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노동절 일(work)기 시작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방에 있는 책들을 정리했다. 책 정리는 읽고 싶은 책 한 권 찾기 시작하면 해야 하는 나만의 노동(일)이다.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책 탑 하나를 조심스럽게 무너뜨리면, 바로 뒤에 우뚝 솟은 또 다른 책 탑이 나를 기다린다. 산 넘어 산이 아니라 ‘(내가) 산 책 탑 넘어 산 책 탑이다. 가까스로 원하는 책을 찾으면 다시 책 탑을 만든다. 종종 찾아야 할 책을 끝내 찾지 못하고 책 탑을 다시 만들 때도 있다. 책 찾는 것을 포기하고 분류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아무 책이나 집어서 다시 책 탑을 건설하는 일은 건설적이지 않다.





Scene 2

굴러온 책이 나의 독서 계획에 박힌 책을 뺀다

 


서평을 쓰기 위해 참고해야 할 책은 필요한 내용만 찾아서 읽는다. 그런데 참고 도서의 내용에 문제가 많으면 책을 바라보는 내 눈빛이 달라진다. 책이 얼마나 못 썼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끝까지 읽는다. 참고 도서가 생각보다 재미있을 때가 있다. 그러면 오늘 읽기로 정한 책은 제쳐두고 참고 도서를 읽는다굴러온 책이 나의 독서 계획에 박힌 책을 뺀다책 정리가 끝나면 오전에 서평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써야 할 글은 못 쓰고 참고 도서를 절반까지 읽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책이 흥미진진했다. 재미있게 읽은 참고 도서를 소개한 서평 한 편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해야 할 일이 한 개 더 생겼다.





Scene 3

다시 한번 도서관과 친해지길 바라
















* 금정연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북트리거, 2024)

 

* 우치다 다쓰루, 박동섭 옮김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처음 듣는 이야기(유유, 2024)




4월 말부터 동네 도서관에 자주 들랑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에 나온 금정연의 일기와 장서로 가득한 도서관의 부활을 바라는 우치다 다쓰루(内田樹)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같이 읽기 시작한 이후로 확실히 스스로 다짐했다. 책을 덜 사고, 되도록 책을 빌려서 읽자고. 금정연과 우치다 다쓰루. 이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양의 책을 가지고 있는 활자 중독자금정연은 일기를 쓸 때 다른 작가가 쓴 일기의 문장을 따서 자신의 삶에 포갠다. 그는 다른 작가의 일기를 보면서 일상을 반추하고, 일이 진척 없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남의 일기를 보면서 위로받기도 한다나는 금정연의 일기를 보면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었다. 일기에 적힌 두 개의 문장은 책만 보면 신용카드와 함께 말랑말랑해지는 내 마음을 때리는 죽비가 되었다.



, 음악, 영화에 빠지는 것은 쇼핑 중독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금정연, 1119일 일기 중에서, 19)


 책장에 새 책을 둘 자리가 없어서 한참 노려보다가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맨날 책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면서 또 책을 사는 걸까? 마조히스트인가?

 

(금정연, 68일 일기 중에서, 93~94)



죽비가 된 문장에 두 번이나 맞고 나서야 책을 많이 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도서관과 친하게 지내야겠다. 





Scene 4

나도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과학책방 담다<담담 책방>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주] 고로 실체가 없는 책방이다<담담> 책방지기가 감사하게도 나를 일일 책방지기로 소개했다. 책방에 일하지 않는, 책방에 나타나지 않는, 얼굴 없는 책방지기가 되었다내가 만든 담다가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하러 <담담>에 갔다. 오랜만에 <담담>에서 책을 읽으면서(오전에 쓰기로 한 글은 언제 쓰려고‥…?) 반 정도 남은 휴일을 알차게 보내려고 했다.
















* 박민경 《사람이 사는 미술관: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그래도봄, 2023)




손님이 아무도 없는 한적한 책방을 바라면서 왔는데, 책방 안에 이미 여러 사람이 모여서 앉아 있었다. 오늘이 <담담>에서 하는 인권 공부 독서 모임날이었다. 작년 10월 중순, 쉬는 날에 <담담>에 갔다가 인권 독서 모임에 합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사람이 사는 미술관이라는 책이었다. ‘읽지 않은 책과 관련된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말을 많이 안 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해 보지만, 어느새 내 입과 머리는 말하느라 바빠진다.

















* 한우리 번역, 기획 《페미니즘 선언: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 (현실문화, 2016)




이번 달 인권 독서 모임의 선정 도서는 반 페미니즘노선을 취한 젊은 저자의 책이었다. 독서 모임 참석자 모두 나이가 중년이다. 이분들은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독서 모임 선정 도서 저자의 견해를 요목조목 비판했다. 물론 지금까지 페미니즘 운동을 지켜보면서 느낀 아쉬운 점과 한계도 밝혔다. 인권 독서 모임 정규 회원인 중년 남성은 문제의 독서 모임 선정 도서와 가장 유명한 페미니즘 선언문들을 모아놓은 페미니즘 선언을 같이 가지고 왔다. 그분은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몇 권 봐도 페미니즘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나도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Scene 5

노동 절망 일기 끝

 


독서 모임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두 개의 슬픈 소식이 찾아왔다. 하나는 폴 오스터(Paul Auster)가 별세했다는 소식, 또 하나는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라는 상사의 문자 메시지. 오늘 하루에 글 한 편 다 쓰지 못하고, 책 한 권 다 읽지 못한 것보다 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노동 절망 일기 끝. 





[] 가상의 책방 <과학책방 담다>가 궁금한 분은 이 글(링크)을 참조하면 된다.

https://blog.aladin.co.kr/haesung/15476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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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5-0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출근하라는 상사의 메시지...정말 안 반갑네요. 저도 요새 저의 책 구입에 대해 반성하고 자아비판을 하는 중입니다만, 또 사고 싶어요. 흑.

stella.K 2024-05-0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의 선비적 경향이 물씬나는 페이퍼로구만. 나는 책 사는데 내 돈 쓴적이 별로 없어. 사도 주로 중고책 위주로 사고. 우리가 책 사는 사치 정도는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술 먹고 노름질 하는 것도 아닌데 지극히 건전하잖아. 모은 책중엔 훗날 귀한 자료가 될 수도 있잖아. ㅋㅋ

공쟝쟝 2024-05-0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일기 하루종일 일기 쓰기 위해 직장을 때려 치운. 맞습니다. 자랑.) 일기 중독자는 금정연의 일기를 반가워하며 담습니다. 주섬주섬ㅋㅋㅋ
 




지난주 토요일 오후에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가 처음으로 서점 <일글책>에서 진행되었다. ‘두루미의 의미는 예전에 쓴 <어두운 방, 밝은 방>이라는 제목의 갤러리 감상문에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술 책 읽기 모임 두루미첫 번째 선정 도서]

* 가와우치 아리오, 김영현 옮김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다다서재, 2023)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경계선을 한 걸음씩 뛰어넘으면,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획득한다. 그 결과 세계를 두루두루 보는따뜻한 시선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가와우치 아리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중에서, 205)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 전시회 및 갤러리 감상문을 모아놓은 카테고리 이름과 예술 책 읽기 모임을 두루미로 정했다.아름다울 미()’를 뜻하는 영어 ‘me’,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시회에 가서 예술작품을 두루두루 보는’ 개인적 경험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 두루미두루미 첫 번째 모임 선정 도서는 당연히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은 정오에 마무리된다. ‘두루미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다. 빡빡한 일정이다. 오전 독서 모임이 끝나면 쉬거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도 긴 시간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사이에 나는 책방 <환상 문학>에 갔다. <환상 문학>은 알라딘 서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책방에 미리 주문한 책과 알라딘으로 주문한 책들을 받으러 두 곳을 들렀다.


두루미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책을 다시 훑어보지도 않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모임을 잘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다. 난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주말이면 책방에 가서 (책을 사고), 책방지기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는 일상이 올해로 13년째로 접어들었다. 처음은 2011년 서울 종로에 진행된 펭귄 클래식고전 읽기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때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의 인연이 이어져서 달의 궁전(달궁)’이라는 모임에 합류했다. 대구 독서 모임은 우주지감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으로 같은 해에 시작했다. 지금은 <일글책>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으며 달궁은 간간이 참여하고 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짧게, 때로는 길게 만났다. 모임에 꾸준히 나오다가 갑자기 불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모임 진행 분위기에 불만을 느꼈다. 이들은 독서 모임이 자신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했고, 끝내 불참을 결정했다. 그런 분들을 봤기에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임 시작 전에 미리 말했다.

 


 “오늘 모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각자 하고 싶은 말하세요. 모임 다 끝나고 나서야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마세요.”

 


자유로운 대화 진행에 걸림돌이 될 만한 모임 발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독서 모임은 편안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한다.


모임장은 공연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연출가의 역할과 비슷하다내가 언급한 연출가는 공연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우의 연기와 무대 장치 등에 꼼꼼히 보고 개입하는그런 흔한 연출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예전에 희곡 전문 가게 <인스크립트>에 갔을 때책방지기이자 배우 권주영 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연출가의 역할은 뭐에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봤다주영 님은 배우들이 편하게(능동적으로연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신이 지향하는 연출이라고 대답했다짧게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대화였지만배우에게 제대로 배우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독서 모임을 진행하게 되면 저런 연출가처럼 되어야겠다고생각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마카롱 에디션]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두루미모임 진행은 처음이 아니다. 생애 첫 독서 모임 진행은 펭귄 클래식모임에서 시작했다. 그때 읽은 책이 니체(Nietzsche)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그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만든 모임 발제를 입술과 심장이 떨면서 말했던 순간은 잊지 못한다.
















* 웬다 트레바탄, 박한선 옮김 여성의 진화: ,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




2019725<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모임 선정 도서는 여성의 진화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내가 추천한 과학책이었다. 모임 장소는 침산동에서 고성동으로 이전한 지 얼마 안 된 <서재를 탐하다>였다. 7월 모임을 위해 발제 세 개를 만들었지만, 그때도 발제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한 분들에게 당부했다. 완독에 쫓기지 말고, 다 못 읽더라도 각자의 관심사와 관련 있는 내용은 꼭 읽어오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하기. 5년이 지났는데도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방식이 한결같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 숀 캐럴, 김영태 옮김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공간, 시간, 운동(바다출판사, 2024)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숀 캐럴(Sean M. Carroll)은 자신의 책 공간, 시간, 운동 서문에 자신의 꿈을 밝혔다.

 


 나의 꿈은 사람들 대부분이 현대물리학에 관해 열정적으로 자기 의견을 알리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직장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친구들과 선술집에 몰려가 무엇이 최적의 암흑물질 후보인지, 또는 무엇이 최상의 양자역학 해석인지를 놓고 떠들고 놉니다.

 

(서문, 9)



독서 모임에 늘 환영받지 못한 책과 주제가 있다. 과학, 정치, 종교다. 이런 주제는 어렵고, 지루하고,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기 부담스럽게 만든다. 독서 모임 선정 도서 대부분은 소설, 에세이, 또는 읽기 편안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다그리고 독서 모임을 위한 책을 추천할 때 신간보다는 이미 많이 알려진 구간 도서를 선호한다. 올해 나의 꿈은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을 읽고, 자기 의견을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것이다내가 좋다고 생각한 책들은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에 관한 것들이다.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의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좋은 책을 보는 나의 안목을 증명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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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03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을 저도 몇개 하고 있는데, 저도 같은 고민입니다. 편안하게 의견을 말하게 하자니 다른 회원이 불편해 하고...^^ 시간에 쫒기고...

두루미 이름 찾아보러 갑니다.

cyrus 2024-02-09 10:09   좋아요 0 | URL
<소모임>이라는 어플에 <일상 속의 글과 책>이라는 모임명이 있어요. 제가 그곳에 소속되어 있어요. <일상 속의 글과 책>이 책방 ‘일글책’의 뜻이고 이곳이 <두루미> 모임 장소에요. <소모임>에 모임 공지를 올리면 편해요. ^^

blanca 2024-02-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수 쳐드리고 싶네요. cyrus님이라면 충분히 꿈을 이루실 수 있을 것 같아요.

cyrus 2024-02-09 10:11   좋아요 0 | URL
이제 슬슬 시작해 보려고요. 모임 진행을 하게 되면 책을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읽고, 리뷰도 잘 써지겠죠? 제가 모임을 만든거니까 모임 후기도 꼭 써야겠어요. ^^;;

꼬마요정 2024-02-0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멋져요!! 꼭 꿈을 이루실 거예요!!
‘편안하게 대화하기 어려운 주제‘... 일단 먼저 이해를 해야 입이라도 떼볼텐데 말이죠.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힘을 내야겠습니다!!

cyrus 2024-02-09 10:14   좋아요 1 | URL
저는 생각이 많으면 실행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독서 모임 선정 도서 한 권을 다 읽은 뒤에 모임 공지글을 바로 올리려고 해요. 저를 제외한 두 명만 모였으면 좋겠어요. ^^

서니데이 2024-02-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주말에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나요. 독서모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편한 주제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책과 주제를 선택해서 같이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기회가 없다면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거나 선택하지 않을 내용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잘읽었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4-02-09 10:18   좋아요 1 | URL
네, 평일 저녁에도 독서 모임에 참석하거나 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칼퇴근 시간이 생기는 날이 잘 없는 편이라서 쉽지 않아요. 6~7시에 마치면 좋은데, 잔업을 하면 8~9시에 마치곤 해요. 그래서 주말 모임을 선호해요. ^^
 




10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 도동서원에서 머무른 시간은 잔잔하게 푸른 음악이었다. 이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나타냄말 ‘pastorale’. 목가(牧歌)풍으로.














도동서원에 가면 400살 된 큰 어르신,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 어르신은 지팡이 여러 개를 짚은 채 서 있다. 그래도 어르신은 건장하다. 10월 막바지에 흐르는 바람은 노랗게 물든 가을 색인데도 어르신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푸르른 여름 색이었다.[]

 




















* 김춘수 김춘수 시 전집(현대문학, 2004)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어르신은 이름이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르신을 은행나무라고 부른다. 어르신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명찰에 보호수(保護樹)’라고 적혀 있다. 시인 김춘수어떤 존재를 향해 이름을 부르면 그것이 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은행나무와 보호수는 어르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이름이 아니다. 어르신은 400여년 동안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 왔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어르신은 보호받는나무가 아니다. 살아있는 다른 존재를 아낌없이 보호하는 나무다. 어르신은 수백 년 동안 자신의 넓은 품에 돋아난 풀과 이끼를 안으면서 살아왔다. 사람들은 어르신의 몸에 자라는 풀과 이끼가 외관상 보기 좋지 않은 잡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잡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다. 어르신을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르신의 양분을 얻어먹기만 하는 잡풀 때문에 어르신의 건강 상태를 우려한다.















* 더글라스 탈라미, 김숲 옮김 참나무라는 우주(도서출판 가지, 2023)





어르신은 쐐기돌 나무. 쐐기돌(keystone)이란 돌을 쌓아 올릴 때, 돌과 돌의 틈에 박아 돌리는 돌이다. 곤충학자가 자신이 심은 참나무의 일생을 관찰하면서 기록한 참나무라는 우주라는 책에 쐐기돌 식물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쐐기돌 식물, 쐐기돌 나무는 새와 곤충과 다른 식물을 먹여 살린다. 쐐기돌은 다른 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쐐기돌 나무의 삶은 다른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쐐기돌 나무에 곤충이 모이면 새는 그곳에 둥지를 틀어 곤충을 먹으면서 생활한다.


어르신을 가까이 보려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울타리를 함부로 넘을 수 없다. 어르신 옆에 어떤 곤충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눈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 눈을 어르신 쪽으로 바싹 다가가면 그의 품 안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 존 마우체리, 장호연 옮김 클래식의 발견: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에포크, 2021)




어르신을 제대로 바라보면 그가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어르신의 노래는 음악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인간의 발명품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자연의 힘을 활용한예술로 본다. 인간은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는 존재일 뿐이다. 자연의 소리를 내기 위해 자연을 재료 삼아 악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음악은 자연이 준 재료.


어르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은 목가(木歌) 교향곡이다. 교향곡(Symphony)의 어원은 동시에 울리는 음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어르신의 노래에 새와 곤충, 잡풀이 내는 소리가 섞여 있다. 자연이 만드는 조화로운 노래는 세월의 바람을 오랫동안 맞아도 여전히 싱싱하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얽힌 관계를 너그러이 안아주고그들의 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르신이 사랑스럽다.





[] 1980년에 발표된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의 노래 제목이 <바람은 가을 색>(秋色)이다. 이 노래와 마츠다 세이코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珊瑚礁) 주책잡기(酒冊雜記)의 밤플레이리스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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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1-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에서 나무가 크게 보이는 것 같았는데, 수령이 오래된 나무였네요. 날씨가 참 좋아보입니다.
올해 평년보다 10월이 조금 더 따뜻한 편이라고 해요. 11월도 며칠 더 따뜻할 것 같고요.
생각났을 때,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사진 잘 봤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3-11-02 21:42   좋아요 1 | URL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여름도 아닌, 가을도 아닌, 아주 적당한 날씨였어요. 봄인 줄 알았어요.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 회원들과 함께 도동서원에 갔어요. 곧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10월 마지막 주말여행의 여운이 더욱 진하게 느껴져요.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말과 사물을 다 읽지 않아도 읽은 척하는 방법이 있다. 말과 사물1장만 읽으면 된다. 1장 제목은 시녀들이다
















[카페 <스몰 토크> 푸코 읽기 모임 선정 도서]

미셸 푸코이규현 옮김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시녀들은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의 그림 제목이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Felipe IV)의 궁정 화가로 죽을 때까지 활동하면서 왕족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시녀들』은 벨라스케스의 화실을 방문한 펠리페 4세 부부의 딸 마르가리타(Margarita) 공주와 시녀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 왼쪽에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가 있고, 벨라스케스는 캔버스 앞에 서 있다. 그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일까, 아니면 시녀들일까? 화실에 공주만 있는 게 아니다. 펠리페 4세 부부도 화실에 있다. 왕이 어디 있냐고? 그림 중앙에 있다. 조그맣게 그려진 두 사람이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다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왕과 왕비는 왜 벨라스케스의 화실에 찾아온 것일까? 마르가리타 공주를 보러 오기 위해서? 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한 점의 초상화와 비슷하다. 왕과 왕비가 초상화 모델일 수 있다벨라스케스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본인의 모습을 그렸다. 관람자는 그림 속 화가의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모델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이때 화가는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관람자가 된다. 우리는 그림 바깥의 모델인 셈이다. 푸코는 시녀들에서 관람자와 모델 역할이 한없이 뒤바뀌는 기능을 수행하는 시선을 주목한다.

 

지금까지는 말과 사물을 읽은 척하고 싶을 때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했다. 내가 언급한 것은 1장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니다. 시녀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내용만 언급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말과 사물을 완독해서 어떤 책인지 설명할 수 있는 독자는 책에 미친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독자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으로 어려운 책을 읽는 사람이다. 말과 사물을 읽었지만, 책의 핵심보다는 곁다리에 더 관심이 많은 독자도 있다. 이런 사람의 머릿속에 진짜 광기가 흐른다. 여기서 말하는 곁다리책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 즉 푸코가 인용한 인명이나 문헌 또는 역주를 뜻한다. 하지만 진짜 광기의 독자는 곁다리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현재 말과 사물13장까지 읽었다. 1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장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본문 읽기가 지루할수록 곁다리에 눈길이 간다. 곁다리가 재미있다



* 30 [옮긴이 주4]

 




 화가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표현하는 것은 벨라스케스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나는 역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벨라스케스 이전에 활동한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정면으로 바라보는 본인 모습을 그려 넣었다.















* 파스칼 보나푸, 이세진 옮김 그림속으로 들어간 화가들: 위대한 화가들의 은밀한 숨바꼭질(미술문화, 2023)


[책 소개] 서평 <못 찾겠다, 꾀꼬리> https://blog.aladin.co.kr/haesung/14923064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Düre) 등이 큰 그림 속 작은 자화상을 시도했다. 그림속으로 들어간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 속에 숨은 화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모아놓은 책이다. 당연히 이 책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도 나온다.




* 33





 늙은 파체로가 세비야의 화실에서 작업 중인 제자에게 했다는 조언, 이미지는 액자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이지만 뒤집어 적용하는 이상한 방식.


[옮긴이 주] Pachero. 황금 세기(에스파냐의 16세기) 초엽에 세비야에서 활동한 화가. 벨라스케스는 한때 그의 제자였다.



역자는 말과 사물프랑스어 원서와 영역본을 참고하면서 번역했다. 원서가 인쇄되는 과정에 생긴 오탈자일까, 아니면 푸코 또는 역자의 실수일까? 벨라스케스 스승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 [절판] 자닌 바티클, 김희균 옮김 벨라스케스: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시공사, 1999)


[책 소개] 푸코의 말과 사물1장을 일부 발췌한 내용이 이 책의 부록에 실려 있다.




파체로(Pachero)가 아니라 파체코. 프란시스코 파체코(Francisco Pacheco, 1564~1644)내가 가지고 있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벨라스케스에 프란체스코 파체코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되어 있다. 세비야에 거주한 파체코는 문화적 소양을 갖춘 화가였다. 그의 집에 세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벨라스케스는 6년간 파체코의 도제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의 제자가 된다. 파체코는 제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자신의 책 <회화예술>에 기록했다. 세비야의 장인(匠人) 파체코는 훗날 벨라스케스의 장인(丈人)이 된다. 


말과 사물다른 장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렇지만, 내게는) 흥미로운 곁다리여러 개 발견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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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18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다리 취향을 광기로 승화시켜주시는 cyrus님 좋아요!!
두 가지 광인 중 저 역시 후자^^;;;

파체로, 파체코.....어떻게 이런 세세한 실수까지 찾아내시는지, 비법 전수는 도둑 심보이니, 저도 한 번 자습이라도 해봐야겠어요. 정말 넘 신기하답니다.

cyrus 2023-10-25 06:41   좋아요 0 | URL
파체코의 말, ““이미지는 액자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가 인상 깊어서 파체코가 누군지 알아보다가 이름이 잘못 적힌 사실을 확인했어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니고요, 호기심이 오류와 오자를 찾게 만드는 지름길이었어요. ^^

호시우행 2023-10-18 0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곁다리에 심취하는 성향은 바로 지적호기심 탓 아닐까요? 공감합니다.

cyrus 2023-10-25 06: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봅니다. ^^

레삭매냐 2023-10-18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진촤 ...

그리고 보니 그 화가가 등장하는
소설도 있었나 어쨌나 싶네요.

cyrus 2023-10-25 06:44   좋아요 0 | URL
국내 작가가 쓴 소설 중에 박민규의 <죽은 여왕을 위한 파반느>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이에요. 제목은 라벨의 곡 제목으로도 유명한데,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어요. ^^
 



황금연휴 첫째 날(927일 수요일). 홍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했다. 숙소 역시 열차 예매표와 같이 화요일에 예약했다. 다행히 수요일 1인실 방 하나 있어서 예약할 수 있었다. 단점이라면 게스트하우스가 식당과 술집들이 모인 골목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내 방 바로 옆에 밤새도록 네온사인 빛을 뿜어대는 술집이 있었다. 젊음에 취해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내 방의 작은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어쩔 수 없었다. 홍대 게스트하우스가 수요일 저녁에 가야 할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책이 가득한 가방을 방에 내려놓고, 망원동에 있는 칵테일 바로 향했다.







내가 간 곳은 술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 바>(Chaeg Bar). <책 바>는 연희동에 처음 터를 잡은 칵테일 바였고, 올해 망원동으로 옮겼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예약해야 한다. 나는 혼자서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사적인 좌석 1을 예약했다. 이용 시간은 2시간이다. 저녁 7~9시 이용 좌석과 930~1130분 이용 좌석이 있다. 나는 930~1130분 이용 좌석을 선택했다.










사적인 좌석3면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면에 보이는 벽에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그림 <빛의 제국>이 나를 환대했다. 책상 오른쪽에 로트레크(Lautrec)의 그림 <침대>가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책 바>에서만 마실 수 있는 각종 술과 칵테일 이름은 술을 사랑했던 작가와 유명 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내 혀를 첫 번째로 적신 술은 달과 6펜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을 모델로 한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의 소설 제목이다. 술이 된 달과 6펜스순한 맛이 나는 압생트. 도수는 6%.





두 번째로 맛본 술은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박상영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도수 9%의 테킬라 칵테일이다.







세 번째 술은 녹색 빛이 나는 압생트. 앞에 마신 술들은 혀의 취기를 돋기 위한 애피타이저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입에 술 내음이 날 정도로 압생트를 찬양했다. 도수가 엄청 강한 술로 유명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압생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압생트의 주재료인 향쑥의 독성 성분이다







<책 바>가 제조한 압생트는 도수 18%로 꽤 높지만, 몸과 정신 건강에 해로운 옛날 압생트를 똑같이 재현한 술은 아니다. 압생트는 원래 향쑥 특유의 쓴맛이 강하게 난다. 압생트의 독한 맛에 혀가 화들짝 놀라면 달래주기 위해 안주로 닭튀김과 방울토마토를 주문했다. 하지만 안주가 없어도 되었다. 내가 마신 압생트는 혀를 안심시키는 보드라운 허브 맛이 났다. <책 바> 압생트가 너무 좋아서 앞에 마신 술맛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안주 없이 압생트 한 잔 더 마시고 싶었다. 아쉽게도 시곗바늘이 11시 10분을 가리키면서 내게 술을 음미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넌지시 알려줬다















* 그렉 클라크, 몬티 보챔프 공저, 이재욱 옮김 알코올과 작가들: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음주 열전(을유문화사, 2020)

[책 소개] 책은 포도주, 맥주, 위스키, 압생트 등 여러 종류의 술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술꾼 작가들의 술과 관련된 어록과 일화.

 



19세기 중반 유럽에 압생트가 유행했는데 이 술을 즐겨 마시면 환각을 일으키고, 신경이 손상되는 부작용이 일어났다. 작가와 예술가들은 창작을 위해 압생트의 환각 효과를 이용했다. 그들은 압생트의 녹색 빛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압생트를 음미하는 순간을 ‘녹색 빛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애주가인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압생트를 ‘녹색 빛 요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로트레크는 파리의 카바레 물랭루주를 놀이터로 삼아서 활동했다. 로트레크의 친구들은 유흥가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그녀들은 무희, 술집 종업원, 매춘부가 되어 근근이 살아갔다. 술 역시 로트레크의 친한 친구다. 로트레크는 어린 시절에 두 다리를 크게 다쳐 장애인이 되었다. 그의 몸집은 상당히 작았고, 지팡이 없으면 걸을 수 없었다. 지팡이의 속은 비어 있는데, 그 안에 압생트가 담긴 유리병이 있었다고 한다.

















* [절판]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백선희 옮김 알코올과 예술가(마음산책, 2002)

[책 소개] 이 책의 예술가는 작가, 화가, 음악가를 아우른다. 당연히 알코올과 작가들에 소개된 술꾼 작가들이 알코올과 예술가에도 나온다.




과연 술에 일절 입에 담지 않은 작가와 예술가가 있을까? 분명히 있기 한데, 금주가로 유명한 작가와 예술가가 단 한 명도 생각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하면 잘 모르겠다. 술을 즐겨 마시고, 술을 사랑한 작가와 예술가는 수두룩하다. 알코올과 예술가서문의 첫 문장을 빌리자면, 문학과 예술은 술에 절여 있다. 술꾼 작가들은 술에 취할 때마다 하얀 종이 위에 글 한 편을 토해냈다.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자신이 일할 때 필요한 도구는 , 종이, 음식, 담배 그리고 약간의 위스키라고 말했다. 포크 너, 뭘 좀 아네







나는 일할 때 책, 노트북, 음식 그리고 술이 있으면 된다. 한 주의 마지막 평일인 금요일이 지나가고, 이어서 조용히 찾아오는 토요일 새벽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가 좋다. 새벽에 재미있는 일을 하기 전에 야식으로 막걸리를 반주 삼아 돼지국밥을 먹는다. 글 한 편 다 쓰고 나면 피곤함을 쫓아내기 위해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와서 컨디션이 좋으면 책을 더 읽는다. 나는 주책잡기(酒冊雜記)’의 달인이다. 술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잡문(雜文)을 쓰는 밤은 달짝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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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are 2023-10-08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밤이네요~~!! 집에서라도 비슷하게 분위기라도 내보고싶어집니다^^!

cyrus 2023-10-09 05:2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집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가 계셔서 시도를 못 하고 있어요.. ^^;;

stella.K 2023-10-08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네. 난 서울 살면서 들어는 보았으나 실제로 체험할 생각은 못해봤는데. 근데 얼마전 박광식 KBS 의학전문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건강을 생각하면 술은 한 잔도 안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 그러니 무알콜로! 근데 책 바 자체는 너무 좋은데 사람들 이 워낙에 책을 안 읽으니 유지가 가능할지 우려되네.

cyrus 2023-10-09 05:27   좋아요 1 | URL
그날 제가 가보니 빈자리가 없었어요. <책 바>도 책을 팔긴 한데, 아무래도 여긴 책 판매보다는 술 판매량이 많을 거예요. 8년 정도 영업했으니, 단골이 많은가 봐요. ^^

얄라알라 2023-10-0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렸던.글입니다요...와.별세계군요.. 책 bar는.처음.들어봤어요. 주책잡기 cyrus님.께서 취중 음주중 글을.쓰셨다면.또 얼마나.더.bar와 어울릴까.상상도 해봅니다 ㅎ 좌석예약에 3잔이면, 가격은 좀 쎌 거 같아요?^^

cyrus 2023-10-09 05:33   좋아요 1 | URL
1인 ‘사적인 공간’ 예약비는 3만 원이고, 이용하고 나면 다시 돌려줘요. 술값이 많이 나가요. 도수 높은 술 석 잔을 계속 마시면서 정신은 훅 가진 않았는데, 카드값이 훅 나갔죠....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10-09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책 바 한 번 가보고 싶네요.
테이블에 술이 있는데 칵테일을 직접 말아야 하는건 아니겠죠?
압생트 6%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테킬라도 한 번 마셔보고 싶어요^^

cyrus 2023-10-09 05:32   좋아요 1 | URL
책상 위에 있는 술병은 빈 병이에요. <책 바> 바텐더들이 만들어 줍니다. 참고로 <책 바> 바텐더들은 젊고 잘생긴 남자입니다. 제가 예약했던 날 <책 바>에 여자 손님들이 많았어요. ^^

새파랑 2023-10-0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기 책 바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ㅋ 분위기 좋네요~!! 술 마시면서 취하면 책을 못읽을수도 있겠네요 ^^

cyrus 2023-10-10 06:12   좋아요 1 | URL
정말 마셔보고 싶은 술이 아주 많아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메뉴판을 보면서 다음에 뭘 마실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