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장 제목은 ‘식민화와 가정주부화’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식민화’‘가정주부화’가 3장의 핵심 내용입니다. ‘가정주부화’의 의미는 앞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 ‘혼자’ 읽기』 편에 언급된 적이 있어요. ‘가정주부화’를 설명한 내용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판 서문, 20쪽)

 

 

3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부르주아지(bourgeoisie) 백인 여성이 ‘가정주부화’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읽지 않은 책]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문예출판사, 2017)

 

 

 

‘가정주부화’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사치와 자본주의》(문예출판사, 2017)를 참고합니다. 제가 좀바르트의 책을 읽지 않은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가정주부화’에 대한 미즈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가부장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르주아 여성을 ‘가정주부’로 길들이려고 했으며 이 과정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이 부르주아 여성들만 착취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여성’‘프롤레타리아 여성’도 착취 대상이었습니다.

 

 

 

 

 

 

 

 

 

 

 

 

 

 

 

 

 

 

* 주경철 《대항해 시대》(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 [품절] 올라우다 에퀴아노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해례원, 2013)

 

 

 

‘자본가’의 위치에 선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식민지 정복을 통해서 자본의 축적 이익을 증대시키려고 했습니다. 상공업 또는 무역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민계급의 등장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할 것만 같은 시대에 항상 눈부신 빛만 있는 건 아니죠. 자본가 대부분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무시한 채 노예노동과 강제 노동으로 이익을 늘렸습니다. 미즈는 큰 자본 축적이 이루어진 16~17세기 유럽의 특정 시기를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일어난 시기로 보았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탐험가와 무역가들은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무기를 이용해 식민지를 정복하고 약탈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식민지를 노리는 ‘사냥꾼’이 되어 ‘자연’에 속하는 식민지와 식민지인들을 손쉽게 정복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인을 ‘문명화가 될 존재’로 바라봤고, 식민지 여성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올라우다 에퀴아노(Olaudah Equiano)는 1789년에 펴낸 자서전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해례원, 2013)를 통해 백인에게 학대받고 멸시당하며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노예제 본성을 비판했습니다. 이 책에 식민지 여성을 잔혹한 방식으로 대하는 백인 남성의 행동을 묘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

* 리처드 D. 앨틱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아카넷, 2011)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 [No Image]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까치, 1990)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계의 발명과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양식의 기계화, 공업화로 산업혁명이 전개됐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세계의 공장’으로서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황금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자본가들은 여전히 ‘자본의 원시적 축적’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은 공장에 일하는 노동계층의 비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책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발산하는 빛이 화려한 만큼, 그림자 또한 어둡고 깊었습니다.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것이지요. 1857년에 발생한 경제 대공황은 ‘낙관적 진보’를 믿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줬습니다. 대공황을 시작으로 경제가 위축되었고, 빈민층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마르크스, 엥겔스 등이 자본가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트 베벨, 클라라 체트킨 등의 사회주의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여권 신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2장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깠던(…) 미즈는 3장에서 베벨과 체트킨이 주장한 여성해방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은 엥겔스와 함께 당시로는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적 이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들로 꼽히지만, 이들 역시 노동계급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아내와 어머니를 가진 제대로 된 가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벨은 여성의 고용을 줄여서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파괴를 안타까워했다. 베벨은 성별노동분업의 변화나 가사노동을 남성과 공유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여성은 주로 어머니였다.

이는 체트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반페미니즘’에 대해 싸웠지만, 그녀 역시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노동자로 보기보다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보았다.

  맑스,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체트킨은 자본주의가 남녀 사이에서 착취의 평등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처럼 남성에 맞서서 싸울 수 없으며, 남성과 함께 자본가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사민당 내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반향을 낳았다.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 보는 부르주아적 생각이다. (3장 241~242쪽)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미즈의 주장은 ‘팩트 폭력’에 가깝습니다. 베벨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여성의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봤고, 가족이 해체하는 현상을 걱정했습니다. 체트킨은 노동해방을 달성하기 위해선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참여를 동참했는데요, 그녀는 노동해방 운동에 동참하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아내’이자 ‘다음 프롤레타리아 세대를 가르치는 어머니’ 역할로 한정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 투쟁은 부르주아 여성처럼 자기 계급의 남성에 맞서 싸우는 투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전체 자본가 계급에 맞서 자기 계급 남성과 공동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자유로운 시장 경쟁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 계급 남성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돌려주고 영원히 보장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궁극적 목표는 남성과의 자유경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66쪽)

 

 

 사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어머니와 아내의 의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선전의 과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해 이 과제를 전보다 더 잘 해 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가족의 상황이 좋을수록, 여성이 가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수록, 더 잘 투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교육자 · 양육자 구실을 더 잘할수록 자녀를 더 잘 의식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자녀들이 우리 세대의 뒤를 이어 기꺼이 열정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헌신하며 계속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의 프롤레타리아가 “내 아내!”라고 말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내 이상의 동지이며 투쟁의 전우이며 미래에 투쟁할 내 아이들의 어머니”라고 덧붙이게 될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계급의식으로 채우는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는 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 동지들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72쪽)

 

 

 

미즈는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로 보는 체트킨의 인식이 그녀가 비판했던 자유주의 부르주아 페미니스트의 생각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마르크시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가정주부’가 되는 여성의 문제를 보지 못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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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 두 번째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2, 3장을 읽었습니다. 2장 제목은 ‘성별 노동 분업의 사회적 기원’, 3장 제목은 ‘식민화와 가정주부화’입니다.

 

2장에서 마리아 미즈(Maria Mies)성별 노동 분업의 기원을 추적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학설을 살펴보고, 이 학설들의 한계점을 지적합니다. 2장은 성별 노동 분업의 형성 과정, 자본주의-가부장제 체제 내에 주목받지 못한 가사노동의 가치 등 페미니즘의 주요 쟁점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별 노동 분업’의 의미부터 살펴봅시다. 성별 노동 분업은 젠더 이분법(‘남성’과 ‘여성’)에 기초한 노동 역할 분담을 의미합니다. 성별 노동 분업에는 ‘가사 노동’은 여성이, ‘바깥 노동’은 남성이 해야 한다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 2012)

* [절판] 루이스 헨리 모건 《고대사회》(문화문고, 2005)

* 정예푸 《문명은 부산물이다》(37∞, 2018)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가족 제도의 형성 과정에 주목하여 일부일처제는 자본주의의 사적소유로 인해 발생했으며 이는 여성의 종속이라는 폐단을 낳았다고 주장합니다. 원시시대는 사유재산이 없는 모계사회였지만 잉여재산과 상속 때문에 가부장제 사회로 전환됐습니다. 그 전환 과정 중에 남성은 여성의 성을 통제하면서 상속자를 보호하고, 재산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러한 주장이 담긴 책이 바로 1884년에 출간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 2012)입니다. 이 책은 엥겔스의 단독 저작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마르크스(Marx)의 유고를 엥겔스가 정리한 것입니다.

 

엥겔스는 미국의 인류학자 헨리 루이스 모건(Lewis Henry Morgan)《고대사회》(문화문고, 2005)를 토대로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 단계를 사적 유물론 관점으로 분석합니다. 그러므로 엥겔스의 《가족의 기원》을 언급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책이 모건의 《고대사회》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물을 독파하려는 목적으로 독서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판된’ 모건의 책까지 정독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의 기원》의 핵심 내용을 알기 쉽게 언급한 몇 권의 책이 있는데요, 중국의 사회학자 정예푸《문명은 부산물이다》(37∞, 2018)슐라미스 파이어스톤《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 등이 있습니다.

 

엥겔스의 《가족의 기원》은 여성 종속의 원인과 여성 해방을 위한 실천적인 틀을 제시하는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미즈 등 페미니스트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미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2장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이 성별 노동 분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서열이 있는 성별노동분업의 기원을 찾는 것이 ‘세계사적 차원에서 여성의 패배’(엥겔스)가 일어났던 선사시대나 역사시대의 특정 시점을 찾는 것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장류학, 선사시대, 그리고 고고학의 연구들이 우리 연구에 유용하고 또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들이 자연이나 역사와 맺는 관계에 관한 개념을 유물론적이고 역사적이고 비생물학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갈 수 없다면 그런 연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2장, 127쪽)

 

 

미즈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관계 또는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으로 규정하는 입장에 반대합니다. 그녀는 이런 문제들을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아이를 출산하여 가족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여성의 생산 노동을 ‘자연적 활동’으로 이해했습니다. 미즈는 생산 노동을 바라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점이 성별 노동 분업 구조를 유지하게 만든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여했다고 비판합니다.

 

미즈는 출산과 양육 활동을 ‘노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의 출산과 양육 활동을 묶어 ‘생산 노동’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생산 노동을 ‘여성의 생리적 활동’으로 만들었고, 남성들은 여성의 몸과 여성의 출산을 ‘인간’이 아닌 ‘자연’의 범주로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몸을 자연처럼 마음껏 착취하고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남성은 무기를 이용할 줄 알고, 사냥 행위에 능숙하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은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데 유리한 존재로 올라설 수 있게 했습니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이 거의 없었습니다. 흔히 수렵 채집 사회를 설명할 때 사냥 활동을 채집 활동보다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인류가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사적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중대 사건입니다.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은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남성이 ‘사냥꾼’이 되어 부족에게 식량을 보급했고,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일을 전담했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사냥꾼-남성’ 중심으로 고대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남성이 사냥에 나설 수 있도록 일용할 식량을 보급해 준 여성의 역할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죠. 이러한 인식은 인류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역사 교과서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인류의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들에 왜 ‘무기를 들고 있는 남성’이 현생 인류에 가까운 직계 조상으로 묘사한 것일까요? 그 그림 속에 ‘사냥꾼’이 된 남성을 '생산자'로 인정받는 ‘인간’으로, 무기를 손에 들지 못하고 가사 노동에 전담하는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고 통제받는 ‘자연’으로 보는 젠더 이분법이 숨어 있어요.

 

 

 

 

 

 

 

 

 

 

 

 

 

 

 

 

 

*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부키, 2017)

 

 

 

여성의 생산 활동, 즉 가사 노동을 간과하는 인식은 주류 경제학뿐만 아니라 인류학 및 역사학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별 노동 분업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비판하려면 매일 남성 사냥꾼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해주고 생계를 책임진 고대 사회 여성들의 생산 노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2장을 정리한 내용의 분량이 많은 관계로, 3장은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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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0 15:25   좋아요 1 | URL
어제 모임 때 나눈 얘기 중에 결혼과 출산의 의미였어요. 누군가는 출산을 위해서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혼은 하지만 출산이 삶의 목적이 아닌 사람도 있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결혼과 출산을 사람이라면 당연히 통과해야 할 삶의 관문처럼 여겨요. 결혼과 출산을 안 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채 강요하는 게 문제입니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도 살아가는 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말씀하셨듯이 결혼과 출산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합의해야 할 것은 아니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도 아닙니다. ^^
 

 

 

 

레드스타킹(약칭 ‘레스’) 독서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한 지 한 달하고도 19일 정도 지났습니다. 레스를 회사라고 한다면 현재 저의 위치는 신입사원과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다시 배운다는 심정으로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어요. 제가 멤버들 앞에 농담으로 ‘신입사원’ 비유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멤버들이 저보고 ‘인턴’이라고 하더군요. 레스 멤버 각자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어 대화는 기본이고,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멤버가 두 분이나 있고, 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분도 있어요. 이 분이 제게 레스를 처음 소개해줬어요. 페미니즘 영화를 잘 아는 영화 마니아도 있어요. 요즘 이 ‘능력자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됩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 [읽을 예정인 책] 주디스 오어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책갈피, 2016)

 

 

 

레스 독서모임 참석 이후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장까지 읽었는데요, 마르크스(Marx)엥겔스(Engels)의 책을 같이 읽었어요. 본의 아니게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게 됐네요. 제가 리버럴리스트(liberalist)라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공부해보니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antai), 레닌(Lenin), 트로츠키(Trotsky) 등이 공유했던 여성해방론의 장점이 보이더군요.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역시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가 스탈린주의로 변질되는 바람에 퇴색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Maria Mies)도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은 한물간 사회과학 이론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스탈린주의로 오해받은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설하고 지난주 월요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첫 번째 모임 공식 후기를 공개하겠습니다. 지난주는 바쁜 한 주였어요. 하필이면 지난 주 모임에 불참했던 터라 공식 후기를 공개하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어요. 후기 내용 중에 ‘각자의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저도 후기를 쓴 분과 마찬가지로 이 말에 공감했어요.

 

 

이번에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서문과 1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자는 서문과 1장에서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왜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서문과 1장에 걸쳐서 너무나 상세히 페미니즘을 설명하던 것이 이 책에 대한 태도로 규정되었던 것 같다고 느끼게 된 토론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얻고자 했던 부분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방식으로의 대안을 요구한다.> 문장이었지만 그 부분보다 다른 분이 더 많이 서술되어 있고 제가 잘 모르는 개념(ex. 쇼비니즘, 맑스주의 페미니스트)을 그냥 단어로만 쓰고 설명이 없어서 읽어도 어렵다. 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느낌입니다.

 

p.s : 지금 2장을 좀 읽었는데 여기서 저의 의문을 해소해 주고 있네요-! 이번 토론에서 느낀 것은 페미니즘 안에서도 서로 성찰(?)하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운동방식에 대해서도요. 페미니즘을 기울어진 운동장 내지는 이미 공고히 만들어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흐름 정도로만 생각했던 저에게 이정도로 다채로운 방향에서 분석하고 서로의 한계점을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토론 초반에 나왔던 ‘마지막 섬’ 과 관련한 논쟁에서 나오는 이야기에서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착취와 억압을 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그런 것들을 인지하고 살아가며 마지막 섬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하며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에 대한 숙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삶 그자체가 폭력적이라면 ‘최소한의 폭력’을 행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 중간 중간에 나왔던 논의들을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토론에 참여하는 모든 분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을 다시 재확인하여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맑스주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 남성 쇼비니즘에 대한 관심이 약간 생겼고, 그에 관한 것들을 접할 일이 있다면 접하고 싶네요.토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제3세계 여성(여기서는 ‘저개발’)과 백인여성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층위에 있는 사람들을 ‘자매애’ 하나로 통합하여 이야기 하는 방식이 너무 낡았다. 라는 지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방식에서 ‘우월주의’적 접근을 최대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중간에 레드스타킹 멤버 한분이 ‘우리 그렇게 너무 성찰할 필요 없어요’ 하면서 이야기 했던 각자의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연대하면서 외치면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아직은 내부적인 논의보다 현실에서 같이 외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신약이 성인남성으로 디폴트 값이 잡혀있고, 과학기술이 남성위주로 재편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저에게 또 다른 무지를 일깨워줘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진짜 전혀 인지조차 못하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논의된 독립성은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제 과거와 같이 하나의 ‘사상’ 아래 뭉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발성’ , ‘필요’ ,‘재미’ 같은 기치 아래에서 모이는 것이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형태의 ‘무언가’에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p.s : 조금은 두서없고 개인적인 감상이 많지만 지루하고 선명한 세계 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레스가 특별하고도 중요한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3월 31일 토요일 오후 3시 카페 스몰토크에서 ‘본격 월경 토크’를 진행합니다. 이 날 행사는 대구여성광장 성교육센터가 주관했으며 성교육센터 소속 전문가를 초청했습니다. 행사 주요 내용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토크1. 월경, 신성과 혐오 사이

토크2. 월경컵 리얼 후기

토크3. 대안생리대, 대안팬티 등 소개

전시 : 생리컵 3종, 면 생리대, thinx 팬티2종, 페미니즘 도서.

 

 

 

참가비는 없습니다. 단, 카페에서 주문하는 음료 값은 개인 부담입니다. 평소 생리에 대해 말 못 한 고민이 있는 여성, 요즘 주목받고 있는 생리컵 및 대안 생리대를 자세히 알고 싶은 여성은 ‘본격 월경 토크’에 참석하면 좋습니다. 여성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참석을 희망하는 분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셔서 ‘DM 신청’을 하면 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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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3-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모임에 대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cyrus 님.
후기만 읽는 것도 제게는 도움이 되네요.
계속 함께 책읽고 공부하고 후기 올려주시길 바랄게요.


cyrus 2018-03-19 16:06   좋아요 0 | URL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제 글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거나 페미니즘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소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Dora 2018-03-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후기 기대할게요:- 마리아미즈 좋아요

cyrus 2018-03-19 16:08   좋아요 0 | URL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2, 3장에 아주 좋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왜 국외 유슈 언론들이 이 책을 찬사하는지 알겠습니다. ^^

오후즈음 2018-03-1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의미 있는 모임이네요. 가깝다면 참석하고 싶을만큼요...
우선 올려 주시는 텍스트로 만족하며 읽겠습니다. ^^

cyrus 2018-03-20 15:27   좋아요 1 | URL
오후즈음이 살고 계신 곳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모임이 있을 것입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하는 페미니즘 모임이 많아요. ^^
 

 

 

 

 

 

 

어제 <대구, 미투에 응답하라!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오후 7대구시민공익지원활동센터 상상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분이 오셨는데요, 30명이 넘은 인원들이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일찍 토론회 장소에 도착한 레드스타킹 멤버 덕분에 저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레드스타킹 멤버는 저를 포함한 다섯 명입니다.

 

 

 

 

 

 

 

여성 운동과 관련된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은 어제가 처음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다섯 명의 발표자들이 준비한 자료들을 모은 책자를 받았거든요. 자료집, 넘나 소중한 것! 이 자료집이 없었으면 저는 후기를 못 썼을 거예요.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토론회를 진행했고요, 신미영 대구여성회 고용평등상담실장, 김정순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최현진 대구이주여성상담소 소장, 이정미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대표,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섯 분이 발표한 내용은 자료집을 참고하면서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아주 많아서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어제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잘 선별했는지 모르겠군요. 여기에 정리한 내용 일부는 여러분들이 아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신미영 님의 발표 주제는 직장 내 성희롱과 법과 제도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보통 직장 내 성폭력직장 내 성희롱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직장 내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의 의미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위계, 위력에 의해 상대방의 의사를 침해하여 이루어진 성 접촉(간음 행위 필수) 행위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과 직장 내 성폭력 모두 권력형 성희롱 · 성폭력입니다. 권력형 성희롱 ·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사회 집단 내에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 특성상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부하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은 권력형 성폭력의 민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품절] 로빈 스턴 가스등 이펙트(RHK, 2008)

 

 

 

그렇다면 왜 성폭력 피해자들은 끔찍한 경험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일까요? 혹자는 따지듯이 말합니다. 왜 지금에서야 피해 사실을 호소하느냐고. 이건 생각 없는 발언이고,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심정을 잘 모르고 하는 개소리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의해 성폭력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가스라이팅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가스등>(1944)에 유래한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 영화에서 남편은 아내를 미치게 하려고 계략을 꾸밉니다. 남편은 일부러 가스등을 어둡게 한 뒤 아내가 지적할 때마다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 본 거야!”라고 반응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결국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게 됩니다.

 

가스라이팅의 가해자, 즉 성폭력 가해자는 물리적 강압을 동원하지 않고도 피해자의 심리를 조종해 자신의 범죄 행위를 무마하는 시도를 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성폭력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정신적 폭력입니다.

 

김정순 님은 성폭력 피해와 관련법 개정을 주제로 성폭력의 정의성폭력 역고소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순 님은 강간또는 성폭력으로 쓰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의 경우 대체로 증거나 증인이 없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의 진실은 쉽게 거짓말이 되고, 가해 남성들의 성폭력 역고소전략은 대체로 성공합니다. 역고소로 법정에 서게 되는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부담 속에 최소한의 자구노력마저 제약받게 됩니다.

 

최현진 님은 한국에 온 이주여성이 미투 운동에 소외되는 사회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이주여성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호소할 곳들에 대한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주여성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법이나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최현진 님의 발표가 끝나고 다음 발표를 진행한 이정미 님은 여성 장애인도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장애인을 지적으로 취약한 존재 또는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보는 편견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비장애인으로부터 인격이 짓밟힌 여성 장애인은 성폭력 피해에 쉽게 노출됩니다.

 

남은주 님은 미투 운동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대중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은주 님이 제시한 대안 중 하나가 붉은 편지입니다. 붉은 편지 쓰기 운동은 최근 대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투 운동의 일종입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편지지에 익명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 또는 성폭력을 목격한 사실을 쓰는 것입니다. 다 쓴 편지는 붉은색 편지 봉투에 넣어 가해자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성폭력, 성희롱을 목격한 사람들도 붉은 편지를 쓸 수 있어요. 토론회가 끝난 후에 레드스타밍 멤버가 "우리도 붉은 편지를 써보자!"라고 제안했습니다. 독서 모임이 있는 다음 주 월요일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붉은 편지를 써볼 예정입니다. 저는 후배 여학생 앞에 성적 농담을 하고, 후배 여학생에게 치근대던 대학교 선배에게 붉은 편지를 보내고 싶군요.

 

다섯 분의 발표가 끝난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폭력 실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부족했고, 제가 질문을 위해 너무나 많이 생각하는 바람에 질문할 기회를 놓쳤어요. 어제 토론회에 나온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좋게 봤지만,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성소수자의 편견이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불감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은 성소수자는 문란하다’, ‘야한 옷을 즐겨 입는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모든 성소수자는 문란하지 않습니다. 또 그들이 매일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트랜스젠더 여성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비성소수자들은 야한 옷을 입었으니 성폭행당할 만 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소수자도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존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도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생각해 볼 어젠다입니다.

 

 

 

 

 

 

 

 

포스터, 첫 번째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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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등 이펙트가 품절됐구나.
한 10년쯤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그런 줄도 모르고 작년인가? 중고샵에 팔았다는.
이게 오늘 날 이렇게 쓰일 줄 알았으면 다시 읽어보는 건데.ㅠ

cyrus 2018-03-17 08:11   좋아요 0 | URL
대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히치콕 영화를 틀어준 적이 있어서 그때 《가스등 이펙트》을 읽었어요. 저도 이 책이 품절될거라 생각 못했어요.. ^^;;

2018-03-17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7 19:42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 링크 주소 타고 들어가면 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제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에요.. ㅎㅎㅎ

2018-03-18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인 로라가 인형처럼 길드는 삶을 거부한 지 1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년이면 《인형의 집》 초연 140주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로라의 딸들은 태어난 가정에서, 결혼한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넓게는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견고한 분야에선 여전히 여성을 차별하는 인습이 남아 있다.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하였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남성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학 작품 속 여성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온갖 수난과 역경을 그대로 감내하는 순종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결국,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여성이 끝내 도달하게 되는 최종 목적지는 가정이다. 남성 작가들이 작품에서 그려낸 여성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에 눈을 감고 있거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남성 작가의 분신으로 묘사된다.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비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문단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작가들의 견고한 가부장적 인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2017)에 수록된 7편의 단편 소설은 모두 ‘페미니즘’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소설 속 페미니즘은 한 가지 색이 아닌 각각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조남주『현남 오빠에게』‘오빠가 여자의 삶을 알아?’라는 물음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인 ‘강현남’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주인공은 현남의 청혼을 거절한다. 현남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와 있다. 편지에 남긴 여주인공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여성 독자의 가슴을 먹먹해지게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본 익숙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현남은 보호자 위치에 서서 여주인공을 대했고, 그러한 상황이 익숙해질수록 여주인공이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그런 와중에 현남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청혼한다. 조남주는 일상 속에 뿌리 깊은 여성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는 일부 남성 독자는 소설 속 남자 인물의 이름에 딴죽을 건다. 그들은 ‘현남’이 우리나라 남성을 비난하는 은어인 ‘한남’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공식 석상에서 그런 의도로 제목을 정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이 소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작가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정 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나 단어를 바라볼 때 논리적 · 분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념과 편견으로 판단해버린다.

 

최은영『당신의 평화』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만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굴레가 얼마나 강력하게 여성들의 자아를 옥죄는가를 포착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여자로서의 삶’을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엄마 정순의 순종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란다. 유진은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여성을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로 미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난 너희 어머니,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해.” 그가 말했다.

“평생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갈등도 없었고, 아버지 내조도 잘하셨고, 자식들 똑바르게 잘 키워냈고.”

“현명하다는 게 뭐지.” 유진이 물었다.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희생하는 거. 나 좋게 봐.”

“엄만 행복하지 않았어.”

[중략]

 

그가 말했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 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당신의 평화』 50~51쪽)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는 가족의 공동체적 평화를 유지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자기희생을 도덕적 이상으로 간주했다. 가부장제 속 여성의 정체성에는 자아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 자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여성의 자아는 희미해진다. 따라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김이설『경년(更年)』은 문학 작품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은 ‘자식을 둔 중년 여성의 고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자기 아들이 또래 여학생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의 행동에 고민한 주인공은 남편과 상의해보지만, 남편은 ‘아들에 먼저 접근한 여자아이들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두둔한다. 우리 사회에는 남편의 시선으로 청소년 연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청소년의 성관계를 ‘일탈’로 보고, 그 일탈을 부추기는 원인 제공자로 여학생을 지목한다.

 

최정화『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앞서 소개된 단편들과 달리 상당히 난해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 ‘율’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강박적인 자기 검열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 엄숙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여성의 행동을 평가한다. 남성이 인정하는 도덕적 잣대는 여성 차별, 여성 혐오를 변호하는 배경이 된다. 손보미『이방인』여성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누아르 분위기의 소설이다. 작가의 변에 따르면 소설 설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한을 두는 바람에 소설을 어렵게 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개연성이 매끄럽지 않다. 나는 구병모『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 『현남 오빠에게』 못지않은 문제작이라고 생각한다. 표제작에 대한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높아서 그런 것일까. 구병모의 소설이 크게 주목받지 않은 듯하다. 인류가 만들어 낸 축제가 늘 즐겁고 유쾌한 건 아니다. 전쟁 승리에 도취한 전근대적 국가의 남성들은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급했고, 향략적인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자신들을이 약탈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했다. 심지어 약탈한 여성을 잔혹하게 죽이는 비인륜적인 축제도 있었다. 작가는 그런 '남성들만 누리는 축제'의 의미를 전복시켜 독자들, 특히 남성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김성중『화성의 아이』‘SF 페미니즘 소설’이다. 이 작품에 출산은 고귀한 생명의 탄생을 이끌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로 묘사된다. 그러나 ‘출산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소설의 결론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출산이 ‘아내 또는 엄마가 되기 위한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은 단편소설을 통해 페미니즘과 소원한 일상 속의 다양한 여성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작품 속 여성들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앞으로 이런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작품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비평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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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편 모두 스펙트럼이 달라서 읽을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또 나왔으면 좋겠네요.

cyrus 2018-03-16 16:10   좋아요 0 | URL
네,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고 말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페미니즘 정착을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아다모 2018-03-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해주신 글들을 읽어보니 이 작품 꼭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8-03-16 16:12   좋아요 0 | URL
읽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편이 있고,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단편도 있어요.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저 스스로 의심했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 책을 두 번 이상 읽었어요. ^^;;

2018-03-15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6 16:16   좋아요 1 | URL
저는 어렸을 때 드라마에 여직원이 커피 타는 모습을 보고 저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대중매체에 묘사된 성차별을 접하게 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해요. 오히려 편견으로 남게 되죠. 편견을 제거하려면 일상 속 성차별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그동안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여긴 일상 속 성차별, 성희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어요.

2018-04-22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