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 탈모, ADHD, 갱년기의 사회학 크로마뇽 시리즈 4
피터 콘래드 지음, 정준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머리를 감으면 열 가닥 이상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물에 둥둥 떠 있는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원래 이마가 넓은 편인데 M자 탈모가 진행 중인 것 같아서 두렵다. 나이가 들면 나이 때문이라고 위로라도 해보겠지만, 젊은 나이에 머리숱이 줄어들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머리카락은 발생, 성장, 퇴화, 휴지기 순으로 생장한다. 휴지기에 돌입한 머리카락은 하루에 보통 60∼80개 정도 자연스럽게 빠진다. 빠지는 머리카락의 수는 계절, 나이,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예전에 탈모는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만 나타나는 노화 현상이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탈모는 노화 현상이 아니라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과거에는 탈모가 나이가 들어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탈모는 중년 남성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30대의 젊은 층에서도 급증하고 있으며 여성들도 탈모를 겪고 있다.

 

탈모도 질병의 한 종류이다. 탈모는 특이한 질병이 아닌, 누구나 잘못된 생활 습관이나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 되었다. 그런데 노화 현상인 탈모가 흔한 질병으로 분류된 과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가 의학적 문제, 즉 질병의 증상으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과정을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한다. 현대인이 피해야 할 질병 대부분은 의료화와 관련이 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여성 · 남성 갱년기, 발기부전, 비만, 우울증 등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생긴 의학적 문제들이다. 출산도 의료화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출산이 의료화되면서 여성들은 병원에서 분만한다. 물론 그 결과 분만 과정은 더 위생적이고 안전해졌다. 그 대신 임신과 출산 과정이 의료 영역에 더욱 공고히 예속되면서 임산부는 관리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는 의료화의 여러 가지 사례와 그로 인해 초래할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피터 콘래드(P. Conrad)는 1975년부터 의료화에 관한 연구를 해온 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한 책이다. 아픈 곳은 없는데 자기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의학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의사의 진단을 받고 싶은 사람, 신체의 콤플렉스를 고치기 위해 성형 수술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로 ‘과잉 의료화’를 지적한다. 과거엔 일상으로 받아들여졌던 질병이나 증상이 점차 진단 및 치료의 범주에 포함됐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은 늘 있었다. 오늘날 불면은 ‘수면장애’란 이름으로 알려져 치료 대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건강에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의학 및 정신의학 전문가, 대중 매체, 그리고 제약 회사까지도 우리에게 경계해야 할 증상이 하나씩은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윤이나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증상들과 치료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거의 모든 인간의 행동 및 성향, 심지어 신체마저 ‘의료화’하여, 수많은 진단명과 환자 들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의료화에 의한 의료 영역의 확대를 20세기 후반 서구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변화 중 하나로 본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알려진 지 얼마 안 된 질병들은 의료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의료화는 의학적 관리 대상이 아닌 문제를 심각한 의학적 문제로 전환하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화는 몸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신체의 증강(enhancement)’과 ‘생의학적 증강(medical enhancements)을 부추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된 성형수술은 ‘신체의 증강’을 위한 의료화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성형수술은 의학의 힘으로 신체의 약점을 고치는 방법이다. ‘생의학적 증강’은 저자가 만든 생소한 용어이다. 생의학적 증강은 수술, 약물, 유전학적 치료를 동원하여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의학적 방식이다. 운동 경기에서 체력을 극도로 발휘시켜서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할 목적으로 선수에게 근육증강제 등의 약물을 먹이거나 주사 처방을 하는 도핑(doping)은 생의학적 증강의 부정적인 사례이다.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방송 채널마다 ‘의학 프로그램’이 편성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현재 방송 중인 모든 의학 프로그램은 열심히 건강식품을 설명(이라고 쓰고 ‘홍보’라고)한다. 정통 의학 전문 방송인지 건강식품 간접 광고로 만든 방송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방송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언론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제약 회사나 건강식품 회사는 언론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친다. 언론에 소개되거나 언론의 전면 광고로 알려진 의약품은 채 검증되기도 전에 전국의 환자를 움직인다. 이렇듯 병원 밖에서도 의료화된 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의료화 문제를 의사나 의학 전문가에게만 탓할 수 없다. 저자는 의료화 문제를 ‘의료 제국주의’와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 환자 또는 언젠가 환자가 될 수 있는 일반인들도 의료화의 중심에 서는 참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치료를 원하는 환자나 건강에 지나치게 걱정하는 건강한 사람들은 의학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증상도 큰 병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중매체의 보도는 건강에 대한 불안을 부추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정확하지 않은 자가 진료로 자신의 증상을 판단한다. 따라서 의료화는 ‘건강’ 문제에 대한 전문가, 대중매체, (환자를 포함한) 일반인의 지대한 관심과 집단적 행동이 맞물려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나저나 내가 탈모를 걱정하는 것은 의료화의 시대가 만든 기우(奇遇)일까, 아니면 정말로 심각한 증상의 징조를 직감해서 나온 걱정일까. 나는 정말 탈모 환자인가, 아니면 탈모 환자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책의 앞표지에 그려진 남성의 표정이 내 심정을 대변한다.

 

 

 

 

Trivia

 

 ADHD 연구의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앨런 자멧킨은 소위 “성인 ADD 산업”이라는 말로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132) 

 

‘ADD’‘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오자인 것으로 보인다.

 

 

 젊음을 찾거나 과거의 몸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목적으로 생의학적 개입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 인간성장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이 그 일례다. 성형수술, 비아그라 복용 역시 증강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187)

 

 

인용한 문장의 전체 문맥을 생각하면, 과거의 몸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목적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노화를 늦추는 것은 현재의 몸과거의 상태’, 즉 젊음으로 되돌리려는(젊음을 찾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몸현재의 몸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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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0-04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건 불안해요. 다른 것들도 조금씩 다 그런 불안이 생기고요.
예전에는 병이 아니었지만, 병이 되는 것들도 있고, 또 예전과 진단기준이 달라지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 점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기분입니다.
cyrus님, 어제 휴일은 잘 보내셨나요.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18-10-05 11:47   좋아요 1 | URL
요즘은 날씬한 사람도 병원에 가서 진단받아야 할 예비 환자가 되었어요. ‘마른 비만’이 제일 위험하다고 하네요.. ㅎㅎㅎ

개천절에 외출하기 참 좋은 날씨였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에 태풍의 영향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비의 양이 많지 않네요. 태풍이 빨리 지나가서 사라졌으면 좋겠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syo 2018-10-0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에 코가 시큰, 두 번째에 눈물이 글썽, 세 번째 문장에서는 탄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ㅠㅠ 으앙 이게 다 남 일이었으면 좋겠어....

cyrus 2018-10-05 11:48   좋아요 0 | URL
어른이 되니까 어렸을 때 바라보기만 했던 남의 일들이 조금씩 내 일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가는 증거인가 봅니다.. ^^;;

카스피 2018-10-0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젊은 나이에 탈모라니요.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넘 아픕니당ㅜ.ㅜ

cyrus 2018-10-05 11:49   좋아요 0 | URL
두피가 훤히 보일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안심할 수 없어요. 아버지가 탈모 환자예요.. ^^;;

사람은비로소 2018-10-04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DD는 주의력결핍장애. 문맥이나 원문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것을 의미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cyrus 2018-10-05 11:51   좋아요 0 | URL
ADHD를 익숙하게 느껴져서 ‘ADD’라는 용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psyche 2018-10-04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DD 는 ADHD의 일종으로 hyperactive (과잉행동)이 없는 경우를 말해요. 성인의 경우 ADHD 보다는 ADD 인 경우가 더 많을 거 같네요. 아마도 성인들의 단순한 주의력 결핍도 ADD 라고 진단받고 처방받아 약을 구입하고 그러는 일을 지적한 듯?

cyrus 2018-10-05 11:52   좋아요 0 | URL
psyche님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인용한 문장을 다시 보니 그렇네요. ^^;;

blanca 2018-10-05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남동생도 걱정이에요. 아버지가 탈모라 유전학적으로 대머리가 될 확률이 높다 해서요. 탈모는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효과가 아주 좋다고 하던데요. 열가닥 이상 정도야 탈모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한 뭉텅이씩 빠져도 탈모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cyrus님은 젊으시니까. 의료 과잉 문제는 참, 아이가 좀 부산하면 ADHD 약을 먹으라 하는 사회적 분위기니 예방의학과 진단의학과 치료의학의 접점을 찾는 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울증 진단도 그렇고요.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8-10-05 11:56   좋아요 0 | URL
우리 아버지가 원형 탈모증에 고생하셔서 모발이 거의 빠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도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원형 탈모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제가 걱정하는 건 M형 탈모입니다.. ㅠㅠ 가만히 있는데도 앞머리에 있는 모발이 하나둘씩 빠져요.

목나무 2018-10-05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는 게 병이란 생각 많이 하게 돼요.
한번 수술대에 오르고나니 조금의 증상에도 벌벌 떨게 되네요.
이럴 때일수록 심지 굳게 살아야하는데 말이죠.

cyrus 2018-10-05 11:58   좋아요 0 | URL
건강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 보면, 사소한 신체적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우리 어머니가 그래요. 제가 어디 조금 아프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건강의 적신호라고 생각해요. 가끔 어머니가 그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피곤해요. ^^;;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크(baroque)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를 먼저 보는 게 효과적이다. 이 책은 바로크가 어떤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책의 저자는 르네상스(Renaissance)와 종교개혁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바로크가 출현한 과정과 이를 문학과 예술 등 각각 장르가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바로크에 대한 예술사가들의 비평을 조망하면서 다양한 정의와 특징을 가진 바로크의 무궁무진한 힘을 보여준다.

 

 

 

 

 

 

 

 

 

 

 

 

 

 

 

 

 

 

 

* 앙리에트 르빌랭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

* 한명식 《바로크, 바로크적인》(연암서가, 2018)

* 프레데릭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시공사, 2000)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약간 결을 달리한다. 둘 다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르네상스가 이성과 조화를 지향한다면 바로크는 감성과 직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유럽에서 어떻게 찌그러지고 과장된 바로크 예술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종교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 올리비에 크리스텡 《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시공사, 1998)

* 이동희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넥서스CROSS, 2015)

 

 

 

종교개혁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장 칼뱅(Jean Calvin)을 위시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종교 개혁은 새로운 신앙 원리에 바탕을 둔 시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 운동은 칼뱅이 등장하면서 철저하게 가톨릭과 결별했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칼뱅은 신도들도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앙과 윤리를 결합하였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술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공세에 대항하고, 기독교 미술의 부흥을 위해 반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예술 작품이야말로 신도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매체라고 여겼다. 이 과정에 이용된 게 바로크 미술이다. 바로크 미술은 반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미술이다. 가톨릭은 신 중심의 전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교회와 성당뿐만 아니라 궁전과 예배당을 세웠다. 이 모두는 현세와 내세, 생활과 믿음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17~18세기 프랑스로 건너간 바로크 미술은 절대주의의 영향 속에서 왕권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사치스러운 건축물이 등장했다. 바로크 미술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웅장한 규모의 작품을 통해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그래서 낯설고, 과장된 바로크에 대해 과거에는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겨진 적도 있었다. ‘비뚤어진(찌그러진, 울퉁불퉁한) 진주’를 뜻하는 바로크는 처음부터 썩 좋은 의미의 용어는 아니었다.

 

 

 

 

 

 

 

 

 

 

 

 

 

 

 

 

 

 

* [No Image]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 개념》(시공사, 1994)

* 빅토르 L. 타피에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

 

 

 

19세기 말까지 바로크는 르네상스 예술의 쇠퇴를 보여주는 사조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스위스의 예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은 바로크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의 양식적 형태를 비교하여 두 예술을 구분 짓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공간성을 폐쇄적 구조로 보고, 바로크 미술의 개방성과 대립시켜 설명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은 선적이어서 윤곽이 뚜렷한 특징이지만, 바로크 미술은 색채의 효과를 위해 윤곽의 명료함을 포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뵐플린은 두 예술의 특징을 대조하면서 설명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관계를 ‘대립’ 또는 ‘단절’로 보지 않는다. 그는 바로크를 르네상스의 ‘변형’으로 평가했다.

 

스페인의 철학자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는 1935년에 발표한 《바로크론》에서 바로크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수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바로크론》은 바로크의 정의를 설명하는 개론서로 보기 어렵다. 바로크에 대한 도르스의 애정이 듬뿍 담은 ‘바로크 예찬론’ 정도로 봐야 한다.

 

1950~1960년대에 ‘바로크 재평가’ 붐이 일어났고, 1957년에 나온 토르 뤼시앵 타피에(Victor Lucien Tapie)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는 그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평가받던 바로크를 복권한 책이다. 타피에는 16~18세기 유럽 시대의 상황을 주목하면서, 종교개혁 이후에 바로크가 태동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또 군주의 절대 권력이 강화되었던 17세기 프랑스가 바로크를 수용하는 과정을 살핀다. 바로크를 바라보는 타피에의 관점은 이미 앞서 언급했다. 즉, 바로크는 종교개혁과 절대 왕정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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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바로크적인
한명식 지음 / 연암서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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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의 문화 양식을 지칭하는 ‘바로크(baroque)는 ‘비뚤어진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온 말이다. 바로크 시대 이전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였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과 문학, 인체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함으로써 자연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완전한 원형(圓形)을 그리는 것이 르네상스 미술이라고 하면, 윤곽선이 뭉개진 원형을 그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크 미술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그림에 우주의 질서를 새겨 넣었다. 특히 그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는 수학과 기하학 지식을 동원해 사람의 몸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표현된 비례는 바로 고대와 중세 때 이상적인 건축물을 짓는데 적용돼 왔다. 특히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만든 조각상 『다비드』는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의 정점을 보여준 걸작이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윤곽 전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프란스 반닝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에 나온 몇몇 순찰대원들은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뭔가 완벽하지 않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단체 초상화는 인물들을 줄지어 세우거나 탁자를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열해 그리는 것이 전통이었다. 렘브란트는 이를 무시하고, 명암 대비를 사용해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명암법(Tenebrism)을 그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화가는 카라바조(Caravaggio)이다. 그는 이 명암법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와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보다 바로크의 미(美)는 한참 뒤떨어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바로 ‘바로크’다운 아름다움이고, ‘바로크적’이다.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는 바로크의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크는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묘사하고 형상을 겹치지 않게 다 드러내는 것이 항상 더 큰 효과를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로크는 질서 정연한 완벽함보다는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세계관을 지향한다. 지나치게 화려할 것만 같은 바로크 양식 속에 바로크 시대 사람들 특유의 우울함과 진중함이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 바로크적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크적 아름다움의 참된 가치를 알아낼 수 없다.

 

《바로크, 바로크적인》은 ‘과장된 아름다움’의 시대로 알려진 바로크를 예술적인 관점으로만 분석하여 소개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한명식 대구한의대 건축디자인학부 교수는 바로크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성찰이 공존한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크의 특징은 ‘과장된 장식성’과 ‘귀족적인 화려함’이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외양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로크가 보여준 화려함은 바로크 인들의 자신감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사는 바로크 인들의 고독과 우울감이 만들어 낸 문화적 산물이다. 바로크 시대의 유럽은 혼돈의 절정이었다.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교황의 권위는 쇠퇴해가고 있었다. 지동설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로써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바로크 시대의 문학, 철학,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인들은 세상을 ‘거대한 연극’으로 인식했고,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자신의 삶이 시시각각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과 쾌락을 누릴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는 죽는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은 세상살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한한 삶에 대한 바로크 인들의 진지한 사유와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바로크적 세계관이 반영된 바로크의 아름다움이다. 바로크 인들은 완벽한 질서 속에 아름다움을 찾는 르네상스 양식을 저버리고, 어둡고 불안정한 심연 속에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이면에는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고 터지는 심연이 숨어 있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심연의 나락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심연은 불완전한 자신, 즉 ‘나’라는 인간을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내면의 심연은 몸과 정신을 병들게 하지만, 그 심연의 실체를 직시하고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바로크적 성찰이 성과주의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이라고 단언한다. 세상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자기 마음속 심연이 주는 쓰라린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면 결국 자신만 괴로울 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지옥이다. 일생을 그렇게 보낸다면 삶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덧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할 줄 아는 ‘바로크적 성찰’이 필요하다.

 

 

 

 

※ Trivia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색인’과 ‘참고문헌’이 없으면 ‘쓰다 만 듯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71쪽에 오류가 있다.

 

 

 그의 저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루터가 처음으로 독일인으로서의 국민의식적 차원에서 로마 교황 세력에 의한 재정적 수탈이나 성직매매, 그 외에 국민생활을 압박하고 올바른 신앙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악폐를 열거하며, 통치 권력을 신에게 위임받은 귀족에게 교회생활 전반의 개혁을 돕도록 호소하는 내용을 같이 담고 있다.

 

 

내가 인용한 71쪽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저자는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루터의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독일 국민에게 고함》으로 잘못 썼다.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침체된 독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쓴 것이다.

 

 

 

 

102쪽에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그림 도판이 있다. 책에는 그림 제목을 ‘합성된 머리’라고 적혀 있는데, 널리 알려진 제목은 ‘여름’이다.

 

340쪽에 있는 오자 ‘호심탐탐’을 ‘호시탐탐’으로 고쳐야 한다.

 

2쇄가 나올 때 오류와 오자를 고치고, 색인과 참고문헌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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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10-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크적인 표현 방식은 ‘시‘와 비슷했군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다는 점에서. .

cyrus 2018-10-04 12:16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크 시대의 시인들은 시를 간결하게 쓰지 않았어요. 그들이 쓴 시 대부분은 내용이 길어요.. ㅎㅎㅎㅎ
 

 

 

섹슈얼리티(sexuality)의 해방은 멀고도 험하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규제를 통해 남성이 도달한 자기 만족적 섹슈얼리티 해방은 진보적인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억누르는 사회적 제약을 해체하는 것이 섹슈얼리티 해방을 실천하는 ‘성 정치학(sexual politics)의 목표이다. 지금까지 성 해방론자들은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기존의 질서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나남출판, 2010)

 

 

 

그렇지만 섹슈얼리티를 억압하는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들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적으로 추구한 페미니스트들의 성 해방 담론조차 ‘섹스(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말하기’라는 성에 대한 근대적 담론의 개념 틀 안에 있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섹슈얼리티의 각축장이었다. 부르주아는 (sex)에 대해 고백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을 만들어내면서 ‘어느 성이 합법적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숨겨진 섹슈얼리티는 담론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섹슈얼리티는 권리 박탈과 금지를 통해서 규제만 되는 게 아니라 고백을 통해 재생산된다. 그가 규명한 문제는 성의 억압이 아니라 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게 만드는 권력이다. 다시 말해 근대사회의 섹슈얼리티 담론은 인구를 관리 및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식 권력(savoir-pouvoir)’의 산물인 것이다. 푸코는 근대사회에 시작된 이 지식 권력을 ‘교활한 속임수’라고 비판한다. 섹슈얼리티는 자유와 ‘자기 결정’의 보루인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시대의 맥락에 따라 또는 권력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 조형준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임옥희 《주디스 버틀러 읽기》 (여이연, 2006)

 

 

 

이러한 푸코의 논의는 성 해방 자체를 문제 삼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녀는 섹스(생물학적 성), 젠더(사회적 성, gender), 섹슈얼리티 모두를 이성애적 지배 담론 중심의 문화와 사회가 반복적으로 주입해서 만들어진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말했듯이, 섹슈얼리티와 마찬가지로 젠더도 역사적 맥락에 의해서 달라지는 가변적인 것이다. 이성애적 지배 담론은 전통적인 성(생물학적 성) 역할에 기반을 둔 이성애적 관계를 사회의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섹슈얼리티로 정당화하게 만든다. 이성애적 지배 담론을 지지하는 사회 속에서 말하게 되는 성은 이성애 관계에서 고려되는 ‘연애법’ 또는 ‘성애술’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성애와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요청되는 성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만들어 간다. 이 반복적인 수행으로 인해 ‘이성애적 성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이성애적 지배 담론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성별 이분법에 벗어난 성(sex)과 섹슈얼리티를 비정상 혹은 변태로 규정한다.

 

버틀러는 ‘남성 이성애자’, ‘여성 이성애자’만이 주체라고 보는 지식 권력인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바라던 성 해방은 ‘이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60년대에 불어 닥친 성 해방의 열기는 성별 이분법과 그것의 근원인 이성애적 지배 담론 둘 다 전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이성애와 동성애를 구분하는 것은 지식 권력이 만들어낸 섹슈얼리티 담론이며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런 내부에 작용되는 지식 권력을 전복시키는 것 역시도 사회 내부의 실천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포괄하는 급진적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일상에 맞닿아 있는 다양한 양상의 지식 권력을 분석하면서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속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지만, 꼭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할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를 반목과 혐오로 치환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차이를 무시하거나 덮어버려선 안 된다. 차이가 갈등과 분열이 되지 않으려면,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마저 어렵다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배제와 폭력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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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사회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post-truth’이었다.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채 우리말로 번역하면 ‘탈(脫)진실’이 될 수 있겠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적 확신에 호소하는 정치 캠페인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됐던 말이다. 특히 선동가들이 때론 진실과 다른 내용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널리 사용됐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 여파로 이 단어가 큰 관심을 모았다. 진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의사결정은 머뭇거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의사결정에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민주사회이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권위주의적 권력이 지배하던 시절 공동묘지의 고요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자유 민주 질서는 다원화를 촉진하고 생산적으로 살리는 데서 건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생산적인 시끄러움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시끄러움에 휩싸이고 있다. 이 시끄러움은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에서 나오는 시각적 소음이다. 검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넘쳐흐르고, 그것이 진실인 양 둔갑하여 또다시 거짓 정보를 재생산해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가짜 뉴스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탈진실보다 더 무서운 건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진실은 이렇게 훨씬 더 복잡하고 안개 자욱한 모호한 것이 되어버렸다(《진실 사회》 12쪽).”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의 말처럼 ‘안개’가 된 진실은 좀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은 점점 외면받는다. 반면 거짓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활개 치며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진실은 살아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었다. 이때 진실은 아주 단순했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진실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이는 것만 전부(진실)가 아니다. 오늘날의 진실은 복잡성을 띠고 있으며 우리 눈앞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실을 누가 말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할 능력이 없다.

 

《진실 사회》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를 위협하는 거짓의 유해성을 밝힐 뿐만 아니라, 진실의 복잡성이 어떻게 거짓을 양산하는지 살핀다. 바지니는 진실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진실을 열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종교적 진실

2. 권위적 진실

3. 은폐적 진실

4. 이성적 진실

5. 경험적 진실

6. 창조적 진실

7. 상대적 진실

8. 권력적 진실

9. 도덕적 진실

10. 총체적 진실

 

 

종교적 진실은 사유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거의 몸으로 느끼면서 발견하는 진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종교적 진실은 개인의 자아의식과 정체성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전문가의 인식론이 반영된 권위적 진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나 권위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된다. 비록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 권위가 강조하는 ‘주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작용하는지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진실은 은폐될수록 음모론이 계속 나오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순수 이성을 통해 확실한 진리에 도달한다고 보는 이성적 진실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권력적 진실은 권력자의 ‘통제’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쭉 믿어왔던 단 하나의 진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진실과 관련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실은 개인의 가치와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을 정도로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인의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반응은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합리적인 수단은 명백한 근거와 진실이다. 바지니는 탈진실 시대일수록 진실을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으로 ‘진정성’과 ‘정확성’을 언급한다. 탈진실 시대의 도래는 그동안 믿어왔던 많은 것들을 바꿀 것이다. 이는 진실을 믿으려는 이들의 가치관을 흔들 만큼 엄청난 혼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가올 미래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에 앞서 왜 우리가 눈앞에 있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피하게 됐는지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무관심과 냉소주의 뒤에서 숨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진실과 정의를 확보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의미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가짜 뉴스의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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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02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증편향을 원하는 이들에게 진짜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필요할 따름이죠.

존재의 상실감을 자신이 원하는 가짜 진실로 채
우려는 욕망이 문제라고 하네요.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자신의 모습을 거짓 진실로 꾸며서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SNS이에요. 북플도 인스타, 페북처럼 유사해져서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기 딱 좋은 곳이에요. 요즘 독서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켰다는 걸 깨달았어요.

2018-10-03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가짜 뉴스를 믿는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