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시집의 서평/리뷰/독후감은 어떻게 써야 할까? 시집을 읽고 나서 그 느낌을 문장으로 옮길 때가 제일 어려웠다. ‘시가 좋다라는 표현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았다. 유려한 문장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 텍스트를 해석하거나 평가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이렇다 보니 내가 시를 읽은 건지 아니면 분석하는 건지 혼동할 때가 있다. 별것도 아닌 시의 행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시 속에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고픈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발견한 무언가를 서평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한 채 시집을 덮는다. 이렇게 여러 번 읽다가 덮은 시집의 수는 지금까지 작성한 시집 서평의 수의 2배나 된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집에 남기는 발문이다. 시집의 발문은 시인과 그 작품에 대한 해설 역할을 하는 텍스트다. 그런데 시집의 발문은 왜 어려운 것일까? 오히려 시보다 시집의 발문이 더 난해하게 느껴진다. 시인들은 관심법을 터득한 특별한 사람 같다. 동료 시인의 마음을 꿰뚫어서 시가 이렇게 쓰였다는 식으로 소개하는 거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시 세 편만 선정해서 글을 쓰면 가까스로 A1 용지 한 장 분량 정도 채우는데, 시인들은 화려한 수사와 비평 방식 등을 총동원하면서 다섯 쪽 이상의 내용을 뽑아낸다. 나도 저런 관심법이 있으면 시집 서평을 잘 쓸 수 있을 거라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시집 서평을 쓰는 방식을 찾으려는 고민은 정답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시집의 발문이 시집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무조건 도움을 주는 텍스트로 볼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똑같은 텍스트일지라도 독자들이 거기서 얻어내는 메시지는 저마다 다르다. 창작자의 의도나 작품의 내적 자질에 대한 해석과 평가에 집착하면, 자신만의 색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활동이 제한된다. 독자가 시를 외면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시를 해석하는 일에 몰두하는 바람에 시를 자유롭게 이해하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암기식 시 해석에 길든 학생은 시를 난해한 텍스트로 인식하게 되고, 창작자의 의도와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 출제자가 만든 네모난 테두리 속에 시가 갇혀버리는 순간, 텍스트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문제 출제자가 원하는 정답을 한정된 시간 내에 빨리 찾아내야 한다.

 

 

아마존 수족관 열대어들이

유리벽에 끼어 헤엄치는 여름밤

세검정 길.

장어구이집 창문에서 연기가 나고

아스팔트에서 고무 탄내가 난다.

열난 기계들이 길을 끓이면서

질주하는 여름밤

상품들은 덩굴져 자라나며 색색이 종이꽃을 피우고 있고

철근은 밀림, 간판은 열대지만

아마존 강은 여기서 아득히 멀어

열대어들은 수족관 속에서 목마르다.

변기 같은 귓바퀴에 소음 부엉거리는

여름밤

열대어들에게 시를 선물하니

노란 달이 아마존 강물 속에 향기롭게 출렁이고

아마존 강변에 후리지아 꽃들이 만발했다.

 

(최승호, ‘아마존 수족관’)

 

 

문제) 위의 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 우울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2) 대립적 가치를 통해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3)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선명한 인상을 준다.

 

(4) 부정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5) 배경 묘사를 통해서 화자의 정서를 암시하고 있다.

 

 

최승호 시인이 직접 이 문제를 풀었는데,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시의 정답은 2번이다. 문제 출제자가 원하는 정답을 맞혔다고 해서 시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문제를 못 맞혀서 크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시를 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명백한 차이가 있는데도 교사들은 문제를 풀지 못한 학생을 공부가 부족한 학생으로 인식한다. 이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잘못된 교육 방식이 당연한 차이를 기이한 차별로 만든다.

 

 

 

 

 

(사진출처: [우리가 맨날 풀었던 언어영역, 국어영역 문학 문제들. 정답이 도대체 뭔가요?]

<스브스뉴스> 2016년 6월 10일)

 

   

 

캐나다 출신의 비평가 노스럽 프라이는 시를 쓰도록 격려해서 유명 시인을 배출하는 것보다는 시에 대한 사랑을 먼저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가 시인의 원고지에 빠져나와 시집으로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독자의 몫이 된다. 독자의 상상력이 무한히 확장되는 즐거운 순간이다. 특히 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유쾌한 자유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창작자의 텍스트를 함부로 개입해서 오독할 까봐 두려워했다. 말도 안 되는 정답을 찾아야 하는 문학 수업 시간에 대한 추억 덕분에 나는 텍스트를 너무 신중하게 대했다. 난 정말 바보처럼 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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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06-11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기사를 보고 집에 가서 단상을 적으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저 기사의 문제의식(정답을 강요하는 시 교육)에는 동감하지만 시 해석에서 저자의 해석이 유일무이한 권위인 양 말하는 기사의 어조가 불편했어요. 최승호 시인이 자기가 쓴 시에 대한 문제를 못 풀었다는 근거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시를 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수많은 해석 중에 저자나 출제자의 의도가 우위를 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로 그건 독자의 몫인 거죠. 시집 서평은 저도 항상 고민하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래봤자 제대로 리뷰 써본 건 한 번뿐이지만..

cyrus 2016-06-11 17:17   좋아요 0 | URL
뉴스 보도 방식의 문제점에 동감합니다. 뉴스가 독자들이 수능 문제를 푸는 과정까지 소개했으면 시인의 해석 권위에 대한 느낌이 덜 했을 겁니다.

저만 혼자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님도 저와 같은 심정을 겪어본 적 있으시군요. 아무님만의 생각이 채워진 단상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

아무 2016-06-11 17:54   좋아요 0 | URL
집에 갔는데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 못 쓸지도 모릅니다^^;; 그런 적이 많거든요.. 제가 처음 알라딘서재 시작할 때 세운 원칙이,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무조건 한 편 이상 쓴다였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어서 엎은 적이 많습니다..ㅎㅎ

오거서 2016-06-11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돌이켜보니 국어시간에 시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네요. 시를 낭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시를 즐길 수 있겠어요. 저 역시 바보처럼 시를 대해 왔군요.

cyrus 2016-06-11 17:19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하면 시 전문을 외우는 수업 방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를 못 외우면 벌을 주고, 평가점수에 반영했습니다. 최악의 수업 방식입니다.

단발머리 2016-06-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보다 시집의 발문이 더 어렵다는 의견에 완전 동의합니다^^

cyrus 2016-06-12 18:08   좋아요 0 | URL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발문을 읽었는데, 오히려 시가 더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 후로 발문을 안 읽어요. ^^;;

yureka01 2016-06-1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시의 감상법을 망쳤죠..ㅠ.ㅠ
영원히 시와 멀어지게 한게 학교에서 시험출제용 시 배우는 것이었죠 ....

사실 국어선생님들도 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으니....

cyrus 2016-06-12 18:12   좋아요 0 | URL
한때 국어 교사를 장래희망으로 생각한 적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능 시험 준비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잘못된 학습법을 가르쳐야하는 교육 현실이 짜증났습니다.

수이 2016-06-1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시를 바보처럼 읽은 건 마찬가지인데_ 그래도 그때 문학수업때_ 들었던 시, 외웠던 시 덕분에 시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생겼어. 물론 방법은 바보 같았지만_

cyrus 2016-06-12 18:13   좋아요 0 | URL
그래도 누님은 평소에 시집 많이 읽습니다. 누님이 준 시집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어요. ^^

방랑 2016-06-11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시집을 읽고 서평을 쓰기가 어려웠어요. 어떤 식으로 써야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물론 지금도요. 시집 뒤에 있는 동료 시인의 말도 그리 도움되는건지는 의문이에요, 마치 그들만의 언어처럼 또 다른 시가 되어버려서..

시에 대해서 한 가지 얘기해보고 싶은 것은 저작권에 대해서인데, 다른 갈래에 비해 시는 저작권 보호가 약한 것 같아요. 예전에 알라딘에서 친히 메일을 보내셨는데 북플에 올린 글 중 일부가 저작권 문제로 일부 발췌 글을 내려달라구요. 그런데 시는 한번도 문의가 없는 것 같아요. 시를 통째로 올리는 것은 내버려두면서 왜 소설의 일부나 인문서 일부는 발췌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요? 시는 아무도 안보고 돈도 안되기 때문일까요..

cyrus 2016-06-12 18:24   좋아요 1 | URL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발문이 도대체 누구 보라고 쓴 건지 모르겠어요. 특히 철학 용어를 써가면서 시를 접근하는 발문은 싫어합니다. 현학적 언어 때문에 독자들이 시를 어려워 합니다.

저는 시 전문을 인용하면 항상 시집 제목과 쪽수를 적습니다. 일반 도서의 문장을 인용할 때도 이 원칙을 지킵니다. 제가 예전에 출처를 안 밝히고 써서 표절 의심 받을 뻔 했습니다. 다행히 오해가 풀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출처 표시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시를 올바르게 인용하려면 출처를 밝혀야하고, 행과 문장 표현 같은 사소한 것도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 구분이 잘못 배치된 시를 인터넷에 공유하고,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시집 제목을 밝힌 블로거는 많이 본 적 없어요. 그만큼 사람들이 시집을 안 읽고, 인터넷에 떠도는 시를 긁어 모아서 인용하는거죠. 저는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시를 보는 느낌과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시를 보는 것 느낌은 많은 차이가 납니다.
 
noboby여도 좋고, anywhere여도 그만이다

 

 

 

 

 

 

 

 

 

작년 헌책방에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번역본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번역본 제목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누구나 제목만 보면 프루스트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책 뒤편에 소설 원제가 있습니다. ‘Rue Des Boutiques Obscures’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작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84년 한국출판공사에서 나온 번역본입니다. 펼쳐 보면 세로쓰기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에 가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좀 오래된 책이라서 새 주인을 만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 책을 책장으로 모셔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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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6-1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이라고 할 만 하네요

cyrus 2016-06-11 16:35   좋아요 0 | URL
의외의 발견이었습니다. 알라딘에 없고, 아무도 모르는 책을 찾는 것이 헌책방의 묘미입니다. ^^

yureka01 2016-06-1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제목에서 받는 뉘앙스 차이가 참 크네요.ㅎㅎㅎ

어두운 상점의 거리라니,,,의외네요....

cyrus 2016-06-11 16:39   좋아요 0 | URL
역자 입장에서 번역보다 제일 힘든 일이 제목을 정하는 일일 겁니다. 원작 제목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의역을 하거나 역자가 임의대로 제목을 정합니다. ‘obscure’라는 단어를 불어사전을 찾아봤는데, ‘무명의’, ‘이해하기 힘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김화영 교수는 ‘어두운’으로 옮겼어요.

북깨비 2016-06-11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0년대 출판된 세로 쓰기 책이라고 하시니까 어릴 때 부모님 책장에서 보던 세로쓰기로 된 문학전집이 기억이 나네요. 읽진 않고 말그대로 그냥 보기만 봤던.. ^^;; 양장은 양장인데 지금 생각하면 종이질은 뭔가 골판지 같은 느낌? 한 권 한 권 사전처럼 삼면으로 된 상자에 들어 있었던 거 같아요. 요즘처럼 고급 판형은 아니고요 그냥 한자가 나와서 어른이 되야 읽을 수 있나보다 생각하고 저는 어린이 전집만 팠지요. ㅎㅎ 뭔지도 모르고 헤세라는 이름은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수레바퀴 아래서를 펼쳐본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게 될 줄 그 때 알았더라면 (그 전집이 언제부터 안 보이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그냥 처분하시게 내버려두지 않았을텐데요. ㅠㅠㅠ 이 책 보니까 옛날 생각나고 그러네요.

cyrus 2016-06-11 16:43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 작가의 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전집인데 총 12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세로쓰기로 되어 있는데, 책이 너무 오래 돼서 책 전체가 누렇습니다. 다행히 이 책을 버리지 않고, 박스에 담아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어렸을 때는 책의 가치를 몰랐는데, 세계문학에 눈을 뜨면서부터 뒤늦게 알았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은데, 꺼내기가 힘든 상태입니다. ^^;;

alummii 2016-06-1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cyrus 2016-06-11 16:44   좋아요 1 | URL
누구나 책을 좋아하게 되면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yamoo 2016-06-1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프루스트의 주저 제목처럼 당당히 표지에 인쇄되어 있네요...ㅎㅎ
이런 옛날책이라니~ 좋은 발견 하셨네요^^

cyrus 2016-06-11 16:51   좋아요 0 | URL
저 책을 처음 본 순간, 프루스트 소설 요약본인 줄 알았습니다. ㅎㅎㅎ

sslmo 2016-06-1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저 님 서재 명`개썅 마이 리딩`보고 리썅이 떠올랐다나 어쨌다나~(,.)
혹, 그런 의도로 지으신건 아니겠죠?
암튼 전 개리와 길, 음악 들으러 갈랍니다여~^^

전 세로버전 잘 읽어요. 소싯적엔 대부분 세로 읽기가 대세였죠~^^
암튼, 전 님 여러가지 의미루다가...
넘 멋진거 같아요~^^

cyrus 2016-06-13 21:52   좋아요 0 | URL
서재 이름은 아무도 안 볼 줄 알았는데 나무꾼님이 알아주셔서 감동받았습니다. ㅠㅠ

리쌍의 음악은 좋아하는데 가수와 전혀 관련 없어요. 인터넷 은어 `개샹마이웨이`에서 따온 겁니다. 뜻이 `남들이 뭐라 해도 내 갈 길 가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
 

 

 

길에 새끼 고양이가 힘없이 쓰러져 있더라.”

 

지나가 버린 수요일. 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내게 고양이 얘기를 들려줬다. 어머니는 내가 오기를 엄청 기다렸는지 한동안 입에 꾹 담았던 말을 꺼냈다.

 

우리 집 건너편에 어린이집이 있다. 그 날 오후에 어머니가 어린이집 앞을 지나가다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머니가 소리 나는 곳을 가봤더니 봉고차가 세워진 어린이집 울타리 쪽에 축 늘어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다리 부분만 하얗고, 몸 전체가 검은색 빛깔을 띤 고양이였다. 어미를 애절하게 부르는 새끼 고양이가 불쌍해서 어머니는 우유를 담은 작은 접시를 내놓았다. 새끼 고양이를 처음 발견한 지 한 시간 후에 어머니는 고양이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 확인해봤다. 새끼는 우유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

 

어머니는 새끼 고양이의 상태로 봐서는 곧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농담으로 새끼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건강하게 키우자고 말했다. 내가 새끼를 직접 보니까 몸 상태가 생각보다 아주 심각했다. 새끼 크기가 남성 성인의 주먹만 했다. 새끼는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햇살과 공기를 마음껏 느끼는 듯한 자세였다. 그렇게 처절하게 바짝 올리던 고양이의 머리가 점점 바닥 쪽으로 내려갔다. 새까만 털 색깔 때문에 새끼가 눈 뜬 건지 감은 건지 확인할 수 없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살짝 새끼의 머리를 건드려봤다. 새끼는 내가 가까이 오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새끼에게 더 이상 머리를 들 정도의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받으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새끼를 살리고 싶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죽어가는 새끼를 그대로 놔두고 갈 수 없었다. 그래도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찾으러 다시 올 거로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제발 어미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 집은 1층이다. 생각날 때마다 발코니 창문 쪽으로 가서 새끼 고양이가 발견된 장소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저녁에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봉고차 밑으로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그 고양이가 새끼를 찾으러 온 어미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에 불과했다. 새끼 고양이는 내가 마지막에 봤던 웅크린 자세 그대로 잠들었다. 새끼 머리 주변에 개미 몇 마리가 기어 다녔다. 아마도 어미는 병든 새끼를 키울 수 없어서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전날 내가 봤던 얼룩무늬 고양이가 새끼의 진짜 어미라면, 새끼가 죽었는지 확인하러 그곳을 다시 찾아왔을 수 있다.

 

나는 새끼 고양이 사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120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콜센터 상담원에게 사체를 수거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길거리에 로드킬당한 개,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지역 번호+120’으로 전화하면 된다. 사체가 있는 장소 위치나 주소를 정확히 알려주면 상담원이 해당 구청으로 바로 접수한다. 그러면 구청 소속 담당 직원들이 사체를 수거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물을 각별하게 여기는 사람은 직접 사체를 땅에 묻기도 한다. 그런데 동물 사체를 땅에 묻는 일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적발될 경우, 벌금을 내야 한다. 사체에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사체에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산속에 동물 사체를 발견하면, 그대로 놔두면 된다. ‘자연의 장의사들이 사체 부패를 돕는 역할을 한다. 사체는 송장벌레, 딱정벌레, 구더기가 좋아하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우리는 사체 주변에 달라붙은 구더기나 동물들을 혐오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즐거운 생명의 축제다. 다른 생명의 죽음은 살아있는 생명을 위한 삶의 영양분이 된다. 만약에 송장벌레와 구더기가 너무 싫어서 모조리 박멸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과연 우리는 구더기 없는 깨끗한 세상을 살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썩지 않은 동물 사체 그리고 인간의 시체가 많아진다. 사실 인간은 구더기, 송장벌레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가 남긴 쓰레기, 그리고 죽으면 남게 될 육신을 그들이 뒤처리해주니까.

    

 

 

 

 

 

 

 

 

 

 

 

 

 

 

 

 

 

인간도 언젠가 죽는다. 죽음 앞에 마주치면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래서 세월의 힘을 받으면서 생긴 신체 변화를 느끼면 한숨을 푹 쉬거나 애써 잊으려고 한다.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타인의 약점마저 불편하게 느낀다. 이는 차별과 억압, 그리고 혐오라는 감정으로 형성된다. 옛날 의학 교수는 인체 해부에 능숙하지 않았다. 그들은 옛날 고대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가 발견한 해부학 지식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갈레노스 해부학 지식의 결함이 많았다. 동물 해부를 바탕으로 만든 엉터리 지식을 의학 교수는 답습하고,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기독교 중심의 유럽 사회에서 인체 해부는 종교 규율을 어기는 금기 행위였다. 합법적으로 시체에 손을 대고 해부하는 일은 비천한 미용사들의 몫이었다. 미용사가 시체의 배를 가르면, 의학 교수는 해부한 시신에 지휘봉을 가리키면서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인체 해부를 혐오하는 의학교수의 마음속에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두려움과 역겨움이 컸을 것이다. 의학교수의 원초적 혐오는 차별이 되어 시체를 해부하는 일을 맡은 미용사의 존재를 배제했다. 이로 인해 해부 경험이 많은 미용사가 외과 의사가 되는 일이 드물었다. 의사들은 의사 일을 겸하는 미용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혐오가 차별로 변형되는 위험한 감정은 생각보다 우리 삶 속에 깊게 내재화되어 있다. 시체를 대할 때, 그리고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시체 앞에 벌벌 떨면서 공포심을 느끼는 자는 시체를 정면으로 대하는 자를 혐오하고 차별한다. 사람들은 직원들이 동물 사체를 보신용으로 해먹거나 식당에서 판매한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편견이다. 현행법상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 사체는 생활폐기물로 분류된다. 동물 사체 수거 직원들이 폐기물을 보신용으로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근거 없는 편견은 궂은일을 하는 직원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처럼 인간은 혐오라는 감정에 쉽게 휘둘려서 비합리적인 기준으로 타자를 차별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믿는다. 혐오는 차별을 만들어내는 위험한 감정의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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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6-1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역번호120 알아둬야 겟네요.
사드의 유언은 자신의 시체를 뭍지말고 버리라고 했는데, 본받고싶은 유언이었습니다.

시체를 산에 놔두면 자연이 알아서 거두어가거든요 ^^

cyrus 2016-06-11 10:45   좋아요 0 | URL
사드가 네크로필리아를 위해서 큰 그림을 그린 게 아닐까요? ㅎㅎㅎ

‘지역번호 128’으로 전화해도 되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래서 120을 눌렀는데, 통화 연결되었습니다. ^^

표맥(漂麥) 2016-06-1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역 번호 120. 기억하겠습니다.^^

cyrus 2016-06-11 10:46   좋아요 0 | URL
번호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동물 사체를 발견하면 ‘누가 치우겠지?’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럴 때 120으로 전화하면 됩니다. ^^

페크pek0501 2016-06-1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0을 누르는 것, 배워 갑니다. 몰랐어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동물이 가엾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cyrus 2016-06-11 10:50   좋아요 0 | URL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픕니다. 왠지 모르게 죄책감도 느낍니다.

yureka01 2016-06-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기견 유기묘들이 너무 많아요..아고...그것들도 다 생명인데.....

cyrus 2016-06-11 10:53   좋아요 1 | URL
최근 뉴스에서 동물 보호소가 부족한 국내 실정을 보도하더군요. 저도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정말 끝까지 보살필 자신이 없어서 키우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저처럼 책 읽느라 움직이기 귀찮은 성격의 사람은 동물과 같이 놀지 못해요. 반려동물을 두 마리 이상 보살피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

찔레꽃 2016-06-1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마나님께서 그 고양이를 봤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어요. 음.................................

cyrus 2016-06-11 10:57   좋아요 0 | URL
멀쩡한 새끼 고양이는 어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병든 상태가 아니라면 어미가 새끼를 데리러 다시 온다고 합니다. 수요일에 본 새끼 고양이는 딱 봐도 허약했습니다. 죽기 일보 직전의 새끼를 만나면 갈등이 됩니다. 보살펴주고 싶은데 살아날 가망이 없을 것 같고, 그냥 모른 척 하고 가면 죄책감이 들어요.

yamoo 2016-06-11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좋은 정보네요~! 저두 배워 갑니다..ㅎ

파트라슈 2016-06-11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유기된 개나 고양이 구조해달라고 119에도 전화 많이 하는데 고양이 새끼같은 경우 멀쩡하게 어미가 새끼쳐서 잘 기르고 있는 것을 괜히 철없는 사람들이 구조해달라고 119전화해서 사람들이 손으로 건드려놓으면 고양이 본능상 자기새끼들한테서 인간들 냄새 난다고 물어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나 고양이 놔두면 그냥 알아서 다 잘 살아갑니다. 유기견이나 들고양이도 얼마든지 도시에서 산에서 들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일일히 모두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람들이 보기에 불쌍해보일진 몰라도 개나 고양이 자신들의 입장에선 새끼가 도시의 시궁창에서 태어나 자라는게 이상할 것도 없죠. 그냥 그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다만 들고양이나 유기된 개가 사람한테 위험할수도 있고 전염병의 매개체가 될 수 있으므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적절한 관찰과 관리는 필요하긴 하죠. 그리고 하루빨리 개나 고양이를 도축법에 포함시켜 개나 고양이의 도축도 법적으로 규제되고 관리되어야 합니다. 먹지 마라고는 할 수 없으니 이왕 먹을거면 법적으로 확실히 규제해서 위생적으로 먹는게 낫지 않을까 합니다.

cyrus 2016-06-12 18:28   좋아요 0 | URL
저도 멀쩡한 상태의 새끼 고양이를 어미 없다고 해서 몰래 집으로 데려오는 것에 반대합니다. 사람들이 새끼가 귀여워서 키우고 싶어하는데 다 자랄 때 유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고양이의 삶을 망치는 것입니다. 파트라슈님 말씀처럼 그냥 놔두는 것이 좋습니다.

孤로운늑대 2016-06-26 11:40   좋아요 0 | URL
˝ 먹지 마라고는 할 수 없으니...˝
먹지말라고 할 수도 있지요. 복날 꼭 개나 닭을 먹어야 하나요? 나는 채식주의자도 여자도 아니지만 개를 잡아먹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하긴 고양이를 잡아먹는 미친 인간들도 있으니...
타협안 => 개고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제발 때려잡지는 맙시다. 여러분이 식인종에게 잡혔을 때 몽둥이로 때려죽여야 맛있다고 무작정 패거나 산채로 뜨거운 물에 끓이면 좋겠어요?
 
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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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91. 일본 관동 지방 남부에 대지진이 엄습했다. 사람들은 미처 불도 끄지 못한 채 거리로 뛰쳐나왔고 도시는 곧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들리는 땅, 타오르는 화염보다 유언비어에 더 큰 공포를 느꼈다. 일본 정부는 극도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고의로 유언비어를 퍼뜨려 분노한 민심의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혼란을 틈타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그 결과 무고한 재일 한국인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스스로 사실로 단정하고 군경을 동원해 직접 조선인 사냥에 나섰다. 일본인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총칼 등으로 닥치는 대로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조선인들을 나는 조선인입니다라는 팻말 옆에 묶어놓기도 했다. 그들의 학살 방법은 잔인함과 광기의 극치였다.

 

 

 

 

 

 

관동 대학살은 극한의 현실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과 좌절을 힘이 약한 상대에 대한 분노로 전이시켜 배설하도록 만든 전형적 정치 선동이다.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듯 역사는 반복된다. 불행히도 잘못된 역사 또한 그렇다. 일본에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란 극우 단체가 있다. 이들은 반한(反韓) 나아가 혐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거침이 없다. 한국인에 대해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조선인은 기생충’ ‘바퀴벌레 구더기 조선인들등 부당하게 한국인을 모욕하는 피켓과 구호가 난무한다. 재특회의 구성원은 젊은 층으로 이뤄져 있다. 저임금의 시간제 근로자 또는 최근 갑자기 늘어난 계약직 근로자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좌절감을 분출하는 것이 이들 단체의 목적이다.

 

인간은 늘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선택의 부재, 대안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이것이 심하면 죽음의 공포와 맞먹는다. 우리는 그것을 아예 모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든가, 아니면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거부해야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유도되어 행동한다. 그럴수록 찐득한 혐오의 그림자가 우리 몸에 달라붙는다.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오염에 대한 두려움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동성애자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과 비합리적인 혐오와 공포를 호모포비아(Homophobia)라고 명명했다. 동성애란 말만 들어도 왠지 소름이 끼치고 역겹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성애자가 자신의 곁에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 감정이나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세균이 분열하면서 번식하는 것처럼 호모포비아 분위기가 확산하면 혐오범죄로 이어진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때리거나 심지어 죽인다. 동성애뿐만 아니라 여성과 외국인, 특정인을 비하할 때 등장하는 냄새나 분비물에 관한 표현은 대표적인 혐오 발언 사례다.

 

 

 

이 책의 두 번째 글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임옥희 편) 27~28쪽에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핵심 내용이 잘 정리되어 소개되었다. 혐오와 수치심의 두꺼운 분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독자는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27~28쪽을 읽으면 된다.

 

 

 

인터넷에 서식하는 수많은 남성이 여성이라는 단어만 보면 부모님의 원수를 만난 듯이 발광한다. 여성의 성기와 벼슬아치를 합친 보슬아치란 비하 표현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보지 달린 게 무슨 벼슬이냐라는 의미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김치녀는 그나마 점잖은 수준이다. 여성을 노골적으로 폄하해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단어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역감정에 휘둘렸다. 특정 지역이나 출신들을 맹목적으로 비하하며 편을 가르고 감정싸움을 벌여왔다.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감정은 전쟁 양상이다. 호남 사람들을 홍어로 비하한다. 이런 지역적인 특성을 이용해 삭힌 홍어가 풍기는 냄새를 호남 사람들의 인격과 동일시해서 비하하는 데 쓴다. 광주 민주항쟁 당시 시민군 전사자의 시신 썩는 냄새를 진압군이 홍어 삭힌 냄새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희생자들을 빗댄 통구이등도 경상도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다.

 

 

 

 

 

 

혐오는 수치심을 유발한다. 부정적 수치심은 자기 파괴적 힘을 가진다. 오랫동안 혐오 발언에 시달렸던 재일 조선인들은 극우 세력의 무차별 폭력 및 혐한 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현재까지도 지워지지 않은 낙인은 재일 조선인들의 활동을 제약한다. 차별과 강압의 부당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려면 일본인들의 보복을 감당해야 한다. 재일 조선인들은 언제 또 다시 공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무차별 폭력이나 혐한 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부정적 수치심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가 상실된다. 반면 재특회의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오토코구미의 행동대장 다카하시는 혐한 시위를 보고 있으면 수치스럽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다카하시는 한때 반한 감정을 가진 우익이었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고집하면서 재일 조선인을 차별하는 재특회의 무지함에 부끄러움을 느껴 오코토구미에 들어가게 됐다. 이처럼 혐한 시위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은 혐오의 감정이 사회적 약자에게만 광적으로 표출하는 잘못된 일본 사회에 수치심을 느낀다. 이는 수치심도 긍정적으로, 건설적 방향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독특한 사례다.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자신들 기준대로 종북타령하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테러방지법 시행을 찬성한다. 이미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테러방지법을 도입하자고? 그들은 국가보안법으로 대통령을 음해하는 종북 세력을 처벌하고, 테러방지법으로 간첩 활동을 하는 종북 세력의 군사적 행동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무고한 진보 세력을 간첩으로 만들어버린 사례가 있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실체 없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에 사람들 머릿속에 공산당은 빨갱이 괴물로 자리 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파 세력은 좌파 세력을 극도로 혐오해서 법적으로 통제하려 든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한다. 일베의 혐오 발언의 심각성을 지적하면 표현의 자유운운하면서 일베를 옹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의견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우파의 이중성. 우파인 나도 그들 보기가 부끄럽다. 그들은 자신들이 완벽하고 이성적인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한다. 자신들의 단점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점을 은폐하기 위해서 '정신승리'에 가까운 변명만 늘어놓는다.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은 수치심을 주는 처벌이 있어야 공동체의 도덕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하위 집단에 대한 지배 집단의 통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반대한다. 집단적 혐오는 파괴적이다. 역사적으로 지배 집단은 혐오라는 감정을 이용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반대 세력을 억압했다. 관동 대학살,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혐오 감정을 위악적으로 배설해서 생긴 비극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심각하다. 사회는 다양성과 자유의 목을 졸라 여기저기에 족쇄를 채운다. 그리고 차이차별로 키우고 모든 걸 정상비정상으로 나누어 힘의 서열을 매긴다. 부당한 차별은 사회 내의 정의와 평등에 어긋난다.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가 전염된 사회는 자유주의를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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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6-09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일련 소개 글 보면
혐오, 증오에 관심 많으신 거 같습니다. ^^

cyrus 2016-06-10 13:12   좋아요 0 | URL
내용, 주제가 겹치는 책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진짜 독서의 목적은 이벤트 응모입니다. ㅎㅎㅎ

2016-06-09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10 13:14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도 비겁한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갑질하거나 분노를 표출합니다.

북깨비 2016-06-10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의로 유언비어를 퍼뜨려 분노한 민심의 희생양을 만들어내다 라는 대목을 읽으니 문득 미미여사의 외딴집이 생각납니다. 기나긴 인류 역사속에 얼마나 많은 희생양들이 있었을까요. 끔찍합니다.

cyrus 2016-06-10 13:18   좋아요 1 | URL
유언비어와 편견을 맹목적으로 믿는 대중심리가 정말 무섭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무고한 사람을 마녀사냥합니다. 자신들의 믿음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침묵합니다. 악성 루머를 만들고 퍼뜨리는 자는 따끔하게 법으로 잡아 족쳐야합니다.

페크pek0501 2016-06-10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27~28쪽을 읽으면 된다.˝
- 그래서 책을 들춰 봤어요. ㅋ

집단 망상이라는 것도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살겠습니다.

cyrus 2016-06-11 11:05   좋아요 0 | URL
27~28쪽에 마사 너스바움이 정의한 혐오와 수치심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글쓴이가 700쪽 넘는 책 한 권의 주제를 간략하게 요약했습니다.

집단 망상의 힘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나는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잘못한 게 없다고’라고 착각합니다.

 

 

 

 

 

 

 

 

 

 

 

 

 

 

 

 

 

 

 

 

 

 마르시아스를 아는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르시아스(Marsyas)는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피리를 발견했다. 마르시아스는 피리를 주워 자신의 입에 갖다 댔다. 피리에 살짝 숨을 불어넣었는데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감미로운 피리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마르시아스 주변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피리 연주에 감탄한 사람들의 칭찬에 마르시아스는 기분이 좋아졌다. 주변의 칭찬에 으쓱한 그는 음악의 신과 겨루어도 지지 않으리라는 우쭐한 생각을 품었다. 사실 마르시아스가 주운 피리는 아테네 여신의 손길이 닿은 특별한 피리였다. 마르시아스는 자신의 연주 솜씨가 신령한 피리 덕인 줄도 모르고 우쭐댔다. 오만한 마르시아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과 연주 실력을 겨루고 싶어 했다. 무모하게 신에 도전하는 자는 불행하고도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마르시아스와 아폴론 연주 대결의 심판을 맡은 뮤즈들은 아폴론의 손을 들어줬다. 연주 대결에 패한 마르시아스는 아폴론이 내린 형벌을 받았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산 채로 나무에 묶어 살가죽을 벗겼다.

 

소설가는 자신의 글쓰기가 죽음을 불사하고 신에게 도전하는 창조정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밀레니엄을 맞아 국제화시대에 맞춘다며 새로운 필명을 만들었다. 마르시아스 심. 소설가의 필명은 신화 속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기존의 순문학에서 좀처럼 드러내길 꺼렸던 ‘성’을 주제로 작품을 써내려갔다. 그의 도전은 성공했다.

 

 

 

 

 

하지만 소설가는 오만했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줄 착각하면서 살았다. 그는 내연녀의 얼굴에 주먹을 치면서 이렇게 외쳐댔다. “너 같이 거짓말 하는 사람은 신에게 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신 대신 벌을 주겠다.” 소설가는 내연녀를 폭행하고 감금을 시도한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마르시아스는 신 앞에 도전한 오만한 대가로 끔찍한 형벌을 당했다. 마르시아스 심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벌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 ‘소설가’라는 분신이 벗겨지는 천벌을 받았다.

 

 

마르시아스 심, 심상대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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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6-0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마르시아스 심님이 이런분이였군용.

예명대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으셔도 될법한걸요 ^^

cyrus 2016-06-10 13:19   좋아요 0 | URL
징역형이 풀려나면 다시 작가 활동을 재기할 것 같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요. ^^;;

2016-06-09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6-10 13:22   좋아요 1 | URL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출판업 종사자들은 작가들의 민낯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거만한 성격의 작가들도 있겠죠?

원더북 2016-06-09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적절하고 절묘한 글을 쓰셨습니다!

cyrus 2016-06-10 13:24   좋아요 0 | URL
심상대 작가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필명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루쉰P 2016-06-1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악이네요 ㅠ 종은 글 입니다 ㅎ

cyrus 2016-06-10 13:27   좋아요 0 | URL
더 최악인 건 이 소식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종편 뉴스는 작가 실명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이 사건을 비중있게 보도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stella.K 2016-06-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만하면 점잖은 줄 알았더니 소설가 망신은 혼자 다 시키는군.
그 예명이 그런 뜻이 있었군.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본명 쓰지 무슨 마르시아냐 킥킥 웃었던 적이 있었다.ㅠ

cyrus 2016-06-10 17:13   좋아요 0 | URL
제가 중학생 2학년 때 마르시아스 심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냐면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1권 아니면 2권을 읽었는데 마르시아스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글에 이윤기 씨가 마르시아스 심을 언급했어요. 필명이 독특해서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어요. 이윤기 씨가 작가의 앞날에 큰 기대감을 느꼈는데,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네요.

페크pek0501 2016-06-1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가 어찌 그럴 수가 있나요?

이럴 때 인간이란 해석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만 그럴까요?

cyrus 2016-06-11 11:05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이 사건이 보도되었을 때 ‘중견 소설가 A씨’라고 나왔습니다. 누군지 정말 궁금했어요. 종편 뉴스도 작가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는데, 소설가 수상 이력을 소개하더군요. 이건 A씨의 정체가 궁금한 시청자들에게 떡밥을 준 거죠. ㅎㅎㅎ 인터넷 뉴스는 실명을 거론했어요.

아마도 작가는 필명의 의미에 사로잡혀서 자신도 신인 줄 알았는가봐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신의 가면`을 썼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