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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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욕보인 죄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시달리는 저주를 받았다. 그가 워낙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다 보니 나중엔 음식 구할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의 딸을 팔아 식탐을 채웠다. 그러고서도 배고픔을 억제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뜯어먹었다.

 

에리직톤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고민에 빠진 사람이 많다. 그들은 땀이 비 오듯 내릴 정도로 뛰기도 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굶기도 한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나 자신과의 전쟁. 아마도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동시대가 규정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특히 TV 브라운관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영상에 나만의 빛깔로 대항하기란 역부족이다. 개성에 주목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음식과 여성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여성들은 먹는 것 앞에서 환호하고 먹는 것 앞에서 절망한다. 음식과 여성은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 허기진 듯이 먹었고, 그다음에는 많이 먹고 기운을 차려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먹었으나 이제는 먹고 싶어서 먹는다. 먹고 또 먹다가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만이 되었고, 비만이 되다가 보니까 끝없이 음식이 당겨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됐다. 한때 끊임없는 자기혐오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낸 록산 게이가 그러했다. 그녀는 과거 몸무게가 261kg까지 나간 적이 있다. 《헝거》(사이행성, 2018)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몸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저주받은 몸뚱이로 훑지 않는다. 그녀는 몸과 허기진 욕망을 덤덤하면서도 진지하게 고백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당당한 여성’으로 보듬는다.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내) 몸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 몸과 같은 몸의 이야기들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몸이 되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은 모른다. 나의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말해야만 하고 더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다. [1]

 

 

그녀는 왜 뚱뚱해졌는가? 따지고 보면, 비만은 그녀의 잘못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열두 살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그 끔찍한 기억이 할퀴고 간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별로 깔끔하지 않지만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포’가 있고 ‘애프터’가 있다. 몸무게가 늘기 전. 몸무게가 늘어난 후. 강간을 당하기 이전. 강간을 당한 이후. [2]

 

 

‘애프터(after)’가 된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어린 게이는 홀로 상처를 감당해야 했다. 학교에서 거의 매일 놀림을 당했다. 결국, 친구보다 ‘적’이 더 많아졌고, 늘 혼자였다. 그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른이 돼서도 치유의 시작도 못 한 영혼은 여전히 열두 살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절망과 공허감에 외로웠다. 그 허기를 자연스레 먹는 것으로 채웠다. 그녀는 스트레스를 식탐과 폭식으로 메웠다.

 

식탐은 마음의 허기가 원인이다. 일부에선 살찐 사람을 단순히 절제력이 없다며 힐난한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억울함,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한 채 먹는 것으로 푸는 경우도 많다. 게이는 자신의 몸을 ‘감옥’ 또는 ‘성벽’으로 비유한다. 몸이 비대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공격적인 시선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을 찌우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으며 인정받을 수 있는 진심 어린 애정을 포기한 적도 있다.

 

《헝거》는 비만을 혐오하거나 동정하는 시선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저자가 고통을 무릅쓰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경위를 독자에게 털어놓는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며 덜 지적으로 여겨지는 반면 몸매 좋은 사람을 그 반대로 본다는 건 타인의 몸을 바라볼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다. 그러고 보면 뚱뚱한 사람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무거운 체중만이 아니다. 사회적 편견과 냉대는 더 무서운 칼이 된다. 여성은 무수히 쏟아지는 음식 광고, ‘먹방’ 등 식탐을 조장하는 환경 속에 살면서 미디어로부터 날씬하기를 요구받는다. 끊임없이 자기 몸을 검열하며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호시탐탐 몸을 찢고 보형물을 삽입할 궁리를 해야 하는 여성은 괴롭다. 록산 게이는 이런 모순된 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삶의 무게를 가중하는 우울증에 짓눌리고,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록산 게이의 꿈은 소박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대로 먹고, 옷을 입고, 글을 쓰면서 활동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그녀에게는 꼭 하고 싶은 꿈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몸을 자기만의 감옥이나 성벽에 가둘 필요가 없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선 그것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남의 눈에 평생이 좌우되는 삶보다는 내 몸과 내 운명에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움으로써 열두 살 이후로 잊어버린 ‘목소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인간의 실체를 외모지상주의와 성적 대상으로서의 가치만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 나’를 찾는 일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몸에 눈뜨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선 나의 세계를 건강하게 짓는 일이다. 그 세계를 보게 만드는 거울이 바로 이 책, 《헝거》이다.

 

 

 

 

 

[1] 23쪽

[2]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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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17 18:49   좋아요 0 | URL
허기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고민해야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허기를 잊으려고 하는데요, 이 방법만으로는 안 되겠어요.. ㅎㅎㅎ
 

 

 

 

 

 

오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날입니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저녁 7시‘꽃보다 페미니즘’ 첫 번째 강연(권김현영)이 진행됩니다. 장소는 대구시민공익활동 지원센터 2층 상상홀입니다.

 

 

 

 

 

 

 

현장 접수도 가능합니다. 오늘 첫 번째 강연 참가비는 1만원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4월 28일)에 진행될 두 번째 강연(나영) 참가비도 1만원인데, 두 강연 모두 신청하면 5천 원 할인된 1만 5천 원의 참가비를 내면 됩니다.

 

청소년은 무료입니다. 자녀를 동반하여 강연에 오셔도 됩니다.

 

강연이 진행되는 과정의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이 부담스러운 분은 레드스타킹에 촬영 거부 의사를 전달하면 참고하겠습니다.

 

잠정 합계이지만, 현재 첫 번째 강연 신청자는 총 50명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레드스타킹이 생각한 목표 수치를 넘었습니다. 오늘 강연자가 더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구에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분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꽃보다 페미니즘’ 강연은 레드스타킹이 단독으로 주최했으며 한 달 동안 강연 준비를 해왔습니다. 저도 그렇고, 대부분 멤버들은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고퀄리티 강연을 만들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대구에 페미니즘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레드스타킹’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고, 많이 알려주십시오.

 

생생한 강연 현장을 실시간으로 사진 촬영해서 북플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오후 4시에 강연 장소에 가서 막바지 준비 작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여력이 된다면 강연 시작 전 상황도 사진을 통해 공개하고 싶습니다.

 

사진은 ‘친구 공개’입니다. 사진 게시물이 얼마만큼 나올지 모르겠지만, 막 찍다 보면 사진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자정이 지나면 사진 게시물을 삭제할 테니 ‘좋아요’ 누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편안하게 사진만 보셔도 됩니다. 저랑 ‘친구’인 분은 북플 사진을 볼 수 있지만, ‘팔로워’에 속한 분은 사진을 볼 수 없어요. 사진을 보고 싶은 ‘팔로워’는 댓글로 알려주세요. ‘페미니즘’ 자체를 싫어하거나 사진 게시물을 연달아서 보는 게 부담스러운 분은 ‘친구’에서 '팔로워'로 변경 설정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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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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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아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 [1]

 

 

공자《논어》 술이(述而) 편에서 자기 자신을 평한 말이다. 학문이란 배우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사색을 많이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고 훨씬 즐겁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흥미와 열정을 쏟지 않는다면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흥미를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 그 무언가에 이끌려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빌 헤이스 올리버 색스가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함께 했던 동성 연인이다(색스는 동성애자다). 빌 헤이스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글쓰기에 집중한 연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2015년 8월, 어쩌면 그는 곧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올리버는 갑자기 원기를 회복했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 저서가 될 책의 목차를 불러줬다. 그 일은 ‘죽어간다는 것’의 ‘끔찍한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가운 기분전환거리였기 때문이리라. 올리버에게 지루함이란 그가 그동안 견뎌온 불편함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2]

 

 

죽는 순간에 유난히 고운 소리로 운다는 백조. 색스의 마지막 책 《의식의 강》(알마, 2018)은 바로 그 아름다운 백조의 노래를 닮았다. 이 책은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언론에 발표한 열 편의 에세이를 선별하여 묶은 것이다. 색스는 자신에게 남겨진 길지 않은 삶을 가장 즐겁게 살기 위해 글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글쓰기는 흥미와 열정을 동반한 행위이다. 세상과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간에는 약간의 재미를 위한 시간도 있을 것이다.

 

색스의 글은 과학 에세이면서도 독자들에게 각별한 감동을 준다. 늘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의식의 강》에서는 인간과 과학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자연과 생명에 경외와 찬미를 바친 색스의 생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진화, 시간, 의식, 인간의 한계 등 심오한 주제를 응시하는 저자의 고독한 성찰은 ‘딱딱한 과학’을 ‘부드러운 문학’으로 바꾸어놓았다(그런데 이 책의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 간혹 매끄럽게 읽혀지지 않은 문장들이 보인다).

 

『의식의 강』은 ‘인간’을 만든 ‘의식’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간만이 시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현재에 몰두하기보다는 보통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연연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며 언젠가 닥쳐올 죽음 앞에서 불안해한다. 따라서 인간은 현재의 순간순간이 제공하는 삶의 풍요를 그냥 놓치고 만다. 색스가 『의식의 강』 도입부에 언급한 보르헤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시간 의식’이라는 강에 몸을 맡기면서 살아가는 ‘시간적 존재’이다. 고독을 느끼는 외로운 인간이나 죽음 앞에 한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인간은 혼자, 따로, 분절되어 살면서 ‘잉여롭게’ 의식을 흘려보내면서 산다. 그러나 인간은 개인의 의식을 주체적으로 활용하여 사상, 믿음, 관습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의식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죽은 영혼은 ‘망각의 강’ 레테(Lethe)의 물을 마시며 이전 삶을 잊어버리게 된다. 망각은 죽음과 연결되며, 기억은 삶과 동의어인 셈이다. 사실 인간은 기억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축적하고, 시행착오를 줄이고,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색스는 인간이란 ‘뇌 마음대로’가 아닌 ‘내 마음대로’ 기억하는 오류투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억을 때로 망각의 강에 흘러 보내는 것도 창의적인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 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3]

 

 

유머는 단순한 웃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웃음의 대상에게 보내는 연민과 동정이 함께 들어 있다. 삶에 대한 애착과 반복되는 자기기만, 한 순간의 짧은 성찰 등이 뒤섞여 불안하고 부조리한 것이 인간의 천성이다. 그러나 건강한 유머에는 그것마저 여유롭게 관조하는 힘이 있다. 《의식의 강》 곳곳에는 건강한 유머가 배어 있다. 특히 『잘못 듣기』라는 글 후반부에 자신의 잘못 듣는 행위를 즐기는 색스의 긍정적인 태도가 눈길을 끈다. 저자의 낙관적인 모습은 좀 더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바로 그 유머 때문에 《의식의 강》은 독자에게도 낙관의 힘을 보태주고 있다.

 

 

 

 

 

[1] 김원중 역, 180쪽, 《논어》(휴머니스트, 2017)

[2] 《의식의 강》 뒤표지

[3]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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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 컬렉션 7화 첫 번째 에피소드

중고 레코드

 

 

 

 

 

나카야마는 친구 오가와가 들려준 레코드의 음악에 푹 빠진다. 레코드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은 나카야마는 오가와에게 레코드를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오가와는 부탁을 거절한다. 나카야마는 녹음이라도 할 수 있게 잠시만 빌려달라고 다시 한번 더 부탁한다. 두 번째 부탁마저 거절당하자 나카야마는 오가와를 살해하여 레코드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레코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이 나카야마에게 서서히 접근하는데…‥. 살인을 부추길 정도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레코드. 놀랍게도 이 레코드에 취입된 노래는 가수가 죽은 뒤에 녹음되었다는 것.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4 : 허수아비》 (시공사, 2008)

 

 

 

소름끼칠 정도로 우울한 선율이 흐르는 레코드의 음악을 빼면 이야기는 평이하다. 설정은 다르지만, 자살을 유발하는 노래 ‘검은 일요일’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슬픈 선율의 ‘검은 일요일’을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으나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검은 일요일’은 백여 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든 저주의 음악으로 알려지게 됐고, 원곡 악보가 완전히 소실되면서 죽음의 행렬이 멈췄다

 

 

 

 

 

…‥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세상에 신기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의 원 출처는 오직 ‘가짜 뉴스’만 보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위클리 월드 뉴스>이다.

 

 

 

 

 

 

이토 준지 컬렉션 7화 두 번째 에피소드

길 없는 거리

 

 

 

 

 

 

여고생 사에코는 가족의 스토킹을 견디지 못해 이모 집에 찾아간다. 그런데 이모 집으로 가는 길이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다. 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집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제목이 ‘길 없는 거리’다. 길 없는 마을에 사는 주민들도 이상하다. 주민들의 집이 길이 돼 버린 셈인데, 마을 주민들은 거리낌 없이 남의 집을 드나든다. 그곳에는 프라이버시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다닌다. 사에코는 ‘의문의 남자’의 도움을 받아 이모의 집에 도착하지만,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포기한 이모는 알몸으로 돌아다닌다. 이모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의 이상한 행동에 불안감을 느낀 사에코는 마을을 탈출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의문의 남자’가 칼을 쥔 채 사에코 앞에 다시 나타난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5 : 뒷골목》 (시공사, 2008)

 

 

 

길 없는 마을, 그곳에서 가면을 쓰면서 남의 집을 길처럼 다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생명체들. 카프카적인(Kafkaesque) 분위기가 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

 

 

 

 

 

 

이토 준지 컬렉션 8화 첫 번째 에피소드

조상님

 

 

 

 

 

슈이치의 약혼녀 리사는 거대한 유충이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슈이치 집안에 자손 대대로 내려오는 ‘끔찍한 풍습’이 있다. 슈이치는 가문의 풍습을 따르기 위해 리사와의 결혼을 재촉한다. 이 풍습의 정체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한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8 : 백사촌 혈담》 (시공사, 2008)

 

 

 

부조리하더라도 가부장적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는 남성(슈이치)가문을 지탱해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는 여성(리사)의 억압 상황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었다.

 

 

 

 

 

이토 준지 컬렉션 8화 두 번째 에피소드

괴기 서커스

 

 

 

 

 

 

원제는 『서커스가 왔다』. 소년은 자신의 마을에 찾아온 ‘파피루스 서커스단’ 공연을 관람한다. 서커스 단원들은 ‘줄타기’, ‘칼 던지기’ 등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곡예를 펼치는데, 공연 도중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단원들이 죽는다. 서커스 공연을 진행하는 단장은 단원들이 죽어가는 모습도 공연 일부라고 생각한다. 단원들이 줄줄이 죽어 가는데도 위험한 곡예는 계속된다. 단원이 부족해지자 단장은 관중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서커스 단원이 되면 서커스단의 홍일점 렐리아와 결혼할 수 있다고. 렐리아는 줄타기를 하는 소녀이지만, 자신 때문에 남자 단원이 죽어가는 모습에 절망한다. 그녀는 위험한 곡예를 그만두고 싶어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도망치지 못한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4 : 허수아비》 (시공사, 2008)

 

 

 

파피루스 서커스단은 ‘남성 연대’를 상징한다. ‘남성 연대’에 속한 남성은 자신의 특출한 능력을 인정받으려고 ‘남성성’을 과시한다. ‘남성 연대’ 안에 갇힌 렐리아는 연약하고 소극적인 ‘여성성’을 드러낸다. 렐리아의 여성성은 남성 단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남성 단원들의 ‘남성성’이 반영된 곡예는 구애하는 렐리아 앞에서 뽐내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남성 단원들은 렐리아와의 결혼을 위해 위험천만한 곡예를 한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 에머 오툴 《여자다운 게 어딨어》 (창비, 2016)

 

 

 

파피루스 서커스단의 곡예는 관중을 즐겁게 해주는 공연(performance)이 아니다. 남성 단원이 여성 단원에게 ‘남자다운 용맹함’을 보여주기 위해 과시하는 수행(Performance)이다. 남성 단원들은 리허설 없이 곡예를 시도한다.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빌리자면 남성이라는 젠더 자체가 ‘리허설을 거친 연기’이기 때문이다. 남성 단원들은 단장이 주선하는 ‘결혼(버틀러의 표현에 따르면 ‘강제적 이성애’)’을 달성하기 위해 ‘남성’으로 지칭된 존재가 되려고 한다. 남성 단원들과 여성 단원 렐리아는 남성성과 (남성들의 보호에 기대려는) 여성성을 수행하는 곡예를 계속하며 살아간다. 악순환이 펼쳐지는 것이다. ‘남성’, ‘여성’으로 구분되는 성의 이분법적 범주와 ‘강제적 이성애’ 관계 모두 전복하려면 서커스단에 탈출해야 한다. 그러나 탈출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단원이 줄어들면 단장은 새 단원을 모집할 거고, 렐리아를 차지하기 위해 서커스단원이 되고 싶어 하는 관중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서커스 공연을 지켜보는 소년도 예외가 아니다. 소년이 서커스단원이 되는 순간 ‘남성’으로 만들어진다. 젠더, 즉 ‘남성’이라는 옷을 입어 위험한 곡예를 하도록 길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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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1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loomy Sunday인가요... 오래전 비슷한 주제의 음악을 들은 것 같네요. cyrus님께서도 공포/스릴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네요. 영화「곤지암」도 보셨을 것 같아요.^^:)

cyrus 2018-04-15 09:12   좋아요 1 | URL
‘글루미 선데이’도 ‘검은 일요일’ 도시전설과 조금 유사해요. 두 곡의 차이점은 ‘글루미 선데이’는 실제로 만들어진 곡이고, ‘검은 일요일’은 유명무실한 곡입니다.

영화 <곤지암>은 아직 안 봤어요. IPTV 마일리지로 구매해서 집에서 영화를 볼려고 합니다. 마일리지가 아깝지 않은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
 
페미니즘을 팝니다 - 상업화된 페미니즘의 종말
앤디 자이슬러 지음, 안진이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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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점에 페미니즘 굿즈(goods)’를 사면 페미니즘 도서를 끼워 준다. 여성단체와 페미니즘 모임들은 티셔츠부터 에코백, 스티커, 배지 등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한다(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도 페미니즘 굿즈를 만들 예정이다). 페미니즘 도서가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명단에 오르고, 여성단체 기부 · 후원 운동도 벌어지면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이 나왔다. 반 페미니스트들은 과 손잡은 페미니즘을 조롱하기 위해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메갈리아가 먼저 쓴 것이다. 메갈리아는 이 구호를 사용하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페미니즘 굿즈 생산 및 후원 운동을 진행할 거라고 천명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페미니즘 구호이다. 페미니스트 문화평론가 손희정페미니즘은 돈이 된다자본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구호가 가부장제적 자본주의의 공모자가 되지 않겠다는 페미니스트의 선언이라고 평가한다.[1]

 

손희정은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구호는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구호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가 페미니즘을 흡수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페미니스트라면 페미니즘을 팝니다(세종서적, 2018)을 반드시 정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을 따져봐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페미니스트 문화평론가 앤디 자이슬러상업주의에 물든 페미니즘을 냉정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영화나 TV 프로그램, 언론, 광고 등 대중매체의 파급 효과가 불러온 오늘날의 페미니즘 열풍의 이면을 분석한다. 페미니즘 대중화에 힘입어 탄력받은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과거와 달리 세련되고 매력적인 여성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여권 신장을 표방하는 기업의 광고들이 등장했고, 할리우드에서는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은 페미니스트라고 떳떳하게 선언한다. 엠마 왓슨UN 연설이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인지 불분명하지만) 한서희가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면서 페미니즘 굿즈를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거론된 사례들은 시장 페미니즘(marketplace feminism)’이라고 부른다.

 

시장 페미니즘에 익숙한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1980~90년대에 등장한 포스트페미니스트이다. 시장 페미니즘은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개인을 우선시하는 여성 운동에 관심이 많다. 그녀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담배는 남성 흡연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도 선택할 수 있는 기호품이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섹스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녀들이 섹스하는 것도 여성 해방의 기치를 내건 페미니즘에 따른 선택이다.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여성의 외모를 부각하는 매력 자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 성형 수술을 선택한다.

 

포스트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선택하는 권리정도로 여긴다. 그녀들이 쟁취하고 싶은 여권(女權)’모든 여성이 가져야 할 권리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이다. 저자는 공익보다는 사익에 초점을 맞춘 포스트페미니스트와 그녀들이 지향하는 시장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쩌다가 페미니즘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시장 페미니즘이 등장하게 된 것은 1980년대에 포스트페미니즘과 신자유주의가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기업이 주도한 시장 페미니즘속 빈 강정이다. 기업은 페미니즘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했고, 상품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여성 친화적인 홍보를 펼쳤다. 시장 페미니즘은 여성 운동 이후로 경제적 지위를 가지게 된 여성을 소비자로 격상시키는 데 일조했다. 시장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2세대 페미니즘의 정의와 정반대이다.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선배들의 여성운동을 구닥다리로 취급했으며 개인의 선택이 성공적인 것이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시장 페미니즘은 정치와 철저히 분리되어 있고, 개인의 자아실현 및 성공에 초점을 맞춘 ‘쉬운 페미니즘이다.

 

시장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속상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페미니즘은 유행어가 아니다. 그런데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운동을 지지하거나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연예인, 심지어 협찬을 받아 페미니즘 굿즈를 사용하는 연예인에게 열렬히 환호한다. 저자는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을 페미니스트의 오류라고 말한다. 사실 오류보다 착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인기 여성 아이돌이 저는 페미니스트예요!”라고 말한다면 아이돌 팬들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까? 천만에!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 물론, 몇몇 팬들은 자신이 동경하던 연예인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 속 페미니즘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기만 하다. , 연예인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한낱 유행이 될 수도 있으며 연예인 페미니즘은 여성운동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연예인 페미니스트에게만 몰리는 대중 및 언론의 시선은 심각하고, 지루한페미니즘의 문제들을 외면하게 만든다.

 

앤디 자이슬러는 페미니즘의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그녀는 페미니즘에 문제가 있을 때 휘슬(호루라기)을 불어 잘못을 바로 잡아준다. 페미니즘을 팝니다는 페미니즘의 가치를 변질시킨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공모자가 된 페미니즘도 비판한다. 따라서 이 책은 방만한 신세대 페미니즘,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방관한 2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내부 비판적 성격이 강하다. 페미니즘은 쉬운 학문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수적인 이름 안에는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페미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쉽고 재미있는 시장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페미니즘은 어려워져야 한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가벼운 페미니즘은 없다.

 

 

 

 

 

[1] 손희정, [청춘직설-페미니즘은 파워가 된다], 경향신문, 20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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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1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이 어려워져야(공부해야하는)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cyrus 2018-04-14 13:47   좋아요 1 | URL
‘쉬운 페미니즘‘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돈벌이로 볼 수도 있거든요.

2018-04-13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4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4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4-1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공부다‘새삼 느껴지네요! 사실 페미니즘은 우리의 삶에 모두 연결되어 있지요^^.

cyrus 2018-04-14 13:55   좋아요 0 | URL
‘책에 있는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일도 좋지만, 더 중요한 건 ‘세상에 있는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책 속의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똑같지 않아요. 요즘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각각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또 사람들(페미니스트)을 만나 보면 책에 보기 힘든 페미니즘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AgalmA 2018-04-14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굿즈애호가로서;; 그런 상품들이 관심을 끄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운동이든 가벼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섣부름과 무모함 같은 반대급부는 있기 마련이지요... 자기 생각과 목소리를 크게 내는데 자신 없는 사람들은 그런 대체, 상징물로라도 표현하고 싶어 하는데서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명철한 지식과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어렵죠. 그런 요구는 자칫 엘리트주의식 운동이 될 수도 있고요. 오히려 이렇게 쉽게 오픈하는 환경이 조정하기 더 쉽다고 생각해요. 암묵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에서는 변화가 더 어렵고, 깊이와 행동이 같이 부응하기도 쉽지 않으니^^;

자본 시장이 페미니즘을 이용하고 있는 건 저도 인상 찌푸려지지만 양적인 저변이 확대되어야 질적 변화도 기대해볼만 한 거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도 그러한 움직임에서 이만큼 성장한 거라고도 생각하고요.

cyrus 2018-04-14 14:02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좋은 목적으로 페미니즘을 널리 알리는 일이라면 굿즈 제작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이제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즉 겉과 속이 다른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실체를 알아야 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페미니즘이 왜곡될 수 있거든요. 제가 페미니즘 독서 모임 멤버들과 함께 강연 홍보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페미니즘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그 사람은 ˝유아인이 말한 페미니즘이 아닌가요?˝라고 말했어요. 저는 이런 반응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보기에 유아인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어렵고, ‘연예인이 말한 페미니즘‘은 반짝 반응으로 그칠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8-04-15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끝문장 -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고 가벼운 페미니즘은 없다.˝
진실에 담겨 있는 아픔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공부해 나간다면 깊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말로만 페미니즘을 강조하고 행동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cyrus 2018-04-15 11:38   좋아요 0 | URL
제가 행동을 안 해서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활동하게 됐어요. 대구에도 각종 페미니즘 관련 강연이나 집회가 펼쳐져요. 강연이나 집회에 가면 페미니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책에서 느끼는 페미니즘과 비교하면 느낌이 다릅니다.

꽃다지 2018-04-22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대 딸이 페미에 빠져 있는데, 이론적 바탕없이 SNS 상에서 들은 이야기가 전부인 양 말끝마다 토를 달고 지적질입니다. 집에 있는 또하문이나 이프 등 책들을 좀 읽어보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자기가 아는 게 진리라는 듯, 하지만 생각과 행동은 너무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 없고,한숨 나오게 합니다.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귀막고 입닫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 걱정스럽습니다. 페미니즘이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삶의 자세이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와의 연대의식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cyrus 2018-04-25 14:12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제야 바우솔님의 댓글을 확인했어요. 90년대부터 여성 운동에 헌신한 여성주의 운동가의 페미즘과 소위 ‘영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젊은 세대의 페미니즘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대 차이가 있듯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특정 여성 문제를 바라보는 구세대 페미니스트와 신세대 페미니스트의 시선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세대 차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도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