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어떻게 세상을 디자인하는가
마이클 슈나이더 지음, 이충호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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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점  ★★  C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이 누군지 밝힐 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philosophos)’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의 사냥꾼으로 자라게 된다고 했다.[주1] 실제로 피타고라스가 이런 말을 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이 일화가 고대부터 쭉 전해져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피타고라스는 철학과 철학자라는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학자로 알려졌다. 피타고라스가 사랑한 지혜와 진리는 철학이 아니라 기하학이다그는 만물의 근원은 하나(monas)라고 생각했다. monas단위를 뜻하는 단어다. 이 하나에서 둘이 생기고, 하나와 둘이 만나면 ()이 생긴다. 피타고라스는 자연의 모든 질서를 수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수학은 어떻게 세상을 디자인하는가는 2002년에 출간된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의 개정판이다. 저자 마이클 슈나이더(Michael S. Schneider)수학을 사랑하는 미국의 피타고라스. 그는 피타고라스가 찾고 싶었던 만물의 수학적 패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저자는 수학을 세 가지 접근 방법으로 나눈다. 세속적 수학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이다. 세속적 수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빨리 풀어서 정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상징 수학은 피타고라스가 사랑한 진리에 가깝다. 온 세상이 거대한 이라면 만물은 숫자. 피타고라스에게 수는 만물의 언어다. 그는 음악도 질서 있는 수의 세계로 이루어졌다고 인식했다. 피타고라스는 눈과 귀를 모두 열어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수를 찾거나 들으려고 다닌 진리의 사냥꾼이다. 신성한 수학은 책으로 가르칠 수 없는 자연의 수학적 암호다진리의 사냥꾼들은 자신이 어렵게 습득한 자연의 수학적 암호가 종교적 권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너무 어렵게 썼거나 죽을 때까지 비밀로 유지했다미국의 피타고라스는 더 이상 수학이 신비주의에 갇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교사다. 오래된 교사를 이해하려면 수학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자연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예술 작품과 건축물 속에 숨겨진 기하학적 디자인을 찾으러 다니는 진리의 사냥꾼이다. 그의 사냥 무기는 컴퍼스, 직선 자, 연필이다. 기하학 작도를 할 때 쓰는 도구들이다이 도구들만 있으면 만물의 수학적 패턴을 직접 그릴 수 있다.


수학은 어떻게 세상을 디자인하는가예술에 가까운 기하학의 아름다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믿고 읽는 수학책으로 봐도 되는지 모호하다수학의 매력에 너무 깊게 빠지면 온 세상은 숫자라고 믿는다. 이 세상을 숫자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수학을 극단적으로 사랑하면 수비학(數秘學)이 된. 수비학은 유사 수학’이다. 수비학을 믿는 신비주의자들은 우리 이름 속에 우리에게 딱 맞는 숫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숫자의 의미를 해석하면 우리가 누군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숫자 신비주의자는 점성가와 비슷하다. 그들은 숫자로 점을 친다. 숫자를 분석한 것을 토대로 그 숫자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앞으로 이렇게 살라면서 조언한다수비학의 이름 분석은 정확성이 떨어진다수비학은 통계 분석과 같은 수학의 논리적인 용도를 무시한다.







저자는 이 책의 5장에 황금비를 아주 열심히 설명한다저자는 주변을 둘러보면 황금비를 지닌 물체들이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황금비를 설명할 때 자주 예시로 드는 파르테논 신전까지 언급한다(171쪽)파르테논 신전의 실제 가로세로 비율은 9:4. 황금비 1:1.618에 근접하지 않는 수치다. 영국의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Keith J. Devlin)은 자신의 책 <The Math Instinct>(2006)에서 파르테논 신전이 황금비가 적용된 채 세워졌다는 증거가 없으며 황금비와 완전히 다른 측정 결과가 나온다고 썼다.[주2]


공교롭게도 저자는 황금비가 언급된 5장에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말을 인용했다.

 

 

* 166쪽


 수학적 논증을 허용하지 않는 한, 어떤 조사도 엄밀하게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의 피타고라스는 신비주의에 갇힌 수학을 구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정작 오류와 사이비에 갇힌 수학을 구출하지 못했다.






[주1]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옮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나남출판, 2021) 8권 피타고라스, 155.


[2] <[FACT & VIEW] 감쪽같이 속았다! 2500년 만에 밝히는 황금비 진실>, 동아사이언스, 201723일 입력.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24






* 355쪽




 


조르주 귀르드지에프(Georges I. Gurdjieff) 게오르기 구르지예프(Georgii lvanovich Gurdzhiev)





* 183




 

목성의 [주3]은 수백 년 동안 소용돌이치고 있는 폭풍이다.



[3]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제외되었다목성의 눈의 정확한 명칭은 대적반 혹은 대적점이다.





* 272




 아테나의 오빠이자 그에 해당하는 로마 신이 없는 유일한 그리스의 주요 신인 아폴론[4]은 올림포스에서 조화의 신이다.

 


[4] 그리스의 아폴론(Apollon)에 해당하는 로마 신이 있다. 이름은 아폴로(Apollo)’.





* 289

 




데카르트가 그린 무지개 다이어그램

(1837년에 출간된 그의 대기 현상(Les Meteores)[5]으로부터)



[5] <Les Meteores>는 국내에 기상학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책이다. 데카르트는 자연학 저서인 <세계>(Le Monde)를 쓰려고 계획했다. 이 책에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지동설)이 언급된 내용이 있다. 그러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재판을 받아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데카르트는 <세계> 출판을 포기했다. 1637에 데카르트는 검열을 피하고자 익명으로 자연학 논문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과 철학 논문 방법서설을 출간했다. ‘18371637년의 오자다.





* 346

 

 거의 모든 문화에서 9에 대한 언급은 최종적인 연장을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작곡가 사이에는 교향곡에 9번 이상의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는 미신이 퍼져 있다. [주6]

 


[6] 베토벤(Beethoven)교향곡 9<합창>을 발표하고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베토벤 이후에 활동한 음악가들은 9번 이상의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자, ‘9번 교향곡의 저주(Curse of the ninth symphony)’라는 미신이 생겼다미신을 믿는 음악가들은 교향곡을 만들 때 일부러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하지만 20세기에 태어나면서 9번 이상의 교향곡을 만든 음악가들이 생각보다 많다.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번호를 모두 붙인 15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우리나라에는 동요 <유관순>, <어린이 노래>, 군가 <전우> 작곡자로 알려진 나운영13곡의 교향곡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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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과 무한 -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레비나스 선집 3
에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김도형 외 옮김 / 그린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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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레비나스 읽기 모임 두 번째 도서

(4회 진행: 818, 91, 929, 10월 13)




철학은 오랫동안 라는 존재를 따라다닌 학문이다. ‘는 철학자들을 귀찮게 하는 질문 유발자다. ‘는 무엇인가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어떻게 하면 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나는 내가 누군지 궁금해.’ 심오한 말이지만여기서 철학이 시작되었고 철학자가 태어났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아테네에서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의 메시지를 믿지 않았다본인이 정말로 현명한 사람이 맞는지 궁금했다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대화(산파술)를 주고받은 끝에, 결국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 또한 무지하다고 생각했다그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속 편안하게 사는 알키비아데스(Alkibiades)에게 델피(Delphi)의 신전에 있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충고했다. 너 자신을 알라(gnôthi sauton).”[주1]


몽테뉴(Montaigne)무시로 를 물고 늘어지는 철학과 한평생 함께 살았다. 그는 를 알고 싶은 철학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책 속에서 발효된 지식은 몽테뉴가 자신의 서재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다. 하지만 몽테뉴는 진짜 를 찾을 때면 술 한 모금 눈에 대지 않는다. 그는 책 속에서 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서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Que sais-je)?”[주2] 


데카르트(Descartes)도 몽테뉴처럼 책과 지식에 기대지 않은 상태에서 철학을 만났다. 그의 서재는 침대였다. 질문하는 철학과 함께 침대에 누운 데카르트는 졸음을 참아가면서 자신이 누군지 생각했다생각하는 나는 데카르트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철학의 제원리그는 생각하는 자신을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나는 생각한다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주3] 


를 향한 질문철학자가 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관문을 비켜서 지나간 철학자가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그는 오로지 에게만 관심이 쏠린 철학의 질문을 의심한다. 그리고 거꾸로 철학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타자(他者)는 누구야? 나는 타자가 누군지 궁금해.” 타자를 알고 싶은 욕망. 여기서 레비나스의 철학이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를 알기 위한 철학은 주체(subject)’를 이해하기 위한 철학으로 성장한다. 철학자들은 저마다 주체의 정의를 내렸다주체는 단순하게 말하면, 의식을 가진 인간 또는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실체.[주4] 데카르트가 의심하지 않은 생각하는 나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는 정신 또는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지 자아 또는 주체와 같은 의미의 개념이 아니다철학 개념은 수많은 철학자의 머리를 통과하면 의미가 확장되거나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철학 개념을 한 가지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주체도 마찬가지다철학자들이 개인, 자아, 주체에 대해 논의할수록 철학은 타자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철학이 오만해지면, 자기중심적 철학으로 변질된다. 오만한 철학의 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성적 주체’인 인간이. 인간의 지식은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 오만한 철학은 권력을 가진 정치인을 따라다니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충성한다.


레비나스는 2차 세계 대전의 참상과 전체주의 국가(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국가 파시스트당)의 등장을 목격했다. 그는 주체를 인식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철학은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에 무기력한 철학은 폭력으로 타자의 소중한 삶과 자유를 짓밟는다레비나스는 자신의 책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독일어판 서문에서 존재의 자기 보존 경향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주5] 존재로 대입하면, 자기 보존 경향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의미한다.


전체성과 무한은 기존 철학자들이 주장해 온 자기중심적 철학을 비판하면서 타자가 누군지 묻는 철학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무한에 비유한다. 타자는 나보다 더 높은 무한한 곳에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타자는 나와 동일시할 수 없다. 레비나스 철학의 타자는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타자를 알고 싶은 욕망은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싶어하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타자의 고통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타자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는 타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나와 타자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는 타자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윤리적 행위. 따라서 레비나스는 윤리를 1 철학으로 삼는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거나 철학자가 되지 않아도 우리 각자가 를 향해 질문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를 만나야 한다.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나는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를 따라다니면서 계속 나에 대해서 질문하는 철학의 얼굴은 우리 각자의 얼굴이다. 우리가 만나야 할 타자가 누군지 질문하는 레비나스 철학의 얼굴은 얼굴들이다. 여기에 내 얼굴과 타자의 얼굴이 함께 있다.  







    


[1]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I · II124d. 

(김주일 · 정준영 옮김, 아카넷, 2020, 81)


[2] 몽테뉴, 에세 212레몽 스봉을 위한 변명」 

(심민화 옮김, 민음사, 2022, 327)

 

[3] 데카르트

방법서설: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4부 

(이재훈 옮김, 휴머니스트, 2024, 82)

 

[주4] 주체 · 주체성, 철학사전편찬위원회, 철학사전

(중원문화, 2023년)


[주5]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독일어판 서문,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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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0-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사이러스님 혹시 사람, 장소, 환대 읽어보셨나요?

cyrus 2024-10-05 10:13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안 읽어봤어요. 박동수의 <철학책 독서 모임>이라는 책에 <사람, 장소, 환대>에 관한 글이 있어요. 그 글을 읽고 <사람, 장소, 환대>를 안 봐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 쟝님은 <사람, 장소, 환대> 어땠어요?

공쟝쟝 2024-10-05 10:19   좋아요 0 | URL
인상적인 책이었는데… 이 글 읽어보니 레비나스 철학이랑 이어져있는 것 같아요. 그때 읽을 때는 몰랐어요. 암튼 고생하셨네요 ㅋㅋㅋㅋ

cyrus 2024-10-05 10:34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레비나스와 데리다가 환대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의했어요. ^^
 
방법서설 -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재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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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데카르트(Descartes)침대에 누워서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허약했다. 그러나 공부하기 시작하면 생기가 돌았다피로감이 몰려오면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그는 책 없이 공부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읽었던 모든 책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가 본 책들 대부분은 오류가 넘쳐났다데카르트는 타인의 편견과 오류가 섞여 있는 책을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한 권의 책으로 여기고 침대에 누워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라는 책속에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라는 존재가 살아가면서 바라보고, 경험한 세계다라는 거대한 책을 활짝 열어서 보는 일은 를 제대로 알기 위한 여행이다. 데카르트의 침대 여행은 책에 적힌 진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거리를 둔 지식에 중세 기독교 신학도 포함된다. 중세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규정한다. 중세 신학자들이 바라보는 인간은 유혹에 약해서 타락하기 쉬운 불완전한 존재다하지만 데카르트는 진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명하려고 생각하는 나를 만났다생각하는 나는 중세 기독교적인 인간이 아닌 철학을 하는 인간이다데카르트는 신학과 철학을 구분한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 이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방법서설생각하는 나를 만난 데카르트가 직접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주석서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를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방법서설4부에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선언한다생각하는 나는 철학의 제1 원리그는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을 본성으로 이해하고 신뢰한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는 살아있다고 볼 수 없다.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방법서설4, 83)’이 없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인식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은 자아 또는 주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를 종종 자아와 주체의 동의어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데카르트 철학은 이성적 인간을 찬양하는 사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정신이 인간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영혼이라고 주장했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동물은 생각하지 않는 존재이며 영혼 없는 기계. 그가 산 채로 동물을 해부했다는 일화까지 알려지면서 데카르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철학자’ 또는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을 옹호한 철학자로 비판받았다.


방법서설5부에 데카르트는 자신이 동물과 식물, 그리고 무생물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못했다고 밝힌다(114). 그는 자연학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데카르트는 동물과 식물의 활동이 영혼(정신)의 개입과 무관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다. 방법서설발표 이후에 데카르트는 동물과 식물의 생명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어 했다하지만 당시에 알려진 자연학 지식으로는 동물과 식물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로 규정했다고 해서 유독 그에게만 전근대적 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데카르트가 자연을 이용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실천적인 철학을 통해 불 · · 공기 · · 하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의 힘과 작용을 우리 장인들의 다양한 기예를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판명하게 인식하면서 이 힘과 작용을 장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것들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우리를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처럼 만들 것이다.


(방법서설6144~145)



데카르트는 허약한 체질이라서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건강해야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건강하게 살려면 자연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연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데카르트는 앞서 동물과 식물에 대한 자연학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았다면서 본인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의 겸손한 고백은 생각하는 나는 자연의 법칙 전부를 인식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을 긍정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을 완전무결한 신적 존재 또는 자연을 지배하는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진리 탐구에 전념한다데카르트는 이 세계에 확실한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만물이나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여기 수많은 의견 중에 편견과 오류가 있다데카르트가 이해한 세계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큰 차이가 없다. 지금, 이 세계가 가짜 뉴스들이 득실거리는 책이라면,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은 ‘고집이 센 오류투성이 책이다잘못된 책들에 둘러싸인 우리는 가짜 뉴스와 유사 학문(과학, 역사학)에 지쳐서 정신이 축 늘어진 상태다.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교조주의와 극단주의가 대중으로부터 열렬히 환영받는다. 이제는 누구나 선동가가 될 수 있다방법서설은 책과 진리를 의심하는 삶(회의주의적 태도의 삶)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의심하는 행위는 곧 생각하는 행위다.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혼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참인 척하는 거짓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생각하기를 절대로 멈추지 않아야 한다.






<cyrus의 정오표>

 


* 145, 옮긴이 각주 4

 




 이 표현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제약적 지배와 자연의 인간에로의 종속을 정당화지 않는다.



정당화지 정당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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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를 타고 내려온 시월에 시를 읽고 싶어졌어요. 어떤 시집을 읽을 것인지 서재에 채워진 책들을 살펴봅니다. 시집에 살고 있던 시인들이 종이를 흔들면서 저를 부르네요.



르시아 로르카

루다

킨슨

라르메

들레르

익스피어

폴리네르

크 프레베르

고르

트라르카

이네



읽고 싶은 시집은 너무 많은데, 알고 싶은 책도 너무 많습니다. 책 욕심이 많은 제 머리는 너무 작습니다. 책 읽는 시간은 너무 빨라요. 

 

그런데 유독 한 권의 시집은 특이해요. 어째서 시집에서 한 사람이 아닌 무려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요? 알고 보니 이 시집에 세 명의 시인이 같이 살고 있어요. 리카르두 레이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


세 명의 시인은 태어난 날, 성격, 관심사, 작문 스타일까지 모든 게 다 달라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 세 사람 전부 한 사람이에요(!). 시집의 주인은 하나이면서 여럿인사람이에요. 리카르두 레이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루 드 캄푸스는 한 사람이 만든 이명(異名), 즉 다른 이름이에요. 이 시인은 이명보다 본명이 더 유명해요.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10월의 시인‘1+n개의 이명으로 글을 쓴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입니다. 페소아가 살면서 만든 이명이 70여 개나 된다고 해요.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명은 앞서 언급한 세 사람입니다. 페소아가 생전에 발표한 책은 단 한 권의 시집이었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시인의 유품인 트렁크 속에 3만 장이 넘는 원고가 발견되었어요. 트렁크에 영원히 갇힐 뻔한 페소아의 글들은 지금도 분류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원고를 분류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페소아의 새로운 이명이 발견될 수 있어요. 페소아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작가예요.


페소아 그리고 이명으로 활동한 수많은 페소아들이 생전에 쓴 시가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국내에 출간된 시집은 시 선집입니다.

















* 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옮김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페르난두 페소아 시가집》 (문학과지성사, 2018)


페소아 본인 이름으로 쓴 총 81편의 시를 모은 시 선집입니다.

















* 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옮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민음사, 2018)

 


페소아, 리카르두 레이스, 알베르투 카에이루가 쓴 시가 같이 수록된 시 선집입니다.








 



 

 






* 페르난두 페소아, 김한민 옮김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민음사, 2018)


알바루 드 캄푸스의 시 선집입니다.




재미있게도 세 권의 시집은 201810월에 태어났어요.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105일에,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1010일에 태어났습니다. 포르투갈어로 된 페소아와 페소아들의 글에 우리말을 입힌 번역자는 김한민입니다.

















* 김한민 《비수기의 전문가들》 (워크룸프레스, 2016)




페소아의 시와 산문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예요. 김한민 작가의 그림책 비수기의 전문가들독서 모임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88월의 책이었어요. 당시에 독서 모임이 오전과 오후(저녁)로 편성되어 진행되었는데, 제가 오전 모임과 오후 모임에 출석했었네요. 페소아 전문 번역자로 활동한 작가답게 비수기의 전문가들에 페소아가 언급됩니다. 오랜만에 이 책을 펼쳐봐야겠어요.


페소아 + 페소아들 + 는 지난 달 읽기 모임 당신의 에르노의 진행 방식과 비슷합니다. 제가 소개한 세 권의 시집 중에 한 권만 읽으면 됩니다. 페소아의 무한한 글쓰기를 알고 싶으면 이명으로 쓴 페소아의 시들도 같이 읽어보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고른 시집에 살고 있는 페소아와 페소아들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세요. 희미하면서도 정확하지 않은 페소아와 페소아들의 무한한 생각을 마음껏 독해를 해보세요.

 




사물들이 온 세상 앎의

파편들이라면,

나는 나의, 부정확하고

다양한 조각들이어라.


 

(페소아, 경계 있는 영혼은중에서, 1930824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81)

 

 

발제는 없습니다. 발제를 안 만들어도 됩니다. 그 대신에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낭송합니다입으로 시를 먹으면서 맛보지 않는 시 읽기 모임은 시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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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10-01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휴일 잘 보내셨나요.
외국어로 쓰여진 책이 번역되어서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원서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언어를 배우고 번역하는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 작가는 여러 이름으로 출간한 책이 많다는 게 신기합니다.
내일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갑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4-10-03 15:57   좋아요 2 | URL
페소아가 예전에는 애서가들만 아는 작가였는데, 배우 한소희가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추천한 이후부터 페소아가 더 많이 알려졌어요. 당연히 <불안의 서>도 많이 팔렸어요. 그런데 저는 유명한 <불안의 서>보다 시를 읽고 싶었어요.

확실히 지난달과 다르게 날씨가 서늘해요. 그래도 아침만 서늘하고, 낮에 덥네요. 제가 지금 에어컨을 켜지 않은 카페에 있어요. 더워서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어요. ^^;;

북깨비 2024-10-03 16:37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님 말씀을 듣고 한소희와 불안의 서를 같이 검색해보니 한때 완판이 되어 중쇄를 찍었다고 기사가 나오네요. 과연 요즘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아직 불안의 서밖에 읽지 않았는데 (시집도 한권 사두긴 했지만) 지금 갖고 있는 시집 내가 홀로 있는 방식과 위에 언급하신 나머지 시집들도 읽어봐야 겠어요. 몰라서 안 읽는 것이지 한번 알게되면 푹 빠질수밖에 없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한소희님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 되어 좋네요. 페소아 팬들이 많네요. 안토니오 타부키도 그렇고. ㅎㅎ

북깨비 2024-10-0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이 70여개!? 엄청나게 다양한 자아들이 페소아 안에 공존했나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라는 표현이 낭만적이에요. 마르지 않는 샘물같은 작가라는 말씀 넘넘 공감합니다.

cyrus 2024-10-03 16:00   좋아요 1 | URL
최근에 <이명의 탄생>이라는 페소에의 에세이가 나왔어요. 시만 읽으면 페소아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페소아를 더 알려면 에세이도 같이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

2024-10-0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03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03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문학 전문 읽기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당신의 에르노


2024927일 금요일 저녁 8, 수르채그

https://blog.aladin.co.kr/haesung/15817604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쓴 책들은 대체로 판형이 작고, 분량이 가볍다. 어떤 책은 100쪽이 안 될 정도로 얇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지 마시라. 왜냐하면 에르노의 글은 만만치 않다. 작가의 성향을 알지 못한 채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 중도에 책을 덮어버릴 수 있다.



















* 아니 에르노, 신유진 옮김 빈 옷장(1984Books, 2022)


* 프랑수아 라블레, 유석호 옮김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지성사, 2004)




에르노는 글을 그악스럽게 쓰는 가르강튀아(Gargantua)와 팡타그뤼엘(Pantagrue)’이다. 가르강튀아는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의 소설에 나오는 거인국의 왕이다. 팡타그뤼엘은 가르강튀아의 아들이다이 거인 아버지와 아들은 고대 학자들의 책을 섭렵했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똑똑한 대식가글의 재료와 단어를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에르노는 그것들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면서 글을 쓴다. 에르노의 거대한 머릿속으로 들어간 수많은 단어는 종이에 배출되어 에르노의 글이 된다.


에르노가 1974년에 발표한 첫 작품 빈 옷장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드니즈 르쉬르(Denise Lesur)다. 그녀는 작가의 분신이다. 그래서 에르노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대표작보다 첫 소설 빈 옷장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이야기 곳곳에 항상 로 시작되는 작가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화자의 목소리를 쭉 따라가다 보면 글 쓰는 작가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



 나를 매료시키는 그 단어들을 붙잡아 내게 두고, 내 글 속에 넣고 싶다. 나는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빈 옷장중에서, 90)



에르노는 자신의 부모, 사랑한 남자들, 부모가 운영한 식료품 가게의 음식들, 더 나아가 자신을 매료시킨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글을 썼다. 에르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었고, 이번 달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에르노 읽기 모임 당신의 에르노가 이루어지는 데 기여를 한 JH님은 아르노를 담쟁이덩굴과 같은 여자라고 했다.



















* 아니 에르노, 최정수 옮김 단순한 열정(문학동네, 2012)




에르노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작가의 불륜 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자는 러시아 외교관인 연하의 유부남을 사랑한다. HJ님은 단순한 열정을 읽으면서 울었다고 했다HJ님은 작가의 불륜을 옹호할 수 없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온통 한 남자만 끊임없이 생각할 정도로 사랑하는 작가의 감정 상태에 몰입했다고 말했다솔직하면서도 아주 세밀하게 글로 표현된 작가의 힘겨운 사랑이 슬펐다고 했다.


















* 아니 에르노, 이재룡 옮김 부끄러움(비채, 2019)




HJ님은 부끄러움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에르노를 용기 있는 작가라고 높이 평가했다HJ님은 에르노가 인류학자와 같다고 했다. 에르노는 마치 인류학자처럼 자신을 관찰한다. 본인 안에 있는 가장 깊은 밑바닥 감정까지 들여다보고, 들춰내면서 글을 쓴다.


















* 피에르 부르디외, 최종철 옮김 구별 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새물결, 2005, 2)




에르노는 자신의 글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영향을 받으면서 썼다고 했다. 그녀는 먹고, 마시고, 사람과 친분을 맺고, 사랑하고, 섹스하는, 이 모든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이 사회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글로 보여주려고 했다.


빈 옷장의 르쉬르는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놀이터나 다름없는 식료품 가게에서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다. 학교는 모든 학생을 통제하는 기관이다. 르쉬르의 눈앞에 식료품 가게에서 자주 먹던 음식이 아른거린다. 하지만 수업 도중에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오줌이 나오기 직전인데 화장실에 가려면 선생님에게 교실 밖으로 나가도 되는지 물어봐야 한다. 르쉬르에게 학교는 재미없는 감옥이다. 반면에 교사와 또래 친구들은 방종하게 행동하는 르쉬르가 저급하다고 느낀다. 르쉬르는 학교 안에 만난 낯선 타자들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 구별 짓는. 구별 짓기는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동시에 타자와 타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다. 나와 타자를 구별 짓는 체험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차별과 불평등이 생긴다.


















* 아니 에르노, 김선희 옮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열림원, 2021)




이번 모임에 처음 참석한 구름님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화자(작가)의 어머니. 화자는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서 생활하는 어머니를 돌본다. 화자는 점점 늙고 병들어가는 어머니를 죽는 순간까지 지켜보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진솔하게 기록한다. 구름님은 이 책에서 만난 아르노가 성실하게 글 쓰는 작가로 느껴졌다고 했다.



















* 아니 에르노, 조용희 옮김 탐닉(문학동네, 2022)

* [개정판] 아니 에르노, 신유진 옮김 남자의 자리(1984Books, 2024)

* [구판 절판] 아니 에르노, 임호경 옮김 남자의 자리(열린책들, 2012)





에르노의 글은 느슨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 절대로 아니다. 조약돌님은 탐닉을 읽었을 때 너무 답답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탐닉‘S’라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S단순한 열정에 나오는 남자의 동일 인물이다문수님(첫 모임 참석자)은 작가의 아버지를 묘사한 남자의 자리(문수님이 읽은 책은 2012년에 나온 열린책들 출판사의 책이었다. 1984Books 출판사에서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를 읽었는데, 역시 이야기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당신의 에르노는 단순히 에르노를 읽는 모임이 아니라 여섯 명이 만나면서 느낀 에르노의 다양한 모습들을 하나로 포개어 놓으면서 알아가는모임이었다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에르노를 만날 의향이 있는가?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무척 힘들다. 읽는 도중 지치거나 답답하면 책을 덮으면 된다. 다만 작가의 글쓰기가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저급하다는 식으로 비난하지 마시라. 글만 가지고 문학인지 아닌지 구별 짓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 [절판] 수전 손택, 홍한별 옮김 문학은 자유다: 수전 손택의 작가적 양심을 담은 유고 평론집(이후, 2007)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에르노를 만날 의향이 있는가?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무척 힘들다. 읽는 도중 지치거나 답답하면 책을 덮으면 된다. 다만 작가의 글쓰기가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저급하다고 비난하지 마시라. 글만 가지고 문학을 구별 짓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양한 언어와 목소리, 감정들을 진실하게 담아야 할 문학을 이것은 옳고 저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구별 짓고 쪼개진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남는 건 보기 좋게 잘 꾸며진 텅 빈 문장 덩어리다. 비어 있는 문장 덩어리만 가득한 문학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작가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 바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문학은 자유다, 206).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아니 에르노는 50년 전부터 진실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한결같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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