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옐로 하우스에

 

 

 

 

 

 

 

 

 

 

 

 

 

 

 

 

 

 

 

 

 

 

 

 

 

 

 

 

반 고흐, 그리고 폴 고갱.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걸작을 남긴 두 천재화가의 삶에는 교차점이 있다. 고흐가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프랑스 남부의 따뜻한 시골 아를에서 자리를 잡은 뒤 평소 가장 이상적인 동료라고 생각했던 고갱을 설득해 시작한 약 60일간의 동거 생활이다. 바로 1888년 10월 23일부터 12월 25일까지의 일이다. 프로방스 시골 마을 아를에서 이들이 보낸 곳이 바로 고흐의 그림으로 잘 알려진 ‘옐로 하우스’다.

 

 

 

 

빈센트 반 고흐  「노란 집」 1888년

 

 

미술사적으로 이 60일은 가장 유명한 동거임에 틀림없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의 작품은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동거는 고흐와 당시 미술상이었던 동생 테오와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살면서 하나의 예술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했던 두 사람은 고흐가 동생 도움을 받아 아를에 터를 잡으면서 그 구상을 실행에 옮긴다. 고흐에게 그 대상은 폴 고갱이었다. 테오에게 편지를 써 ‘혹시 고갱이 남쪽으로 올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내비쳤고 이런 생각은 일종의 집착으로 발전됐다.

 

고흐는 5월 말부터 다섯 달 동안 고갱에게 편지를 보내 아를에 와서 자신과 함께 살 것을 종용했다. 자신을 금전적으로 도와주고 있던 테오도 동원했다. 가난한 고갱이 옐로 하우스에서 자신과 같이 살면서 그림을 주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데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고갱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도 출발은 계속 연기했다고 한다.

 

그 전 해 겨울 파리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었던 두 사람은 이를 통해 훨씬 친밀해졌다. 편지 안에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두 사람 얘기도 나오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그런 과정 이후에 고갱은 1888년 10월 23일 오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거의 이틀 동안의 여행 끝에 아를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됐다. 고흐는 고갱을 위해 방을 준비하면서 그 안에 자신의 그림 <해바라기>를 걸어 놓았다고 한다. 6년 후 고갱은 이에 대해 시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년

 

 

“나의 노란 방에는 해바라기들이 노란색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해바라기들은 노란 테이블 위의 노란 화분에 심어져 있었다. 그림의 한 귀퉁이에는 화가의 서명인 ‘빈센트’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내 방의 노란색 커튼을 통해 들어왔던 노란 해는 방을 황금색으로 가득 채웠다. 아침에 침대에서 깰 때면 나는 이 모든 것에서 정말 좋은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의 동거는 너무나 달랐던 작품 성향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흐는 성격이 예민한 데다 작업 환경이 지저분하고 산만했다. 여기에 대해 고갱은 간섭할 수밖에 없었고 서로 다른 생활방식은 불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회화에 대한 열정과 불굴의 신념을 갖고 있는 고갱은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문명을 비판하며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니며 때묻지 않은 소박한 삶을 찬양하는 그림들을 그렸다. 고갱과 달리 자신을 중생구제를 위해 나선 수도자에 비유한 고흐는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시골농부들의 삶을 정열적인 붓터치로 그려냈다.

 

 

 

 나 이제 그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의 방」 1889년

 

 

고갱과 비극적인 이별을 하고 나서, 요양원에 치료를 받은 후 고흐는 이 때 옐로 하우스에 있는 자신의 방을 그리게 된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 고흐는 자신이 없는 방 안을 혼령처럼 쳐다본다. 정갈하게 정리된 방은 주인이 방을 비우고 그림을 그리러 나갔음을 나타난다. 살짝 열린 환한 창은 고갱과 함께했던 따뜻한 여름날의 추억을 암시한다. 그림 속 많은 사물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 양쪽 끝의 문, 두 개의 베개, 두 개의 의자, 두 짝의 창문, 두 개의 초상화 등. 그건 고흐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것 같다. 어쩌면 고갱을 생각해서인지 그가 떠나간 쓸쓸한 빈자리를 물감으로 채색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의 방」 1888년

 

 

재미있게도 고흐는 옐로 하우스에 있는 자신의 방을 이미 두 점을 그린 적이 있었다. 첫 번째 아를의 방 그림은 고갱이 아를에 오기 일주일 전 설레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고갱이 온다는 설렘도 있었고,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영감이 떠올리게 하는 고장에서 갖게 된 멋진 ‘자기만의 방’이었다.

 

1888년 12월, 무슨 마음의 심경이 고흐로 하여금 자신의 귀를 자르게 했는지 지금도 논란이 있지만 당시 고흐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고갱에게 화가 나 있었고, 친구들은 일 때문에 아를을 떠나갔고, 동생 테오는 약혼을 한 상태였다. 고흐는 외로웠다. 그리고 사건은 터지고 고갱은 바로 떠나 버린다. 고흐는 아를의 병원을 거쳐 생 레미의 요양원으로 옮겨진다. 요양원에 나온 이후 그는 자신의 방을 세 번째 그리게 된다. 그러나 고흐는 예전에 그 행복했던 옐로 하우스의 방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쓸쓸한 고독만 남아 있을 그 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경쟁 그리고 숨은 우정

 

 

 

 

 

 

 

 

 

 

 

 

 

 

 

 

고흐와 고갱은 신기하게도 평행선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 다른 직업을 갖고 살다가 화가로서의 삶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 그리고 둘 다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고 아를에서 드디어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생전에 그다지 인정을 못 받았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고갱은 35세 때 주식 중매인에서 화가로 전업한다. 몇 년이 지나, 파리를 떠나 이곳 그림 같은 시장 도시 퐁타벤에 반해 동료 화가들과 머물렀다. 여기에서 그린 그림 중 하나가 바로 <황색 그리스도>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 1889년

 

 

그리스도가 브르타뉴 주변의 가을 들판처럼 황색으로 그려져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들이 브르타뉴 지방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이 그림은 퐁타벤 근처에 있는 성당 안에 있는, 나무로 된 십자가상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리게 되었다. 고갱의 자화상 후경에 나타나는 <황색 그리스도>는 그림의 좌우가 뒤바뀌어져 있다. 자화상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89년

 

 

'자화상' 오른쪽에 고갱이 만든, 담배 넣는 항아리인 '괴물 형상을 한 폴 고갱의 얼굴'이다. 고갱은 그림뿐만 아니라 도기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기에 보들레르 같은 상징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악마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신성과 악마성 가운데 자신이 있다. 자신과 오른쪽 항아리는 왼쪽의 그림에 대조적으로 어둡다. 그건 자신의 마음 속 모습과 갈등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신의 방에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배치해 놓았다기보다는 자화상을 위한 의도적인 구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 고갱의 얼굴에 작은 빛이 머물고 있다. 고갱의 표정을 보면 진지한 것을 볼 수 있다. 가냘픈 그리스도의 몸에 비해 덩치 큰 모습으로 자신을 그린 것은 인간적인 자신의 욕망을 은유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고흐의 방과 고갱의 방은 사뭇 달라 보인다.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고흐의 방,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조로 살았고 원시주의적인 것에 경도되었기에 어느 정도는 거칠었을 고갱의 방.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고흐와 비참한 결과로 헤어진 후이고, 그림의 완성은 고흐가 죽은 후다. 고갱의 마음에 고흐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있었을 테이고 혹시 이 '자화상'에 그런 마음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갱은 고흐가 귀를 자른 이후 자살할 때까지 편지 왕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보살펴 준 고흐와 테오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으며 병마에 괴로워하는 고흐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비록 서로 맞지 않는 점들은 있지만, 고통과 병마에 시달리며 도움을 바라는 선량한 친구의 뜻을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다."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에 대해서 예술 전문가인 한스 카우프만과 리타 빌데간스는 고흐의 귀는 그 자신이 자른 것이 아니라 펜싱을 했던 고갱이 잘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사건 전날 밤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크게 다퉜으며 다음날 아침 고갱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고갱이 경찰에게 한 초기 진술에는 고흐 자신이 귀를 잘랐다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또 고갱이 사건 당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가 아니라 호텔에 머물고 다음날 파리로 서둘러 떠난 것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 주장이 진실일지 명확하게 판단할 도리가 없다. 분명한 건 고흐와 고갱, 애증의 관계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경쟁과 증오와 우정이 숨어있다.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를 추리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미궁 속으로 엉뚱하게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과장 해석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고흐와 고갱. 이 두 화가는 생애 마지막까지 서로를 의식하며 최선의 창작을 더해가며 예술혼을 불태웠으며 이를 위해 서로가 필요했다. 서로의 페이스를 유지하게 해주는 최고의 육상선수들처럼, 그들은 반세기 동안 상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하도록 서로의 예술관을 자극했다.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두 사람이 비슷한 연대에 출생하고, 작품 활동을 벌인 자체가 예술사에 있어서는 위대한 장면이다. 그리고 고흐가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 사이에 한가람미술관을 들렀고 이번에는 고갱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두 사람의 위대한 작품을 일 년도 채 안 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언젠가 다음에 또 한 번 한국에 찾아오게 되면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꿈꿔본다.

 

 

 

* 2013년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전시회가 열린다. <황색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뿐만 아니라 고갱의 최고 걸작인 <설교 후의 환상><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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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웅.김동섭.이해웅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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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사람만 거치면 세계와 엮인다  

 

1967년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무작위로 선택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미국 내 특정 지역 주민 160명을 무작위로 뽑아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A와 B에게 전달하는 편지를 보낸다. 친구 중 A와 B를 알고 있거나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실험의 규칙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편지 160통 중 42통이 목표 인물에게 배달됐는데 평균 경유 횟수는 5.5명에 불과했다. 6명만 건너면 미국인은 자국 내 누구와도 연결된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부분을 알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세계를 해체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지금은 이른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이 등장하면서 미시세계부터 거시세계까지 아우르는 네트워크 개념으로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해진다. 이른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서로 영향 받는다. ‘링크’(Link)의 세계다.

 

밀그램의 ‘여섯 단계의 분리’ 법칙은 세상이 촘촘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라는 사실에 대한 놀라운 증거다. ‘네트워크 이론’식 용어로 표현하자면 노드(Nod)는 고작 몇 개의 링크를 거쳐 완전히 다른 노드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의 세계는 진정 ‘좁은 세상’이 된 것이다. 개인 간 연결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세계는 이제 온라인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의 개념을 온라인으로 도입한 것이 현재의 SNS라고 일컫는 서비스다. SNS는 단순히 사람 간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인맥관리와 전문 분야에 대한 정보의 생산 및 탐색 등을 기제로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점차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다중의 네트워크에 속해 있으며 이 그물망의 속성을 파악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네트워크에서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허브와 척도 없는 네트워크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조직하고, 방대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효과적으로 서핑하도록 하는 작동 원리, 즉 ‘좁은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 바로 허브(Hub)의 존재다. 1880년대 무성 영화부터 올해 나오는 영화까지 모든 헐리우드 영화배우들이 장르를 넘나들어 같이 출연한 영화작품까지 알 수 있는 영화 사이트의 네트워크는 허브의 역할이 크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배우 한 사람 콕 집으면 그와 같이 찍은 영화배우가 누구이며 같이 출연했던 영화작품 수마저 알 수 있다. 과거에 화제가 되었던 미국의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과 다른 배우 사이의 상관관계를 수치화해 계수로 산출해내는 ‘베이컨 게임’의 원리와 유사하다. 허브의 존재는 세포 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물이나 ATP 등 몇몇 분자들은 세포내 분자들 간 상호작용 네트워크 내에서 수많은 분자와 동시에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세포 내에서 케빈 베이컨의 역할을 담당한다.

 

 

 

 

 

섹스 네트워크의 기본적인 그래프 (46쪽,

이미지 출처: 사이언스북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허브의 예는 난잡한 성관계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섹스광이나 사교계의 꽃을 찾는다거나 검색엔진 구글에 이용한다. 사람들의 섹스 상대 및 횟수를 조사하여 ‘섹스 네트워크’로 체계화하면 누가 성병이나 에이즈를 감염되고 어떻게 퍼지는지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허브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정보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척도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망은 ‘무작위 네트워크’의 형태를 띤 반면 항공노선은 소수의 허브공항을 기점으로 다수의 공항들이 연결돼 있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척도가 될만한 중간 모델이 없다는 뜻으로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소수의 링크를 받는 노드는 아주 많고, 무수히 많은 링크를 받는 노드는 소수에 불과하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발견이 중요한 것은 웹과 할리우드, 세포, 항공 노선을 포괄하는, 다시 말하자면 생물학과 사회학, 컴퓨터 공학을 아우르는 공동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생물 정보학과 양자 정보학

 

막대한 양의 정보, 즉 빅 데이터(Big data)를 분석하기 위해 생물 정보학과 물리학 연구방법을 융합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생물 정보학이란 DNA 정보로부터 생명체의 생물학적 의미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생물 정보학은 대중에게는 여전히 낯선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열거하면 실로 엄청나다. 인간의 유전체 전부를 분석하는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면서, 유전자 차이에 따라 개인 맞춤형 약을 처방하고 99달러라는 적은 돈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놀라운 세상이 현실이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인류는 생명 정보로 질병을 치료 전에 예방하는 새로운 의학을 이끌고, 원하는 외모와 지능을 가진 아이를 만들려 한다. 심지어는 자동차를 만들 듯 생물학적 부품을 결합해 인공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합성 생물학으로 창조주의 위치마저 넘보고 있다.

 

정보를 이용한 새로운 과학으로 양자 역학을 접목한 양자 정보학도 눈여겨봐야 한다. 양자 역학의 원리를 통해 풀 수 없는 암호를 해독하고 위조가 불가능한 화폐를 식별할 수 있다. 최근에는 1000년 걸릴 계산을 5분 만에 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가 각광받고 있다. 양자 암호와 컴퓨터 장비가 실험용으로 이미 판매되고 있는 현재, 양자 정보학에 주목해 세계 시장에서 국가 경쟁력이 필요하다.

 

 

 

 네트워크 세계의 양면성

 

그러나 날로 발전하는 미래 정보학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앞에서 신중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진화 과정에서 새로 등장한 노드는 링크가 많은 기존 노드에 다시 링크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링크를 독점한 소수가 링크 빈곤 계층인 다수를 지배하는 네트워크의 ‘하후 상박’ 구조가 생긴다. 링크가 많아서 다시 새로운 링크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런 빈익빈 부익부를 통해 ‘척도 없는 네트워크’는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노드가 생길 수 있다.

 

네트워크의 치명적인 약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좁은 세계에서의 상호연계가 불러오는 연쇄반응은 끔찍할 정도다. 인터넷의 복잡한 구조는 잘못된 부분이 나오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바로 그 점이 또 다른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연결이 몰리는 대형 노드는 이를 사이버 테러리스트가 발견할 경우 웹 네트워크가 끊길 수 있을 정도로 취약하다. 네트워크의 ‘아킬레스 건’이 바로 그 부분이다. 어느 노드가 아킬레스 건인지 찾기 쉽지 않지만 한번 찾기만 하면 전체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검증이 안 된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쉽게 전달되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보 전염병'(infodemics)도 조심해야 한다.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이 복잡한 세계가 가장 강력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취약하다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구글은 이미 링크와 허브의 중요성을 미리 파악하고 이를 하나의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로 구축했다. 사소하고 하찮은 정보까지 검색하면 단번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정보 통신 기술과 생명 공학의 지식이 필요한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기본적인 정보 과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수학을 공부해야 할 융합의 학습이 필요하다. 학문의 경계선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정보량을 따라가기가 현실적으로 버겁다. KAIST 강연을 준비한 정하웅, 김동섭, 이해웅 교수는 입 모아 하나의 분야에 능통하기 위해서 학습하기보다는 자신이 탐구하고 싶은 대상의 중심으로 공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구글 신이 될 필요가 없다. 기본적인 최첨단 과학 지식을 서핑 보드 삼아 거대한 네트워크의 바다에서 안전하게 서핑을 즐기고 있다면 우리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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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 (반양장)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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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은 어렵다 

 

 

 

 

바넷 뉴먼  『단일성 VI』 1953년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300억이라면 모두들 수긍하지만, 거대한 파란색 단색 화면에 한 가운데 하얀 줄만 그려져 있는 바넷 뉴먼의 <단일성 VI>이 487억 원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즈 경매에서 뉴먼의 연작인 ‘단일성(Onement)’ 시리즈의 6개 작품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 438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487억 원에 낙찰됐다.

 

현대미술은 대중에게 쉽게 감동을 주거나 그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다. 혹자는 바넷 뉴먼이라는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미(美)’ 혹은 미적 대상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과거의 예술 작품에 비해 현대미술 작품들은 그 외형이 단순하고 빈약하다. 그래서 여러 면에서 감상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중 으뜸은 ‘난해성’이고, 특히 말썽인 것은 ‘재현 대상에 대한 비지시성’이다. 고전미술의 처지에서 보면 미술은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것이므로, 화가는 ‘이 작품은 무엇을 표현한 것’이라고 감상자에게 설명하는 게 도리다. 화가의 이런 설명을 보통 ‘재현 대상에 대한 지시성’이라 하는데, 현대미술은 종종 이 ‘도리’를 무시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모노그램』 1955년

 

 

현대미술의 또 다른 당혹감은 재현 대상 그 ‘자체의 모호성’에도 있다. 구상이든 비구상이든 화가가 현실의 공간에서 존재하지 않는, 혹은 발견할 수 없는 대상을 재현했을 때 감상자는 곤혹스럽다. 예를 들어 나무 판넬 위에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박제된 염소 머리와 타이어 등의 오브제를 설치한 라우센버그의 작품을 본다면 감상자가 느끼는 혼란은 극에 이를 것이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주체, 비평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흔한 말이지만 현대미술은 어렵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는 개론서를 읽어도 단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작품들을 남긴 채 침묵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나름 친절하게 설명해도 예술가의 말들은 분명 지구상에 사용하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의미의 진의를 가슴 깊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하다. 자신의 작품을 ‘숭고’의 유형으로 특징짓는 뉴먼의 말을 먼저 읽어 보고 <단일성 VI>을 보라.

 

 

우리는 고양된 것, 즉 절대적 감정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자하는 인간의 자연스런 열망을 다시 확증하고 있다.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오랜 전설이라는 낡은 소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창조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그것의 현실성이 자명한 이미지들, 숭고든 미든, 시대에 뒤떨어진 이미지들을 연상시키는 소품이나 목발이 없는 이미지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서유럽 회화의 장치 노릇을 해왔던 기억, 연상, 향수, 전설, 신화와 같은 장애물들을 비워내고 있다. 예수, 인간, 삶으로부터 성전을 짓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느낌으로부터 성전을 짓고 있다. 우리가 생산하는 이미지는 자명한 계시의 이미지로, 그것은 역사에 대한 향수의 안경 없이 그것을 바라보는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92쪽)

 

 

 

뉴먼은 생전에 끊임없이 자신의 미술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꼭 모든 현대미술을 주름잡은 예술가들이 뉴먼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들의 미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한 관람자의 모습에 속상하거나 한심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난해한 현대미술을 관람자에게 설명하고 소개하기 위해서 비평가들은 화가의 대변인 역할을 자저했다. 우리가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현대 미술의 예술사적 의미와 그 맥락은 비평가의 ‘평론’에 의해서 탄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후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 새로이 떠오른 예술 주체는 바로 비평가였다. 이전의 예술가들이 직접 강령과 선언문의 형태로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냈다면, 전후 미술 작품의 의미를 언어로 설명해준 이들은 바로 비평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를 비롯한 오늘날 비평가들의 평론은 작품에 사후적인 평가를 부여할 뿐 아니라 작품 자체를 성립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비평가 그린버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잭슨 폴록이 존재할 수 없었듯, 작품의 의미를 생산하는 비평가는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가였던 셈이다.

 

 

 

 "비평은 무슨, 빌어먹을!"

 

 

 

 

하지만 그림을 보는 비평가들의 눈이 정확한 것은 아니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민망스럽고 시대착오적인 평가를 하기도 한다.폴록은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인해 영국 희대의 살인범죄자의 이름을 따서 ‘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자 일부의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기법, 조화적인 면, 조직화가 결여된 ‘혼돈’(Chaos)이라고 혹평을 하자 폴록은 이에 대해 신경질적인 말로 답변한다. “혼돈은 무슨, 빌어먹을(No chaos. Damn it).” 폴록은 우연 자체를 부정하고 작품 제작에서 우연성이 개입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에 물감을 바닥에 있는 화폭에 흩뿌리는 행동은 ‘영감, 비전, 직관적 결정’이라는 고도의 질서에 의해 작동된다.

 

폴록의 회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재능을 알아 본 비평가는 현대회화 비평의 양대 산맥(Berg)으로 우뚝 솟은 그린버그(Greenberg)와 로젠버그(Rosenberg)다. 두 사람은 폴록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로 명칭 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근본적인 입장은 서로 달랐다. 그린버그는 선과 면의 구별, 형태의 요소가 해체되는 폴록의 그림은 새로운 추상적 차원으로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로젠버그는 그림의 평면성까지 한정된 그린버그의 비평을 넘어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 즉 행동(Action)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처음으로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는 명칭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이라는 같은 길을 동시에 걷고 있고, ‘폴록’이라는 불세출의 화가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현대회화 비평의 양대 산맥은 노력했지만 출발하고 접근하기 위한 시작점은 서로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미 모더니즘 회화의 교황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그린버그는 로젠버그의 비평을 반박하는 대립 상태까지 가게 된다. 결국 화가 한 사람을 둘러싼 양대 산맥의 대립은 로젠버그가 뒤늦게 판정승하게 된다. 전성기가 지난 후부터 폴록은 초기의 흑백 구상으로 회귀하게 되면서 그를 옹호했던 그린버그의 비평은 무의미해졌다.

 

 

 

 

폴록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든든한 예술적 비평대상이 사라지게 된 그린버그는 전후 모더니즘 회화의 새로운 주자로 바넷 뉴먼과 마크 로소코의 색면추상을 지목하게 된다. 그린버그는 폴록의 회화에 강조했던 새로운 평면성의 형식을 이들에게도 적용했다. 그리고 그 특징을 색면추상에서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린버그는 화가의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뉴먼과 로소코는 자신들의 작품을 ‘형식’이 아닌 ‘숭고’의 체험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색면추상을 ‘미’의 관점 그리고 색채의 형태를 통해 분석하려고 했다. 뉴먼과 로스코를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추상주의 회화의 영역 속으로 포함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폴록보다 가장 많은 오해의 비평을 받아야만 했다. 뉴먼은 치열하게 비평가들과 설전을 벌였으며 로소코는 아예 작품에 대한 설명을 스스로 포기해버릴 정도였다.

 

 

 

 

그린버그의 망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962년에 그린버그는 어느 강연회에서 미국 미술 역사 30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재미있게도 그린버그가 지목한 ‘미국 미술 역사 30년’에는 팝아트라는 어마어마한 회화의 맥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미술 역사의 고요함을 주장하던 그 시기에 그린버그가 옹호하던 모더니즘은 서서히 퇴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바로 팝아트에 의해서 말이다. 추상표현주의를 필두로 한 모더니즘 예술도 한 때 새롭고 진보적인 형식이었다. 여기에 총대를 메고 선두를 이끌던 사람이 바로 그린버그였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 새롭고 젊은 예술이 등장하고 과거 혈기왕성했던 예술은 전혀 새롭지 않은 기성 예술로 전락하는 법. 그린버그는 모더니즘과 정반대인 팝아트의 신선한 등장이 여간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비평가의 눈을 제대로 사용하기

 

아서 단토는 그린버그가 무시했던 팝아트를 획기적인 미술사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는 ‘예술의 탈역사화’를 강조했다. 팝 아트 이후의 현대미술에서는 더 이상 역사적 방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헤겔이 말했던 예술의 종말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양식이 혼재된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노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등장한 특정한 예술 양식이 독창성과 참신성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관점을 부정한다.

 

 

어떻게 하나의 양식이 다른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다음 주면 추상표현주의자나 팝 아티스트, 혹은 사실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엇인가를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서 말이다. (33쪽)

 

 

하지만 단토의 비평 역시 난점을 피할 수 없었다. 워홀을 비롯한 팝 아티스트들은 ‘팝아트’의 전형적인 양식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믿고 쓰는 모더니즘산(産)’ 폴록 때문에 헛물을 킨 그린버그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현대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의 예술적 담론을 되돌아보면 그림 좀 볼 줄 안다는 비평가들도 난해한 현대미술을 잘못 이해하는 관람자처럼 헛다리짚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삼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술에 ‘미’자도 모르는 사람이나 이들보다 그림을 많이 본 비평가나 누구든지 간에 현대미술은 어렵다.

 

관람자는 그림 보는 비평가의 눈을 빌어서 현대미술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비평가의 눈은 난해한 현대미술을 쉽게 잘 보기 위한 망원경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것을 의지하면 예술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망원경은 색안경이 될 수 있다. 특정 회화의 양식만 선호하고 편견의 초점에만 맞춰진 비평가의 색안경은 이제 막 현대미술을 이해하려는 초보자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불량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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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입니다. :-)

 

민음사의 신간 <결심의 재발견>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미루기 대장,

세계 최고의 늑장 연구가가 되다

 

 

 

 

자타공인 미루기 대장이었던 피어스 스틸은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늑장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진화심리학, 조직심리학, 뇌과학 전 분야를 망라하는 세계 최고의 늑장 권위자가 되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저자의 늑장관련 논문은 각종 분야에서 활발히 인용되어지고 있다.

결심의 재발견은 고질적이고 백해무익한 늑장'합리적인 미루기'를 구분하면서 늑장에 대한 과학적 해부를 시도한다.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한 모든 결심,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결국 달성하지 못한 당신의 목표를 위해 늑장탈출에 필요한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방법을 지금 여기에 모두 공개한다.

 

 

 

많은 응모 부탁드립니다. :-)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3.06.05 - 2012.06.14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3.06.17 (월) 오후

- 서평 기간: 2013.06.20-2013.06.30

 

 

 

 

- 살아가면서 게으르게 되고 제대로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겪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때의 판단에 아쉬움과 후회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우리는 무수히 반복하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문제의 원인을 알고 그 해결 방법을 실행한다면 고질적인 문제를 고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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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23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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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교사』 1954년

 

 

저 끝으로 마을이 어슴푸레하게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황량한 들판 위에 한 남자가 홀로 서 있다. 뒷모습이라 얼굴은 볼 수 없다. 차림새로 보아 세련된 도시풍의 중년 신사로 짐작된다. 검정 코트를 반듯하게 차려 입었고 코트에 어울리는 중절모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달. 중절모의 머리 바로 위로는 그믐달이 교교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달빛의 기운을 받았는지 밤하늘의 어둠은 청색조로 온통 물들어 있다. 초저녁일까 새벽일까? 천지사방은 적막할 뿐이다.

 

얼핏 봐서 그림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다. 적어도 이상한 점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야릇한 의문과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우선 그믐 치고는 사위가 너무 훤하다. 중절모 위에 거의 내려앉은 듯한 달의 위치도 묘하고, 낮게 깔린 지상의 풍경과 대비된 남자는 거인처럼 커 보인다. 그리고 왜 저렇게 부동의 차렷 자세로 우두커니 서 있을까? 양복점 마네킹처럼 혹은 방부 처리되어 압정으로 고정된 곤충표본처럼 미동도 않는 모습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림 전체는 뭐라 딱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신비와 경이의 영역으로 우리를 몰입하게 만든다.

 

마그리트가 그린 ‘교사’(敎師)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제목과 그림 전체의 이미지와의 연관성도 수수께끼다. 그의 그림은 늘 이렇다. 불합리, 부조리, 불가해함. 더불어 시와 꿈과 환상이 배어있는 그림.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정확히 그려진다. 다만 그려진 내용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모습들이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참이라고 믿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 속성 때문에 참이라고 믿는 순간, 동시에 우리는 모순과 역설에 직면한다. 정작 그려진 건 도저히 참일 수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술은 이때 발생하고 우리는 일상의 현실과 이미지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러나 그 헤매는 과정에서, 관성에 젖은 평범한 현실 너머를 호흡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우울증 속에서 은둔자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자신의 뒷모습이 연상된다. 실제 마그리트는 종종 작품 속에 등장하는 중절모 사나이와 비슷한 복장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할 때 작품이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했고,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했던 화가 자신에게는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래도 마그리트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창하게도 세계 속 단독자의 절대적인 고독이 보인다.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존재. 그 존재의 황당함. 우리는 죽음이라는 절멸의 순간에 대한 예감과 더불어 살아간다. 누구나 간직한 이 예감의 능력은 곧 '천형(天刑)'이다.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의 이별이다.  

 

 

 

 

 

 

 

 

 

 

 

 

 

 

 

 

 

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무상(無常)으로서 곧 영원(永遠)을 구현한다. 그러나 그 끝없는 생성과 소멸의 질서 속에 사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다. 개별자의 삶이다. 그만큼 불만족스럽다. ‘산’의 질서를 수락은 하되 그 삶이 구족(具足)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꽃이 좋아서 산에 사는 새도 있다. 이것이 곧 삶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는 노래한다. 그러나 그 만족스러움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꽃은 지고 또 진다. 별리(別離), 또는 영결(永訣)을 피할 수 없다. 산유화는 무상 속에서 영원을 구현하는 산의 질서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유한한 개별자로서의 고독과 사랑과 비애 또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또 받아들이면서 그 모순의 한가운데 담담히 서 있다.  

 

이 망 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동안에는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공포와 불안은 유보되거나 경감된다. 그러나 우리의 발은 망 사이의 틈새로 빠지기 일쑤다. 그때 절대 고독과의 대면은 불가피하다. 마그리트의 이 그림이 바로 그 불가피한 대면의 순간을 형상화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중절모를 쓴 사내는 저만치 혼자서 고독의 질서를 받아들인 채 서 있다. 무한한 세계와 유한한 인간의 적나라한 만남.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그림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뒷모습이 누구인지 중요하지가 않다. 그는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않는 척 외면할 뿐이다. 그리고 묵묵히 고독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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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6-04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프잖아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