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하는 영혼
호즈미준 지음, 함정연 옮김 / 현민시스템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전 세계가 ‘미투(#MeToo) 운동’으로 떠들썩하다. 그런데 일본은 미투 운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잠잠한 편이다. 프리랜서 기자 이토 시오리가 유명 방송 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그녀의 고백은 미풍에 그쳤다. 다행히 이토를 중심으로 시민들, 지식인 등이 모여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위투재팬(#WeTooJapan)’이라는 단체가 설립되었다. ‘위투재팬’의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 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실 이토 시오리가 일본 미투 운동의 시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전에 일본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한 사례가 있었다. 1991년 11월 <침묵을 깨고-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증언>이라는 책을 통해 고백한 ‘익명의 성폭력 생존자들’이다. 어린 시절 친오빠에게 성폭력을 당한 호즈미 준이라는 여성은 ‘익명의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해 자신도 고통의 경험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호즈미 준이 쓴 《소생하는 영혼》은 1994년 일본에 출간되었고, 1996년에 국내 번역본이 나왔다. 호즈미 준은 끔찍한 날 이후로 절망적인 시련이 몸과 마음을 관통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고, 본인 스스로 구멍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친족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밝혀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의 그림자를 스스로 걷어내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사회도 가부장제 사회이고, 여성 차별 및 성폭력 문제에 침묵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90년대 일본에서는 ‘친족 성폭력’을 뜻하는 정식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살던 호즈미 준은 자신의 책에 ‘친족 성폭력’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용어를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근친 강간’을 뜻하는 영어 ‘Incest(인세스트)’를 썼다. 1994년에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도 성폭력이란 용어가 생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친족 성폭력 범죄는 매년 꾸준하게 증가세를 보인다. 아동 성폭력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에 의해 이뤄졌고, 특히 이 가운데 가해자는 ‘친족’이다. 친족 성폭력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친족 성폭력이 일부 가정의 정신 병리적 문제가 낳은 범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족 성폭력은 가해자가 친족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또 피해 아동은 친족인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거주하며 학대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아 장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친족 성폭력은 쉽게 지울 수 없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20대나 30대가 되어서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적 혼란과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호즈미 준은 두 번이나 이혼했고, 임신과 출산에 거부감을 느끼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렇듯 친족 성폭력은 다른 폭력에 비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긍정적인 성 정체성 형성, 성인이 되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 등에 크나큰 손상을 입게 된다.

 

친족 성폭력 피해 아동들 상당수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신고나 상담조차 꺼려한다. 성폭력 사건이 가족의 명예를 떨어뜨린다는 편견 때문에 피해 아동들은 성폭력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못하고, 상담조차도 받지 못한다. 호즈미 준의 어머니는 딸의 고통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들의 죄를 끝까지 방관했다. 어머니는 딸이 아닌 아들의 편에 섰다. 어머니가 딸에 2차 가해를 한 셈이다. 호즈미 준은 이 책에서 어머니에 향한 분노와 원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어머니가 미웠다.

  그토록 궁지에 몰아넣고서도 미안하다는 말도 고사하고,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야단친 여자. 어머니라는 것만으로 나를 누구보다도 상처 낸 사람.

  어머니,

  당신은 한 손에 사랑을 들고, 다른 손엔 예리한 칼을 쥐고 있다. 자식으로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싶지만, 그러나 당신 곁에 있으면 나는 늘 상처를 입는다. 내 어머니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상처를 주고서도 걸핏하면 부모라고 나를 위협하는 당신이 밉다. 그리곤 부모를 미워하는 스스로를 미워한다. 이 지경이 되도록, 그 자가 부모를 미워하게 만들고, 그래서 죄를 짓도록 만든 당신이 밉다.

  [중략] 어머니는 어째서 내 기대와 희망을 때려 부수는 것일까? (89쪽)

 

 

호즈미 준은 깊게 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에서 출간된 <회복에의 용기>라는 책을 읽는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살면서 견뎌야 했던 고통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회복에의 용기>는 현재까지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최고의 지침서’로 평가받는 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특별한 용기》(동녘, 2012)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성폭력은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이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의사에 반한 성적 언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라면 이런 문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을 ‘피해자가 수치심을 갖고, 가해자가 되레 억울하게 보이는 범죄’로 여긴다. 피해자가 말하면 말할수록 도리어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의혹의 시선이 증폭된다. 성폭력 경험을 말하고 크게 외치는 순간이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가해자와 그의 편에 서는 부당한 사회에 향해 욕도 하고, 화를 내고, 소리 지를 수 있다.

 

 

  사람에게 ‘조언’은 필요 없다. 사람은 본래 자기 안에 회복에 필요한 모든 것, 답도, 힘도, 지니고 있다.

  정말 고통스러웠을 때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울게 놔두었던 사람이 있었다. 설교, 조언, 위로, 일체 없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울게 놔두었던, 넉넉한 가슴의 소유자가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닦아준 사람이.

  사람에게 재출발할 용기를 주는 것은 이런 부드러움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부드러움이 생각날 때마다 용기와 격려를 다시 얻게 된다. (252쪽)

 

 

호즈미 준은 성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조언’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성폭력 생존자는 적극적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자가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면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오랫동안 가슴 한편에 묵혀왔던 고통스러운 말들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renown 2018-03-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합니다 멋지네요!
서양도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가부장제가 고통의 뿌리인거 같아요.
지금의 이자본주의도 마찬가지고요.

cyrus 2018-03-26 11:39   좋아요 0 | URL
sprenown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요즘 제가 읽고 있는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추천합니다. ^^

sprenown 2018-03-2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잖아도 읽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뮤리얼 스파크(Muriel Spark)의 대표작이 나오게 돼서 무척 반갑다. 1961년에 발표된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는 이미 오래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번역본 제목은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마루, 1993)이다. 이 제목을 보면 왜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 생각나는 걸까? 아무튼, 1993년에 나온 번역본은 절판됐다가 이번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진 브로디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녀는 마샤 블레인 여학교 교사로 일한다. 브로디는 교정에 있는 느릅나무 밑에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한다.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을 받는 다섯 명의 학생들(샌디 스트레인저, 로즈 스탠리, 유니스 가드너, 제니 그레이, 메리 맥그레거)은 학교 내에서 ‘브로디 무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디는 학생들에게 진취적으로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그럴 때마다 브로디는 제자들을 ‘크림 중의 크림(crème de la crème: ‘최고’를 뜻하는 프랑스어)’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감이 가득한 브로디는 아직 자신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학교 측은 보통 교사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브로디를 사직시키려는 방안을 생각해보지만, 브로디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브로디가 생각하는 ‘전성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교정 느릅나무 밑에서 브로디 무리를 가르치는 일을 의미한다. 브로디는 자신의 뚜렷한 교육관에 신념을 가지고 브로디 무리를 가르친다. 그녀는 주입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학교의 교육 방식을 비판하고 거부하는데, 자신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머리에 많은 정보를 쑤셔넣는 것이 교장의 방식이야. 내 방법은 지식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내 방식이 어원적 의미에서 더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있지. 교장은 내가 소녀들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그건 실은 교장의 방식이야. 내 방식은 그 반대라고. 내가 너희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었다는 소리를 하도록 그냥 두어선 절대 안 돼. 샌디, 교육의 의미가 뭐라고?”

  “밖으로 이끄는 거요.”

 

(49쪽)

 

 

브로디 무리는 다른 교사들의 수업에서 느낄 수 없는 브로디식 교육법에 매료된다. 브로디를 따르는 다섯 명의 학생들은 학교가 자신들을 ‘브로디 무리’라고 부르는 것에 희열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들이 ‘브로디 무리’에 속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심리학자 매슬로(Maslow)는 인간은 욕구 충족을 위해 행동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기 안에 내재한 안전과 소속감, 자아존중,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 소설에 적용해볼 수 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 비추어서 소설에서 드러난 브로디 무리의 정서적 반응 및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브로디 무리는 3단계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3단계는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외로움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4단계는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이다. 자신감을 느끼고, 자신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끼려는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이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인간은 열등감을 느낀다. 브로디는 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자신만의 교육 방식으로 브로디 무리를 가르치는 위치에 오른 ‘전성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브로디 무리는 ‘크림 중의 크림’으로 성장해서 전성기를 누리고 싶어 한다. 브로디 무리는 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브로디의 가르침을 따른다.

 

인간이 행동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브로디는 자기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는 음악 교사 고든 로더, 미술 교사 테디 로이드와 연애를 한다. 브로디도 ‘인간’이고, 연인을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랑 욕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연애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좌절한 브로디는 자신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한탄한다. 사랑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탓인지 브로디는 실연의 상처를 애써 숨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연애 경험이 사직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가 없는 플라토닉 러브라고 강조한다. 브로디는 자신의 진취적인 이미지가 훼손될까 봐 연애 사실을 브로디 무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유일한 제자인 샌디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브로디는 외강내유형 인물이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나, 속은 연약하고 불완전하다. 어쩌면 브로디는 연약한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자신을 따르는 브로디 무리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브로디는 자신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는 ‘연약한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강인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학생들 앞에서 파시스트를 옹호하는 발언과 행동을 한다.

 

  “파시스트예요.” 브로디 선생은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물었다. “누구라고, 로즈?”

  “파시스트입니다, 선생님.”

  그들은 새까만 제복을 입고 똑같은 각도로 손을 올린 채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나란지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으며, 무솔리니는 체육 선생, 혹은 걸가이드 단장처럼 단상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샌디는 문득 자신들 역시 행군중인 브로디 선생의 파시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봐서는 모르겠지만, 사실 브로디 선생의 필요에 맞춰 무솔리니 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줄지어 걷고 있는 파시스트들. 그거야 그렇다 치고, 걸가이드를 향한 브로디 선생의 경멸에는 질투와 모순과 오류가 있었다. 어쩌면 걸가이드가 너무 강력한 파시스트 라이벌이라서, 그리고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리에서 제외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다시 한번 샌디를 사로잡았고, 샌디는 브로디 선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42~43쪽)

 

 

샌디는 브로디의 불완전하고도 모순된 모습을 간파한다. 그러나 샌디는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를 지키기 위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브로디의 자아도취는 점점 심해지고, 자신이 ‘크림 중의 크림’으로 살고 있으며 ‘강인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 소설은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의 행동과 심리적 반응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독자는 겹겹이 쌓아 올린 서사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뮤리얼 스파크는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표면화한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변화를 통해 진정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불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개인적 고통과 실패가 보편적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생각해보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전성기’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편견일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3-2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어떤 책일까 궁금하긴 했어.

근데 너는 책을 아주 빨리 읽나 봐.
너도 완독 스타일이지?^^

cyrus 2018-03-22 17:44   좋아요 0 | URL
도서관 반납일이 얼마 남지 않은 책,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되도록 빨리 읽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완독이 독서의 최고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읽을거리가 점점 많아지게 되면서 완독에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책이 완독한 책보다 더 많을 거예요. ^^;;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임혜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성경은 위험한 책이 될 수 있다. 기독교는 성경에 근거해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을 박해했고, 죄 없는 여성을 마녀로 규정하여 불태워 죽였다. 흑인들을 노예로 만들고 평화수호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성경을 조금만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구약 창세기를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들고 그 후에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어 하와를 만들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의 진위를 떠나 기독교인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남성과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존재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바울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디모데전서 2:12).”라는 구절이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접한 예수의 말은 아예 무시한다. 그들은 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인용해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도 디모데전서 2장 12절을 근거로 여성은 신학교에서 남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엄격하게 해석해 이를 따르는 데 전념한다. 남성 중심 기독교 엘리트들은 성결(聖潔)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여성 신자들의 삶과 일상을 통제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성경적 가부장제’, ‘성경적 여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성경적 가부장제’와 ‘성경적 여성’은 남성을 위한 여성의 순종과 희생이라는 기독교적 덕목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그러나 교회 내에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은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문화가 남아 있는 바이블 벨트(Bible Belt)에서 성장한 레이첼 헬드 에반스(Rachel Held Evans)1년 동안 ‘성경적 여성’의 삶을 살아보는 프로젝트를 단행한다.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은 저자가 ‘성경적 여성’의 삶이 현대 사회에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된 이야기다. 저자는 매달마다 ‘성경적 여성’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에 따라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저자는 남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순종하고, ‘정숙한 여성’이 되기 위해 소박하게 옷을 입고 외출을 해보고, 집안 살림을 혼자서 한다. 그녀가 한 해 동안 실천해야 할 덕목은 열 개가 넘는다. 남편은 ‘성경적 여성’처럼 사는 아내를 지켜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일기에 기록한다.

 

이 책은 비기독교인도 읽을 수 있는 기독교적인 책이다. 페미니스트도 봐도 된다. 저자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다. 자신의 프로젝트가 공개되자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은 그녀를 ‘성경을 조롱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했다. 무신론자들의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무신론자들은 그녀의 프로젝트가 기독교적 가부장제를 미화한다고 비난했다. 무신론자인 나는 그녀의 도전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아내의 프로젝트를 지지해준 남편(그도 기독교인이다)도 존경스럽다.

 

저자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보수 복음주의자의 발언과 사고를 비판하면서 “성경 어디에도 ‘성경적 여성’을 설명해주는 근거가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이 이미 선지자로 불렸으며 특히 유니아(Junias)바울이 인정한 여성 사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여성 사도를 인정하지 못한 남성 신학자들은 ‘유니아’를 ‘유니아스(Junias)’라는 남성형 이름으로 고쳤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유니아는 ‘Junias’로 표기된다. 남성 신학자들은 『잠언』에 언급된 ‘31명의 여인’‘현숙한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해석했다. 그래서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현대의 여성 신자들에게 ‘31명의 여인’처럼 남편에게 순종하고 집안일에 착실한 여성이 되라고 강조한다. 남성 신학자들은 남성 기독교인의 권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31명의 여인’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저자는 모성과 출산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기독교 덕목이 비혼(非婚)이거나 아이가 없는 여성 신자를 소외시키는 부당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출산이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따르는 것이 두려웠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이다. 그녀의 고백을 확인한 여성 신자들은 그동안 성경의 권위에 눌려 말할 수 없었던 출산의 두려움을 용기 내어 고백한다.

 

이 책의 목적은 ‘성경적 여성’이라는 모델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으며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독자들에게(특히 기독교인) 성경을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를 진정으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의 의미를 재정의한 저자의 말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상관없이 새겨들을 만하다.

 

 

성경은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자기계발 매뉴얼이 아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우리 삶에 일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무 자르듯 명료한 규칙과 규제 목록이 아니다. (398쪽)

 

 

성경의 가르침은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상황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사랑과 거룩’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성경은 없다. 그런 성경이 있다면 정말 위험한 것이다. 이 위험한 성경을 손에 쥔 자는 권력을 앞세워 성경의 보편적인 가치뿐만 여성 신자들의 삶을 깔아뭉개고 있다. 성경과 예수를 비난할 게 아니라 성경과 예수를 왜곡하는 자들을 비난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종교를 위협하는 악의 축이다.

 

 

 

 

 

 

 

 

※ Trivia

 

*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보기’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공개되자 그녀를 조롱하는 어느 네티즌이 이런 댓글을 남겼다. A. J. 제이콥스가 이미 한 프로젝트죠(31쪽).” 미국의 작가인 A. J. 제이콥스가 이미 성경의 모든 계율을 1년 간 빠짐없이 실천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다. 제이콥스는 성경대로 살아온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고, 그 책을 번역한 것이 《미친 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세종서적, 2008)이다.

 

* 저자는 애니타 다이아먼트의 소설 <붉은 천막(The Red Tent)>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서 몇 차례 이 책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녀가 성경의 구절대로 사흘 동안 앞마당에 친 텐트에 지냈을 때 <붉은 천막>을 읽었다. 책 105쪽에 <붉은 천막>의 원제를 ‘Red Tent’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정관사 ‘The’가 빠졌다. 또 이 책은 《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 (홍익출판사, 2001)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절판되었다.

 

* 책 325쪽에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적이 있는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s’가 빠진 로렌스 서머’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겠네요^^ 기회 되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cyrus 2018-03-21 14:52   좋아요 0 | URL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 책을 엄청 싫어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싫어하거든요.. ^^

stella.K 2018-03-2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 이 글 읽으면서 이 비슷한 책 있었는데 뭐지...?
<미친 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이었어.ㅋ
어쨌든 이책 재밌겠다. 읽어보고 싶어지는군.

사실 기독교도 파가 여러 가진데 어디는 여자에게도 목사를
허락하는 파가 있지.
내가 다니는데는 여자에게 목사를 허락하진 않고 있어.
대표 기도도 그동안은 장로만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주일 날 총 4번 드리는 예배에서 마지막 4부 예배는
권사(여자)가 대표 기도를 할 수 있게된 것도
15년 전쯤 담임 목사님이 바뀌고부터다.^^

cyrus 2018-03-21 15:38   좋아요 0 | URL
제이콥스의 책도 ‘품절’일 걸요. 저는 <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을 읽고 싶어요. 저자가 이 책을 언급한 내용으로 봐서는 페미니즘 소설인 건 분명해요. ^^

종교인들이 다른 분파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 포용하는 자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들이 믿는 교리기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교고, 무신론자라서 종교인들에게 순진하게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

stella.K 2018-03-21 15:50   좋아요 0 | URL
아이쿠.. 그 정도는 아냐.
물론 그런 극단적인 곳도 없진 않겠지만
많이 유연해.
네가 교회를 잘 몰라서 그렇지.ㅋ

cyrus 2018-03-21 15:49   좋아요 0 | URL
제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사람 중에 종교인이 단 한 명도 없어요. 그래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잘 몰라요. 제가 책으로 종교를 배우는 거라서 종교를 주제로 글을 쓰거나 대화를 나누는 데 한계가 있고, 단점이 많아요. ^^

마립간 2018-03-21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이 독후감만 봐서는 무슨 책인지 감이 오질 않네요.

많은 (남자) 목사님의 설교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성경적이며, 휼륭하다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 설교가 이 글 앞 부분에 나오는 편견을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

cyrus 2018-03-21 15:47   좋아요 4 | URL
책을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ㅎㅎㅎ

존 파이퍼 같은 미국의 보수적인 목사들은 성경 구절을 근거로 여성은 ‘남성을 위해 복종하고, 희생하고, 집안일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해요. 이 책에 여성을 폄하하는 보수적인 목사들의 발언과 사례들이 나옵니다. 이 목사들의 공통점은 성경 구절을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들을 믿는 신자들은 목사의 성경 해석에 반대하지 못하고 수긍만 할 뿐이죠. 그리고 목사의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굳건하게 믿죠. 마립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을 훌륭하게 평가하는 목사들도 있어요. 이 책에도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을 칭송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종교인들의 말이 나옵니다.

마립간 2018-03-22 07:59   좋아요 0 | URL
자상한 댓글 감사합니다.

언뜻 보기에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같이 갈 수 없다. ; 라는 결론인지 아닌지 혼동스러워서요.

기회가 될 때, 읽어보로독 하죠.^^
 

 

 

어제 레드스타킹 독서 모임 공식 후기를 제가 쓰게 됐습니다. 제가 공식 후기를 쓸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주말에 책 내용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2, 3장에서 다루는 내용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공식 후기를 여유롭게 쓰고 싶어서 습작 형식의 글을 미리 써봤어요. 그래서 공식 후기에 보면 어제 공개한 두 편의 글 일부를 그대로 가져온 문장들이 있어요. 공식 후기가 인스타그램에 공개되기 때문에 분량을 최대한 줄이려는 심정으로 글을 썼어요. 제가 어제 모임에서 언급했던 말, 책의 주제에 벗어난 대화 등은 기록하지 않았어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언어와 말을 표현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해야하고요. 어쨌든, 공식 후기를 쓰는 일은 부담스럽습니다.

 

 

 

 

 

어제 레드스타킹이 직접 만든 책갈피와 새로운 스티커가 공개됐습니다. 책갈피와 스티커 디자인 모두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레드스타킹에 ‘능력자들’이 많은데, 그중에 ‘디자인 금손’도 있습니다. 카페 스몰토크에 방문하면 책갈피와 스티커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 3월 19일 독서모임 후기 (작성자: cyrus)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해물파전과 막걸리, 그리고 매콤한 떡볶이가 생각나는 날이었죠. 하지만 이날에 아홉 명의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카페 스몰토크에 모여 책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같이 참여했던 분이 어제 모임에 처음 오셨어요. 또 평소에 만나기 힘들다는 스몰토크 사장님도 참석했습니다. 멤버 한 분이 도쿄 바나나 빵을 가져오셨어요. 특별한 간식을 영접한 우리 멤버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냠냠했어요.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갈무리, 2014)

 

 

우린 에피타이저인 도쿄 바나나빵을 먹고 나서 바로 메인 디쉬인 마리아 미즈(Maria Mies)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로 눈길을 향했습니다. 우리들은 2장(『성별 노동 분업의 사회적 기원』)과 3장(『식민화와 가정주부화』)을 함께 읽었습니다. 2장에서 미즈는 성별 노동 분업의 기원을 추적한 엥겔스(Engels)의 주장을 비판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별 노동 분업’의 의미부터 살펴봅시다. 성별 노동 분업은 젠더 이분법(‘남성’과 ‘여성’)에 기초한 노동 역할 분담을 의미합니다. 성별 노동 분업에는 ‘가사 노동’은 여성이, ‘바깥 노동’은 남성이 해야 한다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엥겔스의 주장에 따르면 원시시대는 사유재산이 없는 모계(母系)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잉여 재산이 생기고, 상속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원시시대는 가부장제 사회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 변화의 과정 중에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면서 상속자를 보호하고, 재산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일처제, 즉 오늘날의 가족 형태를 지향하게 됩니다. 엥겔스는 가족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이어지는 발전 단계를 사적 유물론 관점으로 분석했습니다. 그의 통찰력은 여성 종속의 원인과 여성 해방을 위한 실천적인 틀을 제시하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즈는 엥겔스가 주장한 성별 노동 분업 기원론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즈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관계 또는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으로 규정하는 입장에 반대합니다. 그녀는 이런 문제들을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미즈는 출산과 양육 활동을 ‘노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여성의 출산과 양육 활동을 묶어 ‘생산 노동’이라고 명명합니다. 엥겔스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성의 생산 노동을 ‘자연적 활동’으로 이해했습니다. 미즈는 생산 노동을 바라보는 엥겔스의 관점이 성별 노동 분업 구조를 유지하게 만든 생물학적 결정론 형성에 기여했다고 비판합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몸과 여성의 출산을 ‘인간’이 아닌 ‘자연’의 범주로 분류했습니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몸을 자연처럼 마음껏 착취하고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남성은 무기를 이용할 줄 알고, 사냥 행위에 능숙한 생산자로 보는 소위 ‘남성-사냥꾼 신화’를 지지합니다.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을 둔 ‘남성-사냥꾼 신화’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데 유리한 존재로 올라설 수 있게 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남성이 ‘사냥꾼’이 되어 부족에게 식량을 보급했고, 여성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일을 전담했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사냥꾼-남성 신화’ 중심으로 고대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남성이 사냥에 나설 수 있도록 일용할 식량을 보급해 준 여성의 역할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죠.

 

 

 

 

 

 

 

 

 

 

 

 

 

 

 

 

 

 

* 우에노 지즈코, 미나시타 기류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동녘, 2017)

 

 

 

멤버들은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남성이 여성의 몸을 ‘소유물’로 여기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는 결혼과 출산은 사회의 기초 구성단위인 가족을 형성하고 종족을 번식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합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여성의 아름다운 몸이 생존과 종족 번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를 전담하는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은 종족 번식의 본능 때문에 인간이 결혼하고, 섹스하고, 자손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성들은 사랑하는 여자 친구 또는 아내가 자식을 낳아주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결혼과 섹스가 단지 종족 번식을 위해서만 해야 하는 행위일까요? 결혼과 섹스를 통해 꼭 무엇을 얻어야만 하나요? 아니, 여성이라면 꼭 결혼과 출산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3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부르주아 백인 여성이 ‘가정주부화’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부르주아 여성을 ‘길들여진 자연’으로 봤고, 이 과정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이 부르주아 여성들만 착취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여성’도 착취 대상이었습니다. 3장의 핵심 내용은 이미 2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자연화’ 과정은 식민지 전체와 노동계급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여성 또한 자연으로, 자본가 계급의 후계자를 낳고 키우는 이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여성을 ‘야만적’ 자연의 일부로 보았던 반면에, 부르주아 여성은 ‘길들여진’ 자연으로 보았다. 부르주아 여성의 섹슈얼리티, 그들의 생산적 자율성만이 아니라 생식력은 부르주아 남성에 의해 억압받고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부르주아 여성은 생계를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부르주아 여성이 길들여지고 남편의 소득에 의존하는 가정주부로 변모하는 것은 자본주의 아래 성별분업의 모델이 되었다. 이는 여성, 모든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2장 167쪽)

 

 

 

 

 

 

 

 

 

 

 

 

 

 

 

 

 

 

 

* 니시무라 유코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보는 마녀의 약초상자》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 [품절] 아케가미 슈운이치 《마녀와 성녀》 (창해, 2005)

 

 

 

유럽의 남성 중심 사회는 출산과 육아라는 ‘자연’ 활동을 거부하는 여성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세 및 르네상스 유럽 전역을 휩쓴 ‘마녀사냥’이었습니다. ‘마녀’를 식별하고, 마녀를 고문하는 마녀 사낭꾼들은 낙태 기술, 피임법을 잘 아는 산파들을 마녀로 규정했습니다. 마녀 사냥꾼들의 등장으로 여성은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여성은 분노와 저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식민지 여성들은 자신들을 ‘문명화’시키려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착취에 저항했습니다(3장 206쪽). 멤버 한 분이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은 식민지 여성들의 저항을 보면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 성희롱 피해자들이 일으키는 일시적인 소란이 아닙니다. 미투 운동은 그동안 은폐돼 있던 남성 중심 사회 구조와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려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행동입니다.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지지하는 여성들의 행동에는 우리 사회를 변화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저항의 힘이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3월 26일)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4, 5장을 함께 읽습니다. 3월 31일 토요일 카페 스몰토크에 진행될 ‘본격 월경 토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3-20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20 21: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출산 계획을 신중하게 잘 세워야 합니다. 계획 없이 무턱대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면 부모는 아이를 양육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요. 주변에서 보던 양육과 직접 경험하는 양육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sprenown 2018-03-2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공부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 존경스럽네요!

cyrus 2018-03-20 21:45   좋아요 0 | URL
점점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새로운 것에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요. 늙을 때까지 이 분위기, 쭈욱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장 제목은 ‘식민화와 가정주부화’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식민화’‘가정주부화’가 3장의 핵심 내용입니다. ‘가정주부화’의 의미는 앞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 ‘혼자’ 읽기』 편에 언급된 적이 있어요. ‘가정주부화’를 설명한 내용을 다시 인용하겠습니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판 서문, 20쪽)

 

 

3장에서는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부르주아지(bourgeoisie) 백인 여성이 ‘가정주부화’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읽지 않은 책]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문예출판사, 2017)

 

 

 

‘가정주부화’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의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사치와 자본주의》(문예출판사, 2017)를 참고합니다. 제가 좀바르트의 책을 읽지 않은 관계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가정주부화’에 대한 미즈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가부장적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르주아 여성을 ‘가정주부’로 길들이려고 했으며 이 과정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이 부르주아 여성들만 착취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여성’‘프롤레타리아 여성’도 착취 대상이었습니다.

 

 

 

 

 

 

 

 

 

 

 

 

 

 

 

 

 

 

* 주경철 《대항해 시대》(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 [품절] 올라우다 에퀴아노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해례원, 2013)

 

 

 

‘자본가’의 위치에 선 유럽 부르주아 남성들은 식민지 정복을 통해서 자본의 축적 이익을 증대시키려고 했습니다. 상공업 또는 무역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새로운 시민계급의 등장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할 것만 같은 시대에 항상 눈부신 빛만 있는 건 아니죠. 자본가 대부분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무시한 채 노예노동과 강제 노동으로 이익을 늘렸습니다. 미즈는 큰 자본 축적이 이루어진 16~17세기 유럽의 특정 시기를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일어난 시기로 보았습니다.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탐험가와 무역가들은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무기를 이용해 식민지를 정복하고 약탈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식민지를 노리는 ‘사냥꾼’이 되어 ‘자연’에 속하는 식민지와 식민지인들을 손쉽게 정복했습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인을 ‘문명화가 될 존재’로 바라봤고, 식민지 여성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올라우다 에퀴아노(Olaudah Equiano)는 1789년에 펴낸 자서전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해례원, 2013)를 통해 백인에게 학대받고 멸시당하며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노예제 본성을 비판했습니다. 이 책에 식민지 여성을 잔혹한 방식으로 대하는 백인 남성의 행동을 묘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

* 리처드 D. 앨틱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아카넷, 2011)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 [No Image]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까치, 1990)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기계의 발명과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양식의 기계화, 공업화로 산업혁명이 전개됐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세계의 공장’으로서 최고의 번영을 누리던 황금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자본가들은 여전히 ‘자본의 원시적 축적’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 2014)은 공장에 일하는 노동계층의 비참한 삶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책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발산하는 빛이 화려한 만큼, 그림자 또한 어둡고 깊었습니다.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것이지요. 1857년에 발생한 경제 대공황은 ‘낙관적 진보’를 믿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줬습니다. 대공황을 시작으로 경제가 위축되었고, 빈민층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마르크스, 엥겔스 등이 자본가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인 아우구스트 베벨, 클라라 체트킨 등의 사회주의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의 여권 신장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2장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깠던(…) 미즈는 3장에서 베벨과 체트킨이 주장한 여성해방론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은 엥겔스와 함께 당시로는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적 이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이들로 꼽히지만, 이들 역시 노동계급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아내와 어머니를 가진 제대로 된 가족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벨은 여성의 고용을 줄여서 어머니가 자녀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파괴를 안타까워했다. 베벨은 성별노동분업의 변화나 가사노동을 남성과 공유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여성은 주로 어머니였다.

이는 체트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반페미니즘’에 대해 싸웠지만, 그녀 역시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노동자로 보기보다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보았다.

  맑스,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체트킨은 자본주의가 남녀 사이에서 착취의 평등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처럼 남성에 맞서서 싸울 수 없으며, 남성과 함께 자본가 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사민당 내에서는 아주 긍정적인 반향을 낳았다.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와 아내로 보는 부르주아적 생각이다. (3장 241~242쪽)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미즈의 주장은 ‘팩트 폭력’에 가깝습니다. 베벨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여성의 저출산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봤고, 가족이 해체하는 현상을 걱정했습니다. 체트킨은 노동해방을 달성하기 위해선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참여를 동참했는데요, 그녀는 노동해방 운동에 동참하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아내’이자 ‘다음 프롤레타리아 세대를 가르치는 어머니’ 역할로 한정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 투쟁은 부르주아 여성처럼 자기 계급의 남성에 맞서 싸우는 투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전체 자본가 계급에 맞서 자기 계급 남성과 공동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자유로운 시장 경쟁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기 계급 남성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돌려주고 영원히 보장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궁극적 목표는 남성과의 자유경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지배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66쪽)

 

 

 사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어머니와 아내의 의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선전의 과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해 이 과제를 전보다 더 잘 해 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가족의 상황이 좋을수록, 여성이 가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수록, 더 잘 투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교육자 · 양육자 구실을 더 잘할수록 자녀를 더 잘 의식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자녀들이 우리 세대의 뒤를 이어 기꺼이 열정적으로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헌신하며 계속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의 프롤레타리아가 “내 아내!”라고 말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내 이상의 동지이며 투쟁의 전우이며 미래에 투쟁할 내 아이들의 어머니”라고 덧붙이게 될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를 계급의식으로 채우는 수많은 어머니와 아내는 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 동지들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클라라 체트킨 『프롤레타리아 여성과 함께해야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중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72쪽)

 

 

 

미즈는 여성을 ‘아내’와 ‘어머니’로 보는 체트킨의 인식이 그녀가 비판했던 자유주의 부르주아 페미니스트의 생각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따라서 마르크시즘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가정주부’가 되는 여성의 문제를 보지 못했던 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