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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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  ★★★★★  A+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 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 이문세 5집 수록곡 <시를 위한 >(1988) 중에서 -





책은 물건이 아니다. 책은 생명 그 자체다. 최초의 책은 미생물들의 보금자리인 흙으로 빚어져서 만들어졌다.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미생물들은 책의 일부가 되었다. 책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야기를 활짝 피우게 하는 토양이다인류는 기름진 책을 펜으로 경작(culture)했고, 책 위에서 자란 교양(culture)을 먹으면서 자라왔다고대 이집트인들은 갈대로 책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갈대를 파피루스(papyrus)’라고 부른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은 파피루스 밭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건져낸다. 공주는 그 아기를 아들로 삼아 모세(Moses)’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모세의 목숨만 건지지 않았다. 갓난아기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까지 만들어지게 될 한 편의 이야기까지도 건져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려면 우선 그 이름을 빛나게 해주는 이야기가 남아 있어야 한다.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청년 윤동주는 가을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헤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가 사랑한 시인들의 이름까지. 동주가 언급한 소중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멀리 있다. 그렇지만 이네들의 이야기는 동주의 가슴 가까이에 있다. 불행하게도 동주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일찍 눈 감았고 바람이 되었다. 그가 원고지에 띄운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었다.


갈대 속의 영원책을 애지중지해 온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을 기리는 책이다. 과거에 만들어진 책들은 아주 연약했고 수명이 짧은 편이었다. 자유로운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 권력자에 의해 파손되거나 망각의 시간에 흠뻑 젖어버린 책들은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책들은 제목만 전해질 뿐이다. 책은 죽어서 제목만 남긴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내용 일부만 살아남는다. 책을 사랑한 사람들은 단순히 책만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독자로 살지 않았다. 책을 보존하는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들은 책이 사라지면 그 속에 있는 지식과 이야기도 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3(Ptolemaeos III)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가지고 싶어 했다. 왕은 자신이 모은 책들을 보관할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개인 서재는 도서관이 되었다. 하지만 튼튼하게 도서관을 지었어도 연약한 책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도서관은 전쟁의 소용돌이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책을 사랑하지 않은 권력자는 도서관을 파괴하거나 폐허가 된 도서관을 재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책을 두려워한다. 용감한 독자는 책을 학살하는 권력자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 책을 경작할 때 사용된 펜은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가 된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s)가 나오는 호메로스(Homer)일리아스를 가장 좋아했다. 이 한 권의 책에 푹 빠져버린 왕은 아킬레우스처럼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그의 야망은 한 권의 위대한 책이 되는 것이었다책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류를 영원히 기억되고 완벽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책 덕분에 세상을 살다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좋을 순 없다. 책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해로운 이야기를 걸러내지 못한다. 부당한 권위를 두 눈 똑바로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키는 책은 영원히 덮을 수 없다. 오히려 최악의 세상 한가운데에 펼쳐져 힘차게 펄럭거린다. 반면에 진실을 짓밟고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책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종이책이 아니다. 못된 권력자와 불한당 앞에서 딸랑거리는 요란한 종(bell/servant)이다.


우리의 몸과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으며 한 편의 글로 기록한다. 내 삶을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갈대 속의 영원은 책을 사랑한 사람들을 잊지 않은 책들, 만인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cyrus의 주석



* 25

 

 세상을 지배하려는 순간이 도래할 즈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커다란 선물로 클레오파트라를 현혹하고자 했다. 그는 금이나 보석이나 향연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눈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야 매일 헤프게 썼으니 말이다. 한번은 술 취한 새벽,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엄청난 크기의 진주를 식초에 녹여 마셔버린 적도 있었다.[주1] 그래서 그는 클레오파트라가 지루한 표정으로 무시하지 않을 만한 선물을 선택했다. 도서관에 비치할 20만 권의 책을 그녀의 발아래 가져다 놓은 것이다.

 


[주1]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진주 귀걸이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일화는 과장된 전설이다. 식초에 든 진주는 녹긴 하지만, 순식간에 녹지 않는다. 진주가 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클레오파트라는 완전히 녹지 않은 진주를 삼켜야 한다. (참고: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클레오파트라, 진주 숨은 비밀?, 200578일 작성)






* 415



 

 고대의 두루마리가 교체되면서 우리는 시, 연대기, 모험, 허구, 사상의 보물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수 세기 동안 부주의와 망각은 검열이나 광기로 인한 파괴보다 훨씬 많은 책을 파괴해갔다. 그러나 우리는 말의 유산을 구하기 위한 큰 노력을 알고 있다.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는) 도서관은 소장한 자료를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획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하나하[2] 모두 복사하는 참을성 있는 작업에 착수했다.


[2] 하나하나의 오자. 책 한 권을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 하나하나 읽는 참을성이 있어야 오자 한 개 정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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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1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서사의 꿈이야말로
모든 닝겡들이 희망사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 그리고 보니 이스칸다르
는 자신의 위대한 페르시아
원정을 시로 표현해줄 호메
로스가 같은 이가 없음을
레알 한탄했다는 믿거나 말
거나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stella.K 2023-04-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책 같다.
그런데 나 자신을 사랑하려면
일기도 써야한다고 생각해. ㅎㅎ
암튼 너의 리뷰도 멋지고
책도 멋질 것 같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봐야겠다.^^
 



일주일에 세 번 알라딘 동성로점에 간다. 한 번 서점에 방문하면 책을 잔뜩 구매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적게 주문하면 여섯 권, 많이 주문하면 열 권)을 받으러 서점에 간 것뿐인데 2, 30분 지나고 나오면 구매한 책은 곱절이 넘는다. 이렇다 보니 차마 손을 뻗지 못하고, 눈길만 주는 책들이 많다. 이런 책들은 내 마음속 장바구니에 꽤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다. 3월의 장바구니를 채운 많은 책 중 한 권이 요네자와 호노부의 역사 추리 장편소설 흑뢰성이었다.
















* 요네자와 호노부, 김선영 옮김 흑뢰성(리드비, 2022)



 

지난달 중순에 대구 장르문학 전문 서점 <환상 문학>이 첫 독서 모임 공지를 올렸다. 모임 일정은 한 달 격주 금요일이었고, 47, 421일 일정과 414, 428일 일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대구 최초의 장르문학 전문 서점에서 열리는 역사적인 첫 번째 독서 모임에 참석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평일 저녁에 진행되는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석할 자신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잔업으로 인해 목요일 저녁에 진행되었던 독서 모임 <우주지감>에 불참하거나 늦게 출석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를 좋아하는 장르문학 마니아들이 많이 신청하길 바라면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상에 충실히 살기로 했다.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에 나를 포함해서 총 일곱 명의 정기 회원이 참석하고 있다. 그중에 향기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회원이 있다. 향기님은 장르문학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역시 장르문학 마니아답게 그분은 <환상 문학> 독서 모임에 신청했다. 3월 말에 <환상 문학> 독서 모임 공지가 다시 떴다. 모임 신청자 수가 적어서 그런지 모임 일정이 47일과 421일로 변경되었다. 43일까지 신청자가 없으면 독서 모임이 취소된다고 했다. 대구에 흔하지 않은 장르문학 독서 모임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신청 링크를 눌렀다.

 

모임 신청한 당일 흑뢰성를 받으러 <환상 문학>에 방문했다. 흑뢰성은 일본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내겐 무척 낯설었다. 흑뢰성을 다 읽은 책방지기한테 흑뢰성을 쉽게 읽는 방법이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책방지기는 흑뢰성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시대적 배경과 관련된 지식을 알아가면서 읽으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만 읽어보라고 하셨다. 시키는 대로 읽으니까 생각보다 소설이 술술 읽혔다.

 

47일에 <환상 문학> 첫 번째 독서 모임이 진행되었다. 그날 30분 정도 잔업을 하게 되었고, 결국 내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서점으로 향했지만, 모임 시작 전까지 서점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했다. 피로가 쌓이면 입 안에 염증이 생긴다. 말을 할수록 통증이 느껴져서 발언보다는 경청에 집중하려고 했다. 헐레벌떡 서점에 와보니 책방지기와 향기님, 딱 두 분만 계셨다. 말을 안 할 수 없었다.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책방지기는 흑뢰성의 등장인물과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들려줬다. 그런 다음에 책 속의 주요 장면들을 짚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모임 때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생략하겠다. 지금 모임 후기를 쓰려고 하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모임 때 한 발언은 흑뢰성서평을 쓸 때 언급되는 내용이라서 여기서 밝힐 수 없다. 장르문학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스포일러다. 그러므로 장르문학 전문 독서 모임만큼은 그날 나온 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책과 모임 분위기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환상 문학> 첫 번째 독서 모임 후기가 용두사미로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참석하려는 다른 독서 모임 일정을 소개하겠다. 내 근황에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1. 대구 인문학 서점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422일 토요일 오전 10















* 아이스킬로스, 천병희 옮김 《아이스킬로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아가멤논

 




2.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 스타킹>: 430일 일요일 오후 2

장소: 카페 스몰토크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이론 통권 제47》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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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12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너의 근황이야 항상 궁금하지. 네가 안 알려주니까 모르는거지. ㅋ
아쉽게 됐다. 처음엔 다 그렇지. 울나라가 독서인구가 워낙 저조해서 그렇긴 하지만 잘 되리라 응원한다.
근데 입 아파서 어쩌나. 몸 잘 돌보래이.^^

cyrus 2023-04-16 09:44   좋아요 1 | URL
음, 생각해보니 제가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을 알라딘 블로그에 자주 표현하지 않았네요.. ㅎㅎㅎ 주로 책 이야기만 했죠.

장르문학 독서 모임은 책방지기, 저, 그리고 저랑 같이 고전 읽기 모임에 참석하는 분 딱 세 명이 모여서 진행했어요. 살면서 삼자대면 독서 모임을 하게 될 줄이야.. ㅎㅎㅎ 정말 재미있었어요. ^^

지금은 구내염 다 나았어요. :)

기억의집 2023-04-12 1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흑뢰성 빌려서 읽었어요. 처음에는 인물 파악하기 힘들어서 애 먹었는데 읽다보니 적응이 돼서 술술 읽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이 이 작가의 최고작이다라는 세간의 평에는 글쎄 싶었어요.

점점 책 읽는 인구가 줄긴 하는가 봅니다. 취소가 돼서 아쉬움이 크겠어요 ㅠㅠ

cyrus 2023-04-16 09:47   좋아요 0 | URL
저는 결말까지 읽어보고 평점을 주려고 해요. <흑뢰성> 중간까지 읽었는데요, 일단 좋습니다.. ^^

장르문학 독서 모임은 취소되지 않았어요. 저 포함해서 세 명이 모여서 진행했어요. 이번 주 금요일은 <흑뢰성> 두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이에요. 뭐 그날도 변함없이 세 명이 모일 것 같아요.. ^^;;

blanca 2023-04-12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뢰성 궁금하네요. 한번 읽어볼까요. 일본 중세시대 배경이라니...관심 가네요. 저도 피곤하면 구내염 작렬입니다.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단계고요.

cyrus 2023-04-16 09:48   좋아요 0 | URL
다 나았다 싶으면 또 생기는 게 구내염이죠.. ㅎㅎㅎ
 




감각의 박물학을 번역한 분은 백영미 씨다. 이분이 번역한 책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셜록 홈즈 전집이다.

















 


* [개정판???]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23)


* [구판 절판] 다이앤 애커먼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 (작가정신, 2004)




















* 아서 코난 도일, 백영미 옮김 셜록 홈즈 전집 3: 바스커빌 가문의 개(황금가지, 2002)


* 아서 코난 도일, 백영미 옮김 셜록 홈즈: 더 얼티밋 에디션(왓슨 편)(황금가지, 2018)

 


 

감각의 박물학초반부에 셜록 홈스가 언급된 내용이 있다감각의 박물학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은 홈스 시리즈 중 하나인 장편 바스커빌 가문의 개에 나온 홈스의 말을 인용한다.

 

 

* 18


 셜록 홈스는 바스커빌가의 개에서 한 여성을 편지지의 냄새로 알아보며, 일흔아홉 가지 향수가 있는데, 수사관이라면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5]

 

 In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Sherlock Holmes identifies a woman by the smell of her notepaper, pointing out that “There are seventy-five perfumes, which it is very necessary that a criminal expert should be able to distinguish from each other.”



그런데 일흔아홉 가지의 향수는 오역이다. 원문은 ‘seventy-five perfumes’. 번역하면 일흔다섯 가지의 향수여야 한다. 바스커빌 가문의 개감각의 박물학원서를 살펴보면 ‘seventy-five perfumes’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백영미 씨가 번역한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살펴보자. 이 책에서는 번역이 잘 되어 있다.

 


* 바스커빌 가문의 개286

셜록 홈즈: 더 얼티밋 에디션(왓슨 편271

 

 “세상에는 75의 향수가 있는데 범죄 전문가라면 반드시 그 냄새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지.”

 


절판된 감각의 박물학구판(18)에도 오역이 그대로 있다단순히 번역자의 사소한 실수로 보면 안 된다. 책을 만든 편집자도 오역을 방기한 책임이 있다, 다시 한번 감각의 박물학을 펴낸 번역자와 편집자들에게 묻는다(여기서 내가 항의해봤자 그들은 무반응으로 일관하겠지만). 구판에 있는 오역을 확인해보지 않고, 고치지 않은 이 책이 정말 개정판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역자는 피라냐식인 물고기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원서에는 식인 물고기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 233~234


 아마존강 유역에서 온 친구는 메인 코스로 호두 버터 맛이 나는 가위개미와 구운 거북 그리고 식인 물고기 피라냐의 맛있는 살을 택한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134]


 Our Amazonian friend chooses the main coursenuptial kings and queens of leaf-cutter ants, which taste like walnut butter, followed by roasted turtle and sweet-fleshed piranha.



역자도 그렇고, 대다수 사람은 피라냐가 날카로운 이빨로 다른 물고기의 살뿐만 아니라 인간의 살까지 뜯어 먹는다고 믿고 있다. 영화에서는 피라냐가 식인 물고기처럼 나오니까.
















* 매트 브라운, 김경영 옮김, 이정모 감수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동녘, 2023)



 

그러나 피라냐의 공격성은 과장되었다. 피라냐는 죽은 물고기의 살을 먹기도 한다. 피라냐 떼에 갑자기 가까이 가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얌전하게 제 갈 길을 간다. 그리고 또 인간의 살을 먹으려고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피라냐 떼가 있는 물속에서 수영할 수 있다. 실제로 피라냐 떼에 공격받아 치명상을 입었거나 사망한 사례는 드물다(참고: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 「피나랴가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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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4-0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일일이 대조해서 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부분이네요.
책을 읽으면 번역이 된 상태로 읽게 되니까요.
하나씩 찾아서 읽으면 좋지만,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cyrus 2023-04-12 06:33   좋아요 1 | URL
책을 읽다가 이상하건 애매한 단어나 표현이 눈에 들어오면 일단 의심해봅니다. 구글에 검색만 잘하면 원서에 있는 구절을 찾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원서가 전체 공개가 된 게 아니라서 아예 못 찾는 경우가 있어요. ^^;;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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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  F





 모든 작가는 믿을 만한 독자가 있어야 합니다. 작가가 작업하고 있는 것에 대해 동감하고 작품을 가능한 훌륭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솔직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독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자격입니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거짓으로 위로해서도 안 되며, 칭찬받을 만한 작품이 아닌 경우에는 절대로 칭찬을 해서도 안 됩니다

 

(폴 오스터, 작가란 무엇인가 1중에서, 181~182쪽)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매한다. 가끔은 잘 만든 책인지, 아닌지를 내 눈과 머리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살 때도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달에 꽤 많은 책을 샀다. 3월에 주문한 책들의 목록에 감각의 박물학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꼼꼼하게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문했다.

 

나는 절판된 감각의 박물학이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의 명성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저자가 쓴 다른 책 새벽의 인문학: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반비, 2015, 절판)이 좋았다. 감각의 박물학은 다이앤 애커먼에게 많은 상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글 잘 쓰는 저자로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준 책이다. 이 책은 다이앤 애커먼의 대표작이다.

 

저자의 대표작이 나와서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갑자기 왜 이 책이 나온 거지?” 감각의 박물학1990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 대부분 사람은 유명한 저자가 썼고, 연세가 지긋한 책을 고전이라 부르면서 우대한다. 이 책의 분홍색 띠지에 독보적인 고전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나는 이 문구를 떼어내고 싶다. 출판사는 감각의 박물학고전으로 과대 포장했다.

 

나는 번역서를 사기 전에 제일 먼저 원서의 출판 연도를 확인한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일수록 철 지난 낡은 지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이런 책에서 신선한 지식을 찾는 일은 시간 낭비다. 물론 과거의 지식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은 다양한 관점이 혼재하는 복잡한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옳다고 확신했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로 판명될 때도 있다.

 

출판사는 감각의 박물학개정판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 출판사는 책 표지를 싹 다 바꾸고, 책값을 조금 높게 책정해서 개정판을 낸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개정판의 의미는 겉뿐만 아니라 그 안의 내용에도 변화를 준 책이다. 사실이 아닌 내용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책을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들 앞에서 감각의 박물학을 개정판이라고 홍보하는 출판사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감각의 박물학2004년에 나온 구판과 비교해서 읽어봤. 개정판에 인명 표기가 달라진 부분이 있었고, 구판에 없었던 옮긴이 주가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겨우 이것만 가지고 개정판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내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감각의 박물학을 정가로 절대로 팔지 않겠다. 책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오류와 고쳐지지 않은 역자의 오역감각의 박물학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책 내용에 변화를 준 개정판이라면 몰라도 고작 겉만 바꾼 책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저자가 책을 다시 쓰지 않는다면 역자가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개정판을 출간하려는 역자는 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원서 속에 남아 있는 오류와 유통기한이 지난 지식이 있는지 확인한다.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있으면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알려줘야 한다.




* 53~54

 

 그 잔인한 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어린 갈까마귀 한 마리를 둥지에서 꺼내 완숙 달걀을 40일 동안 먹인 다음 잡는다. 그리고 은매화 잎새와 화장 분, 아몬드 오일을 넣고 증류한다.” 더할 나위 없다. 그 악취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를 인용하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빼면, 그 향수를 뿌린 이들은 분명 영원의 처마 위에 앉은 탐욕스러운 미인이 될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26]

 

 Here is the ghoulish recipe: “Take a young raven from its nest, feed it on hard-boiled eggs for forty days, kill it, then distill it with myrtle leaves, talcum powder, and almond oil.” Splendid. Except for the stench, and an overwhelming desire to quote Poe, you’ll surely be a ravenous beauty perching on the eaves of forever.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시 <The Raven> 갈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제목은 까마귀


‘raven’은 국내에 서식하지 않은 큰까마귀이며,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 큰까마귀는 까마귀 중에서 가장 큰 종이라면, 갈까마귀는 가장 작은 종이다.

 




* 56


 동물들에게 사냥꾼의 냄새는 경고가 된다. 사냥꾼에게 동물의 냄새는 유혹적이다. 일종의 자기방어로 냄새를 흘려보내는 동물도 있다. 얼룩 스컹크는 앞다리로 서서 지독한 악취를 공격적으로 쏘아 보낸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27]


 For an animal who is prey, the odor of its hunter will warn it; for the hunter, the odor of its prey will lure it. Of course, some animals exude an odor as a form of defense. Spotted skunks do a handstand and squirt would-be attackers with a horrible stench.

 

스컹크는 악취를 내뿜지 않는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분비물을 내뿜는다.




* 107


 피라미드 모양의 바벨탑은 죽음이 예정된 존재가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이, 신들 가까이로 뻗어 올라갔고, 사제들은 그 꼭대기에 향을 지폈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56]


 Atop the famous ziggurat-shaped Tower of Babel, which stretched closer to the gods than mortals could reach, priests lit pyres of incense.

 


지구라트(Ziggurat)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세워진 신전이다. 지구라트는 높이 솟은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아카드어에서 유래되었다. 하늘에 있는 신을 지상과 연결하기 위해 탑과 같은 형태의 지구라트가 만들어졌는데, 구약성서》 「창세기에 묘사된 바벨 탑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에 있는 우르의 지구라트(Ziggurat at Ur)’는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유명한 지구라트다. 역자는 지구라트를 피라미드와 비슷한 형태의 건축물로 착각했다.




* 140

 

 자이레의 피그미족 아기는 적어도 하루의 절반은 다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

 

자이르(Zaire)1971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콩고민주공화국의 옛 국명이다.




* 151


 옛날 남자 지도자들은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머리를 길게 길러 늘어뜨렸다(사실 카이저차르긴 머리를 의미한다).

 

 

저자는 카이저(kaiser)차르(tsar)의 어원을 긴 머리라고 주장한다. 그 견해의 출처가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에 저자가 글을 쓰면서 참고한 문헌 목록이 없다


카이저와 차르의 어원은 로마의 지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카이사르는 대머리로 유명하다. 따라서 카이저와 차르의 의미가 정말로 긴 머리와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남성 군주의 강인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신체적 기호인 건 확실하다. 유럽의 귀족과 군주들은 치렁치렁한 가발을 착용했다독일의 황제 빌헬름 2(Wilhelm II)의 수염카이저라는 용어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했다. 당대 남성들과 지도자들은 빌헬름 2세처럼 수염을 길렀다.



* 160


 공상과학소설에서는 우주비행사의 체온을 떨어뜨려, 유리집 속에서 잠자는 벌거숭이 곰처럼 장기간 수면 상태에 들게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가족은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죽은 후 사체를 동결시켰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떠돌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마법의 얼음 왕국에 누워 재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저온학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트랜스타임주식회사에서는 사망 직후의 사체를 동결 처리하는 일을 한다. 죽음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병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미래가 오면, 그때 생명을 되찾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90]


 Science-fiction stories often involve an astronaut whose body temperature has been lowered, sleeping in suspended animation like a naked bear in a glass den. Walt Disney’s family swears it isn’t true, but a popular folk myth for some time now has it that Walt arranged to be frozen when he died and is lying in a magic kingdom of ice, awaiting his rebirth. Trans Time, Inc., a member of the American Cryogenics Society, does freeze people right after death, promising to bring them back to life in a later era, when the mysteries of death are scrutable and the carnage of their diseases.

 


자신을 냉동으로 보존해달라는 디즈니의 유언은 낭설이다.




* 22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짜낸 젖은 은하수가 되었다.

 

[<A Natural History of the Senses> 131]


 A mythic Gaia poured milk from her breasts and they became the galaxies.

 

 

그리스 신화에 묘사된 은하수의 유래는 헤라(Hera)의 가슴에서 나온 모유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Zeus)는 자기가 바람을 피워서 태어난 헤라클레스(Heracles)에게 젖을 주기 위해 자고 있던 헤라 몰래 젖을 물렸다. 헤라클레스가 젖을 빠는 순간, 그의 강력한 힘을 느낀 헤라가 잠에서 깨어났다. 헤라의 가슴에 뿜어져 나온 모유가 하늘에 퍼지면서 은하수가 되었다고 한다.




* 245


 어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나면 향기로운 소변을 보고(프루스트가 지나간 것들의 기억에서 묘사한 대로), 아티초크를 먹으면 심지어 물도 달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궁금증이 생겼다. 프루스트가 쓴 소설 중에 저런 제목이 있었어? 아니면 프루스트의 단편소설 제목일까? 지나간 것들의 기억으로 번역된 원문은 ‘Remembrance of Things Past’. ‘Remembrance of Things Past’최초로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의 영문판 제목이다.  




* 249


 입은 육체라는 감옥을 단단히 봉하고 있다. 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도움을 주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고, 그래서 진화 과정에서 입이 제일 먼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굼벵이, 곤충 등 모든 하등동물에게도 입이 있다.

 


하루살이, 누에나방, 깔따구 등과 같이 입이 퇴화한 곤충들도 있다.




* 322






 

아서 클라크의 2001 오디세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344





 수컷 두꺼비고기(조기어류의 하나옮긴이) 저음의 소리를 지른다.



구판(293)에 없는 옮긴이 주가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자가 생겼다.




* 390

 

 예술가들은 예술의 유기적 형식을 항상 자연에서 구해왔으므로 펄서’(규칙적으로 전파를 방출하는 천체의 하나. 빠르게 자전하는 중성자별로 추측된다옮긴이)라는 폭발음의 곡조를 발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펄서가 중성자별이라는 사실이 수많은 연구와 관측을 통해 밝혀졌다.




* 487~488

 

 태양계의 행성 중 절반 정도가 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얼마나 즐거운 충격이었던가. 토성뿐 아니라 목성, 천왕성, 해왕성, 어쩌면 명왕성에도 고리가 있다. 그리고 그 고리들은 서로 다르다.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명왕성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 아닌 왜행성으로 분류했다.


전문 용어에 대중에게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의미가 반영되었다면 바뀔 수가 있다. 그런데 개정판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전문 용어가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 75

정신분열증 환자들 조현병 환자들

 

* 161

온혈동물 정온동물 또는 항온동물

냉혈동물 변온동물

 

* 313

간질 뇌전증


* 434쪽 

할로윈[비표준어] 핼러윈

 



책에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더 있지만,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따로 쓰려고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책을 비판한 내 견해가 틀릴 수 있다. 틀린 견해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댓글로 꼭 알려주시라. 내 글에 대한 정오표를 남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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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연 2023-05-05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인상깊은 후기는 처음봐요!
혹시 블로그는 안하시나요? 블로그를 하신다면 구독해 보고 싶을만큼 좋은 분석이네요

cyrus 2023-05-05 09:05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도 서평을 등록하려고 생각은 했었어요. 그런데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등록하는 일이 너무 익숙해져서 네이버 블로그에 눈길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

다은이즈 2023-08-1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정판 나왔다길레 살려다가 이 글보고 그냥 구판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cyrus 2023-08-15 15:27   좋아요 0 | URL
다행입니다.. ^^

-두부공자 2023-11-0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서평이 더 감명이 깊습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고향으로 향하는 긴 항해 중에 여러 난관을 통과한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난관이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에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도 있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15)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12권에 그 유명한 세이렌(Siren) 자매가 등장한다. 세이렌은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존재다. 키르케(Kirke)는 오디세우스 일행의 귀향을 돕기 위해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밀랍으로 귀를 막고 재빨리 지나칠 것. 그런데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용맹함을 부추기는 듯한 말도 한다. 그대 자신은 원한다면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으세요.”[주] 산전수전 겪은 오디세우스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난관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는 아내도 자식도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하들은 귀를 막고 오디세우스 자신은 돛대에 묶은 채 귀를 열어 두도록 했다.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디세우스의 무모한 행동이 지적 호기심또는 알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의해서 발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거나 낯선 존재를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묘한 심리. 그것은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오디세우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오디세우스를 신에게 사랑받는 영웅이 아닌 우리와 어느 정도 비슷한 인간으로 바라보자. 우리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마르지 않는 호기심은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몸과 머리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다. 호기심을 충족하려면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서 경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23)




감각의 박물학은 감각을 이용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면서 살다 간 과거 오디세우스들, 그리고 떠나고 없는 오디세우스들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지구에서 모험을 시작한 현재 오디세우스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쓴 이야기꾼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은 인문학과 과학을 주제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감각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레이더망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향해 각자만의 레이더망을 내민 채 모험하고 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우리는 난관이 산적한 세상 한가운데에 뛰어든 오디세우스요, 모험가다


후각을 선호하는 오디세우스는 향수에 관심이 많다. 미식가 오디세우스에게 식당은 그들이 꼭 거쳐야 하는 섬이다. 미식가 오디세우스는 섬과 같은 식당을 어디든지 경유한다. 대담한 미식가 오디세우스는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음식 재료를 맛보고 싶어한다. 심지어 맛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오물처럼 보이는 괴상한 음식까지도 먹는다. 그들에게는 별미가 보물이다
















* 올리버 색스, 장호연 옮김 뮤지코필리아: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알마, 2012)




호메로스가 묘사한 오디세우스의 후예들은 좋은 노래를 듣기 위해 남들보다 귀가 더 크게 여는 모험가다. 우연히 듣게 된 멜로디를 잊지 못하면 그 멜로디가 나오는 곡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더 나아가 그 곡을 부르거나 만든 가수 또는 음악가의 또 다른 곡까지 듣는다. 음악은 쉴 틈이 없는 인생 모험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수많은 오디세우스를 위로해주는 힘이 있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말한 대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음악을 사랑하는(Musicophilia) 본능이 있다.

 

감각은 지구에 거주하는 오디세우스들의 동반자다. 하지만 이 동반자에게도 약점이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때론 엉뚱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할 때가 있다(착시, 환청, 기억 왜곡 등). 심하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중독).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감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오디세우스가 된 우리는 모든 감각이 열려 있어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즐기듯이 모험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모험하지 않는다. 인생 모험의 궁극적 목적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성장하면서 확장하는 라는 존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감각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 오뒷세이아1249, 천병희 옮김,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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