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NHK <워킹푸어> 촬영팀 지음 / 열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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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50만원으로 한 달 살아보기 
 

최근 참여연대가 주최하고 있는 캠페인이 이색적이다.  

‘한 달 동안 최저생계비로 생활하기’라는 캠페인이다.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올해 조사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것인데
1인 가구는 50만 4000원, 2인 가구 85만 8000원, 3인 가구 110만 919원,
4인 가구 136만 3091원이다. 이번 캠페인의 취지는 최저생계비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50만원이라.....
집에서 대학교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학교 근처에 혼자 자취 생활을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최저생계비 50만원으로 생활하게 된다면  

하루 밥 한 두 끼는 굶어야 할 판이다.
혼자 자취 생활을 하는데 지출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자취방과 생활 방식마다 다르겠지만
학교 근처에 혼자 자취하는 친구의 생활을 예로 들어 분류한 것이다.
전기세를 포함하는 자취방 월세, 하루 식사를 위한 식료품비, 교통비(이 친구의 자취방이
학교 근처라고 하지만 자기 집에서 학교로 걸어가면 40분 걸린다. 그래서 집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그리고 친구의 고향이 서울인지라 주말이 되면 서울에 가곤 한다.  

KTX 애용자(?)인 그 녀석은 회원 할인 적용을 한다 해도 서울과 대구 KTX 왕복에만 

5만원 이상의 비용이 지출된다), 기타 지출에는 주말에 자기 집이 있는 서울에 오면  

친구들과 논다고 돈이 나간다. 그리고 다시 대구로 돌아와 학교생활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생활비가 조금씩 나간다. 후배들 밥 사주기, 강의가 끝나면 동기, 선후배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논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이란 간혹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사고 싶은 욕구를 누르지 못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안 살 수가  

없다. 그러면 또 생활비가 지출된다. 다행스럽게도 이 친구의 집안이 나름 넉넉해서  

생계비가 부족하면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이 그의 통장에 돈을 넣어준다.  

하지만 가끔 나도 1인 자취 생활을 하고 싶다고 그 친구에게 말하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취 생활을 하면서 쭉쭉 나가는 생계비를 생각하면
돈이 궁하면 생활하는데 힘들며 자신이 왜 타 지방에서 이런 고생해야하는지 힘들 때도 

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자기처럼 살고 싶다면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말했다. 친구는 부모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생계비를 보내줄 때가 더욱 마음  

아프고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단다. 만약 50만원 달랑 내 손에 쥐어져 있고, 이 친구처럼  

생활한다고 상상해봐라. 얼마 못 가서 다 쓰고 말 것이다. 
 

 

 일본의 워킹푸어 
 

생계비 때문에 쩔쩔매는 사람들은 비단 이 친구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시민 중 생활고에  

허덕이는 중하층부터 극빈층까지 ‘워킹푸어(working poor)’에 속한다.  

위킹푸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근로빈곤층’이다.  

즉, 일을 하면서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민 계층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무슨 일을 해도 빈곤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자못 심각하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의 불황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일본 경제를 떠받치며 일본 국민 구성원 대부분 차지하는 중산층이
경제 불황으로 인해 무너졌다는 것이다. 결국 중산층이 무너지면 상류층과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몰락한 중산층들은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가난한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직으로 생활을 영위한다거나 아예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하고 있다.   

몰락한 중산층들은 ‘워킹푸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본에만 워킹푸어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워킹푸어의 실상을 보다

이 책은 일본 워킹푸어의 실상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책 내용 절반은 다양한 일본 워킹푸어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얼마 받지 못하는 임금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자식들 부양하느라 등 휘어지게 일을 해도 생계비가 부족하여 곤란해하는 부모들,  

안락한 노후 생활은커녕 늙어 지친 몸을 이끌어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힘들어하는 노인들까지. 일본의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져 왔다. 생활하면서 꾹 억누르고 

있었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들만의 걱정거리와 소원을 말하는 워킹푸어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두 아들을 키우는 어느  

어머니의 삶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들이 올바르게 교육을 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생계비가 부족하여 자식이 학원에 다니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두 아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은 헌책방에서 구입하거나 길거리에서 버려진 것을  

주워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유사한 사회생활보장 가족으로  

시청에 직접 신청을 시도하였으나 조건 미달이라는 이유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는 않는다. 비록 힘들더라도 두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얻은 생계비를 자식 교육에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지역과 피부색은 

달라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모두 다 같으랴. 
 

 

 무엇이 위킹푸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는가 
 

인터뷰에 참여한 워킹푸어들이 내뱉은 공통적인 불만은  

고용 문제와 정부에 대한 태도였다.
정작 일을 하고 싶어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여 얻은 대가와 비교하면
도토리 키 재기이다. 즉, 무슨 일을 해도 노동의 대가가 쥐꼬리만한 것이다.
그리고 워킹푸어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은 빠지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 국민들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워킹푸어가 시청 관련 직원과의 청문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실상들을 알려줘도
오히려 시청 관계자들은 그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해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안일한 망언을 하기도 했다. 시청 관계자들이 아직까지 워킹푸어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이 책의 원안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시기가 4년 전임을 감안하면 ‘워킹푸어’라는 용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때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노력해야 할 정부와 시청이
이들의 생활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고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허술한 사회보장제도도 워킹푸어들을 분노케 하고 있었다.
사회보장제도를 받으려고 신청을 하면 조건 사항들 때문에 국가 제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개인 소유 땅이 있다거나 가족 인원 수가 부족하다는 등
너무 많은 조건들이 달려 있다. 어이없는 것은 본인은 경제적 능력이 없다지만
한 사람이라도 부양자가 있다면 보장제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앞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빈곤의 현실에 눈물을 흘리는 워킹푸어들은  

그나마 한 가닥의 희망의 끈을 잡아보려고 사회보장제도를 신청하지만 
이것마저 받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 앞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워킹푸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18~64세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워킹푸어는 2008년 195만 명에서 2009년 상반기 209만 명으로 급증했다.
6개월 사이에 14만 여명이 워킹푸어로 전락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워킹푸어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워킹푸어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해야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당장 손을 써야할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의 얼굴들은 바뀌어도 항상 그 얼굴들이 말하는 이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에게는 귀 따갑도록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노령화 사회임을 감안하여 노년층도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고용 기회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노동 임금도 인상해야 한다.  

최근 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정규직인 워킹푸어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취약근로자에 대한 고용차별이 개선되어야 한다. 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일본의 제도의 내용과 비교하면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신청자의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했을 때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지원을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제도처럼 부양이  

가능한 가족이 있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이라도 소득이 증가했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싶으면 사회보장제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장기적으로 빈곤층을 자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 대상자가 되기 위한 조건도 일본만큼 복잡하다.
일정 가격 이상의 집이나 전셋집, 승용차, 땅 등을 소유하고 있으면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된다. 즉, 워킹푸어를 늘리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회보장제도  

수급자 선정 규정을 개선되어야 한다. 다만 정부 지원에만 기대고 일을 하지 않는  

빈곤층을 양산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일본과 닮은 꼴이 많다. 일본이 부동산 버블 이후로
경기 불황으로 중산층이 붕괴되었듯이, 우리나라도 IMF 외환 위기 이후로 중산층이  

무너졌다. 그리고 외환 위기의 최대 희생자인 중산층들은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처럼 워킹푸어가 증가되고 있다. 워킹푸어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경제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도 악영향을 준다. 가난은 대물림되어
다음 세대까지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만 대물림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면서 자란다고 한다. 자식들도 부모가 가지고 있었던
빈곤으로 인한 삶의 고통과 상처들을 보고 자란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최저생계비로 한 달 살아보세요” 일반시민 11명 직접 체험] 경향신문 7월 1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7011810295&code=940702 

 

[워킹푸어, 현실에 무릎 꿇다] 데이터뉴스 4월 8일자 입력 
 http://www.datanews.co.kr/site/datanews/DTWork.asp?itemIDT=1002910&aID=2010040814460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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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나이스비트 메가트렌드 차이나 -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가는 중국의 8가지 힘
존 나이스비트 & 도리스 나이스비트 지음, 안기순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중국 앞에서 무릎 꿇은 구글  

 

2010년 7월 1일, 최대 인터넷 검색 사이트 구글이 중국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중국 정부의 

검열 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철수를 결정하였으나 중국 정부로부터 사업허가 갱신을 받게됨으로써 결국 중국의 검열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구글은 중국 정부의 규정을 지키기로 약속하게 된다. 이는 57번 규정이라고 하는데 내용에는 국가권력 전복, 국가안보 화, 국가명예 침해, 민족갈등 조장, 음란물 및 폭력 유포 등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구글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계 시장에 발을 내딛었지만, 중국 정부의 검열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두 얼굴 
  

중국과 구글이 검열 문제 때문에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다가 나중에 구글이 중국에 

철수하겠다고 으름장 놓았지만 결국에는 중국 법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들의 대립은  

4개월전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중국과 구글 간의 대립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되면 구글이 

부당한 입장에 몰려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구글은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사이트이며 인터넷은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구글까지도 정보 

검열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서니 구글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중국 정부의 그런 태도를 보게 되면 예전 모택동 정부 시절에 있었던 언론 통제가 부활 

하는거 아닌가 싶었다. 중국이 사회 및 경제 개방을 실천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요즘 시대와 걸맞지 않는 언론과 정보 검열을 주장하고 있으니 중국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이런 모습은 비단 구글 사태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의 중국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해 전세계가 북한  

정부를  비난하였지만 오히려 중국은 정반대였다. 북한이 천암함을 침몰시킨 행위  

자체를 이해하면서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북한 정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제3자의 입장으로 신중하게 바라볼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중국까지도 북한을 거세게 비난하고 남한, 미, 일과 함께 북한을 벼랑 

끝에 몰리게 만들면 위기의 북한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을 취할지도 모른다. 

예전 북한과의 사이를 생각하면 중국은 북한을 무시할 수가 없으며 자신들은 전쟁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꺼리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중국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타이완과 티베트이다. 최근에 중국과 타이완이 경제 

통합을 하여 '차이완 시대'의 서막을 알리게 되어 하나는 해결되었지만 티베트라는 

중국 입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골칫거리만 남게 되었다. 중국의 티베트 인 강제 탄압  

이후로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는 냉랭 분위기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중국의 이런 태도에 대해 이해를 못하게  

된다. 그런 잘못된 시선과 이해는 자신들의 주관적인 감정이 덧붙여서 중국에 대해서  

잘못된 선입견으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번 구글 사태를 통해 서구인들은 

중국은 언론 통제가 심한 나라이며 중국인들은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이번 구글 사태와 관련된 뉴스를 쭉 접하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 앞에서  

꿀리지 않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중국의 실제 모습  

 

이번에 출간된 존 나이스비트의 중국 버전 메가트렌드를 읽어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색안경을 낀 채 중국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중국 정부의 자체적인  

언론 통제에 대해서는 시인을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런 정부의 규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중국 시민들은 포르노와 같은 불법 자료들이 인터넷에서 떠돌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는 방안에는 정부의 검열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이 만든 블로그를 통해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 및 관련 자료가 제시되지 않아서 아쉬움은 있으나 저자가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지낸 '중국통'임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이 수긍되기도 한다.   

그리고 중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은 8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등소평 정부 때 주창한 개방적인 '정신의 해방' 사상, 정부의 하향식 지도와  

국민들의 상향식 참여의 결합,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틀, 점차적으로 실시하는  

경제 개혁 시도, 중국적 예술과 기능 발달,  세계 대열에 참여하기, 사회 자유와 

공정성, 혁신 인재 양성 및 시장 주도 체제 등이 있다. 중국 내의 언론 분위기와  

더불어서 더욱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중국만의 독특한 정치적 모형이었다.  

국민의 참여와 정부의 지도과 균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런 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중국 정부도 사실 부정과 비리가 있고 완전한 민주적이며 성숙한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지도자와 국민 간의 소통이 서로 맞지 않아서 항상 시끌벅적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그런 중국이 부럽기만 하다.  

 

이 책에는 중국이 해결해나가야 할 3가지 문제를 '금지된 3T' 라고 축약하고 있다. 

T는 텐안먼 광장, 타이완, 티베트를 뜻한다. 텐안먼 광장은 과거 중국의 강압적인 

공산주의를 대변해는 상징이다.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향한 중국시민들이 탱크와  

총부리에 무참히 피흘리며 쓰러져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 개방을 통해 어두웠던  

근현대사의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타이완과의 경제통합이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티베트.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는 티베트의 불편한 진실들을 소개하여  

중국-티베트 문제를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잘못된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티베트는  

봉건주의와 노예제도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불평등 사회이며 이들의 국교라고 말할 수  

있는 라마 교는 여러 분파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중국이 사사건건 

티베트를 간섭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중국 
  

요즘 매스컴를 살펴보면 중국의 행보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구글 간의 대립은  

중국이 승리하였고, 천안함 사건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강대국으로써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발 경제 위기 때문에 세계가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중국의 경제 상황은 그리 큰 타격을 입지도 않았으며 위안화 절상을 선언하면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타이완과의 경제통합을 맺었다.  

요즘 메이저리거인 추신수 선수가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듯이 중국은 경제 불황  

때문에 죽쑤고 있는 다른 나라들 앞에서 자신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8가지 힘에 의해 조금씩  중국이 성장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검색 사이트의  제국인 구글은  

자체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언론 통제 즉, 중국만의 독특한 국가적 코드를 

읽지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선입견으로 인해서 얻은 대가는 치명적이다.  

중국 철수를 번복하다가 끝내 중국의 주장을 인정하고마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차이완 시대가 시작되면서 중국과 타이완 간의 수출 품목이 무관세로 적용하게  

된다. 주로 타이완에서 수출 사업을 펼치는 우리나라 기업에게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며 

이는 우리나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타이완에서의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무역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편협적인 관점을 벗어나 다른 나라의 

경제사회 및 문화 코드를 이해하여 이에 걸맞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이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에서 우리 스스로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을 알고 있어야 한다.  

중국 사람들에게 '짱꼴라'라고 욕하지 마라. 축구 공한증에 시달렸던 중국한테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3대 0으로 졌다고 분하지도 마라. 축구가 졌다는 점이 

중요하지가 않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는  

그런 열정적인 애국심을 먼 훗날에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강대국이 되기를 바라는데에도 그런 모습을 보이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중국은 조금씩 세계 무대의 주연이 되기 위해 분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열심히 뛰고 있지만, 중국은 날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그들의 행보는 세계  

무대의 주연급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을 무시할 수가 없다.  

결국 중국을 알고 있어야 우리나라가 사는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중국법 지키겠다' 무릎 꿇은 구글] 포커스신문 7월 2일자  

http://www.fnn.co.kr/content.asp?aid=5cbdda7275c84929b5267506ac26a425 

 

[차이완 시대 개막 "對中 수출·투자 타격 우려"] 재경일보 6월 29일자 

http://news.jkn.co.kr/article/news/20100629/555611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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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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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합방조약, 그리고 대한제국의 왕족들

올해는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강제로 국권을 강탈당한 한일합방조약 100주년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살펴보면 이번 연도는 아주 의미가 있다.
월드컵과 겹쳐서 묻힌 감은 있지만, 6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잠깐 화제가 되었지만, 다시 한 번 역사의 재조명을 받게 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다. 한일합방조약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조인한 날은 

8월 29일이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일본 관리들과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변절한 친일파 관리들의 합작으로 강제적으로 조인한 조약이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한, 일 두 나라의 지식인들이 한-일 과거사 문제 정리에 대해  

한자리에 모여 한일합방조약은 법적으로 무효임을 공동선언하게 되었다.  

일본 지식인들과의 논의 끝에 한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었던
한일합방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언론과  

방송에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한일합방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알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한일합방조약이 언제 맺었는지 

모르며 심지어 당시 황제였던 순종이 힘없이 쓰려져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본과의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고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나 역사책에 찾아보던지 아니면 인터넷 검색창에  

‘한일합방조약’이라고 쳐봐라. 순종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옥새로 직접 조약 서류에  

찍은 것이 아니다. 이완용이 가짜 옥새를 만들어 직접 날인을 하여 한일합방조약이  

맺었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야말로 황제가 아닌 매국노가 조약을 맺었으니  

이 조약은 당연히 무효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 한일합방조약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이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 한일합방조약은 가슴 속에 응어리가 된  망국의 한(恨)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란 바로, 지금 살아남아 있는 대한제국의  왕족의 후손들이다.  

한일합방조약을 맺음으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무너지게 된다.  

왕족들은 힘을 잃게 되었으며 일본은 대한제국 왕족들의 부흥을 막기 위해
강제로 일본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대한제국 왕족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타국에서 국권을 빼앗긴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탄에 사무쳤으며, 수십 년 끝에 고국에 돌아와도 나라의 정부는 

왕정 부흥이 염려되어 그들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왕족이 아닌 평민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몇 몇 왕족의 후손들은 생활고 속에서도  

간간히 살고 있다. 
  

 

 비운의 공주, 덕혜옹주

역사 속의 대한제국 왕족들 중에서는 불행한 삶을 살다간 이들이 많다.
자기 눈앞에서 왕비가 일본의 자객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과 허무하게 나라를  

빼앗긴 것을 봐야만 했던 고종 황제부터 시작을 해서 그의 자손들도 불행이 대물림되었다.
황제로 재위했지만 권력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마지막 황제 순종,
일본의 계략으로 일본 왕족과 정략결혼을 하여 반평생 일본에서 생활한 영친왕,
그리고 어린 나이에 자신의 나라와 가족들이 힘없이 쓰려져가는 것을 본
비운의 공주, 덕혜옹주가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단연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라면  

덕혜옹주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인 고종의 권력은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그래서 제대로 된 왕족으로서의 생활과 대접을 누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승하하게 되자, 이때부터 불행한 삶의 연극의  

막이 올려졌다. 고종이 궁정 내에서 일본과 내통하고 있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녀는 평생 주위 사람들을 경계하는 심리적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고국에 남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마음속에  

버리지 못했던 왕족이라는 자존심, 그리고 일본과 일본 사람에 대한 증오라는 복합적인  

심리 요인들로 인해 그녀의 결혼 및 가정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고, 결국 정신분열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광복 후에 그녀가 바라던 고국에 돌아왔지만  

보고 싶어 했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 후 지병과 실어증에 시달리다가 쓸쓸하게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불행’ 또는 ‘비극’이다. 그녀의 숨겨진 삶은 소설로 통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면서 우리들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 같은 삶을 직접 살다 간 당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녀를 평생 고통스럽게 만들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왕족의 여자’라는 것이었다.
한창 어리광부려야할 나이에 힘을 잃어가는 나라에 대한 걱정에 빠진 아버지  

고종 황제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배국인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백작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은 대한제국의 왕족의 힘을 떨어뜨리려는 일본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여자이면서도 평생 여자다운 생활을 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자신이 바라는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아닌 

일본의 백작과 정략결혼을 하였다. 남편은 덕혜옹주의 말할 수 없는 진심을 읽지 못했으며 결국 그녀 스스로 폐쇄적인 성격으로 만들어버리게 되었다. 자신의 뱃속에 태어난 딸인  

정혜도 어머니인 그녀를 무시하게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고국과 왕족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을 자신의 딸에게라도 말해줌으로써 정신적인 고통들을 벗어나고  

싶어했었지만  딸과 남편은 오히려 그녀를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만다. 
  

 

 어두운 역사가 낳은 불행한 사람들
 

이 소설들을 구성하고 있는 그 밖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도 나름 덕혜옹주와 같은
삶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게 한
공통적인 원인은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35년의 어두웠던 역사였다. 박무영은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지만 않았어도 원래 덕혜옹주와 결혼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작 마음속으로는 덕혜옹주를 흠모하지만 자신의 일은 대한제국의 독립이  

우선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계급인 왕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덕혜옹주의 딸 정혜일본에게 지배당하며 살아가야하는  

한국인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정작 자신은 일본에 태어났지만 일본인 동급생들에게 

조센징이라고 놀림 당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왕족임을 항상 강조하는 어머니를 무시하게 된다.
결국, 괴로움 끝에 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된다. 덕혜옹주의 종이면서도 유일한  

벗이었던 복순도 덕혜옹주 못지않게 비극적인 삶을 산 여인이다. 자신도 덕혜옹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감으로써 병든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판으로 갈수록 일본군의 패망  

분위기가 감돌았고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일본 사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일본인들은 일본 내의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보이는 족족 한국인들을 잔혹하게 학살과 강간을 하였다.
그 시기에 죽은 일본 내의 한국인의 수는 수천 명이었다. 복순도 잔인한 역사의 희생자이다.
덕혜옹주가 있는 소 다케유키의 저택으로 가는 도중 일본인들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아주 소중한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칼 자국의 상처도 남게 된다.
몸과 정신을 유린당한 복순은 덕혜옹주와 고국의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덕혜옹주를 고국에 귀환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박무영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복순은 덕혜옹주가 있는 정신병원의 청소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덕혜옹주 귀환 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병원 탈출을 시도하던 중 발각되어 복순은 일본 땅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정작 그녀는  

자신의 고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만다. 
 

 

 역사의 아이러니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불행한 삶에 대한 연민보다는 우리나라의 어두웠던  

과거사와 덕혜옹주라는 인물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한제국의 왕족의 

삶을 소설화했다는 광고 문구에 넘어가 단순히 나의 역사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읽었다. 

하지만 단순히 소설로 읽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덕혜옹주의 삶이 결국  우리가 알지 

못했으며 알고 싶지도 않았던 일제 치하 때 우리나라의 과거 모습이었다. 작가의 후기에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족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먼저 세상에  

소개하였으며 숨겨진 역사적 기록을 찾아냈던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덕혜옹주에 관한 책으로 우리나라에 소설보다 먼저 번역되어 출간하였다.  

소설 덕혜옹주의 흥행에 힘입어 뒤이어 어린이들을 겨냥한 덕혜옹주 관련 도서들도  

나오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평소에 잊고 있었던 역사 인물들이 매스컴이나 출판물을 통해 재등장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인물이기에 알고 있어야 하며 결국 그 인물을 알게 되면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잠시나마 애국심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신문을 보게 되면 소설 덕혜옹주의  

광고 카피와 마주하게 된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은 안 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인물이라고 덕혜옹주의 생전 사진과 함께 신문지면 구석에 기재되어 있다.  

광고 카피가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자극하게 하여 이 책을

읽도록 권유하고 있다. 그래.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이기에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며  

이번 소설로 인해 가려져 있는 그녀의 삶을 알고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녀를 알기 전에 그녀가 살았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소설 덕혜옹주 관련 광고 카피라이터에게 조언 해주고 싶다.  

다음 광고 카피를 쓸 때  대한제국의 슬픈 역사도 꼭 알아야 한다는 문구도 적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카피를 정하면 책도 더욱 잘 팔릴 것이고, 독자들이 대한제국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가끔 허황된 기대감도 가져보게 된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 “한일합방 조약은 불법이다”] 한겨레21 5월 14일자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73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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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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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의 사회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이 잡힌 지 한 달도 안 되어 같은 지역에서 7살 여자 아이가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피해 여자 아이의 진술을 통해 성폭행범의
몽타주가 완성되어 지명수배중이다. 하지만 이 용의자가 또다시 제2의 범행을
저지를 수가 있다. 초등학생 자식을 둔 부모님들은 이들의 행각에 치를 떨면서도
자기 자식들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반면, 이런 흉악범들을 잡아야 할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들은
폭력 같지 않은 폭력(?)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찰들이 피의자들에게 고문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가혹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논란이 계속 커지자 관련 경찰 4명은 구속되고 경찰청장은 사퇴 요구에 압박당하고 있다.
20여 년 전, 독재 정권 시절의 저승사자였던 ‘고문경찰’이 사라졌건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곳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폭행과 경찰 고문 사건의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또 다른 기사가 또 한 번 대중들을 분노케 했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무자비하게 학대를 당해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고양이의 이름을 따서 일명 ‘고양이 은비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십거리의 하나로 소개되었지만
방송 이후 사건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커져나갔으며  

결국 뉴스에서까지 비중이 있는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한 점과 가해자의 변명이었다.
고양이를 무참하게 때리다가 고층 건물 밖으로 내던졌으나, 가해자는
자신이 그 때 술에 취해서 기억이 자세히 안 나며
왜 죄 없는 고양이를 죽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변명하고 있다.

요즘 사회는 폭력의 사회다. 정말 무시무시하다.  

같은 인간뿐만 아니라 이제는 동물까지도 거리낌없이 폭행을 가하고 있다.
동물도 인간과 같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고양이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런 잔인한 행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앞에서 소개된 사건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폭행 사건이 많다.
김길태와 조두순 같은 사람은 인간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으며,
괜히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청소부와 힘 없는 임산부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들이 있다.
예전에는 폭력이란 조직 폭력배들과 같은 흉악범들의 전형적인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폭력배들의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중 매체 속의 폭력배들은 동료의 의리와 자신들만의 목표를 위해서
주먹질을 하는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졌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폭력배의 모습을 보고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조직 폭력배들의 전유물인줄만 알았던 폭력 행위는  

이제 일반인들도 폭력을 행사하여 종종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요즘은 폭력배들의 소식보다는 일반인들의 폭력 소식이 점점 눈에 띄고 있다. 
 

 

 

 죄와 벌

김수영의 모든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 <김수영 전집> 1권을 읽게 되면
지금 우리나라의 폭력의 사회를 그대로 표현하는듯한 시가 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40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는 먼저
  아까운 것이
  지(紙)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김수영 전집 1>『죄와 벌』전문, p 296 - 
 

 

이 전집에는 김수영의 시 속의 단어들에 대한 각주만 있을 뿐 자세한 문학적 해설이 없다.
그래서 시의 내용에 대해 독자는 다양한 해석들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보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약육강식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시의 1연도 이와 비슷하다. 시 속의 화자가 살인을 하려는 행위를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리고 살인이란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화자는 살인 행위 후의 비난을 ‘희생’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우산대로 폭행을 가한다.
그러자 그들의 주위에는 40명 정도의 취객들이 모인다.
하지만 시의 내용에는 취객들이 화자의 폭행을 말리는 장면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폭행 행위를 그냥 묵묵히 지켜봤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시인은 폭행 및 살인 행위를 지켜보기만 하는 목격자들을  

‘취객’ 이라고 비유함으로써 이들의 안일한 태도들을 은근히 조롱하고 있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게 되면 인간의 뇌는 알코올로 인해서 취하게 되어
기억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시 속에 등장하는 40명의 취객들도 술에 취한 나머지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행위를 막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두 명이 아닌 40명이라는 적지 않은 취객들 중에서도
단 한 명이라도 살인 행위를 말리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국, 40명이든 100명이 모여 있든 인간은 심리학적으로 
자신의 일이 아닌 살인 행위 앞에서는 평소답지 않게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방관자 효과’ 라고 한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목격자들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는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나 성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도움을 주겠지’하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즉, 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취객이 알코올로 인해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것처럼
사건의 목격자들도 사건 현장 앞에만 서면 취객처럼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는 뜻으로
사건의 목격자들을 ‘40명 가량의 취객’과 동일시하고 있다.

결말에는 살인 행위를 저지르고 난 뒤의 화자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범행 현장을 지켜보던 취객 중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의 죄가 알려짐으로써 생기는 불안감보다는
범행 도구인 ‘지우산’을 현장에 놔두고 왔다는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화자의 인면수심적인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화자가 지우산을 현장에 놔두고 왔다는 점을 통해서
사건 증거물인 지우산으로 인해 그의 범행이 밝혀질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시인은 인간으로서의 용서할 수 없는 를 저지른 자는 언젠가는 죄가 밝혀지며
죄의 대가로 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시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40명의 취객’들도 살인 행위들을 방관한 것도  

도덕상으로 보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말할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도 죄를 저지른 것이며 벌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
시의 제목 ‘죄와 벌’이 살인자인 화자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살인 행위를 그냥 지켜보는 취객들도 포함하게 된다.
시는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대상의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결국 누가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지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죄와 벌’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의 역사

김수영의 시를 폭력이라는 행위가 비일비재한 우리 사회를 투영해서  

독자적인 해석을 했지만
당시 시를 쓴 배경을 생각하면 시 속의 화자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을 억압하고 비밀리에 고문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도 없으며
정당화하려는 독재 정권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우산’을 통해 그들의 추악한 행위들이  

언젠가는 밝혀지고 무너지기를 암시하고 있다.
참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시에서 내포되어 있다.
김수영의 시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했으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갈망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김수영이 살던 사회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독재 정권이 남긴 어두운 면이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
이번 경찰 고문 사건은 예전 독재 정권의 시대에 있을법한 일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폭력의 모습들도 모두 다
일제 강점기부터 비롯된 독재 정권 하의 사회와 교육이라는  

기이한 사회 구조가 낳은 악영향이다.
그 때 학교와 군대, 사회단체에서는 지도자가 모든 집단 인원들을 통솔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조건적인 복종 강요와 이에 불응 시에 따르는 폭력뿐이었다.
복종과 폭력에 길들어진 대중들은 억압된 과거로 인한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폭력이라는 행위를 하게 된다.
잘못된 사회 구조가 ‘남보다 자신’ 이라는 지나친 이기주의로 자리 잡게 되고,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다거나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폭력으로 응징하려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이런 폭행 사건들이 또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대중들은 폭행을 일으킨 범죄자를 겨냥하여
‘패륜녀’, ‘패륜남’ 이나 일명 ‘발길질녀’ 처럼 별명을 갖다 붙이며  

마녀사냥식으로 욕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도 잠시 이성을 잃으면 마음속에 숨어있던 폭력의 본능이 나올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우리도 ‘패륜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이 김수영이 말하고자 했던 우리 사회의 ‘죄와 벌’의 양면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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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수영 전집 시집1

소장하고 있어요.

근데 옛날 판 이라서 한문 이 섞여 있는데 한자 까막눈 이라서

일일이 옥편 찾는게 귀찮아서 마음 가는데로 읽어요 ㅋ
 
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노병(老兵)과 한 대의 트럭

다음은 6.25 전쟁에 관한 신문의 특집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이 씨는 올해의 나이로는 78세다. 그에게는 특별한 동생이 있다.
동생은 바로 이 씨의 트럭. 트럭은 이 씨의 인생 절반과 함께 동고동락을 해왔다.
이들의 각별한 운명은 6.25 전쟁 때부터 시작되었다. 17세의 이 씨는 트럭을 몰고다니며
강원도 영월의 광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발생한 6.25 전쟁에
이 씨와 트럭은 함께 징용되었다. 어린 나이 때문에 부대에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트럭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장교에게 사정한 끝에
학도병 자격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본인은 우리나라 1호 학도병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에 증명하는 공식 기록이 없다.
그 뒤로 그는 트럭과 함께 전쟁터를 돌아다녔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제대를 원하였으나 당시 부대에는 운전병이 귀한 터라  

국방부 수송부에서 5년을 일했다.
그리고 1958년에 다시 그에게 영장이 날아왔다. 6.25 전쟁 학도병에다가
국방부 수송부의 경력까지 댔으나 증명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 입대하게 되어
1962년에 제대했다. 이 씨의 군 생활 합계 12년.  

그러나 그에게 주어지는 연금은 월 9만원뿐이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트럭이라는 소중한 동생을 얻었다.  

그리고 이 씨는 지금까지도 트럭을 닦고, 기름칠하고 있다.
언젠가는 트럭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의 역사가 관심을 받는 그 날을 위해서..... 

 
 

 어느 노(老) 학자와 한 권의 자서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역사가의 시간>을 읽는 와중에  

신문 속의 이 씨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이 씨의 연세와 강만길 명예교수의 나이도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고,
이 두 사람은 험난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씨가 트럭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리려고 하듯이
강 교수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하여 자신이 겪었던 역사 속의 경험들을 알려주고 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역사가 특유의 딱딱한 서술이 없어서  

술술 읽혀나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제 강점기 말, 8.15 광복 후의 불안정한 국내, 6.25 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유신 정권, 전두환 정권, 6.15 남북공동선언까지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풀어가며   

살아오면서 느꼈던 역사의 감상(感想)을 말하고,
역사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책이라고 불러도 어색한 점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책 분량이 많은 만큼 내용 면에도
자신의 생애 위주로 풀어나가는 명사(名師)들의 자서전보다는
더욱 더 깊이가 있으면서도 무언가 엄숙하다.
강 교수가 겪었던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두웠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최대한 주관적인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자신의 일생과 역사적 사건들을 담담히 표현하고 있다. 
 

 

 

 역사 앞의 인간도 변하고 만다

<역사가의 시간>들을 읽어보면 강 교수가  

지금까지 만나고 지내왔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인물들은 역사 앞에서 두 가지 극명한 갈림길에서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된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변절을 해서라도 살아남아 기득권 행사를 한다거나,
이들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받거나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희생당하는 자들이다.
강 교수의 전작인 <역사는 변하고 만다>의 제목처럼  

역사 앞에 선 인간들도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새 나라의 첫 이승만 정권의 정치핵심과 행정요원은 전혀 재교육되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세력이 그대로 눌러앉았고..... 김종원 등 일본군대의 지원병 출신이  

  가당찮게도 백두산 호랑이로 변신해서 ‘포효’하거나, 김창용 등 일본군대의  헌병  

 하사관 출신이 ‘염라대왕’이 되어 숙군이라는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는 주인이 되고  

 말았다..... 장준하 등과 같이 일본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목숨을 걸고 광복진영으로  

 탈출했던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현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역사가의 시간> p 93 중에서 -  

 

강 교수의 평을 통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역사에 의해서 변한 인물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게 되면
오히려 희생당한 인물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고,
자손대대로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로 공부하게 된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기록들은 그 때의 사건들을 알 수 있는
하나하나 중요한 사료(史料)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록만으로 역사를 이해한다고해서 우리나라 역사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시험에서 몇 문제 더 맞추기 위해서 역사를 달달 외우듯이
단순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 자체에 매달리면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역사 기록들은 대부분 가진 자들(지배층, 기득권자)의 관점이다.
그래서 다분히 주관적이면서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가진 자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못 가진 자들. 즉, 억압받던 소수층과
가진 자들에 의해서 말살당한, 역사와 이름이 없는 자들의 입장으로도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역사적 사건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변하게 된 인물들의 행적과 내면을 파악하게 됨으로써  

과거사에 대해서  올바르고 균형 있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강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알려지고 있는 잘못된 역사가 

땅 속 깊숙히 박힌 뿌리처럼 대중들의 인식에 박혀 있다.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이라는 사설을 발표하여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던
언론인 장지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으며
국가보훈처가 선정하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구실을 한 <매일신보>에 친일 경향의 시와 사설을 발표했다는
연구가 주장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하는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을 수록하여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장지연의 후손들은 친일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국, 다음 해 반민규명위원회에서는 장지연을 친일명단에서 제외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만 치중한 고정적 역사 관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해주고 있다.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쓴 활동 하나만으로 장지연은 독립운동가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친일 행적이 알려져 역사의 진실과 숨겨진 이면들을 밝혀졌다.
하지만 더욱 더 염려가 되는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젊은 세대를 포함해서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장지연이라고 하면 독립 운동가라고 생각이 깊게 인식되어져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는 장지연을 독립 운동가로 기재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우리의 두뇌는 생체적으로 변화라는 것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한 번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정된 인식은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장지연 친일사전 수록 논란 이후에
장지연이 친일 행적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만약 장지연이 친일 행적을 했다고 말하면 대부분 교육 받았던 사람들은
이 주장에 믿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오용(誤用)당하는 우리 역사

친일사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한 장지연 후손뿐만 아니라
광복 후 강제 몰수당한 친일파 조상의 땅을 법으로 되찾으려는 후손들이 보여주듯이
특정인의 역사를 통해 조상에 의해서 대대로 누려왔던 명예를 지키거나  

되찾으려고 하는 것은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가문에 대해  

구차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것은 잘못된 역사 인식이며 우리나라 역사를 배워야하는 의미도 없게 된다.
이 책에서도 그런 유사한 내용의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하루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학교 연구실로 찾아와서.....  

  우리 현대사를 전공하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생물학 석사가  

  왜 국사학 박사를 하려느냐고 물었더니.....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군대 내 좌익 숙청에 명성을 떨치다가 군인들에 의해 암살된 김창룡이  

  그의 아버지인데, 암살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우리 현대사를 전공하려 한다는 것이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역사학이란 어느 특정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전공하는 학문이  

  아니라 하고 타일러 보낸 일이 있었다. 

                                                               - <역사가의 시간> p 92 중에서 -  

  

 

지금도 학계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역사가들의 연구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도  

잃어버린 조상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연구 활동을 한다거나  

여러 단체들을 통해 자비로 홍보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굳이 남는 시간에 역사학 공부에 쏟아 붓고,
전국 곳곳에 홍보를 펼치면서까지 조상들의 명예 찾는 일에 매달려야하는지
후손들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히 조상의 명예를 되찾아서 역사의 숨겨진 진실을 공개하여  

올바른 역사 정립에 기여하려는지
아니면 조상 덕으로 자신의 명예를 얻어서 영달(榮達)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 활동의 의도가 올바르며 명확해야 한다.
만약 후자의 의도로 조상 명예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훌륭한 공적이 있으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조상들을 욕보이는 짓이며
오히려 정작 받아야 할 진정한 역사적 평가를 후손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영영 받지 못하게 된다. 
 

 

 

 젊은 세대들을 위한 역사책

이 씨에 관한 기사 옆에는 변화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전쟁 인식에 관한 기사가 소개되어 있다.
대학생들이 직접 전쟁이 벌어졌던 전쟁터나 전쟁 박물관에 찾아가서
6.25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확립하게 된다는 기사 내용이다.
6.25 전쟁에 관심을 가질 것을 트럭 앞에서 힘껏 역설(力說)하고 있는  

이 씨의 기사와 대조적이다.
대조적인 기사 배치 구조가 바로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백발이 성성하고 예전의 기력이 사라지고 없는 6.25 세대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바쳤던 일들을 자랑스러워하며
후손들에게 나라의 중요성과 애국심을 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젊음의 힘이 왕성한 정보 통신 세대들은 관심이 없다.
내가 겪었던 일도 아니며 6.25 전쟁은 그냥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6.25 전쟁이 몇 년에 일어나는지도 모르며
심지어 남한이 먼저 공격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북한과 전쟁이 나면 도망가는 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조건 남한이 이긴다고 주장한다.  
하필이면 6.25 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식의 다음날이  

우라나라 축구 대표 팀의 8강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경기가 펼쳐지게 되어 6.25 전쟁 발발 50주년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념이 월드컵에 가려져 무색해졌다.

역사 관련 도서 판매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니 이 책이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아주 좋았다고 생각된다.
6.25 전쟁 50주년을 맞추어 출간하게 되어
6.25 전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해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관심의 열기 속에서도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그 중 6.25 전쟁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원로 역사가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다는 점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만큼 예전보다 6.25 전쟁을 포함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약간의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사고 읽은 사람들 중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단순히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저명한 원로 역사가의 자서전으로만 읽혀지기 보다는
역사가의 생애를 통해 왜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통일이 되지 않고
분단국가로 지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세대이기에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인용 기사 출처 및 링크

[전쟁 세대, 젊은 세대 6.25를 말하다] 중앙일보 6월 26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270607 

 

[“박정희·장지연 친일명단 빼달라”] 경향신문 2009년 11월 3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031804355&code=940100 

 

['친일사전' 속 박정희·장지연·안익태···친일행적 무엇이 담겼나]  

노컷뉴스 2009년 11월 9일 입력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09050 

 

[반민족 진상규명위 친일인사, 박정희·장지연·홍난파 '친일' 제외] 

한국일보 2009년 11월 27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11/h20091127220302219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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