디데스천병희 옮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서출판 숲, 2011)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을 현대극으로 다시 만든 <연극 저항집단 백치들>의 평화 희비극이다. 희비극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비극으로 시작해서 희극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희비극의 주인공은 비극적 파탄에 이르게 되지만, 상황이 역전되어 행복을 맞이한다.


작품의 주인공 트리가이오스(Trygaeus, 남우희 분)는 길고 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지쳐 있다. 그는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트리가이오스]


평화를 되찾아 무너진 세상을 바로 세우겠습니다.”



그는 인간 세계의 전쟁을 구경만 하는 신들을 직접 만나 따지기 위해 커다랗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풍뎅이 막시무스(김학수 분, 원작은 쇠똥구리다)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기로 결심한다하지만 트리가이오스의 하인(이영찬, 강민주 분)은 그가 미쳤다면서 비웃는다.


트리가이오스는 하늘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신은 헤르메스(Hermes, 유지원 분)제우스(Zeus)와 다른 신들은 전쟁이 싫어서 다른 곳에 가버렸고, 전쟁(정성태 분)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전쟁이 절구통에 모든 나라를 넣고 절굿공이로 빻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을 따르는 두 명의 부하 혼란이(전소영 분)’절망이(성창제 분)’는 절굿공이를 들고 다닌다. 기세등등한 전쟁패거리는 평화(이연주 분)’를 구덩이에 가둔다.


트리가이오스는 평화를 구출하기 위해 헤르메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신들에게 전쟁의 위험성과 평화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전쟁을 피해 멀리 떨어져 살아온 신들(최예나, 이영찬, 강민주 분)은 자신들과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트리가이오스는 전쟁을 방관하는 신들의 태도에 절망하지만, 다행히 평화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행복한 희극이다. 그러나 연극 평화는 희극에 가려진 현실적인 비극을 보여준다. 원작처럼 희극을 끝날 뻔한 작품이 비극으로 전환된다.


소녀(김강원 분)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인물이다. 소녀는 관객들에게 평범한 일상과 자신의 꿈을 무너뜨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들려준다

 

 


[소녀]


당신을 알까? 당신처럼 하루를 보내고 싶다. 꿈꾸고 싶다.”

 


소녀는 원작에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소녀는 전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어린이다. 소녀의 독백은 우리가 잊기 쉬운 진짜 비극이다. 원작 평화는 전쟁에 지친 어른이 평화를 찾는 이야기라면연극 평화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느낀 전쟁과 평화 이야기다.


 <백치들>은 2023년에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사건(원작 허선혜연출 이성재)를 만들었으며올해에도 청소년극을 선보일 예정이다그리고 작년에 극단은 지역을 순회하면서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연극 공연 프로그램인 신나는 예술 여행을 진행했다연극 평화는 어린이에게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아동극이자 청소년극이다그리고 자녀에게 평화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은 부모들이 보면 좋은 작품이다연극 평화는 극단 <백치들>이 꾸준히 만들어 온 연극관(演劇觀)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연극 평화는 결말이 없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크림반도와 가자 지구에서 시작된 전쟁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아이러니하게도 비극(전쟁)과 희극(평화)을 만들 줄 아는 작가가 인간이다. 그러나 연극은 비관적이지 않다. 인간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고생하다가 끝내 희망을 찾게 되는 희비극적인 존재다연극은 전쟁광들이 만드는 비극이 계속되어도, 평화라는 희극을 다 함께만드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말자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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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극을 만났다. 오늘 저녁, 단 하루만 공연되는 연극을 보기 전에 원작을 읽고 싶었다올해 첫 번째로 관람하는 연극은 아리스토파네스 원작의 평화.




















[대구 책방 <일글책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13)


아리스토파네스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2》 (도서 출판 숲, 2013)





평화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1에 있다. 이 작품을 2023년에 읽었다. 당시 나는 대명 공연 거리에 있는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의 정회원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권은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였다. 대명 공연 거리는 계명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근처에 있다. 이곳에 여러 개의 소극장이 모여 있고, 극단들이 공연을 하거나 공연 연습을 한다.







평화를 만들어 무대에 올린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줄여서 백치들’)은 대명 공연 거리에 활동하는 극단 중 하나다.






 







 

 





* [절판] 히라타 오리자성기웅 옮김 도쿄 노트》 (현암사, 2013)

[절판] 히라타 오리자성기웅 옮김 과학하는 마음》 (현암사, 2013)

히라타 오리자성기웅 옮김 서울 시민》 (현암사, 2013)





내가 처음으로 본 <백치들> 연극 작품은 일본의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연극 원작은 히라타 오리자 희곡집 2권인 과학하는 마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절판되어서 도서관에 빌려서 읽었다. 희곡집 1도쿄 노트, 3서울 시민은 구매했는데, 오늘 1권이 절판된 사실을 확인했다.


공연 날짜는 202311월 말이었다. 연극은 낭독극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극 중 인물들은 시골에서 기생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다. 그들의 대화 중간에 생소한 기생충 이름이 언급된다이 작품을 만든 원작자와 연출가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관객들이 마음껏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재미있게 봤다

















* 김슬기, 이오진, 허선혜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제철소, 2017)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가 끝난 후에 <백치들>이 선보인 다음 작품은 청소년극 햄스터 살인 사건(허선혜 원작이성재 연출)이었다. 10분의 중간 휴식(인터미션)이 주어졌고이어서 햄스터 살인 사건』 공연이 시작되었다이 작품도 낭독극으로 진행되었다. 연극 원작은 청소년극 선집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에 수록되어 있다



















* 이오진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제철소, 2023)




이 희곡 선집에 이오진 극작가의 청소년극 두 편도 있다. 이오진은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 <호랑이 기운> 소속 연출가이기도 하다. 2023년 제14회 두산연강예술상(공연 부문)을 받았으며 그해 말에 본인의 첫 희곡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발표했다.







연극 감상문을 작성하면 알라딘 블로그와 개인 인스타그램에 공개한다. 그런데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감상문은 블로그에만 공개했다. 글을 공개한 지 열흘이 지난 후에 이번 생은 참기 힘들어를 만든 이상명 연출가가 내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어떻게 이런 조용한 곳을 알고 찾아오셨는지 정말 신기했고 감사했다.


작년에도 <백치들> 공연 작품들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불운한 일들(?)이 일어났다. 20244월에 처음으로 선보인 평화평일 공연이라서 예매하지 못했다. 7월에 평화두 번째 공연 날이 토요일로 정해졌는데, 공연하는 지역은 대구가 아니라 경기도 용인이었다. 두 번째 공연 역시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 [절판] 정의신 정의신 희곡집(연극과인간, 2007)




햄스터 살인 사건이성재 연출가<검은 머리 해적단>이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신진 극단의 첫 연극 작품은 재일교포 출신 극작가 정의신의 20세기 소년 소녀 창가집이었다. 나의 연차 휴가 날짜와 공연 날짜가 겹친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예매했다. 20세기 소년 소녀 창가집이 수록된 정의신 희곡집은 절판된 책인 데다가 도서관에 없는 책이다. 다행히 대구의 어느 도서관 딱 한 군데에 이 책이 있었다. 다가오는 휴가를 기다리면서 희곡을 읽었다.

 

그런데 휴가 하루 전날에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다.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이 나에게 자신의 휴가 날짜와 바꾸자고 제안했다. 동료 직원의 휴가는 다음 주 목, 금요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족상을 당했고, 동료 직원은 장례식 준비를 위해 부득이하게 휴가를 바로 써야 했다. 내가 일하는 공장의 연차 휴가 규정에 따르면 하루에 쉴 수 있는 직원은 세 명이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직원이 이미 휴가가 확정되었기에 동료 직원은 연차를 쓸 수 없다. 하루에 직원 네 명은 쉴 수 없는 것이다. 작업반장은 내게 다가와서 동료 직원을 위해서 양보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내 휴가는 다음 주로 미뤄졌고, 20세기 소년 소녀 창가집예매를 취소했다공연 전날에 취소한 것이라서 관람료 전액을 돌려받지 못했다.



















* 레오노르 콩피노, 임혜경 옮김 벨기에 물고기(지만지드라마, 2019)


* 이혜빈 지금도 가슴 설렌다(걷는사람, 2018)




예매 취소 이후에 이상명 연출가의 연극 결혼벨기에 물고기를 봤다. 결혼이혜빈 극작가의 작품인데, 원작은 텍스트로 출판되지 않았다. 텍스트로 된 원작 없이 연극을 보면 감상문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소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이혜빈 극작가의 다른 극작품 지금도 가슴 설렌다희곡 가게 <인스크립트>에서 구매했다








벨기에 물고기서평은 썼지만, 연극 감상문은 쓰지 못한 희곡이다. 원작의 재미를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원작에 없는 대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원작에 잘 녹아들었다. 글쓰기를 미루는 바람에 감상문을 쓰지 못했다잘 만든 연극을 감상문으로 소개하지 못한 것 또한 불행한 일이다.






 













* 아리스토파네스, 이희원 옮김 리시스트라타(지만지드마라, 2024)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리시스트라타는 희극 전집 2권에 있다.





올해 공연될 예정인 <백치들> 작품들이 공개되었는데, 9월 공연작이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타가 있다. 이상명 연출가의 작품이다. 아테네 여성들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는, 일명 (sex) 파업을 그린 작품이다인물들의 대사 곳곳에 성적 표현들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섹스 코미디다. 이 작품도 재미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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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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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우로보로스(Ouroboros)는 질기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이 뱀은 자신의 꼬리를 삼킨다. 꼬리가 먹혀도 다시 돋아난다











뱀은 둥글게 말아서 돌고 돈다(Round and Round). 영원히 죽지 않는다. 우로보로스는 무한과 순환을 상징한다.


원자(Atom)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그리스어 atomos)’ 것처럼 보여도, 잘만 쪼개진다. 한 개의 원자가 분해되면 그 안에 들어있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이 나온다. 이들은 원자보다 더 작은 아원자 입자. 세상으로 뛰쳐나온 아원자 입자들이 다시 만나면 새로운 원자가 생긴다. 만약 원자가 절대로 분해되지 않는 속성을 가진다면, 생명체는 태어날 수 없다. 분해와 재결합을 무수히 반복하는 원자의 성질은 우로보로스와 같다. 원자는 죽지 않는다(Atoms Never Die).


인간은 원자들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생명체 중 하나다. 한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원자의 개수는 얼마나 될까? 전 세계 모든 사막에 있는 모래알보다 무려 10억 배나 더 많다인간이 죽으면서 나온 원자들은 또 다른 생명체를 만든다. 모든 생명체는 원자에서 태어난다그렇다면 그 많은 원자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책으로 만들어진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년)에 출연한 칼 세이건(Carl Sagan) 우리가 우주에서 온 특별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별 먼지(star stuff)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별이 폭발해서 우주 사방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별 먼지 속에 원자가 있다.


따라서 원자의 역사를 알려면 제일 먼저 우주에서 시작한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큰 우주의 씨앗은 원자다. 그뿐만 아니라 지구의 씨앗, 생명체의 씨앗이기도 하다. 원자는 다재다능한 입자다.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는 우주와 생명체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원자의 업적들을 정리한 책이다.


수많은 물리학자, 화학자, 천문학자, 생물학자들은 태초의 씨앗을 밝히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그들의 연구는 동시대 과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비난을 받았다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려고 했던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Gustave Courbet)보이지 않는 천사를 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명백한 사실을 알고 싶은 과학자들은 확인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원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원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우리는 원자의 실체를 부정한 과학자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원자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실험기구가 없었던 그 당시로서는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S. Kuhn)은 집단적인 인식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명명했다.[주1]









벨기에의 가톨릭 성직자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는 아주 작은 원시 원자(primeval atom)가 폭발하는 순간 우주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방정식을 이용해 우주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우주는 변함없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은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설을 거부했다. 그의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주2] 르메르트가 제시한 원시 원자 개념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빅뱅(Big bang) 우주론의 원형이다.


20세기 중반에 아원자 입자들의 정체가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당사 물리학자들은 기뻐하기보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원자의 속성을 믿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반복되는 실험과 정밀한 측정을 중시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황을 찝찝하게 여겼다. 아원자 입자들이 발견되는 상황을 지켜본 미국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Murray Gell-Mann) 모든 물질의 기본 입자는 원자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과감한 생각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유령과 같은 입자쿼크(quark)라는 괴상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쿼크는 독일어로 헛소리를 뜻한다.


이 책은 과학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여섯 가지 편향을 소개한다. 과학자도 인간이라서 때로는 착각하고,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그러나 가설과 이론을 의심하는 과학자들의 태도를 무조건 편향으로만 볼 수 없다. 과학적인 관점에 따라 의심하는 태도는 증거가 부실한 유사과학과 독단적인 편향에 맞서 싸우는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김동광 옮김, 까치, 2021)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학책이었다. 15년이 지난 후에 이 기록을 깬 과학책이 빌 브라이슨(Bill Bryson)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 2020).[주3] 이 두 권의 책은 잘 만들었지만, 단점이 있다








과학책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낸 브라이언 클레그(Brian Clegg)에 따르면, 호킹의 책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책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년에 출간된 책이다. 최신 과학 정보가 반영되지 않았다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에는 기본적인 과학 개념들이 쉽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2023년에 나온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보다 10년은 젊다.


책 속에 사소하지만못 본 척하면서 지나칠 수 없는 옥에 티가 있다.



* 28쪽





 몇 년 후에 그는 교황 피우스 7에게 자신의 이론을 영적 진리에 대한 증거로 활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원문]

 

 Years later, he would ask Pope Pius XII not to use his theory as evidence of scriptural truth.



피우스(Pius)’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교황은 총 열두 명이다. 국내 천주교인들이 많이 쓰는 표기는 비오. 비오 7(Pius VII, 1742~1823)1800년에 바티칸에 입성한 251대 교황이다. 조르주 르메트르가 살아 있었을 때 활동한 260대 교황은 비오 12(Pius XII, 1876~1958, 재위: 1939~1958).



* 55





 그는 이 기묘한 입자를, ‘quack(돌팔이)’ 또는 ‘quork(꽥꽥거림)’라는 이름을 저울질하다가 제임스 조이스피네간의 야경(Finnegan’s Wake)에 나오는 쿼크(quark)로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Wake’깨어나다 또는 밤을 새다를 뜻하는 단어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고국 아일랜드에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 지인들끼리 모여 밤새도록 고인을 추억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풍습이 있다, 소설 제목의 ‘Wake’는 아일랜드의 장례 풍습을 뜻한다. 따라서 피네간의 야경은 오역이다정확한 제목은 피네간의 경야(經夜)’야경은 밤의 경치(夜景)’ 또는 밤에 순찰하는 일(夜警)’을 뜻한다.



* 92




 

 아폴로 10호 우주 비행사들이 달 궤도를 돌았던 것이 고작 두 달 전이었다. 이제는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인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최초의 달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버즈 올드린(Buzz Aldrin)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우주 비행사 한 사람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바로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그는 두 사람과 함께 달 표면을 밟지 못했고, 우주선 조종을 담당하는 임무를 맡았다. 콜린스는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본 우주 비행사(넓게 보면 인간).



* 274~275






 

 1970년대에 발간된 식물의 사생활(The Secret Life of Plants) 때문에 식물 생리학은 유사 과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식물에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한 실험을 통해서 식물이 인간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하는 전직 CIA 수사관의 책이었다. 그의 실험은 재현할 수 없었고, 그 책은 저명한 생물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결국 식물이 지능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모두 초심리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언급된 이 책의 정체는 식물의 정신세계: 식물도 생각한다(황금용 · 황정민 옮김, 정신세계사, 1993). 저자는 피터 톰킨스(Peter Tompkins)크리스토퍼 버드(Christopher Bird). 두 저자는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뉴에이지 관련 서적을 펴냈다.







피터 톰킨스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종군 기자와 미국의 첩보기관 OSS(미국 전략사무국,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요원으로 활동했다. OSSCIA(중앙정보국)의 전신이다. 저자는 피터 톰킨스를 전직 CIA 수사관이라고 잘못 언급했다. CIA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47년에 설립되었다.





영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1995년에 기획한 BBC 자연 다큐멘터리 제목도 식물의 사생활(The Private Life of Plants)’이다. 식물의 탄생 및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책으로도 나왔는데, 애튼버러가 썼다. 다큐멘터리 제목과 같은 책의 번역본(과학세대 옮김, 1995년, 절판)을 펴낸 출판사가 까치. 따라서 유사 과학으로 비판받은 피터 톰킨스와 크리스토퍼 버드의 책 제목을 식물의 사생활로 번역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 토머스 S. , 김명자 ·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


[2] 데이비드 보더니스, 이덕환 옮김,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까치, 2017, 절판)


[주3] 브라이언 클레그, 제효영 옮김, 책을 쓰는 과학자들: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을유문화사, 2025), 304~307쪽.






<cyrus의 정오표>



* 108





 

베르헤른 폰 브라운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성홍 성홍(猩紅熱)






* 138




 

 1940년대에 오파린은 권력에 굶주린 생물학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마르크스주의적 유전 이론으로 스탈린의 호감을 얻은 토로핌 리센코와 손을 잡았다.


토로핌 리센코 트로핌 리센코(Trofim Lys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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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01-3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루스님 글을 읽을 때마다 원문과 비교해 책의 오류들을 짚어주시는 내용이 정말 재미있어요. 근데 어쩜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인지, 볼 때 마다 신기해요.

이윤기 선생님이 옮긴 저 책, 아주 옛날에 봤던 기억이 나네요.

알라딘 서재에서 논쟁이 있었던 적도 있었고, 지금도 제가 어디 강연하러 갈 때마다 약간 논란이 되는 것이 원자력 발전과 핵 발전 이라는 단어 얘기인데요. 과거 과학자들이 쪼개지지 않는 최소 단위를 원자로 생각했던 것은 당연히 맞고, 이후 핵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나중에 핵폭탄을 개발하고, 이를 한참 후에 핵 발전으로 이어가는데요.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만 핵발전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이라는 단어를 국가적으로 사용합니다. 영어로도 Nuclear power plant 가 아니라 Atomic power plant 라구요. 전세계에서 원자력 발전 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는 나라가 일본과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거의 없고, 과학적으로도 핵분열(nuclear fission) 현상을 원리하는 발전이라 당연히 핵발전이 맞는데, 이걸 원자력이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더라구요.

cyrus 2025-02-01 09:59   좋아요 0 | URL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에 호기심이 많아요. 그 단어 하나에 꽂히면 책 읽기를 멈추고, 단어를 알아보려고 조사를 해요.. ㅎㅎㅎ

일본은 두 번이나 핵폭탄을 맞은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핵무기를 뜻하는 ‘Nuclear’ 사용을 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찬성하는 일본 정부와 과학자들, 관료들은 국민에게 원자력 발전소의 장점을 잘 전달하고 싶어 해요. 그러려면 원자핵을 홍보하거나 설명할 때 끔찍한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Nuclear’를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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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월의 세계문학









얼떨결에 하와이에 불시착한 테레사(Theresa). 아시아의 변방으로 알려진 한국에서 온 소녀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아늑한 집, 듬직한 어버이, 어머니의 포근한 품에 나오는 말(母語). 어디서 잃었는지 소녀는 모른다. 불안해진 소녀의 조그마한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는다. 테레사는 외로움과 추위에 떨었다. 소녀를 움츠리게 만드는 하와이의 차가운 바람은 어디서 부는 것일까.







테레사의 괴로움에 이유가 있다. 소녀는 혼자다. 커다란 하와이는 육첩방과 같은 남의 나라.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무인도. 혼자서 아픔을 참다가 병원에 온 테레사. 그러나 의사는 소녀의 병을 모른다. 그녀한테 병이 없다고 한다. 지나친 시련, 지나친 피로. 하지만 소녀는 성내서는 안 된다. 테레사, 불쌍한 테레사. 끝없이 침전하는 테레사.


인생살이가 어렵다던 윤동주 시인시가 쉽게 써지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고달픈 인생살이를 너무 일찍 깨달은 테레사도 손쉽게 글을 쓰지 않았다. 그녀가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일이다어른이 된 테레사는 여러 번 쓰다가 하와이의 바닷모래로 덮어 버린 자신의 옛 이름을 찾았다. 차학경(Hak Kyung Cha). 어머니의 말(母語)에서 태어난 이름이다.[]


차학경의 첫 번째 책 딕테(Dictee)가족과 고향의 추억을 되새긴 앨범이요, 회상록이다딕테》는 눈으로 읽는책이면서도 눈으로 보는이다. 이 책에 차학경의 아버지 차형상이 직접 붓으로 쓴 글씨어머니 허형순의 사진이 있다. 차학경은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을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녀는 왜 텍스트 곳곳에 이미지를 넣었을까그녀는 말하기가 자신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차학경은 자신을 말하는 여자(diseuse)’로 지칭한다. 하지만 그녀는 언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낯선 언어를 억지로 만나면 입과 혀의 활기가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언어는 라는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다차학경에게 이미지는 책을 쓰기 위해 활용된 비언어적 표현 수단이 아니다. 본인의 정체성과 다양한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시할 수 있는 2 언어.







차학경은 남의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남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 쓰면서(Dictee)’ 성장했다. 포근한 어머니의 말에 익숙한 혀는 차가운 남의 언어가 닿는 순간, 바로 얼어버린다. 목젖은 닫힌다. 웅크린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들어간다. 말하는 여자가 되고 싶은 차학경남의 말과 비슷한 것을 뱉어본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 나오는 것은 단어들이 어설프게 만나서 생긴 비문(非文)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은 이방인의 어설픈 말을 듣지 못한다.


어머니 차형순은 차학경에게 말하기와 글쓰기의 가치를 처음으로 알려준 스승이다. 그래서 차형순은 딕테를 태어나게 한 할머니이자 산파이 책의 2칼리오페 서사시는 어린 차학경이 소중하게 여긴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텍스트다어머니, 모국어, 고향은 차학경의 삶에서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말합니다. 비밀 속에서. 바로 당신의 언어를 말합니다. 당신 자신의 언어. 당신은 아주 부드럽게, 속삭여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비밀스럽게. 모국어는 당신의 안식처입니다. 당신의 고향입니다. 당신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진정으로. 


(56쪽)



말하는 여자자신이 누군지 떳떳하게 말할 줄 아는 인간이다. 그리고 자유와 존엄성을 말살하는 세상에 거세게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차학경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여성을 양산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유관순과 잔 다르크(Jeanne d’Arc), 가톨릭 성인 테레즈 수녀(Thérèse de Lisieux, 리지외의 테레사, 小花 데레사)를 소환한다. 이 세 사람은 차학경보다 먼저 태어났다. 그녀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인식했으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했다. 1장 「클리오 역사」(유관순), 5장 「에라토 연애」(테레즈 수녀, 잔 다르크) 주체적인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재구성한 글이다. 차학경은 이 글을 통해 자신 또한 그들처럼 살아가겠다고 천명한다.


딕테는 작가가 소중하게 여긴 것들을 모아 놓은 보석함과 같은 책이다. 어머니와 모어는 굳어 있던 작가의 입과 혀를 살아있게 해주는 생명력이다. 작가는 한국을 떠나면서 놔두고 온 어머니와 모어를 되찾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 누군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미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차학경으로 태어나 ‘테레사’라는 이름을 부여받아 미국에 정착한 디아스포라(Diaspora)다. 글 쓰는 작가이자 비디오 아트(Video art) 예술가였다. 어머니와 모어는 풍요로운 정체성을 지닌 테레사 학경 차’로 성장하게 만든 힘이다.





[] 숨은 윤동주 찾기글의 첫 문단부터 세 번째 문단까지의 글은 윤동주 시인의 시구(밑줄을 친 부분)를 엮어서 썼다. 내가 인용한 시는 <쉽게 씌어진 시>, <>, <바람이 불어>, <>,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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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마거릿 애트우드 페넬로피아드



2025년 1월 24일 금요일저녁 8시~10시 20분

장소: 인더가든



<읽어서 세계문학(속으로)>을 만든 독자들

김성현빅토정현정

조약돌천성은히시마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






고전은 단단한 껍질로 이루어진 알과 같습니다. 고전의 알은 수많은 독자의 관심을 듬뿍 받은, 아주 오래된 알입니다. 고전을 굉장히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알을 애지중지 품습니다. 그들은 알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바라봅니다. 그래서 고전을 깨뜨리는 일을 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껍데기는 계속 두꺼워집니다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알은 무정란입니다. 수정(受精)이 되지 않은 알에서 생명이 태어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알껍데기를 깨뜨리는 재해석과 수정(修正)을 거부한 고전의 알 속에 무엇이 있을까요? 신선하지 않은 ‘시들시들한 과거’만 남아 있습니.


















[세계문학 작품 읽기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2025년 1월의 세계문학]

[개정판마거릿 애트우드김진준 옮김 페넬로피아드》 (문학동네, 2024)


[구판 절판] 마거릿 애트우드김진준 옮김 페넬로피아드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문학동네, 2005)



















호메로스, 이준석 옮김 오뒷세이아》 (아카넷, 2023)


호메로스, 김기영 옮김 오뒷세이아》 (민음사, 2022)


[대구 책방 <일글책서양 인문 고전 읽기 2023년 두 번째 선정 도서]

호메로스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 (도서 출판 숲, 2015)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페넬로피아드호메로스(Homeros)가 낳은 두 개의 알 중 하나인 오뒷세이아를 깨뜨린 소설입니다(나머지 알은 일리아스입니다)호메로스의 알에서 태어난 오디세우스(Odysseus)는 지혜로운 영웅입니다. 그러나 애트우드가 호메로스의 알을 깨뜨려서 나온 것은 오디세우스가 아니에요. 그의 아내 페넬로페(Penelope)가 태어납니다. 다시 태어난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던 과거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과거에 갇힌 페넬로페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는 남편을 그리워하고, 구혼자들의 구애를 거들떠보지 않는 현모양처였습니다애트우드가 부활시킨 페넬로페는 남편의 그늘 속에 살아온 삶을 후회하고, 거부합니다. 그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없는 오디세우스 신화의 실체를 낱낱이 밝힙니다. 그리고 책 밖에 있는 현대의 독자들을 향해 소리칩니다제발 나처럼 살지 마요!” (페넬로피아드 16쪽)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책을 비판적으로 읽는 독자들이 만든 독서 모임입니다.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는 페넬로페가 우리에게 들려준 오디세우스 신화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오뒷세이아를 안 읽은 독자들도 페넬로피아드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오뒷세이아를 읽은 독자들은 원전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를 예상하면서 페넬로피아드를 읽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인상적인 반전이 없어서 아쉽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애트우드의 페넬로페는 호메로스가 묘사한 남편의 영웅적인 면모가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점을 알리고 있어요. 그리고 구혼자들과 내통한 죄(호메로스의 묘사, 오디세우스의 관점)로 교살당한 시녀들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호소합니다. 그렇지만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의 독자들은 시녀들의 변론을 묵살한 남편을 두둔한 페넬로페의 양가적 감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 [절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 하정희 옮김 노예의 역사: 현대판 노예노동을 끝내기 위한(예지, 2015)

 



페넬로페는 시녀들을 친자식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시녀들의 부당한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시녀를 사회적 약자로 대입해서 바라본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독자는 페넬로페가 시녀의 죽음을 방관적인 자세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지적했습니다. 고대 사회의 시녀는 노예와 같습니다. 노예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 길어요. 노예의 역사는 19세기 미국이 아닌 고대부터 시작됩니다시녀는 인간인데도 인간이 아니었어요. 죽을 때까지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소모품입니다. 건강이 쇠약해지거나 엄중한 죄를 저지른 시녀는 갖다 버려도 되고, 죽여도 되는 폐품이 됩니다. 결국 () 페넬로페(호메로스)와 신() 페넬로페(애트우드)는 여성이라는 젠더 안에서 작동되는 계급 차별을 넘어서지 못한 인물입니다.


















* 캐서린 R. 스팀슨 & 길버트 허트 엮음, 김보명 외 옮김 젠더 스터디: 주요 개념과 쟁점(후마니타스, 2024)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열세 번째 모임(2025년 1월) 선정 도서]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교양인, 2023)




페미니즘 운동의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페미니스트가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이 아니었어요. 인종, 계급, 장애, 섹슈얼리티를 중요하게 인식한 페미니스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흑인 여성, 프롤레타리아 여성, 장애 여성, 젠더퀴어(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성평등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도 첨예한 논쟁들이 펼쳐졌어요페미니즘의 정의는 다양합니다. 정희진을 포함한 여러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지식 안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여성주의는 성별, 나이, 인종, 계급, 장애, 지역 등 여성들 간의 차이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 양상에 공통점이 없다는 사실이 페미니즘 이론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중에서, 149)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평등과 생물학적 여성만 경험하는 차별 문제에 집중하면 인종, 나이, 장애와 연관된 또 다른 차별을 방관하는 가해자의 학문 되고 맙니다.







페넬로피아드오디세우스 신화를 모르는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고전의 알을 깨고 나온 책도 시간이 지나면 단단한 알이 됩니다. 고전을 재해석한 책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어요<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독자들처럼 책을 깊고, 넓게 파고들면서 읽는 분이라면 소설 속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올해 첫 독서 모임의 후기는 여기까지 마무리할께요. 2월의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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