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은 ‘책 읽는 사람들의 SNS 서비스’를 표방하면서 독서 기록 기능뿐만 아니라 책 읽는 사람들끼리 소통하여 친구를 맺을 수 있는 모바일 앱이다. 사실 독서 기록 기능만 제외하면 독서 취향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정보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 방식은 페이스북에서 이미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공개 혹은 비공개 그룹을 설정하여 비슷한 취미나 공통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회원들을 모을 수 있다. 일종의 동호회 같은 성격의 소통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북플이 나오기 전에 나는 이미 페이스북에 독서 관련 그룹 몇 개 가입했다. 비록 소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유령회원이지만. 그룹 회원들이 소개하는 책이나 그밖에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는 편이다.

 

 

 

 

 

독서 커뮤니티 그룹 회원들이 가장 많이 올리는 글은 사거나 읽고 있는 책을 인증하는 사진이다. 또 개인의 서재를 사진으로 공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셜네트워크의 관심사 및 성향을 좀 더 확장해서 페이지로 만든 것이 바로 ‘페친의 책장’이다.

 

‘페친의 책장’ 페이지는 말 그대로 애서가들의 서재를 공개한다. 책 안 읽는 인구가 많다는 이 나라에 애서가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 페이지가 단순히 서재 인증사진만 올리는 그저 그런 페이지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느리게 읽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한다. 굳이 누가 가장 먼저 했는지 따지고 싶지 않지만, ‘책 읽는 사람들의 SNS 서비스’는 북플보다 ‘페친의 책장’이 먼저 했고,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 활동으로 넓히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독서 커뮤니티 공간에 가끔 애서가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댓글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리 책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공간이라고 해도 항상 조용하고, 질 좋은 댓글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의 댓글 하나가 격렬한 논쟁으로 불붙는 도화선이 된다. 독서 커뮤니티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논쟁거리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책 인증사진 유행과 관련된 논쟁 하나만 소개해볼까 한다.

 

어느 날, 독서 커뮤니티 그룹의 회원이 자신의 서재를 사진으로 찍어 공개했다. 또 다른 회원들이 서재가 멋있다고 칭찬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한다. 자, 여기까지는 독서 커뮤니티 그룹의 흔하고 평범한 풍경이다. 애서가들의 관심이 서재 사진에 쏟는 상황에 누군가가 이런 내용의 댓글을 단다.

 

독서 커뮤니티 그룹은 그저 서재나 책 사진만 올리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개인적인 감상이나 그 밖의 책과 관련된 실질적인 정보를 올려야지 거의 도배하듯이 책 사진만 올리는 사람만 보면 본인의 지적 허영심을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책과 커다란 책장이 있다고 해서 본인이 잘사는 거 자랑하는 거냐? 보기 불편하다.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진다. 반박 댓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사진으로 공개하는 것을 나쁘게 보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저 열등감을 느껴 짜증을 낸 것 같다. 아무리 사진이 불편하게 여긴다고 해도 사진을 올리지 말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독서 커뮤니티 그룹의 목적에 부합되는 내용에 맞으면 책 인증사진도 괜찮다. 평범한 책 사진일 뿐인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

 

책 인증사진을 옹호하는 의견의 댓글이 많지만, 그렇다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댓글이 적은 건 아니다. 책 인증사진이 너무 많이 올리면, 책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나 감상문 같은 글이 외면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회원의 의견도 있었다. 인증사진도 적당한 선에서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책 인증사진을 둘러싼 논쟁은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커뮤니티 그룹 관리자가 계속 물고 늘어지는 댓글 논쟁을 멈추기 위해 중재하러 나서기 시작하면 수백 개가 넘는 수의 댓글과 답글이 다닥다닥 남긴 채 그룹 분위기는 원래 이전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런 광경은 페이스북 그룹에서만 볼 수 있을까. 그렇지가 않다. 책 읽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북플도 예외가 아니다. 북플은 페이스북과 유사한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를 맺을 수 있고, 내가 서평이나 책 사진을 올리면 그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다.  

 

북플에 책 사진을 올리는 이웃분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본인이 생각지도 않은 댓글이 달릴 수 있다. 누군가가 책 사진 달랑 올리는 당신의 행동이 너무 성의 없이 느껴지고, 본인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책을 많이 사는 소비습관을 굳이 경제력 수준과 연관되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돈이 좀 많은 사람이 책을 많이 사는 것일까. 그런 사람들은 엄청나게 사들인 책을 사진으로 찍어서 ‘나, 이 정도로 잘산다’라고 뽐내는 것일까. 모든 이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돈 많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논리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이런 잘못된 논리를 버린다면 평범한 책 사진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진짜 책 좋아하는 사람은 먹고살기 힘들어도 어떻게든 책은 꼭 사게 되어 있다. 왜냐고?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좋아하니까. 시끄러운 세상 속에 책 읽는 시간이 있으면 피로감이 싹 가시고,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책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책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사람은 있는 적은 돈이라도 아껴서 책을 산다. 정작 책을 살 수 없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아니면, 책방에 가서 저렴하게 책을 산다.

 

나는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을 귀찮아서 잘 하지 않는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책 인증사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직접 사거나 읽은 책에 대해 간단한 감상이 곁들였다면 이 또한 구매자들에게 귀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출판사에게는 독자의 구입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사진을 통해서 내가 사고 싶은 책의 실물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개인 서재를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디자인이 멋진 책장을 찍은 남의 사진을 보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러울 뿐이지 저런 멋진 책장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나 자신을 절대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 열등감이 생긴다. ‘아, 나는 저 정도로 책과 책장을 사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구나.’ 하면서 말이다.

 

혹시 책 인증사진을 보고 이런 열등감도 생길 수도 있겠다. ‘나도 저 책 사고 싶은데 저 사람은 샀구나. 부럽다.’ 열등감은 소유욕이 강할수록 커진다. 여기서 비관적인 생각이 나온다. 저 책을 사지 못한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다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제발 과감하게 버렸으면 좋겠다. 대체로 애서가라면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큰 편이다. 내가 그런 성향이다. 그렇지만, 책 읽고 즐기는 모습을 잊어선 안 된다. 책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내가 사지 못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래도 내 이웃의 책 인증사진 때문에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서평을 써라. 내가 이런 책을 읽었다는 모습을 남들 앞에 떳떳하게 보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서평도 자신의 독서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직접 구매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쓸 수 있고,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도 서평을 쓸 수도 있다. 정말 남들이 올리는 책 인증사진에 열등감이 느껴진다면 왜 서평을 쓰는 독자 앞에서는 가만히 있는가. 그들도 글로써 자신의 독서를 인증한다. 책 인증 사진을 올리는 사람에게만 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러므로 책 인증 사진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책 많이 산다고 해서 경제력이 좋다고 함부로 재단하는 건 결코 좋지 않다. 그것은 본인의 정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된다.

 

뜬금없지만 나는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몇몇 이웃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한쪽 분야에 치우친 독서 습관을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점에 가지 않더라도 책 실물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나는 이웃의 책 인증사진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 이상하게 나는 남의 집에 가면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서 가장 먼저 서재가 있는지 늘 확인한다. 이런 습관 때문에 나는 책 인증사진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니까, 서재 이웃님들. 앞으로도 책 인증사진 많이 올려주시길. 내가 ‘좋아요’ 꼭 눌러 주리라. 인증사진에 내가 마음속에 찜을 해둔 책이 있다거나 예전에 읽은 책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 주리라. 댓글로나마 소소하게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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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1-16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그러니까 책장 인증샷이나 책 인증샷 따위랑 경제력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1인입니다여~@@
전 몇번 책장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한번도 디스당한적 없고, ㅋ~.
저희집 책장은 럭셔리한 오동나무도 호두나무도 아닌 집성목이라 불리우는 MDF박스라서 있어보이지 않아서 그런걸까요?^^

전 돈을 잘 안 쓰는 구두쇠, 짠순이인데...
제가 쓰는 돈의 90프로는 알라딘 상품권을 구입하는데 쓰입니다.
고로 책을 많이 가진거랑 경제력이랑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거죠. 럭셔리한 책상이나 책장이라면 또 모를까여, ㅋ~.

cyrus 2015-01-17 14: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신간도서는 적립금으로, 책방이나 중고서점은 식비를 되도록 안 써서 공돈으로 모아서 사는 편입니다. ^^

이웃집홍홍 2015-01-16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제 이웃의 글에 경제력 운운하는 덧글 보고 이해할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편중된 시각을 가진 분들이 꽤 있다는 건 알지만 책을 읽다보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확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요, 그렇지 않은 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속이 좀 시원해지네요 잘읽었습니다~

cyrus 2015-01-17 14:0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온라인 공간에 댓글로 발언을 할 때 신중해야하죠. ^^

소금창고 2015-01-16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인증사진 보면 사보고싶고 부럽던데요
고급스런 서재는 아니어도 책 꽂혀있는 서가를 보면 신선한 공기가 마구 뿜어져나오는 숲속 키큰 나무들 미끈한 다리같아서 가슴 두근거리고 내방이 아님에도 저곳에 커피한잔들고 한시간만이라도 책찾으며 길을 잃어보고싶기도해요

몇일전 백석시를 읽다가 너무 행복하고 눈물나서 친구들 단톡방에 필사한 <박씨봉방 >노트를 올렸더니
소녀감성이네 아직도 여고생이네 문학소녀처럼 살아서 남편이 좋아하겠네
하는 소리듣고 완전 기분을 잡쳤어요
이해받지못할 그룹과는 책얘긴 안하겠다
이런 원칙이 생기더라고요

cyrus 2015-01-17 14:10   좋아요 1 | URL
대형서점이나 책방 서점만 보면 저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항상 보고 싶은 짝사랑하는 여인을 보게 되는 것처럼요.

친구 분들이 소금님의 늘 변함없는 감수성이 부럽거나 시기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필사한 글을 알라딘 서재에 공개해주세요. 저는 백석의 시를 좋아합니다. ^^

만병통치약 2015-01-16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것도 사실이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많아요 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5-01-17 14: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렇고 모든 사람은 어떤 것을 소유했으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심리가 있으니까. ^^

수이 2015-01-16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내가 잠깐 북플에 게을리한 오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겝니까?!

cyrus 2015-01-17 14:11   좋아요 0 | URL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 ㅎㅎㅎ

돌궐 2015-01-16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이웃의 서재라고 하셔서 전 알라딘 서재 말씀하시는줄 알았어요.
전 책이 많지 않아서 책으로 가득한 서재가 부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건 차곡차곡 좋은 리뷰와 페이퍼를 쌓아둔 알라딘 서재입니다.

cyrus 2015-01-17 14:18   좋아요 1 | URL
저도 나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책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타인의 서재를 보면 부럽고, 저런 서재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렇다고 소유욕이 너무 지나치면 정신 건강에 해로워요. 그래서 도서관을 주로 애용합니다. 리뷰와 페이퍼는 그 날 읽은 책들에 대한 내용이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쓰는 편인데 글의 양식이나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비로그인 2015-01-1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은 것 보면 예전에는 부러웠는데 저 또한 많이 소유하다보니 그닥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 읽어보고 싶은 책을 읽어볼 수 있으면 그것에 감사할 뿐이죠/

cyrus 2015-01-17 14: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요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을 사서 읽든, 도서관에서 빌려 읽든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즐겁습니다. 사는 게 피곤해도 책 읽는 시간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해피북 2015-01-17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찌찌뽕~해야겠어요ㅋ 요즘 비블리아라는 책관련 잡지 보는데 오늘 딱 페이스북에 페친의 책장 이야기를 다뤄서 흥미롭게 읽었거든요 페이스북은 이런 재미난일도 하는구나 싶어 부러웠는데ㅋ 리뷰도 좋고 페이퍼도 좋지만 자신이 소유한 책을 꺼내보이면서 약간의 용기를 보여주시는거구 이웃간에 이야기 주제가 생겨나고 관심이생겨나고 또 실제 책의 모습도 볼수있어서 좋다는데 큰 공감합니다 저는 일부로시간 날때 지식인의 서재에 들어가서 어떤 책들이 있나 살펴보곤하죠 말로 소개 못한 책들 발견할때의 기쁨이란!

cyrus 2015-01-17 14:23   좋아요 0 | URL
페이스북에 `페친의 책장` 페이지에 한 번 보면 정말 흥미롭습니다. 책 안 읽는다는 대한민국에 애서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책장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어! 저런 책이 있었네.˝하면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거나 나랑 같은 책을 가진 애서가들을 보면 친밀감이 느껴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1-17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의 집 가면 제일 먼저 보는 게 책장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장 사진을 무척 좋아해서 이런 사진 올리면 탱큐라고 생각합니다..ㅋㅋ

cyrus 2015-01-17 14:24   좋아요 0 | URL
저는 곰발님의 서재가 무척 궁금한데요. 서재 사진을 공개하신다면 저야말로 때땡규죠. ㅎㅎㅎ

보물선 2015-01-1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친의 책장 좋아요!

cyrus 2015-01-17 14:2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나 북플에 활동하시는 이웃분들도 가끔 서재를 공개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생각인데 알리딘은 왜 이런 쪽으로 이벤트를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 알라딘에서 알라디너 서재 사진을 공개하는 이벤트를 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stella.K 2015-01-1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가 유독 많이 달려서 뭔가 유심히 읽었다.
과연 너다운 글이란 생각이 든다.
거참 웃기는 심리네. 책은 부러움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열등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이게 예전엔 없었던 인간의 새로운 심리일까? 소셜네트워크가 만든 ...?
어쩌면 자신의 지적 열등감을 그렇게 표출한지도 모르겠네. 사진을 찍어 올린 사람은 그런 식으로 지적 우월감을 표시하고 싶은 거였겠고. 하지만 싸울 것 까지는 없었을 텐데 말야.
나도 멋진 서재는 고사하고 멋진 책장있으면 원이 없겠다.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고 내 책들은 거의 대부분 옆으로 누워 방치되어 있다. 그래도 좋던데...
그런데 이젠 나누거나 팔 때라고 생각해.
무조건 다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봐.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책만 가지고 있고 덜어 내는 것 나에겐 이게 필요하다.
남의 집 가서 그 집 주인이 어떤 책을 읽나 보는 건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같은 심린 것 같다.ㅎㅎ

cyrus 2015-01-17 14:35   좋아요 0 | URL
SNS가 사소한 것도 남들에게 공개하는 자신만의 쇼윈도 같은 곳이죠. 책 인증사진도 지적 우월감을 보여주려는 심리의 행동으로 볼 수도 있어요. 건전한 의도라면 책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도 괜찮다고 봐요. 그런데 너무 지나치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 나오는, 남의 인생 일부를 도용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 번은 어떤 독서 커뮤니티 회원이 정말 멋진 자신의 서재를 공개했어요. 집안 내부도 상당히 크고, 디자인이 뛰어나서 마치 유럽이나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저택의 서재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구글에서 퍼온 사진이었어요. 책 인증사진도 지적 우월감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올리면 이런 부작용이 있어요.

저도 책장이 필요해요. 디자인도 좋지만, 일단 이제 책 꽂을 공간이 없어서 크기 상관없이 책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방이 크지 않아서 일단 되는대로 책을 보관하고 있어요. ^^

보물선 2015-01-17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말잘듣는 물선씨^^
청소를 해도 더 이상이 안되는 제 서재를 감히 올려봤습니다^^

yamoo 2015-01-18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어요. 사이러스님^^
근데, 저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몇 자 남깁니다..

˝책을 많이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돈 많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논리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이런 잘못된 논리를 버린다면 평범한 책 사진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 라고 하셨는데요..

서재 사신을 올리거나 읽고 있는 책 인증 샷을 올리는 건 아마도 상대적인 주관이 많이 좌우되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없이...그냥 자기 취향대로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좋아 하는 일상을 담는 거라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책을 사고 서재 사진을 올리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자랑질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은 시간이 있다는 건 그만틈 삶의 여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책을 많이 사고 책이 많아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나요? 네...책을 꽃을 공간이 필요하지요. 5천권 만권...이런 장서가들이나 소설가 똔느 유명 작가들의 서재를 보면 서재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간을 확보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렇습니다. 윤택한 삶입니다. 그 서재를 꾸민 디자인이 좋을 수록 쉽게 말해서 뽀대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걸 자랑질 하는 걸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는 사람들...업무 때문에 계속 야근하여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들은 그런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사람 성향마다 다르지만 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 하고 책을 많이 사고 자신의 서재를 꾸릴 수 있는 사람은 소위 잘 사는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 자본이 있다는 걸 알려주거든요~ 책을 사 모은다는 그 끝을 생각해 보시면 반드시 자본과 연결됩니다..

그냥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글에서 너무 단정적으로 표현하신 거 같아 제 생각을 몇 자 적어 봤습니다~^^;;

cyrus 2015-01-18 14:1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을 많이 사게 되면 큰 책장 하나 마련해야 되고, 그러려면 집도 넓어야 하고... 책을 사는 행위가 자본과 밀접한 관계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책 인증사진도 너무 지나치면 지적 허영심을 보여주기 위한 시간 낭비일 수도 있고요.

예전에 독서 커뮤니티 그룹에 어떤 회원이 자신의 개인 서재라고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어요. 정말 멋졌어요. 외국에 있을법한 훌륭한 서재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구글에서 퍼온 사진으로 발각되고 말았어요. 그 회원은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탈퇴하고 사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행동이 거짓으로 밝혀지니까 도망친 거죠. 과도한 인증사진 유행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타인의 인증사진에 대해 열등감을 또 다른 타인의 일상 일부를 자신인 것 마냥 도용해서 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서재 사진을 올리면서 내가 이런 책을 읽을 정도로 똑똑하고, 경제적 형편이 좋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그래서 야무님의 의견을 수렴한다면 책 인증사진은 적당한 선에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사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정보도 곁들인다면 또 다른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

2015-02-11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1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괴된 사나이 - 새번역판 그리폰 북스 6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김선형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연애를 하려면 ‘썸’ 타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다. 연애에 감을 잡지 못하는 모태솔로는 썸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해 한탄으로 끝이 난다. 상대방의 마음을 뜨겁게 불 지를 수 있는 사랑의 불꽃이 일어나기는커녕 당사자는 상대방 마음을 몰라 애만 태운다. 만남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 내민 손을 잡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것이며 따뜻한 온기를 통해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흔한 우리네 사랑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점차 사랑을 느끼는 단계를 밟는다. 하지만 썸은 이러한 단계보다도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 감정에 머문다. 썸을 탈 때 밀당의 기술은 필수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에게 카톡으로 밀당을 한다. 본인도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만, 카톡을 받는 즉시 응답하면 괜히 내 마음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바로바로 카톡에 답하지 않는다. ‘난 쉬운 여자가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좋으면 네 진심을 더 보여줘’라는 기대 심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계가 너무 길어지면 남녀 간 마음의 거리를 좁혀나가기가 쉽지 않다. 두세 달을 만나도 깊은 사랑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언저리에서 맴돌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사랑’이란 감정에 기초해야 하는 연애를 기술로만 접근해 습득하려는 성향이 많아졌다. 호감 있는 상대 이성의 SNS나 카톡 같은 메신저 내용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 이성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해야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별 뜻은 없는데 상대 이상의 카톡 상태 한 줄 때문에 스마트폰만 바라보면서 전전긍긍한다.

 

연애하는 데 있어서 문자나 메신저를 통한 대화가 중요해졌다. ‘사랑해’라는 말도 문자로 전할 수 있다. 그런데 관계가 아닌 감정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썸이 우리네 사랑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말로 하지 않아도 남자가 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해?’ ‘말 안 해도 내 맘 알지?’ 남녀가 사귈 때 여자들이 하는 말의 숨은 의미를 풀이한 ‘여자어 사전’이라는 것도 있다. 남자가 이런 말을 눈곱만큼 알아채지 못하면 여성은 토라진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쏟아낸다. 사소한 오해가 갈등의 씨앗을 낳는다. 그걸 알아내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을 향한 남자의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원한다면 독심사를 만나시든가.

 

혹시 여전히 말 안 해도 알아서 척척 진심을 이해해주는 남자야말로 나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 여자가 있다면 앨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에 나오는 1급 에스퍼(Esper) 링컨 파웰을 소개해주고 싶다. 텔레파시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심지어 말을 안 해도 마음만으로 대화할 수 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지만 훤칠한 키에 직업이 경찰 국장이다. 그런데 만남 조건이 있다. 이런 남자를 만나려면 당신도 에스퍼 자격이 있어야 한다. 아무나 에스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에스퍼는 총 세 개의 급으로 분류되어 활동하고 있는데 1급 에스퍼가 되면 깊숙한 무의식의 심층까지 들어가 알아볼 수 있다. 1급 에스퍼 수가 많지 않다. 제일 낮은 에스퍼가 3급이다. 사람의 의식만 읽는 수준으로 한정되어 있다. 파웰은 3급 에스퍼를 상대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3급 에스퍼라고 해도 폭풍 같은 속도로 텔레파시로 대화를 주고받는 에스퍼 수다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또 그의 약점도 이해해줘야 한다. 그의 마음속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앨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사나이》는 SF 장르로서 첫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한 해 동안 뛰어난 SF 작품을 선정하는 휴고 상을 받았다. 놀랍게도 쟁쟁한 선배 작가 후보에 있었던 아서 C. 클라크를 제친 영광스러운 1회 수상작이다. 영화 <인셉션>이 꿈을 침입하여 마음을 조종하는 미래를 선보였다면, 이보다 먼저 베스터가 창조한 미래에 마음을 읽는 능력을 넘어서서 무의식까지 꿰뚫을 수 있는 전문 독심사 에스퍼가 활동하고 있다. 언어 대 언어가 아닌 마음 대 마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미래. 상대방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는 독심사가 되면 이제 썸을 탈 필요가 없다. 상대가 말을 안 해도 네 목소리가 들리니까.

 

그러나 베스터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세상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다. 독심사가 사는 세상은 음모와 범죄가 난무하며 파괴의 종말을 향해 폭주하는 시대이다. 여기에 탐욕 덩어리 마너크 그룹의 벤 라이히 회장이 범죄 계획을 꾸미면서 파괴로 치닫는 어둠의 하모니는 시작된다. 자신의 합병 제안을 거절한 드코트니를 암살하기 위해 1급 에스퍼 오거스터스 테이트를 끌어들여 엄청난 음모를 꾸민다. 악마 같은 라이히가 독심사 테이트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독심사 세계에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 링컨 파웰이 나선다. 파웰은 라이히가 실질적으로 범죄를 일으킨 사실을 확증하는 결정적 단서를 찾기 위해 드코트니 암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자 드코트니의 딸인 바버라의 무의식에 침투한다. 암살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파웰과 그의 수사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라이히 간의 쫓고 쫓기는 대결이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악의 에너지를 과다하게 표출하는 라이히가 파멸의 수렴으로 향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흡입력 높은 베스터의 문체를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베스터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파멸의 징조를 예고하는 폭발음 팡파레가 멈추고, 현실과 환상이 마구 뒤섞인 의식 터널에 빠져나오면서 영화 같은 소설은 끝이 난다. 임무를 완수한 파웰은 에스퍼가 아닌 인간 독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에스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사하게 여기세요. 인간의 외면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에도 감사하십시오. 인간의 수많은 격정, 증오, 질투, 악의, 병폐를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고맙게 여기세요...... 인간의 무시무시한 진실을 보는 일이 흔치 않다는 사실에 감사하고요. 모두가 독심사이고 전부 균형 잡힌 심리를 갖고 있다면, 아마 세상은 훌륭한 곳이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눈멀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세요." (《파괴된 사나이》 중에서, 377쪽)

 

 

파웰은 자신의 천직이 굉장하면서도 끔찍스럽다고 말한다. 그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의 의식 터널에서 본 것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응고되어 남아있는 인간의 또 다른 이면, 바로 끔찍한 악의 목소리였다. 라이히는 자신이 만들어 낸 악마 '얼굴 없는 사나이'와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이처럼 파웰은 1급 독심사로서 자신의 무의식 안에 있는 악마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센 놈을 만났다. 정말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의 진실까지 알게 된다. 심지어 상대가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끔찍한 기억마저도 본다. 숨기고 싶은 내 의식의 치부를 누군가가 알고 있고, 자신의 의도를 무시한 채 공공연히 그걸 밖으로 드러낸다면 정신이 산산이 부서질 각오를 해야 한다. 1급 에스퍼처럼 마음을 차폐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도 내가 보고 싶은 진실만 밝혀서 볼 수 없다. 지옥 같은 세상에 더 지옥 같은 마음조차 읽는다면 정말 주옥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제발 사랑이라는 이름 가지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거나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마라.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알면서도 눈 감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오는 잘생기고 멋진 독심사 같은 남자가 만나고 싶은 그 꿈 좀 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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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1-14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멋진 서평입니다^^

cyrus 2015-01-15 10:5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수이 2015-01-1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님들 혹은 공주님들을 기다리는 왕자님들이 읽으면 좋겠다 싶어. 리뷰가 하도 멋져서 책을 읽고싶어졌어. 장바구니에 퐁당 집어넣었습니다.

cyrus 2015-01-15 19:47   좋아요 0 | URL
이 책 SF소설이라서 썸이랑 전혀 상관 없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내용 분위기가 마초적이거든요... 일단 옆지기 형님부터 먼저 읽어보라고 권해보세요.. ^^;;

해피북 2015-01-1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반성했어요 ㅋ드라마 너에 목소리가 들려정도라면 했다가 홀딱 깼어요ㅋ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는데 길을 걷다가 누군가 정말로 내 생각을 읽으면 어쩌지 와 같은 ㅎ

cyrus 2015-01-16 10:59   좋아요 0 | URL
생각만해도 무서워요. 내 옆에 있는 친구를 속으로 욕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독심사였다면... ^^;;
 

 

 

 

 

 

 

 

 

 

 

 

 

 

 

 

 

 

 

요즘 카렐 차페크의 작품을 읽는 중이라서 《카렐 차페크 평전》(행복한책읽기, 2014)도 겸해 읽었다. 제목만 봐도 그저 차페크의 생애에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 평범한 평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읽어 보면, 차페크의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이 많다. 평전이라기보다는 작품 개론서에 가깝다. 차페크의 작품 중에 인상 깊게 읽은 것이 희곡 《곤충 극장》(열린책들, 2012)인데 깊이 파고든 작품 해설을 참고하는 데 있어서 《카렐 차페크 평전》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카렐 차페크 평전》에서 《곤충 극장》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문장을 발견했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희곡의 클라이맥스는 변화를 보여준다. 벌목꾼은 방랑자의 주검을 발견하고는 "죽은 자여, 불쌍한 늙은이야. 적어도 일생의 근심은 덜었군."이라며 결말을 내린다. 또 다른 희망적인 미래를 상징하는 아기를 안은 여자가 그의 임시 묘지에 꽃다발을 놓는다. 희곡의 첫 부분에서 나비채집 곤충학자가 방랑자에게 화를 내고 경멸하는 반면에 희곡의 끝에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인간적인 동정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희곡은 긍정적인 결말을 가지고 있다. (《카렐 차페크 평전》 「곤충 극장, 풍자와 익살을 내포한 철학적 알레고리」 중에서, 190쪽)

 

여기 인용문에 굵게 표시한 문장은 《곤충 극장》의 에필로그 장면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열린책들 출판사에 나온 《곤충 극장》을 읽었을 때, 벌목꾼이 방랑자의 주검을 발견하는 장면과 아기를 안은 여자가 방랑자의 임시 묘지에 꽃다발을 놓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에필로그만 처음부터 다시 읽을 필요 없이 등장인물을 쉽게 확인하는 법이 있다. 《곤충 극장》과 같은 희곡 작품은 막이 오르기 전에 먼저 각각의 막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하루살이 세 마리, 하루살이 합창단(코러스), 민달팽이 두 마리 그리고 여행자다. 열린책들의 《곤충 극장》은 민달팽이 두 마리가 서로 대화하면서 끝이 난다. 민달팽이 두 마리는 땅바닥에 널린 하루살이들의 시체와 여행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삶을 달콤하다고 말하면서 지나간다. 민달팽이들은 사라지면서 《곤충 극장》의 막이 내린다. 

 

국내 초역인 《곤충 극장》은 완역이 아닌 것일까. 열린책들의 《곤충 극장》에 있는 결말대로라면 이 작품의 해석이 달라진다. 《카렐 차페크 평전》에 소개된 결말의 해석과 상반된다.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곤충 극장》 원서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체코 어는 아예 모르겠고, 영어 독해 실력이 영 시원찮으니 찜찜한 기분으로 문제 제기만 해본다. 소소한 숙제가 생겼다. 일단 《곤충 극장》의 결말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작품과 관련된 각종 문헌들을 찾아봐야겠다. 안 되면 열린책들 출판사에 직접 문의하는 수밖에. (혹시 《곤충 극장》 원서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결말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댓글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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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1-15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롱룡과의 전쟁인가? 그책 참 재밌게 읽었는데...근데 뭐 때문인지 끝까지 읽지를 못했어.
과학소설도 이렇게만 쓰면 좋겠다 싶었지.
곤충 극장이라. 왠지 변신이 생각나면서 재밌을 것 같군.
근데 결말을 잘 모르겠다니 좀 거시기 하네.
책을 향한 너의 열정은 참...!
나중에 알면 알려 줘.
평전에 관심이 많은데 개론서 같다니 좀 그러네...

cyrus 2015-01-15 19:53   좋아요 0 | URL
저도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롱뇽과의 전쟁> 읽었어요. <곤충 극장>은 한 편의 우화 같아요. 이 작품도 재미있어요. ^^

해피북 2015-01-1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대해 알진 못하지만 번역서에서 생겨나는 갈증은 깊이 공감됩니다 꼭 갈증이 풀리시길~^^

cyrus 2015-01-16 11:00   좋아요 0 | URL
그냥 출판사에 직접 물어보려고 해요. ^^

잠자냥 2017-1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도 다음에 차페크 평전을 읽어 볼 생각인데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네요?! (혹시 궁금증은 해결하셨습니까? 아직 미해결 상태라면 저도 평전을 읽은 뒤 한 번 해결해보도록 해야겠군요.... 체코어도 모르는데 ㅎㅎㅎ)

cyrus 2017-11-06 10:10   좋아요 1 | URL
출판사로부터 답변을 얻지 못했어요. 잠자냥님 덕분에 이 글 진짜 오랜만에 보게 되는군요.. ㅎㅎㅎ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여러 가지이다. 현대적 의미의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창한 사람은 라마르크이다. 이어 다윈이 종별 속성에 따른 자연 발달과 획득 형질의 유전을 골간으로 하는 라마르크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자연 선택’이라는 새 이론을 제시하면서 진화 연구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을 제창했다. 용불용설은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여 유전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하여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용불용설은 진화의 타당성을 높일 수 있는 매우 폭넓은 가설이었지만 증거가 없어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다윈이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단서로 삼아 가시적인 증거를 추가함으로써 지금의 진화론으로 살아남게 됐다.

 

 

 

 

 

 

 

 

 

 

 

 

 

 

 

 

 

그런데 라마르크의 진화론은 이미 누군가가 먼저 주장했다. 다윈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은 1794년에 <주노미아>(Zoonomia)라는 책을 통해 종의 변이 개념을 제시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1809년에 발표된 『동물철학』(지만지고전천줄, 2009)에 소개되었다.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출판사, 2013)의 저자 양자오는 다윈 이전의 진화론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라마르크의 학설을 반박하고 있지만, 자신보다 먼저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내용 중에 진화론을 처음 이해하는 독자에게 혼동을 주는 문장이 있다.

 

『종의 기원』을 펼치면 「이 책의 초판이 간행되기 전,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이라는 글이 나온다. 이 표제는 다윈이 이 책의 출간 전에 나온 학설을 정리하여 어떤 관점으로 종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바라봐야 하는지 정리했음을 의미한다. (양자오  『종의 기원을 읽다』 중에서, 69쪽)  

 

『종의 기원을 읽다』 69쪽부터 70쪽까지는 『종의 기원』에 수록된 ‘이 책의 초판이 간행되기 전,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줄여서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이라는 글 일부를 인용하면서 다윈이 라마르크를 인정하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데 최근에 한길그레이트북스 133번째로 새 번역으로 나온 『종의 기원』(한길사, 2014)을 읽은 독자라면 69쪽의 내용이 무척 의아할 것이다. 한길사판 『종의 기원』에는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오가 언급한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은 『종의 기원』 제3판에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서문 앞에 실려 있다. 그래서 서문과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은 서로 다른 글이다.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은 진화 학설을 간략하게 정리한 개요에 가깝다. 두 글 다 본문 앞에 배치하고 있다 해서 하나로 뭉뚱그려서 서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양자오는 ‘종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의 발전’을 『종의 기원』 서문이라고 썼고(원문을 번역한 역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자신이 인용한 글이 『종의 기원』 3판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종의 기원』을 읽지 않은 독자였다면 라마르크를 언급하는 다윈의 글을 『종의 기원』 초판에 있는 서문으로 오해할 수 있다.

 

 

 

 

 

 

 

 

 

 

 

 

 

 

 

 

 

 

『종의 기원』은 1859년에 출간되었다. 다윈은 생전에 『종의 기원』을 내용을 거듭 고치고, 실험과 관찰로 발견한 사실을 추가하여 여러 번 개정해서 펴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개정 횟수만 해도 총 6번. 2판은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1860년에 나왔다. 책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지지 않자, 또 내용 일부를 수정하여 3판을 출간했다. 4판은 1866년, 5판은 1869년, 6판은 1872년에 나왔다. 한길사판 『종의 기원』은 1859년 초판이다. 송철용 중앙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은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이 책에 ‘종의 기원에 대한 학설 그 진보의 역사 간추림’이라는 글이 있는데 이것을 양자오가 인용했다. 현재 표지가 다른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이 총 3권이 있는데 내용과 편집 방식은 비슷하다. 다만 옥스퍼드 컬러판은 진화론을 쉽게 정리한 컬러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양자오의 착각은 이것뿐만 아니다. 그는 『종의 기원』 3판 개요에 라마르크의 견해를 먼저 주장한 할아버지의 책을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윈이 틀렸다고 주장한다.(『종의 기원을 읽다』 70쪽) 그러나 나는 양자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다윈이 할아버지가 쓴 책을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비록 개요 본문에 할아버지가 아닌 라마르크를 언급했지만, 자신이 쓴 주석에 할아버지가 쓴 책을 소개했다.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을 읽어보면 다윈의 주석을 확인할 수 있다. 다윈이 할아버지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모른 체하는 못난 손자는 아닐 것이다.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옥스퍼드 컬러판)에 발견된 오류 하나. 진화론의 역사를 컬러 화보로 정리한 내용이 시작되는 첫 장에 그리스 신화 속 한 장면을 소개하는 작은 글이 있다. 아폴론이 에로스의 화살에 맞아 다프네에게 사랑에 빠져 그녀를 쫓아가 잡으려는 순간, 다프네는 신에게 월계수로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다프네가 기도를 올린 신은 대지의 여인 가이아가 아니다. 즉, 가이아가 다프네를 월계수로 변신시킨 것이 아니다. 다프네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이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있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읽어보면, 아폴론이 싫은 다프네가 아버지인 페네이오스에게 기도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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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13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마치 조선시대때 필사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듯 흥미로웠어요 거듭된 개정판과 개정판에의해 내용이 거듭 달라질수 있다는 사실두 새롭구요 ^^

cyrus 2015-01-13 18:55   좋아요 0 | URL
끝까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용에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사실 <종의 기원> 텍스트 자체를 끝까지 다 읽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한데 제대로 된 개론서 몇 권 읽으면 충분히 이해가 될듯합니다. ^^

oren 2015-01-16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자오가 쓴 『종의 기원을 읽다』라는 책이 나왔을 때 `책 소개글`을 읽오 보다가 그 가운데 일부 내용에 대해 `무척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있답니다. cyrus 님께서 이 글에서 지적하신 바로 그 부분이지요. 제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알라딘 책소개>에 나와 있는 그 내용을 여기에 덧붙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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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한 책을 집필하면서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와 얽힌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3장 다윈 이전의 진화론」에서 저자는 다윈 이전의 진화론으로 라마르크를 짧게 언급하고 다윈의 가족을 살핀 후 『종의 기원』의 제목이나 그의 논문 등에서 나타난 기묘한 점을 짚으면서 그가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에게 상당히 영향을 받았을 텐데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다윈은 자기보다 앞선 생물학자 라마르크에 대한 존경도 책 곳곳에 피력하고, 자기보다 먼저 자기와 유사한 글을 발표하려 했던 앨프레드 월리스에게도 관대했지만 정작 자신의 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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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동서문화사에서 나온『종의 기원』을 읽어 보면 거기엔 분명히 찰스 다윈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에 대해 `주석`에 비교적 자세히 언급해 놓은 부분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제가 그 당시에 마침 쓰고 싶었던 글이 바로 cyrus님께서 이번에 쓰신 글과 엇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저는 그냥 별 생각없이 글쓰기를 포기하고 지나갔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글로서 밝히고 싶었던 내용`과 무척이나 닮은 글을 cyrus 님의 글에서 발견하게 되니 정말 묘한 생각이 들고 재미있다 싶어 이렇게 긴 댓글을 남겨 봅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왜 그토록 `진화론`과 닮았으면서도 결국 `폐기`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아마도 제 생각으로는 독일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설명이 가장 명쾌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철학자의 생각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구요. 결국 라마르크가 `희대의 실수`를 한 셈이었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제가 2년 전에 썼던 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읽어보시면 참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마침 그 글에는 찰스 다윈이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ㅎㅎ)
☞ http://blog.aladin.co.kr/oren/6067699


cyrus 2015-01-16 19:54   좋아요 0 | URL
저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군요. 지난주에 유유출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 사실을 알렸어요.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답변이 왔으니 좀 더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다윈의 할아버지에 관한 내용이 찾아보기 쉽지 않았는데 Oren님의 글 덕분에 호기심을 풀 수 있었어요. ^^
 
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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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찍 일어나니까 사람이 멍청해지는군. 사람이란 잘 만큼 자야 해.”
(카프카  「변신」 중에서 / 『카프카 단편전집』, 110쪽, 솔출판사)

 

 

 

어느 날 아침. 그레고리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이 왜 벌레로 변했는지, 그 변신의 이유도 과정도 모른다. 아무도 그를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만들려 노력하지 않는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도 그의 가족도 현실을 외면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결국, 잠자는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결국 벌레가 된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이 생각난다. 잠자가 벌레가 되어 벌레로 죽는 과정을 ‘인셉션’의 주요 콘셉트와 연관 지어서 (약간 억지가 있지만, 내 맘대로)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소설에서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벌레로 변한 사실을 안다. 잠자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악몽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잠자가 겪게 될 진짜 악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 꿈이 지나가고, 잠자는 벌레가 되어버린 두 번째 꿈이 이어진다. ‘인셉션’에서 코브와 아서는 타인의 꿈을 침투하여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역할을 시도한다. 「변신」에서 코브와 아서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잠자의 가족들이다. 외판사원인 잠자는 황급히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해야 하지만 기괴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한다. 식구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잠자가 걱정되어 방문 앞에 문을 두드려 확인해보지만, 오히려 잠자의 불안감을 더욱 커지게 한다. 가족과 직장을 위해서 일만 하던 잠자는 처음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잠자를 방 안에 갇혀 고립시키는 것이 잠자 가족의 목표이다. 잠자는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기이한 악몽을 현실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족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족은 흉측한 벌레가 된 잠자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현실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해왔던 잠자는 꿈에서도 가족을 위해 죽음을 맞기로 선택한다. 죽음만이 악몽에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가족의 의도대로 잠자의 악몽은 끝이 난다. 잠자가 죽고 나서야 가족은 예전처럼 평온한 생활을 한다.

 

영화에 나오는 내용처럼 누군가가 내 꿈속으로 들어가 치명적인 방해를 시도한다면 꿈을 꾸는 사람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정신분열에 걸려 고통 속에 죽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주변에 잠을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다. 잠을 자기 전에 늘 확인하는 스마트폰에 도시를 빛나게 하는 환한 인공조명 등이 편안한 수명을 방해하는 주범이다. 미국 인구 100명 중 99명은 광공해 기준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인공조명의 불빛도 엄연히 말하면 생태계와 건강을 파괴하는 공해를 일으킨다.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생태가 이어지면 신체는 우리에게 건강의 적신호를 알린다. 면역이 떨어지고, 환각과 환청을 경험한다. 뇌는 마치 술에 취한 상태가 되어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

 

잠을 방해하는 것은 또 있다. 스마트폰 못지않게 항상 당신 옆에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 곁에서 사랑스럽게 자는 배우자이다. 한때 몇몇 수면 연구가들은 부부가 침대를 따로 써야 충분히 수면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달콤한 신혼으로 깨소금이 쏟아지는 새내기 부부나 여전히 닭살 금슬을 자랑하는 잉꼬부부라면 잠잘 때 침대를 따로 써야 하는 상황이 마뜩잖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남편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아내라면 이런 주장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남편과 아내가 한 침대에서 자면, 남편보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 남성은 혼자 자는 것보다 배우자와 함께 자는 것을 선호하며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느낀다. 본인의 코골이나 이갈이가 심해도 배우자는 참는다. 그런데 남편의 잠버릇이 고약하면 아내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 이래서 부부는 백년해로하기가 쉽지 않다. 남편 혹은 아내 둘 중 한 사람의 잠버릇이 심하면 분명 한 쪽은 불면증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경과가 심해지면 건강도 나빠진다.

 

잠의 매커니즘은 신기하다. 수면 박탈로 인해 정신이 완전히 나간 좀비가 되어도 두세 시간만 자면 다시 원 상태로 회복된다. 건강을 위한 충분한 수면 시간을 규정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지만, 놀랍게도 인류는 잠을 두 시기로 나뉘어서 잤다. 유럽 중세 시대 사람들은 해가 완전히 저문 이른 시간에 잠을 자면, 자정에 깨어난다. 충분한 수면으로 몸이 저절로 반응해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잠을 두 번 나누어서 자려고 일부러 일어났다. 자정부터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거나 책을 읽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보낸다. 사실 개인적인 시간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성(性)스러운 운동을 많이 했다. 어쨌든, 한 시간만 깨어 있다가 다시 잠을 청한다. 이것이 두 번째 잠이다. 시대가 변해 생활 방식도 달라지자 두 번째 잠은 사라져버렸다. 간혹 일찍 자다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비정상적인 수면으로 간주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의 몸이 오랫동안 잊힌 과거의 수면 방식을 기억하고 있다는 신체적 증거이다.

 

이처럼 24시간 절반을 자면서도 정작 우리가 왜 잠을 자는지 그리고 꿈을 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몰라도 된다. 사실 수면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이것만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잠은 꼭 자야 한다는 사실. 우리가 잠에 대해서 너무 모르다보니,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편하고 소중한 시간을 소홀하게 여긴다. 잠잘 수 있을 때 자는 것이 최고다. 밤에 우리를 찾아오는 잠의 신(Hypnos)을 자주 쫓아내면, 신이 분노해서 자신과 똑닮은 죽음의 신(Thanatos)을 데려올 수 있다. 건강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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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5-01-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한 잠 정말 중요한데 요즘 아이들 불쌍해요. 학교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 물어보면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지 뭘하는지 하여튼 집에 가면 11시래요. 그러면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스마트폰도 하고 해야하거든요. 그러니 점점 자는 시간은 줄어들고....
부모들한테 제발 애들을 좀 재우라고, 당신은 하루 5-6시간 자고 다음날 제대로 일할 수 있냐고 해도 별 소용이 없네요. ㅠ.ㅠ

cyrus 2015-01-13 18:59   좋아요 0 | URL
잠을 적게 자는 습관이 많아지면 몸도 적응됩니다. 그렇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낮잠 시간을 부여하는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편인데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