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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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예문에 밑줄이 친 감상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르시오.

 

感賞  感想  感傷  鑑賞  監床



나는 2번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내게 2번이 정답이라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새로운 사실이란 내가 여태까지 몰랐던 또 다른 감상의 한자 표기. 국어사전이 가르쳐준 감상4번이다. 2번 감상의 뜻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이다. 4번 감상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사람은 예술 관련 지식이 없으면 작품 감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술에 무지하기 때문에 걸작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어떻게 볼지 설명해 주는 전시회 해설자(docent)를 찾는다. 과연 작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고 있으면 예술 감상이 쉬워질까? 일단 쉬워진. 하지만 재미없다예술 상식으로 차려진 밥상은 처음에 맛있다. 그러나 책과 전시회 해설자가 계속 떠먹여 주는 상식은 식상하다모든 사람이 다 아는 상식만 채워진 감상이 재미만 없는 게 아니다. 예술을 이해하고 느끼는 본연의 를 표현할 기회도 없다.


4번 감상은 거울 감()’ 상줄 상()’이 만나서 생긴 단어다. 나는 예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4번 감상의 한자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그러면 예술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질 거로 믿는다예술 작품이 막연히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거울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보자. 예술 작품이 거울로 변하는 순간, 거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에 비친 본인 모습을 만나면 이제부터 내가 느낀 것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작품에 관한 지식, 몰라도 된다. 여기서부터 예술 감상이 시작된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해석이 상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타인의 주관적 해석을 지적해서도 안 된다. 예술 감상하는 자신 또는 타인을 칭찬하라, 틀려도 좋으니 즐겨라. 지적(指摘)하는 태도는 예술 감상을 방해하는 적()이다.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을 존중하지 않는 감상은 지적(知的) 대화가 아니.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우리의 예술 감상을 막는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는 책이다. 시라토리 겐지(白鳥 建二)는 시각장애인이다. 매년 수십 번씩 미술관에 다닌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는 작품을 본다. 이 책의 저자는 시라토리 씨와 함께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오직 눈으로만 보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진 감상법을 해체한다. 예술 작품은 다양하다. 예술 작품에 눈으로 보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관람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은 손으로 만져야 하고, 때로는 움직여야 한다.


예술 작품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관람자 스스로 작품을 바라보고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전시회나 미술관에 관람자의 감상을 안내해 주는 해설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해설자와 함께 걸으면서 작품을 바라보면 관람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채워진 건 상식이다. 마음과 머리가 무거워지면 예술을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시라토리 씨와 함께 미술관에 가면 마음과 머리는 항상 가볍다. 미술관에 들어오기 전에 머릿속을 비워 두어야 한다. ‘아는 상태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술을 감상한다. 이것이 시라토리 씨가 지향하는 감상법이다.



* 33~34


 “나는 다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보거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

 아, 그렇구나. 그는 아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구나. (중략)

 시라토리 씨의 미술 관람에는 적당히 무지한 상태가 꼭 필요한 듯했다. (중략)

적당히 무지한 상태란 좋은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무심하게 그저 작품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마치 안내서 없이 다니는 나 홀로 여행처럼.



상식이 넘치는 상태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결국 눈으로 본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아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작품을 거울로 인식하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내 모습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의 입은 무겁다. 그래서 감상이 서투른 사람들은 예술에 관한 지식이 꾹 닫아버린 작품의 입을 열게 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감상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열쇠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힘, 그것이 바로 예술 감상을 위한 열쇠다. 관람자를 위한 거울로 변신한 작품이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 그럼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주세요.”


저자는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끼거나 의미를 찾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강조한다(127).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는 작품의 넓은 품은 예술로 표현된 세상과 사람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예술 작품은 모든 관람자의 생각들을 안아줄 수 있을 만큼 품이 넓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예술 작품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걸 제대로 봤으면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cyrus의 주석>



* 41

 

 최근에는 이것도 저것도 예술 작품이 되어서 포르말린에 담근 소[]나 대부호의 부동산 매매 기록을 작품으로 하는 예술가도 있다니까.










[포르말린에 담긴 소가 나오는 예술 작품은 영국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황금 송아지(2008)일 수 있다포르말린에 담긴 박제된 송아지의 발굽과 뿔,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원반은 금으로 되어 있다. 


허스트는 상어(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황금 뿔이 달린 검은 양, The Black Sheep with the Golden Horn, 2009) 죽은 동물을 포르말린 수조에 넣은 작품을 전시회가 아닌 경매에 공개하여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예술가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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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토요일 오전, 도동서원에서 머무른 시간은 잔잔하게 푸른 음악이었다. 이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나타냄말 ‘pastorale’. 목가(牧歌)풍으로.














도동서원에 가면 400살 된 큰 어르신,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 어르신은 지팡이 여러 개를 짚은 채 서 있다. 그래도 어르신은 건장하다. 10월 막바지에 흐르는 바람은 노랗게 물든 가을 색인데도 어르신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푸르른 여름 색이었다.[]

 




















* 김춘수 김춘수 시 전집(현대문학, 2004)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어르신은 이름이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어르신을 은행나무라고 부른다. 어르신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는 명찰에 보호수(保護樹)’라고 적혀 있다. 시인 김춘수어떤 존재를 향해 이름을 부르면 그것이 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은행나무와 보호수는 어르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이름이 아니다. 어르신은 400여년 동안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계속 말을 걸어 왔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어르신은 보호받는나무가 아니다. 살아있는 다른 존재를 아낌없이 보호하는 나무다. 어르신은 수백 년 동안 자신의 넓은 품에 돋아난 풀과 이끼를 안으면서 살아왔다. 사람들은 어르신의 몸에 자라는 풀과 이끼가 외관상 보기 좋지 않은 잡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잡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걱정할 것이다. 어르신을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르신의 양분을 얻어먹기만 하는 잡풀 때문에 어르신의 건강 상태를 우려한다.















* 더글라스 탈라미, 김숲 옮김 참나무라는 우주(도서출판 가지, 2023)





어르신은 쐐기돌 나무. 쐐기돌(keystone)이란 돌을 쌓아 올릴 때, 돌과 돌의 틈에 박아 돌리는 돌이다. 곤충학자가 자신이 심은 참나무의 일생을 관찰하면서 기록한 참나무라는 우주라는 책에 쐐기돌 식물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쐐기돌 식물, 쐐기돌 나무는 새와 곤충과 다른 식물을 먹여 살린다. 쐐기돌은 다른 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쐐기돌 나무의 삶은 다른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쐐기돌 나무에 곤충이 모이면 새는 그곳에 둥지를 틀어 곤충을 먹으면서 생활한다.


어르신을 가까이 보려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울타리를 함부로 넘을 수 없다. 어르신 옆에 어떤 곤충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눈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있다. 눈을 어르신 쪽으로 바싹 다가가면 그의 품 안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 존 마우체리, 장호연 옮김 클래식의 발견: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에포크, 2021)




어르신을 제대로 바라보면 그가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어르신의 노래는 음악이다. 누군가는 음악을 인간의 발명품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자연의 힘을 활용한예술로 본다. 인간은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는 존재일 뿐이다. 자연의 소리를 내기 위해 자연을 재료 삼아 악기를 만들었다. 따라서 음악은 자연이 준 재료.


어르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은 목가(木歌) 교향곡이다. 교향곡(Symphony)의 어원은 동시에 울리는 음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어르신의 노래에 새와 곤충, 잡풀이 내는 소리가 섞여 있다. 자연이 만드는 조화로운 노래는 세월의 바람을 오랫동안 맞아도 여전히 싱싱하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얽힌 관계를 너그러이 안아주고그들의 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르신이 사랑스럽다.





[] 1980년에 발표된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의 노래 제목이 <바람은 가을 색>(秋色)이다. 이 노래와 마츠다 세이코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珊瑚礁) 주책잡기(酒冊雜記)의 밤플레이리스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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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1-0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에서 나무가 크게 보이는 것 같았는데, 수령이 오래된 나무였네요. 날씨가 참 좋아보입니다.
올해 평년보다 10월이 조금 더 따뜻한 편이라고 해요. 11월도 며칠 더 따뜻할 것 같고요.
생각났을 때,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사진 잘 봤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3-11-02 21:42   좋아요 1 | URL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여름도 아닌, 가을도 아닌, 아주 적당한 날씨였어요. 봄인 줄 알았어요.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 회원들과 함께 도동서원에 갔어요. 곧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10월 마지막 주말여행의 여운이 더욱 진하게 느껴져요. ^^
 













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선보이는 공연작 다섯 편 중 두 편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살로메>(Salome)<엘렉트라>(Electra). 나머지 세 편의 공연작은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다. 106일에 <살로메>가 스무 번째 축제의 포문을 열었다. 10월 21일과 22일, 이틀 연속 막이 오른 <엘렉트라>는 국내 초연작이다. 나는 22일 토요일 공연을 예매했다베르디의 오페라 세 편도 예매하고 싶었으나 오페라 공연을 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소포클레스천병희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 출판 숲, 2008)


소포클레스, 김종환 옮김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지만지드라마, 2019)




원작은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동명 비극이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이 각색을 맡아 오페라 대본을 썼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에우리피데스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20)


에우리피데스, 강대진 옮김 메데이아: 메데이아, 힙폴뤼토스, 엘렉트라, 알케스티스》 (민음사, 2022)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아이스킬로스천병희 옮김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도서 출판 숲, 2008)


아이스킬로스, 김기영 옮김 오레스테이아 3부작》 (을유문화사, 2015)


아이스킬로스, 두행숙 옮김 오레스테이아》 (열린책들, 2012)


















아이스킬로스, 김종환 옮김 아가멤논》 (지만지드라마, 2019)


아이스킬로스, 김종환 옮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지만지드라마, 2019)


아이스킬로스, 김종환 옮김 에우메니데스》 (지만지드라마, 2019)





소포클레스와 함께 거론되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에우리피데스(Euripides)도 엘렉트라가 나오는 비극을 썼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세 편 중에 문학성이 높은 <엘렉트라>는 소포클레스가 쓴 것이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에우리피데스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도서 출판 숲, 2021)


* 에우리피데, 김종환 옮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지만지드라마, 2019)




엘렉트라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클뤼템네스트라(클리타임네스트라, Clytemnestra) 사이에 태어난 둘째 딸이다. 장녀는 이피게네이아(Iphigeneia).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는 연합군의 총지휘자였다. 수많은 함대가 항구에 집결하지만, 순풍이 불지 않아서 2년 동안 출항하지 못한다. 신탁에 따르면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치면 신의 분노가 풀려서 순풍이 생긴다.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간계에 속아서 희생되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클뤼템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복수하기로 결심한다(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복수하려는 아이기스토(Aegisthus, 아이기스토스)와 합세하여 트로이 전쟁 종전 이후 십 년 만에 미케네로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한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1부 <아가멤논>).


아이기스토와 클뤼템네스트라가 미케네를 지배하면서 아가멤논의 아들이자 엘렉트라의 남동생 오레스트(오레스테스, Orestes)는 후환을 피하고자 탈출한다. 혼자 남은 엘렉트라는 아가멤논의 무덤에 찾아가 복수를 꿈꾼다. 여기서부터 오페라 <엘렉트라>가 시작된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 엘렉트라의 여동생 크리소테미스(Chrysothemis)가 등장한다. 엘렉트라는 크리소테미스에게 어머니와 아이기스토를 함께 죽이자고 제안하지만, 크리소테미스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미케네 전역에 오레스트가 죽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엘렉트라는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하지만, 극적으로 오레스트와 재회한다. 그녀는 오레스트와 힘을 합쳐 아이기스토와 클뤼템네스트라를 살해한다.
















최혜영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푸른역사, 2018)


* [품절] 김기영 신화에서 비극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문학동네, 2014)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새 남편을 증오한다. 그녀는 두 사람의 손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위해서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 또한 어머니처럼 살인으로 불의를 응징하고자 한다. 엘렉트라와 클뤼템네스트라는 강인한 여성상과 표독스러운 악녀를 동시에 보여준다. 하지만 엘렉트라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가멤논이 잃어버렸고, 오레스트가 가질 수 없는 권력이다. 오페라에 생략되었지만, 비극에 묘사된 오레스트는 어머니를 죽인 죄로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3부 <자비로운 여신들>). 그는 또다시 유랑자 신세가 된다. 아이기스토와 클뤼템네스트라를 싫어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도 엘렉트라는 현실적으로 미케네의 실권자가 되지 못한다.






존 싱어 사전트

맥베스 부인 역의 엘렌 테리

1889




복수에 성공한 엘렉트라는 미케네 왕관을 아버지의 무덤에 바친다. 이때 왕관을 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미국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가 묘사한 맥베스 부인을 연상시킨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맥베스(민음사, 2004)

 

* 권오숙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예경, 2008)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비극 맥베스의 맥베스 부인은 스코틀랜드 영주인 남편을 설득해 덩컨 왕(Duncan)을 죽이도록 부추긴다. 맥베스 부부는 왕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맥베스 부인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몽유병을 앓다가 자살한다. 아주 잠깐이지만, 엘렉트라는 왕관을 직접 손에 쥠으로써 눈부시게 빛나는 권력의 무게감을 느껴본다. 그 순간 그녀는 황홀감에 취해 춤을 추다가 무덤 앞에서 죽는다. 엘렉트라가 심장으로 들은 무덤 속 아버지 목소리의 실체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권력이다.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름이 없다. 부인에게 권력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은 엘렉트라라고 부르면 이상한가. 이번 주 오페라 공연작은 베르디<맥베스>. 베르디는 맥베스 부인 역에 매우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 이건 꼭 봐야 하는데‥…. 어떡하지

















* 유진 오닐, 이형식 옮김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지만지드라마, 2019)



[제목에 대한 주석] 오페라 공연 리뷰 제목을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제목에 따왔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 비극 <엘렉트라>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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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2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오페라를 첨 본 느낌은 어떤감? 좋았나? 난 짐까지 두 번 봤나했는데 좀 지루했던 것 같아. 솔직히는 살짝 지루할 무렵에 끝나서 다행이었지. ㅋ 요즘 오페라 도 구성이 다양해졌다고 하던데 어떤지 궁금하네. 난 뮤지컬이 좋아.^^

cyrus 2023-11-01 21:26   좋아요 0 | URL
오페라 공연 본 사람들 의견 모두 똑같군요. 다 재미없대요.. ㅋㅋㅋㅋ 직립보행 책방지기는 예전에 본 오페라 제목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재미없었다고 했어요.. ㅋㅋㅋ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말과 사물을 다 읽지 않아도 읽은 척하는 방법이 있다. 말과 사물1장만 읽으면 된다. 1장 제목은 시녀들이다
















[카페 <스몰 토크> 푸코 읽기 모임 선정 도서]

미셸 푸코이규현 옮김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시녀들은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의 그림 제목이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Felipe IV)의 궁정 화가로 죽을 때까지 활동하면서 왕족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시녀들』은 벨라스케스의 화실을 방문한 펠리페 4세 부부의 딸 마르가리타(Margarita) 공주와 시녀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 왼쪽에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가 있고, 벨라스케스는 캔버스 앞에 서 있다. 그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일까, 아니면 시녀들일까? 화실에 공주만 있는 게 아니다. 펠리페 4세 부부도 화실에 있다. 왕이 어디 있냐고? 그림 중앙에 있다. 조그맣게 그려진 두 사람이 거울에 비친 왕과 왕비다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왕과 왕비는 왜 벨라스케스의 화실에 찾아온 것일까? 마르가리타 공주를 보러 오기 위해서? 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한 점의 초상화와 비슷하다. 왕과 왕비가 초상화 모델일 수 있다벨라스케스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본인의 모습을 그렸다. 관람자는 그림 속 화가의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모델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이때 화가는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관람자가 된다. 우리는 그림 바깥의 모델인 셈이다. 푸코는 시녀들에서 관람자와 모델 역할이 한없이 뒤바뀌는 기능을 수행하는 시선을 주목한다.

 

지금까지는 말과 사물을 읽은 척하고 싶을 때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제시했다. 내가 언급한 것은 1장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니다. 시녀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내용만 언급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말과 사물을 완독해서 어떤 책인지 설명할 수 있는 독자는 책에 미친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독자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으로 어려운 책을 읽는 사람이다. 말과 사물을 읽었지만, 책의 핵심보다는 곁다리에 더 관심이 많은 독자도 있다. 이런 사람의 머릿속에 진짜 광기가 흐른다. 여기서 말하는 곁다리책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 즉 푸코가 인용한 인명이나 문헌 또는 역주를 뜻한다. 하지만 진짜 광기의 독자는 곁다리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현재 말과 사물13장까지 읽었다. 1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장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본문 읽기가 지루할수록 곁다리에 눈길이 간다. 곁다리가 재미있다



* 30 [옮긴이 주4]

 




 화가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표현하는 것은 벨라스케스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나는 역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벨라스케스 이전에 활동한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정면으로 바라보는 본인 모습을 그려 넣었다.















* 파스칼 보나푸, 이세진 옮김 그림속으로 들어간 화가들: 위대한 화가들의 은밀한 숨바꼭질(미술문화, 2023)


[책 소개] 서평 <못 찾겠다, 꾀꼬리> https://blog.aladin.co.kr/haesung/14923064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Düre) 등이 큰 그림 속 작은 자화상을 시도했다. 그림속으로 들어간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 속에 숨은 화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모아놓은 책이다. 당연히 이 책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도 나온다.




* 33





 늙은 파체로가 세비야의 화실에서 작업 중인 제자에게 했다는 조언, 이미지는 액자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이지만 뒤집어 적용하는 이상한 방식.


[옮긴이 주] Pachero. 황금 세기(에스파냐의 16세기) 초엽에 세비야에서 활동한 화가. 벨라스케스는 한때 그의 제자였다.



역자는 말과 사물프랑스어 원서와 영역본을 참고하면서 번역했다. 원서가 인쇄되는 과정에 생긴 오탈자일까, 아니면 푸코 또는 역자의 실수일까? 벨라스케스 스승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다

















* [절판] 자닌 바티클, 김희균 옮김 벨라스케스: 인상주의를 예고한 귀족화가(시공사, 1999)


[책 소개] 푸코의 말과 사물1장을 일부 발췌한 내용이 이 책의 부록에 실려 있다.




파체로(Pachero)가 아니라 파체코. 프란시스코 파체코(Francisco Pacheco, 1564~1644)내가 가지고 있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벨라스케스에 프란체스코 파체코가 어떤 인물인지 소개되어 있다. 세비야에 거주한 파체코는 문화적 소양을 갖춘 화가였다. 그의 집에 세비야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벨라스케스는 6년간 파체코의 도제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의 제자가 된다. 파체코는 제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자신의 책 <회화예술>에 기록했다. 세비야의 장인(匠人) 파체코는 훗날 벨라스케스의 장인(丈人)이 된다. 


말과 사물다른 장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렇지만, 내게는) 흥미로운 곁다리여러 개 발견했다. 나머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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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18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다리 취향을 광기로 승화시켜주시는 cyrus님 좋아요!!
두 가지 광인 중 저 역시 후자^^;;;

파체로, 파체코.....어떻게 이런 세세한 실수까지 찾아내시는지, 비법 전수는 도둑 심보이니, 저도 한 번 자습이라도 해봐야겠어요. 정말 넘 신기하답니다.

cyrus 2023-10-25 06:41   좋아요 0 | URL
파체코의 말, ““이미지는 액자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가 인상 깊어서 파체코가 누군지 알아보다가 이름이 잘못 적힌 사실을 확인했어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니고요, 호기심이 오류와 오자를 찾게 만드는 지름길이었어요. ^^

호시우행 2023-10-18 0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곁다리에 심취하는 성향은 바로 지적호기심 탓 아닐까요? 공감합니다.

cyrus 2023-10-25 06: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다른 책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봅니다. ^^

레삭매냐 2023-10-18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진촤 ...

그리고 보니 그 화가가 등장하는
소설도 있었나 어쨌나 싶네요.

cyrus 2023-10-25 06:44   좋아요 0 | URL
국내 작가가 쓴 소설 중에 박민규의 <죽은 여왕을 위한 파반느>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이에요. 제목은 라벨의 곡 제목으로도 유명한데,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어요. ^^
 




전망 좋은 []

 

EP. 19


일글책, 직립보행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Sence #1


이번 주말에 무조건 꼭 읽어야 할 책 한 권이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말과 사물이다. 다음 주 토요일은 푸코 읽기첫 번째 모임 날이다푸코 읽기2022니체 읽기모임에 이어 카페 <스몰 토크>(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김완 사장이 올해 새롭게 진행하는 철학책 읽기 모임이다.
















[카페 <스몰 토크> 푸코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말과 사물(민음사, 2012)




말과 사물1부를 읽어야 하는데, 분량이 꽤 많다. 다른 책들을 쫓다 보니 말과 사물을 너무 소홀히 했다





Sence #2


토요일 오전에 진행되는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이 끝나면 말과 사물을 읽으려고 했다. <일글책>은 주말에 오후 6시까지 펼쳐져 있다. <일글책>이 덮을 때까지 1부 끝까지 다 못 읽더라도 절반 분량은 읽어야 했다.
















* 이창현 (), 유희 (그림)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1(사계절, 2018)

* 이창현 (), 유희 (그림)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2(사계절, 2023)




나를 포함한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는 여덞 명의 정회원 모두 독서중독자. 일단 <일글책> 주인장이 독서중독자’다. 그분이 회원들에게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추천했다. 나는 <일글책> 주인장이 구매한 익명의 독서중독자》를 빌려서 읽었다. 독서중독자들이 모여서 대화하면 당연히 책 이야기를 하게 되고, 상대방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알게 된다.


















* 크리스티앙 보뱅, 김도연 옮김 그리움의 정원에서(1984Books, 2021)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회원 한 분이 자신이 예전에 읽은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그리움의 정원에서가 좋았다면서 추천했다. 그분은 이 책을 <일글책>에서 샀다. 요즘 나는 보뱅과 같은 나라 출신 작가인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의 글에 푹 빠져 완전히 젖은 상태다. 보뱅의 글도 어떤지 한번 적셔보고 싶었다그리움의 정원에서를 구매하여 <일글책>이 다 덮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읽었다. 작고 얇은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정작 읽어야 할 말과 사물은 가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Sence #3


그리움의 정원에서에 프랑스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노랫말이 인용되어 있다. 노래 제목은 Non, je ne regrette rien(아뇨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 [절판] 에디트 피아프 마르셀 세르당, 강현주 옮김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은행나무, 2003)




종이에 흘러나온 에디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은 에디트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다. 에디트와 마르셀은 서로 멀리 떨어진 채 살아야 했고, 두 사람 사이에 길게 이어진 그리움 위에 사랑을 편지 위에 띄워 주고 받았.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르셀은 에디트를 만나러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는 마르셀이 사망하기 직전에 두 사람이 쓴 편지 글을 모은 책이다.





Sence #4


저녁에 <직립보행>에 갔다. 직립보행 부부는 다른 지역의 책방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자주 가는 책방 중 한 곳이 인천의 헌책방 <아벨 서점>이다. 추석에 <아벨 서점>에 가서 총 50권의 책을 샀다고 했다.

 

<직립보행> 주인장이 내게 서울 여정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기분이 들뜬 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적어도 한 시간은 걸린다면서 호언장담의 허세를 부렸다. 나는 입을 열면 버퍼링이 심하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한 시간은커녕 30분을 넘기지 못했다. 내 이야기는 구멍이 뻥뻥 뚫린 채 나왔다


<책 바>가 있는 망원동을 망월동이라고 잘못 말하기도 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직립보행> 주인장은 오류를 정확히 짚어냈고, ‘망월동은 광주에 있는 동네라고 알려줬다. 말보다는 글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익숙하다.





Sence #5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중간중간 끊어져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런데 말하는 도중에 책방에 손님이 왔다.

 

<직립보행>은 삼덕동에 있는 책방이라서 이 동네를 지나가는 연인들이 심심찮게 책 보러 온다. 부부 책방 주인장은 <직립보행>데이트 필수 코스라고 대놓고 홍보한다. 독서중독자 성향의 연인은 직립보행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유형의 손님이다. 오늘 온 연인은 독서중독자 정도는 아니었다.

 

부부 책방 주인장은 책을 유심히 고르는 연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책 큐레이팅을 한다. 이게 <직립보행>만의 영업 방식이다남편 책방 주인장은 나의 허술한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연인에게 말 걸기 시작했다. , 또 시작이군. 연인에게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Romain Gary)를 소개하면서 그가 쓴 대표작을 추천했다. 여기서 또 프랑스 작가를 만나네.

 

남편 책방 주인장은 내 말을 중간에 끊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연인이 독서에 몰입하는 데 방해되지 않게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얘기했다. 그렇지만 이미 끊어져서 잘게 부서진 이야기를 이어 붙여서 말하자니 너무 힘이 빠지고 버거웠다. 말 잘하는 책방 주인장들이 부럽다.





epilogue


결국 오늘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했다

하루만 남은 주말에 전력투구하듯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러면 일요일에 해야 할 일들이 다음 주말로 미뤄진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아뇨,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했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내겐 모두 똑같답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별것도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내 삶, 내 기쁨은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하니까요.



(그리움의 정원에서에서 인용된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노랫말,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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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3-10-1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 이 책 읽었는데 ㅠㅠ 그리고 여기다 후기까지 썼는데 ㅠㅠ 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가사가 나온게 완전히 기억에서 사라졌을까요. ㅠㅠㅠㅠ 이건 분명 인셉션에서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다른데서 들어도 이렇게 책에 나와도 시간이 지나면 인셉션만 떠오르는 것이다! 라고 변명을 생각해봤습니다만. ㅡㅡ;;

cyrus 2023-10-17 21:49   좋아요 1 | URL
에디트의 노래가 영화에 나왔군요. <인셉션> 정말 유명한 영화죠. 이때 영화 개봉 당시 책을 엄청나게 좋아했던 시절이라 영화를 보지 못했어요. ㅋㅋㅋㅋ

서니데이 2023-10-15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 페이퍼의 제목을 보고 에디트피아프를 생각했는데, 그 노래에서 온 게 맞았네요. 인셉션에서 많이 나오긴 했지만, 이전부터 유명한 곡이긴 했어요. 프랑스어 번역된 가사도 좋았던 것 기억나고요. 페이퍼에 가사도 소개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이제 10월이 되어서인지 아침 저녁으로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네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cyrus 2023-10-17 21:51   좋아요 1 | URL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항상 유튜브로 음악을 켜요. 요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고 있어요. 저녁은 완전 가을 날씨에요. 서니데이님,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새파랑 2023-10-1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진정한 독서중독자 이십니다. 책을 좋아하신다는게 글에서 확 느껴집니다~!!

cyrus 2023-10-17 21:54   좋아요 1 | URL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다 보니 완독한 책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슬럼프에 빠져서 글 한 편 쓰는 것조차 버거웠던 2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