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으면 친숙하게 느껴지는 작가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가 쓴 작품들이 뭔지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 읽은 건 하나도 없었다. 올해 1월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그 후》였다. 소세키의 중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소세키의 초기 문학 중 걸작으로 알려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봤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진 못했다. 언젠가 다시 시도해보려고 한다.

 

 

 

 

 

 

 

 

 

 

 

 

 

 

 

 

 

 

 

 

*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그 후》 (현암사, 2014)

* 나쓰메 소세키, 윤상인 옮김 《그 후》 (민음사, 2003)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고등유민(高等遊民)이다. 고등유민은 ‘인텔리 백수’를 뜻하는 단어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부유한 실업가이다. 그는 가족에게 용돈을 받아 비교적 풍족하게 살아간다. 다이스케가 살았던 일본 메이지(明治) 말기는 출세주의가 오늘날 못지않게 치열했던 시대였다. 에도(江戸) 시대의 봉건 가신들은 메이지 시대의 귀족이 되었고, 러일전쟁(1904~1905년)으로 큰 부를 쌓아 올린 신흥 부르주아들은 혼인을 통해 상류사회에 들어가고자 했다. 유산계급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곧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었다. 금전적 기반을 가족에게 의지하고 있던 다이스케 역시 그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대학 동창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두 사람은 가족에게, 사회에게 버림받아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사이에서 다이스케는 번민했다. [중략] 그는 자신의 생활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후》, 윤상인 옮김, 256쪽)

 

 

※ 글꼴을 굵게 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자신에게 떠안겨진 무겁고 벅찬 현실 때문에 고뇌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문장이다. 작품 해설(민음사 판본)에 따르면 ‘자연’은 소설의 핵심 주제이면서도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단어다. ‘자연의 아들’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인위적인 사회제도를 거부하는 존재이다. 다이스케가 미치요와 결혼해서 살아가려면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이스케는 예전처럼 한량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제는 미치요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직업을 구해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의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 전에 다이스케, 즉 ‘자연의 아들’이었던 그는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 반대한다. 소설의 6장 후반에 노동의 의미를 두고 히라오카와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일을 한다면 단지 생활만을 위한 일이어서야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모든 신성한 일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법이야.”

 

(《그 후》, 윤상인 옮김, 107쪽)

 

 

 

민음사 판본의 역자는 다이스케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사회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가 쓴 글의 제목이다. 라파르그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사위다.

 

 

 

 

 

 

 

 

 

 

 

 

 

 

 

 

 

 

* 폴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새물결, 2005)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가들이 ‘신성한 노동’이라는 일종의 교리를 만들어 동물실험을 하듯 민중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노동자 계급이 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이라는 이상한 꿈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라파르그는 방직기계 한 대가 1분 동안 작업한 양이 숙련 여공이 100시간동안 일한 정도로 보면서 노동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을 불태울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라파르그가 보기에 자본주의 구조 아래서 ‘일할 권리’는 ‘착취당할 권리’일 뿐이다. 그는 하루 노동시간을 3시간으로 정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소비가 이뤄지고, 개개인에게는 더욱더 많은 휴식이 주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의 생명의 경제학》 (아인북스, 2018)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을 위한 노동’을 강조하는 다이스케의 입장이 존 러스킨(John Ruskin)에 근접하다고 생각한다. 러스킨은 영국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평론가로 활동했지만, 인간적 가치를 금전 가치로 환원하는 자본주의를 혐오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산업자본이 노동자를 기계로 전락시키는 참상을 목격한 러스킨은 시각 · 건축예술로 관심을 옮겼다. 그가 예술 분야에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파편화된 사회를 인간 정신이 구현되는 곳으로 되돌리려는 열망이었다.

 

국내에선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책(현재 ‘생명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에서 러스킨은 노동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는 단순히 임금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창조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귀한 가치를 구현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러스킨이 생각한 ‘노동을 위한 노동’인 것이고, 이는 다이스케의 입장과 비슷하다. 다이스케가 들려주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전국시대에 일본을 통일한 무장)의 요리사 이야기에서 ‘노동을 위한 노동’에 대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최고의 요리사를 고용한다. 그러나 그는 처음으로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는 맛이 없다면서 꾸짖는다.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요리사는 평소와 다르게 이류, 삼류 음식을 만든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 음식이 맛있다면서 칭찬한다. 다이스케는 요리 기술을 위해 일하는 요리사가 매우 불성실하고 타락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요리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류 음식을 만든 거라고 본 것이다. 다이스케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을 거부하고,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을 선호한다.

 

러스킨이 1851년에 발표한 《라파엘 전파》의 첫 번째 글은 『위대한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이다. 러스킨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 미술계를 점령했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소속 화가들을 옹호하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도 그는 자신의 노동관을 언급한다. 『위대한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라파엘전파에 관한 내용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글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추구해야 할 예술과 노동을 역설한 러스킨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창의성과 성취욕을 갖춘 노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동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중세에 활동했던 장인들이다. 따라서 러스킨은 노동자가 모두 이런 장인이 될 수 있을 때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정신적 공황이 심해지는 산업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러스킨은 신앙심으로 충만한 중세의 영성과 근대인의 삶을 일체화시켜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라파엘전파가 추구했던 것은 중세의 미학이다. 러스킨과 라파엘전파 소속 화가들이 생각하는 중세는 때 묻지 않은 소박한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이다.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현인, 2018)

* 나쓰메 소세키 《런던 소식》 (하늘연못, 2010)

* 도가와 신스케 《나쓰메 소세키 평전》 (AK커뮤니케이션, 2018)

 

 

 

《그 후》를 읽다 보면 다이스케가 ‘일본의 러스킨’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영국에서 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한 나쓰메 소세키는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에 심취했고, 박물관이 된 칼라일의 집을 세 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수필에 가까운『칼라일 박물관』은 소세키가 칼라일의 집을 방문하면서 느낀 소회를 기록한 글이다. 칼라일도 러스킨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했는데, 영국 문화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소세키가 칼라일과 동시대에 활동한 러스킨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소세키의 초기작인 『환영의 방패』『해로행』[주]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두 작품을 위한 삽화가 나온다면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정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좀 더 분석해봐야겠지만 존 러스킨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요긴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 故 노재명 씨가 번역한 하늘연못 번역본에 적힌 '해로행'의 작품명은 ‘북망행’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재명 씨는 '북망행'으로 제목을 바꾼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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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1 17:08   좋아요 1 | URL
미래에 자본의 힘이 도시 밖을 넘어 시골에도 미친다면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사회도 이상향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반유행열반인 2019-02-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양이...만 읽어봤는데 집에 있는 다른 소세키 작품들(그 후, 마음)도 차차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cyrus 2019-02-12 16:25   좋아요 1 | URL
나쓰메의 장편소설을 다 읽어본 독자들의 평을 보니 장편소설 모두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하네요. ^^

blueyonder 2019-02-12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소개해 주신 여러 권을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cyrus 2019-02-12 16:2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blueyonder님 덕분에 과학 정보를 많이 알아갑니다. ^^
 
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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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면?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면? 뜻하지 않는 재난과 질병으로 장애인 또는 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활기 넘치는 젊음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 몸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할’ 가능성에 늘 노출돼 있다.

 

장애와 죽음의 공포에 떠는 우리 몸은 계속해서 ‘좋은 몸’이 되라는 정언 명령을 듣게 된다. ‘좋은 몸’이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이성애자’의 몸이다. 경제 성장을 지향하는 국가 통치는 국민의 몸을 생산의 주체, 혹은 생산에 참여하지 못한 타자로 나눈다. 병든 몸, 늙은 몸, 장애를 가진 몸, 출산하지 못하는 몸, 그리고 퀴어(queer)[주1]한 몸은 생산 ․ 재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비(非)국민’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누구든 자기 위치에서 ‘좋은 몸’에 대한 강박을 짊어지고 산다. ‘정상성’의 굴레 속에서 인간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이성애자’로 살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 채근하고, 통제한다. 또 ‘좋은 몸’에 부합되지 않은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면서 자신의 정상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개인들의 강박을 사투로 만드는 것은 ‘정상적인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을 구분하게 만드는 권력과 그로부터 비롯된 지식이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다양한 몸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는 지식이 무엇이며, 사회 안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쓴 김승섭 교수는 인간의 몸을 위계화 하는 지식에 향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식은 타인을 차별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생산되어 왔다는 것이다. 모든 지식에는 누군가의 관점이 반영하기 마련이고, 어떤 지식은 권위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의학 지식은 성인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해서 발견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남성 의학자와 의사들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증상이나 의약품의 부작용 등을 진지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진화가 잘 된 백인과 진화가 덜 된 유색인종을 분류하는 인종주의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인종주의 과학은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본에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일본은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함을 과시하는 동시에 조선을 통치해야 할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고 했다.

 

과거의 구습으로 남게 된 지식과 그로 인해 생긴 폐해를 지금에서야 따지면 뭐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차별과 불평등을 부추기는 지식은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으며 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지식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한 수준이다. 무관심으로 가장한 차별은 혐오를 강화하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를 낳을 뿐이다. 알게 모르게 일상생활 속의 크고 작은 지식은 타인에 향한 차별,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게 만든다. 그러한 지식 일부는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거나 특정 세력의 필요에 따라 날조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과 의료 복지 수준은 선진국에 뒤지지 않지만, 정작 성소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성소수자의 건강 실태를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연구 분위기조차 조성되어 있지 않다. 성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빈곤할수록, 또 덜 알려질수록 성소수자의 몸은 소외되고, 아무도 그들의 몸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지식이 있어야 할 곳에 편견과 가짜 뉴스가 채워진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는 건강하지 않은 존재로 이야기되며, 건강하지 않은 존재는 사회와 질서를 위협하고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비국민’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부조리한 사회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일을 계속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의 말을 빌리자면, 김승섭 교수의 글쓰기는 ‘성찰하는 일에 친숙해지는’[주2]이다. 정상적인 몸, 건강한 몸, 우월한 인종, 순수한 민족이라는 것은 과장되었고 어떤 의미에서 허구적이다. 우리는 조작된 환상의 몸이 아닌 ‘진짜 몸들’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나쁜 몸’, ‘이상한 몸’을 규정하는 지식을 어떻게 간파하고 벗어날 것인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당연한 것들’에 질문하는 일은 각자가 서로 다른 진짜 몸과 삶의 실체를 알아가는 일이다.

 

 

 

 

 

※ Trivia

 

* 29쪽

 

1890년 미국의 여성 소설가 샬롯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이 발표한 단편소설 「노란 벽지(The Yellow Wallpaper)」의 줄거리입니다.

 

→ 「노란 벽지」가 발표된 해는 1892년이다.

위키피디아 ‘Charlotte Perkins Gilman’ 항목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Charlotte_Perkins_Gilman#Short_stories

 

 

 

* 258쪽

 

20세기 초 미국 남부 앨라배마 메이컨 카운티의 면방직 공장의 사장이었던 브루커 T. 워싱턴(Brooker T. Washington)은 여러 자선사업가들의 자금을 모아 흑인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학교, 공장, 기업 등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합니다.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의 오자다.

 

 

 

 

 

[주1] 지정 성별, 성별 정체성, 성별 표현, 성적 지향의 측면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 인구 집단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시우, 《퀴어 아포칼립스》, 현실문화, 2018, 277쪽 참조.

 

[주2] 오드리 로드, 주해연 ․ 박미선 공역, 《시스터 아웃사이더》, 『시는 사치가 아니다』, 후마니타스, 2018,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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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2 16:41   좋아요 0 | URL
일상의 절반은 책 읽는 시간이라서 책 안 읽으면 마음이 허전해요. 독서와 글쓰기가 저의 헛헛한 시간을 채워줍니다. ^^
 

 

 

 

저는 1월 30일 화요일에 공개한 <아마노자쿠와 천탐녀>라는 글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천탐녀와 아마노자쿠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썼다”, “소세키가 ‘천탐녀=아마노자쿠’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아마노자쿠를 ‘여신’으로 오해한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오늘 일문학을 전공하신 분<아마노자쿠와 천탐녀>에 대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아마노자쿠의 유래를 설명한 사전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면서 아마노자쿠가 천탐녀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천탐녀는 원래 미래나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샤먼(shaman)과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탐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 그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요괴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요괴가 바로 천사귀(天邪鬼), 즉 아마노자쿠입니다.

 

저는 <아마노자쿠와 천탐녀>에서 천탐녀가 여신이고, 아마노자쿠가 요괴이기 때문에 둘 다 비슷해도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설 『몽십야』에서 천탐녀를 아마노자쿠로 쓴 표현이 문제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문학 전공자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 의견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노자쿠와 천탐녀는 같은 존재로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쓰메 소세키의 표현은 문제가 없는 것이고, 번역본에 천탐녀를 아마노자쿠로 옮긴 표현은 오역이 아닙니다.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현인, 2018)

 

 

 

저는 일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일본어도 잘 모르는 독자입니다. 그런데도 어설픈 논리로 작가와 번역가를 지적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제가 댓글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을 ‘이름만 전집인 선집’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이 말 또한 잘못된 내용이기에 이를 바로 잡습니다.

 

알라딘에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검색하면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문구가 나옵니다. 제가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는 총 10편의 중단편 소설을 썼다. 그 수가 많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그의 중편소설과 단편소설을 하나로 묶은 책이 없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지금까지 그의 중단편소설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단편 소설 및 수필 등을 모아 하나로 엮은 책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 책의 번역에는 심각한 오류가 산재해 있어서 나쓰메 소세키의 올바른 번역서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독자에게 나쓰메 소세키 아닌 나쓰메 소세키를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에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과 중편소설 전부를 하나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소설 전부를 우리 독자들에게도 올바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금까지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소설을 전부 읽었다 할지라도 그건 진짜 나쓰메 소세키가 아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남긴 업적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번역된 나쓰메 소세키의 중단편 전집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에 수록된 작품은 총 10편입니다. 다른 단편소설 전집(하늘연못 출판사에 나온 중단편소설 전집)에 포함된 『런던 소식』, 『칼라일 박물관』 등의 소품은 ‘수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에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으려는 독자가 있으시다면 제일 먼저 알라딘에 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출판사 제공 책 소개’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번역한 분이 직접 쓴 ‘해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에는 해설이 없습니다. 저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지 못한 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은 바람에 이 책을 ‘선집’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특정 번역본과 번역가를 성급하게 비판한 점 그리고 <아마노자쿠와 천탐녀>를 읽은 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책 한 권 꼼꼼하게 읽을 것이며 글을 쓸 때 더욱더 신중히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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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0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리뷰에 이어지는 내용인가요. 해당 리뷰를 다시 한번 읽고 왔습니다.
이 페이퍼에 부가되는 설명을 읽으면서 저도 조금 더 배우고 갑니다.
cyrus님, 오늘부터 설연휴가 시작인 것 같습니다.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cyrus 2019-02-10 14:32   좋아요 1 | URL
오자 덕분에 저도 모르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야마노자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책과 책을 쓰는 사람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잘못된 건 고쳐야 합니다. ^^

2019-02-01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0 14:33   좋아요 0 | URL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휴일이 후딱 지나간 것 같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2-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연휴 잘 보내시고 늘 즐거운 글쓰기의 시루스박사님 기대합니다 🎶

cyrus 2019-02-10 14:35   좋아요 1 | URL
일주일동안 글을 안 쓰니까 마음이 편하네요. 글 안 쓰고 책만 읽는 것도 즐겁네요. ^^

짜라투스트라 2019-02-0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배우네요.ㅎㅎㅎ cyrus님 설연휴 잘 보내세요.^^

cyrus 2019-02-10 14:38   좋아요 0 | URL
제가 쓴 글의 내용 대부분은 ‘알아도 쓸모없는 잡식’이라서 배울만한 게 많지 않을 겁니다.. ^^;;

2019-02-0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0 14: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syo 2019-02-01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 박사님, 작작 읽는 명절 되시라구요 좀 ㅋㅋㅋㅋㅋㅋ 명절은 읽는 게 아니라 먹는 거예요 먹는 거....

cyrus 2019-02-10 14:40   좋아요 0 | URL
이번 설날에는 실컷 먹었는데요... ㅎㅎㅎㅎ 음식도 먹고, 책도 먹고.. ㅎㅎㅎ
통풍이 재발하지 않아서 다행일 정도로 많이 먹었어요. ^^
 
성性 정치학
케이트 밀렛 지음, 김전유경 옮김 / 이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은 여성 혐오(misogyny)와 함께해왔다. 문학 속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페미니즘 비평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누군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젠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남성 작가 또는 남성 비평가 여러 명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문단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속해 있다. 이들은 지금도 문단을 주름잡는 대선배들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너 서클에 속한 남성 작가와 남성 비평가들은 자신의 패거리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권위는 이너 서클 자체를 거부하는 작가나 비평가들을 공격하는 데 활용한다.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에 반영된 여성 혐오를 지적한 페미니스트 작가나 비평가는 문단을 파괴하는 악마로 취급받아왔다. 어느 사회나 페미니즘은 잘못된 특권 의식을 지닌 여성을 조롱하기 위한 수사로 소비되곤 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ity is the political)라는 구호로 제2세대 페미니즘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1970년대에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남성 작가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쓴 박사학위 논문 성 정치학(Sexual Politics)1970년에 출간된 이래 지금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렛은 이 책에서 사회 곳곳에 침투한 가부장제라는 권력 구조를 역사와 문학비평을 통해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헨리 밀러(Henry Miller),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등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밀렛은 남성 작가의 문학작품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성 정치학의 제3(문학적 고찰)의 첫 장(‘D. H. 로렌스’)에서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야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로렌스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남근 우월주의자. 그들은 남근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배하려고 하며 여성들은 남근을 숭배하거나 남근을 과시하는 남성성에 억압당한다. 소설 내용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야한 묘사조차, 엄연히 따져보면 이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밀렛은 여성의 억압, 즉 남성의 여성 지배는 가부장제가 가져온 뿌리 깊은 토대를 지니고 있으며, 이제는 여성을 통제하는 거대한 권력 구조로 발전되었다고 지적한다.

 

밀렛은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념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이론과 그의 추종자들도 비판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여자아이는 자신은 남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자신의 클리토리스와 남자아이의 남근을 비교하면서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되고, 남근을 가지고 싶어 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여성의 심리를 남근 선망(penis envy)이라고 하였다. 밀렛은 프로이트의 남근 선망 이론을 비판한다. 그녀가 보기에 남근 선망 이론은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남성 우월적인 개념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는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밀렛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남성 작가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장 주네(Jean Genet)이다. 밀은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의 영향을 받아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테일러와 함께 여성의 종속을 썼다. 장 주네는 동성애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희곡을 썼는데, 주네가 묘사한 동성애자들은 남성인 동시에 여성이다. 그들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권력 관계를 폭로하고 해체하려고 한다.

    

성 정치학은 가부장적인 남성지배의 문화에 익숙한 남성 작가들의 책에 침을 뱉은 도발적인 책이다. 성 정치학의 초판 서문에 그녀가 지향하는 문학비평과 글쓰기 정신이 드러나 있다. 밀렛은 책의 저자이기 전에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문학에 저항하는 독자가 되어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리뷰를 쓰고 있는 나는 그녀의 확고한 신념을 본받고 싶다.

 

 

 

  문학비평이라는 모험적 작업에 대한 나의 신념은 이러하다. 비평은 작품에 충실하게 아첨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문학이 묘사하고 해석하며 심지어 왜곡하기까지 하는 에 대한 폭넓은 통찰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초판 서문, 26)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저항하는 독자들’이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페미니즘 비평은 다양한 분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고, 성 정치학도 후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프로이트 이론을 분석 도구로 삼는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밀렛을 비롯한 급진(radical) 페미니스트의 프로이트 비판이 가혹하다고 반박한다.

 

이번 한 달 동안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성 정치학을 읽었는데, 책의 문제점과 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분은 밀렛이 동양의 여성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그녀는 1970년 기준으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세계에서 매춘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고 언급했다[주1]. 정말로 1970년대 중국에 매춘이 없었을까? 그러나 밀렛은 중국에 매춘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분은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밀렛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2]

 

 

 성 혁명과 이를 이끌어 온 여성운동은 기사도 정신의 가면을 벗기고, 그 정중한 예의라는 것이 교묘한 조작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해야만 한다. 또한 공동의 대의를 위해 계급의 전선을 뛰어넘어야 하고, 숙녀와 공장 노동자가, 방탕한 여성과 지체 높은 여성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2부 역사적 배경, 159)

 

※ 글꼴을 굵게 표시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표시한 것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기득권 부르주아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그녀들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부르주아 여성들은 겪는 프롤레타리아 여성들과 똑같은 형태의 억압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주된 관심사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을 위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내가 감탄할 정도로 통찰력 있는 레드스타킹 멤버는 성 정치학을 이렇게 평가했다.좋은 책인 건 분명하나 페미니즘 문학이나 페미니즘 비평에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 분의 말에 동의한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 원주, 248.

 

[2] 밀렛의 주장에 대한 레드스타킹 멤버들의 비판적 입장은 레드스타킹공식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성 정치학의 두 번째 모임(1월 14일) 후기를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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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9-01-31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제적 계층의 차이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인종적인 차이도 너무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거 같아요.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는 흑인 남성이 당하는 억압에 더 공감할테니까요. 저만 하더라도 한국에 살고 있을때는 사실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에 공감했던 거 같은데 여기 살다 보니 흑인 여성의 이야기에 훨씬 더 공감이 가고 백인 여성 이야기는 좀 삐딱하게 보게 되거든요.

cyrus 2019-02-01 15:14   좋아요 0 | URL
교차성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래디컬 페미니즘의 한계점이 보입니다. 다만 래디컬 페미니즘에 한계가 있다고 해서 이론 전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페미니스트들 간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도 복잡해지기 때문에 계층, 인종 등과 관련된 첨예한 쟁점들이 나올 것입니다.

stella.K 2019-02-01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근우월주의는 <채털리 부인...>만 있는 게 아니지.
너무 많고 많아졌어. <롤리타>도 그렇고
특히 영화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게
유명한 사람들 성추행 해 놓고 모른다고 그러고,
아니라고 그러고, 항소하고 그러는 거 보면서
정말 그게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자신이 저지른 성범죄를 성범죄로 인지하지 못하는 거.
워낙에 세상이 남성위주다 보니까 당연하고 문제로 인식 못하는 것 같아.
여자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잘 몰랐던 것 같고.
오늘 안희정 유죄 확정 받던데 왤케 시원하던지.

cyrus 2019-02-01 20:55   좋아요 1 | URL
남근뿐만 아니라 남성의 얼굴에 나는 수염도 우월한 남성성을 과시하는 상징이 되기도 해요. 양쪽 수염 끝이 뾰족하면서 살짝 위로 올라간 카이저 수염은 발딱 선 페니스를 연상합니다. 재미있는 건 남성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싶어 하지만, 여성의 몸이나 얼굴에 털이 나는 걸 싫어합니다.

오늘은 정말 의미 있는 날입니다. 오늘의 판결 결과는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제기한 ‘권력형 성범죄’의 법적 처분이 상식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줬으니까요. ^^

레삭매냐 2019-02-01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 메리 설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

cyrus 2019-02-01 20:5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AgalmA 2019-02-04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의 판이 남성들에 의해 짜여지다 보니 구조든 언어적 표현이든 그들 중심인 거 파악은 되는데요. 여전히 ‘여성적‘이란 표현이 나약하고 어리석다, 혹은 교활하고 사악하다는 뜻으로 두루쓰이는 걸 볼 때마다 이게 바뀌기는 할까 싶어요. 애초에 상반되는 저 뜻이 문맥에 따라 이해되는 것도 웃기고ㅎ;;
마초이즘적인 니체의 책 읽다보니 바그너 욕하며 ‘여성적‘을 가져 오길래 우리의 위대한 반철학자 니체도 이 부분에선 어쩔 수 없군 하며 씁쓸 웃음을^^;; 루 살로메랑 결혼에 성공했으면 좀 나아졌을까요. 글쎄요...
테리 이글턴 <유물론> 읽으니 D. H. 로렌스가 니체를 열렬히 좋아했다고 하대요^^;;

cyrus 2019-02-10 14:43   좋아요 1 | URL
로렌스의 소설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니체도 알아야 하는군요. 로렌스가 저를 피곤하게 만드네요.. ㅎㅎㅎㅎ

AgalmA 2019-02-10 23:58   좋아요 0 | URL
잘 몰랐는데 D.H 로렌스가 해외에서는 인지도가 많은가 봅니다?
국내에 번역은 안 되었지만 제프 다이어가 D.H 로렌스 전기를 쓰려 하다가 실패한 이야기 <Out of Sheer Rage>도 있더군요. 하긴 영국에서 현재 국민 작가급이라는 제프 다이어도 국내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cyrus 2019-02-11 13:54   좋아요 0 | URL
지금 서구에서의 로렌스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1960년대 말에 성해방 운동이 일어났을 때 로렌스의 인기는 엄청 났었을 거예요. 로렌스 전기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요.. ^^;;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몽십야(夢十夜)은 말 그대로 열 편의 꿈 이야기. 소세키가 영국 유학 생활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온 후에 쓴 단편소설들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분류된다. 몽십야와 같은 초기 작품에 환영의 세계와 신비주의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묘사가 많다.

    

 

 

 

 

 

 

 

 

 

 

 

 

 

 

 

* [품절] 나쓰메 소세키 몽십야(하늘연못, 2004)

* 나쓰메 소세키 런던 소식(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회상(하늘연못, 2010)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 2018)

 

 

몽십야다섯째 밤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일본 요괴의 이름이 나온다.

 

 

 말굽 흔적은 지금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실제로 닭은 울지 않았다. 닭이 우는 흉내를 낸 것은 야마노자쿠(天探女)였다. 이 말굽 흔적이 남아 있는 한 야마노자쿠는 나의 적이다.

 

(몽십야, 몽십야, 44~45)

 

      

 말굽 흔적은 아직도 바위 위에 남아 있다. 닭 울음소리는 낸 것은 아마노자쿠였다. 이 발굽 흔적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한 아마노자쿠는 나의 원수다.

      

(몽십야,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283)

 

    

* 원문

 

あとはいまだにっている真似まねをしたものは天探女(あまのじゃく)あまのじゃくであるこのあとのみつけられている天探女自分かたきである

 

      

첫 번째 인용문은 2011년에 세상을 떠난 노재명 씨가 번역한 것이다. 노재명 씨가 번역한 열흘 밤의 꿈몽십야(하늘연못)런던 소식(하늘연못)에 수록되어 있다. 몽십야는 소세키의 중단편 24편을 한데 묶은 번역본인데, 현재는 런던 소식회상(하늘연못)으로 분권 되어 나온 상태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에 있는 구절이다.

    

 

 

 

 

 

 

 

 

 

 

 

 

 

 

* [품절]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그런데 노재명 씨가 번역한 몽십야런던 소식모두 일본 요괴의 이름을 야마노자쿠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원문에 있는 あまのじゃく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아마노자쿠이다. 의 음(). ‘야마노자쿠는 번역가의 실수라기보다는 책이 인쇄되면서 나온 오자인 것 같다.

 

아마노자쿠는 인간의 마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요괴이다. 인간으로 둔갑하거나 인간의 말을 흉내 내면서 인간들을 속인다. 노재명 씨는 주석을 통해 아마노자쿠를 일본의 전설에서 주로 나오는 악녀의 화신이라고 설명했다.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의 번역가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후에 악귀가 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라는 내용의 주석을 달았다. 두 사람 모두 아마노자쿠를 천탐녀인 것처럼 설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마노자쿠는 요괴의 일종이다.

 

아마노자쿠와 첨탐녀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이다. 아마노자쿠의 한자식 표기는 천탐녀(天探女)가 아니라 천사귀(天邪鬼). 아마노자쿠의 원형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천탐녀이다. 천탐녀의 히라가나 표기는 あめのさぐめ이다. ‘아메노사구메라고 읽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세키는 천탐녀와 아마노자쿠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썼다. 그러나 천탐녀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거역하는 여신이고, 아마노자쿠는 천탐녀와 비슷한 습성이 있는 요괴이다. 따라서 소세키가 천탐녀=아마노자쿠라고 쓰는 바람에 우리나라 번역가들은 아마노자쿠를 여신으로 오해한 것이다. 천탐녀가 아마노자쿠의 원형이므로 둘 다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지만, 일본 신화 속 천탐녀와 민간 설화에 묘사된 아마노자쿠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몽십야원문에 있는 天探女아마노사쿠로 번역하려면, 아마노사쿠가 누군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일본 요괴에 대해서 자세히 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만 아마노사쿠를 마치 천탐녀인 것처럼 대충 설명한다면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셈이 된다.

 

      

 

[] 박현석 옮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현인, 2018,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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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3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 있어요, 저 두꺼운 <몽십야> ㅎㅎㅎㅎ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cyrus 2019-01-30 16:58   좋아요 0 | URL
혹시 syo님이 가지고 있는 책에도 ‘야마노자쿠(天探女)’라고 적혀 있습니까?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재미있네요. ^^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다가 재미없어서 포기했어요. 일단 <그 후>를 읽었어요. syo님이 추천한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가 소세키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syo 2019-01-30 17:2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면, 시루스 박사님과 저는 넓고 긴 강을 사이에 두고 멀리 멀리 서 있는 상황이겠어요 ㅋㅋㅋㅋㅋ

cyrus 2019-01-30 20:58   좋아요 0 | URL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나쓰메 소세키 전작 읽기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솔직히 이번 달 안에 읽는 건 무리였어요. 읽어야 할 책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소세키를 읽을 기회를 놓쳐버렸어요... ^^;;

stella.K 2019-01-3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한길사에서 전집이 나오면서 몽십야가 안 나왔단 말야?
언제고 나오려나?

cyrus 2019-01-30 17:11   좋아요 0 | URL
소세키의 단편 선집이나 단편 전집 번역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하늘연못 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전집이고요, 작년에 현인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은 ‘이름만 전집인 선집’입니다. ^^;;

2019-02-01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15: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일문학을 전공한 적이 없고, 일본어를 쓰고 말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처지에 제가 나쓰메 소세키와 번역가, 그리고 번역본을 함부로 지적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탐녀가 천사귀의 원형이라고 해도 천탐녀는 여신이고, 천사귀는 악귀이기 때문에 서로 다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님이 인용한 사전의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제 생각이 틀렸어요.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말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저는 알라딘에 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보지 못한 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선집으로 오해를 했고, 번역자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책을 함부로 평가했습니다. **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출판사 제공 책 소개’를 봤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책에 꼭 있어야 할 ‘해설’인데, 다음 쇄를 찍을 때 ‘출판사 제공 책 소개’가 ‘해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글로 책에 수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사과문과 정정문을 써서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 단편소설이라서 제가 이 작가의 진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 너무 몰랐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대충 읽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어설픈 글을 올려서 정말 죄송하고요, 제가 몰랐던 부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2-0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01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노자쿠와 천탐녀>의 오류에 대한 정정문입니다. 이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http://blog.aladin.co.kr/haesung/10648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