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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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코미디(black comedy)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웃음을 통해 환멸과 냉소를 표현하는 드라마’[*]라고 설명되어 있다. 블랙 코미디에서 교훈을 찾기 어렵다. 모든 것을 조롱하는 블랙 코미디 앞에서는 교훈마저 조롱의 먹잇감이 된다. 이처럼 부조리한 상황에서 피어나오는 ‘검은 웃음’, 이것이 블랙 코미디가 자아내는 웃음이다. 불쾌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희화화한다는 점에서 블랙 코미디의 웃음은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허문다. 이를 통해 블랙 코미디는 희극과 비극, 폭소와 절망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블랙 코미디로부터 교훈은커녕 의미조차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에서 느껴지는 허무함 속에는 진실이 주는 위력이 담겨 있다. 우리 삶 자체가 그처럼 부조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블랙 코미디는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구병모의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은 주택 공동체 속에 살아가는 네 쌍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을 보여주는 ‘현대인들을 위한 블랙 코미디’다. 블랙 코미디에 희비를 함께 가졌듯이 이 소설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공존한다. 《네 이웃의 식탁》에선 삶의 부조리에 속절없이 말려든 인간들이 보인다. 작가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극을 통해 흔히 우리가 정이 가득 묻어나는 단어라고 느끼는, ‘가족’, ‘이웃’, ‘공동체’의 어두운 이면을 펼쳐 보인다.

 

아이 셋을 낳았거나 10년 이내에 아이 셋을 낳을 계획이 있는 부부는 공동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이곳에 네 쌍 부부가 입주하여 서로를 가족처럼 대하면서 지낸다. 출근할 때 자동차를 함께 타고, 쓰레기 분리배출도 함께하는 등 공동체 생활을 이어나간다. 속사정이 제각각인 네 쌍 부부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함께 돌보는 공동육아를 시작한다. 공동육아는 기혼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가사부담 증가, 독박육아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동육아는 더욱 부부들의 삶을 꼬이게 한다. 소설 속에서 부부들은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아내가 혼자 감당하는 육아의 무게는 변함이 없다. 소설은 공동주거생활과 공동육아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크고 작은 불편한 일상들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공동체 생활은 때로는 번거롭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 제한은 공동체 유지를 위해 지급해야 할 불가피한 대가로 작용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공동체 생활의 안전한 일상, 그 ‘친밀한 관계’ 아래 겨우 잠복해 있던 개인의 불만들이 하나씩 터져 나온다. 불편함을 참으면서 가족이나 이웃을 대하는 태도, 그들과 관계 맺는 방식 등 공동주택 입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독자에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보인다. 공동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인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로 주어진 삶에 툭툭 내던져지는 돌발 상황들을 견뎌낸다.

 

작가는 진심과 표현이 일치하지 못하는 데서 파생되는 불쾌하고 부조리한 현대적 공동체 풍경을 만들어 소설에 담아냈다. 그 풍경에 실질적인 의미를 더 부여하자면, 정부의 저출산 정책과 가족 중심 문화가 교묘하게 결합하여 빚어진 일련의 부조리이며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쓰라린 몸부림이 반영되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 모두가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고통받는데, 누가 잘못했냐고 탓할 수 있단 말인가.

 

 

 

 

[*]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엮음, 《문학비평용어사전》(국학자료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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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2 18:22   좋아요 1 | URL
아이를 돌보는 부모들에게는 저마다 사정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정을 모르면서 부모의 육아 방식에 태클을 걸거나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육아에 지친 부모를 피곤하게 만들어요. 국가는 ‘평균’을 기준 삼아 정책을 내세워요. 이렇다 보니 누구는 정책의 혜택을 보지만, 나머지 ‘평균’에 벗어난 사람들은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어요. 이러한 상황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18-07-1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 등장하는 공동거주, 공동육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실험‘이었습니다.

오히려 잘 되는 게 이상한 거죠.

좀 빤한 이야기라 나중에 가서는 좀 그렇더라구요.

cyrus 2018-07-12 18:24   좋아요 1 | URL
소설에 나오는 공동주택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디스토피아 같았습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오리아나 팔라치 지음, 김희정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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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는 펜 하나로 세상을 움직인 인터뷰 전문 기자이다. 그녀는 세계적인 정치 거물들과 인터뷰를 도전적으로 진행하는 걸로 유명하다. 정치 거물들은 팔라치의 신랄한 질문 공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늘 팔라치의 승리로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는 그녀의 말과 글을 토대로 사후에 펴낸 자서전이다. 자서전 편집자는 팔라치가 자신에 대해 직접 밝힌 내용만 선별하여 자서전 형태로 엮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녀의 투쟁적인 삶과 뜨거웠던 열정을 회고하는 생생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팔라치는 무솔리니(Mussolini)의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자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를 이끈 지도부였다. 팔라치는 파시스트와 나치에 맞서는 저항운동에 뛰어들었고, 일찍부터 정치권력 남용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 자서전의 1부(「운명은 그렇게 준비되었다」)는 팔라치가 유년 시절에 겪은 일화와 ‘기자’로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삼촌의 권유로 팔라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베트남 종군기자로 활동한다.

 

팔라치는 종군기자로 베트남 전쟁에서 중동 전쟁, 헝가리 침공에서 남미 봉기,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팔라치는 기사를 쓰면서 자신을 ‘역사의 증언자’로 인식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역사 현장의 중심에 섰다. 2부(「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에서는 기자의 사명, 글쓰기와 인터뷰에 대한 팔라치의 진솔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팔라치는 자신과 인터뷰한 유명 인사들을 가리켜 ‘불쾌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유명 인사, 특히 권력자와의 인터뷰는 걸림돌이 많다. 사전에 질문 원고를 받아 보고 거북한 내용은 빼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고, 미리 특정 질문은 하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인터뷰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현장의 위압감 때문에 준비한 내용을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련한 팔라치는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한풀 옷을 벗기듯 놀라운 사실을 뽑아내고 권력자의 속내를 간파해 나갔다. 그러나 팔라치는 자신이 정치 인터뷰 기자로 알려진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팔라치의 활약상에 감탄한 대중은 그녀를 ‘두려움을 모르는 영웅’으로 칭송했지만, 그녀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수많은 인물을 인터뷰하고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던 팔라치는 그리스의 반체제 인사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Alexandros Panagoulis)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파나굴리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뒤 전설적인 영웅으로 다시 되살린 것이 <한 남자(Un Uomo)>라는 소설이다. 3부(「사랑과 자유를 위한 투쟁」)는 사랑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숙명적인 인연을 잊지 못하는 팔라치 자신의 독백이기도 하다.

 

팔라치는 외향적인 동시에 내향적인 삶을 살았다. 죽음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뛰어들었고, 나치즘과 파시즘이 위세를 떨쳤을 때 이에 대한 저항의 글을 쓰며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색적이었으며,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글쓰기에만 몰두했던 고독한 인간이었다. 혹자는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오리아나 팔라치’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팔라치는 자신의 이름에 ‘영웅’, ‘성녀’, ‘전사’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을 거부했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서서히 만들어진 신화를 부정했다. 팔라치가 좋아할 만한 명예로운 별명이 뭐가 있을까. 하늘에 있는 깐깐한 팔라치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녀를 ‘자유인’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자유인’ 팔라치의 내면적 자화상이다. 그녀가 인터뷰한 팔라치는 ‘전설의 여기자’가 아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말하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인간이다.

 

 

 

 

 

※ Trivia

 

63쪽에 팔라치가 이란의 소라야 왕비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생긴 일화가 나온다. 이 장에 소라야를 ‘소리야’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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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2 12:53   좋아요 0 | URL
역시 사진 보는 눈이 뛰어나십니다! ^^
 

 

 

수전 손택(Susan Sontag)『해석에 반대한다』라는 글에서 “해석은 해방 행위다. 거기서 해석은 수정하고, 재평가하는, 죽은 과거를 탈출하는 수단이다[1]라고 썼다. 그녀가 새롭게 제시한 ‘해석’의 의미는 예술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학문의 진리는 끊임없이 연구되고 재해석된다. 칼 포퍼(Karl Popper)의 철학은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서 출발한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행태는 ‘닫힌 사회’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이면서도 불완전하므로 상호 비판이 허용돼야 하며 절대적 지식 추구는 위험하다. 포퍼가 지향하는 학문 접근 방식은 ‘비판이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 이한구 《칼 포퍼의 『열린사회의 그 적들』 읽기》 (세창미디어, 2014)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은 각자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라고 여긴다.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거부한 채 자신이 알고 믿고 있는 것만이 절대적이라 여겨 ‘닫힌 사상’을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간다. ‘진리의 소유화’는 어느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새로운 지식과 앎에 대해 열려 있는 사람이 훌륭한 지식인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게일 루빈(Gayle Rubin)이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성의 변증법》 (꾸리에, 2016)

 

 

 

게일 루빈은 스물다섯 살에 『여성 거래 :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녀는 이 논문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을 ‘계급’ 또는 ‘가부장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 거래』가 발표된 연도는 1975년이다. 미국의 70년대는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의 시대였다. 신좌파 내 고질적인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루빈은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지는 ‘제2 물결 페미니즘’의 지적 양분을 흡수한다. 1970년에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성의 변증법》을 발표하여 성별 자체가 권력 관계를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발표했을 때 파이어스톤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재미있게도 《성의 변증법》이 발표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루빈의 논문이 나왔다. 《성의 변증법》의 첫 문장은 이렇다.

 

 

성적 계급(sex class)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2].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에 이미 권력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성적 계급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견고한 계급’이라고 말한다. 여성 억압은 아버지가 권력을 독점하는 가부장제와 더불어 작동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계급과 권력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지만, 여성의 지위는 몸과 성별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루빈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여성 억압 분석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가부장제’ 대신에 ‘섹스/젠더 체계’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한다. 섹스/젠더 체계는 여성을 ‘선물’인 것처럼 거래(또는 교환)하는 문화를 설명하는 개념적 도구이다.

 

루빈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계급 사회를 설명한 마르크스(Marx)와 엥겔스(Engels), 프로이트(Freud)에서 라캉(Lacan)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 레비스트로스(Levi Strauss)의 구조주의 인류학이 침묵한 젠더 불평등에 주목한다. 그녀는 여섯 명의 남성 지식인들이 구축한 사상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마르크스는 여성 억압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엥겔스는 사적 소유에서 파생된 가족제도(일부일처제)의 기원을 추적하여 여성 억압을 읽어냈지만, 루빈은 그의 분석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지 엥겔스의 대표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실망스러운 저작’이라고 평가한다[3].

 

 

 

 

 

 

 

 

 

 

 

 

 

 

 

 

 

 

* 장-다비드 나지오 《정신분석의 근본 개념 7가지》 (한동네, 2017)

* 김석 《프로이트 & 라캉 : 무의식에로의 초대》 (김영사, 2010)

* 김석 《에크리 :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2009)

*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프로이트는 아버지에 대한 원초적 적대심을 소포클레스(Sophocles)의 고대 비극에서 빌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로 이름 붙인다. 남자아이는 어머니와 자신이 페니스가 달린 똑같은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페니스를 거세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거세 공포)을 느낀다. 남자아이는 거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자아이는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게 되고 남자로서의 성 정체성을 획득한다. 남자아이의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주 언급된다.

 

라캉은 생물학적 성차에 주목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을 ‘상징적 차원’으로 재분석한다. 그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어머니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라캉에 따르면 아이의 욕망은 결여로 인해 발생한다. 남자아이는 ‘페니스가 없는 어머니’를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상상적 팔루스(Phallus)로 간주한다. 아버지의 거세 공포에 직면한 남자아이는 어머니의 결여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팔루스를 모방한다. 이 위기 과정을 통해서 남자아이는 자신의 팔루스를 아버지의 팔루스와 동일시하고(이때 ‘상상적 팔루스’는 거세된다), 자신의 결여를 채우기 위해 욕망의 대상을 아버지로 변경한다. ‘상상적 팔루스’에서 ‘상징적 팔루스’로 전환하면서 페니스는 타자, 즉 아버지의 욕망을 나타내는 기표(記標, signifier: 주체를 구성하고 재현하는 역할을 하는 요소)[4]가 된다. 라캉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상징적인 아버지를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남자아이의 욕망은 주체적 욕망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남자아이는 팔루스를 인식한 과정에서 타자인 아버지의 욕망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남아 있다. 팔루스가 없는 여자아이는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가. 라캉은 여자아이도 남자아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를 팔루스의 소유자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실제 페니스(프로이트), 상징적 팔루스(라캉)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팔루스를 줄 수 있는 아버지’를 욕망한다. 팔루스를 원하는 여자아이는 자신을 여성으로 인정하고, 아버지를 통해 팔루스를 소유하고자 한다. 루빈은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의 ‘남근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왜냐하면, 남근 중심주의는 여성의 수동적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 앨런 바너드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한길사, 2016)

* 최협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풀빛, 2014)

 

 

 

레비스트로스는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여성의 교환’이 친족 체계와 족외혼 문화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원시 씨족사회의 기본 구조는 근친상간 금기에서 시작된다. 가부장이 자신이 속한 부족의 여성들을 다른 부족에게 '교환'함으로써 족내혼을 금지하고, 동시에 다른 부족과 혈연관계를 맺는다. 여성 교환의 기본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풍습이 결혼이다.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건네주는 관습이 결혼의 '교환' 행위를 보여준다. 신부의 아버지는 ‘성적 주체’ 또는 ‘교환 주체’인 반면 신부는 가족을 형성하기 위해 교환되는 ‘선물’이다. 루빈은 ‘여성 교환’ 구조가 여성을 억압하는 심층적 구조라고 비판한다.

 

루빈의 『여성 거래』는 남성 중심적 학문과 문화에 기인한 ‘해석을 수정하고, 재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종속이 묵인되었던 ‘(여성이)죽은 과거’에서 탈출하기 위한 ‘해방적 사유’을 펼친 역작이다. 다만, 루빈이 지향하는 ‘여성 해방’은 ‘남성 또는 가부장제의 제거’가 아니라 섹스/젠더 체계로 작동되는 사회구조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1] 《해석에 반대한다》 25쪽

[2] 《성의 변증법》 13쪽

[3] 《일탈》 『여성 거래』 99쪽 : 루빈은 엥겔스를 비판하지만, 그의 통찰은 주목할 만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4] 《일탈》에서는 ‘상징적 증표’가 ‘기표’와 같은 의미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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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16:18   좋아요 1 | URL
결혼과 출산에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살 수 있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순결과 도덕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만남이 풍기문란을 조장한다면서 반대할 것입니다. 비혼 족이 늘어도 여전히 혼자 사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남아 있어요.

2018-07-1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16:34   좋아요 0 | URL
일하면서 몰래 제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제가 ‘상상적 팔루스’의 의미를 잘못 소개했어요. 루빈의 <여성 거래> 번역문을 읽으면서 역자가 페니스와 팔루스를 서로 비슷한 의미로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성 거래> 번역문을 읽기 전에 정신분석학 자료를 참고했고, <여성 거래>를 읽었을 때 본문에 있는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 개념을 정확히 구분해가면서 읽었어요. 그런데도 라캉의 이론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이렇게 글로 정리해도 쉽지 않네요.. ^^;;

제가 봐도 팔루스를 받아들이는 여자아이에 대한 설명이 매우 빈약하게 느껴졌어요. 글을 쓰다 보니 엉뚱하게도 프로이트의 이론을 언급해버렸네요. 단기간에 야매로 라캉을 공부하니까 이 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습니다. 제 글을 꼼꼼하게 읽고, 문제점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syo님. 퇴근하고 나서 글을 고치겠습니다. ^^
 

 

 

 

 

 

 

 

 

 

어제 ‘《일탈》 읽기’ 첫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책갈이’ 님이라는 분이 모임 후기를 썼어요. 책갈이 님은 서론1장 『여성 거래 :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에 대한 내용 정리를 A1 용지 한 면에 다 채웠어요.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1장에 나오는 내용들이 엄청나요. 마르크스(and 엥겔스), 프로이트, 라캉, 레비스트로스의 사상이 나오고, 루빈이 네 사람이 주장한 이론을 비판합니다. 아주 깔끔하게 핵심 내용을 요약한 글이라서 《일탈》을 혼자서 읽기 시작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책을 먼저 읽고 난 뒤에 요약문을 읽으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려 900쪽에 달하는 <일탈>의 첫 모임은 거칠게 퍼 붓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빗발을 뚫고도 지난주 못지않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그만큼 푸코의 <성의 역사> 이후 가장 급진적인 성 이론 실천가로 알려진 게일 루빈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서론과 1장 ‘여성거래’를 읽고 난 대부분 참석자는 “특히, 서론이 좋았다”라는 느낌을 나눴습니다. 서론에서 게일 루빈은 <일탈>에 게재된 논문이 저자의 삶, 그녀가 살아온 시대적, 공간적 상황 속에서 어떠한 맥락에서 연구 결과가 도출될 수 있었는지를 에세이처럼 풀어놓습니다. 인종차별과 종교적 우익 성향이 지배적인 미국 남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게일 루빈은 남부를 지배하는 세계관과 의제에 익숙했던 자신의 태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후에도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나 오류를 감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화’에 있으며, 위치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를 실천하는 연구자로서 저자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합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뉴라이트’의 부상과 백래시 현상, 젊은이에 대한 성적 순결을 권장하고, 낙태의 범죄화, 외설과 포르노 논쟁, 동성애 혐오 등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자신들의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과 인종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1장 여성거래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재생산’과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두 용어는 ‘경제적 체계’와 ‘성적 체계’ 사이의 구분과 성적체계가 일정한 자율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하지만 루빈이 주장하는 섹스/젠더 체계는 단순히 생산양식의 단순한 재생산적 계기가 아닙니다.

 

 

“섹스/젠더 체계는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행위의 산물로 변형시키고 그와 같이 변형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련의 제도입니다” (93쪽).

 

 

엥겔스레비스트로스가 주목한 친족체계는 섹스/젠더 체계를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 형태입니다. 또, 레비스트로스는 여성 교환이 사회의 기원을 형성하고 근친상간 금기를 문화와 자연의 경계에 위치시킵니다. 나아가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적 인격(젠더)을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고 강제적 이성애 제도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배경입니다. 결론적으로 여성 억압의 원인은 여성 교환을 통해 친족제도를 성립시키고 여성 억압을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 체계 속에 위치시킵니다. 따라서 여성교환은 섹스/젠더 체계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의 무기고가 될 수 있으며 섹스/젠더 체계는 불변의 억압 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행동을 통해 재조직될 수 있습니다.

 

루빈이 꿈꾸는 페미니즘 혁명은 여성억압의 해방 그 이상입니다. 강제적 섹슈얼리티와 성역할들의 제거, 즉 젠더가 없는 사회에 대한 꿈입니다. 그 꿈에는 한 사람의 해부학적 성이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을 행하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가 하는 문제와도 무관합니다. 즉, 섹슈얼리티가 사회와 정치적 의제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나는 꿈입니다. 여자답다, 남자답다, 엄마답다, 선생님답다, 학생답다 등 “답다”의 구속복을 벗어버리는 꿈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일탈>을 읽고 토론에 참석한 구성원 모두가 꾸는 꿈이기도 합니다.

 

다음 모임은 2장 “인신매매에 수반되는 문제”, 4장 “가죽의 위협”을 읽고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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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7-10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 한 데 모으면 한 사람이 못 들겠네요.

cyrus 2018-07-11 07:51   좋아요 0 | URL
월요일 모임에 안 오신 분들의 책을 포함하면 무게가 어마어마해져요.. ^^;;

2018-07-1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11 07:53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건 아니고요, 읽고 토론할만한 챕터를 선별해서 읽을 예정입니다. ^^
 
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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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라.

그러면 그가 펼치게 되는 미학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올더스 헉슬리, 《연애대위법》, 동서문화사, 606쪽)

 

 

 

톨스토이(Tolstoy)《전쟁과 평화》는 한마디로 웅장하다. 이야기가 묵직한 데다 분량도 방대해 완독이 쉽지 않다. 《전쟁과 평화》는 귀족 사회의 허례허식, 남녀 간 사랑, 군인들의 애국심, 러시아 민중의 낙천성 등 인간의 다양한 정서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다채로운 삶의 유형을 그린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 이야기 속에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있다. 아무도 톨스토이만큼 작중 인물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표현력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는 1805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부터 데카브리스트(Decabrist, 십이월당원) 반란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 동안 격동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쓰였다. 이 소설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한두 명으로 특정할 수 없다. 《전쟁과 평화》의 기본 줄거리는 네 가문의 흥망성쇠다. 볼콘스키 가문, 베주호프 가문, 로스토프 가문, 쿠라긴 가문의 일원들이 등장한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냉철한 두뇌를 가진 인물이다. 그의 친구 피예르 베주호프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이상주의자이다. 피예르는 표도르 돌로호프와 바람난 아내 옐렌과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프리메이슨에 가입한다. 프리메이슨 가입 이후로 그는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기분을 느낀다. 피예르는 신(神),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 고민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기병 장교로 복무한 후 퇴역하여 영지를 경영한다. 옐렌의 오빠 아나톨 쿠라긴은 니콜라이의 여동생 나타샤를 유혹하는 바람둥이로 그녀와 약혼했던 안드레이 공작과 대립한다. 나타샤는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이다. 소설 초반부에 아름답고 기품 있는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로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성격의 변화가 나타난다. 나타샤와 쿠라긴의 염문이 알려지면서 안드레이 공작과의 약혼은 깨지게 되고, 한동안 나타샤는 실의에 빠진다. 그 후 종교에 귀의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다. 전투 중에 크게 다친 안드레이 공작을 만난 나타샤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간호한다. 그녀는 피예르와 결혼하여 남편과 자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아내로 살아간다.

 

《전쟁과 평화》는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쉽게 읽힐 책도 아니다. 사상 최대의 인물들이 나오는 만큼 서사 구조가 산만하다. 소설에 5백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고 얽히기도 한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기 힘든 작품에 열광하는 걸까. 답은 책장을 넘기면서 경험하는 일반 소설과 다른 독특한 구성 방식에 있다.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의 소설 《트리스트럼 샌디》만큼은 아니지만, 《전쟁과 평화》는 독특한 서사 구조로 되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 또는 특정 사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두고, 작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작가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러나 《트리스트럼 샌디》는 작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이야기가 샛길로 빠져서 두서없이 전개된다. 《전쟁과 평화》도 ‘기승전결’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탈피해 독자가 기대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거부한다. 톨스토이는 이야기 중간마다 전쟁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

 

《전쟁과 평화》 3권 2부 19장은 보로디노(Borodino) 전투의 과정을 분석한 톨스토이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낸 글이다[1]. 18장과 20장은 피예르와 그 주변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다. 보로디노 전투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시간적 배경이지만, 전쟁사에 관심 없는 독자라면 역사적 전투에 대한 작가의 분석을 건너뛸 수 있다. 《전쟁과 평화》는 총 2부로 구성된 ‘에필로그’로 끝맺는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역사관을 주장하기 위해 에필로그를 썼다. 이처럼 소설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내는 작가의 개입이 《전쟁과 평화》의 독특한 매력이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등장과 러시아의 승리 원인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하는 역사적 관점을 비판한다. 그에게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사람의 힘이 합쳐져서 생긴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무슨 이런 장르가 불분명한 소설이 있을까. 사실 에필로그(정확히 말하면 ‘논문’)를 읽지 않아도 소설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작가의 개입은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만 다른 러시아 근대소설에서 볼 수 없는 《전쟁과 평화》만의 문학적 가치는 훌륭하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야기 군데군데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다.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의 중심인물이 되어 활동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환락과 방탕 속에서 헛되이 낭비된다. 1847년 톨스토이는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에 돌아와 농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이상적인 경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상류사회에서 방탕과 나태한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욕망, 죄의식에 관대하지 않았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결점과 자기비판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피예르처럼 지치지 않고 자신의 결점을 되돌아보면서 반성과 성찰을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톨스토이는 청년 시절부터 뼈아프게 고민했다. 《전쟁과 평화》 속에는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찾은 몇 개의 해답이 들어 있다.

 

 ‘삶은 모든 것이다. 삶은 신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이며, 이 움직임은 신이다. 삶이 있는 한, 신을 자각하는 기쁨이 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의 고통 속에서, 죄 없이 받는 고통 속에서 이 삶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가장 커다란 기쁨이다.[2]

 

 우리는 익숙한 생활의 궤도에서 내던져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버리지만, 사실은 거기서부터 새롭고 좋은 것이 시작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행복이 있습니다. 앞길에는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있습니다[3].

 

 

피예르의 말은 톨스토이의 목소리다. 그 말 속에는 주어진 삶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는 의지력이 있다. 톨스토이의 인생관은 인생의 목표를 ‘현재’에 두고 있다. ‘현재’는 ‘살아야 할 이유’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는 삶의 의미였다. 톨스토이가 생각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선(善)이다. 그는 인간이라면 모두 이 선을 향해서 정진해야 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은 ‘사랑’이라고 했다. 각자가 자기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 즉 신과 삶을 사랑하는 선이 인생을 잘 살기 위한 힘이다. 이것이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발견한 ‘인생의 의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네 권짜리 두꺼운 소설을 볼 필요가 있나요?” 만약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한 번은 아닌 두세 번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톨스토이는 역사와 현실 속 자잘한 삶의 체험을 세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썼다. 무수히 얽힌 인간 관계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뛰어난 묘사력 덕분에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역사의 큰 물결 속에 흔들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던 청년 톨스토이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는 소설이 아니라 '톨스토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펼친 인생론은 적어도 이 책을 참고 끝까지 읽은 독자에게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1] 《전쟁과 평화 3》 284~291쪽

[2] 《전쟁과 평화 4》 249~250쪽

[3] 《전쟁과 평화 4》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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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는 오래전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번역자가 달라지만, 같은 책도 조금은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cyrus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7-08 20:00   좋아요 1 | URL
《전쟁과 평화》는 완역본으로 읽어야 이 소설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7-0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아요! 늘 미루던 이 고전을 언제쯤 읽을까 ㅎ

cyrus 2018-07-08 20:02   좋아요 0 | URL
진짜 큰 맘 먹고 시도해보세요. 정말 재미없으면 읽다가 덮으면 되니까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7-08 20:28   좋아요 0 | URL
러시아 소설은 왜 이리 손이 안 갈까요? 도스토예프스키도 사 놓고 먼지만 쌓이고 ㅜㅜ

cyrus 2018-07-08 20:32   좋아요 1 | URL
저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안 읽어봤어요. 늙어서 시력이 떨어지기 전까지 꼭 읽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8-07-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디북에서 박형규 교수님 버전으로
읽어 보겠다고 하나씩 사기 시작했는데, 그만
절판되어 버리는 바람에 마저 사지 못해서
읽지 못했다는 변명을... ㅋㅋㅋ

cyrus 2018-07-08 20:21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이 언급한 책이 다섯권으로 된 그 책인거죠? ㅎㅎㅎ 저는 이룸출판사에서 나온 《전쟁과 평화》 원본을 번역한 세 권짜리 책을 가지고 있어요. 문학동네 번역본은 톨스토이가 여러 번 고친 텍스트예요. ^^

2018-07-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8 20:31   좋아요 0 | URL
저는 블로그, SNS 둘 중 하나만 등록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SNS에 리뷰를 등록하지 않은 응모자를 심사에 배제한 건 아니라고 봐요. 공지에 보면 출판사가 ‘블로그 및 SNS 주소 동시 등록, 하나라도 등록 안하면 심사 불이익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말이 없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네이버 블로그에도 리뷰 등록할께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stella.K 2018-07-0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작년인가, 재작년에 이걸 영화로 봤지.
BBC에서 6부작인가로 만들었는데 나름 꽤 잘 만들었어.
근데 솔직히 톨 할배도 그렇고, 도 선생도 그렇고
둘 다 산맥 같은 존재라 넘기가 어려워.
그런 걸 넌 읽고 이렇게 리뷰까지 썼구나.
잘 썼다. 아무래도 다음 달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농후해 보인다.ㅋㅋ

cyrus 2018-07-09 18:13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셨으면 원작 소설 읽기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ㅎㅎㅎ

리뷰 대회 응모글이에요. 잘 쓴 분들이 많아서 3등에 입선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 ㅠ

stella.K 2018-07-09 19:3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
그렇다면 리뷰 대회는 정말 모르겠다.
그 보단 심사위원이 다르잖아.ㅋㅋ
그게 아니어도 넌 매달 4만원의 도서구입비가
생기는대도 양이 차질 않냐? 욕심은...
난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알았는데 까먹고 있었나?
아무튼 핑계낌에 잘 읽었네.
혹시 1등하면 한턱 쏴!ㅋㅋㅋ

2018-07-09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9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