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원한다. 실제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첫 만남에서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만나는 사이에 첫인상이 형성된다. 사람들이 첫인상을 형성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쓸 수 있는 정보라고는 기껏해야 상대방의 외모, 목소리, 복장이 전부다.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든다. 얼굴, 신장, 체격 등의 겉모습과 제스처, 말투라는 극히 제한된 정보로 그 사람의 성격까지 판단해버린다.

 

 

 

 

 

 

 

 

 

 

 

 

 

 

 

 

 

* 말콤 글래드웰 블링크(21세기북스, 2016)

 

 

 

이렇듯 첫인상은 매우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 첫인상이 좋으면 쉽고 편하게 생각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첫인상을 블링크(blink)’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블링크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가리킨다. 글래드웰은 상대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초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눈으로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옷 등 잘게 쪼개진 정보를 모은 뒤 살아온 과정에서 축적된 판단력으로 사람을 단번에 평가한다는 얘기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학자마다 다르긴 하나 길어야 7초다.

 

첫인상이 나중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초두 효과(primary effect)’라고 한다. 사람은 일단 첫인상이 형성되면 후에 들어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 형성 및 인물 평가에 영향을 준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낯선 장소가 안전한지, 상대가 사기꾼은 아닌지 재빨리 판단해 움직이는 생존 기계로 진화해온 결과다.

 

 

 

 

 

 

 

 

 

 

 

 

 

 

 

 

 

* 생텍쥐페리, 황현산 역 어린 왕자(열린책들, 2015)

 

 

 

한 사람의 실속 있는 내면이나 진가를 보지 않고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만의 색안경에 갇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어린 왕자에 나오는 천문학자 이야기는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어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행성을 발견한 터키의 천문학자는 국제천문학회가 참석하여 소행성의 존재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터키 천문학자의 단출한 복장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몇 년 지난 후, 터키에 서양식 문화가 유입되었고 터키의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서양식 복장을 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터키 천문학자는 멋있는 서양식 복장을 하고 국제천문학회 연단 위에 다시 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천문학자가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 존 파렐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양문, 2009)

* 데이비드 보더니스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까치, 2017)

 

 

 

아인슈타인(Einstein)과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itre)의 첫 만남어린 왕자속 천문학자 이야기와 묘하게 겹친다. 빅뱅(big bang)’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조지 가모(George Gamow)로 널리 알려졌지만, ‘빅뱅 이론으로 자라게 될 생각의 씨앗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조르주 르메트르이다. 가모는 빅뱅 이론을 체계화화한 학자다. 그는 빅뱅 이론을 뒷받침해줄 증거-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관측했다-를 발견했다. 프레드 호일(Fred Hoyle)빅뱅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빅뱅 이론을 비웃은 학자였다.

 

 

 

 

 

 

르메트르는 벨기에 출신의 과학자이자 가톨릭 신부였다. 그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한 점에서 출발했으며 그 점이 바로 태초의 우주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주의 모습을 불꽃놀이에 비유했다.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이 고안한 방정식을 토대로 팽창하는 우주를 증명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우주 팽창 가설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르메트르는 직접 아인슈타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마도 르메트르는 위대한 과학자를 만나러 갔을 때 평소에 입던 검은색 신부 복장(사진 속에 르메르트가 입은 옷이다)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가 교회 신부라는 이유로 의심의 눈길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벨기에 신부의 주장을 묵살한 천재의 판단은 실수였다.

 

대부분 우주론을 설명한 책에 보면 르메트르를 조연급으로 언급한다. 이렇다 보니 르메트르는 조지 가모, 심지어 빅뱅 이론을 무시한 호일보다 인지도가 밀린다. 우주 팽창을 이해하려면 먼저 르메트르의 생각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는 신부였지만, 자신의 종교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생각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은 르메트르의 일생과 종교라는 이름에 갇힌 그의 과학적 성과를 재조명한 유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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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0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1 12:47   좋아요 0 | URL
과학자, 종교인 양쪽에서 외면받은 외로운 학자였어요. 교황이 빅뱅 이론을 창조론의 근거로 사용한 것에 반발할 정도로 과학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2-20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뱅이론은 기독교의 창조론과도 잘 부합되는 이론이라 여겨집니다. ‘태초에 빛이 있어라‘라는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과학의 다른 이론보다 상대적으로 저항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cyrus 2017-12-21 12:50   좋아요 1 | URL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빅뱅 이론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르메트르 신부는 빅뱅이론의 종교적 관점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빅뱅 이론이 종교와 과학의 중간 다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 - 초기의 작가들에서 20세기 SF까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김홍근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엄청 많은 고전 중에 도대체 어떤 재미있는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면 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아온 권위자의 조언을 따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만약 그 권위자가 천국의 도서관장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라면 신뢰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는 아예 도서관을 삶의 터전으로 삼을 정도로 도서관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부계의 유전병을 물려받으면서 태어난 보르헤스는 너무 많은 책을 읽은 탓에 실명하게 된다.

 

보르헤스의 소설은 간결하고 압축적이며 짧고 재미있다.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역시 짧고 재미있다. 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는 미국문학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개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애서가의 지적 편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일뿐만 아니라, 후대의 많은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보르헤스가 엄선한 미국문학 고전들을 접할 수 있다. 지극히 저자의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하나같이 매혹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작품들이다.

 

보르헤스의 말에 따르면 문학 작품 자체가 우리(독자들)를 끌어당기는 매력[1]이 있다고 한다. 보르헤스가 말하는 문학 작품의 매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서문만 봐도 좀처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보르헤스 문학의 매력을 아는 독자라면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다. 보르헤스의 글은 환상과 사실을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완벽하고 독특한 상상의 산물이나 현상을 마치 실재했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든다. 독자는 보르헤스의 문학이 가진 환상성을 이해해야 한다. ‘환상성은 보르헤스가 강조한 독자를 끌어당기는 문학 작품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보르헤스가 추구한 환상성에 영향을 준 미국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환상문학의 뿌리이다. 그 뿌리 속에 흐르는 문학적 영양분을 듬뿍 받고 자라 훌륭히 성장한 나무가 바로 보르헤스다. 그는 자신을 달의 작가로 분류했다. ‘달의 작가는 홀로 사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사상을 재료로 삼아 글을 쓴다. 반면 태양의 작가는 정치적 상황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는 현실주의자이며 능숙하게 글을 써내려간다. 보르헤스는 미국의 초월주의자들을 주목했는데, 그들은 달의 작가에 속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사회보다는 개인, 이성보다는 직관을 앞세웠고,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서 초월적 자아를 완성하는 삶을 살았다.

 

그밖에 보르헤스는 추리소설, 서부문학, 인디언 문학 등에 주목하여 러브크래프트(Lovecraft),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등을 소개한다. 이들 역시 포의 문학적 영양분을 먹고 성장한 훌륭한 작가들이다. 그런데 보르헤스가 인디언 문학을 소개한 점은 아이러니하다. 보르헤스는 원주민 학살을 문명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옹호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발언에 남아메리카 작가들도 한 목소리로 비난한다. 보르헤스가 19세기 미국 서부 시대에 활동했던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의외다. 아울크리트 다리에서 생긴 일(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 막힌 창(The Boarded Window), 요물(The Damned Thing) 등은 환상문학, 공포문학 단편 선집에 수록되는 비어스의 대표작들이다.

 

   

 

[1] 서문, 10 

 

 

 

 

* Trivia

 

베니토 세레노 선장이라는 인물은 조셉 콘래드의 나르시소스 호(Narcissus)’의 흑인을 떠올리게 하고,‥… (68)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이 쓴 단편소설이다.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가 쓴 소설의 정확한 제목은 나르시소스 호의 흑인(The Nigger of the Narcissu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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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2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책 몇권을 헌책방에서 사놓은지 꽤 되었는데 얼른 손이 안가네요

cyrus 2017-12-20 16:07   좋아요 0 | URL
보르헤스 전집 1권을 읽어봤는데 재미없어서 포기했어요. 단편이라고 만만히 보다가 큰 코 다쳤습니다. ^^;;

레삭매냐 2017-12-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르헤스 책들을 몇 권 가지고는 있는데
도통 읽게 되질 않네요 허허

cyrus 2017-12-20 16:10   좋아요 0 | URL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보르헤스의 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보르헤스 관련 서적을 먼저 보고, 소설 읽기에 재도전해야겠어요. ^^

2017-12-20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0 16:12   좋아요 1 | URL
렌즈를 잘못 착용해서 실명할 뻔 했어요. 안경을 썼는데도 시야가 흐렸어요. 그 때 얼마나 식겁했는지.. ㅎㅎㅎ 눈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페크pek0501 2017-12-2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말>을 완독했는데 좋았습니다.
이 책은 어떨지 관심이 갑니다.

cyrus 2017-12-20 16:13   좋아요 1 | URL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분량이 얇아서 전공 책 느낌이 1도 나지 않습니다. ^^
 
고마워 영화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배혜경 지음 / 세종출판사(이길안)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수필의 장점은 그 어떤 장르보다도 글 쓰는 주체의 사유와 정서의 무늬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매력이다. 엄격한 자기통제와 문학적 수련이 담보되지 않았을 경우, 수필은 어느 순간 지리멸렬한 졸문이 된다. 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타인과의 진지한 대화로 이루어진 탁월한 수필은 그 자체로 매혹적인 문학적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배혜경의 두 번째 수필집 고마워 영화를 읽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탁월한 글을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고마워 영화에는 첫 번째 수필집 앵두를 찾아라(수필세계, 2015)와는 또 다른 작가의 면모와 사유의 흔적, 영화에 대한 생각 등이 흥미롭게 표출되어 있다.

 

영화는 답답한 현실에서 나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낯선 문화, 다양한 삶의 현장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작가 특유의 소박한 필치로 영화라는 해방구를 통해 내다본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고마워 영화는 영화감상의 특별한 안목이 보인다든가 대단한 해석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이점은 많고 많은 영화비평에서 찾으면 된다. 이 수필집은 똑같은 산과 강을 둘러봤더라도 그 쓰인 문체와 감상에 따라 읽는 맛이 달라지는 기행문처럼 그런 재미로 읽어 볼만한 책이다. 영화에 방점이 찍히는 책이라기보다는 산문이되 다만 그 소재가 영화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작가의 글들은 읽는 이들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카페에 앉아 내가 본 그 영화는 좋았어.”라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작가의 영화 이야기는 우리들이 흔히 보는 그런 소모적이고, 읽고 나면 내 삶의 그 어느 한구석도 위안이 안 되는 그런 글들이 아니다. 그녀는 글을 얼마나 꼼꼼하게 쓰고 다듬었던지 읽는 내가 온몸에 힘을 주면서 읽을 정도였다. 그녀가 서문에서 인용한 영화 대사 삶은 디테일이다라는 말은 독자에게 영화 읽기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영화 장면까지 살펴보는 작가의 시야는 아마, 그녀의 진지하고 정직한 자기 성찰과 세상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따뜻한 애정에서 오는 듯하다. 그녀는 <더 리더, 책을 읽어주는 남자><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연기한 케이트 윈즐릿(Kate Winslet)의 맨발을 주목한다. 작가는 배우의 맨발에서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은 영화 속 인물의 표정을 읽어낸다.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교해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고 한다. 다양한 예술 장르로 나타낼 수 있는 감정의 표현 방법 중에서 문학이 가장 근본적이며,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심(詩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따라서 시심이 메마르면 인간사회는 그만큼 무미건조해지고 오히려 살벌해지기까지 하다. 우리네 삶에서 시심이 실종되는 순간 감동적인 글은 더 이상 쓸 수 없으리라. <일 포스티노>를 소개한 글인 시인의 의무는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독자의 시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 글은 문정희 시인의 시 가을 우체국으로 시작해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시로 끝이 난다. 영화와 문학이 정교하게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좋은 영화를 혼자만 숨겨두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낯선 영화를 함께 보며 친구의 우정은 더욱 무르익어가고, 같은 영화를 보았던 낯선 이는 어느덧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마워 영화는 그런 소박한 행복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다. 작가는 마음속에 간직해온 영화라는 보물을 끄집어내 공유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멋진 영화 한 편 보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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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0 12:0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프레이야님처럼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

2017-12-20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0 12:10   좋아요 0 | URL
오히려 제가 프레이야님의 책을 읽으면서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책 속에 파묻히다시피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성격이 꽉 막혔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프레이야님의 글을 읽으면서 책의 지식을 습득하는 삶보다 사람 간의 정을 느끼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레삭매냐 2017-12-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영화를 다룬 책들을 정말 찾아서 볼 정도
로 열정이 있었는데 이젠 영화도 그리고 영화를 다룬
책도 잘 보게 되질 않네요...

cyrus 2017-12-20 16:15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이달의 당선작’ 영화리뷰 부문이 있었을 때가 좋았어요. 그 시기에 깊이 있는 영화리뷰를 쓰는 분들이 많았어요. 영화리뷰 부문이 사라지고 난 뒤에 저도 영화 볼 일이 줄어들고, 영화리뷰를 쓰지 않게 되었어요. ^^;;
 

 

 

영국의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의 단편소설 포인터 씨의 일기장은 책 수집가에게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섬뜩한 분위기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임스 덴턴은 고서를 모으는 책 수집가다. 그는 윌리엄 포인터라는 사람이 쓴 오래된 일기장을 주문한다. 덴턴과 같이 사는 고모는 조카의 고서 수집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고모님의 잔소리를 한 번 들어보자. 덴턴이 처한 난감한 상황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 다녀온 다음 그의 고모가 서재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서탁에 놓인 네 권의 묵직한 갈색 가죽 장정 서적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이게 대체 뭐니?” 그녀는 의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산 거지? ! 이것 때문에 내 꽃무늬 커튼을 잊은 거니? 그럴 줄 알았어. 끔찍하구나. 여기에 대체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궁금하구나. 10파운드가 넘는다고? 제임스, 이건 죄악이야. 그래, 이따위 물건에 낭비할 돈이 있으니 우리 생체 해부 반대 모임에도 꽤나 많은 돈을 기부해 줄 수 있겠구나. 정말이야, 제임스. 네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기분이 나쁠…‥ 잠깐 누가 썼다고? 애크링턴의 포인터 씨? 그래, 이웃의 고문서를 모아들이는 일 자체야 흥미로울 수도 있지. 하지만 10파운드라니!” 그녀는 조카가 든 것 말고 다른 일기장 한 권을 집어 들고는 아무 쪽이나 펼쳐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책장 사이에서 집게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여 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덴턴 씨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책을 집어 들었다. 불쌍한 일기장! 고모님은 포인터 씨에게 너무 가혹하게 구시는 것 같네요.” “그랬니, 얘야? 미안하지만 나는 저런 끔찍한 벌레들은 견딜 수가 없단다. 어디 책이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한번 보자꾸나.” (391~392)

 

 

덴턴처럼 고서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헌책방에 있는 오래된 책을 좋아한다. 헌책방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책들의 상태는 온전치 못하다.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색하였고, 퀴퀴한 곰팡내를 풍긴다. 그렇다 보니 이런 책을 사 오면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 동생은 간혹 내 서재를 구경하다가 오래된 책을 발견하면 이런 책을 왜 샀어? 재미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재미있으니까 샀지.”라고 짧게 대답만 한다. 어머니는 내 방 안에 가득한 책들을 볼 때마다 그만 사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잘 안하셔서 그렇지 눈치 빠른 어머니는 아들이 야금야금 생활비로 책을 사는 것을 알고 있다.

 

 

 

 

 

 

 

책 주문할 때마다 가족들 눈치받기 싫어서 편의점 픽업 서비스또는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퇴근할 때 편의점이나 중고매장에 도착한 택배를 받으러 간다. 그러면 가족들 모르게 책을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니까 또 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중고매장에 진열된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택배 물품 찾으러 매장에 가면 책을 더 사게 된다. 택배 물품만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간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소비 습관이 안 좋을 줄 알면서도 중고매장에 택배 물품 찾으러 가는 날이면 에코백을 챙긴다…‥. 나란 놈은 스튜핏이다.

 

책을 사 모으는 일, 알라딘 서재에 글 쓰는 일 모두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나의 독서 행위가 공개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알라딘/북플, 책 관련 온 · 오프라인 커뮤니티(출판사 공식 카페, 독서모임 등)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 좋아하는 취향을 밝혀서 남들한테 좋은 소리 들은 적이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내게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 절대로 내가 먼저 책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독서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유희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유희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자 즐기는 유희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 책을 많이 사도 스튜핏!, 책을 읽어도 스튜핏! 스튜핏 소리 계속 듣더라도 내 갈 길 가련다. 개썅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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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34   좋아요 0 | URL
오래된 책들도 도서관에서 만날 수만 있다면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온 지 십년이 채 안 된 책들은 도서관 창고로 향합니다. 한 달마다 새 책들이 도서관에 들어오기 때문에 먼저 도서관에 온 책들은 양로원 같은 창고에 머물게 되는 거죠.

syo님이 빠르면 연말에 대구를 떠난다고 합니다. 유레카님이 괜찮으시다면 syo님도 뵙으면 합니다. ^^

2017-12-19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36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책 구입을 자제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

stella.K 2017-12-19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책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따 시키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이 뭐 피해주는 것도 없는데 말야.
책 읽는 사람은 접근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나 봐.
놀자고 그러면 얼마든지 놀아줄 수도 있는데 말야.ㅋ

사실 궁금하긴 해. 넌 다달이 사는 책 어떻게 두고 있나?ㅋ

cyrus 2017-12-19 17:39   좋아요 0 | URL
저는 조용하게 노는 것을 좋아해서 남자들이 성인이 되면 꼭 가는 곳(19금 관련)에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그런 곳에 가서 돈 낭비하기 싫어요.

서재에 더 이상 써야 할 글이 없으면 제 방 전체 내부를 사진으로 공개하겠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7-12-19 18:18   좋아요 0 | URL
아니 누가 뭐랬니? 묻지도 않는...ㅋㅋㅋㅋㅋㅋ

아하, 보통 남자들은 그렇게 노는구나.
당연하지. 그런데다 돈 쓰느니 책 사 보는 게 훨씬 낫지.
너를 순수 건전남으로 인정! 그뤠잇~!ㅋㅋ


cyrus 2017-12-19 18:26   좋아요 2 | URL
저는 내 친구들은 19금 장소에 가서 놀지 않을 거라고 순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자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변하긴 변해요. 저보다 순둥순둥한 친구들도 성인이 되기 위한 어둠의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거 보면 ‘착한 남자’는 절대로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2017-12-19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45   좋아요 1 | URL
책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사람과 같이 만나고 어울리는 것도 중요해요. 개인적 시간, 공적 시간 둘 다 균형 잡는 일이 어렵지만, 너무 책만 몰입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간에 만나면서 느낄 수 있는 정에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잘난 척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좁은 심성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찔레꽃 2017-12-19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마누라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여보 내 취미가 뭐냐구 물어 봐! 취미가 뭐야? 책 사는 것! 마누라가 말했어요. 여보 내 취미가 뭐냐구 물어 봐! 취미가 뭐야? 고양이 키우는 것! 제가 말했어요. 어휴 둘 다 벼랑 아닌 취미일세... Cyrus님은 사는만큼 읽으시니 괜찮지만, 저는 잘 읽지도 않으면서 왜 그리 책을 사는지... 저야말로 스튜 핏! 입니다. 하하하.

cyrus 2017-12-19 17:47   좋아요 0 | URL
저도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엄청 많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생각해서 샀는데, 그 ‘언제‘를 기약할 수 없어서 문제입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7-12-1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읽는 게 취미라고 해도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와서 아주 글이 흥미롭게 여겨지네요^^

cyrus 2017-12-19 17:48   좋아요 0 | URL
주변에 책 좋아하는 친구 한 두 명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습니다. 진짜 제 주변에 책 읽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은 스튜핏이 아니라 열정입니다. 사이러스 님은 독서를 정말 좋아하시는 듯...

cyrus 2017-12-19 17:5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커뮤니티에 저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제가 외향적인 성격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놀 줄 알았으면 책과 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됐습니다.

레삭매냐 2017-12-19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다이어트는 그래서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늘어나는 장서를 보관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꼭 갖고 싶은 책들만 추려 내고
나머지들은 혹독하게 정리를...
맨날 말로만 이러고 있답니다. 오늘도 세 권
샀네요.

cyrus 2017-12-19 18:21   좋아요 1 | URL
반전의 댓글이군요.. ㅎㅎㅎ 북플 알림으로만 봤을 땐 레삭매냐님이 책 다이어트를 제때 하자는 내용의 댓글인 줄 알았어요. 지름신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 퇴근할 때마다 괴롭습니다. 퇴근하면 대형서점이 있는 번화가를 꼭 지나가야 합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다가 단순하게 책을 사고 싶어서 번화가에 내린 적이 많습니다. ^^;;
 

 

 

유령귀신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유령과 귀신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두 단어의 의미에 약간은 차이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1]에 따르면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넋’, ‘사람에게 화()와 복()을 내려주는 신령이다.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이다. ‘신령으로서의 귀신은 무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조상신을 제외하고 온갖 잡귀와 잡신은 어르거나 달래고 혹은 위협해서 축출해야 하는 존재이다. 기독교가 보는 유령은 일반적인 귀신 개념과는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신과 대립하는 악마, 마귀를 유령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성령의 힘을 받은 기독교인은 몸에 깃들인 악령을 퇴치하는 엑소시스트(exorcist)로 활동하기도 했다.

 

 

 

 

 

 

 

 

 

 

 

 

 

 

 

 

 

 

* 로저 클라크 유령의 자연사(글항아리, 2017)

 

 

 

피터 언더우드(Peter Underwood)라는 영국의 고스트 헌터(ghost hunter)는 유령을 여덟 가지 존재로 분류했다.[2]

 

 

1) 엘리멘탈(elemental)

2)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3) 전통적 유령

4) 역사적 유령

5) 정신적 각인의 구현

6)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

7) 타임 슬립(time slip)

8) 생자의 유령

 

 

엘리멘탈은 묘지를 떠도는 유령이다. 폴터가이스트는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잠깐,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상식 하나를 알려주겠다.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인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독일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3] 전통적 유령은 죽은 자의 혼령이다. 전통적 유령은 살아있는 자의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들과의 영매(channeling, 귀신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역사적 유령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의 혼령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백악관에 출몰했다는 링컨(Abraham Lincoln)의 유령이다. 링컨의 영부인은 링컨의 유령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정신적 각인의 구현정신적 에너지가 특정한 장소, 특정한 날짜에 방출되어, 극단적 상태의 정신이 심령 존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은 가까운 지인이 죽음 또는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순간에 그들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시간 여행)은 어떤 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을 통해 만난 과거의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땐 이미 죽은 자들이며 그들의 정체는 유령이라 할 수 있다.

 

 

 

 

 

 

 

 

 

 

 

 

 

 

 

 

 

 

* 최기숙 처녀귀신(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 귀신은 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남자 귀신과 여자 귀신.[4] 전설 또는 야담에 등장하는 남자 귀신은 조상신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 귀신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후손들은 집안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신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낸다. 여자 귀신은 한 맺힌 존재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랑의 배신을 맛보거나 심지어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당한 여성은 죽어서 원귀(冤鬼)’가 된다. 여자 귀신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품으면서 구천을 떠돌기만 한다. 그래서 여자 귀신은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구원의 대상 앞에 나타나는데, 대부분 관직이 높은 사대부들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모습은 남성의 능력을 부각하는, ‘남성을 위한 클리셰이다.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나래북, 2014)

* 다니엘 디포 빌 부인의 망령(현인, 2014, e-Book)

 

 

 

한국의 여자 귀신은 죽어서야 자신들의 억울함을 전달할 수 있는 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대상은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여자 귀신의 호소를 이해하고, 그녀를 도와주는 남성의 모습은 현실의 남성의 우월함을 강조할 뿐이다. 이런 젠더 구조가 고착되면서 여자 귀신은 원한이 서린 무시무시한 존재’, 즉 오늘날의 처녀 귀신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므로 여자 귀신이 살아있는 여성앞에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 설정의 공포소설(또는 유령 이야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빌 부인의 망령페미니즘 관점으로 분석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이 이야기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선량한 버그레이브 부인 앞에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빌 부인의 영혼이 등장한다. 버그레이브 부인은 오랜만에 만난 빌 부인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살아있는 자와 유령이 너무나도 차분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혹자는 이 장면이 지루하거나 유령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여성의 대화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이 연대하는 자매애(sisterhood)’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공통으로 남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바그레이브 부인은 품행이 바르지 못한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그래서 빌 부인의 영혼은 남편에게 괴롭힘당하는 바그레이브 부인을 염려하고, 그런 남편을 미치광이라고 부른다.

 

 

버그레이브 부인이 빌 부인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마셔도 상관은 없지만 그 미치광이(버그레이브 부인의 남편을 말한다)가 네 그릇을 깨뜨려버리지는 않았니?”라고 말했다. [5]

 

 

빌 부인의 남동생은 버그레이브 부인의 영매 체험을 미치광이의 잠꼬대라고 비난한다. 남성은 유령을 목격하는 여성에서 나타나는 감정 상태, 공포이성이 부족한 여성들의 특성으로 치부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남성은 항상 감정이 절제된 상태를 지향했고,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세계를 거부했다. 그러나 버그레이브 부인은 차분하게 친구의 유령을 맞이했고, 자신이 만났던 친구의 정체를 뒤늦게 확인했을 때도 매우 놀라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버그레이브 부인은 영혼을 목격한 이성적인 존재이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남성들이 버그레이브 부인을 비난할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버그레이브 부인과 빌 부인의 유령은 남성들이 가로막은 현실적 장벽에 잠시나마 벗어나 환상의 경로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대화로 풀어냈다.

 

여자 귀신이 발화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권력을 가졌고, 지혜로운 남성 앞에 등장했다. 여자 귀신의 한을 풀어준 남성은 명예를 얻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남성이 지혜로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여자 귀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태도와 행동들은 남성의 영웅 심리가 반영되어 있을 뿐, ‘여성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이야기 속 권력자 남성들은 여자 귀신 앞에서도 지배적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 남성성을 수행하고 있었다.

 

 

 

 

 

 

 

 

 

 

 

 

 

 

 

 

 

* 유민석 메갈리아의 반란(봄알람, 2016)

 

 

 

나는 유령과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은 여성이 죽어서 남성을 복수한다거나 페미니스트 귀신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살아있을 때 말해야 한다. 여성을 침묵시켜 온 여성 혐오에 대항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편견 등을 물리치려면 남성 화자의 권력을 모방하여 저항의 언어를 발산해야 한다. 메갈리아의 미러링(mirroring)여성 혐오에 질식된 여성들이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6]이다. 그 비명의 숨은 의도를 이해하는 남성들은 얼마나 될까? 다만 미러링 대상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성소수자, 반 페미니즘과 무관한 인물일 경우, 또 다른 혐오와 사회 불신을 양산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소모적인 갈등만 조장하는 혐오와 사회 불신이야말로 귀신과 유령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다.

 

 

 

 

 

[1] [‘귀신유령의 차이] 네이버 국어사전-우리말 바로 쓰기

[2] 유령의 자연사29~32

[3] 같은 책, 118

[4] 처녀귀신22~23

[5] 빌 부인의 망령22

[6] 메갈리아의 반란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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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의 자연사> 누가 리뷰 안 해주나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까였어요. 췟.

한국귀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스트레이트해요. 옆나라 일본만 해도 상상초월 많잖아요. 귀신도 국민성, 상상력 반영 같기도 하고. <한국의 숨은 귀신을 찾아서>가 필요해요.

페미니스트 귀신이라니! 심각한 말씀 중에 죄송한데 넘 흥미로운 소잽니다!

cyrus 2017-12-18 17:13   좋아요 1 | URL
조금 지루한 내용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읽어볼 만합니다. 유령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생각과 반응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귀신을 주제로 한 <처녀귀신>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귀신’은 소설에 나오는 존재입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2017-12-1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7:30   좋아요 2 | URL
남자 귀신은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덕담을 해주거나 쓴소리를 해주는 역할이라면 여자 귀신은 자신의 원한을 호소하기 위해 살벌하게 등장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남자 귀신은 착한 귀신, 여자 귀신은 나쁜 귀신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요. 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마고 할멈은 신령한 존재였는데, 어느 지역에서는 악령으로 알려졌어요. 남성 중심의 유교 사상에 밀려서 무속신앙 속 여신들은 잡귀로 인식된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쳐녀귀신 재미있겠는데요. 전 이런 책이 재미가 있더군요..찜해놯습니다..

cyrus 2017-12-19 09:02   좋아요 0 | URL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

표맥(漂麥) 2017-12-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달걀귀신은 남자귀신인가요? ^^

cyrus 2017-12-19 09:56   좋아요 1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 생각에는 여성 달걀귀신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달걀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의 패턴은 똑같아요. 남자가 밤길을 혼자 지나가는데, 여인의 뒷모습을 발견합니다. 남자가 말 걸자, 뒤돌아본 여인의 정체는 눈, 코, 입이 없는 달걀귀신이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12-19 09:36   좋아요 2 | URL
남자귀신이라면 역시 몽달귀신이죠..-_-: 달걀귀신의 남성형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한국의 귀신체계에서 나름 남녀성차별이 없는 건 총각귀신/처녀귀신 같네요...둘 다 못 가보고 죽은 귀신...-_-:

cyrus 2017-12-19 09:59   좋아요 0 | URL
To. t-guest님 / 남성형, 여성형 귀신 및 유령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

감은빛 2017-12-1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글 읽으니 저 책들 다 읽은 기분이네요. ^^

[유령의 자연사] 보고 저런 책도 다 있네 생각했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처녀귀신]이 더 재밌겠네요. ^^

cyrus 2017-12-19 17:52   좋아요 0 | URL
<처녀귀신>에 익숙한 고전 문학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내용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