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 -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
후카미 기쿠에 지음, 곽규환.진효아 옮김 / 해피북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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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방극장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다. 그야말로 ‘연애 예능방송’ 전성기다. 다만 기존 연애 예능방송 프로그램이 연예인과 일반인의 만남, 또는 실제 연예인 커플의 일상을 주로 관찰해왔다면, 최근 방식은 일반인 남녀들이 주인공이 돼 서로에게 관심을 표하고 ‘썸’을 타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1970년대에 공개 맞선 프로그램이 등장한 적이 있었으나 가장 많이 알려진 제1세대 연예 예능방송은 1994년에 방영된 <사랑의 스튜디오>다. 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랑의 작대기’다.

 

남녀가 각각 4명씩 출연해 게임과 대화를 하고 난 뒤에 ‘사랑의 작대기’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지목하여 선택한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던진 ‘사랑의 작대기’가 서로에게 향하고 있으면 커플이 된다. 남녀 네 쌍 모두 커플로 맺어지는 놀라운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사랑의 작대기’ 모두 일치하지 않아 단 한 쌍의 커플이 맺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작대기를 몰려 받는 사람이 있고, 단 한 명의 작대기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의 작대기’ 진행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마음에 드는 사람 한 명만 선택하면 된다. 나도 그랬고, 어렸을 때부터 ‘사랑의 작대기’를 기대 반 불안 반으로 봤던 사람들은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사회에선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다. 모노가미가 문명사회의 이상적 결혼제도로 정착된 이래 법률과 윤리의 보호를 받는 유일한 성 행동은 부부간의 육체관계이다. 배우자의 외도는 비윤리적이고 부정한 행위로 인식된다. 간통죄가 폐지될 때까지 간통은 위법 행위로 이혼 사유가 되었고,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만약 단체 맞선에 참가한 사람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두세 명 선택한다면 이건 잘못된 행동일까? 일부일처제에 익숙한 사람들은 파트너를 복수로 선택한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또, 그들은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폴리아모리스트(polyamorist)는 여러 사람과의 다양한 관계로 삶을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여러분은 혹시 ‘폴리아모리(polyamory)또는 ‘폴리아모리스트’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인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일이지만, 폴리아모리는 상대방을 독점하지 않고 다자간에 사랑을 나누는 형태를 말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집단으로 활동하며 해당 집단 안에서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물론, 이들은 정신적 유대감 형성에 중점을 두는 관계를 지향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함께 아이를 기르기도 한다. 폴리아모리는 독점적인 일대일 관계를 주축으로 형성된 연애와 일부일처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일부일처제를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연애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위계를 만들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막힘없는 의사소통을 추구한다.

 

《폴리아모리 :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해피북미디어, 2018)은 폴리아모리의 탄생 배경과 폴리아모리 특유의 문화를 설명하고, 미국 폴리아모리스트들의 다양한 삶을 소개한 책이다. 미국 같은 경우 1990년대부터 폴리아모리를 공론화하는 흐름이 시작되었다. 폴리아모리 비영리단체 중 하나인 ‘러브 모어(Love More)’는 1994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의 인류학자. 저자는 14개월 동안 미국 폴리아모리스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일상생활을 조사했다.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폴리아모리스트의 특징은 ‘백인’, ‘중산계급’, ‘고학력’이다. 이 세 가지 특징에 해당하지 않는 폴리아모리스트도 있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인종, 계층, 종교 등에 구애받지 않는 폴리아모리 공동체가 등장할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폴리아모리를 ‘스와핑(swapping)’, ‘난잡한 관계’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폴리아모리는 상호 간 합의를 통한 평등한 생활을 실천한다. 폴리아모리스트에게도 독자적 윤리가 있으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폴리아모리로 볼 수 없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여러 명의 파트너에게 자신의 교제 상황을 숨겨선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숨기는 것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폴리아모리 문화에 어긋난다. 폴리아모리스트도 섹스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교한 성 윤리 기준을 갖고 있으며 성병 혹은 임신을 피하고자 콘돔을 반드시 사용하며 정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폴리아모리 문화 및 생활 방식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폴리아모리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한다. 폴리아모리스트들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매뉴얼은 실생활에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파트너에 대한 질투, BDSM 관계 문제, 양육 문제 등)를 대처하는 지식을 제공한다.

 

저자가 만난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일처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지 폴리아모리스트 부부의 모습도 일부일처제 부부와 거의 비슷하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가끔 자신을 소홀하게 대하는 파트너의 행동에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폴리아모리스트 부부싸움도 ‘칼로 물 베기’다. 그렇지만 그들은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불편한 상황을 피하지 않으며 파트너와 함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폴리아모리는 다자간의 합의를 전제로 한 사랑 방식이다.

 

보부아르“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성(gender)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보부아르의 명언을 빌리자면 사랑 또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인식은 근대 이후 시작되었다. 일부일처제는 근대부터 시작된 사회제도이다. 폴리아모리가 말해주는 진리는, 일부일처제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일처제도 그렇고 폴리아모리 역시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Trivia

 

* 러빙 모어의 폴리아모리 조사에 따르면 보면 폴리아모리스트이면서 동시에 BDSM 실천자인 사람의 비중은 약 30%다. (177쪽)

→ ‘보면’이라는 표현을 빼면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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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7-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리아모리라.. 흥미롭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보자면 아무래도 독점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내 남편을 다른 사람과 쉐어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부디 내 남편도 같은 생각이길 바라며 ㅋㅋㅋ

cyrus 2018-07-06 07:33   좋아요 1 | URL
폴리아모리스트도 질투심을 느껴요. 파트너가 다른 파트너를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하는 것이죠. ^^;;

북깨비 2018-07-06 07:55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저는 폴리아모리스트를 했다간 이 파트너 저 파트너 질투만 하다가 세월 다 보내겠군요. ㅋㅋㅋㅋ 🤣 다른 사람의 폴리아모리를 딱히 반대할 건 없지만 그래도 자녀의 양육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모노가미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2018-07-05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6 07: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

sprenown 2018-07-05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결혼제도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지만 그나마 본능과 이성의 타협의 선물이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8-07-06 07:44   좋아요 0 | URL
결혼제도의 정착에 영향을 준 ‘본능‘과 ‘이성‘이 남성 중심 사고가 반영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내는 남편의 부속품으로 취급받았고,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가부장적 권위를 남성의 본능으로 정당화했어요.

AgalmA 2018-07-05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노가미가 쌍방의 합의이고 폴리아모리는 다자간의 합의라는 차이가 있을 뿐 어느 것이 옳다라는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정한 합의란 게 참 어려운 문제라... 육아, 양육에 있어 모노가미가 더 사회에 안정적이라는 판단 하에 정착된 것이라고 봐야겠죠. 예전처럼 첩의 자식도 같이 사는 사회도 아니니.... 개인의 정체성↑, 유교적 가부장제, 대가족 경향이 허물어지면서 지금은 폴리아모리 가족 제도가 필요해진 시점이긴 한 거 같습니다. 여전히 남성쪽 양육 책임의식이 의심스러운 게 걸림돌 아닌지 싶군요.

cyrus 2018-07-06 08:10   좋아요 0 | URL
이 책에 폴리아모리 가족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폴리아모리 가족 유형이 다양해요. 대가족 유형이 있고, 혼자 사는 폴리아모리스트도 있어요. 폴리아모리스트의 삶도 애로사항이 많아요. 양육 문제도 그 중 하나인데요, 여러 사람이 아이를 돌봅니다. 만약 파트너 A가 자식을 돌보지 못하면 B가 대신 돌봅니다. 흑인 가족이 아이를 돌보는 방식과 유사해요. 그러니까 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파트너의 자식을 돌보는 거죠. ^^

페크pek0501 2018-07-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그런 사회에 살면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습니다.

고 마광수 교수의 글이 생각나네요.
˝내가 보기에 결혼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만 할 악이다. 굳이 둘이 살려면 계약동거가 차라리 낫다. 그러나 프리섹스의 실천만이 인류를 권태와 가학의 질곡에서 구해줄 수 있다.˝(p22)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라는 책에 있는 글입니다.

cyrus 2018-07-08 17:31   좋아요 0 | URL
BDSM(속박, 규율, 사디즘, 마조히즘)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도 있어요. 세상을 넓고 성적 지향은 다양합니다. ^^
 

 

 

 

 

 

 

<신청 방법>

 

일반인 15명 내외 (선착순)

현재 12분 신청하였습니다. 3분 신청 가능합니다.

 

참여비 : 15,000원

우리은행 : 583-362090-02-008 (김정희)

 

(★ 입금 후 문자 : 참여자 성함/연락처 ★)

 

 

로쟈 이현우 작가님이 대구 작은 책방 ‘서재를 탐하다’에서 문학 강연을 펼치십니다. 작년 11월 책방 ‘읽다 익다’와 ‘서재를 탐하다’에서 강연 이후 두 번째 방문이세요.

 

 

 

* [로쟈와 함께한 불금] 2017년 11월 25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732455

 

 

* [책 읽는 수준을 높이자!] 2017년 12월 9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762450

 

 

 

이번 강연은 로쟈 이현우 작가로부터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봅니다. 대구지역 문화공동체 [우주지감] 모임인 ‘이 작가의 책’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2009)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2010)

 

 

 

함께 읽었던 네 작품 중 좀 더 여운이 남았던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두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주실 예정이며, 함께 모인 분들과 궁금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됩니다. 

 

이현우 작가님은 러시아문학, 세계문학과 철학, 한국문학, 인문학 강연 등 다방면으로 이야기 마당을 펼치고 계십니다. 작은 공간을 직접 발걸음 해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더불어 함해 주실 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대구에 사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신청 가능합니다. 

 

  -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 김정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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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5 06:39   좋아요 1 | URL
강연 듣고 난 이후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읽기를 시작하셔도 괜찮습니다.. ㅎㅎㅎ
 

 

 

이 시대의 흑인 여성은 위험하다. 그녀들은 인종적 억압에 성적 억압까지 중첩된 이중의 억압 속에서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 흑인 여성이 처한 문제에 민족주의 문제까지 겹친다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인권 존중을 호소했던 흑인 민권 운동 조직 내부에서조차도 흑인 여성 억압은 항상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에 참여했던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 함께 시민으로서 살 수 있는 평등권을 획득하기 위해 함께 투쟁했다. 그러나 흑인 여성들은 흑인 공동체 내부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억압인 성차별을 인식했다. 여성에 대한 흑인 남성의 가부장적 억압은 인종차별주의와 비슷한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 재키 플레밍 여자라는 문제(책세상, 2017)

* [절판] 레이철 홈스 사르키 바트만(문학동네, 2011)

*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 [절판] 벤자민 콸스 미국 흑인사(백산서당, 2002)

    

 

 

하나의 사회집단 안에서 대부분 남성은 기득권이며 통제와 지배에 집중한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 질서가 확립되면서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 외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일반적으로 서구의 지식 인증체계가 전제하는 이성적 존재기준은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남성 편향적일 수밖에 없고, 여성의 경험을 왜곡하거나 배제한다. 19세기 백인 남성 지식인의 경우 흑인 여성은 머리가 작고 당연히 지능도 낮다는 걸 입증하려 했다. 사르키 바트만(Saartjie Batman)은 남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끌려간 뒤 런던에서 반라의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아프리카 희귀종으로 전시됐다. 죽은 뒤에는 뇌와 생식기가 박제돼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에 진열됐다.

 

필리스 위틀리(Phillis Wheatley)는 아프리카계 흑인 출신 시인이다. 흑인 비평가들은 그녀의 시가 노예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이 드러내지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그녀는 시를 통해 흑인 차별 문제와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언급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자신들이 창간한 잡지에 위틀리의 시 몇 편을 공개해서 노예제 폐지 여론의 불씨를 댕겼다. 그런데 위틀리의 시집이 발표되었을 때 총 열여덟 명의 남성 지식인들이 그녀의 재능을 검증하려고 했다.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지식인 집단 또는 학문 공동체는 흑인 여성은 열등하다는 편견이 있다. 백인 남성 지식인들은 자신의 인종적 편견을 기본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준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그들만의 기준때문에 흑인 여성의 새로운 주장 또는 특출한 재능은 예외로 취급되거나 가차 없이 외면받는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백인 남성의 기준으로 설명되는 세계와 그들의 통제 방식에 대항하기 위해 흑인 여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드러낸다. 그러나 지식인 집단에 소속된 몇몇 흑인 여성 학자들은 흑인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 지식인의 통제 방식에 동조하기도 한다.

 

 

 흑인여성 학자가 학계에서 인정하는 자격을 갖춘 이후에 흑인여성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데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려고 하면, 그녀는 대부분의 흑인여성을 배제하고 폄하하는 체계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라는 압력에 부딪힌다. 흑인여성과 같은 외부인 집단이 엘리트 백인남성을 비롯한 내부인 집단의 특권을 인식할 때, 권력자들은 외부인을 지속적으로 배제하는 동시에 외부인들이 절차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안전한외부인 몇몇을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 권력자들은 지식인증절차에서 대다수의 흑인여성을 배제하기 위해 소수의 흑인여성에게 지식인증제도 내부의 자리를 허락하고, 이들에게 학계와 사회 전반이 공유하는 흑인여성의 열등함을 가정하고 작업하도록 권유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419~420)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종속된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서구의 지식 인증체계에 종속된 소수의 흑인 여성 학자들이 흑인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데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흑인 페미니즘을 종속된 지식이라고 명명하는 그녀의 입장은 페미니즘 내부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비판한 것이다. ‘종속된 지식이 된 페미니즘은 비단 흑인 페미니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로 알려진 일제 강점기에도 종속된 지식으로 변질한 페미니즘이 있었고, 여성 해방에 대한 희망을 품은 일부 여성 지식인들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친일 논설을 기고했다.

    

 

 

 

 

 

 

 

 

 

 

 

 

 

* 정운현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2016)

* 정운현 친일파는 살아 있다(책으로보는세상, 2011)

    

 

 

 

 

 

 

 

 

 

 

 

 

 

 

 

* 김재용 외 친일 문학의 내적 논리(역락, 2013)

  [이 책에서 필자가 참고한 글] 이선옥 여성해방의 기대와 전쟁 동원의 논리 : 여성의 친일 작품과 논설이선옥 우생학과 제국주의의 성정치 : 채만식의 여인전기와 이기영의 처녀지』」

    

 

 

일본이 시작한 태평양 전쟁이 말기로 치닫던 1940년대에 우리나라 여성 박사 1호인 김활란 이화여전(현 이화여자대학교) 교장은 친일 잡지에 조선 여학생에게 징병을 독려하는 논설을 발표했다. 김활란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여성계 민족단체 근우회를 결성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나 조선으로 귀국한 이후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친일 인사로 돌변했다. 그녀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가정의 개선과 부인 교화 운동 촉진을 위한 사회교화 간담회에 참석했는데, 그 모임을 주도한 단체는 친일 여성단체였다. 이밖에도 김활란은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등의 주요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고, 강연과 방송을 통해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을 옹호했다.

 

친일 문학의 내적 논리 (역락, 2013)에 수록된 여성해방의 기대와 전쟁 동원의 논리 : 여성의 친일 작품과 논설우생학과 제국주의의 성정치 : 채만식의 여인전기와 이기영의 처녀지』」는 일제 강점기 여성 지식인들이 남긴 논설을 근거로 친일 논리를 분석한 글이다. 이 두 편의 글을 쓴 이선옥은 여성 지식인의 친일 행위가 여성 해방에 대한 기대감과 일본 제국주의 논리가 결합하면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김활란뿐만 아니라 시인 모윤숙, 한국 근대 여성주의 운동가로 평가받는 박인덕 등의 여성 지식인들은 여성해방론을 주장했으나 일제의 황국 신민 정책(천황이 다스리는 일본의 신하가 되는 것)여성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할 기회라고 파악했다. 이 세 사람의 여성해방론, 즉 페미니즘은 일제 논리에 종속된 지식으로 전락한다. 친일 여성 지식인들은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자식을 낳는 군국의 어머니를 예찬했으며 그렇지 못한 조선 여성을 열등한 여성으로 규정했다. 안타깝게도 친일 여성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친일 행위가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종속된 지식이 된 페미니즘은 여성 운동사의 오점이자 흑역사. 가끔 페미니스트는 그들이 직면해야 할 다양한 여성 억압 논리(가부장제, 군국주의, 민족주의, 계급, 인종차별주의, 성소수자 차별 등)에 자연스럽게 동조할 때가 있다.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불편하더라도 페미니즘 내부의 비판과 성찰이 요구되어야 한다. 여성 운동가, 페미니스트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은 여성 운동의 분열을 조장하여 페미니즘의 진정한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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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지음, 에스터 레슬리 엮음, 김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의 모든 것은 사진에 담긴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세계를 수집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상을 기록하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하여 사진으로 찍어놓고 소유하고 싶은 게 사진 찍기의 본능이다. 그 본능을 사진가보다 더 잘 알았던 사람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일 것이다.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위즈덤하우스, 2018)는 사진에 관한 벤야민의 글을 엮은 것이다. 이 책에 ‘사진 읽기’의 가능성을 예견한 『사진의 작은 역사』 외 5편의 짤막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벤야민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에스터 레슬리(Esther Leslie)가 6편의 글에 해제(解題)를 붙였다. 이 책은 분량은 많지 않지만, 내용은 다소 복잡하다. 벤야민은 수집한 자료를 한데 몽타주(montage) 하듯 배치하면서 파편적인 것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새롭게 드러내는 작업에 천착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글을 썼다. 그가 남긴 글 대부분은 온갖 사료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 채워져 있고, 그것을 빼면, 인용문 사이사이에 끼어든 짤막한 논평이 전부다. 그런 형식상의 불완전성 때문인지 벤야민의 글은 해석하기 거의 불가능한 난해함으로 악명 높다. 다행히 이 책에는 에스터 레슬리의 해제와 상세한 주석이 있어서 벤야민의 사진론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벤야민은 수집가였다. 그는 사소하고 쓸모없는 사물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수집가의 능력이라고 했다.

 

 발터 베냐민에게 진짜 수집가의 특성이란 물건들에 의한 도취, 즉 소유에 앞서 영감을 받는 능력이다. “수집가는 물건을 손에 쥐자마자 벌써 그것을 통해 영감을 받는 것 같다. 물건을 통해 마법사처럼 그것의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 같다.”

 

(한병철, 《땅의 예찬》, 86쪽)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특정한 지식을 새로 얻은 듯한 간접 경험을 하고, 그래서 특정한 힘을 얻은 듯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사진기로 마주치는 순간을 찍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이미지의 창조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단순히 순간의 현실성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 내면의 심상 혹은 발언의 주요 표현수단이 된다. 사진을 찍는 것이 ‘수집’의 과정이라면, 사진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수집한 것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벤야민은 사진 설명글이 ‘혁명적 사용 가치’를 만들 거로 확신한다.

 

 사진 설명글은 한창 잘 팔리는 사진으로도 혁명적 사용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사진가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찍은 사진에 그런 설명글을 붙이는 능력이다.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39쪽)

 

예전 사진은 보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요즈음 사진은 설명을 붙임으로써 사진의 다중적인 표층으로 인해 생기는 불필요한 오해를 제거하고 명확한 심층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제 사진은 보이는 것이 아닌 ‘읽히는 텍스트’다. 벤야민은 ‘사진으로 혁명하는 방법’으로 ‘사진 읽기’를 제시한다. 그는 사진을 통해 현대 사회에 대해 발언하거나 사진 설명글을 통해 본다는 것에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기법인 포토몽타주에 주목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포토몽타주는 현실을 폭파한다. 사진과 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포토몽타주는 사진 속 표층에 가려진 심층을 폭로하거나 표층으로 드러난 현실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한 장의 사진이 수십 개의 말보다 메시지 전달력이 높을 수 있다. 하지만 벤야민은 사진이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진의 한계를 정확히 예언했다. 컴퓨터 합성, 연출, 도용 등의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사진은 진실을 감춘 채 허구를 전달한다. 또한 다른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한 곳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대조적으로 사진 편집을 하거나 같은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도 이해집단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상황을 표현한다.

 

사진을 오용하지 않으려면 사진을 보는 시선과 생각을 이동해야 한다. 사진의 의미가 피사체를 찍은 상황, 즉 표층을 넘어서 다른 의미(심층)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사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눈앞에 있는 이미지가 현혹하는 힘에 가려진 사회의 진실과 허위를 간파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사진이 사회 속에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사진은 진실 전달과 진실 왜곡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벤야민은 사진이 우리 사화와 삶에 미치는 양면적인 영향력을 인식했다. 사진에 관한 벤야민의 글은 일상의 삶을 교란하는 ‘위험한 사진’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벤야민은 ‘미래에는 사진을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이 문맹자’라고 했다. 이제는 사진을 오용하는 사람, 사진의 맹점을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이 현실을 읽지 못하는 맹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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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3 17:07   좋아요 0 | URL
네. 벤야민은 예술, 특히 사진에 대해서 시대를 앞서 간 생각을 했고,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파격적인 글쓰기를 시도했어요. 미완성이 된 <파사주 프로젝트>는 정말 엄청난 결실입니다.

레삭매냐 2018-07-0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제조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이런
철학적 분석에 도달할 수 있는 저자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네요.

수집한 사진의 재구성 그리고 혁명적 사용
가치의 발견에까지... 대단합니다.

cyrus 2018-07-04 10:05   좋아요 0 | URL
벤야민은 사진의 예술적 가치, 그리고 사진이 우리 삶에 미칠 긍정적 · 부정적 영향력 등을 예견했어요. 사실 수전 손택, 롤랑 바르트는 벤야민에게 빚 졌다고 봐야 합니다.

suegraphic 2018-07-0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글이 함께있는 작품인가요? 저도 사진을 해서 궁금해지네요.

cyrus 2018-07-04 10:07   좋아요 1 | URL
책에 사진 몇 점 있는데,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에요. 19세기에 활동한 사진가들의 흑백 사진 작품이 있습니다.

suegraphic 2018-07-0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사랑의 감정은 아름답습니다. 그중에서도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고난과 역경을 함께 딛고 이겨온 부부의 사랑이 더 끈끈하고 애잔합니다. 부부는 평생을 함께하지만 끝까지 같이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보다 빠르게 가족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립된 1인 가구는 질병 · 사고 등과 같은 위험 발생 때 주변의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늙고 병들어서 의지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

 

 

 

사랑한다는 것은 참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일입니다.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을 사랑한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에서 아름답고 위대한 사랑을 펼쳐냅니다. 스콧은 아내와 함께 미국 버몬트(Vermont)와 메인주(State of Maine)에서 자연과 호흡하는 소박한 삶을 실천합니다. 부부는 53년 동안 함께 농사를 지으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면서 강연을 하고 저술 활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헬렌은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고,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소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때 인도의 사상가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연인이기도 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와 결별한 헬렌은 스무 살 연상인 스콧을 만나 또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스콧은 미국 사회의 위선과 폭력을 고발하다 대학교수 자리에서 쫓겨난 신세였습니다. 지식인 사회와 언론에서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헬렌은 스콧의 사상에 감명 받았고, 스콧이 100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곡기를 끊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동반자로 살아왔습니다.

 

나이 차가 있고, 살아온 배경도 너무나 다른 헬렌과 스콧을 하나로 이어준 연결고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의 힘이었을까요? 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능케 만든 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부부는 시골로 들어가 손수 땅을 일궈 농장을 만들고 돌집을 지었으며, 죽는 날까지 자연과 어우러진 검약한 생활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얻고 깨달은 바를 이웃에게 나누려고 부지런히 노력했습니다. 스콧을 만나기 전 헬렌은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콧을 만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헬렌은 스콧의 반려자가 되면서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은 건강하고 소박하게 사는 법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함께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스콧과 만남을 진솔하게 그린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때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간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을 읽었습니다.

 

 

 

 

 

 

 

 

 

 

 

 

 

 

 

 

 

 

 

 

* 로드 던세이니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바다출판사, 2011)

* 앨저넌 블랙우드 《웬디고》(문파랑, 2009)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봤던 내용은 헬렌의 독서 취향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만난 상담 전문가들로부터 두 명의 작가를 추천받았습니다. 로드 던세이니(Lord Dunsany, 던세이니 경)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였습니다. 헬렌은 두 작가의 소설이 ‘이상야릇한 공상의 재미’를 줬다고 술회했습니다.[1] 그리고 헬렌은 큰 소리로 읽기를 좋아하는 책으로 던세이니와 블랙우드의 소설을 꼽기도 했습니다.[2] 저도 이 두 작가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던세이니 경은 아일랜드, 블랙우드는 영국 출신의 작가입니다. 이 두 사람은 주로 환상소설, 공포소설을 썼습니다.

 

 

 

 

 

 

 

 

 

 

 

 

 

 

 

 

 

 

* 엔도 조, 다나베 세이아 《책 읽다가 이혼할 뻔》(정은문고, 2018)

 

 

 

헬렌은 옛이야기, 공상 이야기, 미스터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녀도 ‘책 덕후’ 기질이 보입니다. 그녀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원작자가 누구인지 호기심을 갖게 되었는데,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을 40권이나 모았다고 합니다. 혹시 헬렌도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라는 음모론을 믿었을까요? 스콧의 독서 취향은 헬렌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스콧은 사회운동가답게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아내의 호기심을 ‘탐정 이야기’으로 취급했습니다. 음, 과연 니어링 부부도 독서 취향이 서로 다른 ‘애서가 부부’ 엔조 도, 다나베 세이아처럼 다투었을까요?

 

이 책을 읽은 우주지감 회원이 말했습니다. 부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을까?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헬렌은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내비칩니다. 책의 전반부가 헬렌이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스콧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스콧도 헬렌을 존경했습니다. 스콧은 헬렌이 가장 좋은 조언자이며 동행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부부의 사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상의 공유를 통한 공감과 존경입니다. ‘읽다 익다’ 책방지기 님은 그것이 부부가 지향하는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 좋은 문장들이 많습니다. 헬렌은 문장을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을 때 인상 깊은 문장을 베끼고 밑줄을 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독서 습관은 글쓰기 방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명언이 나옵니다. 부부의 사랑을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학물질의 결합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화한다.”

 

 

이 명언의 문제점을 지적한 우주지감 회원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융의 명언이 ‘두 개성의 만남’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영향을 주는 ‘외부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사랑은 연인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슬프게 이별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연인을 둘러싼 복잡한 외부적 문제는 사랑의 걸림돌이 되기 쉽습니다. 사랑을 현실적으로 보는 사람 입장에서 융의 명언을 본다면 ‘이상적인 사랑 방식’을 그럴듯하게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학고재, 2007)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헬렌은 고독을 즐기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외롭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죽음과 고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부부의 모습은 앙드레 고르(André Gorz)와 도린 고르(Dorine Gorz) 부부의 최후와 너무 대조되었습니다. 앙드레 고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좌파 사상가입니다. 그는 연극 배우로 활동했던 도린을 만나 58년 동안 부부로 지냈습니다. 도린은 척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불치병을 얻었고, 앙드레는 아내의 회복을 위해 그녀와 함께 농촌으로 내려가 병간호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고르 부부도 니어링 부부 못지않게 서로를 무척 존경하고 사랑했었죠. 고르는 도린에게 바친 편지들을 모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 편지 모음집이 바로 《D에게 보낸 편지》(학고재, 2007)입니다. 그러나 2007년 고르는 아내와 함께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르의 편지를 읽어 보면 그가 아내를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조화로운 삶을 산 니어링 부부에게 있어 죽음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에는 자발적인 죽음을 맞은 스콧을 지켜본 헬렌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녀는 죽음 역시 삶의 한 과정이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통해 모든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르도 다가오는 아내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덮치게 될 상실감과 고독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부부의 죽음을 비교하면서 누가 더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했는지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시간과 방식은 달랐지만, 두 부부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여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 전체가, 일상의 모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이들 두 부부가 살아간 인생의 발자취는 사랑을 가볍게 보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줍니다.

 

 

 

 

 

[1] 39쪽

[2] 137쪽. 초판에는 ‘둔세니’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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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3 06:46   좋아요 0 | URL
부부는 채식주의자였어요. 식습관이 닮아서 음식 때문에 싸우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ㅎㅎㅎ

stella.K 2018-07-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헬렌의 독서 취향이 독특했구나.
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말야.
나도 오래 전 니어링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확히 무슨 책인지 기억이 안 나.
그땐 아주 감동스러운 건 아니었는데
지금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암튼 좋은 글이다.^^

cyrus 2018-07-03 06:50   좋아요 0 | URL
혹시 《소박한 밥상》 아닌가요? 독서모임에 참석한 분이 그 책을 선물로 받았데요. 그런데 재미없었데요.. ㅎㅎㅎ

stella.K 2018-07-03 10:46   좋아요 0 | URL
아, 맞다. 소박한 밥상!
조금 지루하긴 했지.ㅋㅋ

붕붕툐툐 2018-07-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헨렌 니어링의 이 책을 읽고 채식을 시작했더랬죠.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인데 반갑네요~^^

cyrus 2018-07-03 06:55   좋아요 0 | URL
책에 나오는 니어링 부부의 러브스토리와 편지가 좋았어요. 채식은.. 못 따라하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