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타 - 불교 최초의 경전
법정 옮김 / 이레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다. 저마다 위로가 되는 것들이 따로 있겠지만 경전의 좋은 구절도 그 중의 하나이다. 법정 스님이 옮긴 『숫타니파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읽다보면 주옥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4쪽)

 

사자처럼 칭찬이나 비난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바람처럼 인연 따라 오고 가는 사람이나 물질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순수한 마음으로 본래의 마음자리를 찾아, 무소처럼 오직 집중된 마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기. 이 게송은 삶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

 

부처의 일대기 가운데 악마와의 한판 승부 장면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 멋진 무대가 만들어진다. 악마 나무치가 수행중인 부처 앞에 등장한다. 그는 수행을 완성하려고 정진하는 자를 방해해서, 쾌락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악마는 부처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척하면서 어른다.

 

"당신은 여위었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공덕을 쌓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힘써 정진하는 길은 가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며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151~152쪽)

 

악마는 좋은 말로 해서는 먹혀들지 않으니 겁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무리들을 부른다. 대도(大道)를 걷는 부처는 홀로이지만, 소인배 악마는 늘 무리를 거느리고 다닌다. 악마의 공격 속에서 부처는 차분하게 저들의 정체를 밝혀낸다.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혐오이며, 셋째 군대는 굶주림, 넷째 군대는 집착이다.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고집이다.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의 명예와,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나무치여, 이것들이 바로 너의 군대이다." (153~154쪽)

 

그런데 수행중인 부처를 공격한 악마의 군대치곤 그 이름이 흥미롭다. 이것은 바로 홀로 결가부좌한 부처가 내면의 마지막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다. 수행을 방해하는 온갖 번뇌들을 말끔히 털어내 보니 바로 저런 번뇌들이었음을 은유로 밝혀낸 것이다.

 

부처가 털어낸 이들 번뇌는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나타나 평온한 마음을 뒤흔드는 번뇌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저 열 가지 몹쓸 녀석들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하루를 근심에 떨며 살아간다. 그리고 저들 때문에 어떤 일을 완성하려 해도 도중에 주저앉는다. 저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울 일을 반복하고, 다시 아등바등 살아가게 된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근심을 없앤다면 삶이 더 풍성해질 것이다. 우리는 뭔가를 버릴 때 과연 그 물건이 쓸모가 없는지 따진다. 근심의 원인인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는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25쪽)

 

부처가 살던 시대가 오늘과 너무 다르다는 게 주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집착을 끊어 근심을 없애려면 사랑과 우정의 행복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부처는 사랑과 같은 인간의 기쁨과 행복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집착'이라는 불순물이 끼어 사랑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다. 물론 부처는 출가한 수행자들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초월해 보다 큰 진리를 지향하기를 바랐다. 출가자의 길과 재가 신자의 길에는 차이가 있었다. 출가자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해탈이다. 해탈을 위해서는 모든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번뇌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 밀려들어와도 담담하게 물리친 부처처럼, 휘말리지 말고 어떤 번뇌인지 잘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번뇌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우리들을 생존에 얽어매는 것은 집착이다. 그 집착을 조금도 갖지 않은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버리듯이. (19쪽)

 

그러나 부처의 설법을 향해 마음을 열면 오늘의 문제에도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모든 애착과 잡념과 집착을 놓아버린다면 삶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내 안의 아집과 탐욕, 기만과 이중성을 마주할 때 나는 『숫타니파타』를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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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동안 자살에 관한 연구를 해 온 프랑스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2002년, 새움출판사, 품절)은 인간의 역사와 자살의 모든 양상들을 환기시키고 있다. 감정적 자살, 가미카제의 자살, 희생자살, 저항자살, 모방자살, 집단자살, 종교적인 자살 권고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자살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 이 분야에 관하여 출간된 모든 저작들을 집대성한 역작일 것이다. 세계 각국의 살인 범죄 사건을 범죄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콜린 윌슨의 『현대살인백과』(종합출판범우, 2011년, 품절)와 짝을 맞출 수 있는 ‘현대자살백과’이다.

 

 

 

 

 

 

 

 

 

 

 

 

 

 

 

 

 

모네스티에의 책은 1999년 『자살, 도대체 왜들 죽는가』라는 제목으로 첫 선을 보였다. 출판사는 올해 초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 번역 논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새움출판사’다. 그러나 1999년에 출판된 책은 원서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었다. 완역본은 총 9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999년 판에 소개된 내용은 6부에 불과했다. 2002년에 『자살』이라는 새로운 제목과 표지로 완역본이 나왔고, 이듬해 양장본이 나왔다. ‘자살’이라는 책의 제목이 독자 입장에서는 꺼림칙하게 느껴질 법하고,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된다. 완역본 표지에 있는 그림도 꽤 충격적이면서도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15~16세기 유럽으로 추정되는 그림 속 여인은 젖가슴을 훤히 보일 정도로 옷을 반쯤 벗은 상태에서 자신의 복부에 칼을 찌르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막 목숨을 끊으려는 여인의 표정은 상당히 멜랑콜리하다.

 

 

 

 

 

 

 

 

 

 

 

 

 

 

 

 

최근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2002년 완역본을 발견했을 때 횡재했다. 2008년에 나온 개정판인 『자살백과』도 품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사기 위해 카운터로 계산했을 때 점원의 눈치가 신경 쓰였다. 아마도 책의 제목과 표지 때문에 점원은 놀라면서도 이 책을 사는 고객이 조금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자살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인데...

 

이 책에 대한 독자서평을 보게 되면 자살에 대한 사례와 유형만 나열되어 있을 뿐,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이 부족하다는 평이 대체로 많았다. 다양한 기록에 대한 저널리스트적인 호기심과 수집은 칭찬해줄만 하나, 백과사전 수준의 나열에 그친 ‘자살백과’가 되었다. ‘자살이 과연 나쁜 것인가 ’하는 명제를 철학적으로 파고들려는 시도는 하고 있지만, 몽테스키외, 뒤르켕, 몽테뉴 등 유명 명사들의 말을 단순 인용하는데 그치고 있다.

 

저자가 아무리 자료 수집이 탁월한 저널리스트라고 해도 사실을 날조한 내용을 진위 여부를 하지 않은 채 소개한 점은 옥에 티다. 저자는 희생적 집단 자살의 사례로 든 ‘칼레의 시민’은 후대에 왜곡, 과장된 내용이다.

 

‘칼레의 시민’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항구 도시 칼레를 구한 영웅들을 말한다. 칼레 시민군은 영국군의 집중 공격에 끝까지 저항하지만 끝내 함락되어 모두가 몰살될 위기에 처한다. 백기를 든 칼레 시장 비엔은 영국 왕의 선처를 호소했다. 칼레의 저항으로 악전고투했던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을 대표하는 6명이 스스로 나서 처형을 받는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것. 가혹했다. 의견이 분분했다. 시민들 각자 무슨 생각을 했을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분열과 자멸을 의도했을 게다. 그러나 칼레 시민은 달랐다. 최고 갑부가 먼저 자원했다. 이어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따라 나섰다. 이런 식으로 6명은 채워졌다. 영국군 진지 앞에 선 그들에게 마침내 교수형 집행 명령이 떨어졌다. 이때 임신 중이던 왕비가 간청했다. 뱃속의 왕자를 위해서라도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에드워드 3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왕비의 뜻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달리 칼레 항복에 관한 기록들에 의하면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 대표를 처형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칼레 시민 대표는 처형받기 위해서 나섰다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죄인이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행진하는 종교 의례와 유사한 행위로 추정한다. 또 이 이야기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이 투영되어 민족 정서에 호소하는 미담으로 가공되었고, 민족주의 열기가 고조되던 19세기부터 칼레의 시민들은 민족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칼레 시민 대표의 행위를 집단적 자살의 사례로 보기 어렵다.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주범은 오탈자의 등장이다. 특히 영문 표기법을 따르지 않은 듯한 인명(人名)의 오탈자는 번역자(두 명의 번역자가 공동 번역했다)의 상식을 의심케 한다.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오탈자를 소개해본다.

 

아베라르는 종교의 길로 들어가면서 로이즈에게 편지를 써서 그녀와 함께 무덤에 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126쪽)

 

중세 유럽을 발칵 뒤집은 유명한 스캔들의 주인공. 철학의 대가이자 성직자였던 아벨라르와 그보다 16살 어린 엘로이즈를 언급하고 있다.

 

“임신 중이던 쟌느 에뷰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 날,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 죽은 것을 슬퍼하여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126쪽)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가 병으로 사망하자 그의 아내인 쟌느 에뷔테른(또는 ‘잔 에뷔테른’)가 자살한 사건을 소개했다.

 

타시가 쓴 「연대기」에는 텔 식스트가 어머니의 애무를 거부하고 자살한 것으로 되어있다.” (136쪽)

 

아우구스투스에서 네로까지 네 황제에 걸친 로마의 치세를 정리한 『연대기』의 저자는 ‘타키투스’이다.

 

“전기작가 에토니우스에 의하면 옥타비아누스는 부르터스의 머리를 잘라 로마로 보내 케사르 동상 아래에 던지게 했다고 한다.” (153쪽)

 

‘부르터스’(브루투스), ‘케사르’(카이사르)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12명의 로마황제의 전기를 쓴 고대 로마의 전기 작가 수에토니우스를 ‘에토니우스’로 표기한 점은 너무 심했다.

 

 

2008년 개정판이라면 2002년 완역본의 오탈자를 바로 잡을 줄 알았건만, 2008년 개정판 100자평에 오역, 오타를 지적한 내용이 있다. 개정판이 아니라 책 표지와 제목만 살짝 바꾼 것뿐이다.

 

 

 

 

 

 

 

 

 

여러 모로 내용과 편집 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은 책이지만,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딱 하나 얻은 결론은 이렇다.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한다. 사랑, 부끄러움, 중상모략, 불명예, 이타적인 희생, 명령, 신념, 정치적 위기, 빈곤과 파산, 정신 질환, 부당한 대우, 미신과 주술 등이다. 쉽게 말해서 삶의 모든 관념과 행위가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과정은 죽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을 시도하는 토끼가 나오는 앤디 라일리의 만화 『자살토끼』(거름, 2004년)를 떠오르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자살들은 신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헤어날 수 없는우울의 자기 도덕적인 표현에 가까운 것이다. 미셸 푸코의 지적처럼 자살은 ‘상상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자살이 전면화한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길들이 사회 내부적으로 폐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가 막다른 골목일 수밖에 없을 때, 그것처럼 우울한 일이 또 있을까. 막다른 골목의 우울이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막다른 골목의 우울을 살아간다. 따라서 우울은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 모두의 것이 된다. 자살이 단발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자살 신드롬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살에도 문화적인 요인, 달리 말하면 모방과 유행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살만큼은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삶의 고유성과 죽음의 숭고함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이다.

 

 


 

 

 

 

 

 

 

 

 

 

 

 

P.s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독특한 주제에 관심이 많은 언론인이다. 그는 자살뿐만 아니라 심지어 ‘똥오줌’에 관한 역사를 집대성하기도 했다. 문학동네에서 『똥오줌의 역사』(2005년, 품절)로 번역, 출간되었다. 우리가 더럽게 생각하는 똥오줌도 역사의 주제가 될 수 있다니. 지저분한 내용이 많겠지만, 실로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자살』만큼 독자들을 확 끌어당길 정도로 책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책도 중고샵이나 헌책방에 발견된다면 꼭 구입하리라. 그런데 이 책도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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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첫 번째 단편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 ‘왜 그러는 거니, 얘야?’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혹시 카버의 소설을 읽어 본 독자 분들께서는 이 글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무척 궁금하다. 만약에 내가 독서토론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면, 독서토론을 위한 지정도서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아무래도 카버의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소설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 싶다. 특히 내가 여기서 소개하려는 ‘왜 그러는 거니, 얘야?’ 같은 글은.

 

‘왜 그러는 거니, 얘야?’는 서간체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외동아들을 둔 어머니가 미지의 인물로부터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내용은 어머니의 아들에 대해서 묻는 건데 어머니가 답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답장에 아들에 관한 내용이 언급된다. 과거를 회상하듯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면서까지 아들이 자라면서 겪은 경험들을 어머니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카버의 소설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독자는 다음 소개되는 줄거리를 읽지 마세요)

 

 

그런데 아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특이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두려워한다. 아들은 평소 착한 성격이지만, 가끔 충동적으로 감정을 폭발하거나 거짓말을 서슴없이 일삼는 행동을 한다. 아들이 열다섯 살쯤 되었을 때, 자신의 집에 기르는 고양이를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남편이 목격했지만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아들이 가족처럼 여기던 고양이를 끔찍하게 죽일 리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은 미심쩍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되어, 월급을 받았는데 어머니에게 80달러를 받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버는 아들의 모습을 기특하게 여겼으나, 이 말이 ‘뻥’이었음을 알게 된다. 빨래를 하다가 아들의 주머니 속에 28달러짜리 급료 수표를 발견했다.

 

아들은 학교 성적이 우수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그러나 점점 밖으로 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머니가 밖에 나가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봐도 아들은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니라 듯이 대답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심지어 아들은 자신이 구입한 엽총과 사냥칼을 자기 차의 트렁크에 넣기도 했다. 도대체 저런 위험한 물건을 구입해서 차에 보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들이 친구와 사냥을 하고 난 뒤에 다음 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살펴봤다. 그 곳에서 진흙이 잔뜩 묻은 아들의 신발을 발견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차 트렁크 속에 피가 묻힌 채 둘둘 말려진 셔츠도 발견했다. 지금까지 이 모습을 쭉 지켜본 아들은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코피가 심하게 나서 묻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낯설게 느껴져만 갔다. 한 번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건지 물어보려고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들은 무엇을 숨기려다가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어 크게 놀란 사람처럼 서랍 하나를 '꽝‘하고 닫으면서 어머니에게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나가요, 엄마가 엿보는 데 진절머리가 나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분노에 어머니는 무척 속상했다. 아들이 아닌 서로 남남처럼 지내는 하숙인처럼 취급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젯밤의 분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 한동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아들이 식사를 준비했다. 어젯밤에 소리를 지르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다가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할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밖에 나가면 무엇을 했으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러는 거니, 얘야?”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쳐다보다가 침묵했던 입을 열었다. “무릎을 꿇어요. 무릎을 꿇으라구요. 그게 첫째 이유예요.”

 

어머니는 아들의 대답에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잠갔다. 아들은 그 날 밤 집을 떠났다. 그 이후로 어머니와 아들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모자(母子)가 아니라 남남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아들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수한 성적과 최우수 졸업논문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해병대를 제대하고 난 뒤에 정치에 도전했다. 아들은 텔레비전과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주지사에 출마해 당선도 했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아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그의 주소를 알아내 몇 달에 한 번씩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럴수록 어머니의 걱정과 두려움은 더욱 쌓여만 갔다. 결국, 어머니는 이름과 전화번호부를 바꾸면서까지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그 후로 어머니는 누군가로부터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지의 말미에 늙은 어머니는 자신이 이 나라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어머니이지만 두렵다고 밝혔다. 그리고 편지를 보내는 미지의 인물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는지 궁금하다면서 물어보면서 소설은 끝난다.

 

“당신이 어떻게 제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는지 묻고 싶군요. 아무도 모르기를 기도해왔는데 말입니다. 왜 그러셨죠? 제발 좀 알려주세요.  -당신의 충실한 벗 드림” (292쪽)

 

카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그들은 평온하고 행복하기보다는 항상 불안과 두려움을 달고 산다. 역시 ‘왜 그러는 거니, 얘야?’에 나오는 어머니의 삶은 불안하다. 아들 또한 평범하지 않다. 아들은 자신을 의심하고 꼬치꼬치 캐묻는 어머니가 불편하다. 평범했던 모자 관계는 사소한 의심과 갈등으로 점점 어긋나기 시작하다가 아들로부터 진실한 대답을 원했던 어머니의 요구로 인해 위태로웠던 그들의 관계가 무너져버린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원래대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신의 감정이 깊어졌다. 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의 이중적인 면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하소연이 더욱 처량하게 느껴진다.

 

‘왜 그러는 거니, 얘야?’는 훌륭한 아들을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 소설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어 보면 독자는 어머니처럼 아들의 행동을 의심하게 된다. 단일한 구성에, 시간적·공간적 배경을 최소화시키는 카버의 글쓰기는 등장인물이나 소설의 결말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켜주고, 여기에 독자의 다양한 해석을 나오게 만든다. 

 

 

 

 

 

 

 

 

 

 

 

 

 

 

 


일단 눈치가 밝은 독자라면 이 소설에 나오는 아들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일상생활도 잘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소한 충동으로 자제력을 잃게 되면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또 다른 특징은 자기가 한 잔혹한 행위나 거짓말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다. 충동적이고 무책임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다.

 

아들이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죽이고 난 후에 드러나는 행동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에 가깝다.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저자 로버트 헤어는 사이코패스가 유년기부터 끊임없는 거짓말과 방화, 동물 학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 자기합리화에 능숙하다. 고양이가 죽은 사실을 어머니에게 듣게 된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고양이가 죽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날 저녁 제가 트루디(죽은 고양이의 이름)에 대한 얘기를 하자 그애는 놀라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굴었고, 우리가 현상금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애는 뭔가 타자기로 치고는 그걸 학교에 게시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날 밤 자기 방으로 가면서 그애는 엄마, 그 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트루디는 늙었어요. 고양이 나이로는 예순다섯이나 일흔쯤이었으니까 오래 산 거예요. 라고 말하더군요.” (284~285쪽)

 

이 소설의 또 다른 의문점. 아들의 어머니를 감시하고, 어머니의 집 주소를 알고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아들이 주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이름과 집 주소가 바뀐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서 감시한 것은 아니다. 주지사가 되어서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은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존재가 껄끄러울 것이다. 어머니가 공개석상에서 주지사의 어머니라고 밝히는 순간, 아들의 차 트렁크 안에 발견한 피 묻은 셔츠의 비밀 또한 공개될 수도 있다. 아들은 과거에 연루된 살인 사건이 내막이 한 치라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의심을 막아야 한다. 아마도 아들은 어머니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동안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의중을 떠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고 꺼림칙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잊지 않고 있다면, 감시자에게 청부살인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즉, 어머니의 답장은 아들이 계획한 무시무시한 살인의 함정일 수도 있다.

 

소설의 해석이 너무 상상력이 지나친 것도 있지만, 이 정도 범행을 충분히 생각해볼 가능성이 있다. 범죄자라면 자신의 범죄 행위를 목격한 증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어머니는 언젠가 자신도 아들에게 살해당할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에 아들이 무릎을 꿇으라고 말했을 때 방으로 도망가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의 운명을 어떻게 되었을까? 살인자 또는 사기꾼이 된 아들을 잉태하고 키운 어머니로서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아들의 하수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언제 살해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면서 어머니는 고립되어 간다. 아들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어머니의 마음은 애가 탄다. “왜 그러는 거니,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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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많이 연락하는 친구들 중에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이가 없다. 그 친구들은 학창 시절부터 책과 공부에 담을 쌓았고, 술 먹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로 줬다. 그는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독서를 잘 하지 않는다. 노는 것 엄청 좋아하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 책 선물을 할 줄이야. 그런데 나에게 책을 선물하게 된 이유를 더 자세히 알게 된 순간, 감동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가 일하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독서를 권장하기 시작했는데 회사가 매달 책 한 권을 직원들에게 제공해준단다. 그러면 월말에 회사에서 지정한 책에 대해서 직원들이 모여 간단히 독서토론을 한다. 책을 읽고 독서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친구는 회사에서 주는 책을 더 이상 읽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을 준 것이다. 선물인듯 선물 아닌 선물 같은 책이다. 

 

친구가 나에게 준 책 선물 1호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개정증보판이다. 친구는 농담으로 내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이 책을 줬다. 사실 집에 1994년에 나온 구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개정증보판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CEO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자기계발서의 고전이다. 나는 구판을 중학생 때 처음 읽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학급문고에 이 책이 꽂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책이었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내용은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수준이 높다. 기업 같은 사회조직의 구성원이 된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도대체 나는 어떤 분야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이 책을 읽었을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땐 세상 물정을 잘 몰랐기에 '성공'의 의미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돈만 많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성공'의 의미를 되짚어보면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렵다. 성공의 사전적 정의는 ‘목적이나 뜻을 이룸’이다. 낮은 자가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며, 시합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어 부와 명예를 가진 것도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성공에 대한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생리적 욕구, 안정의 욕구, 소속의 욕구를 뛰어넘어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어 하고 자신의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돈보다 명예를 원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한다.

 

7가지 습관의 핵심은 원칙중심의 가치관 확립과 개인차원의 신뢰성 확보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원칙이란 과거 수백 년 전에도 현재도 그리고 수백 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가치로써 인간행동의 지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정직·성실·신용 등이 될 것이다. 신뢰성의 기준은 성품과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신뢰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능력과 성품의 조화를 보고 판단한다고 할 수 있다. 코비는 인간에게 있어서 남에게 보이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성품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켜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성공을 외부로 이끌어내는 접근법이다. 외적 대인관계에서의 승리를 이끌기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적 승리’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패러다임을 이러한 내적 성품 효과성 원칙에 맞춘다면 잠재역량과 능력을 키울 뿐만 아니라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인생의 성공은 자아 정체성의 확인에서 출발해 ‘우리’라는 공동체적 가치관의 중요성에 따라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나 절충보다 상호 협조적인 승(勝)을 위한 제3의 대안을 찾아내고 관계 개선에 기여함으로써 집단의 응집력을 증대시키는 데 있다.

 

인생의 풍요로움은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헌신하는 삶에서 꽃필 수 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신나고 의미 있는 일들을 수행할 때 인생의 풍요로움은 배가된다. 급변하는 환경과 개인이 우선시되는 사회 풍조 속에서 우리 모두의 승리를 주장하는 이 책의 가치는 남다르다. 내가 성공하고 싶어서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그 '성공'이 '나'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인지 아니면 '나를 포함한 전체'를 위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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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의 예술한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Scene #1  "선을 많이 그려보게."

 

 

"드가는 드로잉을 참으로 사랑했다."

 

 

1917년에 세상을 떠난 에드가 드가의 묘비명이다. 드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묘비에 이런 문장을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정말 드로잉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그의 연필, 그의 파스텔, 그의 붓은 결코 포기를 몰랐다. 그의 묘선(描線)은 그가 원하는 것에 충분히 가까워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한없이 그림에 달라붙어 그걸 한장 한장 모방하고, 다시 모방하여 더 심화시키고, 옥죄이고, 감쌌다. 그에게 하나의 작품은 결코 끝이 났다고 말할 수 없었다.

 

드가가 드로잉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계기는 무명시절에 만난 '대가'의 조언에서 시작되었다. 1855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드가에게 '대가'는 이렇게 말했다. "선을 그리게. 기억을 되살려서든 자연을 보고서든 선을 많이 그려보게." 이때부터 드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항상 드로잉에 충실했으며 지금까지도 방대한 드로잉 작품이 남아 있다.

 

드가가 만난 '대가'는 바로 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였다. 앵그르는 회화에서 형식을 중시하는 소묘파의 거두였다. 회화에서는 소묘파와 그림의 중심은 색이라고 말하는 색채파 간에 오랜 논쟁이 있었다. 푸생과 라파엘로로 대표되는 소묘파는 그림의 기초인 데생이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고, 루벤스로 대표되는 색채파는 회화의 생명은 색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자의 소묘파는 앵그르로 이어지고, 색채파는 낭만주의 대표 화가인 들라크루아로 그 계보를 잇는다. 그러나 젊은 드가가 앵그르를 만났던 시기는 소묘파가 색채파의 힘에 밀려 약화되고 있었다. 젊은 들라크루아는 데생과 형식을 고집하는 앵그르를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화가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앵그르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을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사물을 보는 최고의 방식으로 데생을 수없이 강조했다. 결국 앵그르의 데생 사랑은 드가에게로 이어졌으며 피카소의 누드작품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Scene #2  “내 화실에 문패를 단다면 나는 ‘데생 교실’이라고 내걸 테다.”

 

드로잉. 데생·소묘라고도 불리는 드로잉은 일반적으로 밑그림으로 인식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그림 이전의 단계라는 이야기다. 그런 드로잉이 예술표현 수단으로 독자적인 자리매김을 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르러서였다. 18세기 이후엔 드로잉 위작이 나돌 정도였으니 이미 수집가들의 수집대상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앵그르 역시 드로잉 수집가 대열에 합류하여 르네상스 회화 같은 세밀한 고전적 묘사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앵그르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래서 피가 도는 사람인지 아니면 저 먼 고대의 이상적인 대리석 조각인지 모호할 정도로 어여쁜 여성상을 많이 그렸다. 아름다운 선과 정확한 형태는 대상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예술적 방법이었다.


예술적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앵그르는 자신만의 노트에 따로 기록했다. 1867년 제자들에 의해 편집돼 세상에 공개된 『앵그르의 예술한담』은 생전 그가 흠모했던 고대 예술의 대가들부터 음악, 연극 관련 주제까지 일관성 없이 잡다한 생각들이 적혀 있다. 그의 데생 사랑은 생전에 공개되지 않은 비밀노트에 꾹꾹 눌러 담았다. 앵그르가 기록한 짤막한 글에서 젊은 드가에게 데생의 중요성을 알려준 대가의 목소리가 생상하게 들려온다. 

 

 

 

 

데생은 단순히 윤곽선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데생은 그저 선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데생은 표현, 내부 형태, 면, 양감이기도 하다. (44쪽)

 

 

 

 

 

앵그르 「학생들에게 선사한 반신 자화상」 18세기기경

 

만약 내 화실에 문패를 단다면 나는 ‘데생 교실’이라고 내걸 테다. 그리해도 내가 화가들을 키워낸다는 점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45쪽)

 

아펠레스는 선 하나도 긋지 않고 보내는 날이 하루라도 있으면 안 된다 하였다. 그가 이 말을 통해서 가르치고 싶었던 바를 내가 여러분에게 거듭 말하겠다. 선은 데생이고, 데생은 전부다. (47쪽)

 

알렉산더 대왕의 전속 화가로 활동했던 아펠레스는 윤곽선을 매우 중시했고, 매일 선 긋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앵그르도 아펠레스처럼 매일 선 긋는 연습을 했는데 그 결과 꽤 많은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 그리다 만 형태로 남은 앵그르의 드로잉 작품은 지금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앵그르에게는 드로잉은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과정일 뿐이었다.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는 스승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예술적 경지에 이른 순간에도 앵그르는 데생이라는 기본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비밀노트는 앵그르의 미술 세계가 꾸밈이나 자기검열 없이 그대로 보존된 귀중한 문헌이다. 앵그르가 생각나는 대로 기록한 내용에는 무한한 데생 사랑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앵그르의 그림을 아는 독자라면 그가 남긴 그림들이 희미한 실루엣처럼 떠올릴 수 있다.

 

 

 

 

 

앵그르  「물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 1848년

 

우리가 실질적으로 조각가들처럼 작업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조소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 (50쪽)

 

 

 

 

 

앵그르  「세 개의 팔을 가진 여인, '터키탕' 습작」

 

좀더 상세한 크로키를 그릴 짬이 있거든 애정을 품고 모델을 취하고, 그 모델을 관찰하고, 온갖 형태로 그려보라. 모델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들어앉을 만큼, 모델이 무슨 소유물처럼 머릿속에 처박힐 만큼. (55쪽)

 

 

 

 

 

앵그르  「도송빌 백작부인의 초상」  1848년

 

인물화를 잘 그리려면 우선 그리고자 하는 얼굴에 깊이 빠져야 한다. 그 얼굴을 오랫동안, 주의깊게, 모든 면에서 숙고해야 한다. 첫 번째 포즈 시간은 아예 거기에 다 할애해야 할 정도다. (69쪽)

 

앵그르의 그림은 부드럽다. 특유의 섬세한 필치는 여인의 곡선을 띤 몸에 누구보다도 잘 어울렸으며 실제로도 그는 벗은, 특히 목욕하는 여인의 몸을 잘 그렸다. 앵그르의 스승 다비드는 “미술이란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이며 미술 작품의 목적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앵그르는 이 가르침을 그림 속에서 엄격한 리얼리즘으로 승화시켰다. 그리하여 강조와 비례의 미묘한 변화, 우아함과 사실적 깊이로 19세기 고전주의 미술의 극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앵그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 1808년

 

나는 우연히 거울을 통해 내가 그린 오이디푸스의 허벅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하얀 옷감이 따뜻한 금빛 살갗의 색상과 나란히 놓이니 더욱더 눈부시고 아름답게 보였다! (63쪽)

 

앵그르는 1808년에 완성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가 본인에게 있어서 가장 완벽한 그림으로 보였을 것이다. 앵그르의 비밀노트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같은 르네상스 회화의 대가의 그림들을 칭송하는 글이 많은데 앵그르 자신의 그림을 자찬하는 내용으로는 이 글이 유일하다. 앵그르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를 보라. 선이 만들어낸 세련된 남성 육체의 관능미가 느껴지는가. 남자인 내가 봐도 오이디푸스의 튼실한 허벅지가 이렇게 섹시하게 느껴질 수가. 여성 관람객이라면 당연히 오이디푸스의 허벅지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갈 것이다.

 

 

 

 

 

앵그르 「호메로스 예찬」  1827년

 

호메로스는 문학에 있어서나 미술에 있어서나 온전한 아름다움의 원칙이자 모델이다. (97쪽)

 

고전주의 미술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고대 그리스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신화나 비극 같은 고전 문학작품들도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앵그르도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감명 깊게 읽었다. 시간을 초월한 고전의 가치를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발견했다. 이러한 고전주의 예술에 대한 앵그르의 신념은 1827년에 완성된 「호메로스 예찬」에서도 드러난다. 앵그르는 이 그림을 통해 위대한 시인을 신격화한다.

 

 

 

 

 

앵그르  「그랑드 오달리스크」 1814년

 

모델의 목이 가늘더라도 굵게 고쳐 그리지는 말라. 그러나 그 가느다란 느낌을 과장하는 것도 삼가라. 특징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과장은 허용된다. 특히 아름다움의 요소를 확 터뜨리거나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할 때가 그렇다. (128쪽)

 

들라크루아의 후예들은 앵그르가 전통을 고집한 보수적인 화가라고 폄하했으나 앵그르는 정통파의 양식을 어느 정도 고수하면서도 해부학적 묘사를 고의적으로 거부했다. 허리뼈가 세 개나 더 있다는 조롱을 받은 「그랑드 오달리스크」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모델은 큰 엉덩이 때문에 허리는 비정상적으로 잘록해 보인다. 

 

 

 

 Scene #3 “나는 혁명가가 되고 싶다.” 

앵그르는 자신의 비밀노트가 제자들에게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앵그르의 속마음은 그랬을까. 그의 문체는 노트가 자신이 죽은 뒤에 언젠가 읽어보게 될 후손 또는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비밀노트를 생전에 공개하지 않았을까?

 

노트를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앵그르의 모습에서 발자크의 단편소설 미지의 걸작에서 완벽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싶었던 주인공 프렌호퍼를 보는 듯하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프렌호퍼는 완성이 되지 않은 미지의 걸작을 공개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앵그르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계속 고민하고 아무렇게 쓴 노트를 누구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정답을 끝끝내 찾을 수 없었기에.

 

앵그르에게는 이 노트가 단순히 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생각해낸 아이디어 모음집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앵그르는 입체적인 형태 표현과 세밀한 소묘, 매끄러운 기교 등이 완벽한 구도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선만으로는 부족했다.예술은 지금 변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러한 혁명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앵그르는 스승 다비드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묘사를 시도한다. 신체 비례가 왜곡된그랑드 오달리스크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기록은 표현에 대한 화가의 자기모순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앵그르의 노트는 어설픈 내용이 있는 기록으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위대한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고전주의의 대가가 수없이 고민하고 기록한 변증법적 탐구의 흔적이다. 여기에 고전주의의 대가로만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예술의 혁명가가 되고 싶은 앵그르의 뜨겁고 치열한 예술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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