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서재를 탐하다’ 책방에서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송년회가 열렸습니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우주지감’의 마지막 모임이었습니다. 우주지감, 그리고 책방 ‘서재를 탐하다’와 ‘읽다 익다’를 알게 된지 일 년 정도 됐습니다. 작년 11월 24일에 ‘서재를 탐하다’에서 로쟈 이현우님의 첫 번째 강연이 있었고, 그 다음 달에 ‘읽다 익다’에서 두 번째 강연이 있었습니다. 두 번의 강연을 참석하면서 ‘우주지감’을 알게 됐고, 그때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돌베개, 2013)

* [품절] 헤르만 헤세 《인도 여행》 (푸른숲, 1999)

 

 

 

 

‘우주지감’ 송년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었습니다. 1부는 12월 선정 도서(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라면, 2부는 ‘우주지감’ 송년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행사들이 진행되는 시간입니다.

 

 

 

 

 

 

‘우주지감’ 송년회는 올해 들어 여섯 번째입니다. 송년회에 참석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책 나눔’을 연례행사로 펼쳐오고 있습니다. 각자 가져온 책을 서로 교환하는 행사입니다. 그래서 송년회에 참석하려면 책 한 권을 반드시 가지고 와야 합니다. 저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인도 여행》(푸른숲)을 챙겨 왔습니다. 헤세가 30대에 인도를 여행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기록한 글입니다. 《인도 여행》은 나온 지 오래된 헌책이고, 서점에 구하기 힘듭니다. 저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우주지감 회원 중에 헤세의 글을 좋아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을 위해서 헤세의 책을 가져 왔습니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1998)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에이도스, 2017)

 

 

 

이 날 모임에 내년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선정 도서가 공개됐습니다. 제가 추천한 두 권의 책 모두 선정됐습니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호밀밭의 파수꾼》(문예출판사, 민음사)웬다 트레바탄(Wenda Trevathan)《여성의 진화》(에이도스)입니다.

 

 

 

 

 

 

 

 

 

 

 

 

 

 

 

 

 

 

 

 

* 나쓰메 소세키《그 후》 (현암사, 2014)

* 나쓰메 소세키《그 후》 (민음사, 2013)

 

 

 

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내년 1월 지정 도서여야 한다고 추천했는데요, 2월 지정 도서로 결정되었습니다. 1월 지정 도서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장편소설 《그 후》(현암사, 민음사)입니다. 이 책은 2013년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세 번째 지정 도서였습니다. ‘우주지감’의 1월은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기간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모르고, 1월에 샐린저를 읽을 수 있다면서 설레발을 쳤습니다. 이제 막 ‘우주지감’ 일 년 째 활동한 제가 주제를 모르고 1월에 샐린저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요구했으니 부끄럽습니다.

 

책방 공간이 협소해서 저를 포함한 열다섯 명이 송년회에 참석했습니다. 음식은 책방지기 두 분이 준비했습니다. 올해 송년회의 드레스코드는 ‘빨강’이었습니다. 빨간 색 옷을 입거나 빨간 색과 관련된 장신구를 착용해야 합니다. 저는 여름, 가을에 입는 빨간 색 상의를 입었는데요, 하필이면 송년회가 있는 그 날이 가장 추운 날씨였어요. 점퍼를 입었는데도 그 날 겨울 칼바람이 너무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 1997)

 

 

 

2부에는 ‘책 나눔’ 행사뿐만 아니라 ‘베스트 분위기 메이커’ 상과 ‘올해의 베스트 도서 추천’ 상을 뽑는 행사도 진행되었습니다. 올해의 책은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로 선정되었습니다. 급조된 행사였지만 ‘베스트 드레서’를 뽑는 시간을 가졌고, ‘우주지감 사행시 대회’도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우주지감’ 사행시를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우주지감은 내년부터

주경야독(晝耕夜讀)합니다.

지인짜(진짜)

감동받았습니다. 내년에도 책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내년부터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모임은 저녁에 진행됩니다. 그래서 낮에 일하고, 저녁에 책방에서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상황을 ‘주경야독’으로 표현했습니다. ‘지인짜’는 ‘진짜’를 강조하기 위한 ‘시적 허용’입니다. 사실 ‘우주지감’의 ‘감’ 자는 ‘감동’을 뜻합니다. 재미있게 쓴 사행시는 아니지만, ‘우주지감’에 향한 진심을 담아서 써봤습니다. 저보다 재미있게 사행시를 썼거나, 시인으로 빙의해서 감동적인 사행시를 쓰신 분들이 있었는데도 제가 쓴 사행시가 ‘우주지감 사행시 대회’ 1등이 되었습니다. 1등 수상자의 특혜는 책방에 있는 책 중에 한 권을 무료로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무슨 책을 골라야할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몇 분 동안 생각한 끝에 제가 고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니코마코스 윤리학》(길)이었습니다.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니코마코스 윤리학》 판본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길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은 안 읽어봤어요. 사실, 퇴근하고 책방에 오기 전에 헌책방과 알라딘 서점에 들렀어요. 헌책방에서 책 세 권, 알라딘 서점에서 책 네 권(두 권은 이미 ‘픽업 서비스’로 주문한 것입니다)을 샀고, 책방에서 책 두 권을 얻었습니다. 그 날 하루 동안 제 가방 안에 들어있는 책은 총 아홉 권이었습니다.

 

저의 첫 ‘우주지감’ 송년회는 푸짐한 음식과 책들로 채워진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즐겁게 마무리된 송년회에 몇 번 참석했지만, 그 중에 가장 즐거웠던 송년회는 ‘우주지감’ 송년회였습니다. 이 특별했던 날의 감동을 오래오래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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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31 11:28   좋아요 0 | URL
송년회가 주말에 했으면 새벽 4시까지 이어졌을 거예요.. ㅎㅎㅎㅎ

서니데이 2018-12-31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올해 두 개의 오프라인 모임 하시고, 알라딘 서재에도 글 쓰시는 바쁘고 좋은 한 해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좋은 일들 많은 2018년 보내셨나요. 내년에는 더 좋은 일들과 기쁜 일들 가득한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제 서재에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연말 따뜻하게 보내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cyrus 2019-01-01 14: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올해에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

syo 2018-12-31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 박사님, 언제나처럼 박사님이 있어서 든든한 알라딘의 2018년이었어요.
2019에도 한결같이 알라딘의 든든이로 활약해주시기를 바라면서,
2019에는 어떤 경로로든 얼굴 한 번 봐요ㅎㅎ
이게 2017부터 나온 말이니 햇수로 3년째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의 숙원사업이로구만요?ㅎ

cyrus 2019-01-01 14:26   좋아요 0 | URL
올해는 덜 아픈 알라딘의 튼튼이가 되고 싶습니다.. ㅎㅎㅎ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되십니까? 그 날 스몰토크가 문 열진 모르겠습니다만 거긴 말고 편안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없어요. ^^

syo 2019-01-01 15:35   좋아요 0 | URL
네.... 저는 뭐 괜찮습니다. 아시잖아요. 저 시간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모자란 사람인걸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8-12-31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 소설집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단편 하나가 짧아서 반복해 읽는 재미가 있더군요.
역시 반복 독서는 좋은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해에도 변함없이 좋은 이웃이길 바랍니다.

cyrus 2019-01-01 14:28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샐린저의 단편소설을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샐린저의 문학 세계를 분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ㅎ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

겨울호랑이 2018-12-31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8년 한 해동안 꾸준하게 활동하는 독서가의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cyrus 2019-01-01 14:39   좋아요 1 | URL
연희 돌보랴, 고양이 돌보랴 쉴 틈이 없을 텐데 책을 많이 읽고, 글 쓰는 겨울호랑이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올해도 많이 읽고, 건필하세요. ^^

카알벨루치 2018-12-31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 둘러보다 시루스박사란 책을 봤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Happy New Year!

cyrus 2019-01-01 14:40   좋아요 1 | URL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저를 조금이나마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목나무 2018-12-31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의미있는 송년회를 보내셨네요.
꾸준히 이어갈 그런 모임이라 그저 부럽습니다. ^^
cyrus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숨은 좋은 책 많이 소개해주셔요.^^

cyrus 2019-01-01 14: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설해목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카스피 2019-01-01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cyrus 2019-01-01 14:42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psyche 2019-01-01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함께 한 사람들과 이런 송년회라니. 정말 부럽습니다! 내년에도 cyrus 님의 수준 높고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9-01-01 14:46   좋아요 0 | URL
저의 지루한 글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프시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blueyonder 2019-01-01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지난 한 해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19-01-01 14:48   좋아요 1 | URL
오히려 제가 blueyonder님께 감사합니다. blueyonder님 덕분에 최신 과학 정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과학 도서들을 소개해주세요. ^^

AgalmA 2019-01-01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부지런은 정말 우주지감? ㅎㅎ
독서모임에 페미니즘 모임에 서재 댓글의 달인까지ㅋㅋ
2019년엔 어떤 책 독파로 또 달려가실지 기대됩니다^^

cyrus 2019-01-02 13:37   좋아요 0 | URL
이번 달에도 읽어야 할 책이 많습니다. 읽어야 할 책 리스트의 50% 지분은 우주지감과 레드스타킹입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9-01-0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하 ~ 역시나 의미 있는 송년모임이었네요.
달궁도 마지막 모임을 가졌는데 저는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열심으로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cyrus 2019-01-02 13:39   좋아요 0 | URL
달궁 멤버들은 지금도 뒷풀이 시작하면 새벽까지 달리나요? ㅎㅎㅎ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
 

 

 

아이슬란드는 인구 30만 명 안팎의 작은 나라지만 가진 것이 많고,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눈부시도록 하얀 만년설과 빙하, 지금도 활활 끓어오르는 화산들, 거기에 ‘밤하늘의 커튼’ 오로라까지 볼 수 있다.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밤하늘의 오로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권 바로 아래에 있는 곳이라서 국토의 절반이 빙하로 덮여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실내 생활에 익숙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했고, 아이슬란드는 세계적인 ‘애서가의 나라’가 되었다. 온 국민이 책을 좋아하다 보니 아이슬란드에서는 1년 내내 책 관련 행사가 이어진다. 크리스마스 인기 선물로는 언제나 책이 1위를 차지한다.

 

내 독서 습관은 아이슬란드 사람들과 비슷하다. 휴일에는 방에 책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보다는 나 혼자서 노는 것(책 읽기)을 좋아한다. 휴일에 내가 주로 가는 곳은 도서관, 서점, 헌책방이다.

 

 

 

 

 

 

 

 

 

내일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모임 겸 송년회가 있어서 주말과 크리스마스에 가오싱젠(高行健)《창작에 대하여》(돌베개) 1부까지만 읽었다. 가오싱젠은 200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출신의 프랑스 작가다. 그는 극작가, 무대 연출가, 소설가, 화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문화혁명이 일어난 이후에 가오싱젠은 마오쩌둥 정부에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 때문에 그는 중국당국의 밀착 감시를 받게 됐다. 당국의 감시가 심해지자 가오싱젠은 1987년에 중국을 떠나 이듬해에 정치적 난민 신분으로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고 곧이어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창작에 대하여》는 가오싱젠이 생각하는 ‘문학’, ‘소설’, ‘미학’, ‘예술’의 의미를 정리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술과 문학이 국가 권력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되며, 예술가와 작가 개인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예술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 가오싱젠 《창작에 대하여》 (돌베개, 2013)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심상욱 《J. D. 샐린저 생애와 작품》 (동인, 2011)

* 김성곤 《J. 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 (살림, 2005)

 

 

 

 

가오싱젠의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돼서 오랜만에 J. 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호밀밭의 파수꾼》(민음사)도 읽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은 여러 종이 있는데, 민음사 판본은 오역이 많은 편이다. 수중에 있는 번역본이 민음사 판본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읽었다. 샐린저의 책을 펼친 이유는 샐린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그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된다. 1월 1일은 샐린저가 태어난 날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읽을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추천했다. 올해 모임에 꾸준히 참석(9월에 딱 한 번 불참했다)한 덕분에 문학 분야 책 1권과 비문학 문야 책 1권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됐다.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내년 1월에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강조하면서 추천했다. 1월은 샐린저의 달이다. 1919년 1월 1일에 태어나 2010년 1월 27일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한 두 권의 책(나머지 한 권은 《여성의 진화》)을 포함해서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후보 도서는 총 15권이다. 한 사람당 4권의 책을 골라서 투표할 수 있고 투표 결과에 따라 총 8권의 책이 내년에 읽게 될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로 결정된다. 12월 20일부터 24일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사흘 동안 투표가 진행되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 9표를 받았다. 당연히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여성의 진화》(에이도스)에 한 표씩 투표했다. 아직 결정이 난 건 아니지만, 내년 1월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확실하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아홉 가지 이야기》 (문학동네, 2004)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문학동네, 2004)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프래니와 주이》 (민음사, 2015)

 

 

 

지난주부터 어제 크리스마스까지 샐린저의 작품들과 샐린저의 문학론을 정리한 책들을 연달아 읽었다. 예전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샐린저의 진가와 그동안 과장되어 왔던 평가에 가려진 ‘한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달에는 샐린저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써보려고 한다. 일단 1월 1일에 《호밀밭의 파수꾼》 리뷰를 공개하는 것이 내 첫 번째 과업이다. 몇 년 전에 《호밀밭의 파수꾼》 리뷰와 샐린저의 소설들에 대한 감상문을 쓴 적이 있지만, 지금 이 두 편의 글을 다시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주관적인 해석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과거의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한 권만 가지고 샐린저를 단정적으로 평가했다. 샐린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아홉 가지 이야기》(문학동네), 《프래니와 주이》(민음사),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문학동네)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을 읽어야 하는데, 그 중에 ‘글라스 일가(Glass Family)’ 사람들이 나오는 작품들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샐린저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소설인 『하프워스 1924년 16일』까지 포함하면 읽을거리가 많다. 샐린저를 알기 위한 독서 코스는 《호밀밭의 파수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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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8 16:49   좋아요 0 | URL
오늘 새벽 12시 조금 넘어서 송년회가 마무리되었는데, 잠을 늦게 자서 그런지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네요.. ㅎㅎㅎㅎ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ㅎㅎㅎ 그래도 어제 정말 즐거웠어요. ^^

페크pek0501 2018-12-29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인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디오로 들었어요. 한 달 가량 쭉 들었었죠.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내년 1월에 읽을 책으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을 택했어요. 이미 사 두었고 6백쪽이 넘어서 부담은 되지만 올해 9백쪽 가량의 위대한 유산 1, 2를 읽었으니 그것도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있어요.
내년 1월 1일의 리뷰, 파이팅입니다.

cyrus 2018-12-31 11:06   좋아요 1 | URL
주말에 놀아서 글을 쓰지 못했어요. 1월 1일에 글을 공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혐오와 매혹 사이 -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이문정 지음 / 동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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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 정량 30g.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됨.

 

 

 

1961년 이탈리아의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는 자신의 똥을 90개의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이란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이 전시 작품(?)은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매겨져 팔려나갔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고 싶어질 것이다. “이게 미술이냐?” 당신이 『예술가의 똥』 앞에 서 있다면 그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 우선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미술을 이것저것 떠올리다가 그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미술 작품을 시각적 쾌락을 주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서 이런 지저분한 미술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알 수 없는 작품을 하물며 내 삶과 관련한 그 무엇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것, 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작품이다. 그래서 고전미술은 이해가 쉽다. 반면 현대미술은 그렇지 않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두개골(데미안 허스트), 박물관 전시실 바닥에 놓은 침대(트레이시 에민), 심지어 예술가의 똥도 미술 작품으로 인정된다. 현대미술은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 ‘의미’에 방점을 찍어 해석하고 분석하며, 관객 스스로 이해해야 하는 조형 세계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대미술, 즉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한 지점을 차지하는 예술가들은 작품의 생경함 때문에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이들의 작품은 산뜻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추하고, 혐오스럽고, 엽기적이다.

 

《혐오와 매혹 사이》는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현대미술을 집약한 책이다. 작년 말에 나온 《불편한 미술》의 개정판이다(알라딘에는 구판에 관한 정보가 없다). 비위가 약한 독자는 책을 펼치기 전에 읽을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책에 실린 도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시각적 충격’을 주는 미술 작품의 도판 몇 점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포르말린 수조에 동물 사체를 넣은 작품을 선보였다. 마크 퀸(Marc Quinn)은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모은 것을 굳혀 자신의 두상을 만들었다.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는 시체 안치소에 있는 시체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거부감과 두려움. 피하고 싶지만 어쩐지 끌리는 두 갈래 길에 직면한다.

 

인간의 혐오 심리를 분석한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이론을 연구한 저자는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 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어떻게 현대미술에서 표현되는지 소개한다. 작가들이 유독 추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있는 현실의 이면을 바라보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인간에게 있어 혐오를 유발하는 대상은 단지 아름답지 않거나 청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떤 대상이 적절한 자리에 있지 않으면 기성 체계나 기존 정체성에 벗어난 것이 된다. 크리스테바는 혐오를 유발하는 대상을 ‘애브젝트(abj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불쾌한 애브젝트를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어도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는 몸을 씻을 때마다 때를 민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때는 목욕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소중한 몸의 일부였다. 때는 애브젝트다. 우리는 이 애브젝트를 벗겨 내서 몸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씻어도 때는 다시 생긴다. 역설적으로 애브젝트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기호이다.

 

데미안 허스트와 안드레 세라노 등은 ‘죽음’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무관심과 냉소로 끔찍한 살육을 보여주는 작품 이면에 어떤 숭고함과 비장함이 어려 있어 죽음에 대한 경고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대미술은 작가의 다양한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형 세계이다. 이 조형 세계에는 과거 미술의 단골 인물이었던 신, 영웅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주인공은 작가와 관객이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것, 죽은 것, 폐기물도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된다. 과거 미술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형 세계라면, 현대미술은 관객들에게 더럽고 불편한 ‘현실’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조형 세계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애브젝트는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상태이자 물체들이다.

 

이 책을 본 독자들은 엇갈린 반응이 내놓을 것이다. 어떤 독자는 ‘그래도 이걸 미술이라고 하다니. 요즘 예술가들은 미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독자는 ‘아름답지 않지만, 계속 보니 이 작품이 관객에게 무얼 전달하고 싶은지 알겠어’하면서 수긍할 것이다. 전자의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움이 동시대 미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사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알려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당대 사람들은 ‘추한 그림’이라고 놀리면서 비난했다. 지금 난해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이 시간이 좀 지나지 않으면(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으로 새롭게 인정받을지 모른다.

 

 

 

 

 

※ Trivia

 

* 103, 105쪽

허스트는 주물을 떠 백금으로 만든 해골에 1106.18캐럿에 달하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어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빛나는 투명한 수정으로 조각된 고대 아즈텍의 두개골의 연상시킨다.

 

→ 고대 아즈테카인이 만들었다는 일명 ‘크리스탈 해골’은 영화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한 불가사의한 유물로 알려졌으나 오래 전에 ‘가짜’로 판명되었다.

 

 

* 221쪽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19)이다.

 

→ 작품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66년에 나온 작품이다. 1819년은 쿠르베가 태어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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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21 2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에다가 이런 댓글 달기가 좀 웃기긴 하지만, 시루스 박사님.
2018 당연한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구요.
2018 레드스타킹 만나서 인생 이모작(??) 시작하신 것도 축하드리구요.
2018 하여간 축하드려요 ^-^

카알벨루치 2018-12-21 23:51   좋아요 0 | URL
웃긴다 쇼님 ㅋ

cyrus 2018-12-23 15:53   좋아요 1 | URL
인생 사모작입니다. 일반인 최 씨, 알라딘 cyrus, 레드스타킹, 우주지감... ㅎㅎㅎㅎㅎ syo님도 축하드립니다. 서재의 달인, 댓글왕 2관왕이네요.. ^^

2018-12-2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5:56   좋아요 0 | URL
깡‘똥’을 왜 90개나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많이 팔려고 만든 거겠죠? ㅎㅎㅎㅎ

2018-12-2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6:01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예술가의 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겁니다. 가령, <예술가의 똥>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거나,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겠죠. 이러한 여러 가지 반응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미술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관객의 반응을 거부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12-2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박사님, 메리 크리스마스^^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늘 우리에게 큰 도전 계속 주시길 바랍니다 시루스박사님 뵈면 체호프와 전쟁과평화가 생각납니다 ㅎㅎ 늘 감사해요

cyrus 2018-12-25 08:41   좋아요 1 | URL
메리 크리스마스~ 카알벨루치님처럼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올해도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18-12-25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탄절이네요...

저도 싸이러스님 덕분에 램프의 요정
에 안착할 수 있었네요 ㅋㅋ
아무도 찾지 않는 블록 시절에도 꾸
준히 덧글도 달아 주시구...

감사하고 메리 크리스마수입니다.

cyrus 2018-12-26 17:16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의 진가를 알아 봐주는 알라디너들이 늘어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레샥매냐님이 알라딘에 활동하지 않았으면 독서 욕구가 많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

서니데이 2018-12-25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크리스마스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어제보다는 덜 춥지만 날씨가 차갑습니다.
따뜻한 성탄절 휴일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도넛 경제학 - 폴 새뮤얼슨의 20세기 경제학을 박물관으로 보내버린 21세기 경제학 교과서
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빈 옮김 / 학고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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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0주년을 맞은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의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와 뉴욕대의 폴 로머(Paul Romer)가 공동 수상했다. 노드하우스는 기후 변화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 연구했으며, 로머는 지식 기반 기술 혁신을 통해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내생적 성장 이론’을 제시하여 주목받았다. 노드하우스의 스승은 1970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다. 새뮤얼슨이 1948년에 발표한 《경제학》은 거의 반세기 동안 전 세계 주류 경제학의 표준이었다. 가장 많이 팔린 경제학 원론 교과서가 됐으며 2009년까지 19판을 찍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19판은 새뮤얼슨의 마지막 저서이다. 《경제학》은 그에게 노벨상 수상의 명예보다 훨씬 실속 있는 어마어마한 인세 수입을 안겨줬다. 노드하우스는 1985년 12판부터 《경제학》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경제학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새뮤얼슨이 즐겨 썼던 말이다. 경제문제가 왜 일어나는지, 그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지만 꼭 어떻게 된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경제현상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끝없는 욕망과 완벽한 합리성을 갖춘 인간,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본다.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에 따르면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정확한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앞서 언급한 새뮤얼슨의 말을 돌이켜보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실체에 갸우뚱해진다. 인간은 항상 합리적인 예측을 하면서 항상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또 인간은 때에 따라서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현실 속 인간은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사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전혀 다르다.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인간상과 현실의 인간상이 다를 때 교과서 속의 경제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이런 경제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경제정책 역시 현실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기도 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전제해온 주류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소득이 많고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그 사람은 많은 이익을 얻고 더 행복해진다는 논리다. 소득이 많으면 직장과 사회에서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한 국가의 국부(國富)를 평가할 때 경제성장률과 GDP(국내총생산)를 핵심 도구로 사용한다. 그런데 세계는 수백 년 동안 물적, 양적 성장 신화로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금융, 식량, 윤리, 인권, 기후 등 사회 곳곳에선 부작용이 일어났다.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 금융 위기 등 성장의 한계가 분명해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을 말한다. 과연 부를 더 많이 축적해서 경제가 하늘을 찌르듯 성장하는 것, 그것만이 인간 모두 잘 살게 해주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일까.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도넛 경제학’을 제시하면서 현실 경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만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는 20세기에 나온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 교과서와 이별하자고 말한다.

 

 

 

 

 

《도넛 경제학》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다른 경제이론을 소개한다. 그것도 경제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레이워스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공정무역 거래에 대해 연구했으며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에서 일했다. 그녀는 인류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중점을 둔 경제학을 ‘도넛 그림(한가운데에 구멍이 있는 도넛)’으로 시각화하여 설명한다. 도넛 경제학이 강조하는 것은 성장이 아닌 ‘분배’와 ‘균형’이다. 도넛의 안쪽 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도넛의 구멍은 물이나 식량, 교육, 에너지 등 인류가 살아가는 데 절대로 없어선 안 될 필수 요소들이 고갈된 세계를 뜻한다. 바깥쪽 원은 ‘지구 생태 한계선’이다. 이 한계선을 넘으면 치명적인 환경 문제가 일어나 지구 생태계는 인류가 살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 인류가 잘 살려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최적의 도넛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도넛 안팎으로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저자는 사람들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처럼 완전히 이기적이거나 금전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경제적 인간의 초상화를 제시한다. ‘새로운 경제적 인간’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비용과 혜택을 정확하게 계산할 능력도 없고, 완벽한 자기 통제력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 경제적 인간은 이타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저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20세기 경제학 교과서의 숱한 오류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발상 일곱 가지를 제안한다. 저자는 인류 발전을 설명할 때 주류 경제학처럼 높은 소득이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강조한다면 경제와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너무 많이 놓치게 된다고 지적한다. 도넛 경제학은 복잡계 경제학, 생태경제학, 여성주의 경제학, 행동경제학 등 다양한 최신 경제 이론에 근거한 종합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도넛 경제학의 주연은 경제학자, 기업인이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등 현실적인 경제적 인간이다. 저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한계가 있다며 행복과 경제, 부의 분배 정도, 환경 및 건강 등 인간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간 우리를 지배해온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이 같은 요소들이 지나치게 무시했다. 이제 경제적 부는 기업을 위한 이윤보다 인간 위주로 재편성돼야 한다.

 

모든 인간은 충분한 자질들을 가지고 있다. 단, 지역 공동체와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확장된 사회를 만들고 스스로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을 갖출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지나치게 커진 이기심을 눌러야 한다. 도덕과 연대의식을 회복한 경제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처음으로 설명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도 그렇게 주장했다.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 의식과 상호성의 행동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 《도넛 경제학》이 주는 메시지는 새길 만하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는 ‘착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Trivia

 

* 70쪽에 있는 이 문장은 비문이다.

 

“하지만 도넛 그림은 사실상 거의 같은 않은 이야기를 과학에 기초해 설명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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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6:02   좋아요 0 | URL
봄날 같았던 어제 미세먼지가 많았대요... ㅎㅎㅎㅎㅎ
 
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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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한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병을 앓는 사람을 뜻하는 환자(患者)의 ‘환(근심)’은 마음(心)에 꼬챙이(串)가 찔려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질병의 고통은 외부적 요인(꼬챙이)과 내부적 요인(마음)이 동반해서 생기는 것이란 암시로 보인다. 환자는 몸만 아픈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마저 약해지면서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종교의 영역에서 고통은 성스러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독교가 보는 몸은 위험한 욕망으로 가득한 덩어리로, 자기 정화를 통해 성스러워져야 하는 대상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고통을 바라보는,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몸을 정화해 영적 치유를 얻는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질병의 중세적 관점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이나 초월적 의미로 신비화했던 몸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몸속 장기와 조직, 세균의 실체를 탐색하기 시작한 근대 의학은 질병의 고통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법을 찾았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은 완치율이 높은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네덜란드 현직 외과 의사가 쓴 《메스를 잡다》는 원시적인 방광결석 제거술에서 긴박감 넘치는 JFK(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응급실 현장까지 과거 · 현재 · 미래의 외과술을 보여준다. 이 책 속에 있는 의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의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8세기만 해도 외과 의사는 ‘뼈를 자르는 사람’으로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외과 수술은 이발소에서 이뤄졌는데, 무시무시한 칼질을 하던 외과 의사의 모습은 푸주한과 다르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대장장이는 칼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방광에 있는 달걀만한 돌덩어리를 직접 빼냈다. 몸속 깊숙이 의사의 메스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취제가 본격적으로 병원에 도입되는 19세기 중엽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에 마취 없이 환자의 몸에 메스를 대는 의사는 거의 없다. 결국 의학의 역사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속에 진행된 크고 작은 수술들이 만들어낸 역사이다.

 

이 책은 수술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의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뿐만 아니라 수술대 위에 누운 유명한 환자들도 소개한다. 의사와 환자,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소리 없이 아파져 오는 통증과 심한 부상을 입은 몸이라는 낯선 신체적 조건에서 시작된 우연한 만남이다. 병원과 수술실에서 만나는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우리가 생각해도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환자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환자가 평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 불편한 관계가 아닌 질병과 맞서 싸우는 동반자이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지나친 불신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자초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로 활동한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는 지팡이 모양으로 된 지휘봉을 사용했다. 이것은 지금의 지휘봉과는 조금 다른 형태이며 사용 방법도 다르다. 지휘봉을 손에 들고 공중에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쿵쿵 내려치며 박자를 맞추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륄리는 왕을 위한 공연 리허설을 진행하던 도중 지휘봉에 발등을 찔리는 상처를 입는다. 륄리는 발등에 생긴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국 괴저에 걸려 의사로부터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을 무시한 륄리는 괴저가 일으킨 합병증에 시달려 끝내 목숨을 잃었다. ‘내 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또한 몸 상태를 더욱더 나쁘게 만드는 원인이다. ‘전설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는 튼튼한 체격을 가진 장사였다. 그는 “내 배를 얼마든지 때려도 난 끄떡없다”라고 떠벌렸다. 그를 만난 대학생이 진짜로 그의 배를 세 번 후려쳤고 후디니는 이틀 만에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충수염과 복막염이었다. 복부 통증을 견디면서 무리하게 마술 쇼를 강행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륄리와 후디니는 안일한 판단 때문에 자신의 생사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저자는 의학이 과거에는 질병을 극복하는 데 치중했다면 미래에는 개인 생활방식의 개선, 신체 기능 증진, 수명 연장 등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의학의 역할도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도 륄리와 후디니가 자신의 몸을 혹사해 파국에 이르렀듯이, 질병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몰아내면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선 안 된다. 급성 질병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없앨 수 있지만, 만성적으로 지속하는 질병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몸에 이상을 느끼면 병원을 찾는 대신 인터넷부터 뒤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의 증세에 해당하는 질병을 확인하려는 본능과도 같은 행동이다. 환자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까지 내리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신의 증세와 비슷한 사람의 글을 읽고, 병원 진료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해버린다. 심지어 효과 없는 치료법을 믿고 아예 병원을 찾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의사와 환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달린 일이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에게 신뢰를 하고 질병이라는 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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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cyrus 2018-12-20 16: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이웃들의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좋은 이웃’은 아니랍니다.. ㅎㅎㅎ

글월마야 2018-12-1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cyrus 2018-12-20 16: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목나무 2018-12-19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유독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어떤 의사는 신뢰가 가고 또 어떤 의사는 내내 믿음이 안가기도 하더라구요. 질병은 둘째치고 의사와의 교감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한 해였어요.

cyrus 2018-12-20 16:56   좋아요 0 | URL
요즘 자격 미달 수준의 의사들이 많아서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계속 진료와 치료를 미루면 몸이 더 나빠져요. 병원에 안 갈 수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