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0
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평온한 섬이다. 이 섬은 영화 <조스(Jaws)>의 촬영지였으며,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외부인이 자주 드나드는 관광지가 되었으나 과거에 이곳은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이 살았던 옛날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공용어는 수화였다.

 

1640년대부터 영국의 켄트(Kent)라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이주해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청각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고립된 이주민들은 불가피하게 근친결혼으로 인구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들이 많이 태어났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지속적인 근친결혼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열성인자가 출현돼 예상치 못한 장애나 질병과 관련된 면역성 약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서스 비니어드섬에는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청각에 이상 없는 비장애인들도 살고 있었다. 이 섬에 사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모두 수화를 사용했다. 섬사람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편한 장애로 인식하지 않았다. 또 그곳에서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줄여서 마서스 비니어드[])는 섬사람들이 장애를 수용하는 사회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섬에 사는 75세 이상 노인들을 만나면서 얻은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장애의 정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넓힌다. 19세기 말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섬사람들의 청각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 조사에 나섰지만, 확실한 결론을 얻는 데 실패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전화를 발명하기 전 그는 청각 장애인 전문학교를 경영한 교사였다. 그는 수화 대신에 상대방 입술의 움직임과 표정을 보며 말의 맥락을 이해하는 독화(讀話)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처럼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청각장애 발병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벨이 섬을 조사하던 당시에 학자들은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유전 법칙을 모르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유전 법칙이 재조명받을 때까지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들의 청각장애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벨은 섬사람들이 수화를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섬사람들은 외부인이 듣지 못하는 것을 장애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특이한 질병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청각장애를 불행한 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외부인, 특히 비장애인들은 마서스 비니어드 섬을 청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고립된 지역으로 본다. 그러나 이 섬에서 청각장애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섬에 사는 비장애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와 수화를 같이 배우면서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한둘의 청각장애인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서스 비니어드 섬의 비장애인들은 수화를 평범한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 살았던 최후의 청각장애인은 195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이가 많은 섬사람들은 수화로 말했던 시절을 기억했다. 그들은 청각장애인을 특별한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를 기억하는 섬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청각장애인-cyrus ]에 대해서 아무것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았어요. 당신이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 섬은 살기에 대단히 좋은 장소일 거예요.”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220)

 

 

비장애인은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고, 무언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장애인으로 성급하게 판단한다. 그래서 장애를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여긴다.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 책의 역자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사람(원문은 'hearing people'이다)건청인(健聽人)이라고 옮겼다. 나는 이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청인이라는 표현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인가. 그냥 청인이라고 썼으면 어떨까 싶다.

 

126쪽 저자의 주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자신의 자녀가 청각장애인의 여부를 알기 원하는 사람들이 유능한 의학적인 유전학자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만 한다.

 

 

저자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 아직 태어나지 않는 자녀가 장애인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장애인을 아프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타자화하는 인식이 생기기 쉽다. 래디컬 페미니즘 관점에서 볼 땐 장애 여성 또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만약 장애인 태아를 양육할 수 없다면 임신 중지(낙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장애학을 공부한 여성주의 철학자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태아의 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전자 분석 기술이 도입된다면, 장애인은 태어나선 안 되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존재라는 편견을 형성할 수 있다. 모든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예상 수명과 장애 여부를 판정하여 태어나야 할 존재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로 분류하는 것은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리뷰 제목 주] 이 책의 8장 제목이다.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마서스 비니어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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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1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애와 비장애, 건강과 비건강,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는데도, 현실에서는 차별과 구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18-12-12 16:48   좋아요 0 | URL
상대방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편협한 기준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도 이런 오류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싸이러스 님 보면서 항상 알라딘계의 쓰는기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두 글을 올리는 게 쉬운 게 아니죠. 더군다나 꽤 공들인 글들인데 말이죠..

cyrus 2018-12-12 16:57   좋아요 1 | URL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책의 핵심 내용이라든가 관심 있는 내용을 한글 파일에 입력해서 저장해요. 보통 이런 작업을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 하는 경우가 있지만, 시간이 많은 주말에 많이 하는 편입니다. 평일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밤 12시나 1시에 잠을 청합니다. 카프카처럼 생활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카프카는 낮에 보험회사 사무직에서 일하고, 밤에 글을 썼어요. 밤에 글 쓰는 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죠. 카프카는 밤새면서 글을 쓰면 다음 날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요. 결근하고 싶으면 회사에 몸이 아프다면서 핑계를 둘러댔어요. 사실 저도 카프카처럼 그런 거짓말을 한 적이 있어요.. ^^;;

雨香 2018-12-12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서즈 비니어드》는 장애란 결코 장애인 개인의 문제도,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님을 보여준다. 즉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이며, 장애인은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차별받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수화를 쓰지 않는 사회에 청각장애인은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

예전에 장애운동에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이야기한 부분이 바로 사회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소개해주신 책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읽지는 않고, 읽어서 도움이 될 분들에게 선물할 것 같기는 합니다.)

cyrus 2018-12-12 16:59   좋아요 1 | URL
지난달에 페미니즘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거부당한 몸>을 읽었어요. 독서모임에 자주 참석하는 페미니스트들 멤버들이 아니었으면 이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을 계기로 장애에 관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장애학과 장애 운동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안 된 초짜입니다.. ^^
 

 

사람은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다치거나 병이 들면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장애인이 된다. 내년이면 우리나라에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나온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1년에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면서 처음엔 ‘장애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일부에서 ‘자(者)’가 ‘놈’을 뜻한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1989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돼 현재 ‘장애인’이 공식 용어가 되었다.

 

198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라는 단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장애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장애우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식으로 기재되지 않은 용어이다. 그런데도 지금도 여전히 언론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장애우’는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만든다. 비장애인은 ‘장애우’의 의미를 ‘비장애인에게 도움받아야 하는 친구’ 정도쯤으로 가볍게 인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에는 장애인이 비주체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장애우’는 장애인 자신을 표현하는 1인칭으로 쓸 수가 없다. 장애인이 ‘나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하면 ‘장애가 있는 나’를 표현한 건지, 아니면 ‘장애가 있는 친구’를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다. ‘친구’는 혼자가 아닌 상대가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말은 문법상 맞지 않다.

 

 

 

 

 

 

 

 

 

 

 

 

 

 

 

*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그린비, 2013)

 

 

 

장애인들은 무심코 들리는 말 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비장애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장애인이 해냈다’라는 찬사 속에도 ‘장애인은 비정상이다’ 또는 ‘역경을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은 불행하다’라는 편견이 들어있다. 《거부당한 몸》(그린비)은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들의 편협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다. 장애인들이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언론과 미디어는 그들을 ‘인간 승리’ 또는 ‘역경을 극복한 영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칭송한다. 이런 ‘장애인 영웅 신화’는 1%의 ‘성공한 장애인’과 그렇게 되지 못한 99%의 장애인들 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장애인 영웅 신화’에 익숙한 비장애인들은 ‘장애’를 모든 장애인이 극복해야 하는(극복할 수 있는) ‘장벽’으로 잘못 인식한다. 장애인은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가진 사람일 뿐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

 

 

 

‘기형’을 장애의 의미에 결부시켜 쓰는 경우가 많다. 기형은 의학적인 용어로 신체의 선천적 형태 이상을 가리킨다. 의학계에서는 기형이란 용어 대신 ‘선천성 이상’ 또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선천적 질환(illness)으로 인해 생긴 장애를 ‘질병(disease)과 구분 없이 사용하면 장애 경험이 없는 비장애인은 장애를 ‘건강하지 않은, 치유가 어려운 상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비장애인은 질병과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내 몸에 있는 질병은 몸 전체가 느끼는 생생한 고통이지만, 나와 무관한 질병은 단어로만 존재하는 관념일 뿐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질병은 ‘은유’를 동반한다. 불행을 동반하는 불치병일수록 은유는 부정적인 어휘가 된다. 그래서 장애는 ‘건강하지 않은’ 개인의 문제로, 건강은 당위가 아니라 욕망이 된다. 건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무서워서’ 건강해지고 싶은 것이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자신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이후)에서 ‘질병은 질병일 뿐, 질병은 저주가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니므로 곤혹스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는 암 투병을 계기로 그녀는 암이라는 질병이 죽음의 은유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암이 누구나 올 수 있는 평범한 질병으로 바뀐 오늘날, 이러한 은유의 무게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이들은 아마 장애인들일 것이다. 비장애인의 편견 속에서 장애는 질병 자체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실제로 많은 장애가 통증이나 합병증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질병과 그에 따른 통증을 장애에 무조건 끼워 맞춰서 설명하는 것은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의 몸은 ‘병들고 아픈 몸’으로 남게 된다. ‘병들고 아픈 몸’은 ‘질병과 장애가 없어서 건강한 정상인의 몸’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비장애인은 ‘정상인의 몸’을 가지기 위해 장애와 질병을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장애는 ‘질병’이라는 은유로 바뀐다. 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픔과 불편함을 참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비장애인은 질병을 극복하지 못한 장애인을 볼 때마다 측은지심을 느끼고,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는 혼자 살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장애가 있는 삶을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믿는다. 이렇듯 현실을 추상화하고 결과로서의 은유는 장애 경험과 장애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역효과를 일으킨다.

 

장애는 저주가 아니며, 불행을 안겨주는 질병도 아니다. 건강한 몸으로 장수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의 몸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젊고, 아프지 않고, 팔팔한 몸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에 대한 상투적 표현이나 은유에 물들지 않으려면, ‘장애를 가진 다양한 몸’과 그 몸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장애’를 이야기하면서 ‘몸의 차이’가 ‘차별’로 구조화된 인식을 해체할 수 있는 좋은 연구들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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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우린 누구나가 다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cyrus 2018-12-11 17:05   좋아요 1 | URL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는 통합 교육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이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분해서 가르치면, 비장애인 학생은 장애에 무지한 상태로 자라게 됩니다. 장애를 낯설어하고, 장애인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해요. 제가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장애인 친구를 알게 되기 전까지 그렇게 장애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장애인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그런 지식이 ‘삶의 지혜‘가 되거든요. ^^

카알벨루치 2018-12-11 17:15   좋아요 1 | URL
미국이나 선진국은 그런 교육적 환경이 가능한 것 같은데 , 그것도 교육한다고 무조건 되는건 아닌 것 같고 학부모의 인식과 의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학부모의 의식이 그런 배려가 생길려면 무거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학부모나 교육의 일선에 선 사람들, 아니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전에 어떤 분이 장애인화장실에다 물건을 쌓아 창고로 활용했던 경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장애인학교 교사가 그걸 목격하고는 항의를 하더라군요 그때 제가 깜짝 놀랬지요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하고 무심하게 넘겼던 저의 무신경함을 반성했더랬어요!

cyrus 2018-12-11 17:3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사회가 빨리 변하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정책 하나 생각하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또 살면서 익숙하게 느꼈던 인식을 확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요.

2018-12-11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1 17: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장애학을 공부하면 내 몸의 한계를 이해하게 되고, 장애인을 ‘차별받고, 사회에서 분리해야하는 존재’로 만드는 사회구조 전체를 볼 수 있어요. 정말로 이런 사회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장애’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2018-12-12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2 17:01   좋아요 1 | URL
<거부당한 몸>을 읽기 전에는 장애인들에게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그런 찬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보면서 제가 장애와 장애인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자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 페가나북스클라크 애슈턴 스미스(Clark Ashton Smith)의 대표작인 조티크(Zothique)연작을 출간했다. 스미스는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러브크래프트(Lovecraft)코난 연대기(Conan Saga)로버트 E. 하워드(Robert Ervin Howard)와 동시대에 활동한 미국 장르문학의 거장이다[1]. 그의 작품은 이미 선집 형태로 출간된 적이 있다. 러브크래트트 전집의 특별판으로 소개된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황금가지)은 총 1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선집을 통해 소개되었던 조티크 연작은 다섯 편이다. 조티크 연작 중 하나이자 좀비(Zombie)가 등장하는 Necromancy in Naat나트에서의 마법이라는 제목으로 좀비 연대기》(책세상)에 선보였다.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조티크(페가나북스, 2018)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조티크 (샘플 북)(페가나북스, 2018)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황금가지, 2015)

* 정진영 옮김 좀비 연대기(책세상, 2017)

 

   

 

 

조티크는 스미스가 창작한 가상의 대륙 이름이다. ‘고대를 뜻하는 앤티크(Antique)의 운을 따서 만든 명칭이라고 한다. 조티크는 과학 기술과 종교가 완전히 사라진 지구 최후의 대륙이다. 그곳에는 악마를 숭배하는 밀교와 고대 마법만이 남아 있다. 스미스는 조티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조티크 연작은 단편 16, 1, 희곡 1으로 구성되어 있다. 페가나북스는 조티크 연작 전부 번역했다. 페가나북스 판과 황금가지 판에 수록된 조티크 연작은 다음과 같다. 스미스의 작품 대부분은 환상소설과 공포 문학을 주로 소개한 펄프 픽션 <위어드 테일즈(Weird Tales)>를 통해 발표되었다.

 

 

 

 

* The Empire of the Necromancers (19329, <위어드 테일즈>)

마법사들의 제국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조티크

 

 

* The Isle of the Torturers (19333, <위어드 테일즈>)

고문자들의 섬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조티크

 

 

* The Voyage of King Euvoran

(1933, 스미스의 단편집 <이중 그림자>에 수록, <위어드 테일즈> 19479월 호에 게재)

에우보란 왕의 항해

조티크

 

 

* The Weaver in the Vault (19341, <위어드 테일즈>)

지하묘지의 방직공

조티크

 

    

* The Witchcraft of Ulua (19342, <위어드 테일즈>)

울루아의 마법

조티크

 

 

* The Charnel God (19343, <위어드 테일즈>)

납골당의 신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시체를 먹는 신 (조티크)

 

 

* The Tomb-Spawn (19345, <위어드 테일즈>)

무덤 속 괴물

조티크

 

 

* Xeethra (193412, <위어드 테일즈>)

지트라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조티크

 

 

* The Dark Eidolon (19351, <위어드 테일즈>)

검은 곡두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검은 신상 (조티크)

 

 

* The Last Hieroglyph (19354, <위어드 테일즈>)

마지막 상형문자

조티크

 

 

* The Black Abbot of Puthuum (19363, <위어드 테일즈>)

푸툼의 수도원장

조티크

 

 

* Necromancy in Naat (19367, <위어드 테일즈>)

나트에서의 마법 (호러 연대기)

나트의 강령술 (조티크)

 

 

* The Death of Ilalotha (19379, <위어드 테일즈>)

일라로타의 죽음

조티크

 

 

* The Garden of Adompha (19384, <위어드 테일즈>)

아돔파의 정원

조티크

 

 

* The Master of the Crabs (19483, <위어드 테일즈>)

게의 지배자

조티크

 

 

* Zothique (1951, 시집 <검은 성>에 수록)

조티크

조티크

 

 

* The Dead will Cuckold You (1951년에 쓴 것으로 추정됨, 1989년에 공개됨)

죽은 자가 부정(不貞)을 저지르리라

조티크

 

 

* Morthylla (19535, <위어드 테일즈>)

모르틸라

조티크

 

 

 

 

스미스의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보다는 환상,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곳에 서 있으며, 비이성과 광기의 세계를 대변한다. 그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속에서 헤매거나 꿈과 환상 속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는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나타난다.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 마지막 상형문자는 러브크래프트에서 영감을 받은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 분위기를 제대로 담아낸 작품이다. 아돔파의 정원은 인간의 신체 일부와 식물을 접붙인 괴물이 등장한다. 게의 지배자는 스미스가 절필한 지 10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조티크 연작에서 유일한 1인칭 소설이며 흥미진진한 모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조티크 연작을 읽기 전에 무료로 구매할 수 있는 샘플 북을 꼭 챙겨 보는 것이 좋다. 이 샘플 북에는 조티크 연작 일부만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샘플 북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를 정도로 스미스의 생애, 조티크 연작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이 채워져 있어서 내용이 알차다. 샘플 북이 아니라 해설서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자면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페가나북스이다. 1인 전자책 전문 출판사이다. 번역, 출판물 제작, 홍보 등 모든 업무를 엄진이라는 분이 다 하고 있다. 2014년에 처음으로 페가나북스를 알게 됐는데, 매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한편으론 종이책으로 나와도 잘 팔리지도 않는) 장르문학 작품들을 소개하는 엄진 님의 노고에 이 글로나마 감사를 표한다.

 

 

 

 

[] 스미스와 러브크래프트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리뷰를 참고하면 된다.

http://blog.aladin.co.kr/haesung/9659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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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큐큐퀴어단편선 1
이종산 외 지음 / 큐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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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퀴어(Queer)는 레즈비언 · 게이 · 양성애자 · 트랜스젠더 등 세상의 모든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퀴어 소설은 성소수자의 일상을 전면으로 다룬 소설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성소수자가 등장하지 않는 퀴어 소설도 가능하다. 이런 퀴어 소설은 세상을 바라보는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一般, 이성애자)’ 작가가 소설에서 ‘이반(異般: 성소수자)’ 서사를 조형하는 일은 매우 정교한 작업이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는 1인 퀴어 문학 전문 출판사인 큐큐가 선보인 국내 첫 퀴어 단편 선집이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여섯 편의 소설들은 서양 고전을 퀴어 서사로 변주한 것이다.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가 쓴 『가든파티』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맨스필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발표된 이 소설은 파티에 들뜬 부유한 사람들과 교통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비참함을 비교하며 인생의 한 단면을 펼친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그저 유복한 집 안에서 자란 소녀가 가난한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 후 겪는 심리 변화만 따라간다. 『가든파티』가 그랬듯이 이종산 작가의 『볕과 그림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삶의 진실에 깨닫는 인물의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죽음은 언제나 삶과 함께한다. 죽음은 삶, 그다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종산 작가는 ‘죽음’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의미도 주목한다. 사랑도 우리 삶의 일부이다. 상실은 또 다른 사랑을 통해 치유된다. 『볕과 그림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느끼는 상실의 감정을 어떻게 마주치면서 극복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삶은 고통스러우나 또한 그것을 ‘사랑’과 함께 안고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붙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기쁨과 묘한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고는 한다.

 

(작가 노트, 35쪽)

 

 

김금희 작가의 『레이디』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애러비』『죽은 사람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소설이다. 아련하고 애틋한 여고생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퀴어 문학의 고전이다. 도리언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다. 박상영 작가의 『강원도 형』에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인스타그래머 ‘도이언’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언론, 광고 같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외모 강박이나 외모지상주의는 점점 더 고착화하고 있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성소수자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외모지상주의는 성소수자의 몸에 대한 편견(“성소수자는 예쁘장한 외모를 유지하려고 화장을 한다”)을 낳을 뿐만 아니라 몸의 차이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임솔아 작가의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허먼 멜빌(Herman Melville)『선원, 빌리 버드』를 변주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타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여 ‘정상’으로 만들려는 ‘선한 폭력’이 어떻게 인간 대 인간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는 특정한 사람만을 ‘정상’으로 인정한다. 자신이 느끼는 삶의 결핍이나 통증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타자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자기의 유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성은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135쪽)

 

 

강화길 작가의 『카밀라』는 레즈비언 뱀파이어가 나오는 세리든 르 파누(Sheridan Le Fanu)의 동명 소설을, 김봉곤 작가의 『유월 열차』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은하철도의 밤』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여섯 편의 소설은 생각하기에 따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들이 ‘평범하게’ 느껴졌다면 이 책을 만든 작가와 출판인들 입장에선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들의 사랑 또한 인간으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큐큐퀴어단편선’은 매년 한 권씩 선보인다고 한다. 여전히 세상에 호명되지 못한 성소수자들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왔으면 한다. 이야기는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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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식인 -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7
임호준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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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사순절(四旬節) 기간에는 예수의 행적을 생각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사순절은 ‘40일’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을 일컫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사순절은 예수의 삶을 묵상하는 기간이자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경건한 기간이다. 카니발(carnival)은 사순절을 앞두고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기독교 전통 축제이다. 카니발이란 말은 ‘육식 금기’를 뜻하는 라틴어 ‘carne vale’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면과 화려한 복장을 하고 카니발에 참여할 수 있어 이때만큼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평등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시끌벅적한 축제처럼 보이는 카니발에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열어 보여주는 유용한 열쇠를 찾아냈다. 인간은 질서에 순응하여 살면서도 동시에 전복을 꿈꾼다. 바흐친에 의하면 카니발은 인간의 이런 이중적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문화 현상이다. 카니발은 해방된 삶이다. 카니발 기간에는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질서 상태가 된다. 보통의 삶에 제약을 가하던 모든 금기와 구속이 일시적으로 제거된다. 카니발은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다. 모든 금기가 제거된 카니발에서는 거꾸로 된 논리, 반대로 된 논리가 상식을 제압한다. 왕이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이 되며, 성직자는 모독당하고 광대는 추앙받는다. 권위는 추락하고 금욕주의는 조롱당한다.

 

사람이 인육을 먹는 풍습을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 한다. 이 용어는 과거 식인 풍습이 있다고 알려진 서인도제도의 카리브 인들을 가리키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됐다. 15세기경 서인도제도에 처음으로 가본 스페인 정복자들은 카리브 인들이 인육을 먹는다고 믿었다. 스페인의 후원을 받아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Columbus)는 항해 일지에 카리브 해 식인종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역사적으로 사람이 인육을 먹는 행위는 여러 가지 이유로 행해졌다. 주술 혹은 미신이나 종교에 의해 인육을 먹으면 특별한 힘이나 현상이 나타나거나 먹은 사람이 생전에 갖고 있던 힘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경우도 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려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했다. 그러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풍습과 신앙은 ‘야만인’의 특성으로 알려졌고, 서구인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식인종 신화’는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식인종은 야만인의 표본이 되었다. 야만인은 문명인에게 길들지 않은 존재를 지칭했다. ‘식인종 신화’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즐거운 식인》은 문명인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식인 풍습을 ‘카니발’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라틴아메리카의 ‘식인주의’를 소개한다. 식인주의. 국내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1920년대 브라질에서 처음 시작된 저항 예술을 설명하는 데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개념이다. 식인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주체적인 문화적 정체성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모더니스트들은 식인주의를 내세워 식인종 신화에 맞서 유쾌하게 응수했다. 야만인 담론, 식인종 신화가 유럽인의 문명 우월주의를 부각하기 위해 식인 풍습을 ‘혐오 행위’로 보게 했다면, 식인주의는 유럽인의 시각이 반영된 식인 풍습을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즐기는 ‘축제 행위’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바흐친이 확인한 ‘카니발’의 특징과 비슷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식인주의는 서양 문화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골라 먹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식인주의 운동은 유럽 문화를 씹고, 뜯고, 맛을 보면서 소화해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자산으로 만들려는 문화 운동이다.

 

라틴 아메리카인들에게 있어서 식인주의는 모든 민중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한 웃음이다. 라틴 아메리카 지성인들은 식인주의 운동을 통해 유럽 식민주의적 권력의 억압과 위선을 깨부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생성과 갱생의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카니발은 유럽 기독교 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흐친이 현재까지도 살아있다면 유럽을 ‘씹어대고 배설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카니발 문화를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그는 카니발에 주목한 책을 다시 썼을 것이다.

 

 

 

 

※ Trivia

 

* 11쪽

어떨결에 → 얼떨결에

 

 

* 39, 40쪽

1943년 → 14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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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12-0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롭군요. 일단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cyrus 2018-12-08 08:20   좋아요 0 | URL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

2018-12-07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08 08:39   좋아요 0 | URL
기독교, 이슬람교는 중동에서 시작됐어요. 서로 다른 면이 많지만, 조금은 비슷한 면도 있어요. ^^

페크pek0501 2018-12-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복과 지배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있지요. 모든 인간은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

오자를 잘 밝혀 놓으셨네요.

cyrus 2018-12-09 16:08   좋아요 0 | URL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현상은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요.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진리는 절대 진리죠.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