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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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줄여서 ‘앵무새’)를 끝까지 안 읽어본 사람도 이 유명한 구절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때문이겠지만 그레고리 펙의 얼굴로 그려지는 애티커스 핀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의로움, 지혜, 자상함 등으로 점철되는 그의 아빠로서의 언행은 완벽한 아빠로서의 모범이다.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편견으로 비롯된 오독도 마찬가지다. 선입견을 배경으로 어떤 결론을 전제하는 독서는 작품의 진면목을 놓칠 수 있다.

 

금고 속에 잠들어있던 하퍼 리의 원고가 5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전 세계 독자들은 출간 전부터 큰 기대를 걸었다. 영원히 공개되지 못할 뻔 했던 원고는 《파수꾼》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출판사와 언론 들은 《파수꾼》을 ‘《앵무새》의 후속작’으로 소개했으나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게 독자의 혹평이 꽤 많다.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애티커스의 변절, 여주인공 진 루이즈의 히스테릭한 면에 불만을 쏟아냈다. 전작과는 다른 작품 속 캐릭터와 작품 분위기의 급격한 차이에 독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파수꾼》이 《앵무새》보다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독자의 반응도 많다. 《파수꾼》이 《앵무새》와 비교당해 따분하고 결함이 많은 작품으로 보는 독자평들이 많아서 무척 안타깝다.

 

《앵무새》의 애티커스를 중심으로 본 사람은 애티커스만 보인다. 《앵무새》가 지루한 내용임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돌연 절필을 선언한 작가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있지만, 애티커스를 제대로 연기한 펙이 아니었다면 애티커스가 ‘흑인 인권’을 변호하는 미국의 양심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파수꾼》을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티커스만 기억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파수꾼》 속 애티커스의 모습에 실망한다. 하퍼 리의 작품들을 출간한 열린책들 출판사의 마케팅, 그리고 출판사 홍보를 그대로 받아 적은 언론들의 서평 또한 독자의 《파수꾼》 독서를 방해하게 만드는 편견이 된다. 《파수꾼》이 《앵무새》의 후속작으로 알려지면서 《파수꾼》의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한 독자들은 전작인 《앵무새》를 읽게 된다. 출판사는 판매 부수를 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일부 독자들은 《파수꾼》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파수꾼》 읽기 전에 《앵무새 죽이기》를 잊으시오!

 

 

《파수꾼》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당부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앵무새》의 줄거리를 모두 잊어버려라. 펙이 분한 애티커스, 《앵무새》의 어린 소녀 스카웃에 대한 기억도 싹 다 잊어버려도 좋다. 《파수꾼》을 독립적인 작품 자체로 읽어 보라. 《파수꾼》의 애티커스에 펙의 명연기를 슬쩍 편입시키는 순간, 독자는 《파수꾼》을 《앵무새》보다 못한 작품으로 본다. 《앵무새》를 감명 깊게 읽은 독자도 이 편견에서 비롯된 오독의 착각에 벗어나지 못한다.

 

진 루이즈는 아버지가 메이콤 주민 협의회 모임에 참석하여 흑인 차별 여론에 동조하는 사실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 어린 시절 흑인을 보호해주던 영웅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지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여기서 독자들도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양심적인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변할 수가 있는지. 그 이후로 진 루이즈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흑인 인권 문제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삼촌 앞에서 날이 선 태도로 저항한다. 그녀의 저항 의식이 상당히 과격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외국 언론에서는 《파수꾼》의 진 루이즈를 쓸데없이 걱정이 많고,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미숙한 여주인공으로 본다. 정말 삼촌의 말대로 진 루이즈는 아버지라는 영웅의 결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적 불구자’일까?

 

진 루이즈는 정말 외로운 여자다. 메이콤 마을에 그녀와 같은 편에 서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그녀의 약혼녀 헨리? 그도 역시 메이콤 주민 협의회 소속 회원이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흑인을 과격하고 버릇없는 인종으로 생각한다. 어린 시절 진 루이즈를 키운 보모 캘퍼니아는 애티커스가 예전처럼 흑인을 위해서 앞장서서 변호해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 헤스터도 흑인 인권 운동이 공산주의자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손잡아 이끌어 주는 정의의 파수꾼은 없다. 진 루이즈는 ‘흑인 인권 보호를 주장하는 여성’이다. ‘백인 남성’이 사회를 주도하는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녀의 진보적인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파수꾼》을 《앵무새》와 함께 인종 편견을 고발하는 소설로 본다면, 《앵무새》의 명성으로 드리워진 그늘에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불운의 작품이 된다. 진 루이즈는 백인 남성 중심 사회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파수꾼이다. 진 루이즈는 외로운 싸움을 통해서 지켜내야 할 정의란 바로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이다. 그녀의 모습은 195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끈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행보와 유사하다. 글로리아는 처음으로 흑인과 여성 문제 사이에 동질감을 발견했다. 애티커스와 헨리가 가입한 메이콤 주민 협의회가 백인 남성들에게 독점되어 온 정치권력을 상징한다면, 진 루이즈는 흑인 차별에 동조하는 정치권력에 도전한다. 애티커스와 삼촌은 그녀의 정치적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서 그녀를 가르치려 든다. 맨스플레인(Mansplain, 남자들이 여자에게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 때문에 진 루이즈는 괴로워한다. 애티커스는 흑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는 편견에 확신하면서 흑인 차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삼촌 또한 조카를 남북 전쟁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가르치듯이 장황하게 설명한다. 아버지와 삼촌은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 헤스터는 맨스플레인에 강요당한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 빌의 흑인 편견을 그대로 믿으면서 옳은 사실인 것처럼 진 루이즈 앞에서 떠들어댄다. 진 루이즈는 숨 막히는 남성들로 둘러싸인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 주변을 맴도는 신세가 된다. 백인 중심, 남성 중심의 제도 아래서 힘을 못 쓰지만, 진 루이즈는 사회의 억압을 깨닫기 시작한다.

 

애티커스는 좋은 남자가 아니다. 잘못된 편견에 지나치게 확신하고 흑인,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나쁜 남자다. 아직도 그가 양심이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가 TV에 나오는 완벽한 남주인공이라면, 《파수꾼》의 애티커스는 ‘백인 남성 신화’에 의존하여 사회를 지배하는 남자다. 이들은 여성은 복종하는 존재, 흑인은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진 루이즈를 무시하지 마라. 그녀는 남부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다. 그녀가 파수꾼이 되어 우리에게 외친다. ‘백인 남성 신화’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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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9-20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독서동아리에서도 읽고 있는데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아요~~ 앵무새때의 애티커스가 넘 멋있었던거죠~ 균형잡힌 시각과 아이를 기르는데 꼭 필요할 수 있는 덕목. 반듯함과 공정정. 폭 넓은 수용력까지~ 아버지로서의 애티커스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했었거든요~
결국엔 그도 백인이고 남자에 사회의 기득권이라는걸 간과하고 있었던거죠~~

cyrus 2015-09-20 21:08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이지만, 평소에 올바른 성격을 유지한 사람들이 의외로 보수적인 입장을 드러낼 때가 있어요. 애티커스가 그런 유형의 사람으로 보여요. 자신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타인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수용하기 어려워하죠.

보물선 2015-09-2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수꾼부터 읽고 있어요.
지난번 북콘 가서 들은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듯해요^^

cyrus 2015-09-21 17:42   좋아요 1 | URL
방금 보물선님이 예전에 썼던 북콘 후기를 다시 봤어요. 제가 글에 쓴 내용은 이미 북콘에서 언급되었군요. 나름 참신한 내용이라고 열심히 썼는데... ㅎㅎㅎ

인디언밥 2015-09-2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앵무새와 다른, 독립된 작품으로 읽었어요~ 재료는 같지만 다른 맛, 다른 주제의 글처럼 느껴졌어요

cyrus 2015-09-21 17: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왠지 <파수꾼> 원고가 맨 처음 발표되었다면, 센세이션 일으킨 작품이 되었을 거예요.

만병통치약 2015-09-21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인물을 가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려 본다음 먹힐 만한 책을 출판한게 아닐가요? ^^ / 애티커스는 평범한 우리나라 40대 50대 같군요. 함께 할 수 있었을때는 사회를 위해 싸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새 기득권을 지켜야할 나이가 되었으니 생존이라는 본능에 충실하는게 아닐까요? 두 모습 다 애티커사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진 루이즈도 나이 먹고 애 낳고 바둥바둥 살다보면......

cyrus 2015-09-21 17:48   좋아요 0 | URL
하퍼 리는 맨 처음에 <파수꾼> 내용으로 썼다가 출판사 편집자가 다시 새로 써보라고 해서 고쳤는데, 그 작품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예요. 그래서 하퍼 리 입장에서는 나름 인물 설절에 고심했을 거예요. 통치약님의 해석에 공감합니다. 애티커스를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군요. ^^
 
ㅋㅋㅋ

 

 

 

 

 

 

 

 

 

 

 

 

 

 

 

 

 

 

 

 

 

어제 이웃께서 북플에 사진을 올렸다. 몇 쪽인지 잘 모르겠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바우돌리노》(열린책들, 2002) 속에 있는 한쪽 전체를 찍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바우돌리노는 자신이 보았던 사본의 제목 몇 개를 그에게 일러 준 뒤, 또 다른 제목들도 언급했다. 말하자면 비드 존자(尊者)의 『세 번 출산하는 최고의 사건에 대해』, 『부드럽게 방귀 뀌는 기술』, 『배변하는 방법에 대해』, 『머리 빗는 법에 대해』, 『악마들의 조국에 대해』 같이 그가 그럴듯하게 꾸며 낸 것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선량한 참사회원의 놀라움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라에빈은 서둘러서 알려지지 않은 이 지식의 보물을 복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바우돌리노는 오토 주교의 양피지를 지워 버리고 나서 느꼈던 양심의 가책을 치유하기 위해 성실하게 라에빈의 청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것을 필사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 작품들이 거기, 생 빅토르 수도원에 있는데, 이단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참사회원들이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한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바우돌리노가 언급한 사본의 제목이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하다. 이런 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에코는 중세 가톨릭교를 풍자하려고 의도적으로 책 제목을 우스꽝스럽게 꾸몄다. 중세 시대의 가톨릭교는 종교에 대한 풍자성이 강한 출판물을 이단 서적으로 규정했다. 가톨릭이 금서로 지정한 책은 불에 태워지기 마련인데 화형에 간신히 살아남은 책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수도원 도서관 비밀 장서실에 보관되기도 한다. ‘위험한 책’을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다. 이 책을 보려면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혹은 수도원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생 빅토르 수도원(St. Victor Abbey)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이다. 생 빅토르는 마르세유에 주둔했던 로마 군인이자 순교자다. 그래서 수도원 외관이 요새와 흡사하다. 이 수도원의 도서관은 수많은 장서를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에코는 이곳 도서관에 이단 서적이 보관된 것으로 설정했다.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인간을 유혹하는 금기의 페로몬은 더욱 강렬해진다. 몇몇 수도승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읽으려고 했고, 금서를 필사한 사본들은 가톨릭의 탄압을 피해 은밀하게 유통되기도 했다. 가톨릭은 하느님의 절대적 권위를 조금이라도 무시하고, 희롱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를 신의 진리를 파괴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억압의 시대 속에서도 종교에 지배당한 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풍자한 작가들이 등장했으나, 대부분 이단자로 낙인 찍혀 거대한 불길 속으로 사라져야 했다. 물론, 그들이 남긴 서적도 함께. 그래서 무시무시한 시대 속에 끝까지 살아남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지성사, 2004)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라블레는 생전에 이 소설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가톨릭에 비판적인 태도를 밝혔다는 이유로 창작 활동에 제한받았다. 에코의 풍자는 라블레의 풍자에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블레는 에코보다 더 노골적으로 가톨릭을 어리석은 종교로 풍자했다. 그의 소설 《팡타그뤼엘》의 제7장은 생 빅토르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된 서적에 관한 내용이다. 라블레는 중세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풍자하기 위해 식욕이 왕성하고 지식욕이 엄청난 거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창조한다. 팡타그뤼엘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파리에 오게 되는데, 생 빅토르 도서관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이 훌륭하다고 극찬한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제7장의 제목이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파리로 갔는가, 그리고 생 빅토르 도서관의 훌륭한 장서에 관해서’다. 라블레는 특유의 장광설로 도서관에 보관된 책 제목을 줄줄이 나열한다. 이 목록에서 재미있는 제목 몇 개를 골라봤다.

 

 

용자(勇者)들의 코끼리 불알
오르투이누스 선생 저, 모임에서 정직하게 방귀 뀌는 법
타르타레 저, 대변 배설법
건전한 배를 가진 배불뚝이
추기경의 암노새들을 세척하고 염색하는 방법
과부들의 껍질 까진 엉덩이
남녀 악마 소환법
다섯 탁발 수도회의 뚱뚱한 배
신부들의 당나귀 자지

 

 

라블레는 보수적인 가톨릭교회 관계자,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들의 이름을 우스꽝스러운 책의 저자명으로 거론한다. 심지어 책 제목의 일부는 외설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이런 책을 쓴 적이 없다. 라블레는 장서 목록을 허위로 꾸며냄으로써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여 가톨릭 교리의 권위성을 무너뜨린다. 오늘날 같으면 명예훼손죄에 가까운 표현이다. 실제로 도서 목록에 언급되는 사람들은 라블레와 함께 같은 시대에 살았던 신학자들이다. 자신을 조롱하는 라블레의 문장을 보는 신학자들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다.

 

에코가 라블레의 개방적인 태도를 모델로 자신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 수사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 윌리엄 수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승인데 실제로 라블레도 프란체스코회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윌리엄 수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부 ‘희극론’의 진리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장님 수사 호르헤는 신의 교리 앞에서 웃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중세인들은 엄숙한 종교적 질서 속에서 생활했고 사제들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종교적 규율을 확립하고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웃음과 풍자는 삶의 원초적 생명력을 일깨우지만, 동시에 권위를 뒤흔든다. 수도사들은 하느님이 가르치는 절대적 진리 위에서 만들어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금서의 존재가 두려워서 금단의 장소인 수도원 도서관에 비밀리에 보관했다. 라블레가 근엄한 수도사 출신이면서도 웃음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건강한 사회를 원했다. 그는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를 엄숙한 가톨릭교회가 아닌 교회 밖에 들리는 민중들의 웃음에서 찾았다. 이미 라블레는 윌리엄 수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진리’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2》 중에서, 8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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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0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ledgling 2015-09-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찾으셨군요~^^ 정말 책 제목이 비슷하네요~ 저는 읽다가 너무 웃겨서 올렸을 뿐인데..ㅎㅎ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군요. 페이지는 상권 148페이지 입니다~ 장미의 이름 명대사! 잘 보고 갑니다!

cyrus 2015-09-20 19:22   좋아요 1 | URL
fledgling님 덕분에 저도 몰랐던 사실을 알았어요. 장서를 보관한 곳이 생 빅토르 수도원 도서관이라는 사실에 살짝 소름 돋았어요. ^^
 

 

 

 

 

 

 

 

 

 

 

 

 

 

 

 

 

 

 

몇 달 전 베스트셀러 순위에 독특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표지엔 제목도 저자명도 없어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표지 속 꽃들의 정체는 클림프의 그림 일부다. 책 제목은 《그림의 힘》(에이트포인트, 2015). 이 책의 저자이자 세계미술치료학회장 김선현 교수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 뇌와 심신에 에너지를 선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집중력을 높여주는 그림, 불안을 잊게 해주는 그림 등 탁월한 효과가 있는 명화들을 엄선했다고 한다. 이 책이 2권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치솟는 상황이 작년 ‘컬러링북’ 열풍과 유사하다. 작년에는 그림에 직접 색칠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올해는 그림만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무릎에 힘이 빠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휘말린다는 스탕달 신드롬은 아니더라도 그만큼 어떤 미술 작품들은 우리 뇌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림치료의 효과는 임상실험으로 증명되긴 했으나 혹시나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단기간 내에 ‘기적’을 바라는 독자들이 있을까 봐 염려된다. 실제로 《그림의 힘》을 소개한 어느 언론 서평에서는 그림의 힘을 ‘기적’과 동등한 의미로 설명했다. 기적을 바라는 종교의 시대에 쓸법한 낡은 표현이다. 화가의 그림은 우리에게 기적을 주는 성화(聖畵) 정도까지는 아니다. ‘기적’이라는 단어에는 ‘영적 상태’를 내포한다. 초기 유럽 기독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도들은 거룩한 성물 앞에서 경건한 기도를 드린다. 시간이 흘러 성물은 예수와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으로 대체되는데 이것을 ‘이콘(icon)’이라고 한다. 신도들은 이콘을 보면서 하느님의 영적 힘을 인정하고 기적의 체험을 추구한다. 오늘날 그림이 감상의 대상이라면, 이콘이 유행했던 시대의 그림은 종교적 태도와 신앙을 전파하고,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적 명화를 이용한 그림치료를 ‘기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반 고흐가 외로운 친구 관계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까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체부 조제프 룰랭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림의 힘》 1권에서 저자는 고흐의 초상화를 부드러운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으로 소개했다) 단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우체부 아저씨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그림은 종교적 성화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평화가 깃들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는 것은 미술치료의 본래 목적과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종교에는 기적이 있어도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라는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경영철학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미술에는 기적이 없다.

 

《그림의 힘》은 미술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독자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심리적 효과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림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독자가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믿고 따라가는 《그림의 힘》의 구성방식이 독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자가 저자의 해석에 동의하게 되면 그 해석의 틀에 따라 제 생각을 맞추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해석이 사고회로 과정에 개입되는 순간이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으려면 독자 스스로 현실적인 고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니까, 자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의 해석과 동떨어져도 좋고, 반대로 생각해도 좋다. 《그림의 힘》은 ‘아프니까 그림본다’ 같은 현대인에게 위로를 주는 명약 같은 책이 아니며, 이렇게 책이 만들어져서 버젓이 팔리면 안 된다. 오히려 이런 홍보 방식 때문에 미술치료 본연의 의미가 잊힐까 봐 걱정된다. 미술치료는 개인의 성격과 심리상의 문제점을 파악한 뒤 안정적이고 성숙한 심리 상태로 이끌어가려는 시도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기적을 부르는 책’이라는 얄팍한 홍보 문구만 믿고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럴 바엔 차라리 부적을 사서 벽에 붙이는 것을 권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늘날의 미술에는 기적이 없으며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영적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부적이 아니다.

 

 

 

 

 

 

 

 

 

 

 

 

 

 

 

 

 

 

 

 

 

 

 

 

 

 

 

‘그림의 힘’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 《그림의 힘》을 구입하기 보다는 그냥 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낫다. 아무 설명 없이 그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을 소개해본다.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즈가 직접 서문을 남긴 《명작 400선》(마로니에북스) 시리즈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이 너무나 단출하다. 책을 펼치면 휴즈의 서문이 있고, 나머진 전부 작품명만 달린 그림이 쭉 이어진다. 뒤쪽에는 작가 연보와 색인이 있다. 이 시리즈는 반 고흐, 마그리트, 마티스, 달리, 피카소 총 다섯 명의 화가의 작품 사진을 각각 400점씩 실었다. 정말로 책 한 권에 그림이 400점 실려 있는지 직접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그림 좋아하는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도 남을 양이다. 이 시리즈에는 작품 설명이 없어서 화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은 그림만 봐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섯 권 중 세 권(피카소, 마그리트, 반 고흐)은 품절되었다. 하지만 《명작 400선》 시리즈를 ‘그림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다. 기존의 미술 화보는 판형이 상당히 큰 편이다. 그래서 《명작 400선》 같은 언제든지 들고 다니기 편한 미술 화보는 많지 않다. 또한, 그저 그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복잡한 미술 공부를 할 필요도 없으니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나’와 그림과의 일대일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벌써 쫄 필요 없다. 그림을 보는 것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철저히 보는 사람의 몫일 뿐이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누군가는 감동을, 또 다른 누군가는 슬픔을 느낀다.

 

마음이 불안정하면 일체 대상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게 된다. 모든 상황에 대해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이 있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그림으로 향한 《그림의 힘》의 저자가 보는 눈과 독자 개인의 눈은 완전히 일치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화에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표현이다. 그림에 자신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투사하지 않는다면, 그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행위는 축복이다. 그러다 보면 그림을 통해 혼돈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고, 풀어헤쳐 놓지 못했던 응어리진 상처들도 쏟아낼 수 있다. 그림을 잘 보는 방법? 특별한 건 없다. 그냥 자신 있게 그림을 보면서 즐겁든, 슬프든 자신만의 감정으로 느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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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9-1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명작 400선> 표지가 cyurs님의 서재 배경화면이였군요 ㅎㅎ 요즘 그림에 대해 궁금해서 알렝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살펴보는 중이였는데 이 책도 살펴봐야겠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cyrus 2015-09-17 14:48   좋아요 0 | URL
제가 마그리트의 그림을 좋아해서 프로필 사진과 배경화면 모두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정했어요. 배경화면 그림 제목은 <조콘다>에요. ^^

물고기자리 2015-09-16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림의 힘>의 설명 방식이 정말 불편했어요. 전 그 설명들이 아름다운 그림들에 덧붙여진 불필요한 소음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책을 직접 봤더라면 사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명작 400선>은 소장해두고 보기에 좋을 것 같네요^^

cyrus 2015-09-17 14:51   좋아요 0 | URL
저자의 설명 때문에 독자는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읽게 됩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의아했습니다.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거든요. ^^

인디언밥 2015-09-16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명작400선..!! 북플하먄서 좋은 책들 많이 알아가는듯 ㅜㅠ

cyrus 2015-09-17 14:53   좋아요 1 | URL
책값이 조금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만 빼면 괜찮은 책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9-1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시리즈 욕심 내면 책을 계속 사야 하는 부작용이.. ㅎㅎㅎㅎ.

cyrus 2015-09-17 14:54   좋아요 0 | URL
반값할인이 있었던 시절에 시리즈 다 살 걸 그랬어요. 반값할인 제도가 사라지고 나니까 책이 잘 안 팔렸던 것 같습니다. 시중에 구할 수 있는 게 두 권 뿐이에요. ^^

짱아 2015-09-16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글에 격한 공감 합니다..

cyrus 2015-09-17 14: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5-09-1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의 책 <그림의 힘>을 갖고 있는 1인이에요.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미술 치료나 독서 치료에 관심이 있다 보니 이런 책에 끌리더라고요. 그림에 대한 어떤 말은 동의하지만 어떤 말은 동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20쪽에 나온 그림(원이 여러 개 그려져 있는, 빨간색이 많은 그림)은 저에겐 별 의미 없는 그림인데 빨간색이 사람의 기분을 업 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 그래요.
우선 저는 이 책을 그림만 먼저 찬찬히 보기로 했어요. 상상력이 차단되는 걸 막기 위해서죠.
그런데 그림을 보다 보면 그 옆에 있는 글을 자꾸 읽게 된다는... ㅋㅋ

cyrus 2015-09-17 15:00   좋아요 0 | URL
나중에 에바 헬러의 <색의 유혹>의 빨간색 이야기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색깔마다 장단점의 효과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그림의 책> 1권을 읽다가 그냥 포기했어요. 저도 하루하루 고달프게 살아서 힘들어 죽겠는데 도통 이 책을 봐서 힘이 나지 않았어요. ㅎㅎㅎ

yamoo 2015-09-1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압도적인 두깨의 미술책들이네요~ 아, 이런 건 진짜 반값도서전에서 건져야 하는 건데요...
이 시리즈 욕심이 날 만 하네요. 책값이 장난 아닐거 같지만..

제게 <색의 유혹>이 있습니다. 헌데, 색채에 대한 책 하면 제가 본 책으로는 파비 비렌의 <색채의 영향>이 가장 뛰어납니다. <색의 유혹>도 괜찮습니다만, <색책의 영향>을 강추드립니다!

그나저나 탐나는 시리즈 소개 감사합니당~!^^

cyrus 2015-09-20 19:25   좋아요 0 | URL
반값할인 판매가 사라지면서 품절된 비운의 시리즈예요. 온라인 회원 중고샵에서도 잘 나오지 않아서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해요. <색채의 영향>이라는 제목의 책은 처음 들어봅니다.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5-10-06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7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3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4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4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관심 있는 분은 신청해보시길.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참고한 뒤에 책을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고 싶습니다.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과학, 역사, 자서전을 엮어 써낸 불안에 관한 종합판.”

―앤드루 솔로몬(『한낮의 우울』 저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35년 전만 해도 ‘불안장애’라는 공식 진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경정신과를 찾아야 하는 정신질환 중 가장 흔한 병이 되었다. 미국에서 정신건강 관리에 드는 비용의 31퍼센트가 불안 치료에 사용된다. 한국도 다르지 않아 지난 5년 사이 불안장애로 진료 받은 환자 수가 22.8퍼센트나 증가했다. 우리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은 만성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고 한다. 종종 불안을 근대성의 문화적 징후로 분석하기도 한다. 잇따른 경제위기, 빠르게 증가하는 소득불평등, 사회 전반적인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안은 현대를 특징짓는 심리적 현상이다.

평생 동안 이 병을 앓아온 환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스콧 스토셀은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서 현대병인 불안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3000년간 불안에 관해 쓰인 수십만 장의 글과 자기 자신의 삶 속으로 뛰어든다. 자신을 비롯해 살면서 한 번은 극심한 불안을 경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안에 관한 이해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9월 16일 ~ 9월 20일 (당첨자 발표 : 9월 21일)

발송: 9월 22일 (예정)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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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9-1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하여간 북플의 장점은 서평단 하면 책을 쉽고 빠르게 받아볼수 있고
서평 쓸려면 머리 짜야 되는 단점 ㅋㅋㅋㅋ

cyrus 2015-09-17 15:01   좋아요 0 | URL
힘든 걸 알면서도 서평단에 신청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

고양이라디오 2015-09-1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고 싶은데 어디 가서 하면 되나요ㅎ?

cyrus 2015-09-17 15:04   좋아요 0 | URL
컴퓨터로 알라딘에 접속해서 ‘알라딘 서재’가 있는 링크로 들어갑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 ‘출판사 공식서재’가 있습니다. 거기에 민음사 공식 블로그가 있어요. 이 블로그를 ‘즐겨찾기’를 하거나 북플로 ‘친구 추가’를 하면 고양이라디오님의 서재 브리핑에 출판사 서평단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minumsa

고양이라디오 2015-09-18 11:08   좋아요 0 | URL
cyrus님 덕분에 이벤트 잘 신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북플에서 믿음사를 `친구 추가`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찾나요ㅠ? 믿음사를 찾는 방법을 모르겠네요ㅠ;;

cyrus 2015-09-18 13:51   좋아요 0 | URL
북플에 ‘친구 신청 및 초대’에 ‘minumsa’라고 검색해서 ‘친구 신청’하면 됩니다. 알라딘 서재로 접속했다면 민음사 출판사 프로필 사진 밑에 있는 ‘친구 신청’을 누르면 됩니다. ‘팔로잉’ 상태에서도 민음사 블로그 글이 뉴스피드에 뜹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5-09-18 14:43   좋아요 0 | URL
친절한 설명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페크pek0501 2015-09-17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신문에서 봤는데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으니 안 읽을래, 하고
지나쳤어요. 으음~~ 그런데 이 페이퍼를 보니 읽고 싶다는 마음이 퐁퐁 생겨요.
불안이 생기는 이유를 캐다 보면 인간의 모습이 제대로 그려질 것 같은 예감이...
다시 말해 인간을 제대로 알려면 인간이 불안해 하는 이유를 간과할 수 없음이에요.

아마도, 우리가 직업도 없고 할 일도 많지 않고 게다가 각자 혼자 살고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불안감 보다 몇 배 더 불안감이 증폭될 것 같아요. 이 말은, 불안감은 바쁨으로써 덜어낼 수 있다는 뜻도 되지요. 이것을 저는 생각의 분산, 이라고 말하겠어요.
(불안 같은) 어느 생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선 `생각을 분산시키기`가 답일 때가 있어요.

cyrus 2015-09-17 15:10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이 책 서평단 신청해보세요. 저는 항상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분들이 쓴 글만 읽어요 어떤 책 서평을 참고할 때도 제가 아는 분의 글이 있는지 확인하고 읽어요. ^^

저 같은 경우, 불안한 생각을 분산시키거나 잊기 위해서 책을 읽어요. 책만 붙들고 있는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폭음, 폭식해서 잊는 것보다는 독서가 정신적으로 이롭다고 생각해요. 폭음, 폭식으로 불안감을 잊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몸이 빨리 망가져요. 이건 치유가 아니라 자학입니다.
 
그림자에 불타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66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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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은 어째서 원하지 않는 곳에서 찾아오며 지나칠 생각도 없이 그림자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일까? 그래서였던가. 정현종 시인의 「그림자에 불타다」를 읽으면서 살면서 잊고 있었던 내 마음속 ‘그림자’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마음속 근원에 존재하는 원형으로 ‘그림자’를 제시한다. 그림자는 ‘나’의 어두운 면을 의미한다. 이 그림자가 때때로 통제가 안 되고 드러날 때가 있다. 그림자는 우리가 더 칭찬받는 사람이 될수록 그에 맞춰 더 커진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인간은 그림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바깥으로, 즉 주변 사람들에게 투사해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표출한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도 파괴한다. 「그림자에 불타다」에서 시인의 삶 그리고 그가 사는 세계는 그림자에 까맣게 그을려 있다. 그림자 크기가 비대해질수록 나태, 분노, 우울로 인한 고통의 그늘이 우리 삶을 집어삼킨다.

 

 


1

버스 타고
근동 지방을 구불구불 가다가
드넓은 밀밭을 검게 태운
구름 그림자를 보았다
구름 그림자에 타서! 대지는
여기저기 검게 그을려 있었다.

 

2

욕망 - 구름 그림자
마음- 구름 그림자
몸 - 구름 그림자에
일생은 그을려,
너 - 구름 그림자
나 - 구름 그림자
그 - 구름 그림자에
세계는 검게 그을려-

 

3
그 모든 너울을 걷어낸 뒤의
구름 자체를 나는 좋아하고
그리고
은유로서의 그림자에 불타는 바이오나 -

 

 

(「그림자에 불타다」, 72쪽)

 


 

비로소 시인은 ‘그림자’의 실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자신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일은 불편하고 낯선 작업이다. 하지만 그림자의 일탈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순간, 우리 삶은 위험해진다. 괴물로 망가지느냐, 새로운 탄생을 맞느냐, 중요한 기로가 된다.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감싸 안은 후에야 자기완성을 이룰 수 있다. 물론, 그 음습한 욕망이 내 것으로 인정하긴 쉽진 않겠지만 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 다양한 지식이 있어도 누구 하나 가르쳐주지 않는 영역.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 그 바깥쪽에는 그렇게 매달리면서 어째서 우리의 안쪽을 살피는 일에는 그리도 인색한지. 세월이 고단해서, 삶이 지나치게 바빠서, 또 다른 절박한 사정으로, 내 그림자를 때때로 내버려둔 채 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지난 하루를 되짚어

내 발자국을 따라가노라면

사고의 힘줄이 길을 열고

느낌은 깊어져 강을 이룬다 - 깊어지지 않으면

시간이 아니고, 마음이 아니니.

되돌아보는 일의 귀중함이여

마음은 싹튼다 조용한 시간이여.

 

 

(「지난 발자국」, 12쪽)

 


인간이 하나의 생을 살면서 남기고 가는 흔적은 여러 가지다. 「지난 발자국」은 그렇게 흔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남기는 삶의 발자국이 번뇌와 욕심으로 각인된다면 결코 뒷사람이 따르거나 배울 것이 못 된다. 결국 ‘되돌아보는 일’은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현실적 수행이다. 시인은 소멸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통해 자기 성찰을 유도한다. 하찮게 보이는 발자국을 통해 독자는 삶의 유한한 정체를 깨닫게 된다.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마악 피어나려는
꽃송이,
그 위에 앉아 있는 지금,
공기 중에 열이 가득합니다.,
마악 피어나려는 시간의
열,
꽃송이 한가운데,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76쪽)

 

 

 

꽃이 예쁜 까닭은 그것이 유한한 데에 있다. 때가 되면 시들어 떨어지지 않고 사시장철 한사코 피어 있는 꽃을 상상해 보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꽃이라면 더 이상 귀하거나 애틋하지 않을 것이다. 개화를 보는 일은 무척 까다롭다. 날씨가 변화무쌍해 개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기 쉽지 않다. 희열의 순간을 앞둔 꽃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희망의 기운을 찬찬히 느끼게 한다. 꽃을 대하면서 우울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 자신도 미소를 짓게 하는 행복한 순간이다. 「이게 무슨 시간입니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가장 찬란한 순간의 심미적인 삶을 공감케 하려는 시인 작업의 핵심이 농축되어 있다.

 

 

여행을 가면
가는 곳마다 거기서
나는 사라졌느니,
얼마나 많은 나는
여행지에서 사라졌느냐.
거기
풍경의 마약
집들과 골목의 마약
다른 하늘의 마약,
그 낯선 시간과 공간
그 모든 처음의 마약에 취해
나는 사라졌느냐.
얼마나 많은 나는
그 첫사랑 속으로
사라졌느냐.

 

 

(「여행의 마약」, 30쪽)

 

 


시간은 항상
그늘이 깊다.
그 움직임이 늘
저녁 어스름처럼
비밀스러워
그늘은
더욱 깊어간다.
시간의 그림자는 그리하여
그늘의 협곡
그늘의 단층을 이루고,
거기서는
희미한 발소리 같은 것
희미한 숨결 같은 것의
화석(化石)이 붐빈다.
시간의 그늘이
심원한 협곡,
살고죽는 움직임들의
그림자,
끝없이 다시 태어나는(!)
화석 그림자.

 

 

(「시간의 그늘」, 32쪽)

 

 


시인은 시간의 경과에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시집에서 ‘그늘’과 ‘그림자’를 자주 쓰는 빈도를 통해서 시인의 정서가 다가올 시간보다는 지나간 시간 쪽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아련한 슬픔의 감정을 드러낸다. 시인에게 여행의 추억은 첫사랑처럼 가장 순수했던 시절로 남는다. (「여행의 마약」, 30쪽) 시간의 경과 뒤에 남은 것은 ‘살고 죽는 움직임’의 흔적이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그림자들뿐. (「시간의 그늘」, 32쪽)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그림자들,
무거워, 한숨과도 같고
가벼워, 웃음과도 같은
그림자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그림자들

 

 

(「그 사이에」 중에서, 42쪽)

 

 

 

행복의 빛이 마음속에서 밝아지면 시간의 흐름 속에 비굴해지는 그림자가 그만큼 더 짙게 드리운다. 그러나 시인은 지나가 버린 시절의 광휘에 집착하지 않으며 무기력하지 않다. 삶의 변화를 피해갈 비법은 따로 없다. ‘그늘’을 거꾸로 하면 ‘늘그’가 된다. 늘그막. 시인은 거대한 장막 같은 인생의 그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늘그막은 누구에게나 따라오게 되는 인생 자체의 그림자다. 무거워서 한숨과도 같고, 한편으로는 너무 가벼워서 웃음과도 같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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