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 『지구의 정복자』 에드워드 윌슨, 사이언스북스

 

 

2013년이 마무리되어 가는 연말이 다가오자, 눈에 띄는 출판계의 화두라면 단언컨대 에드워드 윌슨의 신작 『지구의 정복자』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이제는 진화생물학계의 원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의 신작 출간은 ‘왕의 귀환’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진화생문학 분야에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보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주류로 굳어졌다. 그러나 윌슨은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반기를 든다. 이 이론이 치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자 리처드 도킨스는 윌슨의 책을 집어 던져야 할 정도 수준으로 악평으로 맞설 정도로 과학자들 사이에서 또 한 번 논쟁의 불꽃이 피기 시작했다.

 

윌슨은 책에서 인간의 진화가 ‘혈연의 생존을 위한 이기적 본능의 결과’라는 학계 정설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집단 선택’이 인간이 지구를 정복한 원동력이라는 관점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이기적 유전자’이론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 책이 선정도서로 선정된다면 오랜만에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같이 읽어볼 생각이다.

 

 

 

 

 

 

 

 

 

 

 

 

 

 

 

 

 

 

* 『명작순례』 유홍준, 눌와

 

지금까지 3번 횟수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활동하면서 예술 분야 책이 선정되기가 드문 편이었다. 그나마 기억하는 책이 지난 기수 때 선정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3권이다. 확실한 건 예술 분야 책이 선정된 적이 많지가 않았다. 인문, 과학 분야와 통합되어 있어서 매일 수없이 출간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인문학, 사회과학에 비해 선정되는 확률이 희박하다. 심지어 그 다음으로 선정 확률이 적은 과학 분야와 비교해도 밀린다.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가끔 추천도서 페이지에 구색 맞추기 용으로 한 권 포함시키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신간평가단 활동 기간에 개인적인 바람으로 예술 분야 도서가 선정된다면 이번에는 한국미술 분야 관련 도서가 되었으면 한다. 마침 출간된 책이 유홍준 교수의 『명작순례』다. 저자에 대한 이력과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졌으니 상세한 책 소개는 생략하겠다. 조선시대 명작 49점을 중심으로 작품 10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는데 한국미술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절대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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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천양희  '뒤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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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 -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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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상처 하나 없는 사람보다는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가

아름답습니다

 

(중략)

 

그래서

손 내밀어 당신의 상처 난 속에

담긴 아름다운 꿈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그 손 덥석 잡아보고 싶습니다

 

- 김 산  ‘상처 있는 나무는 다 아름답다’ 중에서 -

 

 

 

 ♣ 벌거벗은 나무의 겨울나기  

 

 

 

 

 

Egon Schiele  Bare Tree behind a Fence」  1912

 

 

변신이란 저런 걸 두고 한 말일까. 몇 달 전만해도 녹음이 만연했던, 그 고운 옷을 벗어버리고 나목이 되었다. 전신을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은 나무의 겨울나기가 안쓰러운가 보다. 공원의 나무에서도 가로수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볏짚의 끝을 가지런히 모아 엮어서 밑동에 씌워 놓았다. 요사이는 마대를 따 씌운 모습도 더러 보인다. 내 생각 같아서는 그보다 길이가 몇 곱 되는 쇠코잠방이라도 씌워준다면 겨울나기가 훨씬 넉넉할 것 같다.

 

나무는 스스로 치유 능력이 있다. 누군가가 무심코 가지를 꺾을 경우에도 원망이 따르지 않는다. 스스로 아픔의 눈물인지 송진을 내 외부의 침략을 금세 차단하고 만다. 다시 보호 가지를 여러 개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이런 나무의 지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너는 나의 하수인이고 먹이사슬의 한 속에 지나지 않는다고만 생각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가축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무에게만 주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눈이 시리게 맑아야 할 우리의 마음에도 주저리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에 분진이 몇 겹으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전선에서 후송된 병사의 팔다리에 칭칭 감긴 붕대와 같이 상처 난 양심에도 여러 겹의 주저리를 감아주어야 한다. 언젠가 상처 부위에 새살이 내밀 것이다. 마치 연약한 순이 세상에 고개를 내밀 듯이.

 

 

 

 

 ♣ 고군분투했던 꿈꾸는 식물

 

 

 

 

 

 

Egon Schiele  Plum Tree (Autumn Tree with Fuchsias)」  1912

 

 

소설가 이외수는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 있는 벌거벗은 나무와 같다. 그는 글과 트위터를 통해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수많은 대중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에게 주저리는 소통하는 대중이다. 허나, 나무에도 해충들이 다가오듯이 그를 음해하려고 쓸데없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나쁜 주저리들도 있지만. 

 

기인, 괴짜 등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에 대한 소문은 그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통 받고, 절망하고, 방황하는 주인공과 동일시하며 한편으로 위안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보편적인 기준의 반대편에 서서 그 견고함과 싸우며 버티고 살았던 무모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다.

 

그러나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을 독자들 앞에서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을 본다면, 아직도 자신을 끌어안지 못하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세상을 통째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을 키우며 희망을 위한 구원을 모색하고 있었다.

 

자기 삶을 철저히 사랑하고, 그렇기에 그만큼 학대했던 소설가 이외수는 건강한 육체와 나태한 정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하얀 종잇장 같이 얇고 가녀린 모습이었다. 순수! 그를 보자마자 떠올린 단어다. 인도나 티벳에 가는 초보 여행자들이 애당초 자기가 갖고 간 환상만을 보고 오듯이 이외수의 ‘기인 이미지’도 준비된 거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외수’라는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외수지, 예수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외수(李外秀)’도 아니다. 그의 어두웠던 삶을 반추해본다면 ‘이외수(李外樹)’라고 해야 어울린다. 그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자두나무(李) 군집을 거부하는 듯 멀리 떨어져 외롭게(外) 서 있는 가냘픈 나무(樹) 한 그루처럼 살았다.

 

젊은 시절 이외수와 함께 한 것들은 비듬, 이(泥), 얼룩, 배고픔, 창녀의 빈 방 따위였다. 몸이 성할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을 경험한 그는 별 시답잖은 동포들한테까지도 동포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었다. 그의 20대부터 40대까지는 열등과의 싸움이었다. 세상이 원하는 보편적 기준인 가문, 학벌, 외모, 경제력 등 그는 어느 조건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무수한 열등감과 싸웠다. 가장 힘들었던 열등감은 가난이었다. 그래도 꿈은 있었다. 바로 영혼의 울림을 느껴질 수 있는 위대한 글 한 편을 쓰는 것.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했던 그는 위대한 글 한 편을 쓰기 위해서 강원도 정선 산골로 들어간다.

 

그에게 문학은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데뷔작 『꿈꾸는 식물』을 발표했지만 그는 여전히 셋방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남편의 술 외상값 때문에 바깥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아내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아이들은 주인집 아이들에게 기를 못 피고 살았다. 그는 가족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집을 사기 위해 글을 썼다는 작가의 자의식은 그를 8년 동안 절필하게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혹독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 감옥 속으로 들어갔다, 교도소의 철문을 직접 주문 제작해 그의 집필실에 설치하고 감옥 속에서 글을 썼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최고의 열매 하나를 영글기 위해서 이외수는 일부러라도 스스로 상처를 줬다. 풍족하고 좋은 삶의 영양분을 마다하고 자기 자신에게 혹독해야 하는 예술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나’를 열고, ‘나’를 기꺼이 내주고, 나만을 위한 글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 상처 속에 살아온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Egon Schiele  「Autumn sun and trees」  1912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다. 육안(肉眼)의 범주에만 머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안(靈眼)의 범주에까지 닿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움,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이 예술이다. (19쪽)

 

이외수에게 좋은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나쁜 예술’은 ‘나뿐인 예술’일 것이다. 혼자만의 구원을 위해 글을 쓰는 ‘나뿐인 예술’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적 부조리에 의해 고통 받으며 극단적인 삶을 살았지만, 오히려 어두컴컴한 과거는 그에게 ‘사랑’에 눈 뜨게 만들었다. 고독한 영혼을 변화시킬 정도로 깊은 울림이 느껴지고 ‘사랑’으로 소통하고, 치유하고, 구원하고 싶은 예술이 그의 꿈이었다. 이외수에게 예술은 자신처럼 상처 속에 살아온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던지는 한 글자 한 글자 모아 튼튼하게 만든 사랑의 그물이다. 절망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문학과 예술이다. 그래서 그는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외수는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려면 육안(肉眼)을 넘어 영안(靈眼)을 획득하는 경지가 돼야 한다. 영안을 가지고 보면 사랑의 본체를 깨닫고 볼 수 있다. 가슴 안에 아름다움을 심을 수 있는 영안과 심안에 눈을 뜬 사람이 된다면 사랑이 가득한 존재, 행복이 가득한 존재가 되고 이때의 사랑과 행복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 '사랑을 아십니까', 괴짜 사부님

 

 

 

 

 

Egon Schiele  「Four Trees」  1917

 

 

겨울철에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차 유리에 성에가 많이 끼어 불편하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운전하는 데도 위험하다. 충분히 자동차를 예열해서 성에를 제거한 다음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인간의 행복과 불행도 다 자기로부터 출발한다.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자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자기를 객관화 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 내면에 더욱 성실할 수밖에 없다. 바울로 사도는 “내가 자족하는 삶의 비밀을 터득했노라”고 했다. 신앙의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깊은 각성(覺醒), 깨달음이다.

 

이외수의 글도 그렇다. 자신의 아픔을 독자에게 에누리 없이 보여주고, 가식 없이 진솔한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의 빗장이 스스로 열린다. 못난 사람이 후진 땅 딛고 일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얼었던 마음이 녹는다. 마음은 감성의 근본이 되고 이 마음을 중시하는 삶과 예술이야말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지름길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독자들에게 일깨워준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각성의 경지에 이른 그는 최근에 달의 지성체와 채널링을 통해 교신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영원히 변치 않는 괴짜임에 틀림없다. 이젠 그를 끌어안지 못하는 세상을 비웃기보다 자신이 통째로 안아 버리려 하는 그는 이미 도(道)를 터득한 ‘사부님’이 되었다. 아마도 그에게 가장 큰 행복은 바로 자신처럼 마음의 눈을 뜬 영안을 가진 자를 만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을 만난다면 도인처럼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기보다는 '사랑을 아십니까'라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올거 같다. 김산의 시 구절처럼 사랑이 가득한 아름다운 꿈길을 같이 걷자고 덥썩 손을 내밀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씐 주저리를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주저리를 씌우려고 한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주저리.

 

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체험할 수 있는 심적 수련의 과정을 무조건 따라하자는 건 아니다. 소양이 많이 부족한 우리는 기본적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사물 그리고 자연과 채널링할 줄 알아야 한다. 우선 자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폭넓은 사랑을 하려면 아름다움을 자주 접해야 한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하늘을 바라보던지, 화초 가꾸기를 하면 꽃피고 열매가 맺는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 또 끊임없는 대화를 가져야 한다. 자연적인 것들과 대화도 하고, 자문자답을 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이외수는 대상과 자신과 합일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이라고 했다. 생각하지 말고 느끼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의 근원 속에는 사랑의 본성이 숨어 있다. 삶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사랑의 눈을 뜨고 봐야 한다. 일상에 사랑이 합일된다면 행복 찾기는 어렵지 않다. ‘힐링’을 책에서 찾을 필요 없다. 혼자 있는 고요한 날에, 마음의 문을 열고 밖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채널링하기 딱 좋은 시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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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7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2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통일부가 1950년 첫 귀순자가 나온 뒤부터 통계를 잡기 시작한 탈북자 수는 올해 (8월까지 기준으로) 2만 5560명이다. 남한에 입국하는 탈북자 증가 속도가 늘어나는 추세지만, 반대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한국에 와놓고도 다시 한국을 등지는 탈북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남한 생활 적응이 여의치 않은 탓에 제3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부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여러 복잡한 이유로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많은 탈북자가 남한을 떠나는지는 통일부는 정확한 통계를 하고 있지 않다. 탈북자단체들의 추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단체에 따라 추정 수치가 제각각이다. 최소 2000명에서 최대 4000명 정도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한에 있는 탈북자 정보를 북측에 넘기거나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 재입북자들이 북한 방송에 등장하는 횟수가 잦다는 점이다. 북한을 탈출해 남한의 품에 안겼던 그들은 남한 사회를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체제의 이완 현상을 단속하는 동시에 탈북 현상을 막기 위한 북한 정부의 전략에 동원된다. 재입북을 시도하는 탈북자가 북한에 잘 보이기 위해서 스스로 간첩이 되거나, 간첩인 척 행동하든지 간에 북한의 전략은 남한 내 탈북 사회를 동요시킬 수 있다.

 

아마도 법대 교수는 이러한 탈북자들을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며 북한 정권에 붙는 행위를 하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규정하려는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했고, 명확하지 않았다. 북한에 탈출하여 주민들의 참혹한 생활상을 알려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선의의 탈북자 집단을 고려하지 못한 경솔한 표현이다.

 

그리고 탈북자들에게 ‘사형’, ‘처형’은 북한 사회를 잊고 싶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하나뿐인 삶을 담보를 걸어 남한으로 탈출했다. 그 과정에서 탈출을 함께했던 지인이 불행하게도 북한 군인에 붙잡혀 강제 북송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거나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또 자신 때문에 그 곳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사가 불투명하다. 이렇듯, 탈북자에게 ‘사형’은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단어다. ‘배신자’들을 사형으로 단죄하기보다는 재입북하는 탈북자가 없도록 관련 제도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탈북자 문제도 이념에 따른 인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탈북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면 이번 망언 논란처럼 탈북자에 대한 인식의 오해가 형성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종북 프레임으로 몰아 세워서 갈등과 논란을 조장하도록 감정의 불을 계속 지펴서는 안 된다. 꺼진 불을 다시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들이 인권과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되새겨 볼 시점이다. 재입북자로 인해서 ‘자유민주주의’보다는 국내 탈북자들의 인권이 파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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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3-11-29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저런 망언을 할 수 있는지...ㅉ
저 사람 탈북자 신세 되봐야 정신 차리려나? 민망하다. 이땅의 지성은 다 죽었나 보다.
무슨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ㅠㅠ

cyrus 2013-12-03 20:23   좋아요 0 | URL
이 분 때문에 울학교 캠퍼스나 홈페이지 게시판이 조용할 날이 없어요. 학교 정문에서 규탄 시위도 하고 있고요...

2013-12-04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둑 맞은 미래 - 당신의 정자가 위협받고 있다
테오 콜본 / 사이언스북스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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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략)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중략)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봄. 이 말은 향기로운 꽃향기가 진동하고, 생동감이 넘치던 시간을 잃은 지 오래다. ‘호숫가에 사초(死草)는 시들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데.’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 영국의 시인 키츠는 이상화보다 먼저 봄은 우리가 생각했던 희망의 계절이 아니었음을 예언했던 것일까? 그 이전부터 봄에는 지저귀던 새가 사라지고, 꽃과 풀은 시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상화가 노래한 것처럼 ‘지금은 남의 땅’이라서 그렇지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싱그러운 봄이었다. 지금은 빼앗긴 들도 아닌데 봄이 없다. 레이첼 카슨이 말한 침묵했던 봄의 흔적마저도 없다.

 

『도둑맞은 미래』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속편이다. 우리가 지금 미래를 도둑맞고 있다는 엄청나고도 끔찍한 현실을 발견하게 되는 출발지는 다름 아닌 실험실이었다. 인공 화학물질의 위험한 사실을 알기까지 플라스틱을 만드는 기업들의 집요한 은폐와 압력은 그 옛날 레이첼 카슨을 미치광이라고 비웃던 거대 화학회사들과 똑같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세계 곳곳의 생태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자연 현상들이 하나둘 보고되기 시작했다. 수컷의 생식기능 이상, 새끼들의 원인모를 죽음, 개체 수의 급작스런 감소, 행동 이상. 지역도 다양했다. 미국 영국 덴마크 지중해 일본 할 것 없이 공업화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곳이면 예외 없이 생태계에 무언가 중대한 결함이 발생하고 있다는 불길한 징후가 드러났다. 『도둑맞은 미래』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플라스틱이 편리한 석유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살인 독극물임을 고발하고 있다.

 

이 불길한 징조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춰보던 과학자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런 ‘생태계의 반란’이 화학물질과 농약 등에 의해 빚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조각들이 지금 인류가 당면한 3대 환경문제 중 하나인 ‘환경호르몬’이라는 퍼즐 그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수년 전의 일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데 따른 보복이며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섭리란 무엇인가. 45억 년이라는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지구의 모든 생물체가 생겨나고 살아남아서 계속 번식하며 생존을 이어간다는 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상호보완적이며 먹이사슬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사라져 버리고 다시 생겨난 많은 생명체가 있지만, 인간의 과욕으로 만들어진 인공 물질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무서운 속도로 종의 절멸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생활에 다소 편리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여러 가지 항생물질, 합성호르몬제 등은 그 역사가 100년이 안 된다. 이들의 화학적 구조는 생체 호르몬과 비슷하다. 몸속에서 진짜처럼 작용하면서 생식기능 이상, 면역기능 저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성비균형의 파괴, 유방암 전립선암 등을 유발한다. 각종 캔, 컵라면 용기, 플라스틱 우유병과 장난감, 식품포장용 랩에서도 검출된다.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심각성을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주의를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비유컨대, 인간이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생체 구조와 기능을 설계하는 것이 유전자라면 호르몬은 그 유전자에 새겨진 악보를 소리로 재생하는 실질적인 연주자인 셈이다. 바로 그 호르몬이 물·공기·음식 따위를 통해 들어온 독성 화학물질에 의해 교란되는 바람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오늘날 현대문명은 침략하고 착취할 다른 지역이나 대상조차 없어져 버렸다. 현대문명을 떠받들고 있는 자원도 모두 고갈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화학물질을 지상으로 바다로 쏟아낸 결과 인간은 심각한 환경호르몬 질병에 노출되었다. 이제는 물을 비롯한 모든 음식물조차 농약과 화학물질과 호르몬제와 항생제 등에 뒤범벅으로 오염되어 먹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봄의 전령인 제비, 강바닥의 송사리가 살고,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흙’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우리네 바람이다. 이제는 그러한 일이 점점 멀어지고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 봄은 누군가에게 빼앗겨서 우리 곁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봄을 빼앗아 쫓아냈다.

 

환경호르몬의 존재는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까맣게 사람들 뇌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한철이 지난 뒤에 사람들에게 환경호르몬을 아느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몸에 좋지 않은 화학물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각종 환경호르몬 이상 증세와 듣도 보도 못한 신종 병에 걸려 멸종을 향해 ‘맹목비행’을 하고 있다. ‘지구’라는 비행기 안에는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찾기 위해 창문을 힐끗대는 과학자들과 ‘오만’의 색안경을 쓴 우리가 느긋하게 앉아 있다.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나 변화가 주는 고통은 느리지만 확실히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생존의 문제이다.

 

탈무드에는 ‘물고기를 주어라. 한 끼를 먹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평생을 먹을 것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제는 ‘물고기가 번성할 수 있는 봄을 만들어 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자손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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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11-2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런 책이 있었군요.
환경호르몬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을 환경스페셜을 보고 알았어요.
그 전엔 그저 문제라는 것만 알았지, 그게 구체적으로 왜 문제인지는 몰랐거든요.
환경호르몬이 주로 남성 생식기능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한번 읽고 싶은데, 분위기가 어째 어려워 보이는 군요.
일단은 찜해둡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cyrus 2013-11-28 19:04   좋아요 0 | URL
환경호르몬의 심각성을 먼저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최초의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문이나 내용에서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용이 주로 전문적이라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카슨의 책 다음으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환경호르몬에 의한 사례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 14년이나 되었지만, 언젠가는 이 책도 <침묵의 봄>과 더불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고전으로 오랫동안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