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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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한 광고

6월 23일, 16강 진출의 명운이 달렸던 한국 vs 나이지리아 전.
우리나라의 첫 원정 16강 진출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 새벽 3시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만 40만 명의 시민들이 밤샘 거리응원에 참여했다.
이에 힘입어 청와대도 시민들과 함께 응원을 하기로 공식 트위터에 알려 
청와대 직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나이지리아 전에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청와대 내에도 아닌, 그리고 청와대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통령과 함께 하는
응원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청와대가 가졌던 엄중하고 폐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였다. 
청와대의 행사는 그 이전에  먼저 몇 몇 네티즌들이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거리 응원을 제안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축구 거리 응원에 참여하는 시민 대부분이 젊은 층임을 감안하면
시민들의 제안에 청와대는 눈 감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층에 대한 정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이번 6.2 선거가 젊은 층의 변수가 컸기에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다. 결국 월드컵이라는 시기에 맞물려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민들에게 보다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특별한 광고를 알린 것이다.  

  

 

 

 

 22년 전으로 회귀 

 

잠깐만, 월드컵 기간이 되고나니 뭔가 잊혀져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천안함 사건 진상 규명과 세종시 수정안 및 4대 강 사업, 그리고 나로호이다.
비록 세종시 수정안은 상임위에서 부결되었지만  

4대 강 사업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는 월드컵 열기를 틈타 어떻게든 4대 강 사업을 강행하려는 눈치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과의 대립 긴장이 팽돌았던 몇 주과 비교하면 많이 시들해져 있다.
월드컵 개막 전에 천안함 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국제 위반이라면서
UN 안보리에서 진상 규명을 각국에 설명하였지만 세계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하다.
오히려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정부의 천안함 사건 원인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반대 여론도 월드컵 열기에 가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로호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잊혀졌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충격적인 나로호의 발사 실패를 빨리 잊고 싶었던 것일까?
나로호 2차 발사 시도를 보기 위해서 나로호 우주센터에 모였던 사람들은
앞으로 열릴 월드컵 대표팀의 16강전에 집중하고 있다.
결국은 월드컵 때문에 중요한 국내 정치 여론이 묻히고 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22년 전, 제5공화국 시절의 전두환 정부 때와 유사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점점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이미지를 한 단계 드높여주었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 뒤에는  

독재 권력의 유지라는 어두운 속내도 있었다. 
남아공이 월드컵 유치 확정 이후에 가난한 나라의 티를 벗기 위해서
나라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빈민촌을 강제 철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올림픽 개최 전에 서울에 있는 노점상들을 단속하여 강제 철거를 단행하였다.
노점상을 비롯한 도시빈민들은 올림픽을 참관하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올림픽 기간 중에 서울의 노점상들이 모여 정부에 반발하는 단결 집회를 열었으나,
서울 올림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모든 여론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들에게
서울 올림픽이라는 자국에서 개최하는 국제적 행사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렸다.  

결국 국민들은 여론이 전달하는 정보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자신의 나라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에 무조건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국제 스포츠 대회를 이용한 포퓰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의 행사는 분명 시민들과의 응원을 통해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의도이기는 하나,

22년 전처럼 월드컵으로 시끄러운 국민의 여론을 잠재우고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 뉘앙스가 드는 것은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이 금메달을 따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동안
정부에 부당하게 억압받은 힘없는 소수민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22년 뒤, 우리나라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밤을 새며 기쁨의 열기를 만끽하고 있는 동안에
나로호 연구센터 관계자들은 보고 싶은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오늘도 발사 실패 원인에 대해 밤을 새며 머리를 싸매고 있으며,
어머니는 천안함 사고로 잃어버린 아들이 그리워서 

오늘도 밤을 새며 슬픔에 잠겨 있다.
  

 

 

 

 스키너의 유토피아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가 스키너가 꿈꿔왔던 세상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인간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동물로 인식하고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은 단순한 반사 기계가 아닌 행동의 결과로  

자신의 행동까지도 바꿀 수 있는 대상으로 보았다.
즉, 인간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행동이 결정되며,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는 자동 장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키너는 자신의 실험을 세상에 적용시킨 이상(理想) 국가를 제시한다.
조건반사를 이용하여 시민들을 로봇처럼 제어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조건반사는 학습에 의해서 익히는 특정한 자극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삼겹살을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삼겹살 고기 몇 점이 구워져가는 소리와 구우면서 생기는 고기 냄새로 인해
우리는 삼겹살이 맛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음에 삼겹살이 구워져가는 소리를 듣거나 냄새만 맡아도 우리는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대뇌피질의 자극으로 인해 우리는 맛있는 삼겹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월드컵 조건 반사

우리나라는 이번 월드컵을 포함해서 7회 연속으로 진출했으며
연수로 따지면 24년 동안 월드컵에 얼굴을 비추었다.
우리나라 대표 팀이 세계 축구 강국들의 축제인 월드컵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기뻐하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며
전 세계의 스타급 축구 선수들이 등장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다 2002년에는 4강 진출이라는 성적으로 대한민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월드컵 24년은 월드컵 참가라는 백(白)과
숨기고 싶고, 잊히고 싶은 흑(黑)이 공존하는 복잡기괴한 역사였다.
1986년 월드컵의 흑은 제5공화국 정부의 독재 정치,
1994년 월드컵의 흑은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전쟁 위기설 때문에 흔들렸던 민심,
1998년 월드컵의 흑은 IMF 외환 위기를 불러온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냉랭한 민심,
2002년 월드컵의 흑은 월드컵 기간에 발생한 연평해전,
2006년 월드컵의 흑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계획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
월드컵이 개최했던 해들을 되돌아보면 공통적으로 국내 정세는 어두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도 월드컵 때만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듯이
국내의 민감한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거나 

전에 가지고 있었던 사회에 대한 감정과 정서들은 잊히곤 했다. 
역대 정부는 국내 정세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여론을 이용하여 월드컵에 집중시키려는 의도적인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의도적인 정치적 무관심은  

독재 정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적 사회 현상의 원인을 정부 탓만 돌릴 수는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24년 동안 월드컵 기간의 즐거움을 학습하게 되어
월드컵 기간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나
온통 머릿속에는 월드컵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월드컵 이전에 관심 가졌던 것들은 머릿속에 사라지게 된다.
국민들의 뇌에는 온통 ‘월드컵’, ‘우리나라 16강 진출’ 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월드컵이라는 조건 반사에 집단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셈이며
국민들은 월드컵이 주는 기쁨의 보상이라는 환경으로 인해
지나친 월드컵 관심이라는 행동의 결과가 드러난 것이다. 
 

 

  

 

 심리 실험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스키너가 죽은 이후에, 심리학계에서는 그의 연구에 대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인간을 기계처럼 동등하게 여겼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심리 실험이 비(非) 인간적이며 내용 자체가 잘못되더라도
스키너가 바라던 유토피아는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44년 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북한 대표 팀의 선전을 이용하여   

북한 정부도 뒤숭숭한 국내 민심을 추스르려고 하였다. 

월드컵 중계권도 없으면서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를 무단 중계하였으며 

포르투갈과의 경기는 생중계까지 하여  

점점 위축되어져가는 북한 노동당과 김정일 선전 구축에 시도하였다. 

국민들의 감정을 로봇처럼 제어하려는 북한 정부가 스키너의 유토피아와 흡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키너의 유토피아는 허구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  

그의 유토피아는 허구적인 토머스 모어와 비교하면 직접 실험에 기반을 둔 실증론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키너의 실험이 무조건 비난만 하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있다.
이 책의 실험 내용을 읽으면서 결과에 대해서
독자들은 단순히 비난과 칭찬이라는 고정된 사고로 결정하는 것보다는
먼저 이 실험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비춰보고
그 다음에 옳은지 그른지 결정하는 것이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악명 높은 심리 실험들의 이야기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실험 결과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추어보면 

우리가 색안경으로 인해 보지 못했던 세상의 면면들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靑, 네티즌들과 월드컵 합동 응원] YTN 6월 22일 입력
http://www.ytn.co.kr/_ln/0101_20100622165242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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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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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사람은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는 데서 뜻이 꺾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느라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며,
마구잡이로 얻으려는 데서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만다.
공(=김득신)은 젊어서 노둔하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독서에 힘을 쏟아쓰니 그 뜻을 세운 자라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기를 억 번 만 번에 이르고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마음을 지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 어려서 깨달아 기억을 잘한 사람은 세상에 적지 않다.
날마다 천 마디 말을 외워 입만 열면 사람을 놀래키고,
훌륭한 말을 민첩하게 쏟아내니, 재주가 몹시 아름답다 하겠다.
하지만 스스로를 저버려 게으름을 부리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그만두어버리고, 늙어서는 세상에 들림이 없으니,
공과 견주어본다면 어떠하겠는가?

- 이서우의 <백곡집서> 중에서 김득신에 관한 글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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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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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 이야기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 <변신> p 9 -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시작하는 첫 구절이다.
카프카는 첫 구절부터 그레고르 잠자라는 인물을 언급하는 동시에
이 인물이 벌레로 변해있음을 알려주면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벌레 그레고리에 관한 묘사는
서술자가 환상적인 사건을 지켜보고 있듯이 자세히 표현하고 있어서
독자들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첫 구절의 당황함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그레고리 가족들의 소동을 보게 된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변한 모습으로 인해 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봐  

두려움에 떨게 된다.
평상시대로라면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고 있어야하지만,
그는 방에서 나올 자신감은 상실되었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도 그레고르가 나오지 않게 되자,
결국에는 그레고르가 일하는 회사의 지배인과 그에 대한 걱정을 느낀 가족들이
그의 방으로 모인다. 그레고르는 방문을 잠그고, 밖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가족들과 지배인은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잠근 문을 열쇠로 열리는 순간, 몇 시간 전에 자신을 걱정했던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자 태도가 돌변한다. 소름 끼치는 벌레 보듯이
가족들은 그를 피하게 되며 이 집에서 쫓아내버리려고 한다.
가족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레고르는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려 하지만,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을 위한 자기의 희생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고,
열등감, 고통에 시달리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상처를 입은 채
자신의 방에서 쓸쓸히 죽고 만다. 그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평온을 되찾았다고 생각하여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교외로 산책을 나간다. 
 

 

 

 방어기제의 환(環)

<변신>의 상징적 의미는 현대인의 소외 현상과 삶의 부조리이다.
그레고르가 변신하기 전과 변신한 후에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변신 전에는 그를 따뜻하게 대하지만, 변신 후에는 그레고르를 구박하고 소외시킨다.
비록 소설은 짧고 우화적이지만 한 인간이 벌레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소외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레고르의 삶은 현재 우리 삶에도 그레고르가 존재하고 있기에
작품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 우리 삶이다.
물론 그레고르의 삶이 우리 현대인들의 삶과 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는 그레고르의 경우와 다른 특수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옆집에 살던 이웃이나 친구, 그리고 한 집에 살던 가족이  

겉모습이 벌레로 변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벌레로 변하여 자신의 주관적이며 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들 스스로 상대방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서민으로 상징되는 세탁소의 딸인 금잔디가
부잣집 자식들만 모인다는 명문고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자 부잣집의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금잔디를 왕따 시키며 날달걀과 밀가루를 쏟아 붓는다.
명문고 학생들은 명문고라는 사회 집단 속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자라왔다. 그런 사회 속에서 부자와 정 반대인 서민 학생이  

명문고에 들어왔다고 생각해봐라.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들어옴으로써
금잔디는 자연스럽게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된다.
그러나 금잔디가 세탁소의 딸로 태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며  

서민으로 자라고 싶은 것도 아니다.
금잔디가 명문고 왕따로 만들어버린 큰 원인은 명문고 학생들 자체에 있다. 
 

명문고 학생들 내면에 자리 잡은 ‘종족의 우상’ 이 그녀를 왕따 시킨 것이다. 
‘종족의 우상’ 은 인간 본성 속에 잠재하는 선입견이다.
서민의 이미지는 돈 없고 빈곤함이다. 부자의 이미자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금잔디=서민’ 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된
‘서민 ≠ 부자’ 라는 방어기제의 환(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레고르의 소외도 ‘종족의 우상’ 의 희생양이다.
작품 속의 그레고르는 벌레 이전에 한 가족의 일원이었으며, 벌레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정신과 마음만은 그레고르라는 근본적인 주체성아 남아있어서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어필한다.
비록 모든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외면하였지만, 누이동생은 소설 중반부에서야
그레고르를 곤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누이동생만은 왜 다른 가족들보다 늦게 그레고르를 곤충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는가?
누이동생을 제외한 그레고리의 부모들은
벌레로 변한 아들을 보자마자 

뇌에서 벌레에 대한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바퀴벌레에 대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어 벌레를 기피하고 죽이려고 한다.
그레고르 부모의 심리에도 ‘벌레=무서움 & 불쾌감’
‘벌레가 된 그레고르 ≠ 자식’ 이라는 방어기제의 환이 작용하게 된 것이다.
단지, 누이동생은 방어기제의 환이 뒤늦게 작용되어 일시적이지만  

오빠 그레고르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 사과의 의미

그레고르를 죽음을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는 것이다.
사과가 몸에 박힌 채 그래도 놔두다가 상처가 악화되어 죽게 된다.
왜 하필이면 그레고르는 사과에 맞아 죽게 되었을까?
그의 비극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방에서 홀로 쓸쓸히 죽는 설정도 괜찮은데 말이다.

근본적으로 <변신>의 그레고르는 결국 작가 자신 프란츠 카프카이다.
그도 그레고리처럼 실제로 누이동생 3명과 어린 시절을 자라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카프카와 누이동생들과 나이 차가 많아
누이동생들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몹시 어두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레고르처럼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소외를 느끼고 있었다.
성장하면서 문학을 좋아했으나, 아버지는 아들이 법학을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다가 결혼을 하는 성공적인 가장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지만,
문학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글을 쓰느냐 아니면 아버지가 원하는 안정적인 삶을 사느냐.
그의 일기에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이 보인다. 

   조상도 없이, 결혼도 안하고, 자손도 없이.
  조상에 대한, 결혼에 대한, 자손에 대한 강렬한 욕망만을 지닌 채.
  조상, 결혼, 자손.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손을 잡는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 1921년 1월 21일 일기 내용 중에서 - 
 


결국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문학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일기에 알 수 있듯이 카프카는 자신의 인생에 놓인 두 길 중에
어느 길에 가야할 지 꽤나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메모에는 자신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를
아버지와의 결별 과정, 즉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문학가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문학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카프카는 자신이 원하던 문학가가 되어서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기대감을 저버린 결과의 죄책감이 묻어난다.
카프카는 <변신>의 그레고르를 통해 죄책감에 대한 벌(罰)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의 분신인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사과를 맞아 죽게 한 것이다.
비록 작품 안이지만 카프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를 맞음으로써 벌을 받게 되고,
자신의 몸에 박힌 사과는
<주홍 글자>에 등장하는 헤스터가 간통죄로 A라는 글자를 달고 살듯이
아버지를 어긴 죄의 대가를 평생동안 짊어지겠다는 자조적인 반성이다. 
 

 

 

 고독한 까마귀

‘카프카’ 의 체코 어로 직역하면 ‘까마귀’ 라는 뜻이다.
그만큼 카프카라고 하면 대표작인 <변신>뿐만 아니라
고독, 불행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그는 죽기 직전 2개월간의 요양 기간과 짧은 국외 여행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자신이 태어난 프라하에서 지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심하게 내면적이며 고독과 불행을 홀로 짊어진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카프카는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이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이중적인 정체성으로 인해 그는 천성부터 극단적인 내면성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타인과의 교류를 거부하여
평생 자신의 고향 프라하에서 지낸 프란츠 카프카.
그레고르가 흉측한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방문을 잠그듯이
카프카에게는 프라하라는 곳이 타인에 의한 두려움을 기피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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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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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계부 작성의 목적 
 

재테크의 기본은 돈을 부족함 없이 유지하면서도 잘 쓰고 잘 버는 것이다. 

재테크의 달인이 책을 펴내거나 아니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노하우를 알리게 되면
재테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나   

이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그런데 재테크의 달인의 노하우에는 항상 공통점이 있다. 가계부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달인들의 가계부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록하는 가계부와는 천지 차이다.
커피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현금 입출기 수수료, 
본의 아니게 돈을 쓰게 되었던 것들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다.
오늘 지출 용도와 비용 등을 꼼꼼히 기록하여
자신의 소비 습관을 파악하면 써서 안 될 소비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가계부를 매일 꾸준히 작성한다는 점이다.
가계부 두 세 줄 쓰는 것도 귀찮아하는 일반인과 비교하면
그들의 돈에 대한 남다른 경제적 관념을 알 수 있다.
가계부 기록하는 작은 일이 그들에게는 돈이 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시(時)테크의 달인, 류비셰프 
 

가계부를 작성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게 되어 돈을 아껴 쓰는 습관이 확립된다.
그렇다면, 돈이 많으면 좋을수록 ‘이것’ 도 많으면 좋지만,
그 점을 알면서도 생각 없이 막 쓰는 ‘이것’ 도 가계부처럼 작성하면 아껴 쓸 수 있을까? 
 

‘이것’ 이란 바로 시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돈과 더불어 아껴 써야하는 것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시간에 패배하기 싶어서일까?  

러시아의 어느 학자는 돈 쓰는 것을 가계부에 기록하듯이
자신이 시간을 썼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통계를 냈다. 
 

그 사람은 바로 곤충학자인 류비셰프이다.
단순히 곤충학자이며 이름이 생소하다고 해서 그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책 제목 그대로 그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였다. 

 곤충분류학 연구 2시간 20분, 논문 집필 1시간 5분, 편지 3시간 20분,
 프라우다 지 15분, 이즈베스티야 지 10분, 문학신문 20분, 톨스토이 책 1시간 30분..... 
 

철저한 시간 관리를 실천했으며 하루를 마무리 지을 때 통계 내듯이 꼼꼼히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자신의 전공인 곤충학뿐만 아니라 곤충분류학, 동물학, 농학,
생물학, 역사, 문학 등 다양한 학문과 분야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지적 활동은 학문의 경계는 넘는 다양한 저작물을 남겨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수많은 저작물들은 연구 가치가 높다. 
 

재테크의 달인이 꾸준히 가계부를 작성하여  

결국에 어마어마한 재산을 얻고 유지하는데 기여를 했듯이
류비셰프도 시간을 썼던 것들을 통계표로 작성하여 자신의 지적 능력 발달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학문을 집대성하는데 기여하여  

후세에도 그의 지적 활동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시간의 지배자, 류비셰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는 자신의 권력이 상실된다는 두려움에
자식들인 포세이돈, 하데스, 헤라 등을 차례대로 삼켜버린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키는 행위는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버리고,
시간 앞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사라진다는 속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자식들 중에서 유일하게도 살아남은 제우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뱃속에 있는 신들을 부활시켜 자신이 신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세밀하게 기록된 류비셰프의 시간 기록표를 보면,
그가 인간을 가장한 제우스처럼 느껴진다.
제우스가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죽이는 것이 시간의 영속성을 거부하는 행위로 보듯이
류비셰프도 시간들을 기록하여 자신의 삶이  

시간의 영속성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비록 그도 시간이 흐르면서 찾아오는 죽음만은 피할 수 없었지만,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제거하여 신들의 지배가가 되었듯이
류비셰프는 시간을 정복한 지배자가 되었다. 
 

 

 

 인간, 류비셰프

평소에 가계부라곤 안 쓰던 우리가 재테크 달인의 방식대로 무작정 가계부를
쓰려고 하면 귀차니즘에 못 이겨 작심삼일로 그치고 만다.
그러는 마당에 류비셰프처럼 시간을 일일이 기록하면서 살아간다고 상상해봐라.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시간 기록들을 살펴보면
시간의 틀에 박혀 사는 병(病)적인 완벽주의자와 같은 느낌이 든다. 

버나드 쇼는 '학자란 연구를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게으름뱅이' 이라고 말했다. 

뉴턴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하거나, 

에디슨이 뜬눈으로 밤을 새면서 전구 개발에 시도를 했듯이,

천재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 연구 이외에는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가정 생활에나 인간 관계에는 무관심하는 게으름뱅이가 된다.  

 

그러나  류비셰프는 학자라는 명함 때문에 학문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문과 연구는 '직업' 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연적으로 가지게되는 앎과 탐구욕을 그래도 충실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시간 기록을 무척 즐거워했다.
그는 시간에 얽매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생각 하에 시간에 쫓길 거 같은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넘어갔다. 잠도 충분히 잤으며, 아침에 일어나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자신의 직업인 연구 활동을 하면서 웬만한 음악회나 연극 공연도 관람하고.....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대부분을 못 하고 생을 마감하는 반면에  

류비셰프는 죽을 때까지 할 거 다 해본 셈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는 이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하루 일과 중에는 편지와 일기 쓰기는 빠지지 않는다.
다른 곤충학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내세우기보다는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연구 내용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일기에는 전쟁 중에 전사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책의 앞 페이지에는 생전 류비셰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 손자와 같이 찍은 흑백 사진이 있다.
사진 속의 류비셰프는 학자가 아닌 손자를 귀여워하는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가서 후회 없었다고 말하리라

류비셰프의 삶을 읽다 보면 천상병의 시 ‘귀천’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류비셰프도 죽으면서 하늘로 가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소풍을 좋아하고 즐기듯이 그는 이승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삶의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그리고 하늘에서 그 때의 세상이 아름다웠고
후회감은 전혀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가 류비셰프의 일대기를 펴낸 의도는 단순히 그의 독특한 시간 통계 기록과
박학다식을 알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류비세프의 삶을 통하여 시간에 쫓겨 수동적인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시간이 돈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시간도 돈처럼 아껴 써야한다는 뜻이지만
시간과 돈은 큰 차이점이 있다.
돈은 쓰고 나면 어떻게 해든 다시 벌 수가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지가 않다. 시간은 역설적이다.
‘시간은 많다’ 라면서 느끼게 되는 무한 자원이면서도
막상 시간을 쓰게 되면 ‘시간이 없다’ 라고 느끼게 되는 유한 자원이 되는 것이다.
즉, 시간은 한 번 쓰게 되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

 

류비셰프처럼 완벽하게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 좋을 것이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되찾을 수 있게 되고,
거기서 자신이 즐거워했던 일들을 찾게 되면 좀 더 활기찬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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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드™ 2013-08-19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시간관리에 대한 부분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평을 하는데, 님은 류비셰프라는 인물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살펴보고 리뷰를 남겨 주었네요. 잘 보았습니다. ^^

cyrus 2013-08-19 21: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제 막 알라딘 블로그에 글 남기기 시작했을 때 썼던 건데, 제로드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되네요. 부족한 글인데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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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국가가 불행히도 사론(士論)이 갈라져서 각기 명목(당파)을
만들어 서로 배척하고 싸우니 국가의 복이 아니다. 지금은 이당과
저당을 막론하고 오직 인재를 천거하고 오직 현자를 등용해
다함께 어려움을 구제해나가야 한다.

- 광해군 즉위 2년 2월 25일에 내린 비망기(備忘記) 중에서 -

* 비망기: 임금이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던 문서-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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