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노예들 바벨의 도서관 9
잭 런던 지음, 김훈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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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은 잔인한 게임 

 

작년 연말 무렵에 <쏘우 3D>가 개봉되었다. 직쏘가 제시한 끔찍한 살육 게임이 또 한 번 시작된 것이다. 영화 전작과 2편을 무척 재미있게 봤었지만, 그 다음 시리즈들은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않았다기보다는 일부러 안 봤다.  시리즈가 계속 나오면 나올수록 선혈이 낭자한 장면들만 많아질뿐 전작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살인 장면들이 난무하는 영상을 계속 본다는 것도 고역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일곱번째 쏘우 시리즈가 3D라니 , , ,  안 그래도 잔인하고 충격적인 살육 장면들이 더 실감나게 그려질 것이다. 식후경으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봐서는 정말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쏘우 3D>가 국내에 개봉된지 얼마 안 되, 우리나라에도 정말 영화 속 직쏘의 게임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 캣쏘우(Catsaw) ' 라는 네티즌이 아기고양이를 처참히 난자한 잔인한 사진과 영화 <쏘우>를 모방한 문제의 글을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림으로써 많은 네티즌들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캣쏘우가 올린 사진 속 새끼고양이는 턱이 잘려나가 출혈이 심한 상태였다.  캣쏘우는 고양이를 소홀히 대하는 자들을 위한 일종의 경고임을 암시하면서 죽어가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욕설과 모독감을 주지 않으면서 설득만 시키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영화 <쏘우>의 직쏘처럼 네티즌들에게 새끼고양이의 목숨을 걸고 살인 게임을 제안한 것이다.   

유명 공포영화를 패러디한것치고는 너무 잔인하다.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에게 잔인한 행위를 한 것도 문제지만 단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의 목숨을 내걸고 게임을 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도가 지나친 엄연한 동물학대이다.  현재까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상에서는 캣쏘우는 게임을 빙자한 5번째 범행을 예고하였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캣쏘우로 의심되는 용의자들을 압축하였지만 지금도 캣쏘우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경찰이 지목하는 용의자 후보 중에는 동물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티즌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 속 직쏘 게임은 이제 끝났지만, 캣쏘우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건이 미궁으로 가면 갈수록 캣쏘우는 어둠의 활개를 치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들은 충격과 분노 속에서 끝나지 않은 잔인한 게임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죄가 없는 또 다른 네티즌들을 향한 근거 없는 의혹과 마녀사냥도 생겨나고 있다.   

   

 

  세기말의 직쏘, 마이더스의 노예들 (M. of. M.) 

재미있게도, 잭 런던의 단편소설 <마이더스의 노예들>에서도 영화 속 직쏘의 살인 게임과 유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황야의 이리><강철 군화>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작가이지만 이 단편소설은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작품이다. 

80, 90년대 운동권 시기 때 잭 런던의 <강철 군화>가 많이 읽혔던 독서의 유행에서 알 수 있듯이 잭 런던은 19세기 말에 불어왔던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이 소설에도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이 물씬 풍기고 있다. 이 단편소설에서는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부르주아의 자본주의 사회에 혐오하는 사회단체로 빙자한 비밀집단이 등장하는데 자신들 스스로 '마이더스의 노예들 ( M. of. M .) ' 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기업을 운영하는 부르주아들에게 접근하여 돈을 달라고 협박을 하는데 만약에 기간 내에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살해한다.  
  

우리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임금 노예들이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 거대한 기업연합체들(거기서 선생은 선생의 지분을 갖고 있지요)은 그들의 세계에서 우리가 마땅히 차지해야 할 자리, 곧 우리의 지식인들이 우리가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 자리에 올라서는 걸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자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민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느 천민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가장 뛰어난 뇌를 갖고 있고, 또 어리석은 도덕관념이나 사회적 윤리관 따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자본가 계급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있습니다. 자본가 계급은 싸우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결국은 싸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략) 

선생이 우리의 요구 조건을 수락하고 제 시간 내에 적절한 행동을 하신다면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 잭 런던 <마이더스의 노예들>, p 113~115 -

부르주아의 자본에 착취당하는 ' 임금 노예' 로 자처하는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얼핏 사회주의 사상상을 지향하는 사회단체를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기존 사회체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아나키즘(anarchism)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향하고자하는 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분명 잘못되었다.  자신의 표적인 귀족과 친분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죄가 없는 선량한 사람들을 하나씩 살해하기 때문이다.  살해하고 난 뒤도 희생자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아무 일 없다듯이 계속 협박 편지를 보낸다. 연쇄살인을 자행하는 악의 무리처럼 귀족들을 대상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살해 협박을 하는 이들의 어두운 본성은 결말에 이를수록 치밀하면서도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마이더스의 노예들의 표적이 된 귀족은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들의 손아귀에 한 번 들어가는 이상 절대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직쏘와 캣쏘우의 정체가 탄로나지 않는 이상 이들이 만든 살인 게임이 이어지듯이 이 소설 역시 마이더스의 노예들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채 끝이 나고 만다. 
 

  

 

  M. of. M.의 살인 게임

하지만, 잔인한 범죄들을 보게 되면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단순히 돈을 노리는 악의 집단도 아니며 부르주아와 기존 사회체제를 부정하는 새롭게 떠오르는 새로운 개혁사상을 지향하는 집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저지른 첫번째 희생자는 귀족과 전혀 관련 없는 이름 모를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범죄 수법은 선량한 시민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는 범죄 집단의 수법과 비슷하다.  

10월 1일 전까지 광고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만일 그렇지 하지 않을 때는 우리가 진지한 자세로 이런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바로 그 날짜에 이스트 39번가에서 한 사람을 죽일 겁니다. 노동자인 사람을.  선생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는 사람을,  

 - p 114 - 

 
어떻게 보면 직쏘와 캣쏘우의 협박문을 보는 느낌을 준다. 아무런 죄도 없고, 자신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시민과 고양이들을 대상으로 살인 게임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잘못한 사회적 선택이 빚어낸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힘에는 힘으로 맞섭니다. 선생은 선생의 임금 노예들을 짓밟음으로써 살아남았습니다.  오로지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을 겁니다. 우리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믿습니다.  선생의 지시를 받은 전투 지휘관들은 수십 차례에 걸친 격렬한 파업 사태의 과정에서 선생의 피고용인들을 개처럼 쏘아 죽였습니다. 그런 수단에 의지해서 선생은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결과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생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일어납니다. 

현재와 같은 사회 환경 아래 선생과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살아남게 될까?

 - p 130 -

 

마이더스의 노예들이 진정 말하고 싶었고, 지향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다윈의 진화론일지도 모르겠다. 약한 자들은 멸종하게 되고, 오직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사상에 열렬히 신봉하고 있으면 자신이 믿고 있는 사상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살인 게임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마지막에 마이더스의 노예들이 제기하고 있는 의문은 세기말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을 겨냥한 질문인 셈이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선사해줌으로써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어디선가 또 다른 표적을 찾아서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마이더스의 노예들보다 더 무서운 것 

이 소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적인 비밀집단의 활동이라는 무시무시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기말에 유행하던 고딕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긴장감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지지했던 사회주의와 다위니즘을 강력하게 옹호하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잭 런던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단순히 세기말이 낳은 무시무시한 비밀집단을 고발하려고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마이더스의 노예의 존재감에서 비롯되어 대중들을 자극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마이더스의 노예들의 계속된 협박편지와 연쇄 살인에 표적 대상인 귀족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는 시민의 입장으로 대변되는 화자의 묘사는 무서운 연쇄사건 때문에 민심이 혼란해진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 노약자 심지어 경찰관까지 마이더스의 노예들에게 희생되자, 사회는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평화를 지키는 이들이 이렇게 대로에서 무자비한 총탄의 희생자들이 되는 걸 보면 우리 사회는 참으로 불안한 사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p 119 -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경찰은 마이더스의 노예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수 천 명의 범죄자들을 감시하였고 조사를 벌였지만, 이들에 대한 작은 단서조차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불안이 감도는 사회에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마저도 실종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의심을 받고 마녀사냥에 희생되는 것이다. 결국, 잭 런던은 이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혹세무민하는 세력과 사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대중들의 불안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다.    

직쏘, 캣쏘우 그리고 마이더스의 노예들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즐거운 게임인마냥 자신들의 행위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만든 게임 앞에서 감당하지 못한채 ' Game Over ' 가 되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대중들을 즐겁게 보고 있을 것이다.    

잭 런던의 소설이 쓰여진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M. of. M.의 유령은 그렇게 떠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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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1-13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15일날 모임 어떻게 오냐? 오게되면 전철역에서 만나서

같이 가자고 ㅋ

cyrus 2011-01-13 13:50   좋아요 0 | URL
이번에는 무궁화호 타고 가야겠어요. 아마도 10시 출발하는 무궁화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오후 1시 40분쯤될거 같아요. 만날 수 있으면
점심 같이 먹고 출판사로 가요.

다이조부 2011-01-1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낮에 방문할데가 있어서

점심은 힘들겠다. ㅋ 역에서 만나자고 친구 ^^

그리고~ 난 너처럼 20대가 아니잖아 ㅎㅎㅎ

미팅은 고딩 이나 잘 봐줘야 대학생이나 하는거지 ㅋㅋ 내 나이 되면

이제 슬슬 선 보라고 압박이다 캬캬캬

cyrus 2011-01-13 21:01   좋아요 0 | URL
ㅎㅎ 성공하시길 바라요 ^^

2011-01-13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3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1-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 유명한 그 책이군여~
한번 볼까 싶다가도...고딕 소설은 좀~~~
님의 리뷰를 보니 '혹~' 호기심은 생기네요~^^

cyrus 2011-01-13 21:05   좋아요 0 | URL
보르헤스가 선정한 단편소설들을 수록한 문학전집이에요.
어떻게 보면 세계의 단편소설 전집이라고 보면 될거 같아요.
현재 10권까지 나왔는데 총 29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네요.
그런데 생각보다 인지도가 낮아서 도서관에서 이 전집 한권 구하는데도
어렵네요^^;;

다이조부 2011-01-15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네의 닉네임 의 동명의 영화가 올해 개봉하나봐! ^^


조금 있다 얼굴 보겟네 ㅋㅋㅋㅋ

기차 타고 올라오느라고 피곤하겠네 ㅎㅎ

cyrus 2011-01-15 09:17   좋아요 0 | URL
정말요!! ^^;; 나오면 꼭 봐야겠네요ㅎㅎ
저 이제 출발하려구요. 나중에 연락할께요.

starover 2011-01-2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잭 런던의 소설이라서 더 관심이 갑니다.

cyrus 2011-01-20 23:38   좋아요 0 | URL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들도 좋답니다.
국내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 문학가들의 단편소설들을
만날 볼 수 있습니다.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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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저분한 이야기  

나는 집에서 목욕을 하게 되면, 꼭 때를 밀어야 한다. 온 몸에 미지근한 물을 시원하게 뒤집어 씌우고나서 파란 때밀이 수건으로 살짝 문질러주면, 피부에는 누리끼리한(?) 색깔의 때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나온다.    

한 주에 한 번씩 꼭 정기적으로 샤워를 하게 되는데, 만날 씻고나서 때를 밀게 되면  내 몸에는 더럽고도 요상한 정체의 성분 덩어리가 나오게 된다.  지금은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때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한 편이었다. 목욕할 때를 밀지 않고 달랑 샤워만 해도 제대로 씻지 않은 느낌을 받곤 하였다. 

화장실에서 X 싸고 나서, 화장지를 닦지 않은 느낌과 비슷하다고 해야될까 , , ,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항상 나를 씻겨줄 때 때를 밀곤 했었는데, 때 미는 수준이 장난 아니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때를 민다기보다는 까칠까칠한 사포로 피부를 문지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가 붉어질 정도로 때를 미는 것은 기본이며  한 번 목욕하는데 때를 두 번, 심하면 세 번까지 민 적도 있었다.  그렇게 씻다보면 목욕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항상 때 미는 순간이 오면 제일 싫었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 아닐지라도 사랑스러운 아들의 피부를 따가울 정도로 그렇게 빡빡 밀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유전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현상이다. 나도 모르게 목욕을 하게 되면 때를 제대로 밀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피부가 붉어질 정도로 때를 밀게 되면 오히려 피부에 무리한 손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물 절약도 할 겸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게 때를 밀고 나온다. 그러다보니, 씻는 시간도 단축되었다.   

그런데, 목욕을 다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 曰 , , ,  

  " 목욕하러 드간지 30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씻고 나온기가? "   

  

  

  #2 심각한 이야기   

요즘 구제역 때문에 전국은 난리법석이다.  

때늦은 정부의 철저한 검역과 백신 접종 조치로는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된 구제역을 잡을 수가 없었다. 구제역으로 인해서 감염되거나 죽어가는 가축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감염된 가축들을 처분을 할 수 있는 안락사에 필요한 약물까지도 동이 나고 말았다. 

이렇다보니, 가축들을 살처분하기 위해서 전국 곳곳에는 생매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제가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일환으로 유학자들을 생매장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돼지와 소들도 구덩이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생매장당한 가축(소, 돼지 등 기타)의 수가 무려 47만 마리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하루에 4만 5천 마리 정도의 가축들이 구덩이 속으로 파묻히는 꼴이다.  

아무리 병든 가축이라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를 강제적으로 생매장시켜서 죽이는 것은 동물 학대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 구제역 ' 생매장으로 인해서 발생될 환경오염 문제이다.  

수많은 가축들을 생매장시키기 위해서 전국 곳곳의 포크레인들은 온갖 땅을 마구 파헤치게 될 것이다.  설령, 그 땅이 사람이 인접하는 주거환경과 떨어져 있다고 해도 땅에 묻어버린 가축들 때문에 땅이 가지고 있는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영양성분이 저하될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가축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비닐이 찢겨 침출수가 새어나와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   

문제의 땅에서 흘러나온 지하수가 인근 지역의 도랑으로 흘러가게 되면 또 다른 환경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 구제역 ' 생매장 후유증 때문에 일상 생활하는데 많은 지장을 겪고 있다.  생매장한 땅에서는 불쾌한 냄새들이 코를 찌르고 있고, 땅에서 흘러나오는 시뻘건 침출수가 눈에 아른거려 집에서 사용하는 수돗물마저 기피하고 있다. 

  

  

  #3  흙 이야기   

데이비드 몽고메리가 쓴 책의 제목대로 흙은 ' 지구의 살갗 ' 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흙은 암석이나 동식물의 유해가 오랜 기간동안 침식과 풍화를 거쳐 생성되는 퇴적되는 물질이다.  지구의 살갗 안에는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한 미생물과 동식물이 살고 있으며 인간은 살갗 위에서 문명을 건설함으로써 농업를 통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얻을 수 있는 풍요로운 생활을 누려왔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구의 수는 급증하였고 인간은 탐욕스러워졌다.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서 인간은 자연을 마구 파괴하기에 이른다. 발전과 풍요를 위한 인간의 생산활동은 지구뿐만 아니라 문명을 스스로 파괴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였다.   

데이비드 몽고메리<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에는 문명에 의해 잔인하게 짓밝고 파헤친 땅의 잔혹사가 축약되어 있다.  역사 속에서 강대국으로서 위엄을 떨쳤던 고대 그리스, 로마, 중국 그리고 한순간에 역사 속의 먼지가 되어버린 마야 문명과 이스터 섬까지 ' 흙으로 흥하고, 흙으로 망한 '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인간의 피부에는 여러 겹의 조직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각질이 되어 자연스럽게 떨어져나가고, 그 떨어져나간 자리에는 새 피부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렇듯, 지구의 흙도 인간의 피부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지표면 아래에는 겉흙, 그 밑에는 밑흙, 또 그 밑에는 바위가 풍화되어 생긴 기반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 흙 ' 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위가 겉흙과 밑흙이다. 경작을 하기 위해서는 겉흙을 파내야하는데 이 기본적인 농업 방식은 동, 서양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으며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인류는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의 좋은 토양을 찾기 위해서 숲을 마구 베었으며 땅을 파헤쳤다.  결국, 이런 방식은 땅의 침식을 더욱 가속화시켰으며 침식되어서 비탈진 경사가 된 땅에는 홍수와 산사태가 쉽게 발생하기도 하였다.  

  

 

  #4  아스완하이댐과 4대강 사업 이야기   

하지만, 인간은 자연이 주는 따끔한 교훈을 무시하였다. 땅을 개발할 수 있는 연장통과 능력으로 보다 나은 생활 환경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였다. 이집트 대통령인 나세르와 소련의 흐루시초프 총리가 나일 강에 건설한 아스완하이댐은 흙으로 흥하려다가 결국 흙으로 망해버린 대표적인 사례이다.     

나세르는 아스완하이댐 건설에 러시아의 기술 원조까지 동원하여 나일 강의 범람을 막고 관개농업을 꾀하여 자신의 정치적 실세까지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부터 나일 강을 관리한 영국의 수문학자들은 댐 건설에 반대했다. 많은 양의 물이 증발하게 되며 나일 강에 있는 흙이 퇴적될거라는 이유였다.   

아스완하이댐 건설 이후 관개농업의 효과를 가져다주었지만 나일 강 바닥 밑에 영영 가라앉아버린 흙의 공급이 부족하여 나일 강의 삼각주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물이 증발하는 곳에는 흙 대신에 소금이 축적되기 시작하였다. 소금의 영향으로 인해서 나일 강 주변의 농경지의 수확량은 이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나일 강 유역의 토양의 질이 떨어지게 되자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 화학비료가 사용되었는데 예전과 같은 수확량으로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고작 얻은 건, 세계에서 화학비료를 많이 쓰는 국가라는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뿐이었다.   

이집트의 아스완하이댐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개발사업과 유사하다. 정부는 홍수 피해와 물 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국가적 개발사업의 이면에는 국가위상 제고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포크레인에 의해서 4대강 유역 주변의 강과 땅을 파헤치는 것은 오히려 홍수와 침식, 수질 악화, 생태계 변화,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혹을 떼려다 또 하나의 혹을 갖다 붙이는 셈이다.  4대강 개발 사업이 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낙동강이다.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강 주변 밭은 침수 피해를 입기도 하였으며 마구 파헤쳐서 그대로 놔둔 준설토로 인해서 수질 오염을 악화시키게 되고 심지어 황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4대강 개발사업에 대한 찬반논란은 이어지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무분별한 토양 파괴는 곧 자연 환경 파괴라는 문명사의 진리는 유효하다는 점이다.   

 

 

  #5  지구의 살갗을 벗겨내고 있는 대한민국 이야기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땅은 마구 파헤치고 있는 마당에 구제역의 영향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또 다시 땅을 파헤치고 있다.  이번에는 살아있는 가축들을 묻어야한다. 구제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는 생매장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흙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흙구덩이에 묻은 수많은 가축들은 죽어서 유해를 남기게 된다. 동물의 유해가 썩어서 질 좋은 흙이 될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금방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세월을 통해서 생기는 자연적 순환 과정이다.   

그리고, 농작물이 자라는데 좋은 영양분이 들어있는 겉흙과 밑흙이 생성되는 것도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겉흙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가축의 분으로 만들어진 거름과 흙을 먹고 자라면서 더 좋은 성분의 흙을 만들어내는 지렁이의 존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흙을 파헤치고 있는 지금, 지렁이들의 개체수도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거기에다가 곧 있을 농사 적정기에 대비하여 거름이 되는 가축들의 분이 필요해야할 시점에서 지금 가축들은 구제역으로 죽어나가고 있고 심지어 살아있는 것들은 생매장당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은 좀 더 깨끗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때를 밀게 되는 것처럼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지나치게 땅을 파헤치고 있다.  무리하게 때를 밀게 되면 피부의 살갗이 손상되듯이 지금 대한민국은 온전한 지구의 살갗을 아무 생각없이 벗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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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1-1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은 글입니다! 추천 꾸욱!

cyrus 2011-01-11 17: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 읽으시면서 속 시원하셨나요? ^^

양철나무꾼 2011-01-11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목욕탕,찜질방 왕 사랑하고요.
때 미는데도 엄청 짐착해요.
남이 밀어주는 건 미덥지도 않을 뿐더러, 탐탁지도 않아요.
어떤 때는 1시간 동안 팔 한쪽 밀고 올 때도 있는걸요~^^

저도 이 책 설렁거리며 읽고 있는데,
와~이런 리뷰라면 말이죠,전 리뷰쓰기를 포기할랍니다~^^

cyrus 2011-01-11 17:05   좋아요 0 | URL
팔 한쪽 미는데 1시간이나,,!!
밀고나면 피부가 따깝지 않던가요? ^^;;
이 책이 역사적 사례가 많다보니 저도 그냥 대충 읽고
대충 쓴건데요. 리뷰라기보다는 페이퍼에 가깝네요^^;;

반딧불이 2011-01-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태리타월 무척 좋아해요.~

땅을 파헤치는 것도 문제지만 시멘트나 콘크리트 등으로 덮어버리는 것도 문제 아닐까요? 몽고메리의 책에는 덮는 문제는 안나오나요?

cyrus 2011-01-11 17:07   좋아요 0 | URL
제 기억으로는 책 속에 소개되는 사례들은 대부분 땅을 무분별하게
파헤쳐서 생겼더라구요. 저도 이 책에 구제역 생매장 같은
유사한 사례가 나올줄 알았는데, 나오지 않더라구요. ^^;;
거의 농업이나 공사와 관련된 사례가 많습니다.

stella.K 2011-01-1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꽤 괜찮은 책인가 봐요. 읽을 걸..ㅠ
시루시님도 때밀이의 과거가 있으시구나.
님의 세대 정도면 그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ㅎㅎ
30분도 너무 길지 않나요? 우린 엄마가 난리나요.
대충 씼고 나올 일이지 뭐 그리 오래하냐고.

근데 #1은 진짜 지저분하다.ㅋㅋ

cyrus 2011-01-11 17:09   좋아요 0 | URL
그냥 재미있게 쓰다보니,, 정말 몇 몇분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게 되었네요..^^;; 로마 문명의 멸망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도 흥미로웠고, 첫 장에 다윈의 지렁이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1-1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 총각,, 아무리 그래두 그렇게 리얼하게 자기 때 얘기를 해여?
으아....... 누리끼리한~에서 넘어올 여자도 안 넘어오게따, 결혼 안 할거예요? 크크.

리뷰는 정말 멋지지만 말이죠. 큭.
하지만 솔직히 흙 이야기에서 웃기가 어렵네요. 그져?
인간은 참 못할 짓 많이 하고 사는 동물인데,
거기에 악덕 인간까지 더해지니 정말 큰일입니다.

cyrus 2011-01-11 17:13   좋아요 0 | URL
죄,, 죄송해요. 다음부턴 이렇게 쓰면 안 되겠군요,,^^;;
제가 언급한 아스완 댐 사례 같은 경우에는 4대강 사업이랑
억지로 끼워 맞춘 감 있지만,, 이거보다 더 안 좋은 사례들도 있답니다.
신항로 개척 이후로 유럽 식민지국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신대륙의 원시적인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농사를 짓게 만든 역사는 씁쓸했습니다. 정말 인간은 못할 짓
많이 했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11-01-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배우지 않고 깨닫지 못하니 참 두려운듯 합니다.
이 책 솔깃해지는데요 ^^

cyrus 2011-01-12 16: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휘모리님^^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책이지만 요즘과 같은 시대에 한 번 꼭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꽃도둑 2011-01-1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센티의 흙이 만들어지기까지 약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정확한지는 자신없지만)지구의 살갗을 벗겨내는 MB정부의 단세포적인 발상에서 오는 무식함의 극치는 언젠가는 돌려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이러스님 글 읽으면서 흙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1-14 20:1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꽃도둑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소개되고 있어요.
겉흙과 밑흙을 마구 파헤치면 이 흙들이 생기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맥거핀 2011-01-16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 <시사인>을 보니, 백신 접종이라는 방법을 놔두고 가축을 도살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위치를 고수하여, 수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것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더불어, 공장형 축산의 문제도 지적하구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죄없는 동물들만 계속 죽어나가는군요. 참 아득한 일입니다. 이번 정부는 툭하면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데, 이번 정부 덕분에 '향후 100년'을 잃게 생겼어요. 참..이를 어쩌나..

cyrus 2011-01-16 23: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단지 백신이 모자라서 생매장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었군요.-_-
 
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그림은 내겐 즐거운 절망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1909~1992) -

    

 

 

  베이컨의 음울한 자화상   

영국의 추상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평생동안 그린 그림들 중에는 정상적인 형체라고 보기 어려운 얼굴들이 담긴 초상화와 자화상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이 그림이 그의 자화상인지 분명한 출처를 알 수 없다. 베이컨은 평생 몇 점의 자화상과 자화상을 그리기 위한 많은 습작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그림이 베이컨의 자화상이 확실하다면 그의 실제모습과 어느 정도 유사하게 그린 자화상일수도 있겠다. 불규칙한 형태 속에서도 그의 실제 얼굴의 실루엣이 남아 있으니까.     

일단 그의 그림들은 섬뜩하고 참혹하다. 베이컨 자신 얼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캔버스에 담아낸 모든 인간의 얼굴들은 눈, 코, 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갰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왜 이런 끔찍하고 흉칙한 형상의 그림들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추측들이 낳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 프랜시스 베이컨 ' 이라는 대중들의 머리속에 쉽게 각인되게 하는 이름을 세계 미술사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화가에 대한 독특한 생의 이력일 것이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름이 같아서 착각할 수 있겠지만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 유명한 철학자의 후손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성애자 화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어린시절의 베이컨은 누이의 속옷을 몰래 훔쳐 입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크게 혼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베이컨에게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은 부정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알콜 중독자에다가 틈만 나면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그늘을 베이컨은 영영 벗어나지 못했다.   

훗날, 자신도 알콜 중독에 빠질 정도로 매일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폭음을 할 정도로 유별난 ' 괴짜 ' 였으며 유년시절의 우울한 기억들은 화가가 되어 ' 베이컨 표' 그로테스크적 아름다움을 창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회화의 괴물 ' 이 사랑했던 남자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 다이어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 1967년 


 

 


<사랑의 악마> (원제: Love is Devil, 1998년) 

프랜시스 베이컨과 조지 다이어와의 동성애적 연애를 토대로 만든 영화. 

이 영화의 조지 다이어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분하였다.

 

그는 평생 4명의 남자들과 동성애적 관계를 맺었는데, 그 중에 조지 다이어와의 관계는 영화로 만들 정도로 유명한 미술사적 스캔들로 남게 되었다. 조지 다이어는 좀도둑이었지만 베이컨에게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였으며 자신의 피폐하고 암울한 삶을 지탱해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해주는 뮤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나머지 3명의 동성애자 애인들처럼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고 불행한 결말으로 끝나게 된다. 조지 다이어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정작, 베이컨은 자신의 절대적인 존재가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여 자신의 곁을 떠나야했는지 알지 못했다.  1992년,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둘 때까지  ' 회화의 괴물 ' 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그리움을 자신의 캔버스에 구현한 조지 다이어를 보면서 만족해야만 했다.

 

  

 

  ' 우리 사회의 괴물' , 아이코     

 

 


프랜시스 베이컨 <그림>, 1946년

 

프랜시스 베이컨이 다룬 그림의 주제는 ' 뭉개진 고깃덩어리' 같은 얼굴의 형상 이외에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 진짜 ' 고깃덩어리를 그려넣기도 하였다. 그에게 고깃덩어리는 미술적인 영감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육식의 즐거움을 만족할 수 있는 ' 쾌락 ' 이었다.   

그래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 고깃덩어리 ' 그림들을 보게 되면 그의 미술에 대한 호불호가 쉽게 갈라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베이컨 특유의 그로테스크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수억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명화를 ' 끔직하면서도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불쾌한 그림 '  을 치부하고 만다.  

이런 대중들의 평가는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를 처음 읽게 된 독자의 반응과 평가에서도 볼 수 있다.  

작년에 군 복무할 때 처음 읽고난 뒤에 올해 들어서 기리노 나쓰오의 악명 높은 소설과 재회하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아이코의 살인 과정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 주인공들 중에서 최악의 인물일 것이다.   

내가 비위가 강해서 그런지, 아니면 베이컨의 그림을 선호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년만에 다시 읽게 되니 아이코의 광기어린 아우라는 여전하였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명성을 알게 되어 처음 이 작품을 집어든 독자들에게는 읽는 내내 차례차례 살인을 자행하는 아이코의 모습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힘겹게 읽고 난 독자들에게 또 다시 읽어라고 권하면 또 읽을 수 있는 ' 강심장 '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리노 나쓰오 골수팬이 아닌 이상 이 책을 두 번 읽는 독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의 ' 괴물 ' 같은 그림에는 화가가 경험한 어두웠던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듯이, 그녀가 일삼는 살인, 거짓말 그리고 절도 뒤에는 ' 괴물 ' 이 되어야하는 남모를 고통스러운 과거의 흔적이 있다.   

유년시절의 베이컨에게 친아버지가 가한 잔인한 폭력은 평생 지울수가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된 것처럼 아이코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핍박과 정신적 모욕을 받으면서 자라야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녀촌에서 몸을 팔아야했다. 아이코는 부모가 주는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하는 일반적인 어린이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코에게는 모성애를 느끼고 싶은, 따뜻한 사랑의 감정에 목말라 있었다. ' 사회의 괴물 ' 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자신을 낳아준 ' 마마 ' 라고 부르는 엄마였다.

결국, 진정한 인간다운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불신은 깊어져만 갔고, 낯선 남자와의 섹스가 유일한 사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붉은 고깃덩어리의 맛과 형태에 지나치게 탐닉했던 것처럼 아이코에게도 사랑이란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엑스터시였다.

아이코와 아담의 ' 특선 로스구이 섹스' 는 아이코의 광적인 성적 집착을 볼 수 있는것뿐만 아니라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문장으로 재현할 정도로 소설 속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두 형체>, 1953년  

 

아이코는 재미있어져서 아담의 대머리 위 고깃덩어리를 얹었다.

 " 봐, 어울려. 당신은 짐승이니까. "

아담은 고기에서 흐르는 피가 미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내버려둔 채 웃었다.  
(중략)

아담이 고깃덩어리를 안고서 맹렬하게 달라붙었다.  
(중략)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고깃덩어리가 끼어 있다.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고깃덩어리가 찌부러지거나 비틀려서 지방과 피가 흘러나와 배가 질척거렸다. 


 - <아임 소리 마마> 기리노 나쓰오, 황금가지, p 83~84 -



 ' 섹스와 고깃덩어리 '  

동성 간의 섹스를 좋아할 정도로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으며 세상의 모든 형체를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정신세계와 일맥상통하다.  베이컨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 즐거운 절망 ' 이라고 표현했듯이 아이코에게 살인 역시 아이코만의 즐거운 절망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재미있게도 ' 사랑 ' 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삶의 환경 때문에 스스로 '괴물' 이 되어야만 했다.  

한 남자는 미술사에 기억될 ' 회화의 괴물 ' , 또 한 여자는 독자들에게 기억될 ' 사회의 괴물 ' 로. . .  

 

   

  

 

  ' 봐, 어울려. 당신은 괴물이니까. '   

 

 


<두 개의 고깃덩어리를 들고 있는 F. 베이컨> 존 데킨의 사진, 1953년
  

시대의 ' 괴물 ' 로 살아야했던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이코는 결국에는 그토록 자신들이 찾고자 했던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다.  베이컨은 조지 다이어를 포함한 자신의 동성 애인을 자살로 죽는 장면을 봐야만했었으며 아이코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만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독단적이며서도 기형적인 사랑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섹스를 통한 육체적인 쾌락에 지나치게 탐하는 베이컨의 사랑은 조지 다이어에게는 심적으로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이코도 사랑 없는 섹스를 통해서 쾌락을 느끼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면서 살인의 쾌락에도 헤어나지 못하고 만다.  자신의 친모마저 못 알아볼 정도로 아이코는 이미 섹스와 붉은 피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만약에 아이코가 그림 심리 테스트를 하게 된다면 그녀는 '사람의 얼굴' 또는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분명, 베이컨의 초상화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된 얼굴을 그렸을 것이다.  초상화나 자화상은 그림으로 그려지는 대상의 내면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베이컨과 아이코가 그린 얼굴, 즉 세상에는 평생 고치기 힘든, 단호하고 철저하게 세상을 암울하게 보는 그들만의 냉소적인 시선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프랜시스 베이컨와 아이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일반 대중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 괴물 ' 이라고 불러도 좋을 최악의 인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가 이들을 ' 괴물 ' 로 변하게 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조지 다이어의 자살은 베이컨이 죽인거나 다름없다. 자신의 비뚤어진 사랑에 대해서 베이컨은 죽을 때까지 반성과 죄책감이 들었는지는 알 길은 없지만, 아이코는 사랑하는 마마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통해서 늦게나마 ' 섹스를 좋아하는 살인 괴물 ' 에서 ' 진실한 인간 ' 이 되었다. 

아이코는 자신의 ' 괴물 ' 스러운 죄의 행위에 대해서 마마에게 사과를 하였는데, 정작 정신적 약자였던 아이코를 ' 괴물 ' 로 만들어버려 평생 괴롭혔던 사회는 그녀에게 따뜻한 사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못할 망정 아이코에게 ' 괴물 ' 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우리야말로 정신적 약자를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닐까?  

과연, 지금 이 세상에는 아이코가 되고 싶어했던 ' 진실한 인간 ' 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캔버스에서 진짜 ' 괴물 ' 이 되어버린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금 어디선가 자신의 고깃덩어리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비웃으면서 조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 1971년
 

 ' 이게 당신들의 얼굴이야. 봐, 어울려, 당신들은 괴물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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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10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임 소리 마마'에서 이런 멋진 리뷰라니요~
근데 말이죠, 전 기리노 나쓰오를 읽어낼 비위는 아닌가 봐요.

이 밤, 좀 춥고 썰렁한가 봐요.
님 계신 곳은 따뜻하겠죠?^^

cyrus 2011-01-10 15:34   좋아요 0 | URL
집 안이라서 따뜻해요.^^;; 이번 소설을 통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 소설은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닌거 같아요..^^;;

굿바이 2011-01-1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공포가 떠오르네요. 아마 그 공포는 자화상의 모습이 낯익어서 느끼는 공포였을 겁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1-10 15:38   좋아요 0 | URL
베이컨의 자화상에서 뿜어져나오는 그로테스크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 상태를 정확히 그려냈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그의 흉측한
그림들에 열광을 하는가봅니다. 알고보니, 이 화가의 그림들이
나름 수억가치의 경매가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다더군요,,^^;;

마녀고양이 2011-01-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이컨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묘하게 공감이 가네요.
많이 공감이 가요. 인간의 뒤틀어진 면과 방금 히어나우님의 페이퍼와 겹쳐서.

기리노 나쓰코의 아웃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그런데 아임쏘리마마가 이런 쪽 이었군요. 머랄까, 이런 책들은
인간의 악의 근원까지 쫒아가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요. 나름의 탐미적 부분이 있죠.

작가 미상인 프랑스 소설 'O의 이야기'를 우연히 접했을 때
야한 것도 그렇지만, 상식이라 배운 것을 몽땅 부정하려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도 마찬가지 맥락이죠. 나이 든다는 것은
당연하다 여겼던 사실을 하나씩 부셔버리는데 있나 봐요....

cyrus 2011-01-10 15:42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에는 좀 그런 작품인거 같습니다.^^;;
19금 딱지를 붙여져야할 정도로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거든요.
하지만, 마고님 말씀하시는대로 이 소설은 인간의 악의 근원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코뿐만 아니라
아이코 주위의 사람들까지도요.

starover 2011-01-1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림이 좀 끔찍하네요.

cyrus 2011-01-16 19:43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드물긴 하죠.
그림이 워낙 끔찍하고 무섭다보니, 가끔 베이컨의 그림을
악의 상징으로 왜곡되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몇 편인지 모르겠지만,(확실한 건 그 때 조커로 분한 배우가
잭 니콜슨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배트맨>에서 조커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제 글에서 소개된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최근에 도서관에 들리게 되면 유독 신간도서들이 꽂혀 있는 서가 쪽에 자주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지금까지 신간평가단원분들이 소개하신 따끈따끈한 신간도서들 몇 권이 있어서  

반갑기도 하면서 저절로 읽게 되더라구요.  이게 신간도서평가단이 되면서 생기게 된   

아주 좋은 버릇(?)인 거 같습니다. ^^ 

  

 

 

    

 

 

 

 

  

 

   며칠 전에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 이 책을 득템(?)하여 읽고 있습니다.  

   흙에 대한 문명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난 달 신간도서였던 쥘 미슐레의 <바다>보다  내용이 흥미진진하고  

   유익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느낀 것이 그동안 살면서 너무 흙을 외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읽어보세요 ^^ 

  

 

 

 #1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 강준만 / 개마고원

 

 

 

 

 

    

 

  

대한민국 최대의 사회적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취직과 실업에 관한 것일겁니다.  

한 때 유시민과 같은 독설가(?)와 독설적인 다작으로 악명 놓았던 강준만 씨의 신간이라서  

소개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 같은 경우에도 이제 취업을 걱정해야할 나이라서  

' 취직 ' 이라는 두 글자의 단어에 더욱 민감하고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이런게 일종의 조건반사라고 해야 되나요?  ^^;;  

사족이지만, 제가 이 책이 알라딘 신간도서에 등장하자마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퇴짜 맞았습니다. -_-;;    알고보니, 도서관 신간도서 정기 구입 때 이미 반영되었다군요.  

 

  

 #2  반자본 발전사전 / 볼프강 작스 / 아카이브

    

 

 

 

 

 

   

 

 이 책 알고보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스페인, 아랍에서도 번역되었다네요.  

 책 속에 초판과 개정판 서문도 있던데, 개정판이 나올 정도라면 많이 읽혀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전, 환경, 시장, 평등 등 총 19개 항목으로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 다르게 '  바라보고 있습니다. 

 

   

 #3  하리하라의 몸 이야기 / 이은희 / 해나무

   

 

 

 

 

 

 

   

 

 [인문/사회] 신간평가단 사이에서 요즘 회자가 되는 것이 아무래도 지금까지 한 권도  

 과학 도서가 선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일겁니다.  

 이번에도 다른 분들 신간도서 페이퍼를 읽어봤는데, ' 뇌과학 ' 분야의 신간도서가  

 많이 소개된거 같더라구요.   

 제가 선정한 과학도서는 ' 하리하라 ' 라는 닉네임으로 과학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의 책입니다.   이 분이 쓴 과학도서들은 쉬우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이번 저자의 신간은 몸과 질병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이 선정 안 되어도 좋으니,  

 제발~~~~~~~~    이번 달에는 과학도서 한 권이라도 선정되었으면 좋겠네요. ㅠ_ㅠ

 

  

 #4 화폐인문학 : 괴테에서 데리다까지 / 이마무라 하토시 / 자음과 모음

 

 

 

 

 

 

  

 

 제목과 부제를 보자마자 바로 꽂혔습니다.   

 화폐에 대한 인문학에 대한 책일 것이며 부제에는 괴테와 데리다만 언급되었는데도  

 책이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제가 찾은 서지정보에 의하면  

 루이 알튀세르를 비롯한 프랑스 포스트모던 사상을 일본에 소개한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 연구가인 이마무라 히토시의 <화폐란 무엇인가>의  

 완역본이라고 하네요.   인간의 존재에 과연 화폐란 무엇일까요? 

 괴테와 앙드레 지드 등과 작가의 소설들부터 장 자크 루소, 자크 데리다 등의  

 유명한 사상가들까지 다각도로 화폐의 인문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5 레즈 / 황광우 / 실천문학사

 

 

 

 

 

 

   

 

 요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에 대해 부쩍 관심이 늘게 되어서  

 때마침 몇년 전에 출간되었던 <레즈를 위하여> 개정판이 나왔길래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2부에는 마르크스와 엥겖스의 <공산당 선언>을 번역한 내용이고,  

 3부에는 <공산당 선언>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시대에 걸맞는 <공산당 선언>의 해석과  

 진보 및 노동운동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알 수 있을거 같습니다.  

 

 

 

 

 > 기타 도서

 

    

 

 

 

 

 

 

   제 생각이지만 이번 신간도서 페이퍼 중에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책이 될거 같습니다.  

   한 달 전에 대한민국 사상의 거목이셨던 분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이 분의 사상에 대해서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의 사상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빠르면 며칠 뒤에 이 책을 읽게 될 거 같네요. ^^;; 

   조국의 <진보집권플랜> 리뷰처럼 ' 선 독서 선 리뷰 ' 가 되네요.  

   그래도 이 책이 선정된다고 해도 아쉬울거 전혀 없습니다. 

                                         

 

    

 

 

 

 

 

 

 

  

 1) 마키아벨리의 네얼굴 / 퀀틴 스키너 / 한겨레출판사

 강정인 교수가 번역한 <군주론>을 읽어봤는데,  사실 전체 텍스트를 읽어봐도  

 좀 어렵더라구요 , , , ^^;;        역자가 까치에서 나온 <군주론>을 번역한 강정인 교수입니다.  

 분량이 그리 두껍지 않은, 한겨레출판사에서 나온 문고 시리즈 중의 한 권이라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2) 씨앗의 자연사 / 조나단 실버타운 / 양문   

 이번 8기 [인문/사회] 신간평가 도서 선정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역사 에 대한 책 역시 선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9년 뉴사이언티스트 최고의 과학책으로 선정된 책입니다.  

 ' 씨앗 ' 이라는 생물학적 개념과 ' 자연사 ' 라는 역사의 조합.  

 어떻게 보면 과학과 역사라는 장르를 아우르고 있는 책입니다.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흙> 처럼 씨앗을 주제로 한 문명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3) 프로이트의 환자들 / 김서영 / 프로네서스  

 프로이트 전집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 , ,  

 제가 프로이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터라  

 과연 이 책이 프로이트 사상의 정수를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특히 저 ' 한 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 라는 문구가 영 믿음스럽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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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1-08 00:55   좋아요 0 | URL


강준만은 예전같은 전투적인(?) 분위기는 많이 사그라 들었는데 말이지~ ㅋ

리영희평전 을 쓴 저자의 글이 난 이상하게 안 읽혀서 이 책은 패스 ^^

우선 관심저자들이 공동집필한 리영희프리즘 먼저 읽을 계획이야~

근데 벌써 취직 걱정이야? ㅎㅎㅎ

cyrus 2011-01-08 13:10   좋아요 0 | URL
저도 <리영희 프리즘> 그 책도 찜해두고 있었어요.
그리고 벌써 취직 걱정이라뇨^^;; ㅎㅎ
제 나이도 이제 20대 중반 코 앞에 왔어요ㅋㅋ


마녀고양이 2011-01-08 11:22   좋아요 0 | URL
영혼이라도팔아취직하고싶다 에서 우선 한숨 푹푹.........
정말 미치겠네요, 우리 현실이.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정신분석 사례이기 때문에, 프로이트에 대한 지식이 조금은 있어야 해요. 정신분석 다른 책과는 좀 달라서 샀어요... 정신분석은 이론이 워낙 어려워서. 흔히 떠들듯 단순히 욕동, 성욕 같은걸로 이해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거죠.

cyrus 2011-01-08 13:1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헌책방에서 열린책들에서 나온 <정신분석 강의> 두 권이랑
<한 권으로 읽는 프로이트>라는 책을 구입했는데
내용이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

양철나무꾼 2011-01-08 14:43   좋아요 0 | URL
읽은 책 한권, 읽고 있는 책 한권, 가지고 있는 책 두어권이예요.
도서관 열심히 다니시고,적극 이용하는 님이 부러워요.

근데, 님도 두루두루 참 폭 넓으세요~^^


cyrus 2011-01-09 12:02   좋아요 0 | URL
책을 많이 사지 못해서 아무래도 도서관에 자주 이용하게 되는거 같습니다.
그 곳 열람실에서도 공부도 해야되니까요. ^^;;

비로그인 2011-01-08 22:50   좋아요 0 | URL
도서관. 공강시간, 24시간 열람실에서 공부는 안하고 책 읽으며 밤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대학 졸업하고 또 들어간 학교의 열람실에서는 나이 먹은줄도 모르고 밤샜더니 꽤 힘들더라고요.

음.. 책도 책이고, 공부도 공부지만 잘 챙겨 드시고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

cyrus 2011-01-09 12:05   좋아요 0 | URL
요즘 하도 식욕이 많아져서 걱정입니다. 이제 곧 새벽 아르바이트 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복학하기 전까지는 여유롭게 자기계발(?)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

잘잘라 2011-01-09 13:19   좋아요 0 | URL
2008년, 2009년엔 용인 구성도서관 다녔어요.
매달 희망도서 5권씩 신청했는데, 거의 선정이 되서 도서관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2010년엔 울산 북구 농소3동 도서관에 다녔어요.
여기도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는 있어요. 신청 권수 제한도 없어요.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지요. 신나게 신청했어요. 한 두 달 사이에 스무 권 이상. 1년 동안 한 권도 선정되지 않았어요.ㅎㅎ

2011-01-09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1-09 20:01   좋아요 0 | URL
부러워요. 대구 같은 경우에는 도서관마다 다른데,, 거의 다
신청 권수 제한에다가 특정 출판사 신청 제한도 있고,,,^^;;
어쨌든 희망도서 신청하는 것도 복불복인거 같아요 ㅎㅎ
정말 재수가 없으면 이미 도서관에서 정기구입에 반영되었다고
퇴짜 맞거든요.-_-;;

그리고, 지워진거에 대해서 죄송하실거 없어요^^
포핀스님 덕분에 저 역시 댓글까지도 삭제되는 점을 알게 되었네요.



꽃도둑 2011-01-10 10:42   좋아요 0 | URL
도서관 가는 일 있으면 [흙] 찾아봐야지 했는데...까먹고 있었어요. 좋게 읽으셨다니 관심 급증입니다...^^
이번 선정 도서는 사이러스님 예상대로 리영희 평전?..뭐 아무렴 어떨까요?...
근데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강준만의 책은 제목에서 벌써 숨막힙니다. ㅜ.ㅜ

cyrus 2011-01-10 15:31   좋아요 0 | URL
네, 책 제목이 참,,,^^;; 모든 구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겠죠.
<흙>이란 책의 내용은 분류로는 흙의 문명사이면서도 흙에 대한 과학적인
내용에다가 정치적인 사례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좋은 책인거 같습니다.

암향부동 2011-01-12 11:26   좋아요 0 | URL
리스트 잘 봤습니다. 이번에도 대세는 정해진 것 같지만 신간평가단에 선정되는 책은 대세와 어긋나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래도 좋은 책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 그리고 과학 도서 추천은 거의 반 포기 상태입니다.ㅜㅜ 게다가 12월 달에 출판된 책 중에서는 자연과학 책 보다는 인문/사회과학 책이 좋은 것이 더 많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 달에 자연과학 책이 선정되면 기회비용 생각할 때 화날 듯 하네요ㅎㅎ

cyrus 2011-01-12 16:18   좋아요 0 | URL
저도 과학 신간도서를 훑어보면서 읽어볼만한 책이 많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이번에도 좋은 책이 선정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기담문학 고딕총서 9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진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토요일 밤의 공포  

13년 전이다.  토요일만 되면 항상 즐거웠다.  지긋지긋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일요일까지 실컷 놀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토요일이 오기를 간절히 바랬던 이유는 늦은 밤까지 TV를 실컷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은 어린 나에게 밤 12시까지 TV 보는 것을 금했지만 유독 토요일만은 눈 감아 주었다.   늦게까지 TV 보다가 내일 일요일 같은 날에 늦잠을 자도 상관 없는 것도 있었지만 항상 밤 10시가 되면 우리 가족이 꼭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S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토요 미스테리 극장> 이었다.   

그 당시만해도 S 방송사는 서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지역방송이었지만 대구에도 지역방송이 생기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S 방송사의 프로그램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토요일 밤 10시에 무시무시한 제목의(?) 방송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초자연 현상을 겪은 사람들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재연한 프로그램으로써 ' 미스터리 신드롬 ' 을 낳을 정도로 시청률 역시 잘 나온 걸로 기억하고 있다.  ' 미스터리 ' 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시청자들에게 공포영화를 볼 때 느끼는 공포감을 전달해주는 포맷의 재연 프로그램은 아마도 <토요 미스테리 극장> 이 최초일 것이다.  (물론, 그 때도 금요일 밤, M 방송사에서는 하는 <이야기 속으로> 라는 <토요 미스테리 극장> 과 비슷한 포맷의 방송이 있었다.  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S 방송사의 <토요 미스테리 극장>이 앞섰다)   

나는 항상 방송이 시작되는 토요일 밤 10시를 기다렸지만 초등학생에겐 밤 10시는 슬슬 잠이 몰려오는 시간이기도 했다.  방송하기 전 광고 중에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아침 8시였다.  이런 경우 때문에 프로그램을 못 본적이 꽤 많았다.   가끔, 예기치 않은 편성방송 때문에 간혹 밤 11시, 심지어 12시부터 할 때도 있었지만, 졸림을 이겨서라도 꼭  ' 본방 사수 ' 하곤 했다.   

  ' 노약자나 임산부, 심장에 이상이 있으신 분들은 방영을 자제해 줄 것을 권합니다 . '  

이게 정확한 멘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항상 프로그램 시작 전, 그리고 방송 중간중간에 이 유명한 멘트가 나오는 것은 필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제보자의 실제 경험이라고 해도 대부분 경험담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 시시한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밤잠을 설칠 정도로 아주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은 재연 속에 등장하는 귀신의 모습이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 때만해도 적절히 등장하는 TV 속 귀신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간혹 어떤 사연은 TV를 보고 있는 나도 소름을 돋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내용들도 있었다.  

그러나, ' 미스터리 ' 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은 오랫동안 방영이 되지 않기 마련이다. 점점 떨어지고 있는 시청률에 고전을 면치 못하였고, 설상가상으로 프로그램의 유해성에 대한 문제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부각이 되자 토요일 밤만 되면 시청자들에게 간담이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를 선사하던 프로그램은 쥐도 새도 모르게 그렇게 폐지되고 말았다.  

   

 

  

 ' 미스터리 ' 로 살다가 ' 미스터리 ' 로 죽은 작가  

 

 

 ' 앰브로스 비어스 '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작가의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나름 호러영화 매니아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1탄의 흥행에 힘입어 제작된 <황혼에서 새벽까지 3> 에 나오는 극중 인물 에 소설가 앰브로스 비어스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 클루니와 쿠엔틴 타란티노가 출연하는 유명한 1탄과 뒤이어 나온 후속작은 봤지만, 3탄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흥행 영화의 후속작은 항상 전작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2탄 역시 전작이 줬던 공포와 전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저 1탄보다 선혈이 낭자하고 더 잔인한 영상으로만 가득했을 뿐이다. 3편 역시 2탄과 같은 아류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앰브로스 비어스는 1913년에 일어난 멕시코 혁명 때 실종되어 지금까지도 그의 최후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앰브로스 비어스가 나오는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3>가 소설가의 실종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H.P. 러브크래프트와 더불어 공포 문학을 확립한 작가로 재평가되었지만 앰브로스 비어스도 러브크래트프의 삶 못지 않게 지금까지도 그의 생애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것이 없으며 추측과 주변 지인들의 기록에 근거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재미있게도, 이 두 사람에 관한 또 다른 공통점은 자신의 작품들은 생전에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 미스터리 ' 라는 주제로 소설을 쓰면서 먹고 살다가 최후 역시 ' 미스터리 ' 가 된, 아주 보기 드문 삶의 이력을 남긴 작가였던 것이다.  

 

  

  짧은 소설, 긴 여운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 앰브로스 비어스의 소설이 어떤가요? ' 라고 묻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그의 소설을 읽게 되면 <토요 미스터리 극장>을 보는 거 같습니다. " 

앰브로스 비어스가 쓴 총 17편의 단편소설들을 모은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을 읽게 되면 (국내에서 앰브로스 비어스의 소설 선집으로는 이 책이 최초일 것이다) 각 소설들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소설들 중에는 재미있는 것도 있고, 재미없는 것도 있다.  그리고, 13년 전에 했던 <토요 미스터리 극장>을 다시 보게 되면 어설픈 재연 묘사에 재미없어하듯이 요즘 같은 시대에 앰브로스 비어스의 고전적인 고딕소설을 읽게 되면 재미없어 할지도 모른다.

앰브로스 비어스의 단편소설들은 대체로 짧은 분량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화자인 주인공이 독자들에게 자신이 겪은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경험담을 전해주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처럼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괴생명체가 등장하여 독자들을 놀래키는 것은 아니다.  

남북 전쟁이 종전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전쟁의 공포와 살육의 트라우마 그리고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대륙에도 발 딛은 세기말의 공포까지 미국 사회의 정신에 가득한 어두운 면들을 앰브로스 비어스는 날카롭게 포착하여 유감없이 자신의 소설로 재현하였다.  

  


에두아르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1867년

책의 표제작인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은 전쟁터에서 마주하게 되는 죽음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곧 처하게 될 교수형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겹치게 되면서 혼란한 정신 상태를 경험하게 되지만,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이 두렵지 않는, 안락한 분위기의 환각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정치적 배경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했던만큼, 남북 전쟁 때 자행된 학살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일상적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학살당하는 인간의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묘사함으로써 암울한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광경의 공포를 실감나게 전달해주고 있다.    

<개기름>이라는 단편소설에서도 어두운 사회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개를 포획하여 만든 개기름으로 인해서 부의 탐욕에 눈이 먼 어느 부부의 이야기는 흡사 최근에 일어난 일명 ' 쥐 식빵 자작극' 사건을 연상케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르려고 하는 부부의 참혹한 결말은 결국, 자신의 업체의 이득을 위해서 제빵업체가 꾸민 자작극으로 밝혀져 문제의 사건이 일단락된 것처럼 자업자득(自業自得)이었다.  

<믹슨의 걸작>과 <시체를 지키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이토 준지의 일러스트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호러 매니아들에게는 이 두 편의 소설을 아예 호러소설로서 취급을 안해줄 것이다.   

<믹슨의 걸작>은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볼 수 없는 기이한 존재가 등장하여 인간을 위협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요즘 시대에 재미있게 읽히기에는 너무 고전적이다.  <시체를 지키는 사람>은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비어스의 짧은 소설답지 않은 진부한 전개의 시도 때문에 비어스 소설 특유의 공포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였다.   

그만큼, 소설 속 배경이 우리에게는 너무 오래된 구시대적이라서 앰브로스 비어스의 소설들 중에는 호러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사건을 단순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게 하고 있다. 이 여운이라는게 특별히 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공포감에 미치지는 않지만, 한 번 읽으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소설 속 장면과 결과들이 주는 페이소스가 머릿속에 남게 되는 것이다.  

   

 

  고딕소설계의 오 헨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15948 

때마침, 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오게 된 오 헨리의 단편소설 선집과 함께 앰브로스 비어스의 단편소설들을 읽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오 헨리와 앰브로스 비어스는 같은 동시대에 살았던 미국의 단편작가이다.

러브크래프트를 호러소설계의 ' 미친 존재감 ' 이라고 붙여줬으니, 안 그래도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가려져 있는 판에 앰브로스 비어스에게도 별칭을 부여하지 않으면 무척 섭섭해할 것이다.  

사실, 앰브로스 비어스의 소설은 호러소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고딕소설에 잘 어울린다. 오 헨리가 19세기 말 미국 사회의 일상적인 풍경을 단편으로 따뜻하고 정감 있게 표현하였다면, 반대로 앰브로스 비어스는 차가우면서도 어둡게 그려내고 있다.   앰브로스 비어스를 ' 고딕소설계의 오 헨리 ' 라고 불러도 비어스 입장에서도 섭섭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 작은 고추가 더 맵다 ' 라는 말이 있다. 정말 집게손가락만한 풋고추를 먹게 되면 매운 것이 더러 있긴 하다.  앰브로스 비어스의 소설들도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후세의 호러문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몇 편의 소설들 중에도 훌륭한 작품성도 갖추고 있다.   짧은 단편만으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공포의 여운을 주고 있는 그의 소설들을 앰브로스 비어스답게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 작은 고추가 더 무섭다 ' 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이야기 속에는 일상적이면서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낯선 공포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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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앰브로스비어스의 단편을 한번 읽은적 있는데,
정말 독특하고 신랄한 작가였어요. 매력적이었죠. 이 책도 그런가보죠?

토요일마다 하는 미스터리 극장이나, 케이블 방송의 심령, 외계? 이런 미드들
저는 진짜 열광하거든요. 새로 시작한 V도 열심히 보고, 뭐더라,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미래를 본 미드, 제목이 생각 안 나네요.. 그것도 엄청 열심히.. 맨날 노는 티 나네요! ㅎ

cyrus 2011-01-08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귀신, 유령 같은거 잘 안 믿는데,, 재미있어서(?)
본답니다. ^^;; 앰브로스 비어스 같은 경우에는
단편소설들이 드문드문 단편집에 끼여서 소개되어서
아마도 국내에서 작가의 이름을 내건 단편선으로서는 최초일거에요.
몇 몇 이야기들 중에서 좀 시시한 내용도 있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1-0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고딕소설계의 오헨리 라고요?
그럼 마지막 잎새에 비견될만한 건요?
저에게 꼽으라고 한다면 아울크리크 다리 쯤.
근데 이 사람, 넘 들쭉날쭉이예요.
고딕은 아무래도 스티븐 킹을 빼놓을 수 없죠.

cyrus 2011-01-09 12:06   좋아요 0 | URL
이번 표현은 좀 무리수였나요? 제가 봐도 손발이 오글거리네요 ^^;;
저도 그나마 이 작가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아우크리크 다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1-0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불쌍한 막시밀리안 황제...저는 처음에 어떻게 오스트리아 왕족이 멕시코에까지 와서 왕이 되었나 이상하게 생각했지요.역사는 정말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많이 일어나더라구요.

cyrus 2011-01-09 20:04   좋아요 0 | URL
정말 이 왕도 어떻게보면 시대를 잘못 태어난거 같습니다.
복잡한 정치적 투쟁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게 되었으니 말이죠.
배경은 다르지만, 왕이 처형당하기 전의 모습을 그린
마네의 그림이 소설 속 장면과 유사한거 같아서 올려봤습니다.

꽃도둑 2011-02-1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축하드려요. 방금 발표 봤어요.
응모만 했다 하면 덜컥 붙어버리네요.
뭔일이데요?....^^



cyrus 2011-02-11 23:59   좋아요 0 | URL
먼저 축하인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도둑님 댓글 보고나서
이제야 당첨사실 알게 되었어요. 기분 좋지 않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글,, 그렇게 잘 쓴 편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서 기분이 좋네요,,^^;;

2011-02-12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2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E-9 2011-02-1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도 축하드려요.
CYRUS님 댓글 보고 결과를 알았네요.
덕분에 저도 CYRUS님 서재도 알게되었고 겸사겸사네요^ ^
내일 서울 오시죠? 편안하고 무사히 잘 오시길 바라고
독서모임도 잘 하시길 바랍니다.^ ^

cyrus 2011-02-12 00:46   좋아요 0 | URL
빠르시네요. ^^ 헤르메스님도 모임 때 오시면
참 좋은텐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게스트로 참여해주세요,,^^;;
무엇보다도 펭귀맘님께서 더 좋아하실거 같아요. ㅎㅎ

starover 2011-02-1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듯이, 사이러스 님의 리뷰는 종합적인 장르(소설, 영화 등)를 통해 리뷰하는 책의 본질을 밝혀내려고 합니다. 그것을 밝혀내는 곳곳에 사이러스 님의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이러스님이 수상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1-02-13 10:31   좋아요 0 | URL
오~ 그런가요^^ 아무튼 축하 인사 남겨주셔서 고맙구요,,
어제도 독서모임 때 느꼈지만 책을 읽을때도 내용과 작가에 대한
본질만 알려하기보다는 내용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감정 이입하여
체험하는 거,, (말이 좀 어렵게 쓴거 같네요..^^;;)
어쨌든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stella.K 2011-02-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게 그렇게 된 거로군요!
축하해요. 물만두님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지 않으실지.
전 게으르고 수상(따위ㅋ)과 거리가 멀어서 이렇게 아는 분이
수상하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군요.
한턱 쏘세요!!ㅋㅋ

cyrus 2011-02-13 10:33   좋아요 0 | URL
기회만 된다면 저도 알라디너분들 위한 작은 이벤트나마나
기획을 해야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