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무정한 세계 -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
정인경 지음 / 돌베개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의 죄악은 나날이 커지리라.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어리석게 살도록 그들을 내버려두자꾸나. 내가 주인임을 그들이 모르게 하라.”
 “주인님의 계획은 감미롭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 『모로 박사의 섬』에서, 문예출판사)

 

 

모로 박사는 자신이 만든 이상한 피조물을 지배하는 신이 되고 싶어 한다. 동물 인간들의 야생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 법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은밀히 피 맛을 느껴버린 동물 인간들은 신이라고 여긴 모로 박사를 습격하여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이 지옥 같은 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는 에드워드 프렌틱. 그 곁에는 자신을 따르는 개 인간만 있을 뿐이다. 개 인간은 프렌틱을 주인이라 믿고 따른다. 프렌틱을 돕는 개 인간도 언젠가는 동물 인간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상황. 동물 인간들의 공격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프렌틱은 자신을 믿는 개 인간만 남겨두고 모조리 죽이겠다고 약속한다. 그가 동물 인간들을 향한 반격에 성공하면 모로 박사처럼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피조물의 신이 된 모로 박사를 비난했던 프렌틱도 개 인간 앞에서 신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수적 열세에 처한 프렌틱은 자신의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 아니, 절대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프렌틱은 이 섬에서 신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섬에서 탈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 인간과의 교섭이 가능한 개 인간을 이용했을 뿐이다. 개 인간은 인간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자신 같은 피조물을 만든 인간을 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프렌틱은 비정하다. 개 인간을 방패막이로 하여 동물 인간의 공격을 막고자 했다. 동물 인간들에게 외면 받았고,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개 인간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에게 이 섬은 무정한 세계다.

 

웰스『모로 박사의 섬』을 집필하고 있을 당시 유럽은 눈부실 정도로 서양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새로운 이론들을 발견해내는 데 성공하는 유럽인들은 승승장구했다. 진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과학의 진보에 한껏 고무되어 자연을 지배하고 싶었다. 여기서 그들이 지배하고 싶었던 자연이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식민지를 말한다. 과학기술은 식민지를 무력화시켜 지배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로 변질한다. 유럽 열강은 자신들이 만든 증기선, 소총, 대포 등을 총동원하여 힘없는 식민지를 공격하고 교역을 맺도록 강요한다. 열강 유럽의 습격으로 식민지에 서양문화가 유입되었고, 강제적으로 이식되었다. 유럽인들은 어리석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것이 자신들이 이룩한 진보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 의해 ‘야만인’, ‘비문명인’으로 규정된 피식민지인은 과학기술을 두려워했다. 두려움에 떠는 피식민지인들 앞에서 유럽인들은 전지전능한 신처럼 행동했다. 무기로 내세운 과학기술 앞에 처참히 짓밟힌 고국의 현실을 눈앞에서 지켜본 식민지 지식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일이야말로 침체한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선결적 과제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은 서양 과학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다. 우리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강제적으로 서양 과학을 받아들였다. 과학만 확실하게 안다면 유럽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문명에 대한 열등감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감미로운 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약을 무조건 건강에 좋다고 믿고 한꺼번에 들이 삼키면 부작용이 생긴다. 체질에 맞지 않은 서양 과학을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잘못된 과학 지식을 터득하게 되었고, 지금도 과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여긴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과학 공부를 어렵게 생각하는 원인을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서 찾는다.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이 시기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과학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 나오는 형식처럼  “과학! 과학!”하고 외쳐보지만, 정작 자신들이 알아야 할 과학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이 알고 있던 과학은 그저 자신들의 정신적 고통을 달래주는 아편에 불과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의도적으로 과학을 편집, 왜곡했다. 국력이 강한 나라가 되어야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는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은 다윈 진화론과 전혀 다른 사상이다. 순수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다윈 진화론을 알지 못한 채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지식인들은 진화론에 ‘적자생존’, ‘약육강식’ 개념을 결부했다. 과학적 다윈 이론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오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다윈과 진화론, 둘 중 하나라도 언급하면 벌써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다. 강자의 힘을 정당화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을 전파한 조선 지식인들은 강자의 힘에 매료되어 강자 앞에서 굴복하는 의식에 젖어든다. 이는 곧 인종적 열악함을 자인하고, 패배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를 믿었던 이광수는 『무정』을 발표한 지 5년 뒤에 ‘민족개조론’이라는 논설을 써서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조선의 민족성을 비판하기에 이른다.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에 과학을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에 무지한 피식민지인들은 서양을 ‘주인'처럼 우러러 보게 된다. 서양 제국주의자들은 진보의 힘을 믿고 식민지에서 똑똑한 주인으로 행세하며 자부심을 확인했다. 과학 중심의 왜곡된 계몽주의를 내세운 조선 지식인들은 미몽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서양 근대과학은 전 세계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진리로 굳어졌다. 이 진리를 터득하려면 그 속에 내포된 서양인의 사고방식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과학이라 할 수 없다. 과학이 세상을 계몽하는 데 유용하다고 믿는 것은 과학주의다. 여기에 진보와 야만, 문명인과 비문명인으로 규정하는 제국주의적 시선이 작용한다. 안타깝지만,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는 미몽에 가까운 애국적 계몽사상이 빚어낸 비극을 여전히 상연하고 있다.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별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양인들의 입맛에만 맞는 과학 아닌 과학을 배우면서 자랐다. 과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우리는 아이들에게 진짜 과학을 돌려주도록 도와줄 수 있는 자격이나 있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4-12-31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과학 현실이 서양 근대화에 불과하다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였네요. 저는 과학을 잘 아는 편도 아니고, 또 역사적인 부분도 부족하지만, 이 책안에는 역사와 정치 과학을 다루는것 같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글도 잘 쓰시고 독서량이 상당하시네요^^ 놀랍고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cyrus 2014-12-31 18:55   좋아요 0 | URL
이 책 추천하고 싶어요. `과학 상식(특히 뉴턴 물리학과 진화론) 한국문학(이광수, 염상섭, 이상) 한국근대사`가 적절히 조합된 책입니다. 저자가 글을 어렵지 않게 풀어썼어요.

읽고 쓰는 일이 그냥 좋아서 일기처럼 쓰는 편입니다. 놀라는 일이 아니에요. 저보다 많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들이 알라딘에 많으니까요. ^^

바람돌이 2015-01-0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의 침략이 과학을 앞세워 식민지인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식민지에서 단순한 열등감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관철되는 메카니즘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했는데 이 책이 그 궁금증을 어느정도 해소해줄 수 있을 듯하네요. 덕분에 좋은 책 담아갑니다. 다음에 읽을 책 리스트에 살짝 꽂아갑니다.

cyrus 2015-01-01 19:20   좋아요 0 | URL
저자의 주장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 문학 작품을 인용해서 설명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꼭 읽어보셔요. ^^

yamoo 2015-01-01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이 책이 땡기는군요~ㅎ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사이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책 소개도 많이 많이 해 주시길~!

cyrus 2015-01-01 22:5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야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야무님께서 직접 추천하는 책 소개 페이지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모로 박사의 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7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궁 속의 침팬지에게 인간의 줄기세포를 주입한다. 그 침팬지는 인간의 뇌를 가지면서 태어난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침팬지는 사람인가, 동물인가.

 

동물의 생체실험은 대체로 소량의 유전자를 동물에게 주입하거나, 인간의 세포나 조직을 동물에게 이식한다. 인간의 유전자나 체세포를 갖도록 조작된 동물들은 인간의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동물에게 인간의 특질을 부여하는 생체실험은 얘기가 달라진다. 한때 영국에서 동물의 생체실험 규제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의 세포나 유전자를 소량 이용하는 실험은 유지하되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에 대해서는 완전 금지를 주장했다. 인간 유전자를 섞은 동물의 배아를 14일 이상 배양하거나, 인간의 정자나 난자를 동물의 것과 섞어 교배하는 실험을 할 수 없다. 동물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에 실험을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생체실험의 위험성은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 나오는 침팬지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과학자 윌 로드만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서 손상된 인간의 뇌를 회복시켜주는 큐러라는 약을 개발한다. 이 약의 임상실험 대상은 침팬지. 윌의 보호 아래 자란 침팬지 시저는 인간의 지능을 가지게 된다. 시저는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인간들을 역습하기로 한다.

 

인류는 생명공학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데 성공했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은 자신들의 영생을 위해 우성 유전자를 지닌 복제인간을 만든다. 이미 멸종된 동물을 복제하는 시도도 한다. 그러나 상자 안에는 우리가 원하던 미래의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자가 열리는 순간 해악도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영화 '혹성탈출'에서처럼 인간의 지능을 가진 동물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우성 유전자만 선호하고 높은 가격으로 거래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생체 실험 문제에 늘 윤리적 논란이 따라다닌다.

 

유전자 조합과 생체실험의 윤리적 담론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는 인간이 파멸을 몰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특히 여러 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된 허버트 조지 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은 과학적 생체실험을 다룬 문학적 효시라 할 수 있다.  

 

모로 박사는 인간과 동물을 결합하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로 인류를 재창조하려는 야욕을 품는다. 그러나 그의 생체실험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한번은 그가 실험하려고 했던 개가 가죽이 심하게 벗겨지고 사진가 훼손된 채 발견되어 잔인무도한 생체실험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로 인해 모로 박사는 과학계 동료들로부터 멸시를 받지만, 생체실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을 떠나 야생동물들이 사는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정착한다. 이곳은 모로 박사의 거대한 생체실험 연구실이 되고, 그 결과 태어난 것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괴상한 반인반수였다.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한 외모의 피조물들이 섬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우연히 이 섬에 정착하게 된 에드워드 프렌틱은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는 모로 박사에게 실험의 위험성을 경고했으나 박사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박사는 미쳐버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실험에 대한 생각뿐이다.

 

"연구자가 지적 열정을 쏟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을 모를 거요! 그 지적 열망이 가져다주는 기묘하고 무색투명한 기쁨을 당신을 모를 거요! 당신 눈앞에 있는 것들은 더는 동물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오. 하지만 골칫덩이지! 내가 바란 게 하나 있다면 한 생명체가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는지 그 한계치를 알아내는 일이었소." (108쪽) 

 

인간으로 개조하는 동물들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모로 박사를 위대한 조물주라고 생각한다. 박사는 이 섬에서 신처럼 군림한다. 하지만 다시 동물로 퇴화하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살해당한다.   

 

소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에게 '파멸'을 벌한다. 지적 목표를 위해서 윤리를 무시한 과학의 위험성은 인류의 미래를 파괴한다. 신의 영역을 넘어선 인류의 갈망은 인간성 상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모로 박사는 20세기에 현실로 되살아났다. 아니 그보다 더 극악하다. 모로 박사는 동물을 대상으로 했지만, 독일 나치와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은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마취하지 않고 신체를 절단하는가 하면 독극물과 세균을 강제로 주입하는 등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이들은 과학의 발전과 진보라는 핑계로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생체실험을 진행했다. 실험대상의 고통을 외면했다. 모로 박사도 생체실험을 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사소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이 지구상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생물이 많다고 말하면서 생체실험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반인반수들은 단지 야생 본능이 살아나서 박사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잔인한 인간성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 과학만능주의와 인간지상주의로 만들어진 족쇄는 피조물들을 괴롭혔다, 박사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주입하기를 원했던 인간성이 파멸의 씨앗으로 될 줄 몰랐다.  

 

인류는 지금처럼 알게 모르게 찔끔찔끔 진화에 개입하는 식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모로 박사처럼 외딴 섬에 숨어서 실험할 필요도 없어졌다. 나날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합성 생물이 등장할 것이다. 그런 식의 과학 발전은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인간은 한계가 설정되어 있으면 그것을 넘고 싶은 욕구가 끓어 넘치는 존재다. 과학이 지금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미래의 여러 대안을 접하면 왠지 움찔한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던 웰스도 그랬을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실험이 성공한다면 인간이라는 개념 차제가 모호해지지 않을까. 인류 비슷한 피조물이 왠지 음험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 다가올 때, 우리가 환영하는 표정을 지을 것 같지는 않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4-12-31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화 아일랜드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자신의 복제 인간을 만들어두고 필요시 장기 적출하는 내용의 영화도 공포스러웠는데, 인간과 동물의 복합 유전자로 탄생된다면 정말 만만찮은 문제들이 발생할꺼 같아요. 총균쇠라는 책에서 읽다가 들던 생각인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화중에 반신반인의 이야기가 왠지 허구적인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윤리적 개념이 없던 시대 이기도 했거니와, 원래 신화라는게 아주 허구적인 사상에서 출발하지는 않다는것도 책을 통해 알게 된터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cyrus 2014-12-31 11:50   좋아요 1 | URL
생각해보면 신기하죠. 신화에서 나올법한 상상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요. ^^
 

 

 

 

올해는 다사다난한 사건이 많았다.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도서정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독자와 출판인들을 분노하게 한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쌤앤파커스는 가족 같은 조직문화를 연출하려다가 족 같은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회사원을 서로 아낀다는 의미로 프리허그를 한다면서 정작 정신적․육체적으로 상처를 받은 수습사원을 보듬어주지 못했다. 결국,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회사 대표이사는 스스로 물러나고 회사가 매각되었다. 또 혜민 스님은 차기작 선계약을 철회했다.

 

최근에 미야베 미유키 작품 판권을 가로챈 김영사의 자회사 비채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전집처럼 펴냈고 판권 교섭을 진행했던 북스피어는 허탈하게 느껴질 수밖에. (관련기사: 미야베 미유키 판권 두고, 김영사의 두 얼굴? / 한겨레, 2014년 12월 17일)

 

 

 

 

 

 

 

출판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이 사건뿐만이 아니다. 올해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모든 책의 최대 할인 폭을 줄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출판사는 독점적으로 할인가를 적용해서 책을 팔면 안 되는 자율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자율 협약을 어겨 법적 제재를 받은 출판사가 나왔다. 다산북스 계열사인 다산스튜디오가 ‘WHO’ 시리즈를 편법 할인으로 홈쇼핑에 판매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도서정가제 자율협약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관련 계열사를 포함한 다산북스의 모든 책은 이번 달 28일부터 내달 11일까지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에 판매할 수 없다. (관련기사: '개정 도서정가제' 협약 위반 출판사에 첫 제재 / 머니투데이, 2014년 12월 21일)

 

그러나 지금 알라딘에 접속하여 ‘다산북스’에서 나온 책을 검색하면 ‘일시품절’ 상태가 뜨지 않는다. 지금 다산북스 책 아무거나 주문하면 내일 배송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다산북스 재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실 첫 재제가 결정되자마자 다산북스는 지난 23일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다산북스측은 홈쇼핑 판매를 홍보한 모 일간지의 실수 때문에 독점적 판매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자신들의 계열사인 다산스튜디오는 다산북스와 지분 연계가 없는 별도 법인이기 때문에 다산북스 도서 전체를 판매하지 못하는 제재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다산북스의 가처분 소송을 받아들였고 판매중지 기간이 보류되었다. 내달 8일에 심의위원회의 재심으로 판매중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판매중지 조치가 확정되면 15일부터 적용된다. (관련기사: 도서정가제 자율협약 위반 첫 제재, 일단 내달 8일로 연기 / 경향신문, 2014년 12월 28일)

 

심의위원회의 재심의 결정과 판매중지 제재를 피하려는 다산북스의 태도가 유감스럽다. 첫 제재인 만큼 심의위원회는 강하게 나갔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책을 독자에게 팔기 위한 취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할인가를 적용해서 판다는 것은 단순히 협약을 지키지 않은 일이 아닌 출판계의 상도를 어기는 것이다. 이것 또한 출판 도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특히 다산북스는 제재 원인이 제공한 다산스튜디오가 자신들의 계열사임에도 불구하고 별도 법인이라고 해명하는 태도는 몸통을 남기고 꼬리를 자르는 격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이제 한 달 정도 지났다. 나는 지금도 출판시장을 살리는 회심의 카드라고 믿는 정부의 도서정가제에 반신반의한다. 일단 할인율 거품을 제거하는 의도는 좋지만, 이 법의 효과를 거의 호흡기가 떼버린 동네서점 시장이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전히 독자는 할인이 적용되지 않은 책을 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단 도서정가제 이후 출판시장을 지켜본 뒤에 제도의 효과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

 

 

 

 

 

(사진은 북스피어 출판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북스피어 마포 김사장님은 출판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도서정가제는 출판사들이 '제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죽자'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밝혔다. 도서정가제 시행 효과에 의문을 느끼지만, 김사장님의 호소를 이해한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도서정가제 때문에 가격이 부담스러워 책을 마음껏 사지 못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출판사들은 암울한 출판시장에 살아남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판매 수익이 줄어들 것을 각오하고 도서정가제 자율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다산북스는 다 같이 죽는 것을 피하는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제 배를 불리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출판사들 간의 약속을 어겼으면 그에 대한 제재를 받는 것이 온당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해피북 2014-12-30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 시행하구나니 동네 서점에서 구입해도 큰 차이없겠다 싶어 구입하려고 갔는데 책이없더라구요 아무리 도서정가제 시행하고 동네서점 활성화가 슬로건이면 뭐하나 싶은게 구체적 계획을가지고 해야하는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이렇게 씁슬한 소식도 들리구 참 착찹하네요

cyrus 2014-12-30 18:08   좋아요 0 | URL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로 독자나 출판사나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수이 2014-12-30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 같다. 벌어지고 있는 작태가 에휴_

cyrus 2014-12-30 18:10   좋아요 0 | URL
이 사건들 말고도 매스컴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을걸요.

sijifs 2014-12-3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를 해도 책 사는 사람만 사고 안 사는 사람은 안 사더이다

cyrus 2014-12-30 18:1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도서정가제가 독서 인구 향상 장려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2014-12-3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4-12-30 18:15   좋아요 0 | URL
페이스북을 접속하면 출판계 소식을 많이 접할 수 있어요. 물론 출판사 신간 소식도 알라딘 신간 알림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고요.

도서정가제 때문에 내년 도서박람회에서 하던 할인판매 행사도 못할 수 있어요. 만약에 이게 가능하다면 도서박람회 때 책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몰릴거예요.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한번 정도 읽어봤을 작품들을 펴낸 동서미스터리문고를 읽은 지 얼마 안 됐다. 존 딕슨 카가 쓴 소설 위주로 이제 두 권만 읽었을 뿐이다. (『해골성』과 『모자수집광사건』) 그런데 책의 편집에 대해 아쉬움이 느껴진다. 특히 『모자수집광사건』도 『황제의 코담뱃갑』처럼 타 출판사에서 새롭게 번역됐으면 하는 작품이다. 최근에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로 나온『황제의 코담뱃갑』도 이미 2003년에 동서미스터리문고에서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화형 법정』도 엘릭시르에서 새로 번역되어 나온 카의 대표작이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동서미스터리문고의 단점은 역자의 주석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명, 지명 또는 기타 용어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추리물을 읽는데 굳이 이런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복잡한 사건이 하나씩 해결되는 이야기의 진행 과정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작품 전체 혹은 작품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특정 용어를 독자가 그냥 지나쳐버려 놓칠 수 있다.

 

예를 들면, 『모자수집광사건』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해드리 경감이 펠 박사의 조수 랜폴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스태버스 사건’을 언급한다. 경감은 이 ‘스태버스 사건’ 덕분에 기드온 펠 박사의 추리 능력을 알게 됐고, 랜폴은 이 사건 덕분에 지금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역자는 스태버스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소개하는 주석을 달지 않았다.

 

 

 

 

 

 

 

 

 

 

 

 

 

 

 

 

 

 

 

스태버스 사건은 기드온 펠 박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카의 작품 속 사건이다. 국내에서는 『마녀가 사는 집』(해문출판사, 2003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Hag's nook이다. 이 작품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스태버스 가문의 사람들이 목이 부러져 죽은 사건을 펠 박사가 맡게 된다. 스태버스 가문의 조상인 앤터니는 자신의 저택 근처에 마녀를 처형하고 그 옆에 교도소를 지었다. 이때부터 스태버스 가문의 끔찍한 저주가 시작된다. 후손들은 목이 부러진 채 죽고 만 것이다. 랜폴은 기차 여행을 하는 길에서 우연히 도로시 스태버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를 계기로 팰 박사와 함께 스태버스 가문의 저주를 푼다.

 

『모자수집광사건』의 역자가 추리소설에 정통하고 관심이 많았더라면 작품 속 사소한 대화 내용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주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작품 해설에 언급됐어야 한다. 동서미스터리문고의 작품 해설 방식도 아쉽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너무 부족한 분량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마녀가 사는 집』과 『모자수집광사건』은 2003년에 1월에 동시에 국내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마녀가 사는 집』는 아동용 작품으로 소개되는 바람에 오히려 카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죽이는 어설픈 삽화를 넣어버린  ‘악마의 편집(?)’을 저질렀고(이 책에 대한 카스피님의 서평을 참고했음), 『모자수집광사건』은 카의 작품을 좀 더 상세하게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을 간과하고 말았다. 여러모로 두 작품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새로 번역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4-12-30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분야를 읽으셔서 덕분에 다양한 정보를 듣게되네요 ㅎ 좀 무시무시 할거 같지만 서점에서 보면 그냥 지나치진 않을거 같아요^^

cyrus 2014-12-30 18:17   좋아요 0 | URL
편식 독서를 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는 중입니다. 북플로 관계를 맺은 분들 덕분에 저도 몰랐던 정보를 많이 얻습니다. ^^

낭만인생 2014-12-30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묘한 재미를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카스피 2014-12-30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추리소설의 세계에 빠져드셨군요.축하드립니다^^
cyrus님이시라면 아마도 좋은 추리 리뷰를 많이 남기실것 같네요.
동서미스터리문고를 읽으시고 역자의 주석이 너무 없다고 지적하셨는데 그건 어쩔수 없을 것 같습니다.2003년도에 나온 동서미스터리문고를 처음 접하신 분들이라면 잘 알수 없지만 이 문고시리즈는 사실 1970년대 중반에 나왔던 동서추리문고를 그대로 복간한 책들이지요.아는 분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동서추리문고는 일본의 모 출판사에서 나온 추리문고를 그대로 일어번역한 책이라 현시점에서 보면 번역이 어색한 부분이 상당수 있습니다.
70년대의 동서추리문고른 추리 소설을 사랑한 분들이라면 헌책방을 뒤지면서 찾았던 일종의 성배같은 책들인데 비록 영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한것을 한국어로 재번역했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았고 이후 전혀 재간이 안되었기에 어쩔수 없었지요.
이후 2003년에 동서미스터리문고로 재간되면서 많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1970년대의 동서추리문고를 토씨하나 안틀리고 그냥 복간해서 많은 비난을 받게되었지요.
이런 사정이기에 님이 아쉬워하는 부분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마녀가 사는 집은 현재 아동용 책으로만 간행되었는데 이 책 역시 1970년대 중반에 나온 삼중당 추리문고에서 성인용으로 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동서 미스터리문고에서 삼중당 추리문고의 책들을 다수 차용해 간행했기에 이 책도 재간될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다시 재간되지 않았네요.

cyrus 2014-12-30 23:11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반갑습니다.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뒤늦게 재미에 푹 빠졌어요. 아직 입문자 수준이라서 카스피님이 예전에 블로그에 쓰신 추리물에 관한 글과 서평을 읽고 있습니다. 물만두님의 글도 읽고요. 저 같은 입문자가 추리소설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글입니다. 이런 가치가 있는 수많은 글이 잊혀지는 게 아쉽게 느껴집니다.

동서미스터리문고의 역사에 무척 궁금했는데 마침 카스피님의 댓글 덕분에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내년에도 예전처럼 추리소설에 관한 페이퍼나 서평 업데이트를 많이 해주세요.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아트북스, 2014년)을 읽어보면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1805~1807년)의 제작 배경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그림 속 인물의 손짓 하나에도 흥미로운 역사가 숨어 있다. 나폴레옹은 조제핀 황후에게 왕관을 씌우기 위해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자기 손을 왕관을 쓰는 파격적인 행동은 황제의 권력이 교황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전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황권의 독립성을 거듭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비드의 그림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나폴레옹도 이 그림에 무척 흡족했다고 한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그림으로 아부를 드러냈다. 그가 이렇게 대관식을 크게 그린 것은 나폴레옹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나폴레옹이 크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고 하여 다비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했다.

 

이 그림에는 70명 정도 되는 얼굴이 등장한다. 다비드는 웅장한 대관식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의 가족과 그를 따르는 고위직 관료들의 얼굴을 그려냈다. 이때 당시 나폴레옹은 자신과 다툰 형을 대관식에 초대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형제의 갈등 때문에 이 영광스런 장면을 가까이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형과 어머니를 대관식에 참석한 것처럼 그려 넣었다. 다비드나 나폴레옹 입장에서는 황제의 가족이 빠진 대관식 장면이 황제의 권위를 돋보이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 그림에서 얼굴 전체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인물들은 누구인지 밝혀졌지만, 아직 이 사람만은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왕관을 든 나폴레옹의 뒤를 주목하시길. 황제와 앉아 있는 교황 비오 7세 사이에 대머리 사나이가 서 있다. 교황을 호위하는 이름 모를 성직자로 추정한다. 그런데 그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직자의 얼굴 모습이 ‘누구’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래서 그 성직자를 ‘카이사르의 유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것으로 봐서는 실제로 대머리였다는 카이사르와 닮긴 했다. 그렇다면 이 성직자는 카이사르가 맞는다면, 다비드는 왜 아주 옛날 사람의 유령을 대관식 장면에 그려 넣었을까? 유럽에서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고 절대 권력을 차지했던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았다. 영미권에서 카이사르를 부르는 ‘시저’(Caesar)는 아예 황제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었고, 독일에서는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로 부르게 되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황제의 정통성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카이사르의 영혼을 대관식 그림에 소환했다. 이 거대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면 이름 모를 성직자 혹은 카이사르의 유령을 발견할 수 없다.

 

 

 

 

 

 

 

 

 

 

 

 

 

 

 

 

 

카이사르의 유령에 대한 설명은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뿐만 아니라 역시 이주헌이 쓴 『역사의 미술관』(문학동네, 2011년)에도 나온다. 『역사의 미술관』에서도 다비드의 황제 대관식 그림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책을 비교하면 카이사르의 유령을 가리키는 번호 표시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미술관』 90쪽에 나오는 작은 크기의 도해,

15번이 카이사르의 유령 (1번은 나폴레옹, 13번은 교황) 

 

 

 

 

 

『역사의 미술관』 91쪽,

왕관을 들고 있는 나폴레옹과 앉아 있는 교황 사이에 있는 인물이 카이사르의 유령 

 

 

 

먼저 『역사의 미술관』에 소개된 그림의 도해에서 카이사르의 유령은 15번이다. 번호가 적힌 도해 크기가 너무 작아서 다음 장에 확대한 도해가 나온다. 그러면 그림 15번의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80쪽 도해,

1번은 나폴레옹, 3번은 교황

그리고 교황 바로 위에 있는 18번의 인물을 카이사르의 유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다음 도해는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에 실린 것이다. 『역사의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의 얼굴에 번호를 기입했다.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은 카이사르의 유령을 18번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유령을 가리키는 번호 위치가 앞에 소개한 『역사의 미술관』 도해와 다르다. 18번은 3번(교황 비오 7세) 바로 위에 있다. 

 

카이사르의 유령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나폴레옹과 교황 중간에 서 있다. 정면으로 향한 얼굴만 봐도 딱 카이사르와 닮았다.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의 편집 과정 중에 번호 위치를 실수로 잘못 써넣은 것으로 생각이 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4-12-2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시네요 ㅎ 잘못된 부분도 찾아내시구ㅋ 덕분에 재밌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저는 그림아는만큼보인다에서 보긴했는데 이런 재밌는 설명 못들었는데 이책두 읽고 싶네요

cyrus 2014-12-28 23:02   좋아요 0 | URL
이주헌씨의 글쓰기는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이라서 입문자가 읽기에 아주 좋아요. 그림 에세이도 잘 쓰시고요. ^^

12 2015-01-02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단지 사제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스타일을 따라했을수도 있긴 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치가, 장군, 작가, 카사노바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로마의 최고 제사장으로 로마의 그 시대 종교계에서 교황 비슷한 직위를 가졌습니다.
그런만큼 과거부터 현대까지 많은 정치가나 독재자, 군인, 바람둥이들이 카이사르를 선망 하면서 빨아댔듯이 종교인들도 빨아댔을만 하죠.
게다가 나폴레옹이 종교인들의 정치를 아에 몰락시키기 전만 해도 고위 직위 종교인들은 정치가들보다 더 위에 속하는 정치가들이었으니까 그 당시 분위기를 보면 여러 의미로 빨아댈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알고보면 유럽 세계의 정통 황제 족보를 처음 만들었다고 할수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임페러(황제)의 어원인 임페라토르라는 명칭도 카이사르라는 가문 이름과 함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서 받은것입니다.

게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당시 종교인들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신탁이나 민중,카이사르파들의 지지 때문에 왕으로 추대할려는 여론이 있었지만 계속 부정하고 시민들에게 자신은 왕이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던만큼 왕이나 황제였던 인물은 아니지만,
사실상 현대까지 황제라고 여겨지고 있는만큼 유럽 황제 가문의 첫번째 황제로서 여겨지고 있죠.

그러므로 나폴레옹 시대의 유럽 왕조가 오로지 카이사르 가문의 핏줄만을 황제에 올라갈수 있다고 여겼던걸 생각하면 그림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넣음으로써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걸 ˝첫번째˝ 황제 가문 사람인 카이사르도 인정한다는 뜻으로 그림을 그렸을수도 있습니다.

까고 보면 그 당시 유럽 황제의 가문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친척이었던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마저 자신의 아이들이 아이를 못낳거나 죽음으로써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문의 핏줄은 몇천년전에 완전히 끊긴 상태로 양아들격인 사람들이 황제의 가문을 이어간만큼 나폴레옹도 핏줄과 상관없이 카이사르에게 인정만 되면 황제가 될수 있었으니까 말이 된달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교황이 황제직위를 내리는 전통이나 권한도 알고보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종교계에서 최고 직위를 가지고 사실상 황제의 족보를 만들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주었다고 여겨지고 신성시 되었던 모습들이 교황의 직위와 비슷한데요.... 단순한 우연일까요?
종교인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줘서 황제의 직위를 받을 사람을 정하는 교황까지 만들수 있게 한건 콘스탄틴 황제였다지만 흠....

저 그림에서 정말 여러의미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자취가 느껴지는군요...

cyrus 2015-01-02 22:1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이 견해도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카이사르의 유령`설은 전문가들의 추측에서 기인한 해석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정체불명의 사제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