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표정 -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길을 탐색하는 열두 걸음
전병근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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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missive’순종적인’, ‘고분고분한을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마그리트(Magritte)의 그림 제목을 직역하면 순종적인 독자(The Submissive Reader)’로 풀이할 수 있겠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상식이 무너지고, 이성을 혼란에 빠뜨리는 모순이 있다. 마그리트는 그림을 통해 일상적으로 익숙한 인식의 틀을 바꾸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아주 가변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그림 속의 사물들을 엉뚱하게 배치하면서 관람객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마주한 관람객들은 순종적인 독자처럼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순종적인 독자는 도대체 무얼 봤기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마도 저 책 속에 독자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으리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독자는 책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순종적인 독자는 마치 자석처럼 책에 이끌려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진다전병근의 지식의 표정(마음산책, 2017)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지시하는 책이다. 이 책 속에 있는 열두 명의 인터뷰를 눈으로 읽노라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열두 명의 지식인들은 문학, 과학, 정치, 역사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그들이 긴 세월을 내다보면서 뚜벅뚜벅 걷고 있는 지식의 길과 인간의 의미가 달라질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지만 읽고 쓰는 삶을 실천하는 모습은 다 똑같다.

 

대만의 문화비평가 탕누어(唐諾)는 독서를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지속적인 경험이라고 말한다. 독자는 미지의 세계에 곤혹스러워한다. 그러나 훌륭한 독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색을 좋아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다. 독서를 즐기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새로운 책을 접할 때 생기는 곤혹감을 잊게 해준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서로 상충하는 지식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데 필요한 덕목으로 중용과 겸허를 꼽는다. 스웨덴 복지정책을 국내에 소개한 최연혁 교수는 정치교육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정치인을 육성하는 정치 전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독서, 논쟁이 불가피한 지식의 세계 속에 균형을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사회 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치적 역량 강화는 성장하는 인간이라면 갖추어 할 기본적 자세들이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장담하기 어려운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막역한 걱정에 매달린 채 살아간다면 기술 발전을 통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역사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인류학자 이상희, 진화생물학자 장대익은 공통으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변화는 역사의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도 시대 흐름에 맞는 변화를 보여야 함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태도를 지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과거를 넘어서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김명남은 번역, 이기호는 소설, 이충렬은 전기 문학에 투신하는 읽고 쓰는 인간이다. 이기호는 소설 읽기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정신적 훈련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몰입하는 인간이다. 한문학자 강명관, 문학평론가 유종호, 신경과학자 이대열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상이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가 원해서 변화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변화를 익숙한 것의 상실이라는 부정적 선입견을 품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에 곤혹을 느끼지 않으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신의 가치관을 열어두고 외부의 자극과 여러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두려움보다는 변화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인식과 시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을 때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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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5 12:43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돈벌이가 되는 신종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비트 코인 열풍만 봐도 알 수 있어요. ^^;;

페크pek0501 2018-01-1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1인이에요. 시대를 따라가기가 버겁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예전에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도 그랬고 스마트폰을 처음 샀을 때도 그랬어요.
두려움보다는 변화를 당당히 받아들여야 할 텐데...

cyrus 2018-01-15 12:48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저는 뉴스를 보고서야 비트 코인 열풍을 알았어요. 새로운 유행을 빨리 알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메리 커샛(Mary Cassatt)은 인상주의 미술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여성화가다. 모리조는 마네(Manet)의 제자였다. 그녀는 최초의 인상주의 회화 전시회에 참여한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커샛은 미국 출신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건너온 커샛은 드가(De Gas)와 친하게 지내면서 인상주의 미술을 수용했다. 드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커샛은 다섯 차례나 인상주의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두 사람의 작품 대부분은 여성의 개인적 일상생활을 담고 있으며 모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 (해냄, 2003)

 

 

 

 

모리조와 커셋은 남성 중심의 화단 속에서 전업 화가로 살아 왔다. 그 당시에는 공립 미술학교에 여성들이 입학할 수도 없었을 만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론가와 동료 화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모리조는 아버지의 격려 속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었지만, 커샛은 자신을 에워싸는 비웃음과 편견 속에서 어렵사리 미술의 세계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커샛도 모리조처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족들은 그녀가 화가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다. 커샛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누드 드로잉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교수들은 여학생들의 모사 작업에만 관심을 가졌다. 미국 미술학교의 제한적인 수업에 불만을 품은 커샛은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파리로 이주했다.

 

모리조와 커샛은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이 재조명한 화가들이다. 그녀들은 생전에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았지만, 사후에 잊히고 말았다.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한 여성 화가였음에도 그녀들은 오랫동안 비주류 화가로 분류되었다. 남성 중심의 화단은 두 사람의 작품을 ‘과소평가’했고, 기록의 권력을 가진 남성 미술사가들은 그녀들을 화단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주변적 인물’ 정도로 간주했다.

 

그런데 19, 20세기 여성 미술가의 업적을 연구한 시모나 바르톨레나는 모리조와 커샛을 ‘남성화가 및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한 피해자’로 바라보는 관점에 이견을 드러냈다.

 

 

 

 

 

 

 

 

 

 

 

 

 

 

 

* 시모나 바르톨레나 《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 (마로니에북스, 2009)

 

 

아마도 여성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도 몰라도 인상주의자들에게 냉혹했던 비평가들조차 여류화가들에게 신랄하게 혹평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여류화가들이 피해자였다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벗어난다. (72쪽)

 

 

 

이 문장의 원문을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번역문이 페미니즘 미술사가의 작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생전에 과소평가를 받았거나 사후에 잊힌 여성화가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것이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의 일차적인 활동 목표이다. 남성 미술가들에게 차별받고 외면당한 여성 미술가의 피해의식을 보상받기 위해 여성 미술가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 평론가들이 ‘여성에 대한 예의’ 때문에 모리조와 카셋에게 혹평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여성 화가를 과소평가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여성 화가는 혹독한 비난을 감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남성 평론가들의 생각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다. 모리조와 커셋의 작품을 칭찬한 남성 평론가들(살롱 심사위원)은 그녀들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들은 모리조와 커셋을 ‘여성화가’가 아닌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으로 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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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cyrus 2018-01-12 13:09   좋아요 1 | URL
그들이 웃고, 싸우고, 질투하면서 지내는 모습을 살펴보면 마치 드라마 한 편 보는 것 같습니다. ^^
 

 

 

지난달부터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의 삶과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상주의 미술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큰 흐름을 톺아보면서 ‘주제 서평’을 쓸 계획을 세웠다.

 

 

 

 

 

 

 

 

 

 

 

 

 

 

 

 

 

 

* 아르망 푸로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글항아리, 2009)

 

 

 

이 글이 서양미술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주제 서평이 되지 싶다. 이 글의 주제이자 주인공은 베르트 모리조다. 오늘날 인상주의는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술사조 중 하나가 되었다.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태동과 흐름을 친절하게 설명한 책들이 많다. 또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생애와 업적을 조명한 책들도 있다. 그런데 이 책 중에 베르트 모리조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이 별로 없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출간된 모든 인상주의 미술 관련 책 중에 베르트 모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선별했다.

 

 

 

 

 

 

 

 

 

 

 

 

 

 

 

 

 

 

 

 

 

 

 

 

 

 

 

 

 

 

 

* 김광우 《마네와 모네 : 인상주의의 거장들》 (미술문화, 2017)

* 루이 피에라르 《이해받지 못한 사람, 마네》 (글항아리, 2009)

* 스테파노 추피 《마네 : 전통에 반기를 든 근대의 화가》 (마로니에북스, 2009)

* 자비에르 질 네레 《에두아르 마네》 (마로니에북스, 2006)

* 프랑수아즈 카생 《마네 : 이미지가 그리는 진실》 (시공사, 1998)

 

 

 

마네(Manet)와 모리조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인상주의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나 글을 보게 되면 마네의 이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비록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 그룹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모리조 역시 마네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 중 한 명이다. 마네를 빼놓고 인상주의 미술에 접근한다는 것은 근대미술의 시작점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리조를 만나기 전에 인상주의 화가들이 왜 자신들과 거리를 둔 마네를 위대한 화가로 치켜세우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 [절판] 줄리 마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다빈치, 2002)

 

 

 

모리조는 마네의 친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결혼하여 외동딸 줄리 마네(Julie-Manet)를 낳았다. 줄리 마네는 어렸을 때부터 인상주의 화가와 문인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녀를 따뜻하게 보살펴준 사람들이 드가(Edgar De Gas), 르누아르(Renoir),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Mallarme) 등이다. 특히 말라르메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리의 대부(代父)가 되어 그녀를 친자식같이 보살폈다.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은 1893년부터 1899년까지 기록된 줄리의 일기를 선별하여 편집한 책이다. 아버지 외젠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후에 줄리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삼촌인 마네는 줄리가 일기를 쓰기 시작하기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열다섯 살의 줄리가 쓴 일기를 보면 어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심리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모리조 역시 1895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줄리는 어머니의 부재에서 느껴지는 슬픈 감정들을 일기에 꾹꾹 담았다.

 

의외로 이 책의 독자 평점이 낮다. 물론, 나도 이 책에 ‘별 세 개’를 주었다. 수수하고 담백한 문체가 이 책의 특징이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리조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고 줄리도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고, 모리조와 르누아르에게 그림을 배운 적이 있다. 줄리는 자신만의 관점으로 어머니가 남긴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감정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이 책에 모리조의 그림 도판이 많아서 좋다. 모리조의 그림 대부분은 외젠 마네와 줄리를 묘사한 것들이 많다. 줄리의 모습을 담은 모리조의 그림들을 보면 가슴 뭉클하다. 유일한 혈육인 딸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시선이 느껴진다.

 

 

 

 

 

 

 

 

 

 

 

 

 

 

 

 

 

* 제프리 마이어스 《인상주의자 연인들》 (마음산책, 2007)

 

 

 

《인상주의 연인들》 ‘마네-모리조’, ‘드가-메리 커샛’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마네와 모리조를 단순히 ‘스승과 제자’ 관계로 보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이 과감하다. 제프리 마이어스(Jeffrey Meyers)는 모리조가 언니 에드마에게 보낸 편지와 마네가 그린 초상화를 근거로 모리조가 마네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랑했다고 주장한다.

 

 

 

 

 

 

마네의 화실에 드나들었던 두 명의 여성이 있었는데 모리조와 에바 곤살레스(Eva Gonzalez)다. 마네는 두 사람에게 미술을 가르쳤는데 모리조는 그림 그리는 에바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마네의 부인을 험담하기도 했다. 저자는 모리조가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마네로부터 인정받길 원했으며 그의 영향력 안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모리조는 마네와 더욱 가까이 지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네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 ‘충고’가 바로 마네의 동생과 결혼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제프리 마이어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다. 모리조의 편지 구절을 근거로 마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을 분석한 주장들이 과대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점은 모리조의 그림에 대한 저자의 품평이다.

 

 

섬세하고 난해한 모리조의 작품은 페미니즘 평론가들에 의해서만 과대평가되었고, 나머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었다. 역사적인 맥락이나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이 마네의 작품보다 더 심했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게끔 보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는다.

 

 

제프리 마이어스가 모리조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모리조는 부르주아 계급의 일상생활, 특히 가족을 주제로 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화가의 가족 또는 지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 ‘역사적 맥락’, ‘극적 긴장’, ‘서사적 의미’를 왜 찾아야하는가? 제프리 마이어스의 심미안은 인상주의 미술과 동떨어져 있다. 그가 역사적 맥락, 서사적 의미가 결여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면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고전주의 역사화를 추천하겠다.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아트북스, 2017)

* [절판]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리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해냄, 2003)

 

 

 

페미니즘 평론가들이 모리조를 과대평가를 한다는 의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페미니즘 미술은 미술관에서 여성의 지위가 미약한 원인과 여성 미술가가 남성 미술가에 비해 경력을 쌓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남성 미술가들만 주목하고 여성 미술가들을 소외하는 미술 평론계에 반발하기 위해 나선 것이 페미니즘 미술이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회화 그룹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지킨 화가이다. 그런 그녀를 과소평가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남성 중심 사회 속에 권위를 떨친 미술 평론가들 아닌가?

 

 

 

 

 

 

Trivia

 

 

 

 

 

 

 

 

 

 

 

 

 

 

 

 

존 리월드(John Rewald)인상주의의 역사(까치, 2006)는 인상주의 미술에 관한 책의 고전이다. 줄리 마네는 이 책에 있는 모리조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알려주었으며 존 리월드는 개정판에 줄리의 의견을 반영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정진국 씨는 베르트 모리조의 둘째 언니 에드마를 동생이라고 잘못 썼다. 베르트 모리조는 모리조 집안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진국 씨는 2009년에 나온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를 번역했다. 이 책에서는 에드마를 언니라고 올바르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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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2 10:05   좋아요 0 | URL
책마다 이름 표기명이 달라요. 어떤 책은 ‘모리소’라고 하거든요. ^^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 예술가의 삶과 진실 6
아르망 푸로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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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마네는 이 그림을 죽을 때까지 자기 화실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그림 왼쪽에 있는 여인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이 이름을 꼭 기억해두시라. 그녀는 인상주의 화가 그룹의 당당한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르망 푸로(Armand Fourreau)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글항아리, 2009)는 남성 중심의 19세기에 여성이란 장벽을 이겨내고 예술혼을 불태워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로 거듭난 베르트 모리조의 인생과 예술을 정리한 평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모리조의 가족들을 만나 육성 증언을 채집했고, 공개된 적이 없는 모리조의 습작을 발굴하여 소개했다.

     

모리조는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증손녀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음악과 미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그녀의 둘째 언니 에드마 모리조(Edma Morisot)도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다. 자매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 거장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 공부를 했다. 자매는 화가가 지녀야 할 자질을 충분히 갖추었다. 특히 베르트의 마음에는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자매는 조제프 기샤르(Joseph Guichard),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의 제자가 되었으나 베르트는 스승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낭만주의 회화를 선호한 기샤르는 자연을 묘사하는 그림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코로는 정확한 묘사를 강조했다. 베르트는 스승의 그림을 모사하거나 화실에서 그림 그리는 일이 자신의 열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리조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작을 모사하던 중 마네를 만나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하면서 자주 마네의 작품 모델이 되기도 했다. 마네는 인상주의 회화 그룹의 전시에 함께하지 않았지만, 화가들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모리조는 마네 주변에 모이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그녀는 1874년 제1회부터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까지 그림을 출품했다. 인상주의 전시회보다 살롱 전에 더 관심이 있었던 마네는 모리조가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을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모리조는 마네의 충고를 거절했고 오히려 그에게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만약 그녀가 마네의 설득을 받아들였다면 인상주의 회화 그룹은 남성 화가들의 모임이 되었을 것이다.

 

인상주의의 숨은 꽃, 모리조의 부록은 인상주의 회화 그룹을 열렬히 지지한 미술평론가 테오도르 뒤레(Theodore Duret)의 글이다. 이 글은 <인상주의 화가의 역사>에 수록된 베르트 모리조편을 완역한 것이다. 뒤레는 모리조, 모네(Monet), 시슬레(Sisley), 르누아르(Renoir), 피사로(Pissarro)충분한 독창성을 발전시킨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이라고 평가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딸 리 마네(Julie-Manet)의 성장 과정을 그림에 담았다. 그녀가 즐겨 그린 그림의 주제는 가족이다. 모리조의 그림들은 남녀 역할이 비교적 엄격했던 시대 속에 살아간 여성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모리조는 살롱 전에 여섯 번이나 입선할 정도로 쟁쟁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 그녀의 존재감은 잊혔다.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에 그녀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모리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엉뚱하게도 마네가 있다. 마네는 인상주의 회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는 인상주의 전시회에 단 한 번도 그림을 출품한 적이 없었으므로 인상주의자의 정회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남성 중심의 평가는 모리조의 실력을 외면했다. 모리조는 주도적으로 새로운 시대 미술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동참했으나 여성화가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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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 카스파로프 지음, 박세연 옮김, 믹 그린가드 정리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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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세기의 바둑 대결이 펼쳐진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대국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알파고의 승리(5전 4승 1패)로 끝났다. 이세돌 9단은 단 1승만을 거둬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 1승은 알파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를 안겨준 유일한 공식전 1승이었다.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은 늘 흥미로운 관심사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97년. 세계가 경악했던 대결이 펼쳐졌다. 당시 러시아 출신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IBM 슈퍼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와의 체스 시합에서 6전 1승 3무 2패로 패했다. 카스파로프는 체스 역사상 최고 선수라는 평까지 얻었던 만큼 인간의 두뇌를 대표하는 선수로 손색이 없다. 그런 그가 슈퍼컴퓨터와의 대결에서 패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그 이전까지 대부분의 전문가는 십 년 안에 체스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컴퓨터의 빠른 계산능력을 고려해도 인간의 지적 수준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딥 블루의 승리 소식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카스파로프를 컴퓨터와의 체스 대결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체스 챔피언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사람은 1997년 딥 블루가 승리한 카스파로프와의 체스 시합이 인간과 인공지능이 처음으로 맞붙은 공식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스파로프와 딥 블루는 이미 1996년에 6차에 걸쳐 진행되는 체스 시합을 했다. 이 경기는 4승 2패로 카스파로프가 이겼다. 1996년과 1997년 기록을 통틀어 본다면, 카스파로프는 딥 블루와의 체스 시합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체스 선수이다.

 

세기의 체스 명승부 이후 카스파로프는 새로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그는 자신을 절망에 빠뜨리게 했던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여전히 카스파로프를 ‘딥 블루에게 패배한 체스 챔피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그가 ‘적과 동침’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연구가’로서 카스파로프가 쓴 《딥 씽킹》(어크로스, 2017)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을 인간을 위협하는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딥 씽킹》은 인공지능의 본질에 가까이 접한 인간이라면 쓸 수 있는 책이다. 카스파로프는 1997년 체스 시합을 회고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관계를 모색한다.

 

 

“이길 수 없다면 함께하라.”라는 말도 있듯, 나는 컴퓨터와 함께 체스 실험을 계속해나가고 싶었다. 나는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인간과 기계가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 어떨까? (10쪽)

 

 

책의 서문에서 카스파로프는 컴퓨터와의 체스 시합을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스 챔피언 시절 카스파로프라면 컴퓨터와의 체스 시합을 ‘게임’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카스파로프는 두 차례 진행된 딥 블루와의 체스 시합에서 승리하고픈 열망이 강했다. 그는 패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딥 블루 이후에 개발된 슈퍼컴퓨터와 인간의 체스 시합을 ‘인간과 인공지능 모두의 발전을 위한 과학적 연구’라고 생각한다. 체스와 인공지능은 서로 연관성이 깊다. 체스는 직관과 창조성을 발휘하도록 요구하는 놀이다. 그래서 체스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가 실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용 놀이’다. 컴퓨터 개발에 관여한 공학자 대부분이 체스를 즐겨 했고, 앨런 튜링(Alan Turing)이 알고리즘을 계산하는 체스 프로그램을 발명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 패배한 이후로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반감을 보이는 여론이 많아졌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카스파로프는 앞으로 인공지능이 삶의 질을 크게 향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자리보다 인공지능 활용 방안을 더 중요하게 본다. 정부가 인공지능 기술력이 향상되는 변화의 흐름을 제쳐두고 일자리를 지키는 현실적인 문제에 치중하게 되면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성을 높일 기회를 놓친다. 카스파로프가 정부에게 전하는 제언은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인류 발전의 한 단계라고 믿는다. 그의 주장을 믿든 안 믿든 간에 확실한 것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IT기술, 산업, 네트워크 등을 융합한 인공지능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카스파로프는 인공지능을 무비판적으로 예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등장을 경계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렵게 되는 시점이 오는데 이를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한다. 인간이 특이점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하면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변화를 즐기지 못하더라도 변화에 대한 욕구를 계속 자극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변화하게 될 미래를 예측(걱정)하기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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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1-1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파고는 우리에게 많은 놀라움과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때는 그랬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그게 언제쯤 될지는 잘 모르지만요.
cyrus님, 오늘 많이 춥네요.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01-11 11:49   좋아요 0 | URL
알파고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랄 거예요. 그리고 미래를 걱정할 것입니다.. ^^;;

2018-01-10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1 11:52   좋아요 1 | URL
인간의 욕망이 인공지능에 반영되어 있어서 이제 ‘인간 대 인공지능’ 대결 구도는 무의미해졌어요. 국내 언론은 인공지능 관련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이런 프레임을 계속 써먹을 거예요. 언론이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 맞붙는 상황을 계속 강조하면 현실성 떨어지는 인공지능 비관론만 생길 뿐입니다.

이하라 2018-01-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측은 너나없이 할테지만 대비란 것은 쉽사리 나오지않을 것 같아 걱정이네요. 스티븐호킹박사도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거라는 말을 했었다던데... 대비책을 마련해 줄 인물들이 있겠거니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알수없는 내일이 두렵기도 해요TT

cyrus 2018-01-11 12:01   좋아요 1 | URL
요즘 들어서 인공지능,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예측을 했으면 거기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대비가 필요한데 너무 조용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착실히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페크pek0501 2018-01-1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기계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계와 합병할 것이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결혼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에서.
전쟁이 아니라 결혼이라면 두려울 게 없겠습니다.

cyrus 2018-01-11 12:16   좋아요 1 | URL
인간과 기계가 합병하는 미래가 온다 해도 전쟁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현재까지는 첨단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이 ‘인간 대 인간’이라면 호모 데우스의 미래에 펼쳐지게 될 전쟁은 ‘기계 대 기계’일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