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하인들 - 여성, 이주, 가사노동 여이연이론 17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지음, 문현아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하인들이다.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세계화의 하인들》, 32쪽)

 

 

 

필리핀인을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명희에 대한 영장이 어제 기각됐다. 법원은 범죄혐의 내용과 수사 진행 경과를 볼 때, 구속 수사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모두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어제 불거진 조재현에 대한 성폭행 의혹 소식에 가려 이명희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관심이 조금 묻힌 감이 있었다. 물론, 이 두 개의 사건 모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규명해야 하며 특히 페미니스트라면 유심히 살펴보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합법화하면 부부 맞벌이가 쉬워져, 여성 경력단절이 해결되고 출산율도 높아질 거라는 주장이 나온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가사도우미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불법으로 막혀 있으면 가격이 음지에서 형성돼 수요자들의 부담만 가중된다. 정부의 규제가 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규제하면 오히려 더 교묘히 법망을 피하거나 음지에서 불법 활동 및 범죄가 독버섯처럼 퍼져나간다. 강남을 비롯해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이 만연하고 있다.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법이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이득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세계화는 난민을 생산하는 기제다. 자본이 확대 재생산되고, 축적되는 것처럼 인적 자원의 이동 또한 막을 수 없다. 난민 또는 이주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가슴속에 품은 개발도상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어떤 직업도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교육 수준에 맞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일이지만 고국에 있는 가족만 바라보며 기피 업종에 뛰어든다. 우리나라에서의 이주노동자의 여성 비율은 국제결혼 추세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 이주를 결심하게 된 배경 및 원인은 다르지만, 여성 이주가 증가하는 것은 다른 대륙 국가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특히 싱가포르와 대만, 홍콩에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온 여성들이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합법화는 시기상조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인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하인’이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일은 ‘하인’을 고용하는 것과 같다. 《세계화의 하인들》(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더 잘사는 선진국으로 ‘여성 가사노동자가 수입’되는 과정을 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어머니는 미국으로 이주한 필리핀인이다. 저자는 필리핀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이탈리아 로마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필리핀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그녀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 딸, 며느리가 되면 ‘정상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보육, 요리, 청소 등의 가사노동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별 분업 체계에서 ‘여성적’ 일의 본질은 가족 및 타인을 보살피는 ‘무급 가사노동’ 또는 ‘돌봄 노동’으로 규정된다. 과거 여성들이 무급으로 수행하던 가사노동 및 돌봄 노동은 세계노동력 시장에서 상품화되면서 특권계급 여성이 구매할 수 있는 ‘저임금 서비스’가 된다. 저자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에 대한 요구가 급증함에 따라 가난한 이주 여성이 가사노동을 떠맡는 존재, 즉 ‘하인’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특권계급 여성, 즉 여성 고용주는 ‘힘들고 더러운’ 집안일을 하기 싫다는 이유로 가사노동을 가난한 이주 여성에게 떠넘긴다. 이렇게 되면 ‘남성적’ 일과는 구분되는 ‘여성적’ 일이 ‘돌봄의 연쇄(care chain)라는 방식으로 강화된다. 외국인 여성이 이주하면 그녀가 해야 할 가사노동은 또 다른 가난한 여성이 떠맡게 된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성별 노동 분업이 가난한 국가로부터의 여성 이주를 통해 지속한다.

 

필리핀은 전체인구의 10%가 해외에 나가 일한다. 해외 취업자들은 대개 여성들이다. 필리핀 여성들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점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동, 아시아 등 곳곳에서 가사도우미, 보모 등으로 인기가 있다. 여성의 해외 취업이 늘면서 ‘재생산 노동(가사노동, 돌봄 노동)의 국제적 분업’은 필리핀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노동이민의 새로운 추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지속하면 이주 여성은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만 해야 하는 빈곤하고도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타국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이주 여성과 고향에 남겨진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정도 생각하면 이주 여성 문제는 간단치 않다. 따라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합법화 논의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로 내가 터득하게 된 것은 모든 여성고용주들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서 일부는 자신의 이중일과의 부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안일이라는 더러운 일을 회피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중간계급과 상층계급의 과시적 소비의 징후로서 가사노동이라는 재화가 포함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14쪽, 한국어판 서문)

 

 

오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은 독립된 주체가 아닌 남성의 소유물이나 부차적 존재로 여겨져 왔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던 당시 여성들에게 교육, 기술보다 아내, 엄마로서 해야 할 역할이 더 중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성별화된 노동 분할 전략으로 여성의 빈곤화를 심화한다. 《세계화의 하인들》은 특권계급 여성이 이주 여성 노동자들을 어떻게 ‘차별’하며 불평등을 초래하는 위계적인 구조를 어떻게 만드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만 봐도 이명희가 얼마나 잘못한 일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명희는 ‘더러운 집안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불법 가사도우미를 고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법이 생기면 걸레 드는 것을 싫어하는 잘 사는 마나님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겠는 걸?

 

 

 

 

 

* Trivia

 

1. 목차의 1장 제목과 본문 1장 제목이 다르다. 목차에는 ‘로마와 로스엔젤리스의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라고 표기되어 있고, 본문에는 로마와 로스엔젤리스의 필리핀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목차의 1장 제목에 ‘여성’이 빠졌다.

 

2. 284~285쪽에 ‘흐몽인’, ‘흐몽 난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지에 사는 묘족(苗族)의 베트남어 이름이다. ‘흐몽’이 아니라 ‘몽(Hmông)’이라고 불러야 한다. ‘H’는 비음(鼻音)이므로 소리가 날 듯 안 날 듯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묘족을 설명한 대부분 인터넷 백과사전 항목에서는 ‘몽족’이라고 언급하지 ‘흐몽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 [이민 없는 한국]⑨이자스민 “맞벌이 늘어나는 韓…필리핀 가사도우미 허용 목소리↑』 이데일리, 2018년 6월 12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22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5:59   좋아요 1 | URL
네. 페미니즘은 ‘정치적 올바름’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학문입니다. 페미니즘이 여성 문제에 접근하려면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
 

 

 

 

‘서재를 탐하다’ 책방대구KBS <라이브 오늘>에 소개됐습니다. 이번 달 초에 방영되었는데, 이 사실을 어제 알았습니다…‥ 비록 화질은 떨어지지만, 책방이 소개된 방송 동영상이 남아 있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서재를 탐하다’ 공식 블로그에 방송 동영상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uki00/221291779183

 

 

 

 

특히 책을 쓰신 ‘그 분’은 이 방송 동영상을 꼭 보셔야 합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18-06-19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분˝의 책이네요. 우리집에도 있어요.^^
cyrus님,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8-06-21 13:47   좋아요 1 | URL
‘그 분‘이 쓴 책을 사서 가지고 있는 독자 대부분은 알라디너일 거예요. ^^

2018-06-19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1 13:50   좋아요 0 | URL
아주 정성을 들여서 쓰셨던데요. 책방 리뷰가 ‘알리딘 뉴스레터‘에도 소개되었던데 책방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약간의 홍보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

페크pek0501 2018-06-2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 님의 책을 보게 되네요. ㅋ

cyrus 2018-06-25 12:30   좋아요 0 | URL
방송에서 유레카님의 책이 나올 줄은 생각 못했어요. 뜻밖의 등장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
 
오롯한 당신 -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김승섭 외 지음 / 숨쉬는책공장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 게 아니게 보이는 무심함이 온 우주를 멍들게 할 수 있다.

 

(김살로메,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54쪽)

 

 

 

올해로 ‘여성 참정권 운동(Suffragette, 서프러제트) 100주년을 맞는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처음 불붙기 시작한 것은 1848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여성권리대회 때다. 그로부터 수많은 여성이 투옥되는 등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지만 제일 먼저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나라는 영국도, 미국도 아니다. 1893년 뉴질랜드가 최초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헌법부터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참정권은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하고도 소중한 국민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여성이 있다. MTF 트랜스젠더(male-to female transgender, 트랜스여성)이다.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과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트랜스젠더라고 한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성별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트랜스여성이고, 반대의 경우는 트랜스남성(female-to-male transgender, FTM 트랜스젠더)이다. 트랜스남성 역시 트랜스여성과 마찬가지로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국민의 대다수는 시스젠더(cisgender)다. 시스젠더는 신체적인 성별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한다고 느끼면서 살아간다. 시스젠더가 투표를 하려면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시스젠더 입장에선 신분증을 챙기고 오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트랜스젠더에게 신분증 확인은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번호 체계는 신원 확인에 유용하다. 13자리 숫자에 출생연도, 출생지, 그리고 성별 등의 정보가 포함된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번째 숫자는 성별을 의미한다[*]. 트랜스여성은 현재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정받은 성별은 변경되지 않아 남성의 호적을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트랜스젠더 대부분이 호르몬 투여만으로 혹은 일부 외과적 수술만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사회생활이 가능하지만, 주민등록증 등 공문서상 법적 성별은 자신의 사회 생활상 성별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는 신분증 확인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시스젠더의 편견과 차별이 두려워서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는 너무 많은 불편함을 안고 살아간다. 병원에서도, 은행에서도, 신용카드 만들 때 정말로 많은 설명을 해야 하고 심지어 양해를 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법적 성별 변경과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 않다. 호적 정정은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또 절차도 복잡하다. 시스젠더에 속한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마주하는 불편함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미국의 역사가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의 책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생각의길, 2018) 첫 문장을 빌리자면, 시스젠더는 ‘무지(無知)라는 골짜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트랜스젠더는 이 골짜기에 들어올 수 없다.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다수인 골짜기에 트랜스젠더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는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롯한 당신》(책공장더불어, 2018)은 ‘무지’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트랜스젠더에 대해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견인하는 책이다. 이 책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성 문제를 다룬 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논문과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트랜스젠더의 건강 문제에 대한 국내 연구 자료가 전무한 상황 속에서 연구팀은 총 282명의 트랜스젠더를 만나 설문조사를 했다. 대부분 학술 연구는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진행한다. 그러나 김승섭 교수 연구팀은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에 두 차례나 연구비 신청을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크라우드펀딩(시민의 후원, 기부 등으로 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연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국내 트랜스젠더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채 의료적 트랜지션(medical transition)을 받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트랜스젠더들이 성을 바꾸는 의학적 트랜지션인 정신과 진단과 호르몬요법, 외과적 수술 등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으로 분류돼 있다. 많은 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의학적 트랜지션이다. 트랜지션은 어느 한순간에 마치 마법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호르몬요법은 체형과 피부 · 목소리를 변화시키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성전환수술은 호르몬요법으로 불가능한 신체적 변화를 얻기 위해 시행된다. 여기에는 안면윤곽 성형술, 목젖 성형수술, 유방 절제 · 확대술, 고환 · 정관 절제술, 자궁 · 난소 난관 절제술 등이 포함된다. 트랜스젠더가 의학적 트랜지션을 받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의료비용 때문이다. 트랜스젠더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설이 부족한 점도 문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일부 트랜스젠더는 호르몬 요법을 해주는 의료 기관이 없어서 의료적 처치를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외국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정부의 의료지원이 확대되는 추세다. 연구팀은 미국 · 유럽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을 위한 의료진 교육과 수련 과정을 편성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의과 대학의 교육 과정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트랜스젠더의 건강 문제를 이해하는 한국 의료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더 생각해보면 ‘별 게 아니게 보이는 무심함’이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구에 참여하면서 많은 트랜스젠더를 만난 김승섭 교수의 자기반성은 이분법적 성별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트랜스젠더의 목소리에는, 내게는 더없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어떤 것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누군가가 살아있는 세상이 있었다. 은행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보일 때,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그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19쪽)

 

 

트랜스젠더의 인권 문제는 시스젠더에겐 다소 낯설고 난감할 수 있는 사회적 과제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적어도 편견 없이 트랜스젠더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받는 고통을 알아야 한다. 트랜스젠더도 ‘국민’의 한 사람이며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트랜스여성을 비꼬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TERF)에게 한 마디 전하고 싶다. 당신들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소수의 문제에 대한 무심함이 누군가를 멍들게 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트랜스젠더를 ‘오롯한 인간’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

1900~1999년에 태어난 남성 : 1

1900~1999년에 태어난 여성 : 2

2000~2099년에 태어난 남성 : 3

2000~2099년에 태어난 여성 : 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19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9 19:27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소수의 사회적 약자를 지나치게 옹호하면 다수의 사회 구성원 또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가 차별을 받을 수 있어요. 페미니즘 문제나 성소수자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주제입니다. 상대방이 비판하지 않으면 스스로 이 오류를 감지하기 힘들어요.

조그만 메모수첩 2018-06-19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정권 소외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네요. 일상과 의료 면에서의 고통만 어렴풋이 상상했을 뿐이었는데...ㅠㅠ 타고난 성별이든 선택한 성별이든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되는데 사회는 평균에서 벗어난다는 것에 대해 부당한 억압을 가하는 거 같아요 😔

cyrus 2018-06-19 19:2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어요. 선거 끝난 후에 이 책을 읽었어요. 트랜스젠더가 겪는 불편한 상황들이 이렇게 많을 줄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준비가 됐는데 어디를 가도 내가 모자라대요.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박기영의 노래 『취.준.생』 중에서)

 

 

 

 

등용문(登龍門)은 출세의 문을 뜻한다. 중국 황하(黃河) 상류에 급류가 흐르는 협곡이 있다. 협곡 이름은 용문이다. 물살이 어찌나 센지 그곳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한 잉어는 용이 돼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용문을 오르지 못한 잉어는 뭐라고 부를까? 용문에 오르려고 도전하다가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잉어들을 ‘점액(點額)이라 한다.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를 뜻한다. ‘점액’은 출세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잉어는 멀리 황하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일 등용문을 오른다. 오염 내성이 강한 잉어지만 수질 악화와 서식처 파괴 등 매일 용문보다 험한 길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경기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출세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외국 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을 따고 성형수술까지 해도 원하는 직장 구하기가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려운 시대가 됐다. 개천에서 때때로 잉어도 나오고 용도 나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 희망조차 없다. 부모 돈이 곧 실력이요, 능력인 세상에서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없으면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사회에선 이미 출발선부터 지각인 사람들이 많다. 매일 차근차근 등용문에 올라가봤자 ‘금수저들’의 세계에서 사다리가 걷어치워 지기 일쑤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계급주의 사회처럼 이른바 ‘신의 직장들’이 지나치게 주목받으면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공채(공개 채용)가 있다. 청년들은 너도나도 대기업 ·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맨다. 장기 불황에 비정규직 일자리가 넘쳐나자 ‘안정적 고용’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첫 직장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으로 출발하면 평생 그 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청년들의 인식이다. 공모전은 높은 상금과 인턴 등 실무 경험의 혜택까지 누릴 기회를 부여해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공모전 경쟁률이 점점 더 높아지면 대학생들은 경력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공모전의 ‘전(展)’을 ‘싸울 전(戰)’으로 써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책은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사, 현실을 반영한다. 《표백》(한겨레출판, 2011)은 모든 틀이 이미 다 짜여 있는 세상, 그 구조 속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표백세대’라 칭하며 자살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반어적인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2015)는 현실적 이유로 한국을 떠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대중과 평단에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댓글 부대》(은행나무, 2015)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을 통한 선거개입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온 첫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2018)동시대의 현실과 호흡하는 그의 글쓰기와 궤를 같이한다. 이번에 그는 문학상과 공채 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들여다본다. 2년 넘게 작가는 공모전을 운영하는(운영하지 않는) 출판사 대표 및 담당자, 작가 그리고 작가 지망생 등 문학 공모전과 채용 시스템의 현실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장강명은 한국 공채 문화를 ‘지망생들의 세계’, ‘합격자의 세계’로 바라보면서 대학 입시, 기업 공채 제도, 자격증 시험 등으로 확장한다. 이 공채 문화를 계급사회를 조장하는 ‘한국만의 방식’으로 규정한다. 책은 한국 공채 문화의 현실의 면면을 쓸쓸하지만,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한국 공채 문화의 문제점은 ‘승자’ 그룹(‘등용’, ‘합격자의 세계’)과 ‘패자’ 그룹(‘점액’, ‘지망생들의 세계’)으로 분화시키는 무한 경쟁과 성과(성적) 중심주의다. 자격증과 공모전, 그리고 공무원 시험은 ‘무한 경쟁’이라는 사회의 파고 속에 있는 한 척의 구명보트와 같다. 모든 구직자가 아귀다툼으로 올라타면 구명보트는 당연히 뒤집힐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경쟁의 금을 넘어선 합격자들은 ‘용(龍)’이 되지 못한다. 어중이떠중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인맥과 파벌을 보험으로 삼고 있어서다. 엘리트의식, 권위주의, 패거리주의에 찌들어 있는 곳이 ‘합격자의 세계’이다.

 

장강명은 ‘문학공모전’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그러나 그는 문학공모전도 ‘일종의 채용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등단 문화와 공채 문화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 점수 또는 성과로 합격(당선)과 불합격(낙선)으로 나누고, 합격자 또는 당선자는 ‘그들만의 세계’의 구성원이 된다. 합격자는 우월감을 느끼고, 불합격자는 열등감을 많이 느끼면서 등용에 재도전한다. 이렇게 합격의 권위가 만들어 낸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일을 자랑하기 위해 ‘간판’을 내세운다. 우리는 과대평가된 간판과 권위를 맹목적으로 신뢰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간판을 차지하기 위해 ‘바늘구멍’ 같은 공채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취업 및 시험 준비에 매달려서 극도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용과 같은 괴물’로 변할 수 있다. ‘고시오패스(고시생과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를 뜻하는 소시오패스의 합성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실력과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라는 말이 의미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 책, 《당선, 합격, 계급》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합격의 권위’와 ‘간판’은 노력보다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불신을 낳게 한다. 시험 결과로 인생의 당락이 결정되는 한국은 ‘공채의 나라’이다. 특권과 차별이 용인된 공채의 나라에 사는 청년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공채 문화가 ‘불공평한 생존 방식’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등용’은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계급 사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18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9 15:26   좋아요 1 | URL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하는 게 힘들어 보였어요. 이제 좀 적응했다 싶었는데 인사발령이 나면서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또 힘든 고생을 하게 되죠.

북다이제스터 2018-06-1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지 척^^

cyrus 2018-06-19 15:27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서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 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의 말이다. 그가 하려는 말은 알겠는데 내 독서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서 책을 과식하는 편이다. 관심 가는 책이나 감동을 많이 주는 책에는 무의식적으로도 손이 먼저 간다. 읽고 또 읽을 때마다 번번이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이러한 정서적 반응은 책과 마음이 전기가 통하듯 강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감정의 동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마음에 위로와 감동을 주는 책은 꼭 소설만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진실이 담긴 수필을 읽고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필은 감동을 주는 삶의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이고 진부한 ‘일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수필이 나오는 이유는 글쓴이들이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쉬운 글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수필은 자기 고백적 글쓰기다. 자기 고백적 글쓰기는 경험을 의미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경험과 자신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글쓴이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독자들의 반응, 즉 감정이다.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일수록 망각과 ‘추억 보정’에 기대어 잊어버리고 싶을 텐데 굳이 글쓰기로 풀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덩어리를 재료 삼아 글을 써서 견딜 만한 수준의 내용으로 다듬는다. 내게 이런 의미가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한결 그 일을 돌아보는 게 쉬워진다. 따라서 자기 고백적 글쓰기, 즉 수필은 아픔의 상처를 다른 느낌으로 재생한다는 뜻에서,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가 될 수 있다.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수몰민으로 대도시에 버려진 채 십 대와 청춘을 버겁게 앓았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어제가 모여 꽃핀 오늘로 거듭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매혹을 느낀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작가 소개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잔잔하게 가슴 저미게 했던 느낌들을 차분한 글로 풀어내 첫 번째 수필집을 펴낸 소설가 김살로메. 그녀는 치유로서의 글쓰기, 자기 고백적 글쓰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그런 관심에 부응한 책이 바로 이 첫 번째 수필집이다. 그녀는 삶의 흔적을 찾듯 끼적거렸던 글들을 오롯이 담아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아시아, 2018)이란 수필집을 펴냈다. 김살로메의 수필은 특별히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거나 하지 않는다. 내용도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일상의 세목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인데, 그 잔잔함이 요즘같이 과장되고 억지수를 써야만 겨우 존재를 인정받는 세태에서 오히려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천 글자 분량의 수필은 소중한 일상을 엮은 마음의 동화 같은 글이다. 마음속 동화이기 때문에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너무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살아온 너와의 관계에 대하여 소중했던 가치를 일깨워준다. 『엄마의 재봉틀』은 스치듯 사라진 일상 속 미세한 풍경을 되살린 글이다. 쉼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는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가 된다.

 

 

 엄마가 남긴 베갯잇, 방석, 이불보 등 다양한 소품들을 보면서 재봉틀을 돌리고 돌리던, 굳은살 밴 엄마 뒤꿈치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바늘 자국이 지나간 엄마 오른손 검지의 상처를 떠올리며 당신 노동의 숭고함을 되뇌는 것도 잊지 않겠지. (엄마의 재봉틀23)

 

 

많은 이들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타인을 미워하면서 산다. 어린 시절 글쓴이는 재봉틀 소리를 싫어했고, 그것을 쉼 없이 돌리는 엄마의 삶을 ‘동조 없는 연민’[*]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글쓴이는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부끄러운 기억을 억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눈앞에 그대로 펼쳐놓고 실체를 확인한다. 『엄마의 재봉틀』은 글쓴이의 마음뿐만 아니라 소중한 추억이 깃든 엄마의 물건을 보듬고 쓰다듬는 치유력을 지닌다.

 

김살로메는 경륜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드센 이 시대에 새삼 ‘진정한 어른 되기’를 고민하는 작가이다. 『꼰대라는 말』, 『시청과 견문』은 ‘어른 되기의 어려움’에 대한 수필이다. 글쓴이의 표현에 따르면 ‘시청(視聽)은 흘깃 보는 것이고, ‘견문(見聞)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이다. 꼰대는 제대로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서도 ‘견문’했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젊은 세대를 가르치려고 한다. 꼰대는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른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칭호이다. 수필집에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작가의 내적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큰 것, 강한 것, 힘센 것, 자극적인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위압하는 이 시대에 김살로메는 작은 것, 소박한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자는 그녀의 수필집에서 마치 진흙 속의 연꽃처럼 성찰과 마음의 다스림을 실천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을 만난다.

 

독자는 교리적인 글에서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는 글에 감동한다. 문학에서의 감동이란 내면을 두드리는 언어의 힘에서 나온다. 일천 글자로 채워진 소박한 수필에 인간적 애정을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소박한 경수필만 모은 책이 아니다. 그 속에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면서 그 가운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글쓴이의 지혜가 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각했던 것을 얼마나 더 절실하고 강도 높게 살펴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어떻게 바꾸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요즘은 반성과 성찰이라는 감정 상태가 아예 없어서 사유를 거부하는 꼰대들도 글을 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이 땅에는 순수한 영혼을 향한 지향을 일상에 잊지 않고 글을 쓰는 김살로메가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 엄마의 재봉틀22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6-1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글쓴이의 지혜,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cyrus 2018-06-18 16:43   좋아요 0 | URL
스쳐 지나갈 법한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삼아 간결하게 글을 쓴 살로메님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프레이야님처럼 살로메님도 리뷰집이나 영화 리뷰집 한 권 내시면 좋겠어요. ^^

페크pek0501 2018-06-16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열 번 누르고 싶은 리뷰입니다. 잘 쓰셨다고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cyrus 2018-06-18 16:46   좋아요 0 | URL
수필집에 보면 ‘문장 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 있어요. 이 글에서 살로메님이 깃털로 치장하듯이 화려한 수사가 장식된 글보다는 알짜배기 문장만 남은 글이 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런 무색, 무취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실패했습니다.. ^^;;

sprenown 2018-06-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끄적거린다고 해서 모두 ‘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리뷰 네요^^. 반성합니다!

cyrus 2018-06-18 16:51   좋아요 0 | URL
매일 틈만 나면 배설되는 문장들과 과시용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아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멀리 했어요. 짧은 글도 좋은 건 아니에요. 글이 길든 짧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진짜 ‘알맹이’가 있어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2018-06-16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8 16:54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1000자 이내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글을 쓰면서 수필집의 매력을 한 가지만 소개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서니데이 2018-06-16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간결하게 오래 공들여 쓴 느낌이 들었어요.
cyrus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더운 토요일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6-18 16:59   좋아요 1 | URL
뛰어난 소설, 수필을 두루 쓸 줄 아는 작가는 흔치 않아요.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글을 쓴 작가도 소설의 분량보다 적은 경수필을 쓰기 어려워 할 것입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는 경수필을 쓰는 것도 꾸준한 노력 아니면 쓰기 힘든 일입니다. ^^

2018-06-17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8 17:02   좋아요 1 | URL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취향과 유행을 이해하려면 독서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20대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젊은)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ㅎㅎㅎ 20대들이 공유하는 문화를 모르면 꼰대가 되기 쉬워요. 꼰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든요.

프레이야 2018-06-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들인 사진도 엄마의 재봉틀이 가장 좋았어요^^ 저는.

cyrus 2018-06-18 17: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진들이 글의 가치를 높여주었습니다. 수필집에 사진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