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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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대구 책방 <일글책> 평일 독서 모임 10월의 책]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오늘 밤엔 수많은 별이

기억들이 내 앞에 다시 춤을 추는데

 

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 위로

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

어느새 밝아 온 새벽하늘이

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

 

종소리는 맑게 퍼지고

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

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


 

- 전인권 사랑한 후에(1987) 노랫말 중에서 -





소리는 고막을 춤추게 한다. 고막은 아주 얇다. 그래서 고막이 물리적 충격을 받으면 파열되는 약한 신체 기관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막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귓속으로 들어온 소리가 고막을 움직이게 한다. 이때 고막이 흔들리는 현상을 진동이라고 표현한다. 고막이 흔들리면 귓속뼈도 같이 흔들거린다. 그러면 진동의 영향을 받은 소리는 달팽이관으로 전달된다. 소리를 만난 고막이 흔들면서 춤출 때 우리는 선명한 음악을 듣는다.

 

고막의 역할은 현악기와 비슷하다. 현악기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줄(, )이 움직여야 소리가 난다. 활로 줄을 문지르면 되는데 줄을 켠다라고 표현한다. 현악기 연주자의 몸놀림은 언뜻 완만하게 보인다. 하지만 박자가 느린 곡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몸을 유심히 살펴보면 가볍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박자가 빠른 곡을 연주하면 연주자의 몸놀림은 커진다. 연주자는 마치 격정적인 춤을 추듯이 움직인다. 따라서 연주자와 악기는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연주자는 악기를 소중하게 다룬다. 연주자에게 악기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조화로운 춤을 같이 춰줄 수 있는 동반자다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nard)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의 주인공 생트 콜롱브(Monsieur de Sainte-Colombe)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의 대가다. 하지만 그는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지 않는다. 콜롱브는 비올라 다 감바와 춤을 춘다. 감바는 이탈리아어로 다리(leg)를 뜻하는 단어다. 연주자는 두 다리 사이에 비올라 다 감바를 세운 채 줄을 켠다. 음악이 나오는 순간 연주자와 비올라 다 감바는 한 몸이 되어 리듬을 타면서 춤을 춘다. 마치 댄서가 뒤에서 파트너 댄서를 부드럽게 안으면서 춤추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세상의 모든 아침연주자와 악기의 물아일체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와 비올라 다 감바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함께 춤추면서 살다가 언젠가는 지쳐서 함께 쓰러져 죽어야 하는 운명으로 이어진 관계다


콜롱브의 제자가 되고 싶은 마랭 마레(Marain Marais)는 악기를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다. 콜롱브는 춤추는 비올라 다 감바와 함께 오두막집에서 만든 곡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곡을 발표하지 않는다. 마레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본인이 만든 곡이 아니다. 텅텅 빈 삶의 무명 연주자인 자신을 유명인으로 채워 주는 대중의 환호와 박수 소리다. 성공하고 싶은 마레는 궁중 음악가가 된다. 성공 뒤에 따라온 육체적 쾌락의 달콤한 속삭임도 마레가 좋아하는 소리다. 스승이 오두막집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사랑스럽게 안으면서 춤추고 있을 때, 마레는 스승의 두 딸을 껴안으면서 쾌락에 매달려 몸부림치고 있다. 마레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는 스승이 세상에 공개하지 않은 신선한 화음을 알아내기 위해 숨어서 엿듣는다.


콜롱브의 음악을 진심으로 귀 기울여 준 사람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다. 아내는 콜롱브에게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무사(Mousa)’. 무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신이다. 무사의 역할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다. 무사의 어머니는 기억의 신 므네모시네(Mnemosyne). 그래서 무사는 예술을 영원히 기억하여 간직한다. 콜롱브의 아내가 오래 살았다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콜롱브의 음악은 아내의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지음(知音)이 이 세상에 없으면 창작의 즐거움도 없다. 무사이자 지음인 아내를 잃은 콜롱브가 비올라 다 감바의 줄을 다 끊어도(絶絃)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콜롱브는 장녀 마들렌(Madeleine)이 연주자로 성장하여 자신만의 무사와 지음이 되어주길 원한다. 하지만 사랑에 눈먼 마들렌은 아버지의 진심을 알아보지 못한다. 딸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비올라 다 감바 연주 기법을 마레에게 알려준다. 마들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마레를 위한 무사가 된다성공에 눈먼 남자와 사랑에 눈먼 여자를 이어준 것은 음악이지만,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불협화음이 되고 만다.


대중의 눈에 비친 예술가의 이미지는 대부분 어두운 편이다. 항상 그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달라붙는 칙칙한 수식어가 창작의 고통고독한 영혼이다. 새로운 양식의 예술 작품을 만들 때 힘겨운 건 사실이다. 콜롱브는 자신이 활을 켤 때 살아 있는 자신의 작은 심장 조각을 찢는다고 말한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라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75)

 


누군가는 세상을 등진 채 오두막집에 혼자 있는 그가 쓸쓸해 보인다고 수군거릴 것이다. 하지만 콜롱브는 외롭지 않다. 그의 다리 사이에 일곱 개의 줄을 가진 동반자가 우뚝 서 있다. 콜롱브와 비올라 다 감바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비올라 다 감바는 가만히 있으면 말이 없다. 하지만 파트너인 콜롱브와 함께 춤추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콜롱브와 비올라 다 감바가 완전히 물아일체 상태가 되면 새로운 곡이 완성된다. 이 곡은 성공을 좇아가기 위해 급하게 만든 음악이 아니다천천히 만든 음악은 느리다. 이 곡의 제목은 <일곱 개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Adagio)>[주].





[]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원곡은 영화 <플래툰>의 삽입곡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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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부터 내일 화요일까지 7일을 쉬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장 긴 황금연휴를 손에 쥐었다. 원래는 화요일과 수요일로 연차 휴가 신청을 냈지만, 수요일만 승인받았다. 화요일도 쉬는 날이었으면 대구 동네 책방 여러 군데 방문하면서 책방지기들에게 연휴 인사를 하려고 했다. 책방지기들을 위한 연휴 선물로 책을 잔뜩 사려고 했는데 물 건너갔다.


연휴 열차표를 화요일에 예매했다. 사실 연휴 기간 열차표 전부 매진될 줄 알았다. 다행히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열차표는 남아 있었다. 수요일 826분 서대구역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열차를 예매했다. 826일은 생일 날짜다. 내가 일하는 공장은 서대구역에서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있다. 8시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8시 되기 전에 서대구역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수요일 서울 아침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날 대구에도 비가 조금 내렸으려나. 우산과 옷을 마구 때리면서 퍼붓는 장대비만 아니면 어디든지 걸어서 갈 수 있다. 구름이 끼고, 비가 살짝 내리는 날에 서울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2011년 여름이었나? 서울 독서 모임펭귄클래식코리아를 선보인 웅진그룹이 책 홍보 목적으로 만든 일반인 독서 모임이 있는 토요일에 비가 내렸다.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도서출판 숲, 2010)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향한 곳은 정독도서관이었다. 마을버스 종로 11이 정차하는 정거장을 찾지 못해서 헤맸다. 지난주 토요일은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날이었다. 그날 모임에 참여하려면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제일 마지막에 수록된 희극 을 읽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책을 <일글책>에 맡겨두었고, 찾으러 가지 못했다. 화요일에 쉬었으면, 책방에 가서 책을 가지러 올 수 있었다. 


도서관 여는 평일이라 정독도서관에 가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를 읽으려고 했다. 하지만 책을 만져보지 못했다. 도서관에 책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이미 8월부터 도서관이 휴관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더니만.


북촌 골목을 걷다가 <삼청공원 숲속도서관>에 갔다. 생태 및 환경 관련 도서 위주로 소장된 도서관이라서 내가 원하던 책은 없었다. 도서관 밖 주변 숲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좌석 공간이 있다. 햇볕이 따사롭고 숲이 맑을 때 여기 다시 와보고 싶다.

















* 박현수 경성 맛집 산책: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한겨레출판, 2023)

 


 

그날 운수가 너무 좋아서 점심은 종로에 있는 아주 오래된 설렁탕 전문 식당에서 먹었다. 내가 간 식당은 1902년에 생긴 <이문설농탕>이다. 경성 맛집 산책: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에 소개된 식당이다. 이 책을 보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식당에 자주 왔다고 한다. 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일요일의 남자’ KBS 전국노래자랑 명 MC 송해, 주먹으로 종로를 접수한 김두한 등이 있다.








 

김두한의 생애를 극화한, 내 동년배들이 열광했던(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고, 강성이 부른 드라마 OST ‘야인이 귓가에 스치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 김두한과 부하들이 설렁탕을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나는 처음에 돼지국밥 파는 허름한 식당이라고 생각했다. 그 식당이 바로 <이문설농탕> 구 명칭인 <이문식당>이다. 평일 점심 시간대라 역시 식당 안에 직장인들이 많이 왔다. 다행히 혼자 먹기 딱 좋은 탁자가 구석에 있어서 편하게 밥을 먹었다.
















[대구 책방 <일글책> 202310월 독서 모임 선정 도서]

* 파스칼 키냐르, 류재화 옮김 세상의 모든 아침(문학과지성사, 2013)


* [절판] 아일린 파워, 이종인 옮김 중세의 사람들(즐거운상상, 2010)

 


  

종로를 지나갈 때 내가 늘 피해야 할 곳이 있다. 그렇지만 끝내 지나치지 못한다. 그곳은 바로 <알라딘 종로점>이다. 대구 알라딘 서점이 생기기 전에 많이 갔고, 책을 많이 샀던 알라딘 서점이 <종로점>이다. 책을 많이 사면 안 되는 걸 잘 알기에, 딱 두 권만 샀다.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세상의 모든 아침과 아일린 파워(Eileen Power)중세의 사람들이다. 중세 관련 책들을 사 모으고 있어서 마침 좋은 책 한 권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 아리스토파네스, 최현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선(범우사, 2001)

 

* 미셸 푸코, 오르트망 옮김 담론의 진실(동녘, 2017)

 

* 미셸 푸코, 심세광 옮김 주체의 해석학: 1981-1982,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동문선, 2007)

 

 

 

다음에 간 곳은 <소요서가>. 을지로에 있으면 자주 가는 베이스캠프같은 곳이다. <소요서가>에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책 두 권과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선 샀다. 이곳에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 있을 줄이야.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선에 가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숙소에서 읽어 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내가 책방 주인이라면 이 책을 손님에게 권하지도, 팔지 않을 것이다. 그날 <소요서가>에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비극 번역본(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모두 있었지만,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 2는 없었다.
















* [절판] 미셸 푸코, 허경 옮김 문학의 고고학: 미셸 푸코 문학 강의(인간사랑, 2015)

 


 

절판된 미셸 푸코의 문학의 고고학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손에 쥐었다. , 그런데 그 책은 판매용이 아닌 열람용이었다. 내가 황금같은 책에 잠시 눈이 멀었다<소요서가> 직원이 문학의 고고학재고가 있으면 구해주신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 <소요서가> 직원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 내용은 다른 출판사가 문학의 고고학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간절히 원하는 책이 눈앞에 있는데 왜 사질 못하니.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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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0-03 1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독도서관 주변이 한때 저의 나와바리였는데 ㅎㅎ~~
작년 봄 정독도서관에 오래간만에 갔었는데 그 곳 벤치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설렁탕과 막걸리 1병, 좋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영화로 봤는데
원작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cyrus 2023-10-03 16:45   좋아요 1 | URL
이제 서울에 가면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도 미리 확인해야겠어요. 서울에 디자인이 멋진 도서관이 엄청 많던데요. ^^

제가 돼지국밥을 혼자 먹을 때 막걸리 한 병 반주 삼아서 먹어요. 지금 대구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국밥+막걸리 조합이 당기네요. ㅎㅎㅎ

<세상의 모든 아침> 모임이 독서 모임과 영화 모임, 두 개로 편성되어 있어요. 이번 주 금요일에 독서 모임 날이고, 다음 주 금요일이 영화 모임 날이에요. ^^

페크pek0501 2023-10-0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렁탕도, 책들도 군침이 돌게 하는군요.ㅋㅋ

cyrus 2023-10-03 16:48   좋아요 1 | URL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은 못 읽었지만, 황금연휴 첫날은 나름 재미있었어요. ^^

추풍오장원 2023-10-03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문학의 고고학이 다시 나오는군요!

cyrus 2023-10-03 16:52   좋아요 1 | URL
<소요서가> 대표님을 뵌 적은 없지만, 책방 특성상 인문학 관련 책을 펴내는 출판사들과 인맥이 형성되어 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 예전에 대표님이 제가 갖고 싶었던 절판된 책 한 권 구해주신 적이 있어요. 재출간하는 출판사 이름과 출간일은 모르지만, <소요서가>가 전하는 출간 정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

꼬마요정 2023-10-03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고고학>!! 다시 나오네요. 반가운 소식입니다.

<새>는 별로인가 봅니다. 아리스토파네스 작품은 <리시스트라테>밖에 몰라요. 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알게 됐어요. 파스칼 키냐르는 <부테스>만 읽었는데 어려웠어요. 음악 같은 소설이었어요.

이문 설농탕!! 저도 가 봤어요. 맛있게 먹었답니다. 저보다 오래 산 식당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책이야 워낙에 오래되고 기억에 남을 책들이 많으니까 익숙한데, 식당은 그렇지 않잖아요. 어릴 때부터 먹던 식당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있으면 반갑고 동지 같고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책은 오래된 것들이 많은데, 서점은 그렇지 않네요. 오래된 서점들이 계속 살아남아 주면 좋겠습니다^^

cyrus 2023-10-03 16:57   좋아요 2 | URL
재출간 기다려 봅시다! ㅎㅎㅎ

<리시스트라테>는 희극 전집 2권에 있는데, 결국 2권 읽기는 미뤄졌어요. 희극이 얼마나 재미없었으면 독서 모임이 2시간 진행되는 동안 거의 한 시간은 다른 주제의 대화를 해요.. ㅋㅋㅋㅋ <일글책> 대표 모임장이 이건 아니다 싶어서 결국 이번 주 토요일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자고 제안했어요. ^^

이제 종로에 가면 이문설농탕에서 밥을 먹어야겠어요. 20대에 종로를 많이 갔었는데, 오래된 식당을 이제야 알았네요. 그땐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아서 분식집으로 끼니를 때웠어요. ^^;;

꼬마요정 2023-10-03 21:29   좋아요 0 | URL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멋집니다. 근데 진짜 재미없었나봐요 ㅎㅎㅎ 20대엔 분식이 최고죠!! 예전엔 2천원이면 친구들이랑 떡볶이, 김밥 먹고 배불렀는데… 하긴 그 때 제 시급이 1,500원이었어요 ㅎㅎㅎ

stella.K 2023-10-03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지.ㅎㅎ
픽업 서비스 해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냥 왕창 사서 맡기고 오지 그랬어.
그럼 다음 날 너의 집 앞에 짠하고 배달될텐데.
옛날에 가끔 정독도서관 가서 저자 강연 듣고 오곤 했는데.ㅠㅠ
그럼 이날 혼자 서울 왔다 간 거야? 혼자 각잡고 바바리 날리며 종로를 휘젓고 다녔겠구만.ㅋㅋ
근데 참 절묘하네. 8시26분. 8월 26일!

cyrus 2023-10-04 06:49   좋아요 1 | URL
연휴 전날에 책을 미리 주문해서 대구 알라딘 서점에 맡겼어요... ㅋㅋㅋㅋ

바바리는 안 입어도 될 정도로 연휴 기간의 서울 날씨는 아주 좋았어요. 낮에 더웠어요. 서울 여행기는 아직 남았으니 기대해 주세요. 아무래도 주말에 몰아서 쓸 것 같아요.. ^^;;

서울로 향하는 열차 시간 중에 매진되지 않은 시간대가 새벽 첫 차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출발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여유 있게 8시 26분 출발하는 열차를 탔어요. 열차 탔을 때까지만 해도 좋은 기운이 느껴졌는데, 첫 번째 행선지를 잘못 정했어요.. ㅋㅋㅋ

얄라알라 2023-10-04 0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카페인 부작용 겪는 새벽 cyrus님의 유쾌한 포스팅으로 혼자 ㅋㅋ 거립니다^^ 열람용이라니! 하필 도서관 문 닫고 있었다니!! ㅋㅋ그래도 이문설농탕을 건지셨으니까 cyrus님의 서울 stay는 WIN!

cyrus 2023-10-04 06:50   좋아요 1 | URL
수요일 저녁에 있었던 일은 이번 주말에 정리해서 공개하려고 해요. 수요일 저녁 여행기의 주제를 살짝 알려드리자면 제가 좋아하는 ‘술’입니다. ^^

얄라알라 2023-10-04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철부대3가 딱, 재미있으려 할 때 끊고 연결해주는 맛이 있던데 cyrus님 담 페이퍼는 이번 주말 ㅋㅋ제가 확실히 낚이었습니다 ㅎ감사드려요. 즐거워져요

cyrus 2023-10-07 22:27   좋아요 1 | URL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요즘 써야 할 글이 자꾸 나와서 진작에 써야 할 글을 못 쓰고 있어요.. ^^;;
 



성경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헤로디아(Herodias)의 딸은 이름이 없다. 그녀는 성경을 이탈하여 종이로 펼쳐진 무대가 설치된 희곡으로 향한다.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순간, 그녀는 헤로디아의 딸이 아니다. 이 주인공의 이름은 살로메(Salome).





















* 오스카 와일드,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임성균 옮김 살로메(지만지드라마, 2023)


* 오스카 와일드, 정영목 옮김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민음사, 2009)

 




성경에서 정숙하게 놀고 있던 헤로디아의 딸을 섭외한 극작가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그는 엄숙한 도덕을 마구 조롱하는 사나운(wild) 신사다. 와일드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대는 영혼을 불어넣었다이로써 메마른 헤로디아의 딸은 욕정으로 살찌운 살로메로 변신한다

















* 박세현 《비어즐리 또는 세기말의 풍경》 (한길아트, 2004)


* 박세현 《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 (청색종이, 2020)




병약해서 가늘어진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의 펜 끝에 검정과 흰색이 묻혀 있다. 비어즐리는 펜으로 와일드가 연출한 살로메의 영혼에 색기(色氣)를 입혔다. 와일드와 비어즐리는 무명의 여자를 단숨에 유명한 요부(femme fatale)로 만들었다.







오브리 비어즐리

The Stomach Dance

희곡 살로메》의 열세 번째 삽화

1893




살로메독자와 관객 모두 홀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와일드는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의붓아버지 헤롯(Herod) 영주 앞에서 춤을 춘다. 희곡 초판에는 일곱 면사포의 춤(Dance of the Seven Veils)’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와일드는 춤의 구체적인 묘사를 생략함으로써 독자와 관객에게 에로틱한 상상력을 일으키도록 부추긴다. 독자와 관객은 와일드가 꾸민 여백을 통과해 헤롯의 연회가 열리는 궁전으로 향한다. 이들은 다 같이 일곱 면사포를 하나하나씩 슬며시 벗기는 살로메의 스트립쇼를 숨죽여 지켜본다. 사실 그들은 살로메가 어떻게 춤을 추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살로메를 쳐다보는 모든 남자는 비슷한 생각을 한다. 한 몸이 된 그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건 춤이 아니다. 살로메의 알몸이다.
















* 오드리 로드, 주해연 · 박미선 함께 옮김 시스터 아웃사이더(후마니타스, 2018)




, 여기까지만 보면 살로메남성이 만든, 남성을 위한 에로틱한 희곡이다. 하지만 에로티시즘은 단순히 남성의 정욕을 유발하는 음란한 정서가 아니다. 미국의 시인 오드르 로드(Audre Lorde)여성의 진실한 성적 욕구와 관능적 끌림을 강조하는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긍정한다,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성적 자유주의(sexual liberalism)와 쾌락주의의 동의어로 오해해선 안 된다. ‘건강한 에로티시즘과 성적 자유주의와 쾌락주의는 성적 본능을 말살하는 도덕규범과 종교적 권위에 저항한다. 하지만 건강한 에로티시즘은 성에 긍정적인 인식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원하는 성생활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한다.


헤롯은 포도주와 사과를 내밀면서 살로메를 유혹한다. 하지만 살로메는 헤롯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헤롯] 내 잔에 포도주를 따라라. (포도주가 들어온다.) 살로메, 이리 와서 나와 포도주를 마시자꾸나. 여기 최상급 포도주가 있거든. 시저께서 하사하신 거지. 네 붉은 입술을 포도주에 담가 봐, 내가 그 잔을 비울게.

 

[살로메]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주님.

 

[헤롯] 익은 과일을 가져와. (과일이 들어온다.) 살로메, 이리 와서 나와 과일을 먹자꾸나. 난 과일에 네 작은 이빨 자국이 난 걸 보는 게 좋아. 이 과일을 조금만 먹어 보렴, 남은 건 내가 먹을게.

 

[살로메] 배고프지 않습니다, 영주님.


 

(임성균 옮김, 75)


 

살로메는 모든 남자를 유혹해서 지배하려는 요부가 아니다. 그녀는 매력 없는 음탕한 노인이 성가시게 굴자,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힌다. 
















*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옮김섹스와 공포(문학과지성사, 2007)




극 중에서 살로메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는 인물은 두 명이다. 헤롯과 호위대장 젊은 시리아인이다. 헤로디아는 남편이 된 헤롯에게, 헤로디아의 시종은 호위대장에게 살로메를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살로메를 어떻게 쳐다봤을까?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였다면 두 사람이 정면으로 보지 않고, 곁눈질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키냐르는 에로틱한 장면이 그려진 로마 폼페이 벽화를 보고 난 후섹스와 공포라는 책을 쓴다. 키냐르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 로마인들의 성문화매혹과 공포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키냐르가 생각하기에) 폼페이 벽화 속 로마인들의 눈빛은 음란하지 않다. 정욕만 넘쳐흐를 것만 같은 그들의 눈동자 한구석에 섹스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고여 있. 그래서 자신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곁눈질한다. 키냐르는 영화와 예술 작품에 묘사된 것처럼 로마인의 성문화가 향락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로마인들은 섹스를 불길한 죽음을 연상시키는 공포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절정이 지나가면 팔팔했던 몸은 축 늘어지고, 용암처럼 뜨거웠던 몸의 열기는 싸늘히 식어간다. 신화 속 영웅들은 섹스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바람에 자멸한다. 영웅호색의 뒤에 죽음이 따라온다. 섹스의 즐거움에 빠지면 파멸이 가까이 오는 것을 잊어버린다. 매혹과 공포라는 섹스의 두 얼굴을 바라본 로마인들은 스스로 경계한다. 따라서 그들은 섹스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으려고 한다.

 

헤롯은 형의 아내(제수) 헤로디아와 결혼하기 위해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다. 우물(수조)에 갇힌 세례자 요한(히브리어: 요카난)은 근친상간을 저지른 헤롯을 계속해서 꾸짖는다. 헤롯은 성적 욕망을 이기지 못해 근친상간 금기(incest taboo)를 위반한 인물이다. 도덕적으로 파멸한 헤롯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요한의 질타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금기를 어긴 섹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하지만 의붓딸 살로메 앞에만 서면 위험한 생각은 작아지지 않는다음란한 욕심이 커질수록 근친상간 금기는 잊어버린다. 이런 헤롯을 잘 아는 헤로디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살로메, 헤로디아, 요한에 둘러싸여 난처한 상황에 처한 헤롯은 무의식적으로 살로메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곁눈질할 수 있다살로메의 성적 매력에 눈이 먼 호위대장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면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슬쩍슬쩍 쳐다봤을 것이다.


키냐르는 어느 인터뷰에서 모든 해석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 섹스와 공포를 에로티시즘에 대한 하나의 (주관적) 견해라고 소개했다. 살로메에 대한 필자의 해석 또한 망상에 가깝다. 그래도 살로메는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정면으로 보든 곁눈질하든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인물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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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임성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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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성경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헤로디아(Herodias)의 딸은 이름이 없다그녀는 성경을 이탈하여 종이로 펼쳐진 무대가 설치된 희곡으로 향한다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 순간그녀는 헤로디아의 딸이 아니다. 이 주인공의 이름은 살로메(Salome).


성경에서 정숙하게 놀고 있던 헤로디아의 딸을 섭외한 극작가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그는 엄숙한 도덕을 마구 조롱하는 사나운(wild) 신사다. 와일드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대는 영혼을 불어넣었다이로써 메마른 헤로디아의 딸은 욕정으로 살찌운 살로메로 변신한다


병약해서 가늘어진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의 펜 끝에 검정과 흰색이 묻혀 있다비어즐리는 펜으로 와일드가 연출한 살로메의 영혼에 색기(色氣)를 입혔다와일드와 비어즐리는 무명의 여자를 단숨에 유명한 요부(femme fatale)로 만들었다.


살로메는 독자와 관객 모두 홀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와일드는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의붓아버지 헤롯(Herod) 영주 앞에서 춤을 춘다희곡 초판에는 일곱 면사포의 춤(Dance of the Seven Veils)’이라고 언급되어 있다와일드는 춤의 구체적인 묘사를 생략함으로써 독자와 관객에게 에로틱한 상상력을 일으키도록 부추긴다독자와 관객은 와일드가 꾸민 여백을 통과해 헤롯의 연회가 열리는 궁전으로 향한다. 이들은 다 같이 일곱 면사포를 하나하나씩 슬며시 벗기는 살로메의 스트립쇼를 숨죽여 지켜본다사실 그들은 살로메가 어떻게 춤을 추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살로메를 쳐다보는 모든 남자는 비슷한 생각을 한다한 몸이 된 그들이 정말로 보고 싶은 건 춤이 아니다살로메의 알몸이다.


미국의 문학비평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1964년에 발표한 평론 캠프에 관한 단상』(1964년)[주]에서 부자연스러운 것 인위적이고 과장된 것을 애호하는 취향캠프(camp)’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캠프는 과장된 것, 벗어난 것, 제 상태가 아닌 물건을 선호하게 만드는 감수성이다. 손택은 오스카 와일드의 글과 비어즐리의 그림을 캠프의 예로 든다. 살로메와 비어즐리의 삽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좋다’, ‘나쁘다라는 식으로 판단한다. 살로메초연 당시 대중과 비평가의 대다수 반응은 나쁘다였다. 그들의 눈에 익은 엄숙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살로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엄숙함을 조롱한 와일드는 도발적이고, 과장된 아름다움을 선호한다. 따분한 도덕보다 색다른 아름다움에 우위를 두는 와일드의 탐미주의는 캠프 감수성의 또 다른 요소인 동성애적 탐미주의와 결이 같다. 캠프는 양성적 스타일인데, 와일드는 양성애자다.


살로메에 불쾌감이 느껴질 정도로 잔인한 묘사가 나온다. 특히 절정에 이른 희곡의 결말을 장식한 비어즐리의 삽화는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손택은 캠프에 대한 최후의 진술을 남기면서 캠프에 관한 단상을 마무리한다.

 


58. 캠프의 최후 진술: 캠프는 끔찍하기 때문에 좋다.’



손택은 캠프에 강하게 끌리며, 또 그만큼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살로메를 보는 독자와 관객의 반응 역시 그렇다. 캠프 감수성이 충만한 살로메는 끔찍해서 매력적이며 동시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희곡이다.

   

살로메새 번역본은 원전을 장식한 유명한 비어즐리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극 중 인물을 소개하는 장에 특별한 도판도 실려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르 운동에 참여한 화가 알렉산드라 엑스테르(Aleksandra Ekster)1917년에 제작한 무대 의상 디자인이다.






[] 출전: 이민아 옮김,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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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 청색종이 예술선 3
박세현 지음 / 청색종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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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세기말은 희귀 단어다. 그 이유는 세기말은 일상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세기가 끝나가는 무렵에 사람들은 이 단어를 많이 쓴다. ‘세기말야누스(Janus)의 얼굴을 가진 단어. 야누스는 로마 신화에서만 묘사되는 ()의 신이다. 문이 열리면 앞으로 지나갈 수 있으며 뒤로도 지나갈 수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앞뒤가 공존하는 문을 상징하는 야누스의 얼굴이 두 개라고 생각했다. 야누스의 얼굴은 처음과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야누스에서 유래된 1(January)한 해가 끝난 뒤에 이어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이다.


필자는 1980년대 말에 태어난 할배다. ‘세기말이 대중의 뇌리에 꽂혔던 1999년을 통과했다. 1999년의 문을 통과하기 직전 대중은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1999년 종말 예언설을 들먹거렸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999년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했다. 종말을 믿는 사람들은 공포의 대왕지구와 충돌하는 거대 소행성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가 21세기를 인식하지 못해 오작동할 수 있다는 ‘Y2K’까지 가세했다. 세기말의 짝꿍 ‘Y2K’‘Year 2000 Problem’를 뜻하는 단어다


당시 여린 심성을 가진 어린 필자는 종말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점점 다가오는 1999년의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래도 지구는 돌았다1999년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순간지구가 펑 터지는 줄 알았다공포의 대왕21세기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인류를 축하해 주러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컴퓨터는 똑똑했다. 21세기가 익숙하지 않은 몇몇 컴퓨터만 오작동을 일으켰지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세기말과 Y2K는 역사를 보관하는 서랍 속에 있다. 21세기 말에 인류는 서랍을 열어 세기말을 꺼낼 것이다. 필자가 오래 살아서 세계 최고령 인간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면 1999년에 만났던 세기말을 재회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장수하는 것보다 지구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구의 건강을 악화하게 만드는 인간이 공포의 대왕이다. 지구에 사는 공포의 대왕은 이기적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자연을 파괴한다. 그리고 지구에 온난화이불을 푹 덮어주기도 한다. 인간이 덮어준 이불 때문에 지구는 열병에 걸려 펄펄 끓는 상태다. 지구가 열 받으니까, 빙하가 너무 많이 녹는다.


세상이 점점 좋아질수록 공포의 대왕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판친다.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렵고, 괴롭다자고 일어나면 찾아오는 다음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진실과 가짜 뉴스를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AI가 가짜 뉴스를 걸러낸다고 해도, 여전히 두렵다. AI가 가짜 뉴스와 가상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세기말 없는 세기말에 살고 있다


과거 사람들 또한 세기말 없는 세기말을 살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을 살았으니까. 예술가들은 세상이 변하면서 요동치고 있을 때 느꼈을 당대 사람들의 반응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묘사했다. 어떤 예술가는 절망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묘사했다면, 또 다른 예술가는 명랑하고 행복한 분위기만 주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종말이 연상되는 세기말에 훗날 걸작으로 칭송받는 예술 작품들이 탄생했다. 세기말의 그림은 악의 꽃이었다: 세기말적 멜랑콜리가 만든 기상천외한 화가들[주1]은 세기말에 나온 예술 작품들을 시대별로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는 세기말은 어스레한 중세의 황혼빛이 남아 있는 15세기 말이다. 중세의 끝과 르네상스의 시작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화려한 르네상스를 돋보이려고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는 역사관은 편협하다. 중세 말과 르네상스 초기에 활동한 화가들은 종교 갈등을 직접 경험했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원해 줄 것만 같았던 종교는 갈수록 경건함과 멀어지고, 종교인들은 교파 지키기에 혈안이 돼 있다.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세기말적 우울에 예술가의 정신은 휘청거린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예술가들은 더 이상 종교적 구원에 기대지 않았고, 종교 개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암울한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였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다.


16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세기말의 문 앞에서 항상 축제와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희망 가득한 축제를 더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세기말의 문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동족을 죽이면서까지 향락을 누리려는 인간의 잔인한 행보에 실망하여 인류애를 상실한 사람들은 세기말의 문을 열기가 두렵다. 예술가들은 빛과 그림자가 섞인 세기말적 풍경을 캔버스에 기록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도덕이 타락하여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세기말 영국의 모습을 기록했다.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는 왕정 독재 정치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을 지지했다. 하지만 믿었던 혁명파는 보수적인 기득권이 되었다. 도미에는 과감한 변화를 두려워해서 세기말의 문을 여는 일에 소심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웃음 가득한 축제와 울음이 그칠 줄 모르는 전쟁의 틈 속에 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 과연 21세기의 세기말 없는 세기말이 만든 예술은 어떤 색으로 남게 될까? 잔인한 핏빛? 따뜻함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비정한 파란색? 아니면 검댕이 까뭇까뭇 묻은 초록빛? 우리 시대 예술의 색은 21세기 말 사람들이 평가해 줄 것이다.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1] 책 제목에 있는 악의 꽃은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집 제목이다. 그런데 이 책에 보들레르가 두 번 언급되지만, 정작 시집을 언급한 내용은 없다.








[2] 그리고 보들레르를 보를레르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144, 148).





* 31

 




 현재 보스가 남긴 회화는 40여 점 내로 이들 작품에는 날짜가 정확히 기재가 되지 않아서, 후대 미술사가[3] 그 창작 연도를 추정하고 있다.


[3] 미술사가들이





* 32





보스 그림에 나타나는 목시록[4] 세계관은 중세의 기본 이념이다.

 


[4] 묵시록적





[주5] 38





 알리기에리 단테 단테 알리기에리




[주6] * 42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한스 홀바인의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115

 




 나폴레옹은 당시 스페인 왕인 찰스 5[주7]를 협박해 왕위를 자신의 동생[주7] 조제프(Joseph Bonaparte)에게 넘겨주도록 요구했다.

 

[주7] 당시 스페인 왕은 찰스 5가 아니라 페르난도 7(페르디난드 7)’조제프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의 형이다. 본서 126쪽에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로 적혀 있다.




* 117

 




 1820년부터 1870년까지 프랑스는 정치적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이 혼란스런 정치적 격변이 사회와 문화는 물론, 민중들의 삶에 직격타가 된다. 샤를 10세의 왕정복고에 이어, 7월 혁명과 루이 필리프의 입헌 왕정 체제에서 다시 2월 혁명과 제2공화정의 설립, 다시 나폴레옹[주8]의 쿠데타에 이은 폭정과 전쟁, 프로이센의 지도 아래 통일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와 벌인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생략)




* 122





 검열은 도미에의 창작 활동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나폴레옹 1[주8]의 지지자들이 일명 촛불 끄는 덮개를 고안했는데, 이것은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의 빛과 지식의 불을 끈다라는 의미였다.



[주8] 1820년부터 1870년에 살았던 나폴레옹은 우리가 아는 나폴레옹 1(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몰락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21년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나폴레옹의 명칭은 나폴레옹 3또는 루이 보나파르트.





* 참고문헌

 




박홍규, 오노레 도미에, 소나무, 1987[8]



[주9] 출판연도는 2000이다1987년은 소나무 출판사가 처음 등록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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