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진화론 - 보이즈 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
미조구치 아키코 지음, 나카무라 아스미코 그림, 김효진 옮김 / 길찾기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이 요즘 관심 있는 책이라면서 ‘이 책’을 소개했다. ‘이 책’은 제목과 앞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책 제목은 ‘BL 진화론’이다.

 

 

 

 

 

 

참고로 앞표지 그림은 지금도 연재 중인 BL 만화 《동급생》의 작가 나카루마 야스히코(中村 明日美子)가 그렸다.

 

BL은 ‘소년들의 사랑(Boy’s Love)의 약칭이다. 보이즈 러브는 남성과 남성 간의 연애를 소재로 다루는 장르이다. 기본적으로는 여성을 위한 장르이지만, 일부 남성들도 즐긴다. ‘BL’이라는 명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한때 남성 커플의 섹스 묘사가 많이 나오는 보이즈 러브를 ‘야오이(やおい)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보이즈 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 《BL 진화론》의 부제다. 이 책을 쓴 저자 미조구치 아키코(溝口 彰子)레즈비언(lesbian)이다. 그녀는 퀴어 이론(queer theory)을 공부하던 중 레즈비언 정체성의 뿌리가 보이즈 러브의 조상인 ‘미소년 만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로 그녀는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보이즈 러브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분석하는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보이즈 러브 애호가인 저자는 ‘미소년 만화’가 유행하던 1961년을 일본 보이즈 러브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저자는 미소년 만화에 나오는 남성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고 술회한다. 1990년대 이후부터 상업 출판사들은 보이즈 러브 출판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나온 보이즈 러브 텍스트들을 분석하여, 그 텍스트에 드러난 네 가지의 정형화된 특징을 발견한다.

 

 

1. 동성애를 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자신을 ‘논케(ノンケ: 이성애자, 헤테로)’라고 주장(생각)한다.

 

2. 보이즈 러브 작품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은 고정화된 남녀의 젠더 역할로 살아가고, 각각 ‘남성’, ‘여성’으로 행동하면서 섹스를 한다.

 

3. 보이즈 러브 작품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은 난교를 선호한다.

 

4. 보이즈 러브 작품에 동성 강간 묘사가 나온다.

 

 

저자는 이 네 가지 특징 모두 ‘판타지 포르노’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판타지 포르노가 반영된 클리셰로 가득한 보이즈 러브는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호모포비아(homophobia)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재생산한다. 일본의 일부 게이들은 보이즈 러브를 ‘실제 게이의 삶을 왜곡하는 게이 차별적인 장르’라고 비판하면서 등을 돌렸다. 1992년에 ‘야오이 논쟁’이 일어나면서 보이즈 러브를 대대적으로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 논쟁에 야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야오이’의 의미를 보면 알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이즈 러브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일본 사회 내에서 호모포비아, 이성애 규범,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보이즈 러브도 그런 분위기를 많이 반영하여 나오게 된다. 저자는 2000년대에 일어나기 시작한 보이즈 러브 출판 시장의 변화를 일본 사회가 ‘호모포비아, 이성애 규범, 여성 혐오를 극복’하여 ‘다양한 성 정체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호로 본다. 그러니까 저자가 보기에 2000년대에 나온 보이즈 러브가 실제 게이들의 삶을 최대한 반영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게이들이 살아가면서 고민하는 호모포비아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보이즈 러브가 계속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그 속에 이성애 중심주의와 여성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이즈 러브를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으로 분석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필자는 보이즈 러브를 안 봐서 저자의 입장에 대한 내 나름의 의견을 어떻게 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을 보류하기로 한다. 저자가 보이즈 러브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는 페미니즘 및 퀴어 이론들은 내겐 너무 어렵고, 혼자 공부하기에는 벅차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멤버가 이 책을 소개한 이유를 알겠다. 페미니스트들은 《BL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토론하기에 딱 좋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내년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다 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추천해볼까 생각 중이다.

 

 

 

 

[주] 원문은 “비혼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로,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인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동녘)에 나오는 첫 문장(미나시타 기류가 한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07-1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cyrus님 덕분에 BL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ㅋ

cyrus 2019-07-15 16:37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는 BL보다 야오이를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는 야요이를 고2 때 처음 알았어요. 같은 반에 야오이를 즐겨 보는 여사친들이 있었거든요. ^^;;
 

 

 

도서관에 책을 많이 빌려 보게 되면, 완독하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에서 만난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미술문화)도 처음에는 잠깐 보고 마는 책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초현실주의 운동과 초현실주의 회화’였다.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는 초현실주의 회화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받은 조형미술, 사진, 영화 등도 살피고 있다.

 

 

 

 

 

 

 

 

 

 

 

 

 

 

 

 

 

* 요아힘 나겔 《초현실주의,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문화, 2008)

 

 

 

책의 분량이 많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다. 책을 끝까지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초현실주의 사진 작품들이 아주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의 사진작가 클로드 카엥(Claude Cahun)의 자화상은 내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 작품이었다.

 

 

 

 

 

사진 속 카엥의 모습은 마치 신성한 아우라(Aura)를 발산하는 신과 같다. 아마도 이 사진을 보는 관객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했지 싶다. “사진에 나온 작가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관객이 사진 속 작가의 성별을 궁금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름과 짧은 머리를 보고 카엥을 남자라고 추측하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행성B, 2018)

 

 

 

사실 카엥은 여성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루시 슈보브(Lucy Schwob)다. 작가인 마르셀 슈보브(Marcel Schwob)의 조카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클로드 카엥’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자화상 속 그녀의 모습은 에이젠더(agender)에 가깝다. 에이젠더란 성 정체성이 없다고 믿는 사람, 즉 자신이 어느 성별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혹은 ‘젠더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다. ‘젠더가(성별이) 없는 사람’이라니. 인간을 ‘남성’, ‘여성’, 딱 두 개의 성별로 나누려는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에 익숙한 사람들은 젠더 없는 삶이 정말로 가능한지 의문을 드러낸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성 구분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문화 · 종교 · 정치권력 등의 영향으로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남성성, 여성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가 ‘정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스젠더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성 정체성은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격리와 치료의 대상이 된다. 카엥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남자로 태어나면 남자로 살아가고, 여자로 태어나면 여자로 살아간다’라는 고정된 젠더 이분법적인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카엥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은 카엥의 동성애를 반대했다. 카엥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수잔네 말레르브(Susanne Malherbe)와 함께 작업을 했다. 카엥은 여러 편의 글도 썼는데, 그녀가 글을 쓰면 말레르브가 글을 위한 삽화를 그렸다.

 

 

 

 

 

 

 

 

 

 

 

 

 

 

 

 

 

* 줄리엣 해킹 《위대한 사진가들》 (시공아트, 2016)

 

 

 

그런데 1917년에 카엥의 아버지는 미망인이었던 말레르브의 어머니와 결혼했다. 졸지에 카엥과 말레르브는 연인에서 의자매가 되었다. 그러나 카엥은 말레르브와의 동성애 관계를 분명히 드러나도록 행동했다. 그 후로 카엥은 ‘전통적 여성성’을 거부한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1920년에는 삭발한 모습으로 자화상을 촬영했으며, 남자들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그리고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작가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클로드 카엥’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초현실주의자들과 파리의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의 주인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등과 어울렸다.

 

 

 

 

 

 

 

 

 

 

 

 

 

 

 

 

 

 

 

 

* [2018년 레드스타킹 네 번째 선정도서]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바다출판사, 2015)

 

 

 

 

카엥의 자화상을 보면서 그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추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나 품행만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판단한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을 ‘젠더 귀인(gender attribu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카엥의 자화상을 보는 관객들은 젠더 귀인으로 자화상 속 카엥이 누구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카엥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심문하는 듯한 관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거부한다. 사진 속 카엥은 관객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함부로 판단하지 마!”

 

 

 

 

 

 

 

 

 

 

 

 

 

 

 

 

 

 

 

* 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2002)

 

 

 

관객들은 ‘젠더가 없는 사람(카엥)’의 등장에 당혹스러워 한다. 카엥은 자신을 비웃는 젠더 이분법 세계를 위반하면서 거기에 갇힌 사람들을 사진으로 조롱한다. 카엥의 자화상은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설명했던 ‘캠프(camp)의 미학을 보여준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캠프’를 진지함을 거부하는 과장의 미학 양식으로 설명한다. 캠프는 고급과 저급을 가르는 기존의 가치 판단에 따르지 않으며 과장성과 연극성에 초점을 맞춘 미학 양식이다. 그래서 캠프는 탈권위적인 특성을 띤다.

 

캠프는 더 나아가 퀴어(queer)의 정신을 대변한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케이트 본스타인(Kate Bornstein)은 젠더 이분법의 위계 방식을 흔드는 주제 의식을 담은 연극 작품을 직접 만들어 본인이 직접 무대에 오른다. 본스타인은 남자의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의료적 트랜지션(transition)을 통해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그녀를 트랜스젠더라 부르면 되겠지만, 그/그녀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본스타인은 생물학적 특성만으로 성별을 분류하고, 성별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멋대로 판단하는 젠더 이분법적 사고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그녀는 자신을 젠더의 경계를 무시하면서 자유롭게 다양한 성별 또는 젠더로 살아가는 ‘젠더 무법자(gender outlaw)라고 소개한다. 사실 본스타인보다 훨씬 전에 ‘젠더 무법자’로서 살아가면서 캠프 미학을 사진으로 구현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클로드 카엥이다. 퀴어 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클로드 카엥의 작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카엥의 작품이 국내에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 Trivia

 

 

 

 

 

 

 

 

 

 

 

 

 

 

 

 

* 엘리슨 나스타지 《예술가와 고양이》 (디자인하우스, 2015)

 

 

 

‘Claude Cahun’의 표기명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클로드 카훈’, ‘클로드 카운’으로 부르기도 한다. 클로드 카엥의 약력을 볼 수 있는 책은 두 권뿐인데, 《위대한 사진가들》《예술가와 고양이》(디자인하우스)가 있다. 필자가 카엥의 삶을 요약했을 때 참고한 책은 전자의 책이다. 《예술가와 고양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삶을 ‘아주 짧게’ 쓴 책이라서 카엥의 사진 예술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책은 아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12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12 17:43   좋아요 0 | URL
삶의 시작을 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죠. 그래서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갑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조한진희(반다) 지음 / 동녘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구나. 많이 건강해져서 다행이다”

 

 

작년에 통풍을 겪고 난 후에 지인이 건넨 인사였다. 한동안 연락이 뜸해진 사이에 건강해진 내 모습을 보고 축하한 마음에 하는 인사였지만, 나는 그 말이 듣기 거북했다. 지인은 간헐적으로 통증에 시달리는 내 모습이 ‘비정상적’으로 느꼈던가 보다. 물론 몸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거나 변하는 상태는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몸의 비정상적 상태를 질병이나 증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몸이 그런 상태라고 해서 아픈 사람 자체를 비정상인으로 볼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정상적인 몸’을 가졌고, ‘정상적인 사람’일까? 또 어떤 몸/사람이 ‘비정상적’인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일단 비정상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결핍’이고, 또 하나는 ‘과잉’이다. 의사들은 이를 모두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진단한다. 과거에 장애인은 ‘뭔가 결핍되고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호르몬과 행동의 과잉 상태로 인한 장애가 현대의 정신 의학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가 지나치게 활발하면 대개 부모들은 자식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가 있는지 의심한다. 대부분 사람은 아픈 사람과 장애인을 불쌍하게 여긴다. 이 불쌍한 사람과 함께 사는 가족의 삶에 ‘불행한’, ‘딱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불치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는 가정은 ‘비정상 가족’으로 낙인찍힌다. 이렇다 보니 아픈 사람과 장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늘 미안해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주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반다’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조한진희도 암 진단을 받은 이후로 ‘아픈 사람’으로서의 자괴감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병상 일지’ 비슷한 글을 썼다. 드디어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아파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서 아팠던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을 부정적 존재로 만드는 세상 앞에서 쿨하게 한 마디 던진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로지 건강한 몸을 선호하며 이를 ‘정상적인 몸’의 표준으로 본다. 이런 사회 속에 대중 매체는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언어를 주목하고, 열심히 그것을 실어 나른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저처럼 운동하면 살을 뺄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장애인은 “여러분(장애인)도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확신한다. 그들은 질병과 장애를 극복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일’이란 아프거나 결핍된 ‘비정상인 몸’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해진 ‘정상적인 몸’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 또는 건강한 장애인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건강을 유지하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람’ 서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아픈 사람과 장애인을 설명할 언어는 사라지게 되고, 그들의 삶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 서사에 부합되지 않은, 아픈 사람과 장애인은 ‘불행한 비정상적인 존재’로 남는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건강을 강요하는’ 건강 중심 사회 앞에서 아픈 사람과 장애인의 말과 경험은 언제나 침묵 당할 수밖에 없다. 아픈 사람들은 질병을 부정적으로 보는 주변의 시선에 계속 상처받으며 사는 게 싫어서 장기적인 치료가 동반되는 입원 생활을 선택한다. 그러나 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더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런 무력감은 그들을 작아지게 만들고, 또 한 번 아프게 만든다. 위축된 그들은 이 아픔의 원인을 오로지 ‘개인 탓’이라고 여긴다.

 

개인의 잘못된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으로 인해 몸이 나빠질 수 있고, 질병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삶을 무조건 ‘개인의 문제’로만 규정할 수 없다. 질병을 우리 삶을 망가뜨리는 위험 요소로 인식하고, 아픈 사람을 인생의 패배자로 단정하는 건강 중심 사회는 ‘질병의 개인화’를 고착시킨다. 저자는 ‘질병의 개인화’가 아픈 사람에게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고 지적한다. 건강 중심 사회 속에 사는 아픈 사람은 ‘내가 잘못 살아서’ 아픈 거라는 생각에 자기혐오에 빠지기 쉽다.

 

저자는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생 아프면서 살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죽을 수 있다. 이러한 운명을 너무 비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질병과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즉 질병과 장애를 우리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아파도, 몸이 좀 불편해도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건강한 삶’이라는 말에 너무 믿지 말자. 건강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배경에는 대중이 불안한 심리 상태에 빠지도록 만드는 교묘한 술수가 숨어 있다. 건강하지 못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심각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병원에 자주 들락날락하고, 약을 과다 복용한다. 인간적인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불안마저 병으로 진단하게 하고, 살면서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되는 몸의 통증이나 내면의 아픔을 죄다 치료 대상으로 몰아넣으면 일상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내 몸과 정신이 ‘과연 정상일까“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면, 그것이 내 감정을 지배하는 어두운 구름이 되지 않도록 말끔히 걷어내자.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누구도 내 몸과 정신을 정상인지 아닌지 함부로 구분할 자격이 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7-1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 중심 사회, 라는 말을 처음 생각해 봅니다. 돈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두고 남에게 ˝부자 되세요.˝하고 말하는 것처럼, 건강한 삶만이 좋은 것인 양 ˝건강하세요.˝라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건강은 (생활 습관이라는 변수도 중요하겠지만) 타고난다고 봐요. 유전자의 힘이 세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폐가 약하고 누군가는 간이 약하고 누군가는 우울증에 잘 걸리고... 이런 경향이 있다는 거죠. 그러니 병에 걸렸다고 해서 사람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cyrus 2019-07-12 15:28   좋아요 0 | URL
유전이 건강에 영향을 준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를 근거로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과 함께 사는 가족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몸이 약한 상태로 태어나면, 사람들은 아기가 건강하지 못한 원인을 부모의 건강 상태에서 찾습니다. 이러면 부모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아픈 사람들은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자식에게 유전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7-1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한 삶의 기준을 수치화하고 이를 수치화하여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여기에 무조건 맞추기를 강요하는 것이 과연 건강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cyrus 2019-07-15 16:44   좋아요 1 | URL
건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는 수치가 몸무게입니다. 몸무게 수를 줄여서 날씬해진 몸은 건강미 넘치는 몸으로 주목받죠. 겉모습만으로 건강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워요.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속병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서 단명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2019-08-15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7 08:28   좋아요 0 | URL
네. 출산은 여성이 거쳐야 할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죠. ^^
 

 

 

1977년 학술대회에 참석한 미국의 시인 오드르 로드(Audre Lorde)는 청중들 앞에 자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듬해 그녀는 한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암세포는 이미 다른 장기에 퍼진 상태였다. 1982년에 로드는 간암 진단을 받았지만, 199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글쓰기와 사회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 오드르 로드 《The Cancer Journals》 (Aunt Lute Books, 2016)

 

 

 

1980년에 발표된 《The Cancer Journals》(암 일지)는 로드가 유방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쓴 책이다. <암 일지>는 유방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게 만든 책으로 알려졌지만, 질병을 개인적 문제로 여기는 인식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페미니즘 고전’이다.

 

‘페미니즘 스쿨’ 교육 일정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전에는 로드의 <암 일지>에 대한 강연을 진행할 계획이 있었다. 전혜은 선생님이 ‘암 일지’에 대한 강연을 해야 한다고 레드스타킹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그분은 <암 일지>를 ‘교차성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 아픈 사람의 위치에서 어떤 중요한 통찰과 정치를 발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놀랍도록 멋지게 보여주는 페미니즘 고전’이라고 소개했다.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암 일지> 강연을 교육 일정에 포함하는 것에 찬성했다. 나 말고도 <암 일지>에 호기심을 느낀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많았다. 그러나 공부해야 할 주제가 너무 많은 데다가 <암 일지> 강연을 하기에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서 결정을 유보했다. 하지만 교육 일정이 진행되는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암 일지> 강연을 하는 것으로 변경될 수 있다.

 

 

 

 

 

 

 

 

 

 

 

 

 

 

 

 

 

 

* 말린 쉬위 《일기 여행》 (산지니, 2019)

 

 

 

최근에 일기 쓰기가 여성에게 주는 긍정적 효과를 설파한 《일기 여행》(산지니)을 읽다가 로드의 <암 일지>를 언급한 내용을 보게 됐다. 어찌나 반갑던지. <암 일지>에서 인용한 문장도 있다. 《일기 여행》의 저자는 로드가 유방암 투병 중에 일기를 쓰는 행위를 ‘카타르시스(catharsis)에 가까운 글쓰기’로 본다. 로드가 암을 받아들이면서 투병 경험을 공개하는 글쓰기는 안정과 치유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카타르시스’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카타르시스는 “예술로 감정을 순화하거나 정화하는 것”이었다. 정신분석적으로 카타르시스는 “과거의 사건들, 특히 억제된 것을 정서적으로 해소하여 장애의 원인과 정직하게 마주함으로써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는 것”을 지칭한다.

 

  가끔 카타르시스적 글쓰기를 통하여 치유된 상처들은 편견과 차별에서 나온 것이다. 일기에서 글쓰기는 역시 카타르시스적인데, 그것은 내가 견디면서, 삶에 존재하는 많은 상처를 치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더 로드(Audre Lorde)는 “흑인 여성 동성애자 투사 시인”으로 자신의 유방암 경험을 일기로 쓰면서, 자신의 말이 “자기 치유의 가능성과 모든 여성을 위한 생활의 풍요로움을 강조하는 것”이기를 원했다. 그 일기는 로드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자신의 질병은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전환하는” 힘으로 만드는 결심을 증언한다. 1979년 11월 19일에 그녀는 적었다. “분노를 쓰고 싶지만 결국 남는 것은 슬픔이다…. 죽음을 삶으로, 죽음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어떤 길을 찾아야 한다.”

 

 로드는 회고한다. 『암 일기(The Cancer Journals)』의 출판 준비는 “그 시점의 나와 그 시간을 지나면서 변화하는 나 자신을 정돈하고, 추후의 검토뿐만 아니라 해소를 위해서, 가공의 나를 내려놓기 위한” 글쓰기 과정이었다. 이것 또한 카타르시스다.

 

 

(《일기 여행》 169, 171~172쪽, cyrus가 임의로 발췌 편집했으며 밑줄 친 문장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암 일지>의 서문 일부도 인용되어 있다. 《일기 여행》의 저자도 <암 일지>를 극찬한다.

 

 

 암에 대한 나의 분노와 고통과 공포가 여전히 다른 침묵 속으로 화석화하거나, 공공연히 인정되고 검진된, 이 경험의 중심부에 놓인 어떤 정신력도 나에게서 강탈하기를 원치 않는다. 삶의 어떤 영역에서건 강요된 침묵은 분리와 탈권력을 위한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고, 모든 연령, 피부색, 성적 정체성에서 다른 여성과 나 자신을 위하여, 내 감정과 생각들을 표명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자연 치유의 가능성과 삶의 풍요를 강조하는 표현이 되기 바란다. (<암 일지>의 서문 중에서)

 

 유방암이 자신의 개인적 삶에 미치는 영향의 양상에 대한 혹독한 서술로, 오더 로드는 우리 자신의 높은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유인한다. 이 일기는 모든 여성들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다.

 

 

(380쪽, 밑줄 친 문장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이 ‘좋은 선물’ 안에 무엇이 있을까? 로드가 세상의 모든 여성을 위해 남긴 ‘선물’을 확인해볼 수 있는 날이 확정되었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9-07-12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기를 쓰고 나면 머릿속이 정돈되고 근심이 줄어드는 효과를 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일기를 쓰는 거라고 말할 수 있어요. 글쓰기의 놀라운 효과를 잘 압니다.

cyrus 2019-07-12 15: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지금 글쓰기의 긍정적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분이 페크님이시죠. ^^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은 선선해서 좋네요. 이틀 전인 월요일은 산들대는 바람에 조금은 서늘했습니다. 그날은 공부하기 딱 좋은 날이었어요.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이 주최한 ‘페미니즘 스쿨’ 첫 번째 강연이 시작된 날이었거든요.

 

 

 

 

 

 

 

 

 

 

 

 

 

 

 

 

 

 

* [페미 스쿨 첫 번째 교재]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사실 지난주 월요일(7월 1일)에 열린 세미나가 ‘페미니즘 스쿨’의 시작을 연 첫 번째 일정이었습니다. 그날 세미나에서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페미니즘 스쿨에 등록한 새로운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페미니즘 스쿨을 등록한 세 명을 포함해서 총 열다섯 명이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3주 동안 읽게 될 오드리 로드(Audre Lorde)《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틀 전 월요일에 진행된 첫 번째 강연의 주제는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입니다. 이 날 강연은 교차성 페미니즘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교차성 이론을 둘러싼 다양한 정의와 방법론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차성’이라는 용어는 1989년에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 킴벌리 크랜쇼(Kimberlé Crenshaw)가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정확히 30년 전에 나온 학술 용어인데, 이 사실만 보고 교차성 페미니즘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학자들은 크랜쇼가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기 전에도 이미 페미니즘 안에서 교차성 담론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2018년 레드스타킹 일곱 번째 선정 도서] 패트리샤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교차성 페미니즘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고, 잊어선 안 될 인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1883)입니다. 그녀는 네덜란드인 지주가 운영하는 미국 농장의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이사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였습니다. 그녀는 노예 출신 흑인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1826년에 딸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노예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부에서 북부로 이주하는 노예들이 많았어요.

 

노예제가 적용되지 않은 뉴욕에 정착한 바움프리는 1843년에 ‘소저너 트루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트루스는 1851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열린 여성 권리 대회에 참가했는데요, 그녀는 이 대회에서 노예 해방 운동 역사와 페미니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을 합니다.

 

 

 저기 있는 저 남자 분은 여성은 마차에 탈 때 도움을 받아야 하며 구덩이에서 나올 때도 남자가 들어 올려 주어야 하고 모든 곳에서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창을 지나야 할 때 도와주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가장 좋은 곳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Ain’t I a Woman?) 나를 보십시오! 이 팔을 보십시오! 나는 어느 남자보다도 더 많이 쟁기를 끌었고 씨를 뿌렸으며 곡물을 거두어 곳간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고, 충분한 음식이 있다면 남자만큼이나 많이 먹고, 채찍질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픔에 겨워 울 때 주님 말고는 아무도 제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박미선 옮김, 《흑인 페미니즘 사상》, 44쪽, 밑줄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여러 겹 지닌 트루스는 ‘흑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백인들을 향해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흑인 여성 인권 운동은 19세기 초 백인 여성 인권 운동과 동시에 진행되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투쟁 노선 방식이 서로 달랐습니다. 흑인 여성들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의 이중 억압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흑인의 젠더는 주목받지 못한 명제였고, 먼 훗날 흑인 인권이 부각되었을 때도 ‘인종’이란 대명제에 밀려 더 음습한 곳으로 밀려났습니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여성을 둘러싼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억압 문제와 따로 분리해서 보지 않습니다. 서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죠. 교차성 페미니즘 담론이 형성되면서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에 가려져 아주 오랫동안 밀려나있던 흑인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차성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페미니즘 스쿨’ 전담 교사인 전혜은 선생님은 교차성을 ‘차이를 사유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자, 이제 교차성이 학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해볼까요?

 

크랜쇼는 인종과 젠더가 교차하는 다양한 방식을 나타내기 위해 ‘교차성’을 제시했습니다. 그녀는 이 개념을 가지고 ‘단일 축 사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단일 축 사유란 어떠한 대상이나 존재 또는 문제를 단일하게 바라보거나 규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과거에 백인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여성이 겪는 억압은 비슷해. 따라서 가부장제를 공격하려면 여성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자매애(sisterhood)가 있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자매애는 강하다”라는 구호가 나오게 됐죠. 그런데 여성이 겪는 억압을 단일하게 볼 수 있을까요? 또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을 ‘자매’라는 이름으로 단일한 집단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이 크랜쇼가 교차성 개념을 제시한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크랜쇼는 ‘자매애’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백인 여성들이 겪어보지 못한 흑인 여성의 인종차별 문제를 포괄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크랜쇼가 말한 교차성은 유색인 여성들이 겪는 젠더와 인종 문제를 설명할 수 있도록 틀을 짜는 개념입니다. 결국 교차성은 ‘차이에 대한 민감성(전혜은)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교차성의 의미를 이해했으면 ‘침묵 당해온 소수자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전혜은) 방식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도 교차성을 주제로 여러 가지 논의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교차성을 비판하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점이 많은 이론이라고 해서 그 이론에 단점이나 한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일부 학자는 교차성을 ‘연구 방법론’으로 보기에 빈약하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교차성 이론은 다양한 분과학문의 틀에 맞춰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에 대해 학자들은 교차성 이론에 과연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정의와 방법론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오히려 교차성이 지나치게 분과 학문에 의존하고, 거기에 틀에 맞춰 설명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이슈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여기에 대해 크랜쇼는 반박합니다. “‘교차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뭐가 중요한데?”라고 말이죠. 크랜쇼는 애초에 교차성을 ‘거대 이론’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교차성 이론을 논할 때 ‘교차성이 무엇인지’ 정의를 따지기보다는 ‘교차성이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합니다. 즉 우리가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는 거죠.

 

지금도 학자와 페미니스트(이제 막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들)들은 궁금해 합니다. “교차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아마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교차성의 정의는 제각각 다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념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교차성 이론은 너무 난해해서 공부할 필요가 없고, 페미니즘을 연구하는데 쓸모없는 이론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실번 톰킨스(Silvan Tomkins, 1911~1991)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이 만든 모든 이론을 ‘강한 이론(strong theory)’과 ‘약한 이론(weak theory)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강한 이론’은 문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이론이라면, ‘약한 이론’은 변동하는 문제 상황의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론을 의미합니다. 교차성은 ‘약한 이론’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교차성 이론은 문제를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는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면서 사유하는 해석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차성 페미니즘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여성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정답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혜은 선생님은 페미니즘이라는 학문도 ‘약한 이론’에 속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페미니즘이 ‘약한 이론’이라고 해서 그것을 학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페미니즘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 정경직, 최성용, 이아름, 정연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들녘, 2019)

 

 

 

《페미니즘 쉼표, 이분법 앞에서》 (들녘)라는 책에 수록된 『속도와 페미니즘을 사유하다』에 나온 문장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의 비일관성 · 미완결성 · 다양성을 이유로 페미니즘을 비과학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사상으로 평가절하하거나, 심지어는 철학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주장이다. 과연 철학이나 과학은 체계적이고 일관되며, 완결된 학문일까? 답은 명백하다. 소위 ‘과학적인’ 학문의 대표로 여겨지는 물리학이나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새 논문을 발표하고, 이질적인 가설을 제시하며, 기존의 이론을 반박하는 등 치열한 논쟁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즉, 완결되지 않고 왕성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분야는 오히려 가장 생명력 있는 학문인 것이다. 논쟁이 끝나고, 더 이상 연구할 내용이 없는 학문, 문제 제기할 것이 없는 운동, 새로운 해석 없이는 원전만을 읊어대는 교조주의는 체계적이고 일관되며 완결된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장경직, 16~17쪽, 밑줄은 cyrus가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급진 페미니즘이든 교차성 이론이든 간에 페미니즘의 모든 이론은 ‘약한 이론’입니다.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사람들 눈에는 페미니즘이 무언가 부족해 보이고, 학문 같지 않다고 느껴지겠죠.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체계적인 학문을 그렇게도 좋아한다면 왜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되는 다른 학문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 하십니까? 유독 페미니즘에만 열을 내면서 학문이 아니라고 폄하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당신들 논리라면 일관적이지 않는 진화론(자연선택을 믿는 다윈주의자와 성 선택을 믿는 다윈주의자들 간의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도 학생들이 배우면 안 되겠네요.

 

어떤 사람은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혐오하는 워마드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는 ‘페미니스트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은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만을 챙기려는 페미니스트들은 지능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페미니스트들은 어디선가 공부를 하고 있고,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토론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페미니즘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은 ‘완결되지 않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완결되지 않는 학문’은 공부하기가 쉽지 않아요. 공부해야 할 페미니즘 이론이 많고요, 서로 대립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과 트랜스 여성을 옹호하는 퀴어 페미니스트)을 만나면 혼란스러워요. 그러나 저는 페미니즘을 계속 공부할 것입니다. 계속 공부하다 보면 나를 깜짝 놀라게 해줄(아니면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새로운 페미니즘 이론이나 담론이 나오겠죠. 그럴 때 저는 페미니즘 이론의 유용성을 배우면서, 이론의 한계나 단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논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상황이죠. 논쟁이 없고, 문제 제기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페미니즘 공부는 재미가 없어요. 그런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페미니즘은 서서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마저 사라지게 되는 거죠.

 

‘약한 이론’의 페미니즘은 가장 생명력 있는 학문입니다. 이 학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반응은 ‘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닳게 만듭니다. 레드스타킹의 페미니즘 스쿨은 페미니즘을 살아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영양분’과 같은 이론들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영양분(페미니즘 장애학,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 등)’이 엄청 어려워 보이지만, 내 삶과 페미니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 레드스타킹이 네이버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즘 스쿨에 등록된 분이 아니어도 카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cafe.naver.com/redstocking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11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1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3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1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