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신파극에 나오는 전형적인 대사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신파극의 대사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만, 이들이 살고 간 삶의 흔적과 후대에 남긴 유산은 우리에게 종종 살아갈 힘과 희망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우리 안에서 반추되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

 

이들이 하나의 신화처럼 우리에게 되새김당하는 것은 그네들의 보통 사람들과 다른 극적인 삶에서 비롯한다. 청천벽력 같은 불운의 연속에도 꿋꿋이 운명에 맞서며 오히려 ‘희망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어떤 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힘든 시기를 살고 있는 동시대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이는 남은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에 모든 것을 보여주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20대에 머물며 살고 있는 제임스 딘, 리버 피닉스 같은 요절한 천재도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회자된다.

 

오늘이 ‘영원한 문학소녀’ 장영희 교수가 사랑하는 아버지 곁으로 떠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오랜 독자들만 그녀를 기억할까. 잇따른 암 선고와 투병생활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자신의 밝은 에너지를 글과 강의로 전파해왔던 그녀였기에, 생각날 때마다 그녀의 글을 읽어도 존재의 허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에 그녀를 만난 것은 시간을 거슬러 한창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었을 때다. 우연히 생활관의 책장에 꽂혀 있는 장영희 교수의 책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였다. 나는 그 때까지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학 에세이였다. 나는 그 책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위대한 개츠비>,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들을 새롭게 만났다. 나는 문학에 대해 무지했지만, ‘문학은 우리가 진정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킨다’는 말이 좋았다. 문득 나는 그녀의 문학보다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에세이집인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게 되었다.

 

에피소드마다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성당 옆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건네는 ‘구심’환을 받고 나눔을 모르는 자신의 이기성을 탓하고, 차마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지 못한 이들에게 글을 통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다. 치부를 드러내는 솔직함, 그리고 반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그녀가 너무나 순수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찌들고 일그러진 마음을 맑은 물에 헹군 듯,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장애인으로서 취학과 진학 때 마다 괴로움과 설움을 겪어야 했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고통이며 투쟁인 그가 그 고통과 수모를 모두 삭여서 그토록 맑고 밝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면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국내 어느 대학 박사과정에 응시했다가 면접고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라는 냉혹한 선언을 듣고, 차분하게 “그런 규정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와서는 영화 ‘킹콩’을 보러가, 그 거대한 고릴라가 포획되기 전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말할 수 없이 슬픈 눈 때문에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과 가족들이 겪었던 여러 곡절들을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음기까지 머금으면서.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디에 가고 싶었다’라는 문장을 읽자니, 늙은 아버지의 숱 없는 머리를 보는 것 마냥 까닭 없이 서러워진다.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불운했던 일들을 자신의 몸 안에 담고 살아왔지만, 그녀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희망 메신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암 투병’을 하는 ‘장애인’이라는, 범인(凡人)으로서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늘 소녀처럼 웃으며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문화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활발한 삶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그녀의 삶 자체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모범이 되었던 셈이다.

 

 

 

 

 

 

 

 

 

 

 

 

 

 

나의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오롯이 기적의 책이 되었으면 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프롤로그 중에서, 11쪽)

 

 

그녀가 죽음에 맞서 보여줬던 강력한 희망의 힘은 그대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고, 또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도 오롯이 담겼다.

 

유작에서도 그녀는 세상은 살만하다고 ‘희망’을 담아 전한다. 그렇기에 고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책은 지금도 독자에게 진짜 보물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저자가 직접 교정을 본 이 책은 물론이거니와 『내 생애 단 한 번』이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제목을 단 고인의 책들이 지금 덩달아서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인지도...

 

 

 

 

 

 

 

 

 

 

 

 

 

 

“간혹 아침에 눈을 뜨면 불현듯 의문 하나가 불쑥 고개를 쳐듭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아등바등 무언가를 좇고 있지만 결국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딱히 돈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예도 아닙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장영희가 왔다 간 흔적으로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진다면, I shall not live in vain...” (97쪽)

 

 

그녀는 어느 계절도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고, 매일 소중한 하루라고 말한다. 또 우리 삶의 계절 또한 지금 이 순간의 계절이 가장 아름다우니 지나간 시간에 연연할 것 없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왔다 간 흔적의 시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잊기 힘들고 그립다. 그래서 ‘절친’ 김점선 화백과 함께 돌아온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가 무척 반갑다. 아마도 두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흐뭇하게 미소 지면서 시화집 전시회를 보고 있을 것이다.

 

 

 

 

 

김점선  「장영희에게」

 

김점선씨가 이 초록빛 풀밭의 행복한 말을 장영희의 말로 지정한 이유는 뭘까? 황우석의 줄기세포 꿈은 멀어져 가버렸지만 금방이라도 뒷다리를 쭉 펴고 벌떡 일어날 듯한 저 빨간 말의 힘을 소망했을까. 아니면 세 평짜리 복잡한 연구실에 갇혀 이런저런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사는 내게 저 넓은 초원의 자유를 선사하고 싶었을까. 아니, 그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저 표정,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듯한 표정 때문에 이 예쁜 빨간 말이 내 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점선씨 옆에 있으면 늘 그렇게 웃기 때문이다. (205~207쪽)

 

이해인 수녀는 “장영희와 김점선이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함께 보내는 봄 편지, 희망과 위로의 러브레터”라고 말했다. 희망을 갖고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시화집과 전시회는 분명히 그녀의 바람대로 누군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히고, 이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생전 그녀가 좋아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줄 수 있거나
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
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그녀는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정말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자신으로 인해 고통 하나라도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게 더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내지는 호기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디킨슨의 시를 좋아했던 그녀는 시인의 고독하지만 정결한 삶, 절대자를 사랑하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관통하던 시인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디킨슨은 세상과 고립되어 시를 썼지만, 그녀는 문학이 무언지도 모르는 세상의 작은 사람들, 그저 일상조차 버거운 보통 사람들을 위해 문학의 숲으로 이끌어주었다. 더욱이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위로가 되는 문학,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문학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살아갈 기적’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가 그녀의 삶과 글을 기억하는 일이다.

 

 

P.s 당신이 사랑했던 에밀리 디킨슨,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윌리엄 예이츠와 함께, 그리고 문학과 함께, 그렇게 그리워했던 아버지와 함께, 그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항상 평안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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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Scene #1  문제적 인간, 정도전

 

물 1g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려면 1㎈의 열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0도의 얼음을 같은 온도의 물로 변화시키기 위한 융해열은 80㎈에 달한다. 즉 1g의 얼음을 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열량은 같은 양의 물의 온도를 무려 80도나 올릴 수 있는 열량과 같다.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변화들은 얼음이 물로 변화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보여도 밑바닥을 살펴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변화를 위해 뿌려진 밑밥이 적지 않게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배경만 들여다보아도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구체제의 오랜 모순,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따른 국가재정 파탄, 계몽사상의 확산 등 수도 없이 깔린 밑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대개 아름답고 숭고한 이상을 명분으로 삼지만, ‘혁명은 혁명가와 독재자, 그리고 시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결과는 참혹하기 마련. 국가와 체제가 흔들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피아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긴 시간 믿어온 절대적인 신뢰와 가치마저도 잊게 만든다.

 

정도전은 국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꽤 혼란스러운 존재다. 조선을 건국할 때 정도전은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한다. 한양 천도, 조세 개혁, 사병 혁파, 병법서와 법전 편찬 등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을 건국한 주인공은 이성계로 나온다. 그뿐만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를 지킨 충신으로 등장한다. 이에 비해 정도전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역적 누명을 쓰고 역사 무대 밖으로 강제로 퇴장 당했다.

 

백성들을 위한 민본정치를 꿈꾸며 가슴에 품고 있던 웅지를 다 펼쳐보지 못하고 죽은 정도전의 시신은 오늘 현재까지 찾을 길이 없고 묘소도 없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고 더더욱 조선실록은 패자(覇者)의 그늘에서 써져서 일까?

 

2인자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자리다. 2인자는 1인자를 보필하는 책사(策士)이자 실권자이며 후계자로 여겨지지만 1인자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 제거대상에 오른다. 또 2인자는 상황에 따라서 가차 없이 버림받기 일쑤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万人之上)’ 정도전. 그는 뛰어났기에 불우했던 2인자였다.

 

왕조시대를 살았던 곡절 많은 정치인들의 생애는 그가 펼쳐보였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배지에서 한양으로, 멸망 왕조에서 새 왕조의 개국 공신으로, 재상에서 간신으로, 최고 실권자에서 반역자로. 그를 설명해 낼 주제어들은 여럿이다. 그만큼 정도전은 여러 무늬와 결로 해석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그 폭과 깊이는 더해질 수 있다.

 


 Scene #2  혁명을 위해 스스로 ‘장량’이 되다 

 

그런 정도전을 다시 평가를 위한 무대로 호출했다. ‘변명’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 속에서 그려진 정도전의 모습은 나라를 망친 인물이었다. 조선 왕조 500년 기간 동안 나라에 해악을 끼친 역적으로, 말기인 대원군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복권됐던 인물이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자신과 이성계의 관계를 중국 한(漢)나라 고조 유방과 참모 장량의 관계에 비유하며 ‘한 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고 했다.” (42쪽)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지만, 그는 형식적인 시조였을 뿐 실질적인 시조는 정도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꿈꾸며 나라를 명나라와의 전쟁이라는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으며, 개혁이라는 명분 앞에서 스승과 친구에게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던 냉혈한이었다. 고려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점에서 철저한 정치인이었기도 했다.
 
21세 때 당시 개혁군주로 인기가 높던 공민왕의 일탈행위를 폭군의 비행에 비겨 신랄하게 꼬집었던 대단한 배포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정도전 스스로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해 ‘유방과 장량’을 인용했던 모습에서 겸손하지 못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냉정하고 자존심이 높았던 성격이 주변으로부터 질시와 시기를 야기하였고 이성계와의 관계를 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혁명동지로 인식했다는 것이 최대의 부덕이기도 하다.

 

조선의 헌법 초안인 <조선경국전>, 역사책 <고려사>, 불교비판서 <불씨잡변>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은 이후 조선의 헌법전인 '경국대전'의 기초가 된 것으로, 조선왕조가 그의 손에 의해 기획됐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 건축과 수도 한양도 바로 그의 작품이다.

 


 Scene #3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정도전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 데 앞장섰던 것은 절대왕권의 시대를 끝내고 입헌군주제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만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정도전의 민본위주의 정치사상은 단순히 유교적 정치사상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고려 말 부패한 지배계급 아래에서 신음하던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정신이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인군의 ‘위’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일 인군이 천하 인민의 인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 인심을 얻으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조선경국전』 한영우 역, 올재클래식스, 36쪽)

 

정도전은 <맹자>의 민본주의를 자기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다. 유교적 민본주의에서는 군주의 정통성을 천명에 두고 있으며 그 천명은 궁극적으로 백성에 의해 확보되고 유지된다. 맹자에게 정치적 행위의 현실적 근거가 민심이라면, 이념적 근거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유교적 민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도전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전은 왕권의 세습을 인정하면서도 권력을 감시·통제하고 분산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왕권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실제로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독재자로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정도전의 믿음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정도전의 역성혁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맹자>를 그에게 소개한 사람이 같이 공부하면서 지낸 지음(知音) 정몽주라는 것이다. 귀양을 가게 된 정도전에게 소일거리삼아 읽으라며 보내준 책 한 권이 고려의 역사를 마무리 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Scene #4  “민본주의를 이뤘는가?”  

 

정도전 그리고 조선 건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자문해본다. 만약 정도전이 살아 돌아온다면 백성, 즉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과연 한국 사회는 정도전에게서 어떤 현실적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까?

 

정도전은 재상 정치론 때문에 왕권 정치를 추구하는 이방원의 역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정도전이 추구한 민본주의는 자신이 직접 왕이 되거나 백성을 주권자로 내세울 때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념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의 힘과 역사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왕권의 원천이 백성에게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성의 주권이 왕이라는 매개체 없이 작동하는 체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실천적 한계를 인식하고,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왕의 자질이 가장 뛰어났던 이방원을 후계자로 밀고 그를 통해 민본주의를 구현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과 전혀 다른 방향 혹은 더 화려하게 발전하는 방향으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치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벤트 정치, 가장 친했던 친구와 스승조차에게도 칼을 겨누는 냉혹함, 인신비방이 난무하는 추악한 모습 등.

 

특히 정도전의 입을 빌려 나라가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은거하면서 그저 자기 몸 하나 보전할 생각만 하는 이름만 ‘선비’인 관료들의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자칭 관료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정도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르침이다.

 

완벽한 성공은 철저한 실패만큼 길하지 않다. 조용한 가운데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미리 계획한 대로 한 국가를 부수고 한 국가를 세운 혁명가 정도전이다. 뼈를 깎는 자기혁신과 민본주의, 부국강병의 의지는 21세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울림을 준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필요한 덕목은 태평성대를 불러올 마법의 능력이 아니라 바른 가치와 비전, 그리고 이를 끌어낼 통합의 리더십일지도 모른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소통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그게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다.

 

70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혁명은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과거를 논하지만, 결국 그 생각의 끝이 닿는 곳은 현재이다. 2014년의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면 혁명조차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가장 불온한 서사이다.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부활한 정도전은 우리에게 묻는다. “민본주의를 이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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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식 더러운 똥오줌도 / 그대 마음 하나도 거리낌 없는데 / 늙으신 부모님 눈물과 침 떨어지면 / 그대는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 그대의 몸뚱어리 어디에서 나왔는가 / 아버님의 정기와 어머님의 피라네 / 그대여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오 / 젊으실 때 그대 위해 살과 뼈가 닳으셨소.” (『명심보감』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 중 제3절)


 

 

 

 Scene #1  우리는 유태인입니까?

 

유태인은 결혼하면 부모와 한집에 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담에도 “고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은 고양이 두 마리를 한 가방 속에 넣어 기르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있다.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였다. 장모가 없었기 때문이다”는 속담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젊어서는 건강함을, 늙어선 백발을 자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백발은 자랑거리가 못된다. 이제 자랑할 수가 없다. 많은 어버이는 자식들에게 벌써 천덕꾸러기가 돼 있다. 효(孝)가 미덕이니 하는 말은 박물관에서나 찾아야 할 세상이 다 됐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최근 20, 30대 미혼 남녀 회원 천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자의 90%, 남자의 40% 이상은 시부모(부모)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모시고 살겠다’는 여자와 남자는 각각 4%와 10% 이상이었다. 만약 그들의 부모에게 거꾸로 똑같은 질문을 해봤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오늘은 어버이날. 붉은 카네이션 물결로 가득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요란함은 이 나라가 마치 어른들의 천국임을 확인이라도 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땅의 어른과 어버이는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그 많은 자식들이 하루 동안의 ‘효도 대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Scene #2  효란 무엇입니까?

 

 

 

 

 

 

 

 

 

 

 

 

 

 

 

 

<논어>에서 공자는 대화를 통해 효의 본질을 명료하게 가르쳐주고는 했다. 위정(爲政)편의 이 대화는 짧지만 공자의 성품을 잘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맹무백이라는 사람은 노(魯)나라 대부(大父)의 맏아들이었는데 마음이 착했다. 그가 “효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질병을 근심한다”(父母 唯氣疾之憂)라고 대답했다. 맹무백은 건강이 좋지 않았나 보다. 그렇기에 건강 때문에 혹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 우려가 있으므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효라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효자라 해도 질병에 걸릴 수가 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질병에 걸릴까 염려하는 걱정만은 어쩔 수 없이 남겨두되 다른 걱정은 일절 끼쳐서는 안 된다. 혹 기질을 부모의 질병으로 풀이한다면 이 구절은 효행이란 자식이 부모가 병에 걸리지 않기만을 늘 걱정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공자가 살고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효를 행할 때 진정 사랑하는 마음 없이 행하는 가식적인 예가 그때도 지금과 같았던 걸까. 위정편에 보면 견마지양(犬馬之養)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나 말 따위도 모두 (서로를) 먹여주고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53쪽)

 

부모를 모심에 있어서 집에서 기르는 개나 말처럼 부양하는 정도의 물질적인 것으로 대신하니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요즈음은 맞벌이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신혼부부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도 직접 애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육아원에 맡기거나 장모나 시어머니가 키우는 예가 많다.

 

자기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겠는가.

 

효(孝)는 늙을 노(老)를 아들 자(子)가 업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유교의 도덕 사상의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우리나라의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 왔다.

 

 

 

 

 

 

 

 

 

 

 

 

 

 

 

 

<동몽선습>에서 말하기를 어버이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성스러우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스럽고,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순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는 어짐으로 도와야 사람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어버이에게 효도를 한 후에야 임금에게 충성하고, 동생은 형에게 공손한 후에야 어른에게 공손스러우니 효가 가장 으뜸이라고 했다.

 

오늘날 삼강오륜에 한 가지라도 위배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이 삭막하고, 악랄스럽고, 이기적이고, 불효와 폐륜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Scene #3  진짜 탕자는 누구인가? 

 

효는 시대와 종교와 사상을 가리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윤리규범으로 지켜져 왔다. 서양문명의 바탕이 되는 기독교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있다. 십계명 중 앞에 네 개는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연관된 것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관계를 규정한 것인데 인간관계의 규범에서 제일 첫 번째를 효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살아계신 부모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섬기겠느냐 하는 것이며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을 정성껏 받들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가 맹무백에게 강조한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의 귀환’에 나오는 아버지가 있다.

 

큰 아들은 신실했고 작은 아들은 제멋대로였다. 하루는 작은 아들이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당겨 달란다. 기어이 작은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재산을 다 날리고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탕자라고 불렀다. 큰 아들은 달랐다. 아버지의 뜻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겨진 일에 충실했다.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사람들은 그를 효자라고 칭찬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거의 굶어죽을 상황에 처해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집에는 종들조차 풍족히 먹고 사는데 자기는 지금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들은 즉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염치없지만 아버지에게 자기를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하면 그 정도는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8~1669년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단 하룻밤도 깊은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일상이 되었다. 얼마 후에 드디어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몰골은 영락없는 거지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아들을 알아보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그저 집에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아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인다.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심술이 나서 아버지에게 따진다. 아버지는 안타까워하며 간곡히 이른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1~32)

 

같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큰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는 동생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동생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큰 아들이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는 점이다. 작은 아들은 한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큰 아들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만큼 했다'는 생각에 여전히 은혜가 뭔지 몰랐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은혜로 대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점이다. 큰아들이야말로 집안의 탕자였다. 그는 못난 자식을 근심하고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Scene #4  효는 만유 공통의 윤리 

 

부모님을 위하여 하는 일을 귀찮게 여기거나 짜증을 내면서 효도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은혜를 생각하면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실천하는 효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큰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의 본질이다. 송나라 때 소옹(邵雍)은 큰 추위, 큰 더위, 큰 바람, 큰 비가 있으면 집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게으르거나 자기 몸을 아껴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자기 몸을 공경했기 때문이었다.

 

살아생전에는 이러한 것을 모르다가 제 자신이 애를 키워보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다 못한 죄를 느끼게 된다.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보은은 정성이 깃들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이 있어야 한다.

 

세월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효자는 화장터엘 가보라고 했다. 거기에 가면 제 아무리 불효자식도 효자가 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불구덩이 속으로 어버이를 들여보내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 그리고 잠시 뒤 한줌의 재로 말없이 다가온 망자(亡者)를 맞이하는 숙연한 모습들. 그 시작과 끝에서 눈물범벅이 된 울부짖음.

 

만유 공통의 윤리이며 도덕률인 효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구시대의 낡은 유물취급 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복잡한 고대의 윤리규범을 현대인들이 따라가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그대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전통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듯이 우리의 현실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예절과 풍속은 효를 바탕으로 생활 양식화된 문화로 정착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가다듬고 회복시켜야 한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와 환경 속에서 사회적, 가정적 연대감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 소외감마저 들어 어떻게 살아가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장래를 위해서 가정이나 학교, 나아가 사회, 국가 교육을 통하여 전통윤리인 효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병폐를 바로잡고 건전한 사회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노인은 늘어나고 어버이와 어른이 사라져가는 세상. 물론 지금은 ‘논어 시대’가 아니다. 부모 자식이 함께 사는 것이 만능도 아니다. 세태는 당연히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람 사는 이치와 근본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여기가 유태인의 나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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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프로스트, ‘걸어 보지 못한 길’ 중에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삶이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지 못한 첫 번째 길을 아쉬워하며 다음 날을 위해 이 길을 남겨둔다. 길은 언제나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누구나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 그저 자기가 선택한 길이 더 나은 길이길 바라며 숲으로 계속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채 인식하지 못한 것의 중요성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왜 가치 있는 것인가를 밝혀내야 하며 동시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구자의 임무이자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한 작업은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 빈정거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처음 말했거나 행하였거나 깨달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수고에 대한 당연한 답례일 것이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은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름 중의 하나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류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마치 시인처럼 읊은 책이다. 카슨은 인류가 ‘성장’과 ‘개발’이라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비록 카슨은 화학적 방제로 해충을 박멸하려던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되었는지를 주로 조사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우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인류가 택한 길이 결국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오염시키고, 나무들을 시들게 하고, 지저귀던 새들마저 떠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침묵의 봄’을 불러올 것임을 예언하였다. 나비가 없으니 꽃도 피지 않고, 새들이 없으니 봄도 오지 않는 그런 죽음의 적막만이 가득한 인류의 미래를 말이다.

 

카슨의 남다른 점은 전체를 볼 줄 아는 그녀의 시적 상상력에 있다. 그녀는 미국 전역의 무차별적인 DDT 방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지맞는 시장이 필요했던 화학산업계와 기업과 연결된 미국농무부와 같은 정부 관료들, 또 기업과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과학자들 간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결탁이었음을 너무도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 식물이나 곤충을 박멸하기위해 뿌려대는 살충제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정 생물에게만 작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독성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어가 물고기와 곤충, 새들과 인간에게로 순환하며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킨다는 것도 볼 줄 알았다.

 

지금도 생태보호 운운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좌빨’이라고 몰아세우는 데, 40년이나 전에, 그것도 기업발전으로 풍요로운 미국건설에 여념이 없던 냉전적 상황에서, 더구나 남성중심 과학계의 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의 몸으로 그토록 용기 있게 주류세력들과 맞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독성 성분이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돼 인류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책 출간 10년이 지난 후 비로소 미국 내에서 DDT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됐으며 영국에서는 그 몇 년 뒤에 사용이 금지됐다. 카슨의 적들은 말라리아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죽어가는 것은 DDT 사용 금지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카슨을 많은 사람들을 죽인 대량 살육자라 강박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DDT가 먹이사슬에 축적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DDT에 저항성을 갖는 모기가 출현했기 때문에 생산 및 사용을 금지시켰다며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집단은 현재의 말라리아 창궐이 카슨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세계보건기구(WHO)도 2006년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의 복권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선구안이 과연 옳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그녀가 『침묵의 봄』에서 예측한 미래, 즉 생명이 사라진 텅 빈 지구와 DDT로 인한 암의 증가에 관한 내용은 모두가 빗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카슨의 저작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인간이 스스로 이뤄낸 것들에 대한 반성과 의심하는 법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사실, 카슨의 경고는 DDT와 그 유사 화학약품에 의해 가해진 위협이라는 관점과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험 모두에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토양에서 씻겨나간 화학물질들은 지류와 강으로 흘러든 다음 궁극적으로 바다 바닥에 축적된다. 그러나 바닥에 사는 물고기를 포획하기 위해 저인망 어선이 바닥을 지속적으로 홅는 관계로 DDT를 포함한 독소들은 끊임없이 물속에서 교반된다.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305쪽)

 

마지막 장에서 카슨은 프로이트의 시를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온 길은 편하고 반반한 고속도로로 우리는 그 위를 달리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그 끝에는 ‘파멸’이라는 끔찍한 도착지가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아직 우리가 많이 가보지 못한 길로 지구의 보존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마지막 남은 길이다. 그리고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인체건 곤충이건 그 방어벽을 무너뜨리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반드시 상상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류에게 반격해 온다. 과학에 흠뻑 젖어 편리한 생활과 문명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이 주는 불편한 진실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카슨의 교훈을 잊어 가고 있다. 카슨은 우리 자신이 자연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믿었다. 『침묵의 봄』은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서로 연관돼 있다는 명백하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녀 때문에 우리는 야생생물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먹이사슬의 취약성을 이해하게 됐으며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강력한 녹색운동을 펼쳐올 수 있었다. 지금 환경은 더 좋아졌는가? 우리는 지구를 잘 보존하고 있는가? 또는 이전보다 더 위험해졌는가? 『침묵의 봄』이 출판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지구는 더 온난화됐으며, 해수면은 더 상승하고 산호초는 파괴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성과에 도취되어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오랜 진실과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이 가지는 겸손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카슨의 예언은 틀렸기에 오히려 여운이 깊게 남는다. 우리는 그녀의 예언으로 인해 파멸로 향하는 길에서 유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숲이 무성해야 곤충이 살고, 곤충이 살아야 새들이 살고, 새들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자연계는 승자 독식의 사회가 아니다. 지구위의 모든 생물은 나눠먹고,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의 고리를 이루면서 공존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봄의 침묵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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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를 발견한 백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급히 다가왔다. 맑은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못생기고 볼품없는 진회색의 오리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아닌가? 백조들이 그를 에워싸고 부리로 목을 어루만지며 환영했다.

 

누구든 구박만 받던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뒤, 두 날개 펴고 달려온 백조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는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 결말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부정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닫힌 사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사실 이 동화는 현대 사회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열린 사회’의 역설과 함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닫힌 사회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다. 우연히 오리알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는 그의 ‘다른’ 모습 때문에 구박받고 무시당한다. 더구나 다르다는 이유로 추한 꼴로 보인다.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무리에서 떨어져 방랑 생활을 한다. 세월은 흘러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온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백조 무리로부터 환영받는다. 백조들의 사회가 그에게 문을 연 것이다. 그렇다면 백조들의 사회는 열린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운 오리새끼가 성숙한 백조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되찾았을 때 그를 받아 준 곳도 사실은 백조들의 닫힌 사회였다. 백조로서 그의 정체는 백조들 사이에서는 즉각적으로 동일화될 수 있었다. 백조들은 그를 ‘백조들의 닫힌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 준 것이다. 그를 향한 열림은 닫힌 사회를 구성하는 한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오리들의 닫힌 사회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어느 날 자기들과 동일화될 수 없는 ‘미운 백조새끼’를 갖게 된다면 그를 철저히 배척할 사회이다.

 

 

 

 

 

 

 

 

 

 

 

 

 

 

 

 

 

열린 사회 이론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열린 사회의 적들을 추적하는 철학 이론이 놓치는 것이 있다. 열린 사회의 적들은 경계하면서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망각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얼른 보아 ‘열린 사회의 적’과 ‘닫힌 사회의 친구’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열린 사회의 적들은 눈에 띄지만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이론 전개나 문학적 비유에서도 후자는 간과되거나 숨어 있다. 더 나아가 열린 사회의 친구들로까지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오리들과 마찬가지로 백조들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인 것이다. 다만 미운 오리새끼를 박대하는 오리 가족과 달리 아름다운 백조를 환영하는 백조들은 순간적으로 열린 사회의 친구들처럼 보였을 뿐이다. 우리는 오늘날 열림을 추구한다. 그러나 열림의 추구가 닫힘의 가식과 기만일 경우 또한 적지 않다. 현실에서 열림과 닫힘은 상호 역설로 작용하며 각각 그 본질을 은폐하기도 쉽다.

 

안데르센은 이 작품을 1843년에 썼다. 그는 자기 작품이 하류계급의 닫힌 사회를 비난하면서 상류계급의 닫힌 사회는 옹호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을것이다. 그 시대 자신도 그런 닫힌 사회를 향한 출세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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