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 - 저명 신경과 의사가 감각 이상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지음, 양진성 옮김 / 프리렉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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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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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 한세상 산다는 거 생각하기 달렸는데

무얼 그리 안타깝게 고개 숙여 앉아 있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 송골매 1집 수록곡 <세상만사>(1979) 중에서 -

 


이러구러: 정해진 방법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일이 진행되는 모양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아무리 백번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실제로 눈으로 보면서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할 때 눈으로 보는 시각 정보에 얼마나 깊이 의존하는지를 시사한다. 오감 중에 살아가는 데 절대로 없으면 안 되는 감각 하나만 떠올려보자. 아마도 대다수 사람은 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봐도 정확하게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눈으로 보는 시각 이미지가 실제 사물의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착시라고 한다. 1976년에 NASA가 공개한 화성 표면 사진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사진에 찍힌 화성 표면에 얼굴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화성의 얼굴이 인간의 모습과 흡사한 외계 생명체의 흔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고화질 사진으로 촬영한 화성 표면에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의 정체는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 또는 언덕이다. 화성에 얼굴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제대로 속았다. 그것도 자신들의 눈과 뇌에 속은 것이다. 그들은 왜 화성의 암석 덩어리에서 얼굴 형상이 보였던 것일까? 이러한 심리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한다. 우리는 모호하거나 불규칙한 형상의 물체를 볼 때마다 자신에게 친숙한 형태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만 기묘한 형상이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레이돌리아가 빚어낸 형상은 허구이며 가짜에 가깝다.

 

눈으로 보는 것이 착각과 오류를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청각이 시각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어 하듯이 듣는 것만 듣고 싶어 한다. 1994년에 발표한 댄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 수록곡 <교실 이데아>에 사탄의 메시지가 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음모론을 믿은 사람들은 <교실 이데아>를 역재생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고 했다. 몰상식한 개신교 인사들은 <교실 이데아>를 만든 서태지가 의도적으로 사탄의 메시지를 심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교실 이데아>는 사탄과 전혀 관련 없는 노래다. <교실 이데아> 음모론은 귀에 익은 발음을 떠올리려는 뇌와 청각 기관이 함께 일으킨 착각의 산물이다.


감각 인식 오류는 세상의 진실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먹어보면서 맛을 느끼고, 어떤 소리를 듣고, 직접 만져보면서 주변 세상을 인식한다. 오감을 총동원하여 느낀 세상을 진짜라고 믿는다. ? 당연히 내가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했고, 먹어봤으니까. 하지만 우린 항상 크고 작은 감각에 속으면서 살아간다.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세상은 정확하지 않다. 개인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런데도 그 경험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뇌는 생소한 경험보다 친숙한 경험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접하는 복잡한 정보를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는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감각의 한계와 특이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신경과 전문의다. 이 책에 소개된 환자들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감각을 가지면서 살아간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희소 질환인 선천성 무통각증을 겪는 사람, 향수 냄새가 지독한 악취로 느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 모든 것이 알록달록한 빛깔로 채워진 왜곡된 형태로 보이는 사람까지. 이들은 모두 이상한 감각이 만들어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과장되고 왜곡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환자가 있는 반면에 갑자기 찾아온 감각 이상 반응으로 인해 예전의 일상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진찰한 환자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그들의 복잡한 심경까지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서술 방식은 전문 지식과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 경험으로 무장한 의사나 학자들이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기만 하는 전문가 입장에 서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건강하고 똑똑한 의사와 이상한 감각으로 인한 질환과 장애를 안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환자를 철저히 구분하게 만드는 경계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매우 솔직하다. 자신 또한 감각의 거짓말에 당한 적이 많다고 고백한다. 자기도 언젠가는 감각기관이 제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감각의 거짓말에 속는 우리는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오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감각이라고 믿고 있던 착각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감각의 속임수로 만들어진 세상과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감각의 한계, 즉 인간으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한계가 불편하더라도 외면해서 안 된다. 의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감각 이상과 오류를 무조건 고쳐야 할 비정상적인 문제로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다.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상한 감각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건강하지 않고 불행하게 사는 장애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어떤 환자는 감각 이상을 질병과 장애라기보다는 세상을 색다르게 보게 만드는 특별한 창()으로 여긴다. 감각의 거짓말을 피할 수 없는 우리는 똑똑하지 않지만, 살아갈 가치가 없을 정도로 무능하지 않다. 이 세상을 무기력과 자책의 늪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감으로 해석한 각자만의 경험이 녹아든 감각의 제국(諸國)’ 속에서 살아간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부질없다. 다른 사람이 구축한 감각의 제국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개입하고 지배하려는 사람을 감각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라고 불러야 하나. 이 한세상 산다는 건 오감으로 느끼기에 달렸다. 오감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는 이유로 고개 숙여 앉아 있지 말자. 그런대로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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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6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간간이 자주 보이네. ㅎ
난 눈을 못 믿겠으면 청각을 믿어보라고 할 참이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맨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게
청각이라잖아. 그런데 그것도 못 믿겠구만.
이건 딴 얘기지만, 송골매하면 배철수지만 세상만사는 구창모가 불렀지.
지난 3월말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71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배철수 씨가 그와 동갑이라더군. 세월 참 빨라.
나에겐 영원한 오빠지. ㅋ

cyrus 2023-04-06 19:49   좋아요 1 | URL
계속 글을 써서 남기다가 또 갑자기 조용히 사라질 수 있어요. 이제는 정말 예전처럼 책 읽고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요. 세월이 지나니까 체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네요. 시력은 정말 안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
 




전망 좋은 []

 

EP. 18


환상문학







<환상문학>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enre.fiction/





애서가는 책방지기와 친하게 지낼수록 좋다. 책방지기는 동종업계 소식에 관심이 많다. 전국의 특색 있는 책방뿐만 아니라 생긴 지 얼마 안 된 아가 책방까지 알고 있다. 작년 말에 나의 주말 친구인 <직립보행> 책방지기는 방천시장 안에 있는 책방 <북셀러>를 소개해줬다(한 번 방문한 적 있다. 방문 후기는 다음에 공개하겠다). <일글책> 책방지기는 동성로에 새롭게 문을 연 <환상 문학>을 알려줬다.

 

<환상문학>장르문학 전문 서점이다. 장르문학의 범주는 정해진 건 없지만, 대체로 추리(미스터리), SF, 판타지, 스릴러, 로맨스, 호러(공포문학), 그래픽노블, 라이트노벨 등이 포함된다. 장르문학 도서만 만날 수 있는 대구 책방은 <환상문학>이 처음이다. 올해 213일에 연 아가 책방이다.

 

대부분 책방은 가 오픈(임시 개장)’ 기간 동안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한다. 책방지기는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임시 개장 사실을 알리는데, 완전하지 않은 형태의 책방 내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책방의 임시 개장은 예행연습(리허설) 또는 스포츠의 시범 경기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환상문학>은 임시 개장 없이 212일에 정식 개장 사실을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공지했다. 책방지기가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거의 완벽하게 갖춰진 책방을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접 가보니 신생 책방에서만 볼 수 있는 미비한 점들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미 <환상문학>에 다녀간 몇몇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엽기부족이라는 닉네임의 장르문학 전문 파워블로거가 <환상문학>에 다녀갔고, 그분이 <환 문학> 큐레이션을 좋게 평가한 후기를 남기셨으니 내가 책방의 좋은 점을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일단 너무 좋다. 대구에도 장르문학 마니아를 위한 책방이 생겨서.

 

<환상문학>나만 아는 공간이 아니라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를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기적으로 자주 가야겠다. 대낮보다는 저녁에 찍힌 책방 사진이 확실히 멋져 보인다. 밤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밤에 열린 책방은 사진보다 직접 보는 게 훨씬 매력적이다. <환상문학>은 정기 휴무일인 목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말에 밤 9시까지 연다


재미있게도 내가 자주 가는 이자카야가 <환상문학>에서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런, 카드값이 확 올라가는 지점이 또 생겼다. 여기에 한 번 오면 책에 취하고, 술에 취하겠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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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4-03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좋은 책방이 많은거 같아요. 장르문학서점이라니 궁금하네요~!!

cyrus 2023-04-05 21:22   좋아요 1 | URL
다른 지역에 비하면 책방 수가 적은 편이지만, 일 년마다 새로운 책방이 하나둘씩 생겼어요. 제가 아직 안 가본 대구 책방이 몇 곳 있어요. ^^

바람돌이 2023-04-0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cyrus님덕분에 또 좋은 서점을 알았네요.
장르문학 전문서점이라니, 이렇게 장르별로도 특화된 서점이 생기는거 너무 좋은거 같아요. 저런 서점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고 장사도 잘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저는 우리 동네 서점으로 일단 갑니다. ^^

cyrus 2023-04-05 21:26   좋아요 0 | URL
<환상 문학>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환상 문학>은 책만 파는 곳인데 커피를 팔지 않고서 책 팔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환상 문학>이 생긴 덕분에 최근에 장르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소설을 안 읽은 지 꽤 오래됐는데 책방이 제 독서 욕구를 부추기네요. ^^
 
이교도 미술 - 신과 여신, 자연을 숭배하는 자들을 위한 시각 자료집
이선 도일 화이트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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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기독교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 문명이라는 유서 깊은 나무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두 개의 뿌리다.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나무에 흘러나오는 양분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 양분은 각각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을 탄생시킨 원천이 되었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성서와 신화에 묘사된 인물과 사건을 작품의 소재로 다뤘다. 따라서 서양 문화를 이해하려면 기독교와 신화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는 다신교적 문화의 색채가 짙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각양각색 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화를 창조했고,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신전을 세웠다. 시민들은 그곳에 가서 공물을 바쳐 신의 축복을 빌었다. 다신교를 근간으로 한 그리스·로마 신화는 일신교인 기독교 정신과 반대되는 이교도(pagan) 또는 이교 신앙(paganism)이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대다수 다신교는 수많은 신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나무, , 바위 같은 자연물에도 신성(神性)이 있다고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자연을 숭배 대상이 아닌 신의 창조물로 여겼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는 자연 숭배를 이교도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이교도는 기독교 중심주의적 용어다. 과거 기독교인들은 유일신교인 이슬람마저도 이교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다신교 신자들 앞에 칼과 성경을 내밀면서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했다. 서구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가 유행하면서 ‘pagan’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생소한 종교 및 신앙을 이교도로 분류하려는 편견은 여전히 살아 있다. 특정 지역에만 전해 내려오고 있는 전통 신앙 및 종교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이교도를 생산한다. 공포 영화 속 이교도는 외부와 오랫동안 단절된 채 생활하는 폐쇄적인 공동체다. 그들은 종교적 전통을 지키기 위해 산 자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 소름 끼칠 정도로 집단 광기에 빠진 이교도를 묘사한 대표적인 영화가 <위커 맨>(The Wicker Man, 1973)<미드소마>(Midsommar, 2019). 광신도에 가까운 이교도가 등장하는 영화는 이교도의 부정적인 면만 과도하게 부각한다.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무신론자들은 사실과 다른 영화 속 이교도를 그대로 믿을 가능성이 크다.

 

이교도 미술: 신과 여신, 자연을 숭배하는 자들의 시각 자료집은 본격적으로 문화사적 관점에서 이교도를 다룬 책이다. 이 한 권의 책에 동서양과 고금을 아우르는 이교도의 역사와 문화가 도판과 함께 담겨 있다. 이도교와 관련된 도판이 많이 실려 있어서 미술 도서로 분류할 수 있지만, 종교 도서로 봐도 무방하다. 종교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무신론자와 비종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도 이교도 문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산에 올라가 신성한 바위에 기도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갈피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을 계속 찾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사주학이나 타로 점성술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자연물을 신성시하는 태도에서부터 점을 보는 행동까지 이교도 문화는 우리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이교도는 영화에 묘사한 것과 다르게 개방적이었다. 그들은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으며 여기에 맞춰 독특한 문화 유산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기독교인과 비종교인들이 잘 모르는 전 세계 이교 신앙의 특징과 이교도의 문화적 산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이교도 미술의 장점이다. 이 책은 신과 여신, 자연을 숭배하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교도 미술은 종이로 만든 <이교도 특별전 박물관>이다. 이곳에 종교라는 문턱이 없다. 열린 마음으로 이교도 문화를 이해하려는 비종교인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박물관이 잘 유지하려면 전시품과 관련된 내용 그리고 용어와 명칭이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이교도 특별전 박물관에 사소한 옥에 티가 있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주1] 

247행 


(29)



[주1] 사실 이건 옥에 티가 아니다. 그래도 독자를 위한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Ovidius)변신 이야기와 제목만 같을 뿐, 다른 내용의 작품이다. 아풀레이우스가 쓴 작품의 국역본 제목은 황금 당나귀(송병선 옮김, 현대지성, 2018).







4. 아폴로 → 4. 아폴론/아폴로 [주2]


(33쪽)



[주2] 33쪽에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이 있다. 왼쪽 이름은 그리스식, 오른쪽 이름은 로마식 표기다. 그런데 아폴로만 유일하게 그리스식 이름이 없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폴론(Apollon)’으로 표기되며 아폴로(Apollo)’가 로마식 이름이다.





* 71







하인리인 하인라인






* 104






 고대 로마에서 베스타를 섬긴 처녀들은 여신 헤라[3]의 사제들이다. 이들은 사제로 일하는 동안 순결을 지켜야 했다.



[3] 베스타(Vesta)는 로마에서 가정과 국가의 수호자로 숭배된 화로의 신이다. 베스타는 그리스의 헤스티아(Hestia)와 같다. 헤라(Hera)와 헤스티아는 크로노스(Cronus)와 레아(Rhea) 사이에 태어난 자매이다. 따라서 베스타를 섬긴 처녀들은 여신 헤스티아의 사제들이다.





* 색인 255





테니스, 앨프리드 테니슨, 앨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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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2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처음부터 이렇게 오탈자를
보게 되면 책 자체에 대한 신뢰
가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 같
습니다.

대단하시더라는.

cyrus 2023-04-03 05:04   좋아요 2 | URL
책 만드는 사람들(역자와 편집자)이 오탈자를 확인하지 못한 것을 큰 잘못이라고 여기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일 나쁜 건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점이에요.

대부분 사람은 가짜 뉴스, 편견이 반영된 개인적 견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 거짓 정보가 퍼트리는 원인을 유튜브나 언론에서 찾아요. 맞긴 하는데, 책 속에도 잘못된 내용이 엄청 많아요. 그런 내용을 보면 책과 책 만드는 사람(저자, 역자, 편집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요. 아무리 책의 주제나 만듦새가 좋다고 해도 그런 문제점이 노출되어 있다면 평점을 박하게 줍니다.

사람들은 왜 유튜브에서 떠도는 가짜 정보를 좋아하지 않고, 경계하면서도 정작 책 속에 버젓이 실려 있는 가짜 정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을까요? 출판사와 책 만든 사람들은 책에 대한 비판적 서평에 침묵으로 일관해요. 어떠한 해명이나 반박 견해를 내놓지 않아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전히 대다수 출판사 관계자와 독자들은 칭찬 같지 않은 비판적 서평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도 책 속에 가짜 정보를 비판하는 서평이 많이 나와야 해요. 예전부터 그래왔고, 그런 서평을 쓰는 일이 제 목표이며 의무입니다.

korhoil 2023-10-11 0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
 




내 주말은 오전 10, 책방 <일글책>에서 시작한다. 서양 인문 고전 읽기모임<일글책>에서 진행된다









<일글책>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w_book/




<일글책> 책방지기는 고전 읽기 모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파이데이아 회원이다. 파이데이아(paideia)고대 그리스식 교육을 뜻한다. 고전 읽기 모임 명칭은 위대한 저서(great books) 읽기 프로그램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은 학생들의 교양 교육을 위해 읽어야 할 위대한 저서100권의 서양 고전 도서 목록을 만들었다. 도서는 연차별로 나누어져 있으며 12년에 걸쳐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위대한 저서에 포함된 모든 책을 전부 읽어야 졸업할 수 있다. 독서와 토론을 병행한 시카고 대학의 커리큘럼은 오늘날 시카고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도서출판 숲, 2015)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15)




<일글책> ‘서양 인문 고전 읽기모임은 파이데이아 독서 토론 프로그램 방식과 같다. 위대한 저서’ 1년 차에 포함된 도서를 읽는 중이다. 올해 1, 2월에 호메로스일리아스를 완독했다. 3월부터 오뒷세이아를 읽기 시작했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서사시다. 오디세우스는 귀향하는 과정에서 온갖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오뒷세이아9에 오디세우스 일행은 로토스라는 열매를 먹는 부족이 사는 섬에 닿는다. 부족은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자신들이 먹고 있던 열매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열매를 먹은 부하들은 꿀처럼 달콤한 맛에 중독되어 귀향하기를 잊어버리고 만다. 오디세우스가 억지로 부하들을 함선으로 데려오면서 일행은 다시 바닷길에 오른다.


나는 로토스와 관련해서 발제문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반복적인 쾌락에 빠지게 만드는 로토스가 있었나요? 실제로 그런 로토스가 있었으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쾌락 중독에 벗어나는 비결이 있나요? 아니면 오디세우스처럼 로토스를 먹지 못하도록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새벽에 발제문을 만들다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라는 로토스를 10대부터 먹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먹고 있다. 책을 너무 많이 샀고,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독서보다 재미있는 다양한 경험(영화 보기, 여행, 연애 등)을 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에 외골수 같은 내 삶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책만 보는 나랑 대화하기가 쉽지 않고, 친해지기가 어려운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서글픈 내 과거가 묻은 발제문을 가슴에 품은 채 <일글책>으로 갔다. 내 이야기를 모임을 통해 풀어헤치려고 했다. 아니, 그런데 모임에 참석한 분들 모두가 자신들의 로토스가 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을 너무 좋아하면서 느꼈던 고충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분들이 꺼내놓은 이야기가 다 내 이야기라서 내 발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대화가 옆길로 샜는데, 어느새 자신들이 가본 책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20여 분 동안 책방 이야기만 계속했다. 역시‥…. 애서가는 독서가 힘들고 괴롭다고 투정 부려도 책을 손에 놓지 못하며 책을 더 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뭔가에 홀리듯이 책방으로 향한다. 나는 발제문에 관련된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딱 이 말 한마디만 했다. “우리 언젠가는 알라딘 서점이나 다른 책방에서 만날 거예요.”


주말이면 꼭 가는 책방이 <직립 보행>이다. <직립 보행> 부부 책방지기는 내 주말 친구다. 정말 이 두 분이 없으면 내 일요일은 책만 읽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대구의 인문학 전문 책방을 꼽으라면 나는 <일글책><직립 보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글책>이 있어서 나는 고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직립 보행> 덕분에 근현대 철학을 접할 수 있었다.
















* [절판]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읽는 인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위즈덤하우스, 2015)




<직립 보행>에 가면 무조건 세 권의 책을 산다. 그런데 가방 안에 이미 알라딘 서점과 다른 책방에 구매한 책들이 있어서 딱 한 권만 샀다그 책은 바로 오에 겐자부로읽는 인간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이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고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허클베리 핀의 애칭)흑인 노예 짐을 그의 주인 노부인에게 돌려주려고 생각했다. 짐은 노부인의 재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헉은 짐을 돕기 위해 남의 재산을 훔치면 지옥에 간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그 순간 헉은 마음속에 되뇌던 말을 내뱉는다. 그래,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All light, then, I’ll go to hell).”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던 오에는 그 구절을 읽은 이후로 지옥으로 가겠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년 전부터 나는 책만 사는 인간으로 살아오고 있다. 진짜 내 모습, ‘읽고 쓰는 인간이 그리워졌다.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을 때, 어느 분이 내 알라딘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그분은 책을 비판한 서평을 쓴 내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 댓글을 보면서 마음속에 했던 말을 내뱉었다. “그래, 나는 로토스를 먹겠다.” 


내 곁에 책 읽는 내 욕망을 벗어나게 해줄 오디세우스 같은 구원자는 없다. 그러면 내가 만든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써야 한다. 독서가 욕망이라면, 서평 쓰기는 의무다. 좋은 책을 고르고 싶은 독자를 위해서 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독서는 중독이 아니다. 중대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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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3-04-01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파이데이아 모임을 몇 번 해봤습니다. 해보고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 혼자서 고전 읽기를 계속 하게 됐죠.^^;;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저 시카고 플랜 자체가 너무 서양 고전 책들만 가득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고전은 한 권도 포함되지 않았죠. 그래서 저 혼자서 동양고전도 찾아 읽어봤습니다. 읽어보고 나서 깨달은 건데, 동양고전이 서양고전보다 제게 훨씬 더 익숙하고 제 지금까지의 삶에 더 친근하더군요. 다른 말로 하면 더 와 닿는다고 해야할까요? 서양고전은 낯설고 이해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파이데이아 모임을 하신다니 부디 잘 읽어나가시를..

cyrus 2023-04-02 08: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파이데이아에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들이 읽기 프로그램에 변화를 꾀해보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예를 들어서 동양고전이 포함된 목록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여성 저자와 작가들이 쓴 책도 더 추가해야 해요. 그래서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과 독서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

blanca 2023-04-01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마음입니다. 저도 쓰는 일을 게을리했는데 읽지만 말고 쓰기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책이 로토스인 사람들의 모임 저도 관심 가네요. 저는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좀 쓸쓸할 데가 있더라고요. 저는 책이 있어 삶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23-04-02 08:31   좋아요 0 | URL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독서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이 꽤 많아요. 그렇지만 오히려 독서 모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도 있어요. 독서 모임을 통해 만나는 분들이 정말 성품이 좋아야 해요. 성품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무조건 옳다면서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아요. 게다가 다른 사람의 독서 취향을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기도 해요.

레삭매냐 2023-04-01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elcome back bro~

cyrus 2023-04-02 08:32   좋아요 1 | URL
인스타에서도 만나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3-04-02 09:02   좋아요 1 | URL
책만 사는 닝겡, 여기 1인 추가요 ~~~

바람돌이 2023-04-01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읽기 모임에 매주 서점에 가시는 cyrus님
와 진짜 진정한 독서가이자 애서가이십니다. cyrus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꼼꼼한 읽기에 감탄하는데 오늘 글에서 그런 꼼꼼하고 세심한 글이 나오게 되는 이유를 살짝 엿본거 같네요.
저는 뭐든지 좀 대충대충인 사람이라 이런 자세를 보면 막 반성하게 됩니다.

cyrus 2023-04-02 08:37   좋아요 1 | URL
반성하지 않으셔도 돼요. 너무 꼼꼼하게 책 읽으면 피곤해요. 책 읽을 때 집중하다 보면 느끼지 못하다가, 책 다 읽고 나면 피곤함이 확 몰려와요.. ㅎㅎㅎ 제가 책 읽는 방식이 피곤한 스타일이라서 서평 한 편 쓰는 데 오래 걸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한동안 서평을 안 쓰고 책만 읽었어요. 그런데 서평을 쓰긴 써야겠더라고요. 요즘 엉터리로 만든 책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정작 좋은 책들을 독자들의 관심을 못 받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 없어서 다시 글을 쓰기로 했어요. ^^

페넬로페 2023-04-02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가하고 있는 도서관 동아리 모임 이름이 ‘클래식‘인데 거의 5년동안 고전을 읽어 와 올려주신 책들이 반가워요. 코로나 시국에도 1년동안 줌으로 만나 지금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고 만나고 있어요.
책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나 봅니다.
든든하네요^^

cyrus 2023-04-03 05:07   좋아요 1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 공동체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독서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책을 더 잘 읽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고요,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 좁았던 제 생각의 폭과 식견이 조금씩 넓혀질 수 있어서 좋아요.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 / 서광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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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 김국환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1991) 중에서 -





라파엘로(Raffaello)<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 지성사를 되살리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중 하나다. 학당 안에 철학자와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모여 있다







그림 중앙에 학당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Plato)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플라톤의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은 을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자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라톤은 현상의 순수한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세계의 현상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현상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분석했다. 플라톤이 가리키는 하늘이 관념적인 이데아를 상징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키는 땅은 구체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를 알 수 있도록 상징물(Attribute)을 그려 넣었다. 허리를 숙여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사람은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혹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유클리드는 컴퍼스와 눈금 없는 자만 가지고 도형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죽기 직전 땅바닥에 컴퍼스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의 집에 침입하자 아르키메데스는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고 말했다. 로마군 대장은 자신들을 괴롭힌 병기를 만든 아르키메데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아르키메데스를 만나면 반드시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는 전란 중에 태평하게 원을 그리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죽이고 말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철학자와 그의 학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초상화나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철학자를 본받고 싶어서 그림 속 철학자의 얼굴에 화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이런 그림의 제작 의도를 관람자에게 알리려면 철학자임을 암시하는 상징물이 반드시 그려져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그림이 된 철학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저자 나름대로 철학이 함축된 미술 작품의 상징물을 분석한 책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그림자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동굴로 비유했다. 그래서 미술 작품에 묘사된 동굴이 플라톤과 그의 철학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픈 욕망이 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 현상과 만물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가 쓴 많은 책 중에 현재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의 박식함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분류하고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동물지(historia animalium)를 비롯해 박물학 관련 문헌을 썼다고 한다. 동물지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박물지(Naturalis historia)와 함께 세계 최고(最古)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주1]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직접 악어를 관찰한 뒤에야 그것에 대해서 견해를 드러냈다. 플라톤이라면 악어를 관찰하지 않고도 악어가 무엇인지 설명했을 것이다. 악어를 관찰하면서 동물지를 쓰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실제로 있다. 옹프레는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요를 설명한다.


옹프레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작은 총 열한 권으로 이루어진 반철학사(Contre-histoire de la philosophie)’ 시리즈. 반철학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주류 철학과 철학사에 가려지거나 잊힌 소수의 철학과 비주류 철학자들에 주목한다. 옹프레는 반철학 계보에 속한 에피쿠로스(Epikouros)의 쾌락주의를 추종한다. 그는 에피쿠로스를 비롯해 그의 철학을 계승한 쾌락주의자들의 초상화나 관련 그림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도덕을 중시한 주류 철학을 계승한 학자들은 쾌락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폄하했다. 당연히 예술가들은 주류 철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옹프레는 주류 철학사뿐만 아니라 주류 미술사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미술사 연구가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서양미술사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언급했다.


니체(Nietzsche)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를 양성하는 데 몰두한 주류 철학과 기독교 윤리를 비판한 반란의 철학자. 니체를 계승한 옹프레는 반철학의 망치를 휘두르면서 너무 오랫동안 굳어버린 주류 철학사의 통념을 깨뜨린다. 데카르트(Descartes)는 합리주의 철학과 프랑스 철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옹프레는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그동안 우리는 데카르트 이전에 활동한 철학자를 망각한 채 데카르트의 업적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철학사를 답습하고 있었다


철학사는 인류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아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몇몇 전문가와 철학도들은 철학사 자체를 기념비로 여긴다. 그들은 기념비가 된 철학사에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끊임없이 닦기만 한다. 빛나는 철학사에 새겨진 철학자들의 이름과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philosophy)이 아니다. 그것은 맹신이다. 맹신은 쉽게 깨지지 않는 도그마(dogma)를 만든다


철학사가 신성한 기념비가 되지 않으려면 반철학의 망치를 손에 쥐어야 한다. 반철학의 망치는 주류 철학사가 외면한 소수의 철학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 도구가 아니다. 아무도 깨뜨리지 못한 주류 철학사의 한계와 통념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망치로 인해 생긴 빈틈에 불순물로 치부되었던 비주류 철학사를 주입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면 (니체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윤리, 전통, 그리고 모든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다철학()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주1] 박물지2021년에, 동물지는 올해 초에 처음으로 번역되었다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가 펴냈다. 번역자도 같다.





* 28, ‘크산티페의 물 항아리편 중에서

 




 산파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그의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하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들을 그 배아 상태에서 분만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신을 분만시키는 기술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 부른다. [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렇게 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한다.[주3] 한 사람은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 람프로클레스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의인 아리스티데스의 딸 미트로로, 그는 그녀와 지참금 없이 결혼했는데 그녀에게서 소프로니코스와 메넥세노스라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2] 옹프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설명할 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옮김, 나남출판, 2021)을 자주 인용한다.

 

산파술’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알려진 소크라테스식 논변은 소크라테스 질문법’, ‘소크라테스 대화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소크라테스식 논변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고 주장했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9권 독자적인 철학자들, 8. 프로타고라스, 270]



[주3]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이 책의 앞부분은 김중현 교수가 번역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했다라고 잘못 썼다실제로 라에르티오스의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소크라테스)는 두 여인과 결혼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2권 이오니아 학파 · 소 소크라테스학파, 5. 소크라테스, 158]

 

 



* 67 [옮긴이 미주]





 Marc-Aurele(121-180): 로마 제국의 6황제,[주4]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해 온 인물이다. 스토아 철학이 담긴 명상록을 남겼다. 기독교도가 그의 재위 기간에 그전보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황제 그 자신은 결코 박해를 주도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주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 황제다.





* 68 [원저자 각주]

 




틴토레 틴토레토(Tintoretto)





* 87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제레 →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Pierre Nolasque Bergeret)


93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라고 표기되어 있다.





* 95 [옮긴이 미주]

 




Simone de Beauvoir(1980-1986) [주5]

 


[주5] ‘1908’의 오자. 보부아르(Beauvoir)의 출생 연도는 1908년이다.





* 101 [옮긴이 미주]





César Borgia(1475-15070[주6]



[주6] ‘1507’의 오자. 체사레 보르자(César Borgia)의 사망 연도는 150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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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15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정될 부분이 여러부분이네요. 책읽다보면 가끔 오탈자가 보이기는 하는데, 잘못된 내용은 다음에는 수정되면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