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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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7] 코

 

 

 

 

 코의 행방불명 
 

만약에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는데 자신의 얼굴에 코가 사라졌다면?
상상만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서 난감하면서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 기겁할 것이다.
한 개의 호흡 통로는 사라지고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할 것이다.
축농증이나 비염과 같은 코와 관련된 질환에 걸려본 사람을 알 것이다.

코가 막혀서 입으로만 숨을 쉬는 것도 불편하다는 것을.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꽃들의 냄새를 맡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코가 사라지게 되면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다.
코 없이 밖에 돌아다녀 봐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코 없는 당신에게 집중할 것이다.
그러면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집에만 있는 폐쇄적인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이 가상의 이야기의 결론은
코 하나의 상실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재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야기를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완벽한 과학적(?) 성형 의술의 힘을 빌어  

어떻게든 인조 코를 만들어 다닐 수도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숨 쉬는 것이 불편해도
인조 코 하나만 달고 있어도 사람 만나는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코가 없어진다는 가정 하의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는데
비약이 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새 발의 피다.
이것보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사라진 코가 사람처럼 살아 움직이고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콧대 높은 자의 콧대 꺾기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소설인 <코>에는
앞에서 상상했던 ‘코의 행방 불명 + 살아 움직이는 코’ 라는  

주제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소설에 나오는 러시아의 관리 꼬발료프는 낮은 계급이지만
관리’ 라는 꼬리표가 있어서 허세를 부리는 인물이다.  
어느 날, 면도 후 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코를 찾아야한다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코를 찾았지만..... 꼬발료프는 눈 앞에서 펼쳐진 황당한 장면에 까무러친다.
코가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 아닌가.
그것보다도 더 황당한 것은 코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관리라는 점이다.
꼬발료프는 공손하게 고급 관리 코에게 자신의 신체 일부분임을 설명하나
코는 자신보다 낮은 계급인 꼬발료프의 말을 무시한다.
퇴짜 맞은 꼬발료프는 코에게 무시당했다는 점에 분통을 느낀다.
코의 상실감으로 인해 낙심한 가운데 엉뚱하게도
거리를 지나가던 경찰관 덕분에 잃어버린 코를 되찾았다.
일단 코를 되찾기는 했으나, 문제는 원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를 붙이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코는 얄밉게도 자신의 얼굴에 붙여지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의사의 처방은 그냥 코 없이 살아라고 말한다.
코를 원래대로 붙일 수 없다는 사실에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코발료프는
잠을 자게 되는데, 다음 날 아무 일 없었다듯이 코가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완전한 형태의 얼굴로 돌아온 모습에 꼬발료프는 무척 기뻐한다.
그리고 며칠 전 코가 없어서 쩔쩔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소대로 면도를 하면서 관리 특유의 허세를 부린다.

이야기는 짧고 설정도 황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가볍게 볼 소설은 아니다.
고골은 코를 비유하여 당시 러시아 관리들을 조롱하였다.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관리나 사람들 앞에서는 콧대 높이면서 위풍당당하다가
계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면 위축해지고 아부를 떠는  

러시아 관리들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꼬발료프의 행동은 계급 사회에서는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직장에서는 보다 높은 직책으로 승진하기 위해서  

윗사람 앞에서 굽실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TV에서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던 사람이
막상 카메라가 없어지면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으려하고,
자신의 정치 행적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입 막으려고 한다.
단지, 자신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쓰고 싶은 거 쓰면서 자신의 배만 채우기에 급급하다.

고골은 <코>를 통해 희화적으로 콧대 높은 자들의 콧대를 꺾고 있는 셈이다. 
 

  

 

 주종(主從) 관계의 전복

<코>의 황당무계한 플롯은 한편으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소설을 보는 거 같다.
그의 글도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지 않았던 요소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모음집 <나무>(열린책들, 2003)에 보면
‘조종(操縱)’ 이라는 소설이 있다. 거기에는 왼손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고골의 코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왼손은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글을 써서 나타낸다.
소설 속의 왼손은 주인이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여 반란을 일삼는다.
주인이 왼손으로 무엇을 할려고 하면 행동을 거부한다거나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저지른다. 심지어 잠을 자는 주인의 목을 조르거나
주인이 깊은 잠에 빠진 사이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결국 왼손에 굴복한 주인은 왼손과 오른손에게  

서로 협력 계약을 맺어주고 양손잡이가 된다.
그리하여 왼손이 그 주인을 마음대로 조종하게 되면서
결국 왼손이 인간의 ‘주인’ 이 된다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고골의 <코>와 비슷한 장면이 떠올린다.

얼굴에 붙어있었던 코의 주인은 꼬발료프였다.  

하지만 코가 떨어져나가고 고급 관리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된다. 코가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주종(主從) 관계의 전복’ 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고골의 작품은 1836년에 발표되었다.
베르베르의 상상력의 독특함은 둘째 치더라도, 수백 년 전에 고골이 이미 
베르베르式 플롯의 소설을 썼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무관심당한 자들의 반란

고골의 <코>는 환상적이며 일반적인 소설 플롯과 다른 특이한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내용이 뭔가 부실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코>를 읽으면서
이야기 전개상에 나타난 공백에 대해 다양한 상상과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있다.
나도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꼬발료프의 코는 왜 이유 없이 사라지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읽어보면 코가 꼬발료프의 얼굴을 떠난 정확한 이유에 대한 장면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코>가 러시아 관리들을 조롱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코가 허세 부리는 관리 꼬발료프에게 ‘X 먹어라’ 라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베르베르 소설의 왼손처럼 무관심만 받고 있던 코가
관심을 자기에게 집중시키려는 주인에 대한 역행적 행동일 수도 있다.
베르베르의 <조종> 결말과의 차이점으로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조종>의 왼손은 반란 투쟁에 성공하여 결국에는 주인을 지배하는 반면,
꼬발료프의 코는 일시적인 반란일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주인이 오른손잡이라서 자신을 무시하는 왼손이 제멋대로 행동하듯이
코도 다른 신체 부위보다 관심을 받지 못해 질투가 나자
‘나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세요’ 하듯 가출을 한 셈이다.
코가 가출하고 나서 고급 관리로 변신하고 나서야
꼬발료프는 평소에 느껴보지도 못했던 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드디어 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꼬발료프는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종용하지만
코가 예전의 서러움이 생각나서 주인 꼬발료프를 무시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숨 쉬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움직이면서도 
평소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신체 일부가 없어지고 나서야
신체 존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는다.
코 말고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신체 부위가 있다.
눈은 작지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부위다.
눈이 없으면 어둠만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우리는 손톱에 때가 끼거나 좀 길어지면 깎아야한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게 마련인데
손톱이 없으면 손발이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손은 물건을 집을 때 손에서 발생하는 힘을 받쳐주는 작용을 하는데
없어지게 되면 물건을 집을 수가 없다.
발톱도 그렇다. 발 다리가 있어도 발톱이 힘을 받쳐주지 못해 서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새끼발가락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서 있을 때 새끼발가락의 부재(不在)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진다.
그러면 오래 서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 몸에 이루어져 있는 모든 신체 기관과 부위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인간’ 이라는 하나의 집합체가 구성되고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베르베르의 소설처럼
모든 신체 부위들이 인간의 주인이고
인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냥 신체 부위가 움직이고 싶은 것에 따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종이 아닐까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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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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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행복이란 우리 밑바닥에서부터 후두부까지 사이에 있는거야.
일년에 백만 루이를 쓰건 백 루이를 쓰건,
우리 마음속에서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같은 거라네.-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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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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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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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홀로 깨어 - 최치원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7
최치원 지음, 김수영 엮음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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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청산이 좋다는 말 마오
정말로 산이 좋으면 뭣하러 나오시오?
두보 보오. 나의 훗날 자취를
한 번 청산에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니
- 산에 나오는 중에게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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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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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6] 고리오 영감

 

 

 

 

 

 기러기 아빠의 눈물 

 

요즘 그리스에서 온 경제 위기라는 불청객이 우리나라에도 찾아와 민폐를 끼치고 있다.
지난 달 말에는 환율이 1200원대를 상승하다가 한 때 1270원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경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환율이 고작 70원 올랐다고  

왜 그렇게 호들갑 떠냐고 그럴 것이다.
물론 환율이 오르면 경제적인 면에서 좋은 점도 있긴 하다.
그러나 환율이 올라갈수록  피해를 보고  

실제적으로 속이 타들어갈 사람들은 ‘기러기 아빠’ 들이다.
먼 타국에 공부하고 있을 자녀들에게 돈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러기 아빠들이 보낼 수 있는 송금은 1500달러~2000달러라고 한다.
환율이 1000원인 경제적 상황에서 환전을 하면 150만원~200만원이다.
그런데 환율이 1270원으로 치솟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원화도 동반 상승하게 되어 원화도 190만원~254만원으로 올라간다.
이런..... 왜 기러기 아빠들이 환율 상승에 왜 그렇게 민감한지 그 심정을 알 거 같다.
환율이 1000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40~50만원 더 오르게 된다.
환율이 오르면 오를수록 원화도 올라가 송금이 어려워지게 된다.
환율의 급락은 다양한 사회, 경제 요인들로 인해 변하므로
전문가들도 올라갈지 내려갈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만약 환율이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기러기 아빠들이 송금을 150만원 모았는데
예기치 않게 환율이 상승하여 보낼 수 있는 송금이 190만원 이상이라면  

아빠들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하다.
타국에 있는 가족들은 보고 싶고, 외로워서 서러운 마당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고생해서 번 돈을 환율 때문에 보낼 수 없게 되면
기러기 아빠들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러기 아빠 : 기러기 자녀 = 고리오 영감 : 라스띠냑크

 

일단 시대부터 비교해봐도 많이 차이가 날뿐더러  

저 멀리 바다 건너편에 있는 나라의 이야기다. 

원래 '기러기 아빠' 는 우리나라의 교육열이 낳은 사회적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허구적 인물과  실제 인물을 비교한다는 것이 억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동명(同名)의 주인공도 살펴 보면 우리나라의 ‘기러기 아빠’ 와는 다를 게 없다.

기러기 아빠들은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을 사랑하는 자식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외롭게 돈을 벌어 자식들에 송금하는 것처럼
고리오 영감도 사랑하는 두 딸들이 상류 사회에서의 행복한 삶을 누려 주기 위해서
역시 혼자 살면서 딸들에게 돈을 보낸다.
결국은 자신의 삶은 손해보더라도 사랑하는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혼자서 번 돈을 보내는 것이 비슷하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두 아버지들은 운명의 최후도 비슷하다.
가끔 자신의 삶이 힘들거나 타국에 있는 자식과 아내가 자기 자신을 소외하게 되면
자살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선택하는 기러기 아빠들도 있다.
그리고 고리오 영감은 빈털터리가 되어 소설의 말미에
딸들의 보살핌 없이 병으로 인해 쓸쓸히 죽고 만다.
하지만 소설 속의 고리오 영감이 더 비극적이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타국에 있는 기러기 자식들은 한국에 혼자 남아 있는 기러기 아빠를 그리워하고
그런 아빠를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런데 고리오 영감의 딸들은 자기 아버지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버지에게 보답을 해준 것도 없다.

고리오 영감과 함께 자주 등장하면서도 나름 원샷 비중(?)이 어느 정도 있는
제2의 주인공 라스띠냑크도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기러기 자녀’ 과 비슷하다.
라스띠냑크는 지방의 가난한 귀족 출신이다. 그래서 화려한 출세를 위해
홀몸으로 파리에 왔건만 그의 말대로 파리는 ‘진흙 투성이’ 였다.
상류층들만의 세상이 되어버린 파리를 보고  

자신의 출신과 능력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지방에서 적지 않은 돈을 보내는 가족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더욱 더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감과 슬픔을 느낀다.
자신의 삶을 성공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는 기러기 자식들의 심정도
라스띠냑크와 비슷하다.
처음에 외국에 오게 되면 고국과 다른 분위기의 나라에서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외국의 동갑내기들과 함께 공부를 하다보면
외국 친구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자신의 능력을 실감할 것이다.
외국인의 눈이 보는 이방인으로서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자신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기러기 자식들은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다 못해 유학 생활을 포기한다거나
최악의 상황으로 타국에서 자살을 선택하곤 한다. 
 

 

 ‘레알’ 하게 표현한 세태 풍경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답게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을 통해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19세기 프랑스의 세태를
요즘 유행하는 젊은 세대 언어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레알’ 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프랑스 사회에 지배하고 있는 ‘돈의 논리’ 의 위력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돈을 통한 비정상적인 고리오 영감의 부성애는 딸들이 건전한 가치관을 갖지
못하게 되고 아버지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다.
고리오 영감뿐만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돈의 위력 앞에서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탈옥수 보뜨랭은 세상은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안다.
그러고는 돈이 필요한 라스띠냑크를 유혹하려고 하지만
라스띠냑크는 악마의 유혹을 거절함과 동시에  

당당히 그의 행동에 대해 비난하고 맞선다.
고리오 영감의 두 딸들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부(副)를 이용하여  

신분 상승을 한 불효녀들이다.
죽음이 코 앞에 둔 영감의 소식을 듣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 냉담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고리오 영감이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딸과 사위들은 그를 무시한다.

비록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의 인물들이지만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을 보면 여간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감과 라스띠냑크를 보면
우리 사회의 ‘기러기’ 아빠와 그 자녀들과 비슷하고,
고생 끝에 키운 자식들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이

냉정하게 부모들은 무시한다.  

결국 늙고 아무 능력도 없는 부모들은 ‘독거 노인’ 이 되어
부질 없는 세상을 한탄하다가 쓸쓸히 독방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고리오 영감이 두 딸들을 비난하면서 외롭게 죽듯이 말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우리 사회와 유추해보면
비슷하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기보단 무섭기만 하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자크가 그린 사회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야, 나랑 싸우자!

 

  눈 뜨면 뭐가 돈 될까 머리 또 굴리지
  dirty cash에 배부른 니 주머니
  제발 좀 작작해 독 같은 drity money
  부모형제와 친구마저도 버린 거니  

  (중략)  

 

  사과 하나 없는 사과 상자 속엔 비열한 자들의 욕심이 가득해  

  부모 제사상 앞에 싸움판이네 부모 형제보다 돈이 더 중요해  


빅뱅의 ‘Dirty Cash' 의 가사 일부분이다. 
소설을 읽고 나니 불현듯이 이 노래가 생각이 났다.
발자크가 돈에 오염된 프랑스 사회를 직설적으로 소설로 표현했다면
빅뱅은 지금 한국 사회를 직설적으로 가요로 잘 표현했다.
빅뱅 말고도 돈에 찌들린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는 많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소설에서 표현한 사회상과 비슷하게만 느껴진다. 
 

노래 제목도 직역하면 '더러운 돈' 이고  

고리오 영감의 사회와 우리나라 사회는 더러운 돈 때문에  

오염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영감의 장례식을 참석하고 난 뒤,
라스띠냑크는 정신을 가다듬고 ‘진흙투성이’의 파리와  

정면 대결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여기서 소설이 마무리 짓게 되면서 후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발자크는 독자에게 상상을 해줄 수 있는 여백을 남겨주었다.

 

과연 그가 거대한 사회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라스띠냑크가 혹여나 고리오 영감처럼 되어버릴지 않을까
짓궂은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어지러운 세상 앞에서 당하기만 하고 늘 뒤에 한탄만 하는 것보다
한 번은 무모하게 사회의 핵주먹에 흠씬 두들겨 맞아보면서  
미친 척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기에 좋은 일이다.

최치원의 한시 한 구절이  

사회에 맞서는 젊은이들과 라스띠냑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세파 속을 헤매면 웃음거리 될 뿐
 곧은 길 가려거든 어리석어야 하지요 
  

                   - ‘곧은 길 가려거든’ 중에서 (출처: 새벽에 홀로 깨어, 돌베개, 2008)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기러기 아빠의 눈물' 환율 급등해 용돈 송금 못해] 

머니투데이 5월 25일 입력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0052515443734340&outlink=1 

 

[기러기 가족의 비극…세 모녀 이어 아빠마저...] 뉴스웨이 5월 11일 입력 

http://www.newsway.kr/news/articleView.html?idxno=8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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