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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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마음의 고향이다. 풍요로운 정원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정원에서 쌓인 피로를 훌훌 털어버린다. 정원은 또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닦는 곳이기도 하다. 땅을 파고, 화초를 심고, 잡초를 뽑는 것은 자연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원초적인 경험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노동이 주는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느낄 수 있다. 땅은 매우 현명하고도 관대하다. 땅은 아름다움의 영감과 생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평온하다. 정원 한가운데서 혼자 있는 기분과도 같다. 3년 동안 땅을 일구며 ‘비밀정원’을 완성한 철학자의 기록을 담은 이 책의 분위기가 그렇다. 《땅의 예찬》(김영사, 2018)은 땅과 식물이라는 자연의 연결고리에 향한 열렬한 사랑을 담은 책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정원을 자연과 인생이 어우러진 평화와 사색의 공간으로 가꾸고 싶어 한다. 정원 일을 하면서 철학을 접목한 그의 이야기는 정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정밀한 사유의 깊이를 보게 된다. 저자는 시간, 행복, 세계의 디지털화, 죽음 등에 대해 명상한다. 아네모네, 미선나무, 크로커스, 옥잠화 등의 살아있는 존재들의 다양한 모습을 써 내려 간 대목에서는 자연의 솔직함이 묻어 있다. 저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고 성장하는 정원의 비밀을 거울에 비추며 땅의 신비로움, 아름다움, 고귀함의 품격을 보여준다.

 

저자는 땅과 식물로부터 삶의 철학을 배운다. 저자는 정원을 가꾸면서 땅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갈망을 느낀다. 그에게 정원 일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소중한 과정이다.

 

 

 나는 자주 놀라워하며 땅[흙, 지구]을 만지고 쓰다듬는다. 땅에서 나오는 모든 싹은 진짜 기적이다. 차갑고 어두운 우주 한가운데 지구와 같은 생명의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다. 보통은 생명이 없는 우주에서 우리는 작지만 꽃이 피어나는 행성에 산다는 것, 우리가 행성의 존재라는 것을 늘 의식해야 한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땅에 대한 섬세한 감성을 모두 잃어버렸다. 땅이 무엇인지 더는 알지 못한다. 고작해야 이나마 유지해야 할 자원으로만 여긴다. 땅을 보호한다는 것은 당에 그 본질을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31쪽)

 

 

저자에게 있어서 정원을 가꾸는 일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사적인 행위다. 그가 정원에서 명상하고 글을 쓰는 일은 그 내면세계에서 발견한 진리, 잔인하게 착취하고 파괴된 땅을 다시 살리려는 시도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땅은 ‘행복’의 동의어이다. 한병철은 이미 여러 차례 ‘디지털 세상’을 진단하고 비판했다(《투명사회》, 《심리정치》, 《타자의 추방》). 《아름다움의 구원》(문학과지성사, 2016)에서 그는 숫자로 이루어진 디지털 문화로 인해 사람들이 지향하고 원하는 것들이 공통으로 ‘매끄러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매끄러움’이 관통하는 디지털 세상은 비밀과 저항을 없앤다.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디지털 세상에 남과 비슷한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고 ‘좋아요(like)’를 많이 받길 원한다. 무한정한 자유가 결국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폭력이 된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자신을 착취하는 노동자다. 개인의 자기착취를 유도하는 ‘디지털 권력’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 착취의 노동자’를 ‘자연(땅) 착취’의 함정으로 몰아넣는다. 결국, 우리 스스로 행복을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생명이 있는 곳엔 그 어디든지 아름다움의 비애가 있다. 아끼던 화초가 죽어 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하는 순간이 있다. 정원보다 더 심오하게 탄생과 죽음, 시작과 끝, 그 소멸의 주기를 보여 주는 게 있을까? 하지만 정원사는 영원한 성장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정원을 잠재우고 있을 때도 봄이 되면 새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안다. 정원을 사랑하는 한병철에게 흙을 만지는 일은 연애, 노동, 성찰이다. 《땅의 예찬》은 정원에서 그가 자연을 만나 사랑하고 일하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내밀한 기록이다.

 

이 책의 '옥에 티'꽃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지식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오독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문장)이다.

 

 

부용은 한국의 국화(國花)다. 한국어로는 무궁화. (101쪽)

 

 

부용은 무궁화와 비슷하게 생긴 꽃이다. 부용과 무궁화는 쌍떡잎식물 아욱목에 속하는 식물이지만, 학명이 다르고 생김새에 약간 차이가 있다.

 

 

 사프란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보드리야르의 책 《유혹에 대하여》에 꽂아두었다. 겨울밤 사프란 크로커스는 그 자체가 유혹이다. 138쪽과 139쪽에 아름다운 꽃모양이 찍혔다. 다음의 구절들이 사프란 색깔을 입었다.

 

 모든 범죄도 그렇지만 유혹의 과정에도 무언가 비개인적인, 어딘지 제의적(祭儀的)인, 주체를 넘어선, 초감각적인 요소가 있다. 현실에서 유혹자나 그 희생자의 체험은 그런 요소의 무의식적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형식의 주체들이 소모되어 없어지는, 그런 형식의 제의적 연습. 그래서 전체는 미적 작품의 형태와 아울러 제의적 범죄의 형태를 포함한다.

 

 아름다운 소녀의 유혹하는 힘, 그녀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유혹자의 인위적인 연극론과 전략에 의해 희생되고 파괴되어야 한다. 심리학, 영혼, 주체성 등이 없이 나온 유혹자의 기술이 아름다운 소녀의 자연적인 유혹하는 힘을 이긴다. 유혹자는 유혹의 제의(祭儀) 과정에 자신을 바친 사제다. (119~120쪽)

 

 

‘아름다운 소녀의 유혹하는 힘’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희생되고 파괴되어야 할까? 왜 나는 ‘아름다운 소녀의 유혹하는 힘’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순수한 모습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롤리타(Lolita)’ 이미지가 생각나는 걸까? 아무튼 이 문장은 계속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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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0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시화 시인이 발견한 문장이 생각납니다. ‘정원사가 있으면 정원이 있다’ 고, 정원이 있고 정원사가 있는 게 아니고...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

cyrus 2018-07-02 17:17   좋아요 0 | URL
정원사가 없는 정원에는 잡초가 많아질 거예요. 그만큼 정원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

2018-07-0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2 17:17   좋아요 1 | URL
정원을 잘 가꾸셔서 정원의 세계를 담은 사진집 한 권 내셔요. ^^

레삭매냐 2018-07-0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쌩뚱맞지만 최근 읽고 있는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에 나오는 서구의 도전과 아시아의 응전
이라는 도식이 떠오릅니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서구의 그것
과 자연동반 혹은 친화적인 동양의 아이디어
차이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런지요.

그나저나 부용이 한국의 국화라는 말은 정말
처음 들어 보네요.

cyrus 2018-07-02 17:24   좋아요 0 | URL
<땅의 예찬>에서는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 대한 저자의 비판의식이 드러나 있지 않아요. 땅을 소중히 여기자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했습니다만, 자기 성찰에 골몰하는 것 같아서 뭔가 아쉬운 느낌이 많았습니다. ‘부용은 한국의 국화’라는 문장을 보자마자 저는 무궁화와 부용이 같은 꽃인 줄 알았어요. ^^;;

카스피 2018-07-03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도시에서는 정원란 말을 이제 더이상 듣기 힘든것 같아요.제가 살던 곳도 요 몇년새 작은 마당(혹은 정원)이 있던 단독주택들이 모두 빌리로 바뀌더군요ㅜ.ㅜ

cyrus 2018-07-03 06:56   좋아요 0 | URL
옥상에 작은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양을 생각하면 옥상 텃밭도 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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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견고한 분야에선 여전히 여성의 사회 참여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페미니즘 논의가 주목받으면서 이전보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요소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성보다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비롯해 고용조건 개선, 권익 · 지위 향상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현안이 남아 있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에의 참여가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 공천 할당제는 선거 공천 때마다 매번 반복돼 왔던 문제이지만 실제로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후보로 등록된 이 중 여성은 6명에 불과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는 35명이다.[1] 6·13 지방선거는 집권 여당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에 여성을 공천하지 않았고, 기초단체장도 고작 11곳에 후보를 내 7명이 당선됐다. 선거 과정에서도 여성 후보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일상화돼 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선거 벽보를 한 남성이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남성은 페미니스트 후보가 당선되면 남성의 일자리가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선거 벽보를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젠더는 일상생활부터 국가정책, 사회운동, 지식사회에 이르기까지 가장 첨예한 논쟁 주제 중 하나다. 페미니즘을 모르면 인간과 사회 현상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미투(#MeToo) 이슈에 대한 상반된 반응에서 보듯이 젠더 이슈 인식이 남녀에 따라 극심한 격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여성 문제 인식에 대한 남성들의 문화 지체 현상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도 왜 우리 사회에 변화가 없을까. 젠더 이슈는 정치에서 늘 주변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문제를 다른 사회적 문제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인식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젠더 감수성(gender sensibility) 수준을 보여준다.

 

이번에 나온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교유서가, 2018)오랜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얼룩져왔던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지형을 7명(정희진, 권김현영, 손희정, 한채윤, 서민, 손아람, 홍성수)의 페미니즘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다. 지난해에 열린 <한겨레21> 페미니즘 강연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정희진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녀 관계를 ‘톰과 제리’로 비유한다. 톰과 제리는 한쪽이 불행해야 한쪽이 행복해지는 적대적 모순 관계이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고양이 톰이 ‘남성’, 생쥐 제리가 ‘여성’이라고 한다면 남성과 여성은 섹스하는 적대적 모순 관계이다. 남녀는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지만, 힘과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힘들고 불행한 삶에 직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는 정치적 문제가 된다. 젠더는 경험상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그것의 생성과 작용은 결코 개인적이지만은 않다. 페미니스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The personal is political)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정희진은 문재인 정부의 유일한 약점이 ‘젠더’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와 ‘촛불 혁명’을 시대정신으로 해서 집권했다. 하지만 일부 진보세력은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남성 연대의 도덕적 우월감은 여 · 야, 보수 · 진보 할 것 없이 공고하다. 진보 정권도, 보수 정권도 그랬다. 젠더 이슈는 뒷전이다. 쟁점화가 안 되고 별 필요 없는 것처럼 그냥 묻혀버린 것이다. 권김현영은 80년대 민주 세력이었던 ‘40대 서울 남성 연대’가 한국 사회의 기득권이 되면서 젠더 이슈를 외면했다고 진단한다.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가 손희정은 ‘남성 검사(檢事)’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드러낸 왜곡된 남성성과 남성연대를 분석한다.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검사는 도덕성과 정의감을 지킬 줄 아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남성으로 묘사된다.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에 대항하는 정의감을 가졌고, 음모론을 파헤치는 ‘시민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영화 속 남성 검사는 ‘나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나르시시즘이 반영되어 있다. 이 뻔뻔한 남성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사회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다른 문제’, ‘다른 목소리’를 배제한다.

 

보수 정치인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하나의 정책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당사자인 성소수자들은 모욕감과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은 계속 ‘나중으로’ 밀리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은 인권의 보편성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특수성에 의해 ‘나중의 일’로 치부된다. 한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은 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를 합리화하는 종교(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와 정치의 정경유착에 주목한다. 법학자 홍성수는 혐오표현을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에 근거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혐오표현은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감정 차원을 넘어 현실 세계로 드러난 문제이다. 홍성수는 혐오표현의 문제에 대응하고 해결할 길을 찾는 것은 민주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말한다.[2]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한 사회의 시민의 눈높이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나타낸다. 어느 나라의 민주주의든 그 성숙도는 여성과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7인은 일상의 여성 문제와 성소수자 문제를 우리 사회 최대의 정치적 상황으로 여긴다. 그들의 이러한 사유는 정치와 민주주의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과학자의 비판 정신과 결부돼있다. 그들이 끝도 없는 의문부호를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젠더 권력은 왜 현실 정치로 사소화되는가(정희진)”, “왜 남자들은 여성혐오를 하면서까지 여자들을 침묵시키려고 하는가(서민)”, “대중문화 속 여성은 왜 수동적일까?(손아람)결국엔 날 선 질문들의 끝을 독자에게 겨눈다. 남성만 진보가 아니고 여성과 성소수자와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진보를 말했다. 우리는 사실 미완의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는 그간 남성, 가족, 이성애 중심의 ‘정상 시민’이 주도한 운동에 머물렀던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혀줄 것은 물론 넓게는 페미니즘 및 성소수자 운동에서 사적인 생활 영역과 공공 영역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준다.

 

 

 

 

[1] 「6‧13 지방선거 여성 정치인 유리절벽 여전…광역·지자체 장은 남성 중심」 (여성소비자신문, 2018년 6월 25일)

 

[2] 홍성수의 강연 내용은 그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에 나온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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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7-0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bGaG4pR0GWE

제가 페미니즘을 비판하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비판적 시각이 많더군요.

마립간 2018-07-01 14:42   좋아요 0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IooGFjEyR3M
https://www.youtube.com/watch?v=EBzEQaRzUTY

추가 동영상입니다.

cyrus 2018-07-02 12:01   좋아요 0 | URL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내부 비판’과 성찰을 통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처음으로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페미니즘을 비판합니다. “나는 알고 있는데, 너희 페미니스트들은 그것도 모르고 있냐”, “니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틀렸으니 니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야!”는 식으로 공격하니까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의 진짜 의미가 변질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됩니다. 세 편의 동영상을 다 봤는데요, 이미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인지한 페미니즘의 문제점이 나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왜곡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마립간 2018-07-02 12:09   좋아요 0 | URL
어떤 부분이 왜곡된 내용입니까?

이미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인지한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남성이 지적하면 안 되는 것인가요?

cyrus 2018-07-02 12:18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두 번째 댓글의 첫 번째 동영상 50초 화면에 보면 ‘여성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해He for she!!’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렇게 생각한 페미니스트가 있겠죠. 그렇지만, ‘He for she’는 여성을 위해 남성에게 강요하자는 뜻의 구호가 아니에요. 이 동영상을 만든 사람이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했고, 페미니즘을 비판했다면 ‘He for she’의 원래 의미를 알려줬어야 했어요.

그리고 제가 이미 페미니즘이 인식한 문제에 대해서 ‘남성’이 지적하지 말라고 언급했습니까? ‘페미니스트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을 ‘남성’으로 보셨나요? 저는 ‘페미니스트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남성이라고 상정하지 않았어요.

마립간 2018-07-02 12:26   좋아요 0 | URL
첫 번째 지적은 받아들이겠습니다.

두 번째 답변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군요.

제가 이미 페미니즘이 인식한 문제에 대해서 ‘남성’이 지적하지 말라고 언급했습니까? ; cyrus 님에 대한 반문이 아니라, (여성)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반문입니다. 보다 일반화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남녀를 불문하고 용인하지 않는다‘가 제 판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이 종교화하고 있다고 했었죠.

‘He for she’를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에는 동의하시나요?

cyrus 2018-07-02 12:38   좋아요 1 | URL
저는 페미니즘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남성은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땐 워마드의 존재를 몰랐고, 시간이 좀 지나서야 워마드를 알게 됐어요. 마립간님이 말씀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남성을 허용하지 않는 워마드를 뜻하겠군요.

지난달에 워마드를 비판하는 글을 썼어요.
http://blog.aladin.co.kr/haesung/10166605

제가 페미니즘 강연에 참석해서 배운 내용, 페미니즘 독서 모임 활동을 하면서 들은 내용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페미니즘의 종교화’라는 마립간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워마드의 종교화’인데, 페미니스트라면 짚고 넘어 가야 할 문제입니다. 워마드의 성소수자 혐오 및 차별에 대해서 지적하는 여성주의 학자들이 있습니다. 마립간님이 언급한 동영상에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페미니스트’를 지적한 장면이 있는 걸로 압니다.

마립간 2018-07-02 13:41   좋아요 0 | URL
의견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알라딘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싶어 잘 방문하지 않지 않아 cyrus 님의 워마드에 대한 글을 읽지 못했습니다.

의견 교환 감사합니다.
 

 

 

 

드디어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을 다 읽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한 주 모임을 빠진 적이 있지만, 독서 진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흑페미》 마지막 모임 공식 후기를 썼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는 글이라서 최대한 짧게 썼습니다. 책에 벗어난 내용을 언급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로 어제 우리 멤버들끼리 주고받은 대화가 흥미진진했습니다.

 

10, 11장을 읽으면서 느꼈던 제 생각은 공식 후기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따로 글로 쓸 예정입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제 《흑인 페미니즘 사상》 마지막 모임이 있었습니다. 5월 14일에 처음 시작하여 6월 25일까지 6주 동안 이어진(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모임 쉬는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길고 긴 모임이었어요. 어제 모임에는 10장(「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미국 흑인 페미니즘」), 11장(「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12장(「힘 기르기의 정치를 향하여」)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국가적’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발생하는 어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여성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입니다. 전 지구적인 여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사회조직 전체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젠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가 중첩된 억압 형태‘지배 매트릭스(matrix of domination)라고 표현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성소수자 차별을 양산한 지배 매트릭스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를 모색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스트 바버라 스미스(Barbara Smith)급진주의(radicalism)를 이렇게 정의했어요.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급진적인 것은, 서로 다른 사람과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인종과 성, 계급, 성 정체성을 모두 동시에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이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388쪽)

 

 

혜○ 님은 이 문장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요즘 흔히 떠올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과격한 전략을 구사하는 페미나치(Feminazi)로 오해받습니다. 페미니즘을 비하하는 거 보면 정말 속상해요. 급진적 페미니즘은 과격한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기존의 여성 담론을 보다 급진적으로 발전시키는(또는 개선하는) 페미니즘입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의 급진성은 각국의 흑인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고민하고 연대하는 것입니다. 차별과 배제는 불평등과 혐오 문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연대의식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다를지라도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어떤 지식을 동원하여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면 인식론이 필요합니다. 페미니즘 인식론은 젠더 이분법에 반문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적 시선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은 이성애 백인 남성 지식인 중심 사회가 배제하고 왜곡했던 흑인여성의 경험을 드러내 그것을 하나의 지식으로 재현합니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지만 한편으로는 편견을 만듭니다. 지식인들의 오류가 거기서 생겨요. 자신의 지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들고 그것이 굳어지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 페미니스트도 도그마를 피할 수 없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듯한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 양상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대화와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죠. 은○ 님은 경청보다 더 중요한 게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드스타킹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완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또, 책은 우리에게 한층 더 깊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줬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중 하나가 ‘개인적 책임의 윤리’입니다. 어떤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개인적 책임의 윤리’에 대한 내용이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 책임의 윤리’ 문제는 우리에게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책의 주요 내용을 갈무리하는 12장은 다음 주 영화 모임에 이어서 톺아보기로 했습니다.

 

 

 

 

 

 

 

 

 

 

 

 

 

 

 

 

 

 

6주 동안 어렵고 두꺼운 ‘갈색 벽돌 책’을 완독한 멤버들 모두 축하합니다. ‘검정색 벽돌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일 루빈(Gayle Rubin)《일탈》(현실문화, 201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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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6-2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독서 모임은 으샤으샤가 잘되는 모임인가 보다.
모든 사람이 완독하기 쉽지 않은데. 훌륭하다.
책걸이 했겠군.
그런데 네 손은 어떤 거냐?

암튼 수고했어.^^

cyrus 2018-07-01 13:56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작년부터 시작했고, 원년 멤버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마음이 잘 맞고, 단합이 잘 돼요. ^^

제 손은 사진 오른쪽 중앙에 있어요. 내일 책거리 겸 영화를 보는 날이에요.

stella.K 2018-07-01 14:28   좋아요 0 | URL
저 근육손...?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ㅋㅋ

cyrus 2018-07-02 12:02   좋아요 0 | URL
제 손을 실제로 보면 길쭉해요. 마른 체형이라서 손도 말랐습니다.. 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6-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이 이렇게 후기를 잘 써주셔서 그 모임은 든든하겠는걸요^^

cyrus 2018-07-01 13:58   좋아요 1 | URL
저보다 후기를 열심히 쓰고, 잘 쓰는 분들이 많아요. 독서모임 후기 쓸 때가 제일 힘들어요.. ^^;;
 

 

 

 

대구광역시의 브랜드 슬로건은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입니다.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도시 이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현재의 대구는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입니다. 대구가 보수 정당의 텃밭이 된 이후로 매력 없는 지역이 됐습니다. 지역의 정치색이 다양하면 좋을 텐데 대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색이 강합니다.

 

 

 

 

 

지난주 토요일(623)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동성로 일대에서 펼쳐졌습니다. 축제 슬로건은 퀴어풀 대구(Queerful Daegu)입니다. ‘컬러풀 대구에서 따온 것으로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퀴어 축제는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입니다. 퀴어 축제는 성소수자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게이도, 레즈비언도, 트랜스젠더도, 무성애자도, 그리고 이성애자도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 수 있는 축제입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컬러풀 대구입니다.

 

저는 올해 처음으로 퀴어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저 혼자 간 게 아니라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갔습니다.

 

오후 1시부터 부스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부스에 가면 퀴어 관련 굿즈를 구입할 수 있고, 퀴어 문화에 관한 정보를 담은 자료를 접할 수 있습니다. 부스 행사에는 타 지역 퀴어문화축제 진행위원회(서울, 전주, 부산, 제주), 대구 지역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대구대학교, 계명대학교), 국가인권위원회, 주한미국대사관, 구글(Google),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50여 개의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구글은 퀴어 축제를 후원하는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구글은 작년부터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인종 차별 발언 ·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검색 결과에서 안 보이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퀴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자긍심의 퍼레이드입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동성로 일대를 행진하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동성애와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퍼레이드 행사를 막는 바람에 4, 50분 정도 지연되었습니다. 다행히 축제 참가자들과 동성애 반대 단체 회원들과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초 예정된 경로를 벗어났지만,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긴 행렬이 이어졌고, 대구시청을 지나게 됐습니다. 대구시청 앞에 장애인협약 요구를 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던 장애인단체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했고, 성소수자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자긍심의 퍼레이드가 종료되고,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중앙무대에서 애프터 파티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이 클럽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 부르는 행사입니다. 저는 클럽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확실히 퀴어 축제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축제라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동성애는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원인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보수 기독교인, 보수 시민단체가 주장한 시대착오적인 동성애 반대론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퀴어 축제가 음란한 축제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합니다.

 

퀴어 축제 반대 세력은 야한 옷을 입은 변태성욕자들이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라는 명목으로 성적 욕구를 발산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퀴어 축제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합니다. 모두 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그리고 퀴어 축제는 음란한 축제가 아닙니다. 가슴과 성기가 보일 정도로 야한 옷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탱크탑, 짧은 치마를 입은 축제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야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성적 행위를 암시하는 행동을 하면서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동성애 반대 단체들은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동성애 독재 반대’, ‘돌아와 줘, 기다릴게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과 셔츠를 입고 축제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이 행진할 때마다 계속 줄줄이 따라와 피켓 시위를 하였습니다. 무례하게도 평화의 소녀상받침대 위에 올라가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몰상식한 추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눈치챘는지 금세 달아나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 하비 밀크(Harvey Milk) 같은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동성애 독재 반대를 외치다니 이건 너무 비약이 심합니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동성애자가 결혼한답니까? 동성애자를 결혼을 해야 하는 이성애자인 것처럼 분류하는 생각은 동성애자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인식입니다.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동성애자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이 무조건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나라에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져도 비혼을 결심하는 동성애자가 있을 거고요, 결혼해도 육아를 선호하지 않는 동성애자도 있을 거예요.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문구는 동성애자의 삶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

 

 

동성애 반대 세력은 동성애를 성적 지향의 하나로 보지 않고, ‘질병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동성애자가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70년대부터 동성애는 질병이 아닌 거로 판명 났습니다. 국제질병원인분류인 DSM-5ICD-10와 세계정신의학회의 성명서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받을 필요가 없으며 동성애자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학적 법적 상식에 기반을 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미국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에서조차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 예로 2013년 미국의 탈동성애 운동단체인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 동성애 전환치료 시행)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발 동성애자에게 전환치료를 절대로 권하지 마세요. 그들이 전환치료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일입니다.

    

 

 

 

 

 

 

 

 

 

 

 

 

 

 

*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

 

 

외국의 퀴어 축제가 열리면 보수, 진보 이념에 상관없이 퀴어 축제가 열리는 지역의 시장(市長)이 참가해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다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쯤이면 유세 중에 다친 꼬리뼈[*]가 완쾌되었을 것 같은데, 안 나오셔서 유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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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6 08:23   좋아요 1 | URL
대구에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대구퀴어축제가 서울퀴어축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됐습니다. 부산, 제주는 작년에 1회 축제가 개최되었어요.

레삭매냐 2018-06-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끝의 할리우드 액션 배우 저리가라할
정도의 메소드 연기를 실연해 주신 분이
등장해서 깜딱 놀랐네요...

cyrus 2018-06-26 08:26   좋아요 0 | URL
시장님이 유리몸이라서 대구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_-;;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인상. 확실해. 내가 인상을 받았으니 그 안에 틀림없이 인상이 들어 있을 거라 혼잣말을 했지. 그림 참 쉽게 그리네! 벽지 문양을 위한 초벌 드로잉이 차라리 이 바다 풍경보다는 완성도가 더 높을 거야.”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모네(Monet), 드가(De Gas), 르누아르(Renoir), 세잔(Cezanne) 등 화가들이 기존의 미술계에서 받아주지 않던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한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인상주의자들의 전시」라는 글을 통해 “벽지 문양 그림이 모네의 그림보다 더 낫다”라고 혹평했다. 그리고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은 바로 이 글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그림의 대상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는 인상주의 화풍에 많은 사람이 낯설어했다. 그동안 그들이 익숙하게 접해 왔던 고전적인 회화와는 전혀 딴판의 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고전미술의 목표는 ‘자연의 모방’을 넘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미술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 즉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상한 미적 가치를 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은 원근법, 비례 등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고전미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인상주의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사물을 찍는 것처럼 정지된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실체를 화폭에 옮기는 기법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휴머니스트, 2018)은 인상주의가 싹틀 무렵인 쿠르베(Courbet)사실주의부터 아르누보(Art Nouveau)까지의 전개상을 따라간다. 예술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19세기 미술 또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범주일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미술이 파리에서 일어난 인상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을 8개 범주로 분류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프랑스 밖 사실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라파엘 전파’,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 8개 범주가 19세기 미술의 중심 사조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 한 권으로 19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의 여러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마네(Manet), 모네, 피사로(Pissarro), 시슬레(Sisley), 르누아르, 드가, 쇠라(Seurat), 고흐(Gogh), 고갱(Gauguin), 세잔 등이 활동한 이 시기는 고전미술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모더니즘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인상주의의 등장은 서양미술사에 있어 엄청난 사건이다. 고흐, 고갱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를 낳았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다양한 미술 사조의 뿌리가 돼 현대미술의 태동에 영향을 끼쳤다. 입체파, 야수파, 추상파, 표현주의 등으로 분화되는 20세기 미술의 원천이 된 것이다. 저자는 당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세세한 스케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사진술의 발명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유입을 과거보다 훨씬 유동적인 19세기 미술에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꼽는다. 19세기 중반 사진기의 보급은 사진의 특성을 회화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어 인상주의로 비롯된 새로운 회화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인상주의자들은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점 처리, 현대적인 화면구성에 매료됐다. 모네는 방안을 우키요에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렬한 수집광이었고, 고흐는 우키요에를 모사한 그림을 제작했다. 우키요에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자포니슴(Japonism)이라고 하는 문화적 경향으로 확산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모더니즘 미술의 여명기이자 현대미술의 서막이다. 세계관의 변화는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들은 실물 그리기를 포기했고, 실제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필요했던 원근법과 명암법마저도 과감하게 버렸다. 형태 묘사보다는 빛의 변화에 주목했던 인상주의 화법에서도 탈피해 작가 자신의 감각과 주관에 의존하는 미술작업이 새로운 기류를 형성해 나갔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이 20세기 초의 새로운 미술을 주도해 나갔다. 50여 년 동안 과거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들이 연쇄적으로 탄생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어떤 화가가 어느 회화 유파에 속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미술운동의 연쇄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파(派)’, ‘-주의(ism)’는 후대 학자들이 편의상 규정해 붙인 이름일 뿐이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많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 인상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피카소(Picasso)를 입체파 화가로 알려졌으나 야수파, 표현주의에도 속한다. 고흐 역시 분할주의(점묘로 대상을 표현하는 신인상주의의 기법), 표현주의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따라서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의 성과를 인상주의에만 초점을 맞춰 보려는 협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 문화적 연계 하에 고전미술을 탈피한 새로운 예술 언어들을 살펴보려는 거시적인 관점이 돋보인다.

 

 

 

 

 

* Trivia

 

1955년 쿠르베는 또 하나의 사실주의 걸작 <화가의 작업실>을 그린다. (49쪽)

 

→ 1855년을 ‘1955년’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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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5 15:17   좋아요 1 | URL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에 ‘난 알아요‘로 데뷔했을 때 신인 가수를 소개하고 평가받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작사가, 작곡가(하광훈 씨라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작곡한 사람)들이 서태지의 노래를 가혹하게 평가했어요. 그런데 전영록은 ‘노래를 듣는 대중 의 판단에 맡기겠다‘라면서 서태지의 노래에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어요. 전영록의 평가가 옳았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확 달라졌어요. 비평가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볼 수 없어요.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