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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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성서》 창세기 3장 19절)

 

 

 

어떤 것은 빨리 썩고 어떤 것은 느리게 분해된다. 물렁물렁한 것은 빨리 찢기고, 딱딱한 것은 천천히 마모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썩어야 생기는 원소를 먹고 산다. 분자로 이루어진 먼지가 더욱 나누어져야 그곳에서 생명의 필수영양원소가 나온다. 썩는 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분해라 한다. 형체가 있는 것에서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존재로 부서지는 과정이다. 생물체의 모든 성분은 빠짐없이 흙 속에 들어 있는 성분과 같다. 모든 생물체는 화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하면 흙이다. 따라서 생명을 잃은 존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성윤석 시인의 시집 《밤의 화학식》의 ‘화학식’은 우리가 학창시절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웠을 그 ‘화학식’이 아니다. 시인은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원소에 의해 생명이 생성되어 소멸하는 자연의 순리를 화학적 원리로 접근하여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시적 대상으로서의 원소를 경험적 현실로 인식하고, 나름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자연의 순리’를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 주고 있다.

 

 

 

 

한 호흡

 

이즈음의, 이즈음의 한 호흡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

 

길고 긴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생의 과정들을 죽 늘어놓고

 

빛나는 것은 소멸한 것, 소멸해가는 것

 

 

(『산소 O』 중에서, 34~35쪽)

 

 

 

 

산소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원소다. 호흡을 통해 몸 안에 유입된 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때 사용된다. 하지만 산소가 항상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산소도 동전처럼 양면성이 있다. 신체의 대사과정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한 ‘활성산소’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 우리 세포막과 세포 속 유전자를 공격해 몸을 늙고 병들게 한다. 활성산소는 대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다행히 우리 몸은 스스로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할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을 유기체로 보는 동양 전통의 자연관에 따르면 본래 자연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즉 인간은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배설물을 쏟아내며, 죽어서 육신을 땅에 되돌려줌으로써 식물의 번성에도 기여한다. 우리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뱉어낸 ‘한 호흡’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의 과정’ 일부가 된다,

 

 

얘야, 실제로 무서운 건 우리가 낱낱의 알갱이로 떨어져

서로의 입자들을 다 잃고 난 뒤겠지.

그리고 추운 세상이 올 거야. 넌 혼자가 될 거야.

네가 아닌 사물들이 널 들여다보겠지.

사물들의 뒤편엔 이웃들의 사유들이 먼지처럼 쌓일 거야.

 

(『먼지의 화학식 2』 중에서, 66~67쪽)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들은 감정도 없고, 자기표현 방법도 없으니 무생물이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서 사물들에게 감정을 부여한다면,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도이다. 시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인 주석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질문’은 진지하다. 시인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주석의 실체를 탐구하며 생존 욕구를 가지고 환경에 반응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 전체를 관찰한다.

 

 원자번호 50번. 이 지방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극한의 추위란, 여기에 없을 테니까. 주석이 극한으로 내려가는 기온 속에서 회색 가루로 변할 동안 사람들도 얼어 부서져버릴 테니까. 스스로 가루가 되어버렸던 사람들을 본다. 눈에 뭔가 자꾸 보였던 것. 눈에 뭔가가 자꾸 보일 때, 시간은 스스로를 묶고 사람이 어디로든 되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주석 같은 사람들을 안다. 빛나는 술을 담아낼 줄 알지만, 때가 오면, 희미한 가루로 남던 사람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가? 당신을 묻는 내가, 너무 진지한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가. 세계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다.

 

(『주석 Sn』 39쪽)

 

 

사람은 죽어서 먼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우주공간에 흩어진 원소들로부터 유래되었고, 생명체가 죽으면 그 구성 물질은 분해되어 먼지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뇌세포에 의식이 있어서 당연한 운명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많은 연구가 있어도 인간 스스로 소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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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2 14:22   좋아요 1 | URL
원효 대사가 해골 물을 마셨던 상황과 비슷하군요. ㅎㅎㅎ
이번 주 금요일에 일찍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 날 일찍 가겠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말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도 연관이 있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2-22 17:40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시집의 100자평으로 잘 어울리는 명언입니다. ^^

sslmo 2017-02-22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의 백 뮤직은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로 하겠습니다.
김광석도 있고 로이킴도 있는데, 이윤수를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이라니...ㅋ~.
연식이 들통나 버릴텐데도 완전 우쭐합니다.
님께도 강.권.합니다~ㅅ!

cyrus 2017-02-22 17:41   좋아요 0 | URL
저는 김광석 버전을 좋아합니다. 이윤수 버전을 안 들어봤어요. 유튜브 영상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어요.. ^^;;

캐모마일 2017-02-23 07:45   좋아요 0 | URL
이윤수는 처음 들어본 가수인데, 한번 그 분 버전의 먼지가 되어를 들어봐야겠습니다.

캐모마일 2017-02-23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독특한 시집이네요. ㅎㅎㅎㅎ 마치 화학시간에 인문학과 감성이 풍부한 문과 학생이 하나하나 원소와 개념을 배우면서 시로 승화시킨 거 같아요. 말씀처럼 상상과 받아들임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사색의 여정이요. 이런 말씀 드리면 시인에게 누가 될런지요.

cyrus 2017-02-23 18:21   좋아요 1 | URL
화학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몇 편의 시들은 난해했어요. 저는 제가 이해하기 쉽고, 좋은 시가 많다고 느껴지면, 그 시집의 평점을 높게 줍니다. ^^
 
그림에 나를 담다 - 한국의 자화상 읽기
이광표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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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회화적 기량과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장르다.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다른 장르와 달리 자의식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을 화가에게 추가로 요구한다. 얼굴엔 일생동안 찍어낸 한 사람의 발자국, 욕망과 좌절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얼굴을 표현한 자화상엔 화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게 자화상의 매력이다.

 

   

                        

 

그러나 한국 미술에 있어서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회화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많은 화가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다. 18~19세기에 제작된 일부 화가들의 자화상이 남아있지만, 서양화의 전통이 투영된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10년대다. 고희동(1886~1965)이 동경미술학교에 건너가 서양미술을 공부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미술은 막을 올린다. 서양화를 배운 동경 유학생들의 졸업 작품에 자화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종우(1899~1981), 나혜석(1896~1948) 등이 구미 각국에서 미술수업을 하고 돌아오면서 자화상 제작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림에 나를 담다의 부제는 한국의 자화상 읽기.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자화상 작품을 한데 모아 분석했다. 시대와 양식, 기법을 넘어서서 자화상이라는 독특한 주제에 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이해와 접근방식을 살펴볼 수 있고 나아가 비교까지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강세황(1713~1791),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은 역대 조선 회화사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자화상이 자의식을 강렬히 드러낸 이례적인 작품으로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의 인물화는 별다른 배경을 두지 않았고, 실제 인물 이상의 회화적 효과나 과장을 추구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활동한 화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과장된 모습으로 표현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 흐름을 벗어난 윤두서의 자화상이 파격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이 압권인 이 자화상은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만 그려져 있다. 윤두서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인 오주석 씨가 상체 윤곽이 보이는 윤두서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원래 자화상에 있던 윤두서의 상체 그림이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기에 미술사학자 이태호 씨가 오주석 씨의 견해에 반박했다.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자화상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관점을 빌려 자화상의 의미를 재고한다. 앞서 말했듯이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그림이라고 했다. 관람객과 미술사학자들은 자화상을 바라볼 때 캔버스 속 화가의 얼굴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리쾨르는 자화상을 그린 사람(화가)’자화상에 그려진 사람(화가의 모습)’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리쾨르의 질문은 일반적인 자화상 감상법을 거부한다. 과연 그 얼굴이 정말 화가의 진짜 얼굴일까, 또 그 속에 화가의 삶이 묻어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그림에 나를 담다의 핵심 주제이다.

 

 

            

 

저자는 자화상에 그려진 배경과 소품을 주목했다. 자화상의 진짜 의미는 붓으로 재현한 화가의 얼굴뿐만 아니라 화가를 둘러싼 배경과 소품에도 숨어 있다. 그것은 화가만의 자의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상징물(attribute)이다. 1910~1920년대 자화상이 인물 표현 위주로 그려졌다면, 1930년대 이후부터 배경과 소품이 등장하는 자화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배경과 소품을 적절히 배치해 개인적 서사(화가의 자의식)뿐만 아니라 시대적 서사(조선의 근대화, 일제 강점기, 분단 상황)까지 담아냈다. 동경 유학생 출신 화가들은 조선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는가 하면, 이쾌대(1913~1965)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통해 전통과 근대에 혼재된 해방 이후 격변기의 상황과 그 속에 살아가면서 느꼈던 개인적 고뇌까지 표출했다.

 

인간의 의식은 자기의 발견에서부터 출발하면서 자아가 확립되고, 더 나아가 자기로부터의 세상으로 의식이 확대되어 간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화가의 자화상과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자의식을 인식한 화가의 자화상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화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세상을 통해 자화상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붓 한 자루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고도 굉장한 일이다. 훌륭한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아니다. 그 자화상에는 ‘세상을 이해한 화가의 눈이 살아있다. 관람객은 자화상에 화가의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 눈 속에 화가가 담으려는 시대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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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2-21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끊임없는 독서와 글쓰기,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
글 넘 좋습니다.

cyrus 2017-02-22 08:30   좋아요 0 | URL
최근에 나온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보면서 정말 부지런히 책 읽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제 글을 보는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쓸 겁니다.

캐모마일 2017-02-22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인 현암사에서 또 귀중한 책이 나왔네요. 윤두서 자화상은 워낙 유명해서 낯익습니다. 눈이 부리부리한데다 상체가 없어서 마치 삼국지 관운장의 수급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오싹했는데 상체와 관련된 논쟁이 있었군요.

훌륭한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아니다. 그 자화상에는 ‘세상을 이해한 화가의 눈빛’이 살아있다. 관람객은 자화상에 화가의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 눈 속에 화가가 담으려는 시대상이 보인다.

자화상 속에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어요...좋은 서평 읽고 갑니다.^^

cyrus 2017-02-22 08:32   좋아요 1 | URL
책의 주제가 좋은데도 독자서평 한 편 없어서 의외였습니다. 아쉽게 묻혀버린 책입니다.

yureka01 2017-02-22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사이러스님의 독서넓이는 전방위적이라능..ㅎㅎㅎ

cyrus 2017-02-22 09:04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을 부정적인 관점으로 보면, 깊이가 없습니다. ㅎㅎㅎ

관심가는대로 책을 마구 읽게 되니까 정작 읽어야 할 책들은 못 읽습니다. ^^;;

목나무 2017-02-2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쾌대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는데요 저 자화상을 보니 예전에 갔던 이쾌대 전이 생각나네요.
그때 팜플렛에 사용한 그림이 바로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었거든요.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이 듬뿍 갑니다. ^^

cyrus 2017-02-22 12:58   좋아요 0 | URL
이쾌대를 좋아하는 분을 만나기 어려워요. 그가 대구 출신의 화가인데도 그를 모르는 대구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
 

 

 

 

 

 

 

 

 

 

 

 

 

 

 

 

 

 

 

 

*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랭크 맥린 (다른세상, 2011년)

*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3년)

 

 

과거 동 · 서양의 왕가들은 순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했다. 《명상록》의 저자 로마 오현제(五賢帝)의 한 사람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사촌지간인 파우스티나(Faustina)와 결혼했다. 마르쿠스의 일대기와 《명상록》을 같이 읽어보게 되면 황제의 결혼 생활이 실제로 어떤지 궁금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 주제에 상당히 흥미로워했다. 프랭크 맥린(F. McLynn)과 (역사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Shiono Nanami)는 고대 문헌들을 토대로 황제의 결혼 생활을 주목 · 분석했다.

 

정설에 따르면 마르쿠스의 아내 파우스티나는 ‘정숙하지 못한 아내’로 알려졌다. 그런데 마르쿠스는 《명상록》에 아내에 향한 헌사를 남겼다.

 

 

“너무도 순종적이고, 너무도 사랑스러우며, 너무도 소탈한, 너무도 좋은 여인.”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56쪽)

 

 

“더없이 다소곳하고 더없이 다정하고 무엇보다도 전혀 꾸밈이 없는 여자” (《로마인 이야기 11 : 종말의 시작》 158쪽)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가 부부로서 함께 지낸 생활은 30년. 그 짧지 않은 세월 속에 파우스티나는 14명 혹은 15명의 자식을 낳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파우스티나가 다산한 사실만 가지고 두 사람의 성생활이 활발했으며 결혼 생활이 행복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서술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역사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가끔 그녀는 역사를 서술할 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 물론, 성생활이 부부의 행복에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성관계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무조건 부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성관계의 빈도보다는 부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만족감을 느끼는 성관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1]

 

 

 

 

 

 

 

 

 

 

 

 

 

 

 

 

*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알베르토 안젤라 (까치, 2014년)

 

 

로마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랑’해서 결혼하고, 섹스하지 않았다. 로마인은 결혼을 가문과 국가의 기강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였다.

 

마르쿠스 시대의 역사가들은 파우스티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근거로 현대의 역사가들과 《명상록》의 번역가들은 파우스티나가 결점이 많은 아내로 소개했다. 프랭크 맥린은 파우스티나의 부정적인 측면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 근거, 정치 문제에 지나치게 간섭했던 것. 두 번째 근거는 고집 세고 잔소리가 심한 황후의 성격이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Xanthippe)와 닮았다는 점. 마지막으로 황후가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해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마르쿠스와 파우스티나는 완전 정반대의 성격이다. 마르쿠스는 늘 차분한 성격에, 어떤 일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파우스티나 입장에서는 굼뜨고, 무미건조한 남편이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다.

 

고대의 역사가들은 동시대의 황제에 대판 평을 다분히 주관적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가가 어떠한 사료를 참고했는가에 따라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그 사료를 참고한 학자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편집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마르쿠스 시대의 역사가들의 증언을 참고할 뿐 비중 있게 보지 않는다. 그녀는 고대의 사료를 무시하고, 파우스티나가 ‘현모는 아니었지만, 틀림없이 양처였을 것’이라고 썼다. 그 근거로 《명상록》에 있는 아내를 위한 헌사인데, 솔직히 이것만 가지고 파우스티나를 ‘양처’라고 추측하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파우스티나가 전장으로 향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홀로 기다렸으며 병사들의 기지에 방문할 정도로 남편 못지않게 존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파우스티나를 ‘악처’로 보는 프랭크 맥린의 주장과 충돌한다.

 

파우스티나를 크산티페와 동일한 인물로 보는 맥린의 관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가정을 소홀히 한 남편이다. 남들과 달리 평범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크산티페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악처도 양처도 아니다. 그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편을 만나 고생하면서 살다간 여인이었다. 이 두 사람이 합의 이혼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로마의 여성은 남편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정숙’하도록 살아야 했다. 본능을 숨기면서까지 품위를 유지하면서 지내는 일이 답답했을 터. 로마 남성들은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성적 쾌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평생 남편의 울타리에 갇혀 지냈다. 그녀들이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우면 가문과 남편을 욕보이는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바람을 피운 파우스티나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야 했던 원인을 단순히 그녀 개인의 결점으로만 보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아무리 많은 사료가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 한 사람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음침한 마음! 여자 같으며 완고한 마음, 사납고 어린애 같으며 짐승 같고 어리석으며 교활하고 상스러우며 부정적이고 폭군적인 마음. (《명상록》 제4장, 황문수 역)

 

 

정말 마르쿠스는 파우스티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는지 아니면 ‘황제’의 명예가 조금이라도 손상되지 않기 위해 부부가 30년 동안 끝까지 참고 지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만약 마르쿠스가 아내를 싫어했다면, 《명상록》 제4장에 나오는 저 문장이 아내를 향한 마르쿠스의 진심일 수도 있다. 파우스티나의 진짜 품성과 기질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늘 논란거리가 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2]

 

 

 

[1] 『1주일에 한 번 성관계 맺는 부부가 가장 행복』 뉴시스, 2015년 11월 19일

[2]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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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13:47   좋아요 1 | URL
결혼과 섹스가 인생의 의무가 되는 바람에 이 둘 다 못 하면 ‘등신‘ 취급 받습니다. 둘 다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사회의 편견이 가혹합니다.

2017-02-21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17:20   좋아요 1 | URL
속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 말씀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십자군이야기를 읽으니 보는 관점에 따라 상당부분 취사선택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싸이러스님의 비판적 읽기에 또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7-02-21 17:25   좋아요 1 | URL
제가 어렸을 때 시오노 나나미를 역사가로 믿었고 <로마인 이야기>를 직접 사서 읽었습니다. 고딩 때 공부하느라 7권까지 사다 말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시오노 나나미를 비판하는 입장을 본 이후부터 저 역시 역사를 보는 관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무조건 믿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비판적으로 보는 능력은 많이 부족하지만, 같은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살펴볼려고 합니다. 머리가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여러 번 시도를 해볼려고요. 귀찮다고 안 하면, 역사를 자신이 믿고 싶은 한 가지 관점만 보게 됩니다. 박사모처럼 말이죠. ^^;;
 

 

 

 

 

 

 

 

 

 

 

 

 

 

 

 

 

 

 

 

 

 

* 책표지 사진이 없는 책 : 《명상록 · 행복론》 아우렐리우스 · 세네카 (범우사, 1994년)

* 《명상록》아우렐리우스 (도서출판 숲, 2005년)

 

 

 

2013년 올재 클래식스 6번째 시리즈로 발간된 《명상록》은 황문수 씨가 번역했다. 이 번역자의 약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황문수 씨는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고 한다. 70~80년대에 나온 철학 서적들, 특히 버트런드 러셀, 플라톤, 칼 야스퍼스, 윌 듀란트 등의 저서를 번역했다. 《명상록》도 마찬가지다. 사실 황문수 씨 번역의 《명상록》은 1974년 범우사에서 펴낸 책이다. 이때 나온 책의 부제는 ‘자성록(自省錄)’이다. 1987년에 세네카의 글과 함께 수록한 번역본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제목이 《명상록 · 행복론》이다. 《행복론》의 번역은 최현 씨가 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범우사판 《명상록》은 최현 씨가 번역한 것이다. 거의 절판된 거나 다름없는 황 씨 번역의 《명상록》을 사단법인 올재가 재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서양 고전 번역본들은 거의 일역본을 중역한 것이다. 황 씨 번역의 《명상록》도 일역본을 중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 씨의 문장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많은 편이다. 한자에 생소한 젊은 독자들은 《명상록》의 진미를 느끼는 데 어려울 수 있다. 천병희 교수의 《명상록》은 그리스어 원전을 옮긴 번역본인데, 여기도 문장 속에 생소한 한자어가 몇 개 있다. 그래도 번역자 입장에서는 우리말로 풀이하기 어려운 문장을 번역하기 위해 최대한 원문과 비슷한 의미의 한자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프랭크 맥린 (다른세상, 2011년)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로마 전성기에 등장한 5현제 중의 한 사람이다. 마르쿠스가 통치한 시기는 태평성대를 구가했지만, 역시 나라의 정세가 흔들리는 크고 작은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다. 홍수와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인명피해가 생겼고, 설상가상 전염병까지 퍼지기도 했다. 외세의 침략에도 시달렸다. 중동에 위치한 파르티아 제국과 훈 족의 위협으로 로마 제국의 국경 지역으로 이주한 게르만 족의 위협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제는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학구적인 성격이었다. 마르쿠스 통치 시절의 역사학자는 내성적인 황제가 감당해야 할 운명이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고 기록했다. 19년 동안의 통치 기간은 황제 입장에서는 힘겨운 시기였다. 그래도 마르쿠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았고, 전쟁을 진두지휘해 모범을 보였다. 외세로부터 로마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 그는 고전 문헌들로 가득한 서재가 아닌 전쟁 막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르쿠스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의 아들이자 그의 후계자인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의 양자로 들어왔다. 어린 마르쿠스를 유난히 아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에게 ‘진실한 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르쿠스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나 착했으면 로마 전역에 아내의 추문이 알려졌는데도 결코 아내를 꾸짖지 않았다. 마르쿠스는 《명상록》에 아내를 좋게 표현했다.

 

내 아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하고 곰살궂고 검소한 것도, 내 자식들을 위하여 유능한 스승들을 구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천병희 역, 《명상록》 제1장 30쪽)

 

마르쿠스는 상대방의 결점을 비판하는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아우렐리우스 가문의 양자로 들어왔고, 같은 해에 공동 황제로 임명된 루키우스 베우스(Lucius Verus)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기보다는 그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대했다고 한다. 루키우스 베우스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마르쿠스는 죽을 때까지 단독 황제의 자리를 유지했다.

 

 

 

 

 

 

 

 

 

 

 

 

 

 

 

 

 

*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 수양》미셸 푸코 (동녘, 2016년)

 

 

 

 

《명상록》을 보면 마르쿠스가 로마의 황제라는 의식과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자기성찰에 충실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삶에 가장 해로운 것들, 즉 권위에 대한 탐욕, 집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에 ‘통치받지 않으려고’ 했다.[1] ‘황제’, ‘대통령’ 등 권위와 관련된 이름을 누구나 가지는 순간, 그 권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 위에 군림하려고 든다. 이럴 때 국민의 권리는 유린당하고, 국민과 유리된 권위가 통치하는 국가는 파멸에 직면한다.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마르쿠스의 비판적 글쓰기는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2]이다.

 

마르쿠스는 젊었을 때에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로 ‘대화편’을 써야 한다고 했다. (《명상록》 제1장) 이 ‘대화’는 나 자신을 사유하는 존재로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행동이다. 그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일이다.

 

지금 나 자신의 영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경우에나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며, 지배적 원리라고 불리는 나의 이 부분을 나는 지금 어떤 일에 사용하고 있는가를 음미해야 한다. 지금 나의 영혼은 어떤 영혼인가? (황문수 역, 《명상록》 제5장 71쪽)

 

자기 수양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성을 통해 자신의 감정 및 행동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 푸코는 비판의 기능이 있는 자기 수양을 ‘배운 것을 버리는 것(de-disccere)’이라고 했다. 자기 수양은 상대방의 타당한 비판을 받아들일 줄 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평생 몸에 배야 할 기본 덕목이다.

 

내가 올바르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올바르게 행동하지도 못한다고 나에게 설득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즐거이 나의 태도를 바꾸겠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고 있으며, 진리로 말미암아 해를 입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류와 무지에 안주하는 사람은 해를 입는다. (황문수 역, 《명상록》 제6장 85쪽)

 

배운 것을 버리는 것. 내가 스스로 발견한 결점이든 상대방이 알려준 내 결점이든 이를 과감히 떼어내는 삶의 태도는 한 인간이 평생 살면서 치러야 할 투쟁이다. 혼자 투쟁하려면 이를 실천하려는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마르쿠스와 푸코는 자기 수양을 위한 훈련법으로 ‘글쓰기’를 강조한다. 이들의 제안은 비판적 목소리를 ‘비난’으로 매도하고, 잘못에 대한 반성을 선행하지 않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비판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결점을 들춰낼 줄 아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박 씨, 최 씨,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보호하려고 매 주말마다 영혼 없이 태극기를 휙휙 휘날리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에서 배운 낡고 편협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못 버릴 듯하다. 과거의 쓰레기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말고, 무덤에 갈 때 남김없이 들고 가길 바란다. 이건 그들에 향한 악의에 찬 저주가 아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곡히 부탁하는 말이다.

 

 

 

 

[1]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 수양》 46쪽

[2] “비판은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 숙고된 불복종의 기술일 것입니다.” (같은 책,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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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1 08:03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언제 읽어도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납니다. 필사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

우마우마 2017-02-21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져요. 고등학교 때 왠지 멋있어 보여서 명상록을 샀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뭘 알고 읽었나 싶어요. ㅎㅎ 남기신 댓글처럼 필사를 해볼까 싶어집니다.

cyrus 2017-02-21 12:35   좋아요 0 | URL
<명상록>이 처음 읽을 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보니까 곱씹을만한 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노인이 돼서 <명상록>을 다시 읽으면 책을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폴로도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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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는 서양인들의 인생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화에 담겨 있는 온갖 유형의 이야기는 서양 예술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해 왔다. 아폴로도로스의 《Bibliotheke(비블리오테케)》는 신화의 내용과 신화 속의 영웅들이 벌인 행동 및 사건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문헌이다. 특히 각기 다른 출전에 따른 이설들을 꼼꼼히 구별하여 주석으로 정리했고, 신과 영웅들의 계보를 수록하여 신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에 활동한 아테네 출신의 문법학자로 알려졌다. 그가 남긴 문헌 제목이 ‘비블리오테케’, 우리말로 풀이하면 ‘도서관’이다. 소크라테스는 ‘문자는 진리가 아니라 사이비 진리일 뿐’이라며 생각의 문자화를 경계했다. 그러나 생각은 끊임없이 문자로 기록됐고 도서관은 진리의 보관소라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파괴되어 사라져버렸지만 ‘세상의 모든 책’을 정리한 곳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었다면, ‘세상의 모든 그리스 신화’를 정리한 책은 《비블리오테케》이다. 아폴로도로스가 인용한 고대 문헌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 등이 있다.

 

그리스 신화가 다양한 형태로 우리나라에 소개됐지만,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단편적인 이야기 묶음으로 편집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다 보니 원전의 묘사가 삭제되거나 윤색되어 흥미 위주의 신화 편집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동안 우리는 《비블리오테케》와 같은 원전을 1차 문헌으로 삼아 후대에 편집된 2차 문헌으로 신화를 접했다. 이는 신화 체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대부분 사람은 신화를 ‘허위로 가득한 재미있는 이야기’, ‘상상력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화 모음집을 만든 아폴로도로스와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화 자체를 허구 아닌 진실이자 역사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의 원전을 읽을 땐 신화를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이자 사상체계로 봐야 한다. 신화를 재미로 보는 건 문제없으나 흥밋거리로 신화를 이해하는 태도와 고대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신화를 이해하는 태도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비블리오테케》는 순수한 그리스 신화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이다. 호메로스의 작품과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비하면 이야기가 몰입력 있게 전개되지 않는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존의 그리스 신화들을 두루 간추려 모아 정리했다. 그래서 《비블리오테케》에는 독자의 흥미를 이끄는 서사적 갈등 구조가 눈에 띄지 않는다.

 

가령, 아폴로도로스는 아르테미스(Artemis, 사냥의 여신)의 분노로 사슴으로 변한 사냥꾼 악타이온(Actaeon) 이야기를 무미건조하면서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다.

 

 

 

 

 

아쿠실라오스에 따르면 그렇게 죽은 것은 그가 세멜레에게 구혼하는 바람에 제우스가 노했기 때문이라고 하나 대부분의 작가에 따르면 그가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신이 당장 그를 사슴으로 바꿔버리고 쉰 마리나 되는 그의 개떼를 미치게 하자 주인인 줄도 모르고 그를 잡아먹었다는 것이다. (201쪽)

 

 

악타이온 이야기를 인상 깊게 본 독자라면 아폴로도로스의 문장을 보고 허전하게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설명에는 극적인 긴장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를 쓴 오비디우스는 길을 헤매던 악타이온이 불행하게도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광경을 보게 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변신 이야기》에서는 아르테미스가 저주를 담아 악타이온의 얼굴에 물방울을 뿌리는 장면이 나오지만, 《비블리오테케》는 그 결정적인 장면이 없다. 오비디우스는 신화 속 등장인물에게 질투나 선망 등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부여하여 역동성을 강조했다면, 아폴로도로스는 그동안 알려져 있던 그리스 신화들을 모아 ‘지식’이라는 일관된 형태로 엮어냈다.

 

《비블리오테케》를 읽는 일은 독자가 신화를 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을 뿐인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삼라만상의 진리를 아우르고자 했던 인류의 야심이 묻어나는 지식의 보고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 책으로 서양문화의 기저를 흐르고 있는 신화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다. 방대한 신들의 계보를 이해하는 일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조급해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 나간다면, 신화를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신화는 ‘과거를 알기 위한 지식’이지만, ‘오늘날 알아야 할 상식’이 아니다. 신화는 하나의 시원에서 출발해 가지를 뻗음으로써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했다. 가장 나중에 자란 가지 하나에 '상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졌고, 우리는 그것만 가지고 ‘신화’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착각했다. ‘신화’라는 나무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나뭇가지 하나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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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있었네요ㅎ
싸이러스님의 실천이 부럽습니다.
읽어야지~읽어야지 했는 책들이
기억속으로 까마득히..특히 어렵고 두꺼운 책들은 더더욱 미루게 되더라구요ㅎ
우선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부터
읽어봐야겠네요^^
그리스로마신화는 진짜 오랫동안
공들여 읽을 가치가 있는 듯.
예전에 읽은 한호림의 <뉴욕에헤르메스가산다>에서보면
유럽의 길거리, 간판, 음악, 예술 등에
신들의 상징물이 있더라구요.
신화를 모르고서 유럽문화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cyrus 2017-02-20 18:42   좋아요 1 | URL
이윤기 씨가 번역한 <변신 이야기>와 어렸을 때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만 보고, 신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무슨 계기가 있어서 원전 신화를 읽었는데요, 제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화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어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하는 것처럼 신화의 세계에 진입했는데, 열심히 읽어나가야겠어요. 북프리쿠키님이 댓글로 언급하신 신화 책도 참고하겠습니다. ^^

구름물고기 2017-02-2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아이디도 그리스와 관련있네요 어울리는 책인걸요 ㅎ

cyrus 2017-02-20 18:46   좋아요 0 | URL
제 닉네임의 발음 때문에 그리스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ㅎㅎㅎ 그리스를 좋아해서 cyrus라고 정한 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