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 도서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신해철의 노래 한 곡 편안히 듣고 가셔도 좋습니다.

 

 

 

 

 

 Scene #1  우리는 어떤 경제학을 입고 먹고 마시는가

 

여기는 서울 XX동의 경제학 바(Bar) ‘Economic zone’. 경제학의 ‘집’이 아니라 ‘바’라니 어찌 발길이 멈춰지지 않겠는가. 지금도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경제학 카페’보다 더 좋아 보인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본다. Economic zone은 편안하게 음악과 술을 즐기며 취향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경제학파 칵테일이 인기 주류 메뉴이다. 경제학을 공부하기 싫고, 경제에 관해서 잘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서 Economic zone의 장하준 매니저가 칵테일을 추천한다. 어려운 경제학 앞에서 입맛만 쩍쩍 다시는 손님도 이 경제학 바 매니저가 권하는 칵테일을 부담 없이 홀짝일 수 있다. 칵테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술과 음료는 다음과 같다.

 

A : 오스트리아 학파, B: 행동주의 학파, C: 고전주의 학파, D: 개발주의 학파, I: 제도학파, K: 케인스학파, M: 마르크스 학파, N: 신고전주의 학파, S: 슘페터 학파

 

경제학파 칵테일 한두 잔만으로도 밤새 혼자 또는 연인이나 친구, 동료들과 속내를 드러내 놓고 경제에 관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목에 넥타이가 걸려 있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Economic zone을 많이 찾는다. 대화에 열 올리는 이도 있고, 옆으로 앞으로 계속 눈빛을 보내며 탐색전을 하는 이도 있다. 사람 구경하며 그 시선을 즐기는 이도 있다.

 

Economic zone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는 칵테일은 ‘CAN’과 ‘NDK’다. CAN 칵테일은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이 좋아한다. Economic zone에서 일하는 수석 바텐더 애덤 스미스는 이곳에서 경력이 가장 많고, 잔뼈가 굵다. 애덤 스미스의 장기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칵테일을 만드는 것이다. 스미스가 아무 손도 안 대고 가만히 서 있어도 칵테일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능력 좋은 동료 바텐더나 손님이 자신의 칵테일 제조에 끼어들거나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NDK 칵테일은 케인스 바텐더가 만든 대표적인 음료이다. 1933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NDK 칵테일 한 모금 마시고 난 후부터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을 폈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CAN 칵테일만큼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스미스와 케인스, 이 두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은 판매량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다. 1933년을 기점으로 NDK 칵테일은 오랫동안 1위로 군림하던 CAN 칵테일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CAN 칵테일이 다시 판매량 1위로 뛰어올랐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즐겨 마셨고, 레이건 대통령은 CAN 칵테일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애덤 스미스 바텐더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어 스미스 바텐더 열렬한 팬임을 자처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칵테일 말고도 딱 한 종류만 즐겨 마시는 손님도 있다. 열심히 일을 하고나서 꽤 늦은 밤에 Economic zone을 찾는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칵테일만 마신다. 덥수룩한 수염을 자랑하는 마르크스가 만들었고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가끔 그의 친구 엥겔스가 칵테일을 만드는 마르크스를 옆에서 도와주기도 한다. 처음에 나왔을 당시만 해도 마르크스 칵테일은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했다. 특히 부르주아만 찾는 고급 칵테일 시장에 차별을 두어 가난한 노동자들도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을 선보인 점에서 큰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때 애덤 스미스의 칵테일 판매량과 맞먹을 정도로 많이 팔렸던 시절도 있었다. 소련 정권이 독한 마르크스 칵테일을 보드카처럼 마셔댔다. 그런데 1991년에 마르크스 칵테일의 주 고객이었던 소련이 망하면서 칵테일의 인기가 한순간에 추락했다. 칵테일을 지나치게 과음한 탓에 국가의 건강이 피폐해지고 말았다.

 

현재 중국은 마르크스 칵테일과 CAN 칵테일을 3:1 비율로 조합해서 마시고 있으며 쿠바는 여전히 마르크스 칵테일을 찾고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째가 짝퉁 마르크스 칵테일을 불법으로 제조하고 있다. 제조법이 순 엉터리인 데다가 맛도 엉망이다. 게다가 이 칵테일은 이름부터가 상당히 위협적이라서 김 씨 일가만 좋아했을 뿐 누구도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다. ‘Nuclear bomb’,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폭탄주다.

 

지금까지 Economic zone에서 마실 수 있는 경제학파 칵테일들과 이를 즐겨 마시는 손님들을 소개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에서 비롯된 사회의 질병을 치유하려면 내 몸에 맞는 경제학파 칵테일을 마시면 좋다. 경기 불황 스트레스로 인해 잃어버린 입맛도 찾을 수 있고, 경기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 당신은 Economic zone에서 어떤 경제학파 칵테일을 입고, 먹고, 마시는가.

 

 


 Scene #2  토론하는 사람들,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Economic zone에서 맛 좋은 칵테일을 고를 때 유의할 점이 있다. 장하준 매니저가 경제학파 칵테일을 처음 맛보는 손님들을 위해 알려주는 팁이니, 종이에 받아 적으시길. 일단 바텐더가 권하는 칵테일을 무조건 맹신해선 안 되며 너무 많이 마시지 말 것.

 

Economic zone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CAN 칵테일만 마시는 자유시장주의자(우파) 손님과 NDK 칵테일과 마르크스 칵테일을 마시는 시장개입주의자(좌파) 손님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다. 어떤 경제학파 칵테일이 가장 좋은지 토론을 해보지만 목소리가 점점 높여질수록 밥그릇 싸움으로 변한다. 싸움판에 정치인들도 팔 걷어붙이면서 나서고,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 바텐더가 손님 싸움에 부채질하고 있다.  

 

두 손님은 성격이 확연히 다를뿐더러 경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자유시장주의자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고수한다. 시장을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작동하고, 자유로운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시장개입주의자들의 반박에 맞서기 위해 내세우는 것이 낙수효과다. 국가가 규제하지 않는 시장은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고, 더 많은 투자와 소비가 이루어져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고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현실성 떨어지는 환상이라는 점, 소득불평등이 고착될수록 경제 성장이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을 피하지 못한다.

 

NDK 칵테일을 마시는 손님들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투자를 과감히 하는 편다. 정부지출도 늘려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대량실업을 없애고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니까 애덤 스미스 바텐더가 케인스 바텐더를 좋아하는 손님들을 싫어한다.

 

마르크스 칵테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본을 재료로 하는 경제학 칵테일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국가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대체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먼저 망한 쪽은 마르크스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장하준 매니저는 경제학을 하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그러니까 경제학파 칵테일을 하나만 마신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다. 칵테일마다 장단점이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특정 경제학파 칵테일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마시는 경제학파 칵테일을 한 번도 맛보지 않고, 자신이 마시는 경제학파 칵테일이 절대적으로 맛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칵테일을 많이 마셔 취한 사람처럼 말이다. 무조건 자기 말이 옳다고 우긴다.

 

 

 

 Scene #3  내가 아는 경제학은 누굴 위한 걸까

 

우리가 경제학파 칵테일에 취하지 않으려면 칵테일의 맛을 음미만 해서는 안 된다. 칵테일을 정말 좋아한다면 제대로 마실 줄 알고, 칵테일을 만드는 법을 알아두면 좋다. 경제학파 칵테일 바텐더는 당신의 칵테일 지식이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생각을 가진 바텐더라면 싸구려 제조법으로 만든 칵테일을 손님에게 최상급 칵테일이라고 속이면서 권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요즘은 한 가지 칵테일만 마신다고해서 칵테일 마니아가 될 수 없다. 서로 다른 맛이 나는 칵테일끼리 섞거나 주스나 기타 비알코올성 음료를 혼합하는 신종 칵테일 레시피가 나오고 있다. 이렇듯 경제학 사상의 이종 교배를 시도하면 복잡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양하고 균형 잡힌 해법이 나올 수 있다.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과학적 분석으로 제시하는 경제학자의 주장도 검증해야 한다. 경제학을 과학과 비슷한 학문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경제학은 경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답 하나만 도출하는 학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거나 예측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므로 특정 경제학적 시각만 믿고 추종하는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처음부터 쫄지 마시라. 다양한 경제학파를 칵테일로 비유해서 세련되면서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경제학자가 어디 있는가. 장하준 매니저의 경제학파 칵테일 강의는 균형 있는 경제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테이스팅 클래스다. 장하준 매니저는 Economic zone에서 일하는 경제학 바텐더를 귀찮게 하거나 맞설 수 있는 손님을 좋아한다. 이런 손님은 최고매니저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경제학자들의 생각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경제 문제를 경제학자에게만 맡겨 두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경제학을 배울 자세가 있다는 마음의 증거로 보면 된다. 경제학자가 내놓은 해법이 당신을 편안하게 먹고 살리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 지적으로 비관주의가 되어 충분한 검증을 통해 나를 위한 경제학을 찾으려는 낙관적 의지가 필요하다. 내가 아는 경제학이 누굴 위한 것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에게 사용당하지 않으려면. 경제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내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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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27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cyrus님처럼 경제학에 관해 쫄지않고 멋진 비유를 소화하며 이야기해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ㅋ 장하준 교수님이 귀찮게 하는걸 좋아하신다니 도전해보고 싶네요^~^

cyrus 2015-01-28 09:31   좋아요 0 | URL
칵테일 비유는 이 책 4장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경제학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요. 장하준 교수의 겸손한 자세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만병통치약 2015-01-2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준은 물렁물렁 재미있는데 조금 아카데믹하고 장하성이 전투적이라서 장하성 책이 더 매력적이더라고요. 우리 경제는90년대 다같이 폭탄주 먹고 뻗은 상태일까요? 그 후 재벌은 보약과 약주만 서민은 깡소주로...

cyrus 2015-01-28 09:35   좋아요 0 | URL
요즘 일부 경제학 교수나 학자들을 보면 술에 취한 사람 같아요. 취객의 악습관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해요. 경제학자들도 그래요. 특정 이론에만 취해 버려서 상대 의견을 존중하는 것을 몰라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1-2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유프브 동영상 깔리나요 ?

cyrus 2015-01-28 09:35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

수이 2015-01-28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위한 경제학_ 이 말이 제일 솔깃해지는걸(요).

cyrus 2015-01-28 09:36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경제학 입문서로 딱입니다.

보물선 2015-01-2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읽어야하는데!

cyrus 2015-01-28 09:36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보세요. ^^
 

 

 

 

 

 

 

 

 

북플에서 올해 독서계획을 알리는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벌써 이벤트 종료를 앞두고 3일 남았습니다. 맨 처음에 이웃님들이 독서계획을 공개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북플에서 시작된 유행인 줄 알았습니다. 이웃님들이 독서를 좋아하고, 어떤 책에 관심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벤트에 선정되면 독서지원금을 준다던데 이벤트에 참여한 이웃님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갑자기 높임말로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책 좋아하는 이웃님들이 좋아할 만한 특별한 행사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북플 독서계획 이벤트가 약간 비슷해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다독다독멘토링 새해 읽기 목표 도전에 참가할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독다독멘토링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대학생 멘토가 중고생 멘티를 대상으로 신문이나 책을 활용해 진로 탐색, 인성 함양 등을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입니다. 작년부터 실시했는데 5개월 동안 독서일기 쓰기, 신문 읽기 및 인터넷 사용시간 모니터링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습니다. 올해도 2기 다독다독 멘토링 참가자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그 전에 다독다록 멘토링에 지원하고 싶은 대학생이라면 새해 읽기 목표 도전 행사에 참여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새해 읽기 목표 도전 행사 참여 방법은 간단합니다. 2주에 책 한 권씩 읽으면 됩니다. 그러면 1년에 24권을 읽은 셈입니다. 1년에 책 24권은 얼핏 마음만 먹으면 달성할 수 있는 횟수입니다. 그래서 권수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올해 안에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 최소 50권에서 최대 100권 정도쯤 잡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천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독서를 방해하는 외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고, 실상 살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책 읽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정말 독하게 읽는다면 100권 읽기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책 좋아하는 저는 올해 안에 책 몇 권 읽어야겠다는 수량적 목표를 아예 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읽고 나서 책 내용에 관해서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면 시간 낭비에 가깝습니다. 수량적 목표를 확실하게 달성하려면 단순히 읽는다는 추상적인 행위를 문자나 이미지로 표현하면 좋습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간단한 메모를 남기거나 서평을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책 100권을 읽고 나서 서평으로 작성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이분들의 독서 열정에 존경스럽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일 년 안에 100권만 읽기도 쉽지 않은데 여기에 서평까지 작성한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100권 읽고 나서 서평도 써야 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특히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았다거나 책과 오랫동안 담을 쌓아서 도통 어떤 책으로 시작하는지 모르는 분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위해서 다독다독멘토링 새해 읽기 목표 도전에 참여해볼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알라딘 서재와 북플에 독서와 서평 쓰기(인증샷)를 꾸준하게 병행하시는 이웃님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독다독멘토링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간략한 서평이나 인증샷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겁니다. 독서목표를 달성하면 인증서와 연말에 독서 이력을 소개하는 발표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 행사에 청소년과 대학생 들이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습니다.

 

 

 

※ 다독다독멘토링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dadocmentor
※ 다독다독멘토링 공식 홈페이지 : http://dadocmento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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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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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저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먼저 든다. 스마트폰에 정착된 조그만 카메라 렌즈를 음식 앞에 내미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매혹적인 음식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그들은 맨눈 대신에 카메라의 액정화면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찍는다기보다는 저장한다고 해야 적합하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 비해 손쉽게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만큼 각자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속에는 수많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숙고해서 셔터를 꾹 누르던 옛 시절과 비교하면 마음에 드는 사진이 오히려 적은 것도 아마 비슷하리라. 특별한 날에만 기념으로 사진을 찍던 그때와 달리 요즘은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고만고만한 사진들을 주로 찍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용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우리의 일상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발달이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제품과 인간미까지 변화시키며 아날로그의 상징들을 골동품으로 몰아낸다. 과거 CD의 등장으로 LP와 카세트테이프의 입지가 좁아진 것처럼 이 역시 최신 기기의 등장과 온라인 음악파일 다운로드 등으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추억을 되새기는 앨범의 가치도 사라진다. 개인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두꺼운 앨범의 한 페이지를 손으로 넘기며 추억을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똑딱’거리는 마우스 클릭이 사람들의 손을 대신하게 됐다.

 

당시에는 정말 참신했던 제품들이 어느새 잊혀 사라져 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는 혁신적이었던 제품이 일용품의 단계를 거쳐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는 과정은 일련의 제품 수명주기로 나타낼 수 있다. 즉 제품도 인간처럼 수명이 있는 것이다. 제조회사는 새로운 제품을 팔기 위해 기존에 만들었던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조절한다. 그러니까 소비자가 기존 제품을 오래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신상 제품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세상은 모든 것이 속도 경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예전엔 서서히 낡아가는 것들이 요새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낡아져 버린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아날로그 시대라면 한창 일할 나이인 사람도 요즘은 퇴장을 요구받는다. 낡은 사람들의 경험은 재활용을 거부당한 채 곧장 쓰레기 처리장으로 직행하고 만다.

 

의자 디자이너이며 디자인학과 교수 김상규는 이미 쓰레기 처리장으로 향했거나 언젠가는 쓰레기 처리장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르는 사물의 일대기를 들려준다. 저자가 소개한 사물은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다가 늘 곁에 있어 온 보잘것없는 것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겠다.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백열전구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다. 백열전구는 호롱불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밝았다. 무엇보다 집안에 그을음이 끼지 않는다는 게 획기적 변화였다. 하지만 전력을 너무 많이 먹는 데다 수명이 짧은 단점으로 인해 작년부터 전구 자리에 전력 효율이 뛰어난 LED가 새로 들어왔다. LED의 화려한 불빛이 커질수록 둥그런 유리알이 뿜어내는 전구의 은은한 불빛의 잔상마저도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지 마음껏 보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서툰 타자 솜씨로 편지를 작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타자기 버튼을 손으로 치면 둔탁한 소리가 난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화음을 내는 피아니스트가 된 것 마냥 손가락 끝에서 섬세하면서도 짜릿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은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평한 터치스크린 화면만 있을 뿐이다. 사용하려면 화면에 손끝을 살짝 건드리면 된다. 디자인의 변화가 익숙했던 생활 방식을 달라지거나 아예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디자인은 모양을 만드는 기술 이전에 생각을 만드는 기술이다. 우리는 디자인이 만든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을 디자인 식으로 생각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삶에서의 발견과 성찰은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다. 디자인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는 포장술이 아니다. 디자인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면 삶을 멋지게 디자인할 수 있다.

 

어머니는 인생을 디자인할 줄 알았던 똑똑한 디자이너다. 어렸을 때,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머니는 교과서에 비닐이나 지나간 달력 한 장을 씌웠다. 달력 숫자가 찍힌 종이가 씌워진 교과서가 무척 촌스럽게 보여서 새 교과서를 받으면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딴 곳에 몰래 숨기고 싶은 생각도 한 적 있다. 교과서를 험하게 다루면 훼손되기 쉽다. 특히 몇 달 지나면 표지에 지저분한 낙서가 덕지덕지 남아있고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 찢어지기 일보 직전에 이르기도 한다. 교과서를 오래 쓸 수 있도록 어머니는 교과서에 커버를 씌웠다. 소박하면서도 일상 친화적 디자인은 투박해 보여도 어머니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情)을 유지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가 있다. 지금의 어머니들은 교과서에 커버를 씌우지 않는다. 자식이 학교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한다. 당연히 이런 관계라면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려면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그 사소한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사소한 것에서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진정한 생활의 발견을 경험할 수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울수록 그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더욱 감동적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적어도 나도 모르게 바쁘게 흘러가버리는 그런 하루는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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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1-2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능이 디자인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디자인이 좋으면 편리하죠. 생각해 보니 요즘은 책 포장을 안하네요? 교과서도요. 책이 좋아져서 그런가요?흔해져서 일까요?

cyrus 2015-01-26 10:50   좋아요 0 | URL
책이 좋아져서 커버를 덮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궐 2015-01-26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주 읽거나 인용할 게 많을 거 같은 책은 비닐커버로 직접 쌉니다. 하드커버 책도 많이 보면 너덜거리거든요.^^

cyrus 2015-01-26 10:55   좋아요 0 | URL
저는 구입한 책들 중에 하드커버 책이 많지 않고, 여러 번 읽지 않아서 손상된 것이 없어요. ㅎㅎㅎ 돌궐님의 댓글을 보면서 위편삼절이 생각납니다.

남희돌이 2015-01-26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커버 하면 동네서점이 생각나요. 요즘은 그냥 바코드로 틱 찍고나서 책을 그냥 주지만 저 어릴 적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얇은 포장지로 예쁘게 책을 싸주셨거든요. 하도 많은 책을 싸서 능숙한 솜씨로 책을 놓고 칼집을 위 아래로 낸 다음 착착 싸주시던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용돈만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답니다. 나중에 나도 서점 주인이 되어서 저렇게 예쁘게 책을 싸주어야지..했던 기억이..
사물의 이력, 타자기나 백열전구같이 아날로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에 대한 내용이 가득할 것 같네요.

cyrus 2015-01-26 20:06   좋아요 0 | URL
낭만적인 경험인데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교과서 비닐커버 혼자 만들다가 실패했던 적이 많았어요. ㅎㅎㅎ

sslmo 2015-01-2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손으로 꼬물거리는 걸 좋아해서, 헝겊으로 북커버를 가끔 만들기는 하는데요,
만들고 나면, 손때 묻을까봐, 고이 모셔두기만 하죠, ㅋ~.
정작 읽는 책은 잡지 책 `부욱~`뜯어서 대충 싸여.

글구 맛있는 요리가 나오면 스마트 폰을 들어요.
근데 맛있는 요리가 나올 때보다,
제가 요리를 했을 때 폰을 들어 인증샷을 찍죠, ㅋ~.

cyrus 2015-01-27 21: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은 실제로 보면 무척 섬세하고 꾸미기를 잘 하실 것 같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3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본문과 댓글 읽다가.... 옛날에는 정말 책을 귀하게 대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뿐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건 추억팔이`가 아니라 그 태도가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도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모든 회사들이 수명을 짧게 만든다고 하죠...


cyrus 2015-05-13 23:12   좋아요 0 | URL
회사가 제품의 수명 주기를 짧게 만든 이유에는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상품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정말 소중하게 다뤘는데 시간이 지나서 오래 사용하면 질리게 됩니다.
 

 

 

 

 

 

 

 

 

 

 

 

 

 

 

 

 

 

 

 

사드의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외설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가 종교, 쾌락, 도덕관 등 종교적․철학적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죽어가는 자는 종교적 신념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신체적 쾌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종교적이고 쾌락을 삶의 목표로 삼는 모습에서 리베르티나주(Libertinage) 사상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죽어가는 자는 사드가 선호하는 ‘방탕한 자유인’ 리베르탱(Libertin)이다.

 

이 대화에서 승기를 잡는 쪽은 죽어가는 자다. 사제가 리베르티나주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 죽어가는 자는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죽기 일보 직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제의 질문에 바로바로 응답하는 걸로 봐서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짧은 대화는 죽어가는 자가 드디어 죽음이 임박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끝나게 된다. 점점 생명의 기운이 빠지면 말할 힘도 없을 텐데 죽어가는 자는 쾌락의 즐거움을 예찬한다. ‘살아남은 자’인 사제에게 종교를 내려놓고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죽어가는 자는 쾌락주의자답게 죽는 순간도 평범하지 않다.

 

 

이제 나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네, 햇살보다 아름다운 여자 여섯 명이 지금 옆방에 있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내가 대기시켜 놓았지. 자네도 동참하게나. 나처럼 여자들이나 품고서, 그 모든 미신의 허망한 궤변을 잊도록 해보게. 위선이 낳은 어리석은 착각들일랑 깡그리 잊어버리라구.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중에서, 36쪽)

 

 

죽어가는 자가 천상의 세계로 향하는 장면은 숭고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죽어가는 자의 영혼 주변에 거룩한 신과 천사들이 아닌 여자 여섯 명이 다가온다. 죽어서도 천상의 세계에서 여자, 그것도 여섯 명이나 품을 수 있다니. 역시 사드다운 발칙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죽음을 초월한 쾌락 예찬은 누군가에게는 숭고한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초혼」이라는 그림은 1901년에 그려진, 피카소의 초창기 작품이다. 이때 피카소는 주로 어두운 청록색의 색조를 띤 그림들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작품 활동 기간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 시기를 ‘청색 시대’라고 부른다. 푸른색이 지배한 피카소의 그림들을 보면 무척 우울하고 냉랭한 느낌을 받는다. 청색 시대는 피카소의 무명 시절이었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힘든 시기였다. 피카소가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친구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피카소는 음주와 음란한 공연을 즐기는 파리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삶에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친구 카를로스 카사헤마스는 파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피카소에게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가끔 피카소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길지 않았다. 1901년 카사헤마스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일로 인해 자살한다. 친구의 죽음은 피카소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피카소의 캔버스에 푸른색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다. "나는 카사헤마스의 죽음을 알고부터 푸른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고 피카소 본인이 직접 말할 정도다. 죽은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 바로  「초혼」이다.

 

 

 

 

 

피카소   「초혼」(카사헤마스의 장례)  1901년

 

 

「초혼」의 다른 제목은 ‘카사헤마스의 장례’이다. 카사헤마스로 보이는 사람이 하얀 천이 덮인 채 누워있다. 죽은 자 주변에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여기까지가 지상의 세계이다. 이제 바로 위에 있는 천상의 세계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런데 천사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스타킹만 걸친 벌거벗은 여자 여섯 명이 있다. 그녀들은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서 야릇한 자세를 취한다. 그렇다. 그녀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은 천상의 세계로 향하는 카사헤마스의 영혼이다. 거의 벌거벗은 여섯 명의 여자들은 창녀로 볼 수 있다.

 

피카소는 죽은 친구의 장례식을 성스러운 느낌의 종교화처럼 그리지 않았다. 엄숙한 장례식에 창녀가 등장하는 성(性)스러운 그림을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죽은 친구를 모욕하기 위해서 그린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피카소는 불행한 죽음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진심으로 슬퍼했고, 무척 안타깝게 여겼다. 카사헤마스는 사랑에 실패한 채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영혼이 된 카사헤마스는 지상에서의 육체적 쾌락을 누릴 수 없다. 그래서 피카소는 친구가 천상에서도 마음껏 쾌락을 누릴 수 있도록 천사 대신에 창녀를 그려 넣은 것이다. 친구를 생각하는 화가의 배려인 셈이다.

 

 

 

            

 

 

 

피카소는 기존의 종교화 양식을 답습하면서도 죽은 친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자신만의 표현을 시도했다. 그렇다고 이 그림만으로 피카소가 무신론자이거나 리베르탱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피카소는 쾌락을 원하는 파리 사람들의 삶을 알고 있었을 터. 친구를 위해서 세속적인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사드의 글에서 숨을 거두는 죽어가는 자와 피카소의 그림에 나오는 카사헤마스를 하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신이 아닌 여섯 명의 여성이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결말에서 사제는 죽어가는 자의 말씀을 믿고 여자를 품에 안은 삶을 살게 된다. 아시다시피 피카소는 여성 편력으로 평생 7명의 연인을 뒀고, 두 차례 결혼했다. 피카소는 남성 누드는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 대신 여성 누드가 많다. 피카소의 여성 누드는 내밀한 쾌락을 찬양하는 예술적 표현이었다. 결국, 쾌락이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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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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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 아빠가 통닭을 사가지고 오셨어요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 아버지들은 쉴 곳이 없다. 아버지들은 집과 가족을 떠나 먼 곳에 있다. 아버지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당신의 젊음과 맞바꾸는 희생과 고통을 감내했다. 이에 비해 노래 속 아버지는 집에 있었다. 일하느라 집에 쉴 여유가 적은 아버지는 가족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어젯밤엔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배따라기  ‘아빠와 크레파스’ 중에서)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아버지는 현실감으로 와 닿지 않는다. 원래 가사는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술 취하신 모습으로’라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약주를 하고 집에 들어오신다. 흥미로운 점은 다정한 아버지의 한 손에는 ‘선물’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목 빼고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아버지가 사오는 선물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비록 선뜻 선물을 사주기 힘든 형편임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돈 벌어 선물을 사왔다.

 

그렇다고 노래 속 아버지처럼 현실의 모든 아버지가 크레파스를 사온 건 아니다. 쌩쌩 부는 겨울바람을 뚫고 퇴근한 아버지 품에 크레파스 대신에 누런색 종이봉투가 나오기도 했다. 기름에 젖은 종이봉투를 펼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 한 마리가 있었다. 통닭 먹는 날은 정말로 행복했다. 칼바람에 식을세라 퇴근길 내내 품에 안았고, 버스 안에서 진동하는 통닭 냄새 때문에 퇴근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야 했던 고충이 어땠을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앞에 놓인 통닭이 얼른 먹고 싶었다.

 

 

 

 Scene #2  촌스러운 통닭, 화려한 치킨으로 변신하다  

 

 

          

 

 

 

1980년대 전기구이통닭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녀노소 좋아했던 원조 ‘치느님’이었다. 통닭은 온 가족을 한 자리에 둘러앉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기름기를 쏙 뺀 바삭바삭한 껍질과 부드럽게 익은 속살의 조화는 세상에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맛있었다. 요즘처럼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뭔가를 먹기 위해 온 가족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드물었다. 지금은 흔한 배달 서비스도 정착되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족의 맛을 책임지는 배달원이 되었다. 퇴근길에 명동영양센터나 시장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들고 귀가했다. 그때는 이런 낭만이 있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 곳곳에 통닭의 흔적이 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자리에 통닭이 있었고, 생일잔치의 터줏대감인 케이크와 쌍벽을 이루었다. 항상 즐거운 자리에 우리는 늘 통닭과 함께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식탁 위의 닭고기도 조금씩 변했다. 한때 ‘통닭’이라고 하면 ‘치킨’의 이음동의어였다. 요즘은 통닭 대신에 치킨이라는 외국말이 더 친숙해졌다. 프라이드치킨,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양념치킨, 눈물 쏙 나게 매운맛이 나는 불닭까지. 기름옷을 입은 촌스러운 통닭이 두꺼운 튀김옷과 우리 입맛을 자극하는 양념 옷을 입으면서 팔색조 매력을 뽐낸다. 배달을 시켜서 먹을 수 있고,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가 있는 날에 집에 혼자 중계를 보더라도 치킨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1인 1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킨은 특별한 외식이 아닌 특별한 주식이 되었다. 치킨은 소위 전례 없는 ‘절대 음식’의 독보적인 지위를 갖게 됐고 ‘치느님’이라는 영광스러운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치킨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사랑하고, 많이 먹는 야식이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을 치킨의 매력에 푹 빠지는 데 성공했다. 젊은 소비자층의 외식소비성향이 늘어나면서 치킨 사업은 젊은 세대들을 타깃으로 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 치킨 전문점은 입맛으로만 승부해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를 치킨 광고 모델로 출연시키고, 각종 사은품을 제공한다. 치느님을 믿는 젊은 소비자들은 치킨을 맛으로 먹기보다는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 여러 사람과 함께 모여 치맥을 즐긴다. 이를 반영하듯이 대구에 ‘치맥페스티벌’이 개최되기도 했다. 고작 몇 조각 치킨과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은 맥주를 받기 위해 행사장에 일렬로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행사에 그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치느님의 역사와 함께했던 그들은 행사장에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바로 아버지 세대였다.  
 

 


  Scene #3  아버지의 땀은 기름이 되어 닭을 튀긴다   

 

어린 시절 가족을 위해 통닭을 사들고 온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은퇴를 앞둔 중년이 된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 2막을 위해 창업에 뛰어든다.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아버지의 애환을 달래줄 휴식처로 치킨 전문점이 각광받기 시작하자 중년 예비 창업자들은 치킨 전문점을 차리고 싶어 한다. 국내 굴지의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는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BBQ 치킨대학’을 설립했다. 치킨을 직접 만들고, 치킨 가게를 차리는 방법을 배우는 수강생 대부분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들이다.  

 

치킨 먹는 날은 치느님의 은혜가 내리는 즐거운 시간이다.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은혜를 못 받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아버지’다. “치킨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끓는 기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 단언컨대 치킨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치킨 명언’이다. 우리의 입맛을 위해 펄펄 끓는 기름 속으로 몸을 던지는 닭은 희생하사 치킨이 되어 무한 사랑을 받는다. 아버지는 다 큰 자녀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돈을 벌기 위해 느끼한 기름 냄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흐르는 땀은 기름이 되어 닭을 튀긴다. 집에서 푹 쉬지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치킨 먹을 시간마저 없다. 아이들은 집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치맥을 즐긴다. 과거 가족들의 환영을 한몸에 받았던 ‘치킨-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시절은 없다. 서로 엇갈리고만 운명의 비극이 서글프다.

 

가끔 통닭을 먹었던 시절이 그립다. 통닭의 옛 맛이 아닌 가족과 함께 먹는 화목했던 시간 말이다. 음식의 냄새, 장소 그리고 함께 한 사람 등 온몸의 감각들이 저마다 나누어 갖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딱 들어맞았을 때 비로소 하나의 추억으로 완성된다. 얼마 되지 않은 통닭 조각을 둘러싸고 온 가족이 머리 맞대고 먹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그때의 통닭은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 위대한 치느님이었다. 창밖 기온이 떨어질수록 통닭에 얽힌 추억의 온기는 아버지의 냉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오늘 금요일 밤에 흔한 치킨 대신에 시장에 파는 통닭을 직접 사들고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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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1-2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어릴 적 아빠가 술에 취하셔서 노란봉투에 담긴 전기구이 통닭을 사오시고는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던 기억이 가장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지금은 같이 드실 아빠가 안계시지만 아이들하고라도 따뜻한 닭튀김 함께 해야겠어요.

cyrus 2015-01-24 10:59   좋아요 0 | URL
치킨은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 맛있어요. 점점 젊은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 산다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생기는 가족의 정을 느끼는 시간이 없을거에요.

쉽싸리 2015-01-23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힘든 시절을 헤쳐온 모든 아버지들. 그시대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힘든 아버지들이 많지요. 어쩌면 예전보다더 많고 앞으로도 있겠지요. 그들의 삶을 단지 과거와 오버랩시키면서 눈물바람이나 측은함으로 소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힘든 아버지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슬픈 통닭이 더이상 소비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cyrus 2015-01-24 11:0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지금은 요원해보지만 아버지들이 기를 펼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1-28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페리카나 치킨을 참 맛있게 먹었어요.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압니다. 미국에서는 교촌치킨이 들어온 곳이 몇 군데 있어 꽤 인기라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에요. 그 맛도 그렇고. 한국의 닭강정을 제대로 들여오면 대박칠 것 같다능..ㅎ

cyrus 2015-01-28 09: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페리카나도 예전에 비하면 인지도가 떨어졌어요. 닭강정은 뼈가 없는 닭튀김이니까 외국에서 판매한다면 대박 날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