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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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인간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회다. 무엇을 위해 쓰는가? 나는 왜 이 글을 써야 하는가? 그러한 일련의 문맥을 눈으로 추적하다 보면 인간이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의 세계관, 가치관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되어있다. “나는 글을 쓴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은 글을 써서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렇게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 성찰의 과정인 동시에 자기표현의 산물이다. 타인의 자기표현을 읽는 행위는 자기 성찰을 위해 생각을 수렴하는 것이라면 타인에게 제 생각을 글로 전하는 행위는 자기 정체성을 타인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다. 거기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며 글쓴이와 독자는 더 성숙하고 생각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저런 ‘글을 잘 쓰기 위한 고민’을 하면서도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단지 ‘날(=글), 보러 와요’라고 강요하는 그런 모습이 있다. 아무리 문장이 좋고, 논리적으로 잘 써도 강파르게 주장을 내세운다면 그 글을 읽는 독자는 소외되기 십상이다. 자기 정체성과 생각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데 급급한 자화자찬 글쓰기는 볼거리가 많지만, 독자를 존중하지 않는다. 자화자찬 글쓰기를 위해 사용된 언어는 결국 ‘보여주는 언어’가 된다.

 

‘보여주는 언어’로 글을 써왔던 사람들이 우치다 다쓰루의 글쓰기 강의를 듣게 된다면 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강연장을 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자화자찬 글쓰기를 선호하는 ‘잘난 놈’의 특권의식을 까발리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원더박스, 2018)총 14강으로 진행된 ‘창조적 글쓰기’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가벼운 호기심에 이 책을 읽다 보면 심기가 여간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글쓴이가 가져야 할 책임성을 되묻게 하기도 한다.

 

 

 ‘독자를 깔보는’ 시선으로 글을 쓰는 능력 따위를 아무리 익히고 배운들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힘주어 말합니다만, 그런 능력은 아/무/런/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27쪽)

 

 

‘보여주는 언어’로 채워진 글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나”, 바로 글쓴이 자신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책의 첫머리에 간곡히 당부했다. “제발 제1강까지는 읽어주기 바랍니다. 제1강을 읽었는데도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면 책꽂이에 다시 꽂으셔도 좋습니다.” 저자는 1강에서 ‘독자를 깔보고 사랑하지 않는 글’을 혹평한다. 단지 ‘글을 정확하게 쓰는 비결’을 알고 싶거나 자화자찬 글쓰기를 고집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을 덮어도 좋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이 책을 덮을 뻔했다. 그동안 나는 ‘보여주는 언어’로 글을 써왔고, 독자를 배려하지 못한 채 ‘재미없는 글’을 양산했다. 책 뒤표지에 ‘독자를 사랑하지 않는 글쓰기는 백전백패!’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의 글쓰기는 백전백패가 아니라 ‘천전천패(千戰千敗)’이다. 저자의 글쓰기론에 동의하지 않아서 책을 덮으려고 했던 건 아니다. 책에 나온 ‘내 이야기’, 즉 ‘독자를 사랑하지 않는 글쓰기’가 부끄러워서 책을 끝까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독자를 사랑하는 글’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메타 메시지’다. ‘메타 메시지’는 진정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중요한 내용을 의미한다. 저자는 ‘메타 메시지’를 ‘사활이 걸린 중요한 정보’라고 말한다. 독자가 읽기 쉬운 글은 글쓴이의 메타 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왜냐하면, 글쓴이는 경의(敬意)의 자세로 독자에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말하는 경의의 자세는 이렇다. “부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꼭 들어주세요.” 독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글쓴이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쓴다. 앞서 나는 자화자찬 글쓰기에서 드러나는 ‘보여주는 언어’의 특징을 언급했다. 저자는 마지막 강의(제14강)에서 발언자, 즉 글쓴이의 절박함이 묻어있는 ‘바깥을 향하는 언어’야말로 ‘메타 메시지’이며 수신자(독자)에게 ‘전해지는 언어’라고 말한다. ‘바깥을 향하는 언어/전해지는 언어’의 반대말이 ‘내향적 언어/전해지지 않는 언어’이고, 내가 설명한 ‘보여주는 언어’와 비슷하다. 따라서 ‘내향적 언어/전해지지 않는 언어/보여주는 언어’는 독자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며 글쓴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돋보이게 하는 독단적인 글이다. 이런 재미없는 글은 독자들이 외면하는 ‘죽은 글’이다. 이 글에는 글쓴이의 진정한 혼이 실려 있지 않다.

 

글 자체로는 완성도가 떨어져도 글에서 독자에게 나누고자 하는 느낌이 잘 살아있다면 그거야말로 ‘독자에게 사랑받는 좋은 글’이다. 제아무리 열심히 다작(多作)해도 단 한 명의 독자도 알아보지 못하는 글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독자가 외면한 글은 글쓴이와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지 못한다. 글쓴이와 독자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다리가 부실하거나 부재(不在)한 글은 읽을 만할 가치가 없다. 앞으로도 독자를 존경하는 글로써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나)을 쓰기 위한 고민’이 아닌 ‘독자를 사랑하는 글을 쓰기 위한 고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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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4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4 16:45   좋아요 0 | URL
요즘 손이 가는대로 책을 읽다보니 시집을 읽을 기회가 없었어요. 번역서를 많이 읽고 있는 중인데요, 수식어가 긴 문장을 읽는 일이 고역입니다.. ㅎㅎㅎ

2018-05-1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4 16:51   좋아요 0 | URL
책의 제1강과 제14강만 보면 저자의 글쓴기론을 파악할 수 있어요. 나머지는 롤랑 바르트의 에크리튀르 개념,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 개념 같은 서구 사상을 설명하는 내용이에요.

글에 ‘좋아요’ 수가 많다고 해서 그 글이 잘 쓴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독자가 사랑하는 글’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워요. 글의 내용보다는 글쓴이의 성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 사람이 쓴 글에만 ‘좋아요’를 누를 수 있잖아요. ^^

레삭매냐 2018-05-14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끊임 없이 독자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정말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런데 한 번 저자에게 빠지면 쉬이 헤어나기도
쉽지 않을 듯 하네요.

물론 한 저자에게 몰입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요.

cyrus 2018-05-14 16:52   좋아요 0 | URL
작가 한 사람만 지나치게 사랑하면 그 사람의 단점이 보이지 않게 돼요. 그래서 여러 작가들을 사랑하면서 책을 읽으려고 해요.. ^^;;

2018-05-14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4 16:54   좋아요 1 | URL
우주지감 독서모임 도서 중에 ‘사진 책’이 있으면 그 날 모임에 초청하고 싶어요. ^^

2018-05-14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사의 정치학 - 가치 있는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워드 진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인드큐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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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이제 그의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간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국 최고의 ‘행동하는 지성’으로 자리를 굳힌 역사학자였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과 베트남 반전운동의 중심부에 그가 있었다. 그는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민중의 삶 깊숙이 뛰어들어 이론과 실천을 융합해왔다. 고령에도 그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역사’를 강조하는 일관된 자세를 지켜왔다. 지난달에 진의 초기 저작이라 할 수 있는 《역사의 정치학》(마인드큐브, 2018)가 번역돼 나왔다. 1970년에 초판이 나오고 이십 년 후에 2판이 출간되었다. 《역사의 정치학》은 60~70년대에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진의 급진적인 학문 세계와 역사관을 조망해볼 수 있는 책이다.

 

진은 이 책에서 3개의 대주제로 나누어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자신이 부딪치고 건너온 시대를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한다. 1부(‘접근법’)3부(‘이론과 실천’)는 미국 주류 역사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급진주의 역사관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진이 말하는 ‘급진주의 역사’란 국가의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질서를 공고하게 만든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여 타파하는 변화 지향적 학문이다.

 

급진주의 역사는 정부 개혁의 한계, 정부와 부유한 특권층의 연결, 전쟁과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정부의 경향, 법의 중립성 뒤에서 벌어지는 돈과 권력의 유희를 폭로할 것이다. 급진주의 역사는 현실을 유지시키는 정부의 역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다. (『급진주의 역사란 무엇인가?』, 83쪽)

 

 

진은 반파시즘 역사학자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을 빌리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가 ‘죽은 역사’라면, 되살아난 과거는 ‘현재’로 나타난다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사학자는 ‘현재 목표’를 설정하여 지난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되돌아보는 까닭은 과거에 대한 탐구가 현재를 넘어 미래 전망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현실 너머로 확장하려면 역사학자는 사회의 중대한 문제들을 침묵해선 안 되고, 중립을 지켜서도 안 된다.

 

 

 역사의 목적은 “과거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는 것이므로…‥ [중략] 역사학자는 “자신의 과거를 초월하는 바로 그 행위에서 과거를 이용할 수 있고 또 이용해야 하는데” 이는 인류가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기 위해서다. (『역사학자』, 430쪽)

 

 

망각해선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중요한 책무이다. 진의 자서전 제목으로 알려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행동하는 지성’으로써의 진의 면모를 부각하는 명언이다. 그는 강단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이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급진주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글의 첫 문단에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진은 언행일치된 모습으로 강단에서 말한 내용 그대로 일상에서 실천했다. 상아탑 안에 안주하지 않은 진은 여느 운동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전국을 돌며 거리 행진을 벌이고, 시위에 참여했다.

 

2부는 ‘미국 역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진의 관심은 미국 역사 속의 지배자들이나 그들의 이념이 아니다. 그는 건국 초기의 미국 역사부터 냉전 시대까지 두루 살피면서 미국 독립선언서의 자유, 평등, 행복의 추구라는 그럴싸하고 찬란한 표어 속에 가려진 역사 속의 희생자들을 소환한다. 2부에서 다루는 역사는 가난하고 억압받은 민중, 노예와 흑인들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이다. 독자는 2부에서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민중과 흑인의 권리를 찾으려고 했던 진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부와 3부를 먼저 읽고, ‘급진주의 역사’ 렌즈를 착용한 후에 2부로 접근해도 좋을 듯하다.

 

진은 미국인들이 권력의 기만에 잘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비판적 역사관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오만한 제국’에 향한 그의 통렬한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진의 오래된 충언을 아는지 모르는지(상류사회의 교육을 받고 자란 그가 하워드 진을 알 리가 있겠나.) 유색 인종에 대한 경멸을 공공연히 습관처럼 내뱉었고 이를 실제 정책화하는 최악의 행보를 보인다. 역사를 모르거나 ‘중립’으로 일관하는 역사만 남으면 국민은 권력의 사리사욕을 보지 못하게 되고, 언론과 공권력은 오만한 권력을 보호하는 나팔수와 경호원이 된다. 역사는 우리가 가질 수 있고,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다.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보다 비판적 역사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면 우리는 다시는 속지 않을 것이다.

 

 

 

 

 

※ Trivia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문과 오자들이 곳곳에 보인다.

 

* 19쪽

도미니크 공화국의 트루히요 → 도미니카 공화국

 

* 20쪽

찰스 다윈은 1961년 한 편지에서 → 1861년

 

* 71쪽

나는 교회가 다시 과처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 과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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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0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3 11:36   좋아요 1 | URL
역사를 배우는 것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피드백’입니다. 자기만족으로 역사를 배우면 그런 역사는 자신(의 이념)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2018-05-12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3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토 준지 컬렉션 9화 두 번째 이야기

혈옥수(血鈺樹)

 

 

 

 

 

 

 

 

안자이카나는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마을을 헤맨다. 갑자기 아이들이 튀어나와 커플을 공격하고, 카나의 목에는 아이에게 물린 상처가 생긴다. 가까스로 아이들을 피해 달아난 커플은 혼자 사는 청년의 집에 머무른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7 : 신음하는 배수관》 (시공사, 2008)

 

 

 

 

청년은 커플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는 청년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그녀는 수수께끼의 말을 남겼는데, 자기 몸속에 흐르는 피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그녀는 칼로 목을 그어 자살한다. 청년은 여자의 목에 흐르는 피를 빨고, 목에 난 상처 부위에 ‘혈옥수’가 자라난다. 여자가 말한 대로 몸속의 피는 밖으로 나오면 나무 형태로 변한다. 혈옥수는 체내의 영양분을 먹으면서 점점 자라고, 영양분이 빠져나간 몸은 미라가 된다. 청년은 혈옥수로 남게 된 여자 친구가 영원히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런데 상처가 난 카나의 목에 혈옥수가 자라기 시작하는데…‥.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04)

 

 

 

『혈옥수』에로스(Eros)타나토스(Thanatos)라는 프로이트의 명제와 공포물의 대명사인 ‘뱀파이어’ 설정을 결합한 이야기다. 프로이트는 『쾌락 원칙을 넘어서』라는 글에서 사랑하는 대상을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질로 환원시키려는 죽음 욕동을 가설로 제시했다. 프로이트에게 삶의 욕동은 에로스로 건강하지만, 죽음 욕동인 타나토스는 위험하다. 에로스는 원천이 사랑이기에 건설적이지만, 타나토스는 원천이 미움이기에 파괴하려 든다. 죽음 욕동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겨냥한다. 분노가 행동으로 표출될 때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혈옥수』의 청년은 자신의 고귀한 목적(혈옥수로 가득한 정원을 만들고 즐기는 것), 즉 쾌락을 위해 타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흡혈 행위 이후에 사람의 몸에서 자라나는 혈옥수). 물론 이 쾌감은 정당하지 않다. 쾌감의 희생자 대다수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 박선경 역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나래북, 2014) - 클라리몽드

* 테오필 고티에 《고티에 환상 단편집》 (지만지, 2013) - 사랑에 빠진 죽은 연인

* [절판] 신주혜 역 《클라리몽드 : 아홉 개의 환상기담》 (작품, 2013) - 클라리몽드

* 이탈로 칼비노 엮음 《세계의 환상소설》 (민음사, 2010) - 죽은 여자의 사랑

* 이규현 역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창비, 2010) - 죽은 여인의 사랑

* 정진영 역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06) - 죽은 연인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정신 분석의 주제는 테오필 고티에의 고딕 로맨스 소설 『클라리몽드』에서도 나온다. 이 단편 소설은 브램 스토커《드라큘라》(1897년)보다 훨씬 더 일찍 나온(1836년) 뱀파이어 소설이다. 공포 문학이나 뱀파이어 문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원제는 ‘La Morte Amoureuse (죽은 연인)이지만, 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인 ‘클라리몽드(Clarimonde)’로 더 많이 알려졌다.

 

소설은 나이 든 신부인 로뮈알드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청년 로뮈알드는 교회에서 기도하던 중 매춘부 클라리몽드를 우연히 보게 된다. 로뮈알드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고, 갑자기 마음속에 솟아오르기 시작한 욕망을 절제하느라 애쓴다. 정식으로 신부가 된 로뮈알드는 장례식을 거행하기 위해 ‘죽은 여인’의 집에 찾아갔는데, 죽은 여인은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클라리몽드였다. 그는 그녀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욕망에 휩싸이게 되고, 클라리몽드의 입술에 키스한다. 신부의 키스에 클라리몽드는 다시 눈을 뜬다. 로뮈알드는 매일 밤 그녀를 만나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부활한 클라리몽드는 뱀파이어였다. 신부와 뱀파이어의 기이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로뮈알드의 신부 서품을 도운 세라피옹 신부는 망상에 사로잡힌 로뮈알드를 구해내기 위해 클라리몽드의 무덤을 파헤친다. 클라리몽드의 시신을 확인한 로뮈알드는 자신을 괴롭힌 ‘클라리몽드의 환상’에서 벗어난다.

 

로뮈알드는 처음에 클라리몽드를 만났을 땐 육체적 쾌락을 다스리는 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죽은 클라리몽드를 보자마자 그녀에 대한 욕정과 집착은 커지기 시작한다. 클라리몽드는 로뮈알드의 피를 빨면서 끝없이 그를 소유하고자 한다. 세라피옹 신부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피가 빨린 로뮈알드는 서서히 죽어 갔을 테고, 그녀는 로뮈알드를 죽여서라도 독점했을 것이다. 클라리몽드 역시 상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도착 증세를 보인다. 도착이란 대상이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그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다. 클라리몽드의 흡혈 행위는 도착증에 대한 환유로 읽을 수 있다.

 

『혈옥수』와 『클라리몽드』, 두 작품 모두 욕망의 환상 속에 뒤틀린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타자에 대한 존중이다. 타자를 이용하여 쾌락을 누리는 병든 에로스는 타자와 나를 파괴한다. 많은 영화, 노래, 문학, 미술 등 모든 예술은 지칠 줄 모른 채 ‘병든 에로스’를 다루고, 대중은 사랑과 여성을 왜곡한 예술을 소비한다. 이런 예술을 ‘미학’으로 애써 포장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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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0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17:15   좋아요 1 | URL
저는 책임성이 부족해서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못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5-10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이 더워지니 이제 공포 / 괴기 문학이 더 생각나네요. 다만, 이토 준지는 좀 끈적한 느낌이 들어 시원한 소나기 같은 느낌보다는 습한 장맛비 같네요^^:)

캐모마일 2018-05-10 15:57   좋아요 1 | URL
습한 장맛비. 비유를 읽고 혼자서 오 맞아!하고 웃는 바람에 주변 분들이 순간 절 이토 준지 만화 인물들처럼 보네요. ㅜㅜ

겨울호랑이 2018-05-10 16:04   좋아요 1 | URL
에고... 난처하셨겠어요... 그래도 이토 준지가 좀 끈적끈적한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 지 싶습니다.^^:)

cyrus 2018-05-10 17:21   좋아요 2 | URL
To. 겨울호랑이 / 이토 준지의 공포를 적절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습하면서 불쾌한 느낌을 주는 공포를 연출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이토 준지입니다. <이토 준지 컬렉션>을 보면 햇빛이 전혀 없는 잿빛 구름만 가득한 하늘이 나옵니다. ^^

To. 캐모마일 / 평범한 것조차 기괴하게 비틀어버리는 묘사가 이토 준지의 능력이죠. ^^
 

 

 

올해로 유관순 열사가 태어난 지 116년이 지났다. 열사가 우리 현대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유 열사의 생애와 업적에 비해 연구가 너무 미진하다. 철저한 고증과 균형감 있는 평전 한 권조차 나오지 않았다. 4년 전에는 유 열사에 대한 내용이 빠진 고등학교 교과서 4종이 확인되어 논란이 일어난 적 있었다. 유 열사가 항일운동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친일파가 자신들의 과오를 무마하려고 의도적으로 부각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있다.

 

 

 

 

 

 

유 열사가 빠진 역사 교과서 논란이 일어났을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보수 언론 등은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이 논란을 빌미 삼아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지하는 진보 세력까지 비판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에도 유 열사에 관한 내용이 담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은 대변인의 입을 통해 유 열사가 없는 역사 교과서를 제작 · 배포하는 일은 열사에 대한 모욕이며 모든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단 친일 후손이 소속된 새누리당이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하니까 어색하다. 그들의 생색내기는 결국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 전영택 《순국처녀 유관순전》 (늘봄, 2015)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5년에 최초의 유관순 전기로 알려진 전영택《순국처녀 유관순전》 (늘봄, 2015)이 복간되었다. 전영택은 교과서에도 실린 단편소설 『화수분』의 작가이다. 전기를 복간한 출판사명인 ‘늘봄’은 전영택의 호(號)다. 유관순 전기는 1948년에 출간되었다. ‘복간본 출간 열풍’이 있었던 시기에 나온 책이라서 초판 원문의 옛말을 그대로 살렸다. 이 책의 장르를 정확히 구분하자면 《순국처녀 유관순전》은 ‘완전한 전기’라기보다는 ‘간략하게 적은 소전(小傳)’에 가깝다. 전영택은 초판 서문에서 이 책을 ‘소전’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전기는 매우 얇은 소책자라서 분량은 100쪽이 되지 않는다. 전영택은 유관순을 ‘한국의 잔 다르크’로 표현했다. 그는 유관순 열사를 가르친 이화학당(이화여대의 전신) 교사 박인덕의 진술을 토대로 전기를 작성했지만, ‘소설가가 쓴 전기’이다 보니 과장되고 허구적인 묘사가 곳곳에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박인덕과 전영택은 친일 논란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관순은 친일파들이 의도적으로 알린 과장된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의 해설은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 논설위원이 썼다. 홍 위원은 친일 인사가 유관순을 발굴했다는 주장 자체가 ‘전체적인 진실’이 아닐 뿐더러 그런 측면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전영택 작가의 친일 경력을 문제 삼아 유관순 열사의 업적이 교과서에 누락 되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영택 작가의 친일 경력을 교묘히 은폐하는 그의 논변이 거슬리지만, 이보다 더 불편한 사실은 그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이다. 동아일보 창업자 인촌 김성수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의 두 번째 아내 이아주는 3 · 1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유관순 열사 역사 교과서 논란은 교육부가 기록이 빠진 고등학교 교과서 4종에 2015학년부터 유 열사에 대한 내용을 다시 싣기로 해 일단락됐다. 그렇지만 유 열사에 대한 대접이 여전히 형편없다. 삼일절이 가까워지면 <삼일절 노래>와 함께 <유관순 노래>가 불린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가 생각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유관순 노래’ 1절)

 

 

노랫말을 만든 사람은 아동 문학가 강소천이다. 1915년에 태어난 강소천은 1902년에 태어난 유 열사를 ‘누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백 년이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유 열사를 ‘누나’로만 기억하고 있다. <유관순 노래>는 동요다. <유관순 노래>를 접하는 어린이들은 ‘누나’라는 호칭으로 알려진 유 열사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다. 열사를 ‘누나’로 호명하는 노랫말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다 큰 어른들이 여전히 유관순을 ‘애국심 많은 누나’로 기억하고 있는 점이다. 어린 시절 때 들은 <유관순 노래>의 노랫말 속 ‘누나’가 지워지지 않은 기억에 콕 박힌 탓일까. 유관순을 누나라고 자연스럽게 부르면서 젊은 나이에 순국한 이봉창 열사(유 열사보다 일 년 먼저 태어났다)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은 걸까. 만약 이봉창 열사를 ‘형’이라고 부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선조를 모욕하는 무례한 호칭이라면서 역정을 낼 것이다. 그렇다면 백 년 전에 태어나 독립운동에 뛰어든 선조인 유 열사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도 무례한 일 아닌가?

 

 

 

 

 

 

 

 

 

 

 

 

 

 

 

 

 

 

 

*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 최기숙 《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문학동네, 2010)

* [절판] 김종대 《한국의 학교괴담 : 한국의 학교괴담에 대한 민속학적 탐구》 (다른세상, 2002)

 

 

 

 

정희진은 유 열사가 ‘누나’라고 불리게 된 배경을 ‘가부장제 중심의 민족주의’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남성의 이해가 반영된 젠더 정치’[1]다. 즉 민족주의는 남성 독립 운동가를 ‘민족의 대표’ 또는 ‘독립투사’로, 여성 독립 운동가를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정치이다. 유 열사를 ‘유관순 누나’라고 호명하면 그녀의 역사적 발자취는 희석된다. 유관순 열사를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가두면 ‘(남성) 일제의 고문으로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은 피해자’로 남게 된다. 지배세력에 향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그들에게 굴복한 경험에 대한 민족의 수치심이 불붙으면 ‘한(恨)의 민족주의’가 형성된다. ‘한의 민족주의’가 반영된 유관순 열사는 투지가 넘치는 ‘민족의 대표’가 아닌 ‘피해자 여성의 대표’로 남게 된다.

 

‘피해자 여성의 대표’로 정체화된 유관순 열사는 엉뚱하게도 ‘유관순 귀신’으로 소환된다. ‘공포 괴담’이 유행하던 90년대에 유관순 귀신이 등장하는 괴담이 만들어졌고, ‘유관순 괴담’은 다양한 형태로 알려져 아이들이 즐겨 보던 괴담집에 종종 수록되곤 했다. 지금 들어보면 참으로 황당한 내용이다.

 

 

 1) 새벽 12시에 불이 꺼진 화장실 속 거울 앞에 서서 <유관순 노래>를 열 번 부르면 거울에 비친 유관순 귀신을 볼 수 있다.

 

2) 불이 꺼진 화장실 속 거울 앞에 서서 유관순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유관순 귀신이 나타나 자신을 부른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인다.

 

3) 모 초등학교의 수영장 탈의실 위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유관순 열사가 있었는데 자기 대신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에게 적의를 품어 밤 12시가 되면 나타나서 이순신 장군과 싸운다고 한다. (김종대 《한국의 학교괴담》 34쪽)

 

4) 매년 삼일절이 되면 학교 운동장에 세워진 유관순 동상이 살아 움직이면서 피눈물을 흘린다. (김종대 《한국의 학교괴담》 35쪽)

 

 

유관순 귀신은 현대판 ‘처녀 귀신’이다. 예나 지금이나 처녀귀신은 ‘원한에 맺힌 억울한 존재’ 또는 ‘공포의 대상’이다. 민간 전설, 고소설 또는 도시전설 속 처녀 귀신은 스스로 원한을 해소하지 못하는 ‘피해자’로 그려진다.

 

‘유관순 열사’ 또는 ‘인간 유관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멀고도 요원하다. ‘친일 청산’이라는 적폐청산은커녕 사회에 고착화된 일제의 잔재조차 청산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 유관순 평전이 나오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1] 정희진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와 페미니즘』 ,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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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08:13   좋아요 1 | URL
유관순 열사가 ‘친일파가 과대 포장한 인물‘로 오해받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다녔던 학교인 이화학당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화학당은 이화여대의 전신인데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김활란입니다. 이 사람도 친일 경력이 있고, 그녀가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이화여대는 대대적으로 유 열사 업적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김활란이나 박인덕처럼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했다가 나중에 변절한 친일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동료의 이름을 내세워 열사로 만들려고 했을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8-05-10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10 12:29   좋아요 1 | URL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위인을 정답게 부르려고 ‘형’, ‘누나’ 호칭을 자주 사용되는 것 같아요. 전태일 열사에게 ‘전태일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예전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 호칭을 쓰기가 거북해요.
 
250만 분의 1 -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이정모 지음 / 나무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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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라면 정신없이 빠져드는 게 하나쯤 있다. 그중 하나가 공룡이다. 공룡 그림을 보고 그 이름을 맞추고 초식공룡인지 육식공룡인지 구별해내는 꼬마 공룡 박사님들이 많다. 어린이들 사이에 공룡에 관한 지식은 상식이 돼 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도 공룡 이름이라도 몇 가지 모르고는 자녀들과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기도 힘들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책만으로도 부족하다. 진짜 공룡 화석을 만져 보고 싶어 한다. 예전 박물관은 왠지 딱딱하고 재미없게만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 박물관은 체험할 것들이 푸짐해지면서 ‘재밌는 놀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시간적 노력과 경제적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자연과 역사를 배우는 체험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서울시립과학관 초대 관장인 이정모 씨는 예전에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일했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쓰기로 유명한 이정모 씨의 신작 《250만 분의 1》(나무나무, 2018)《공생 멸종 진화》(나무나무, 2015)의 속편이다. 저자는 전작에서 공생, 멸종 그리고 진화라는 주제로 지구 생명의 역사를 들려준다. 지구의 역사, 즉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멸종은 지구 생태계에 빈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게 된 자연사의 결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250만 분의 1》의 ‘250만’은 현재 지구상에 사는 생물종 수(2017년 세계생물다양성정보기구가 발표한 지구의 생물종 수는 2,528,677종이다). ‘1’은 인간이다. 우리는 억세게 운 좋게 살아남은 250만 종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오래 살아남으려면 다른 생명과 공생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생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우리보다 하찮은 생명에게 배워야 한다. 《250만 분의 1》은 진화와 멸종의 역사를 거친 생명이 주는 교훈을 펼쳐 보인다.

 

학창시절에 단선적 진화론을 공부한 사람들은 공룡의 전성기인 중생대가 끝난 다음에 포유류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신생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공룡과 포유류 중 무엇이 먼저 나타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공룡’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중생대에는 몸집이 큰 공룡과 몸집이 작은 포유류가 같이 살고 있었다. 분명 포유류는 공룡처럼 중생대의 주연급 동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포유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자신의 시대가 될 신생대를 조용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신생대의 주인공들은 어두운 밤을 주 무대로 삼아 야행성 동물로 살아온 덕분에 먹잇감을 노리는 공룡들의 눈치를 피할 수 있었다. 포유류는 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턱뼈 일부를 청각을 향상하는 뼈로 진화했고, 색을 구분하는 시각 능력 대신에 빛을 감지하는 시각 능력을 선택했다.

 

《250만 분의 1》 1부 『공룡 되살리기』 편은 꼬마 공룡 박사님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어 하는 부모라면 꼭 읽어야 한다. 1부에 잘못 알려진 공룡 상식을 바로잡는 깨알 같은 저자의 의견뿐만 아니라 공룡에 관한 ‘최신 상식’까지 나온다. 익룡은 우리말로 풀이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룡’이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공룡’이 익룡의 정확한 의미가 아니란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날개 달린 도마뱀’, 날아다니는 파충류’이다. 공룡은 골반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다리가 있고, 땅에서 걸으면서 살았던 파충류를 의미한다.

 

 

 

 

 

 

다음 달에 <쥬라기 월드 : 폴론 킹덤>이 개봉된다. 이 영화에 거대한 익룡이 뒷발로 사람을 낚아채는 장면이 나온다면 “저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자. 새의 깃털 역할을 한 익룡의 날개막(비행막)은 아주 얇다(프테라노돈의 날개막 두께는 1mm). 아무리 거대한 날개를 가졌다고 해도 날개막이 찢어지면 영원히 날 수 없다.

 

책에 대한 지적을 끝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33쪽에 아이에게 공룡(엘라스모사우루스)을 설명해주는 아빠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 있다. 공룡을 사랑하고,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사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은 아빠뿐인가? 엄마도 어렸을 적에 공룡을 좋아했고, 아빠 못지않게 아이에게 공룡을 제대로 가르쳐줄 능력이 있다. ‘아빠’ 대신에 ‘부모’라는 표현을 썼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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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09 19:42   좋아요 1 | URL
따님이 들으면 서운하겠는데요.. ㅎㅎㅎ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분명 어린 시절 따님도 특출한 능력이 있었을 거예요. ^^

psyche 2018-05-10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먹고 있었는데 우리집 막내도 공룡에 빠졌을 때가 잠깐 있었네요. 푹 빠지기 전에 포켓 몬스터로 넘어가는 바람에 저는 공룡이름 외우다 말고 포켓 몬스터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되었네요.ㅎㅎ

cyrus 2018-05-10 08:15   좋아요 0 | URL
포켓몬 중에 공룡과 닮은 녀석들이 많죠. 저는 포켓몬 1세대를 좋아했던 포켓몬 키드였습니다. 포켓몬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열심히 모았어요.. ㅎㅎㅎ

psyche 2018-05-10 10:29   좋아요 0 | URL
cyrus님 연세가??? 제 큰딸이 포켓몬 1세대 포켓몬 키드였는데...ㅎㅎ

cyrus 2018-05-10 12:26   좋아요 0 | URL
30대 초반입니다... ㅎㅎㅎ 우리나라에 포켓몬스터가 처음 방영되기 시작했을 때 저는 초딩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