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 하루에 잡은 벌레는 총 다섯 마리. 집게벌레 두 마리, 그리마 한 마리, 그리고 모기 두 마리. 바퀴벌레 한 마리만 잡았으면 ‘벌레 퇴치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집에 있으면서 이렇게나 벌레를 많이 잡은 경우는 처음이다. 내가 잡은 벌레들은 흔히 ‘해충’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중에 해충이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녀석이 있다. 그가 바로 그리마다. 이 녀석의 별명은 ‘돈벌레’다. 돈 많은 부잣집에서만 산다고 해서 돈벌레라고 불렸다. 옛날에는 이 벌레가 집안에서 발견하면 부자가 될 길조로 여겼다. 그런데 그리마가 기어가는 모습이 마치 지네와 같아서 혐오스럽게 생겼다. 돈벌레라고 반기기는커녕 일단 잡아야 하는 곤충으로 낙인 찍혔다. 이 녀석, 기어가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잡으려고 하면 눈 깜작할 사이에 사라져 어둡고 비좁은 곳으로 숨는다. 이런 녀석이 재수 없게 나한테 걸리고 말았다…‥ 당분간 돈복이 들어오기가 힘들겠군.

 

그리마가 해충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녀석의 식성 때문이다. 그리마는 바퀴벌레의 알을 먹는다. 바퀴벌레의 번식력은 엄청나다.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컷 바퀴벌레의 무성생식으로 번식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즉, 바퀴벌레는 수컷 없이도 번식이 가능한 셈이다. 그리마가 바퀴벌레의 알을 잡아먹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집에 그리마의 출몰이 잦다면, 녀석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 조슈아 아바바넬, 제프 스위머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함께읽는책 · 2011)

    

 

     

집게벌레의 별명은 ‘꼬집는 벌레’다. 집게벌레에 물려본 적이 없는데, 한 번 물리면 아프다고 한다. 옛날 유럽인들은 집게벌레가 잠들 때 귀로 들어가 고막을 찢고, 뇌에 침투하여 알을 낳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가끔 사람을 무는 것만 빼면 이 녀석도 양호한 편이다. 집게벌레의 먹이는 살아 있거나 죽은 벌레, 초목(草木)이다. 결벽에 가까운 집게벌레의 청결함은 ‘곤충계의 서장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집게벌레는 온종일 혀(!)로 자기 온몸 구석구석 핥는단다. 어떻게 보면 고양이의 그루밍과 같다. 그러므로 집게벌레를 ‘반려 곤충’으로 추천한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잡지 않는 유일한 벌레가 있다. 바로 거미다. 이 녀석은 나의 동반자다. 내가 바닥에 엎드려 배를 깔고, 책을 읽으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미를 만난다. 거미의 크기는 아주 작다. 손으로 살짝 건드려도 죽는다. 거미가 사람을 물지 않아서 좋은데, 단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구석진 곳에 치는 거미줄이다. 창틀이나 책장에 가느다란 거미줄이 붙어 있다. 거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모조리 제거한다. 퇴근하고 나면 방 청소를 한다. 먼지떨이로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 다음에 밀대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청소하다 거미줄이 보이면 걸레로 닦아낸다. 거미줄 없어도 거미들이 알아서 잘 살 거로 믿는다.

 

거미 공포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포증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거미의 해로운 면이 강조되는 미신 또는 도시전설이 나오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인간이 자면서 1년 동안 8마리의 거미를 삼킨다는 도시 전설이 있다. 이 내용은 나무위키 항목으로 나와 있다. 말 그대로 ‘도시 전설’이니 이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거미 연구가들은 거미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일이 절대로 없다고 말한다.

 

 

 

 

 

 

 

 

 

 

 

 

 

 

 

 

 

* 백석, 김재용 역 《백석 전집》 (실천문학사 · 2012)

 

 

 

작은 거미를 만나면 죽이지 않고, 창밖으로 보낸다. 거미가 연약해서 살살 건드려서 손가락이나 종이 위로 올린다. 거미를 올려놓은 손가락이나 종이를 창틀 벽에 갖다 댄다. 그러면 거미가 알아서 창틀 벽으로 향해 기어간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느냐고. 작은 거미를 보면 볼수록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거대한 바닥 한가운데서 기어가는 거미를 보면 마치 정처 없이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 또는 길을 잃어 혼자서 아무 데나 걷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작고 연약한 거미에게 각별한 관심을 주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백석의 시에 있다. 이 시를 읽고 난 후로 작은 거미만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실천문학사, 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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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8-09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의 거미에 대한 태도·처리 방법은 저와 아주 비슷하군요. 시인 백석의 거미에 대한 연민도 비슷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cyrus 님이나 백석의 거미에 대한 연민을 거의 동일하게 느끼리라고 봅니다. 집안/집밖 곤충 가운데 거미처럼 인간과 친근한(?) 곤충도 없을 테니까요(정확히는 곤충이 아니라 절지동물이라고 하지만요). 거미처럼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적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곤충이 있을까요? SF 영화 스파이더맨, 강철보다 강한 거미줄, 생체모방공학, 거미줄의 기하학, 방적돌기의 정교한 미세구조 등등은 거미가 인간한테 베풀어준 상상력의 결과이자 첨단 과학기술의 원천이라 할 수 있죠. 정말 흥미진진하고 친근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8-10 12:18   좋아요 0 | URL
과거에는 거미와 요부를 결합시킨 ‘위험한 괴물’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거미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공포의 존재였던 거미가 사랑하는 여인과 도시 전체를 구하는 스파이더맨의 탄생에 영향을 준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2017-08-10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0 12:22   좋아요 1 | URL
자세한 설명 없이 들으면 ‘권연이’가 사람 이름인 줄로만 압니다. ㅎㅎㅎ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 시공아트 10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 시공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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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통해 태어나고 성을 통해 자신을 복제해 가는 우리의 삶과 예술 곳곳에 성 의식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는 서구 미술가들이 섹슈얼리티의 주술을 피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 주술로부터 창작의 모티브를 챙겼음을 보여준다. 성과 에로티시즘이 미술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미술작품을 분석 · 설명하는 방식을 택한다. 첫 번째 방식은 시대적 상황 및 미적 신념 등이 반영된 역사적 방법이다. 두 번째 방식은 범주화 작업이다. 공통적인 속성을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는 범주를 만들어 서양미술과 섹슈얼리티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한다. 저자는 쾌락을 주는 성’, ‘신성화된 성’, ‘여성 · 동성애 · 거세에 대한 공포감등으로 나눠 서양미술이 드러난 성을 해부하고 있다.

 

인간이 언제부터 몸을 예술로 재현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존하는 최초의 인간 조각상은 2만 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커다란 젖가슴과 부풀어 오른 배, 풍만하게 강조된 엉덩이와 허벅지 등 과장되게 표현된 이 조각상은 다산과 풍요에 대한 원시인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스미스는 빌렌도르프의 미녀루벤스앵그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뚱뚱한 미녀의 선조라고 평가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성에 대해 매우 엄격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성을 금기시하거나 억압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신화에 나오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제의(祭儀)를 통해 욕구를 분출하고, 관능적인 쾌락을 도기와 화폐 등으로 표현했다. 로마 제국 후기에 기독교가 다신교 신앙을 누르면서 성은 규제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성적 욕망을 원죄로 간주하고 섹스는 자녀 생산 수단으로만 인정했다. 중세의 미술가들은 금욕을 강조하기 위해 성적 방종을 즐기는 바람에 지옥에서 벌을 받는 신체를 묘사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재발견하게 됨에 따라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태도를 강조한 미술작품들이 등장한다. 낭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고, 미술가들은 에로틱한 상상을 자아내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그렇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남성들은 품위 있게 그려진 에로틱한 그림을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남성 고객들을 위해 남성 미술가들은 벌거벗은 여신을 주제로 여성 누드를 그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책의 1부에 해당되며, 1부는 섹슈얼리티의 관점으로 본 서양미술사라고 보면 된다. 2부는 미술가들이 즐겨 그린 상징으로 압축한 섹슈얼리티를 소개한다. 미술가들은 관음자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여 묘사했고,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성적 행위를 그림으로 형상화하여 극대화된 섹슈얼리티를 강조했다. 2부의 내용은 여성에게 향한 차별과 편견을 드러낸 미술작품들과 미술가의 역할을 비판하는 데 적절한 근거가 된다.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술사가 겸 시인이다. 원래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났으나 영국에 귀화했다. 그는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여성 미술가들의 성취를 재조명한 여성과 미술(주디 시카고 공저, 아트북스, 2006)을 펴내기도 했다.

 

 

 

 

 

그런데 서양미술의 섹슈얼리티출판사를 잘못 만났다. 책의 구성도 아쉽다. 2백 점이 넘는 도판 중에 원색 도판이 고작 29에 불과하다.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면서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던 자의 아들이 만든 회사라서 그런가. 아니면, 부자가 숫자 29를 좋아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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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9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9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9 16:11   좋아요 1 | URL
기독교가 섹스와 식탐에 빠지는 것을 금지시키니까 못 참는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비밀장소에 모여 술과 고기를 즐기는 수도사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박균호 2017-08-09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올 칼라로 나와야 제 맛인데 말이죠.

cyrus 2017-08-09 16:1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예술 도서의 꽃은 도판입니다. ^^

AgalmA 2017-08-11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 ‘29의 저주‘ 도시전설 생기겠음요ㅎㅎ

cyrus 2017-08-11 17:26   좋아요 0 | URL
12.12 사태 때 노태우가 소장이었을 때 9사단장이었습니다. 그리고 9사단 29연대 병력을 동원했죠. 저는 9사단 30연대에 배치 받아 군 생활을 했습니다... ^^;;
 
오, 클래식
홍승찬 지음 / 별글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음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을까? 있다. 음악은 ‘귀로 듣는 도장(圖章)’이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의 도장’을 꾹 찍을 힘이 있다. 적절한 순간에 사용된 음악은 영화나 드라마의 분위기를 살린다. 영화와 드라마를 본 후의 감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석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장면과 함께 흐르는 음악은 그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음악을 제대로 들으라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음악을 즐길 줄 안다. 음악을 들으면 촉각처럼 바로 전율이 온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짜릿짜릿해지는 기분.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다.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 반응은 웃음이나 울음과 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음악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냥 즐기고 마는 것과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영화를 예로 들면 한 번 볼 때는 즐겁지만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영화가 있고,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은 걸작도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귀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음악이 있고, 거기서 감동하여 반복적으로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 그 순수한 울림이 있는 음악이 바로 클래식이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펴낸 《오, 클래식》은 음악의 힘을 가진 클래식을 예찬한 책이다. 이 책에 클래식을 통해 사람과 환경이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글 속에 일반인들(클래식 입문자도 포함한다. 수년째 클래식 입문 단계에 머무는 나도 여기에 속한다)은 잘 모르는 음악 용어와 곡목이 언급된다. 어떤 클래식 입문서는 많이 알려져 진부한 레퍼토리에 되지도 않는 해설로 독자들을 가르치려 한다. 이런 책을 보고 나면 상당수 독자는 오히려 무시당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홍 교수의 글은 그렇지 않다. 당연히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을 음악 용어가 나오지만,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삭막한 교도소에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 ‘편지의 이중창’이 울려 퍼지는 장면은 압권이다. 삭막한 교도소의 운동장에 있던 모든 죄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몸은 갇혀 있어도 음악을 듣고 있던 죄수들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홍 교수는 이 영화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언급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의 힘’의 위력을 알려준다.

 

홍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는 예술론이 아니다. 삶의 정수가 들어있는 인생론이다. 홍 교수는 클래식 음악의 묘미를 ‘오래 묵은 장맛’으로 비유한다. 잘 익은 장맛은 구수한 감칠맛이 난다. 장맛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이 삭아 깊어지듯 이 클래식의 맛을 오래 즐긴 사람의 마음도 숙성된다. 클래식의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텁텁하거나 톡 쏘는 맛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즉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재즈, 팝 음악 등 새로운 언어를 클래식 음악에 접목한 크로스오버 음악은 클래식 음악계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경박한 혼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흐나 베토벤이 음악을 만들던 시절이 아니다. 음악을 엄숙하게 듣는 시대는 한참 지나갔다. 인간의 온갖 경험과 감정 상태가 축적된 클래식을 많이 들으면 가슴을 울리는 절정의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그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다. 약간의 호기심과 노력으로 몇십 배의 감동과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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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8-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일단 생각만 해도 숙면이 올 것 같은 분야지만-참 언젠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르에요.^^

cyrus 2017-08-09 12:23   좋아요 1 | URL
五車書님의 서재에 가면 클래식 음악 앨범, 관련 지식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도 있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

책한엄마 2017-08-09 12:28   좋아요 0 | URL
오거서님 덕분에 음악에 귀를 기울여요.전에 클래식 역사책 쓰신 세 권 책을 구입하고 고이 모셔놓고 있어요.그 책 제목도 ˝the classic˝이었던 것 같아요.

2017-08-08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9 12:27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살면서 클래식 연주회를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제가 집돌이라서 집에서 음악을 들어야 마음이 편해요. ^^;;
 

 

 

 

 

 

“차렷!”

 

시끌벅적했던 잡담 소리는 반장의 ‘차렷’ 소리 앞에 멈춘다. “선생님께 경례!”라는 반장의 구령에 학생들은 “안녕하세요”라며 입을 모아 외친다. 학창시절 교실을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던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군대식 문화를 청산하는 취지에서 ‘구호 없는 학교 만들기’ 운동을 시범으로 시행한 적이 있었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구령 문화 대신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자연스러운 인사가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교실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군사문화를 완전히 몰아내는 과정에 여러 가지 진통이 일어났다. 교사들은 ‘차렷, 경례’ 구호가 없으니까 학생들을 집중시킬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요즘도 학교에서 ‘차렷, 경례’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일상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교실 앞 벽에 걸린 액자 속 태극기,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는 조회, 두발검사. ‘전통’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하는 군대식 문화의 잔재들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어도 싹 갈아엎어 없애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기득권이 침묵하거나 외면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의식을 학생들에게 이식하기에 딱 좋은 최적의 공간이다. 우리의 생활이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도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구시대적 관습과 봉건적 규범들이 그대로 온존되고 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1》(한겨레출판사 · 2001), 《당신들의 대한민국 2》(한겨레출판사 · 2006),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한겨레출판사 · 2007)는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전근대적인 의식과 규범이 어떤 게 있는지 적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저자의 시선은 여전히 불합리한 측면으로 작용하는 우리 사회의 악의 지점을 포착한다. 이 악의 지점이란 ‘군대식 문화’와 ‘권위적인 폭력의 논리’다. 권위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폭력’과 ‘통제’다. 군대 문화, 위계질서를 이용한 ‘갑질 문화’ 등은 집단의 권위로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점에서 한결같이 억압적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군대에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폭력은 ‘필요악’처럼 생겼다. 박노자는 군대에서 몸에 밴 폭행 습관이 제대 후 가정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경력’을 의미하는 소위 ‘짬밥(‘잔반’을 변형시킨 군대식 속어) 문화’는 군대처럼 서열이 형성된 기업으로 전이되었다. 오래 일하면 일할수록 높은 급여를 받는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호봉제)는 근무성적 평가에 악영향을 준다. 연공서열은 기본적으로 점진적인 축적을 중시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인은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살아가는 농경문화 속에 살았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19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갑자기 ‘인간 개조’를 하기 시작한다. 한국인은 집단 훈육 및 통제를 강조하는 학교와 군대에서 뜯어 고쳐지면서 자란다. 사람이 인격체가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국가에 바치던 ‘공적 충성의 의무’는 오늘날에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바치는 ‘사적 충성’으로 변질되었다(《호모 코레아니쿠스》 40쪽). ‘사적 충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직장 내 단체 카톡방’이다. 단체 카톡방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근로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단체 카톡방은 퇴근 후나 주말에도 족쇄가 된다. 이건 ‘소통’이 아닌 ‘고통’이다. 상사는 단체 카톡을 통해 부하 직원들과의 ‘소통’을 원하겠지만, 실상은 소통을 가장한 ‘통제’에 가깝다.

 

 

 

 

 

‘공관병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박찬주 대장 부부. 군 검찰 조사를 받은 대장 부인은 ‘아들 같은 마음’으로 장병을 대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궤변을 순간적으로 듣는 순간, ‘국가의 아들’인 장병이 훈련하는 도중 크게 다쳤거나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남의 아들’로 취급했던 국방부와 군대의 쌀쌀맞은 반응이 오버랩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혼을 내면 회초리를 들었지,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장 부부의 몰상식한 행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성격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폭력과 통제를 앞세운 군대식 문화가 몸에 밴 생활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일본의 군사문화는 포로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게 했다. 포로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용소 군속과 일본군들에게 경례를 해야 했다. 심지어 장군에게까지 밥을 나르게 명령하여 모욕을 주었다. 포로들로 하여금 서로 마주보고 뺨을 때리도록 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208~209쪽)

 

 

군대 밖에서 ‘일제 잔재’인 군대 문화는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 잊지 못하는 추억’으로 미화된다. 억압적인 분위기를 참고 견딘 남자들에게 군대 문화는 꿈속에도 나올까봐 두려운 '끔찍한 추억'이다. 우리가 늘 지적하고, 분노하는 갑질 문화의 뿌리 중 하나가 군대 문화다. 그 뿌리로 ‘권력’이라는 영양분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발본색원(拔本塞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잔뿌리들이 무성하게 돋아나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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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8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8 17:24   좋아요 1 | URL
세대에 걸쳐서 문화가 존속되는 과정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개인은 문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문화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죠. 어떤 특별한 계기로 문화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알고 있어도 이를 완강히 거부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이렇다 보니 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8-0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해서 다행이지..
지금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를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국어. 윤리. 국사. 사회.. 모든 시간에 끊임없이 ‘저는 이 점에는 동의하지 않고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묻고 또 물었을거예요

cyrus 2017-08-08 17:29   좋아요 0 | URL
교련 수업이 있었던 시절에 제가 학교를 다녔다면, 엄청 고생했을 겁니다. 몸이 안 따라줘서 훈련받다가 여러 번 얼차려를 받았을 거예요. ^^;;

dys1211 2017-08-0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련하지만 다시 경험하긴 부담스런 추억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8-09 12:30   좋아요 0 | URL
가끔 군대 꿈을 꾸게 됩니다.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아침에 깨어나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제게 군대 꿈은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꿈입니다. ㅎㅎㅎ
 
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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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향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골목길 구석구석, 친구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너무도 빠른 변화의 세월에 기억력은 조금씩 마모된다. 엔간한 토박이가 아니고는 그 고향 어딘가에 남겨둔 ‘추억’이라는 보물을 현실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경험으로 고통받았던, 혹은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쪽같이 잊어버릴 수 없을까.” 상처로 남을 기억을 잊고 살기보다, 상처받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김탁환 작가의 어머니는 약한 분이다. 그녀는 가난과 정신적인 핍박을 온몸으로 부둥켜안으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의연하게 버티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이 정도면 ‘억척스럽고 강한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작가는 어머니를 약한 존재라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약하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향한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낸 감정 표현이 아니다. 작가의 어머니에게 ‘추억’은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 저리게 하는 따가운 단어였다. 그녀는 추억의 ‘추’자만 들어도 한없이 약해지는 분이었다.

 

 

 마흔네 살에 홀로되신 엄마는 아이들 손이 닿지 않은 책장 제일 구석에 앨범을 올려놓고, 사별한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하였다. 믿기 힘든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들부터 제일 먼저 없앴지.”

 

(14쪽)

 

 

작가와 어머니는 함께 진해 곳곳을 걷지만, 서로 정반대의 길을 간다. 작가는 ‘엄마와 함께 걷는 골목’에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 본인 마음의 골목’을 걷는다. 그래서 작가는 이 두 가지 골목을 합치려고 어머니와 진해를 걷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아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통했을까. 어머니는 진해 곳곳에 남겨둔 자신만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아들에게 들려준다. ‘추억’이라는 매개로 모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은 어디를 가도 안방에 깔린 이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는 책 제목을 ‘어머니의 골목’이 아닌 ‘엄마의 골목’으로 정했다.

 

 

“‘엄마의 골목’이 좋아요? ‘어머니의 골목’이 좋아요?”

“엄마의 골목!”

“왜죠?”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는 안방에서 앞마당 정도 거리라면, 엄마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그런 기분!”

 

(182쪽)

 

 

이 글에서는 작가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기 위해 ‘어머니’라는 호칭을 쓴다. 그렇지만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더 친근감을 준다. 나는 다 컸는데도 여전히 나를 낳으신 분을 ‘엄마’라고 부른다. 가끔은 경상도 출신답게 경상도 사투리로 ‘어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단어에 우러나오는 투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 ‘엄마’가 낫다. 죽을 때까지도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예전에는 다 커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어른은 마마보이(mamma’s boy)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엄마의 골목》을 읽으면서 ‘엄마’가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사실 말을 트기 시작하는 아기가 꺼낸 첫 번째 단어는 ‘엄마’다. ‘엄마’는 아이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다. 그렇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품속에서 먹고 자란다. 엄마들은 우리가 아기였을 때 기억하지 못한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자신의 품속에 간직한다. ‘추억’의 중요성을 깨달은 자식은 엄마의 품속에 쌓인 그것들을 귀담아 듣는다.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만 살았어요?”

“하고픈 이야길 다 하고 살아, 그럼?”

“그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네가 와서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네게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것이고.”

 

(156쪽)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효도는 다양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당장에 효도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이 뭐냐면…‥ 《엄마의 골목》 제일 마지막 장을 직접 확인하시라. 눈치 빠른 분이라면 벌써 이 글을 읽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효도는 더 늦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 일단 나부터 정신 단디 차리고, 효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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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7-08-0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글이네요. cyrus님의 글들 중 보기 드물게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 제게 엄마는 제일 존경하는 분이면서 제 글속에서 자주 숨쉬는 분이시죠. 좀 있다 전화부터 드려야겠습니다.ㅎㅎ

cyrus 2017-08-08 12:04   좋아요 0 | URL
가끔 글을 잘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리뷰 대회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쓰면 평소보다 더 잘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제가 ‘리뷰 MSG‘를 칩니다. 책을 보기 좋도록 소개하기 위해 감성적인 수사를 많이 쓰는 것이죠. 이런 글에 익숙해지면 몸에 해로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됩니다. ^^

2017-08-08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8 12:08   좋아요 1 | URL
저희 어머니도 매달 한번씩 양로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뵈러 갑니다. 저도 그곳에 한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저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제가 누군지 기억 못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가슴 아팠습니다.

나비종 2017-08-08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MSG ㅎㅎ 몸에 좋지는 않지만, 가~~끔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글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죠.^^

cyrus 2017-08-08 12:45   좋아요 0 | URL
네.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

stella.K 2017-08-0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연극 같이하던 남자 후배놈이
지 아버지한테 아빠, 아빠하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낼모레면 장가갈 놈이 그러더라구.ㅎㅎ
난 엄마한테는 엄마라고 하지만 아버지한텐 아버지라고 했거든.
딸인데도 아빠가 닭살스럽더라고.
그러니 습관이 무서운 거지.
그 후배 지금은 애가 둘인데 애들 앞에서도 아빠, 아빠할지 가끔은 궁금해.ㅋ

cyrus 2017-08-08 14:20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부모님을 언급하면 호칭을 ‘아버지’, ‘어머니’로 써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아빠’라고 못해요. 저는 ‘아빠’, ‘엄마’ 호칭을 쓰면서 높임말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