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끝내주는 괴물들이 나온 사실을 처음 확인했을 때, 나는 이 책이 보르헤스(Borges)상상 동물 이야기와 비슷한 유형의 책일 거로 생각했다.


















* 알베르토 망겔 끝내주는 괴물들: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현대문학, 202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마르가리타 게레로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민음사, 2016)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망겔의 책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주제로 한 책이 아니었다. 고전문학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독후감 형식으로 풀어쓴 책이었다. 끝내주는 괴물들은 제목과 다른 내용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 [절판] 알베르토 망겔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열여섯 소년, 거장 보르헤스와 함께 책을 읽다(산책자, 2007)

 



망겔은 시력을 잃은 보르헤스의 부탁을 받아 4년 동안 그를 위해 책을 읽어준 성덕(성공한 덕후)’이다196416세의 망겔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영어 및 독일어 전문서점의 직원으로 일했다. 서점 단골이었던 보르헤스는 망겔에게 저녁에 할 일이 없으면 자신의 집에 와서 책을 읽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망겔은 그의 부탁을 수락했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보르헤스의 집을 방문했다망겔은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에서 문호를 만나면서 나누었던 대화와 그 밖의 일화들을 소개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보르헤스의 관심사가 반영된 문학 세계를 파악할 수 있다. 망겔은 보르헤스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독자라고 칭송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문호의 결점까지 언급한다. 망겔은 보르헤스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무심코 내뱉으면 지적인 독자에서 한순간에 멍청이가 되어버린다고 지적한다.











* [절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마르가리타 게레로 상상 동물 이야기(까치, 1994)




상상 동물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대표작으로 내세우기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신화와 전설에 관심 있는 독자가 좋아할만한 이 책은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동서양 환상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분더캄머(Wunderkammer, 경이로운 방)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문학 작품에 묘사된 상상 동물들의 이야기도 진열되어 있다.


상상 동물 이야기는 1994년에 까치출판사에서 나왔으나 절판되었고, 12년 후에 민음사에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구판과 개정판의 역자는 동일인이다. 그런데 개정판(민음사)은 1967년 아르헨티나 초판을 번역한 것이고, 구판(까치)은 1969년 미국에서 출간된 증보판을 번역한 것이다상상 동물 이야기초판에 총 116[주]의 글이 수록되었다. 증보판은 기존의 116편에 네 편의 이야기가 추가된 판본이다. 구판에 있는 네 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17. 카번클 


118. 1964년에 제인 리드 부인이 런던에서 알았고 보았고 만났던 것에 대한 경험적 보고


119. 칠레의 동물들


120. 과거 숭배자들






[] 역자는 까치 번역본 후기에 116편의 이야기가 1967년 초판에 실렸다고 했다. 그런데 민음사 번역본 후기에서는 초판이 117으로 구성되었다(304쪽)라고 썼다. 직접 세어본 결과, 총 116편의 글이 수록되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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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24 2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의 상상동물이야기>궁금하네요~♡
사이러스님 글을 수정 중이신지
구판의 이야기 일부만 떴습니다🖐 😊

cyrus 2021-09-01 21:56   좋아요 1 | URL
책 내용이 생각보다 별로일 수 있어요... ^^;;

새파랑 2021-08-24 21: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와 망겔은 항상 같이 나와서 아버지와 아들 느낌이 나요 ㅋ 그래서 제목도 비슷한가 봐요 ㅎㅎ 내용은 다르다지만~!! 역시 덕질의 최고는 성덕인거 같아요 😆

cyrus 2021-09-01 22:03   좋아요 1 | URL
보르헤스를 만난 망겔이 세상에서 제일 성공한 서점 직원일거라 생각했어요. ^^;;
 
여자가 쓴 괴물들 - 호러와 사변소설을 개척한 여성들
리사 크뢰거.멜라니 R. 앤더슨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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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의 별명은 호러 킹(horror king)’이다. 그가 쓴 공포소설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완성도도 높다. 킹이 태어나기 전에 활동한 호러 킹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 등이다. 그렇다면 킹에 견줄만한 호러 퀸(horror queen)이 있을까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다시대별로 대표하는 여성 공포 소설 작가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호러 퀸이라 부르고 싶다


고딕 문학 연구자인 두 명의 저자가 합심하여 쓴 여자가 쓴 괴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호러 퀸들을 소개한 논픽션이다. 공포 문학은 남성 작가들이 독점한 장르가 아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한 여성 작가들이 마음껏 뛰놀던 블랙 오션(black ocean)’이다. 남성 중심 사회 속의 여성은 주변부에 머물렀으며 창작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여성에게 글쓰기는 시간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지적 활동이 아니다가사 노동으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며 여성의 존재를 투명하게 만드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힘껏 낼 수 있게 해준다글을 쓰면 세상을 새롭게 해석할 힘을 얻는다. 글쓴이가 이 힘을 얻으면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되며 세상에 반기를 들 수 있다. 글 쓰는 여성은 이성을 대표하는 유일한 인간이라고 확신한 남성들이 만들어낸 관습에 도전했다. 보수적인 남성들은 글 쓰는 여자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고, 그들을 광인 또는 괴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했다. 여성 작가는 남성 중심 세상을 조롱하면서 파괴할 수 있는 괴물과 유령들을 창조했다공포 소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한 문학 장르다. 대다수 사람은 공포 소설이 오컬트에 심취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장르로 이해하거나 심심풀이용으로 읽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포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다. 지금까지 공포 문학이 발전하는 데 기여한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의 재능을 잘 모르는 데서 생긴 착각이다.


여자가 쓴 괴물들에 소개된 여성 작가 중에는 남성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던 철학자로 알려진 마거릿 캐번디시(Margaret Cavendish)가 있고, 아멜리아 에드워즈(Amelia Edwards)나 마저리 로렌스(Margaery Lawrence)와 같은 여성의 권리나 젠더 평등에 목소리를 높인 페미니스트들도 있다19세기를 대표하는 호러 퀸이라 할 수 있는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는 여권 신장을 주장한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딸이다. 셸리의 대표작 프랑켄슈타인은 페미니즘 비평으로 해석 가능한 공포 소설이다여성 공포 작가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상식과 교양을 넓히는 고전으로 알려진 작품을 쓴 작가들에 주목한 문학사에서 배제되어 왔다여자가 쓴 괴물들의 등장은 장르문학을 하대하는 주류 문단과 남성 작가 중심 문학사의 허를 찌르는 도전이다


이 책에 여성 작가들의 삶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읽어야 할 작품들에 대한 정보도 있다. 역자는 국내에 출간된 공포 소설의 작품명과 출판사 이름을 꼼꼼하게 표기했다. 공포 소설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다. 하지만 국내에 나온 작품임에도 출판 정보가 없는 것도 있다두 명의 저자가 엄선한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은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호평받을 만한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여자가 쓴 괴물들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이 있다.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이라는 필명으로 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문학동네, 2006)를 쓴 카렌 블릭센(Karen Blixen)기이한 이야기(만복당, 2021)의 작가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한 메이 싱클레어(May Sinclair)괴담 형식의 공포 소설을 쓴 일본의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 등이다. 이 세 사람 역시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여성 공포소설 작가들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호러 퀸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와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가 이 책에 짤막하게 소개돼서 아쉽다두 사람은 이 책에서 곁다리로 분류되어 있다.


백과사전은 죽지 않은 책(undead book)’이다. 백과사전 편찬자가 죽어도 백과사전에 새로운 정보가 담긴 항목이 계속 추가되기 때문이다. 여자가 쓴 괴물들여성 공포 소설 작가들에 대한 최고의 백과사전[주]이라면 새로 발굴되거나 재조명받은 여성 작가들이 추가되어야 한다. 여자가 쓴 괴물들2판이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07: 월터 스코트 월터 스콧   

29쪽에 월터 스콧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168: <밤의 갤러리>, 194: 로드 셜링의 쇼 <나이트 갤러리>

명칭을 하나로 통일해서 써야 한다.






* 170, 172쪽의 무셔운 짚은 오자가 아니다. ‘무셔운 짚의 원제는 ‘Horrer Howce’. ‘Horrer Howce’‘Horror House(무서운 집)’의 철자를 틀리게 쓴 단어다. 역자는 원제의 의미를 살린 제목을 표현하기 위해 무서운 집이 아닌 무셔운 짚으로 썼다

 


* 303: 레스타트 왕자와 아틀란티스 왕국』 → 『레스타 왕자와 아틀란티스 왕국



[주] 책 뒤표지에 있는 문구다. 그런데 백과사전이라면서 100여 명의 작가 이름과 그들이 쓴 작품 제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색인(찾아보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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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쓴 괴물들 - 호러와 사변소설을 개척한 여성들
리사 크뢰거.멜라니 R. 앤더슨 지음, 안현주 옮김 / 구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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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쓴 괴물들》의 등장은 장르문학을 하대하는 주류 문단과 남성 작가 중심 문학사에 대한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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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세상의 적이다.  (샤를 보들레르)






보들레르(Baudelaire)와 함께하는 여름보다 터무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악의 꽃을 아는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게 분명하다.” 2014년에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제목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은 보들레르가 방송에서 다루기 위험한 주제라고 밝혔다.

















* 앙투안 콩파뇽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 미셸 우엘벡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필로소픽, 2021)




콩파뇽은 보들레르를 세상을 신랄하게 바라본 잔인한 검객이며 불면의 선동가라고 평가한다. 민주주의와 진보, 여성을 증오한 보들레르는 그의 시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독자들마저도 불쾌하게 만든다보들레르는 자신의 시대를 좋아하지 않은 비관론자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원죄를 가진 채 태어나며 도덕과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인간의 악을 감춘다


보들레르의 비관주의는 미국의 작가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염세주의와 흡사하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인간을 악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세상을 증오했다공포 소설을 쓴 러브크래프트야말로 여름과 함께하기에 좋은 작가다하지만 러브크래프트도 보들레르 못지않게 독자들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문제의 인물이다. 보들레르가 반유대주의자라면 러브크래프트는 히틀러(Hitler)를 지지한 인종차별주의자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트프 전집 1(황금가지, 2009)


* [리커버]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21)

 

*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다독가로 알려진 러브크래프트는 과연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었을까? 만약 그가 보들레르의 글을 읽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추측하건데 러브크래프트는 보들레르를 읽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에 나온 화자는 시체를 되살리는 실험에 집착한 의사 허버트 웨스트(Herbert West)를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점점 웨스트의 실험보다 그라는 인간 자체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젊은 과학자의 열망이 병적이고 끔찍한 호기심과 납골당의 비밀로 변질되면서 나의 공포는 시작되었다. 웨스트의 관심은 더욱 혐오스럽고 극악한 형태로 바뀌었고, 성격 또한 점점 괴팍해졌다. 점자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와 역겨움 속에서 정신을 잃을 만한 상황을 흡족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는 냉혹한 지성으로 육체를 실험하는 괴팍한 보들레르이자 묘지를 헤매는 나른한 엘라가발루스였다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중에서, 89)



악의 꽃에 수록된 시체는 육신이 부패하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시다보들레르가 묘사한, 파리와 구더기 떼가 모여 있는 시체는 피어나는 꽃이 된다. 시인은 시체가 부패되면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이 분출하는 과정으로 본다. 살아 있는 시체는 불멸의 존재다보들레르의 유고집 벌거벗은 내 마음(원제는 내면 일기’)에 불멸에 대한 문장이 있다.
















* [품절] 샤를 보들레르 벌거벗은 내 마음(문학과지성사, 2001)



 마치 인격체와도 같이 모든 관념은 그 자체로서 불멸의 삶을 부여받는다.

 모든 창조된 형태는, 비록 그것이 인간에 의한 것일지라도, 불멸이다. 왜냐하면 형태는 물질로부터 독립적이고, 또한 형태를 구성하는 것은 분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내 마음중에서, 161)



시체에 불멸의 삶을 부여한 보들레르의 발상은 불멸에 병적으로 열망한 허버트 웨스트의 모습과 연결 지을 수 있다냉혹한 지성’, ‘괴팍한이라는 표현은 보들레르에 어울리는 수식어다보들레르는 냉혹한 시선으로 19세기 파리뿐만 아니라 동시대 인간, 종교, 도덕 등을 해부한 작가다. 자신이 한 말대로 보들레르는 세상의 적이었다


보들레르와 러브크래프트. 이 두 사람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괴팍하고, 매우 복잡한 성격의 문인이다. 콩파뇽은 마음 가는 대로보들레르에 접근했다. 러브크래프트도 그렇게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사람과 함께 여름을 보내려고 한다. 올해는 보들레르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보들레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와 플로베르(Flaubert)도 내 여름 독서를 위한 주제로 삼고 싶다. 하지만 과연 이 두 문호만큼이나 누가 보들레르를 기억해줄까. 까다로운 시인을 잘 아는 위선적인 독자[주1]인 내가 하는 수밖에.

 




[주1] 악의 꽃독자에게 마지막 구절 참조.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157


 파스칼(Pascal)은 이 생각을 자신의 책 수상록[주2]에 이렇게 고쳐 적었다.

 

 

[주2] 수상록은 몽테뉴(Montaigne)가 쓴 책의 제목이다. 원서 본문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파스칼이 쓴 수상록의 정체는 유고집 팡세(Pensées)일 것이. ‘팡세생각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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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독자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어떻게 내가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나를 기록한다나를 위해서.


(니체, 유고(1887년 가을-1888년 3), 138쪽)





미국의 소설가 H. P.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는 성격을 규정하기 힘든 사람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분석한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도 러브크래프트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가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라고 했다.

















* 미셸 우엘벡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필로소픽, 2021)




러브크래프트는 세상이 역겹다고 느낀 염세주의자다. 그에게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악의 세계이며 이런 구역질 나는 곳에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러브크래프트의 염세주의는 점점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인종차별주의로 확대된다. 그는 유대인을 포함한 타민족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유색인종에 대한 러브크래프트의 두려움과 혐오는 그가 쓴 작품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 등장한 유색인종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악한 존재로 묘사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는 러브크래프트가 상당히 까다롭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와 편지를 주고받은 작가들은 그를 친절한 신사로 기억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은둔자였지만, 동료 작가나 후배 작가들이 보낸 편지를 진지하게 읽었다. 그는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후배 작가들이 쓴 소설 초고를 꼼꼼하게 다듬어주었고, 후배 작가들을 독려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후배 작가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러브크래프트였지만, 정작 본인은 재능이 부족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작가로 인식했다. 낙담한 러브크래프트는 대중에게 인정받는 소설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 글을 썼다.


내가 보기에 러브크래프트는 쇼펜하우어(Schopenhauer)와 니체(Nietzsche)의 인생관이 반쯤 섞인 사람이다. 혼혈 자체를 거부했던 러브크래프트의 극단적 순혈주의를 생각하면 반쯤 섞인 사람이라는 내 표현을 엄청 싫어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7년 가을-18883(책세상, 2000)




라이프치히에서 대학 생활을 한 니체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했다. 이 책을 만나면서부터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지지했지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 공감하지 않았다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비참과 낙담의 철학에 가깝다(이 사람을 보라). 쇼펜하우어가 보는 삶은 한마디로 말하면 고뇌’다. 고통스러운 세상 속에 살아가기 위한 삶의 의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불쾌감으로 전환된다니체는 비참과 낙담의 철학’인 허무주의에 맞섰.



 자기 자신을 다시 바로 세우려는 본능은 내게 비참과 낙담의 철학을 금지시켰다.


(《이 사람을 보라, 36쪽)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본능은 고뇌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힘이다. 이 힘은 언제 올지 모르는 불행한 상황에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해주며, 견딜 수 있게 해준다삶의 고통을 조금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자기 극복의 힘을 강조한 니체의 철학은 인생을 괴롭게 만드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해준다.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쓸데없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염세주의에 쉽게 끌려가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 니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철학자가 되었다. 그에게 철학은 불시에 기습하는 염세주의에 맞서기 위한 무기였다. 그는 철학을 무기로 삼아 글을 썼다어떠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의연하게 사는 방식을 깨달은 니체는 자신의 글을 이해하지 못한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지독한 염세주의자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위대한 소설가가 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는 니체처럼 대중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썼던 것일까? 그가 니체의 사상에 심취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은 미국의 작곡가 앨프리드 갈핀(Alfred Galpin)은 그에게 니체의 사상을 소개한 사람이다니체를 소개한 갈핀의 편지가 지독한 염세주의자의 마음을 움직였을 수 있다니체는 살기 위해서 철학을 했다면, 러브크래프트는 살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 러브크래프트가 소설이나 동료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순간 염세주의자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삶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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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8 0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 중 바르지 못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부지런한 사람요. 갑질하면서 부지런한 사람 생각하면 완전 짜증남. 인종차별주의자가 동료나 후배들에게 친절하고 세심하다면 그의 인종차별주의가 더 퍼지는건 아닐까 뭐 그런 걱정을 하게 됩니다. ^^;;

cyrus 2021-08-18 21:30   좋아요 0 | URL
친구의 결점을 알고도 못 본 척하면 문제가 있죠. 친구가 친절하다는 이유만으로 결점을 덮을 수 없어요. 저라도 그런 거 못 봅니다. 친구가 문제 있으면 주의를 줍니다.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