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 높은 구두, 단발머리, 각선미가 드러난 치마, 양산.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에 등장한 ‘신여성’, ‘모던 걸’의 이미지들이다. 그녀들은 학교에 다니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곳곳을 누비며 유행을 선도했고 자유연애를 주장했다. 이후 이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고, 당대 남성들은 그녀들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 박차민정 《조선의 퀴어》(현실문화, 2018)

 

 

 

지난달에 《조선의 퀴어》(박차민정 지음, 현실문화, 2018)를 읽고 한동안 근대 일본과 근대 식민지 조선의 문화 및 역사를 훑어봤다. 흥미진진한 독서였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미, 그것이 역사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그렇지만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을 더 알면 알수록 마음이 씁쓸해진다. 모던의 향취를 뿜어대는 신여성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사철 서양식 치마를 갈아입고, 구두를 갈아 신는 신여성도 알고 보면 가족 부양을 위해 부잣집 첩살이로 들어가는 불행한 인텔리 여성에 불과했다. 모던 보이들이 처한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일류신사를 꿈꿨던 모던보이들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 해 거리를 헤맸다. 그 시절에도 지금처럼 패션과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 김주리 《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살림, 2005)

 

 

 

구두와 치마, 단발머리가 신여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라면, 모던보이의 상징은 일본에서 직수입된 중절모와 양복이다. 모던보이들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살면서도 양복을 입고 다녔다. 당대 언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사치를 추구하는 모던보이의 태도를 비판했다.

 

 

 

 

 

 

 

 

 

 

 

 

 

 

 

 

 

* 박윤석 《경성 모던타임스》(문학동네, 2014)

 

 

 

1920~30년대 경성은 ‘리틀 도쿄’였다. 이때부터 영화, 음악, 각종 서구식 생활양식 등 근대문화가 일본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고 경성으로 들어온다. 혼마치(本町, 지금의 명동, 충무로 일대)는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유흥공간이 많았다. 그곳은 일본의 긴자(銀座) 거리에 온 것처럼 화려했다.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에게 혼마치는 도쿄의 분위기를 경험해보는 곳인 동시에, 겉으로 화려하지만 내면이 무력한 식민지인의 자화상을 확인하게 하는 구역이었다. 현해탄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지친 채[주1] 고국으로 돌아온 일본 유학생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늠할 수 없는 꽉 막힌 현실, 지식과 능력을 사용할 곳이 없는 현실 앞에서 절망했다. 변변한 일자리 하나 찾기 힘든 식민지 현실이 그들을 절망하게 했고, 가족을 돌보기는커녕 호구지책도 마련하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처지가 그들을 자학하게 했다.

 

 

 

 

 

 

 

 

 

 

 

 

 

 

 

 

 

 

 

* 소래섭 《에로 그로 넌센스 : 근대적 자극의 탄생》(살림, 2005)

 

 

 

일부 남성 지식인들은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서구 문화를 ‘부패한 에로’로 규정하여 비판했지만, 현실에 좌절한 모던 보이들은 ‘에로 그로’ 문화에 탐닉했다. 전근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근대의 향락주의자들은 ‘변태 성욕자’로 낙인 찍혀 비판받았다. 그러나 ‘에로 그로’ 문화는 현실의 불만과 권태를 달랠 수 있는 해방구였다. 식민지 조선 남성은 ‘에로 그로’ 문화에 헤어 나오지 못한 자신의 상황뿐만 아니라 무기력한 현실에 대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 권김현영 엮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교양인, 2017)

* 김미지 《누가 하이카라 여성을 데리고 사누 : 여학생과 연애》(살림, 2005)

 

 

 

식민지 남성의 냉소적인 반응은 동시대에 등장한 모던 걸, 신여성들에게 향한다. 모던 걸들은 남성성이 ‘거세된’ 식민지 남성 지식인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대상이 된다. 신여성의 신체적 변화는 전통과 근대, 남성과 여성의 의식면에서 첨예한 갈등을 불러왔다. 예컨대 단발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단발하는 것을 남성을 흉내 내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단발은 편리했으며 해방감을 가져다줬다. 남성 지식인들은 신여성들을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존재로 바라봤다. 특히 금시계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위해 몸까지 파는 여성은 냉소적인 풍자의 대상이었다. 여학생들은 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면 ‘저런 하아카라 여성을 누가 데리구 사누’라는 흉을 들었다. 전근대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여학생의 자유연애가 못마땅했다. 가난한 형편으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한 여학생들은 밀매음에 종사했는데, 그녀들을 ‘밀가루’라는 은어로 부르기도 했다[주2]. 이 은어에는 신여성의 과도한 화장을 비난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김재용 외 《친일문학의 내적 논리》(역락, 2003)

 

 

 

신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정치 차명의 기회를 쟁취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향한 냉소적인 공격에 맞서 대응했다. 신여성은 철저히 식민지 조선 남성들의 감시 대상이었다. 식민지 조선 남성이 만들어낸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자극적인 이미지를 벗겨내면 신여성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신여성도 한계가 있었다. 소수의 여성이 신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땅에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하면서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 등의 신여성 지식인들은 ‘여성의 공적인 영역 진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 동원을 위한 국책 사업에 뛰어들었다.

 

신여성을 둘러싼 식민지 남성들의 시비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는 시대 앞에 주눅 든 남성들은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에게 막말과 인신 모독성 비난을 한다. 식민지 남성들은 거리에 돌아다니는 모던 걸을 흘깃 쳐다보면서 ‘스튜릿트껄’이라 부르면서 그녀들의 허영심을 비꼰다. ‘스튜릿트껄’은 식민지 조선 버전 ‘김치녀’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반성해야 한다.

 

 

 

 

 

[주1]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2연)

 

[주2] 소래섭, 《에로 그로 넌센스 : 근대적 자극의 탄생》, 살림, 2005, pp.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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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07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세 여자>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정말 1920~30년은 흥미로운 시대야.
지식 팽창의 시대였던 것 같아. 연구해 보면 재밌을 것 같아.^^

수이 2018-08-07 20:35   좋아요 1 | URL
세 여자는 정말 보기 드물게 잘 쓰인 소설 같아요,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cyrus 2018-08-08 15:12   좋아요 2 | URL
To. stella.K & 수연 // 허정숙에 대해 알고 싶어서 <세 여자>를 읽으려고 했어요. 권김현영 님은 허정숙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국내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시 쓰려면 조선에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 여성운동가의 삶과 업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knulp 2018-08-07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 권 올리는 글쓰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cyrus 2018-08-08 15:14   좋아요 0 | URL
컴퓨터로 북플이 아닌 ‘알라딘 서재’에 접속하면 ‘마이페이퍼’ 기능을 쓸 수 있어요. 그러면 ‘알라딘 상품(책)’뿐만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도 넣을 수 있어요. 저는 항상 아날로그 방식으로 글을 써요. ^^

knulp 2018-08-08 16:12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날로그 감성 최고죠^^

수이 2018-08-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 글은 역시나 꺠우침을 여러모로 많이 줘.

cyrus 2018-08-08 15:19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ㅎㅎㅎㅎ 페미니즘 관점에서 신여성을 재평가하는 분석은 이미 오래전에 나온 거예요. 저는 그냥 분석의 결과물들을 참고해서 정리했을 뿐이에요. 제 글은 대단한 건 아니에요. ^^
 
댄 애리얼리 부의 감각
댄 애리얼리 외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과연 사람들은 언제나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행동을 할까?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인(Homo economicus)이라 가정해왔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왜 공짜로 생긴 돈을 한 번에 탕진할까? 왜 현금보다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할 때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것일까? 많은 경제학자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에서 어떤 합리성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경제는 개개인의 행동 집합체지만, 종잡을 수 없고 정답도 없다. 인간은 꼭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비이성적 인간, Homo irrationalis) 인간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 역시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다.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실제 소비생활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소비하고, 지출하고, 투자하고, 저축하고, 돈을 빌릴 때 어떻게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한다.

 

MIT미디어랩의 행동경제학 전공 교수이자,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연구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경제 주체는 늘 합리적인 존재’라는 기존 경제학의 대전제에 관한 근본적 회의감을 논리적이고 참신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책을 발간해 행동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돈 잘 쓰는 법’에 관한 것이다. 제목만 봐도 흥미롭지 않은가. 《부의 감각》(청림출판, 2018)은 풍부한 사례와 실험들을 통해 사람들 대부분이 잘못된 지출 습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는 인간이 얼마나 충동적이며,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돈을 쓰는지 귀신같이 잡아낸다.

 

어떤 일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할 다른 일의 경제적 이득을 경제학에선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한다. 합리적인 경제인은 기회비용을 따져 행동한다고 경제학 교과서는 설명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늘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잘 모른다. 가장 큰 이유는 돈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분파’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돈을 쓰고, 과거에 돈을 썼던 일에 후회하면서 힘들게 살아간다. 인간의 ‘소비’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부의 감각》은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그 상황에 작동되는 10가지 힘을 설명한다. 이 10가지 힘은 일상 속에 겪게 되는 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이 서평에서는 간략하게 4가지만 언급하겠다.

 

인간은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면, 편익과 가격을 비교해 자신에게 가장 많은 편익을 주는 상품을 구매한다. 만약 할인된 가격의 상품이 있으면 소비자는 그 제품의 정상가격을 비교하여 소비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 이처럼 비교하기 쉬운 대상을 서로 비교하며 선택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심리적 편향(상대성 편향)의 한 종류다. 즉, 인간은 선택의 대상을 비교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교하기 쉬운 대상만 비교한다. 가격할인은 소비자의 선택 판단 과정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기업들이 재무제표에서 각 계정을 통해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듯이 인간도 마음속에 회계장부를 두고 돈을 관리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회계’라고 부른다. 돈이 어디서 나오고, 어디에 저축돼 있으며,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돈을 다르게 생각한다. 심리적 회계는 저축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저축하려면 급여에서 일부를 미리 떼놓으면 된다. 지출을 다 마친 뒤에 남는 돈을 저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 회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심리적 회계는 때로는 불리하게, 때로는 유리하게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똑같이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쓰는 순간부터 심리적 회계를 은연중에 가정한다. 돈의 가치는 다 같은데도 일해서 번 돈은 생활비로 쓰고, 공짜로 받은 돈은 유흥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적 회계가 인간을 통제하게 되면 돈을 각각 다른 지갑에 넣고 지갑마다 다른 규칙을 적용하면서 쓸려고 한다.

 

인간의 비합리적 소비는 자기 과신에서도 온다.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가 기준점이 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닻 내림 효과)라고 한다. 자신의 판단 능력을 과대평가하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뿐만 아니라 기회비용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는 자신이 가진 물건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물에 강한 애착을 느낄 때 생긴다.

 

저자는 비합리적인 소비 행동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은 돈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이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헛되이 쓰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 소비를 합리적으로 잘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 과정에서 신중한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 필요와 욕구에 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최종 구매 결정 이전에 기회비용에 대한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품을 구매하기 전에 그 상품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본인에게 얼마나 주어지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부의 감각》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너무나도 쉽게 돈을 쓰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인간의 소비 행위의 이면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 제목만 보고, 행동경제학의 권위자가 ‘부자 되는 법’을 알려줬다고 믿으면 곤란하다. 제목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돈을 똑똑하게 쓴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돈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즐겁게 살고 싶으면 돈을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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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07 18:23   좋아요 0 | URL
책을 사고난 뒤에 후회할 때가 있어요. 중고매장에 책을 사고나면 며칠 뒤에 진짜 읽고 싶은 책이 매장에 있어요. 그래서 책 살 때마다 돈을 펑펑 쓰게 돼요.. 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이비에스다큐영화제에서 거짓말에 관한 다큐에 출연하신 거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인상적이었는데(거짓말의 기제에 대한 거였는데 거기서도 인간은 비합리적 존재임을 강조했던 거 같아요) 이 책도 굉장히 읽고 싶네요. 이런 비합리의 바닥에는 손해를 보기 싫다, 쾌락을 중시하겠다는 나름의 합리적(?)규칙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8-08-07 18:24   좋아요 1 | URL
메모수첩님이 언급하신 내용은《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책에 나올 거예요. 이 책도 흥미진진합니다. ^^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기괴환상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이 말은 일본 추리문학의 대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시그니처(signature)다. 그는 사인할 때 이 시그니처를 썼다고 한다. 란포의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郞)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인데,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서 따온 것이다. 포는 추리소설과 심리적 공포소설의 창시자다. 미국 문학의 약사(略史)를 쓴 적이 있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포가 끼친 문학사적 영향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포는 보들레르(Baudelaire)를 낳고, 보들레르는 상징주의자들을 낳고, 상징주의자들은 폴 발레리(Paul Valery)를 낳았다.” 보르헤스의 말을 빌리자면 포는 에도가와 란포를 낳았다.

 

에도가와 란포 작품의 매력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이 실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그의 작품에 빠져들면 어디까지가 상상의 세계이며 어디서부터 현실 세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독자들은 상상과 현실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외줄에서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다. 란포가 그려 보이는 작품 속 상황들은 마치 현실 속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불안, 공포, 경악 등의 혼미한 상황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권(도서출판 두드림, 2008)탐미적 에로티시즘, 그로테스크(grotesque: 기괴함), 그리고 환상성난센스 요소가 가미된 묘사가 주를 이룬 총 2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란포의 단편을 읽으면 소재의 창발성에 놀라고, 때론 광기 어린 감정 묘사에 혀를 내두르고, 때로는 기발함에 멈칫하게 된다. 물론 일본 추리 · 미스터리 문학 작품의 범람 속에서 란포의 작품도 진부한 고전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란포는 진지하게 인간의 무서운 환상과 가학적인 충동을 파고듦으로써 공포 문학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구마 벌레』는 음울하고 어두운 인간의 극단적 욕망과 광기를 현실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스나기 중위는 전쟁으로 양손과 양다리를 잃어 몸체만으로 생활하는 장애인이다. 란포는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정신적 외상의 고통도 보여주는데, 자신만의 색다른 그로테스크한 묘사로 전쟁의 참상을 전달한다.

 

란포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20~30년대의 일본의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문화계를 지배하던 키워드는 ‘에로 그로 난센스’였다. 『인간 의자』『복면 무도회』는 공통으로 ‘신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신여성’은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 정치,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에 새롭게 나타났다. ‘에로 그로 난센스’ 시대 속에서 신여성은 남성들의 에로틱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었다. 남성들은 거리를 활보하는 신여성들을 마음껏 조롱하거나 성적인 자극을 은밀히 즐겼다.

 

『인간 의자』의 요시코는 소설가로 활동하는 신여성이다. 가난한 가구공은 여성의 몸에 과도하게 애착을 보인다. 그는 ‘서양식 의자’를 만들어 그 안에 숨어서 지낸다. 가구공의 의자 위에 여성이 앉으면 가구공은 의자 안에서 여성 몸의 접촉을 통해 나오는 쾌락을 즐긴다. 호텔에 있던 가구공의 의자는 요시코의 집으로 옮기게 된다. 가구공은 요시코의 몸을 탐할수록 점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가구공은 ‘에로틱한 일탈’을 통해 결핍된 욕망을 채운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변태성욕자’라고 부른다. ‘에로 그로 난센스’ 시대는 비정상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변태’로 분류했고, ‘변태성욕자’는 그 시대 언론이 폭넓게 쓰면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복면무도회』에 묘사된 신여성은 퇴폐와 타락의 이미지다. ‘20일회’는 에로틱한 유희를 즐기는 비밀 사교 모임이다. 친구 이노우에 지로의 소개로 20일회 정식 회원이 된 화자는 ‘가면무도회’를 가장한 섹스 모임에 참석하는데, 실수로 친구의 아내 하루꼬를 선택해서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다. 의도치 않게 불륜을 저지른 화자는 도리어 친구의 아내를 탓한다.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자가 어떻게 낯선 남자랑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이런 장소로 올 때가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하루꼬 씨가 그런 여자일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주]

 

 

하루꼬는 남편이 있는 인텔리 여성이다. 그러나 ‘결혼’은 신여성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다. 그녀가 사교를 가장한 퇴폐적인 모임에 참석한 것이 기존의 가부장적 가치관(‘아내는 무조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내는 집에만 머물러야 한다’)에 균열을 내고 틈을 만드는 전복적인 일이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여성들은 여성 자신의 인격과 개성에 대한 존중, 자유연애 등을 외치며 당당하게 구습의 족쇄를 풀려고 했다. 그러나 신여성들은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이유로, 남의 가정을 파탄 냈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비난을 받았다. 화자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외간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하루꼬에게 전가한다. 그러면서 성적 일탈을 저지른 여성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란포는 극단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즉 변태성욕자, 하층민, 무능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로테스크한 시대상을 포착했다. 대부분 공포 문학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루었던 데 반해, 란포의 공포 문학은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안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이거나 괴이한 사건들을 결합한다. 란포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알 수 없는 광기의 소유자, 공포와 악의 근원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음울한 존재이지만, 사회에 융합되지 못한 고립된 외로운 인간들이다. 란포는 사회에 배제된 존재들에게 일어나는 음산하고 알 수 없는 기괴함을 묘사할 때 아이러니와 유머를 결합하는데 이는 이들의 숨겨진 욕망의 실상을 더욱 추악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란포의 공포 문학 작품은 단순하지만 독특한 서사, 그리고 이 서사를 감각적으로 구현하는 환상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주]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복면무도회』,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도서출판 두드림, 2008, p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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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하나는 EXO, 레드벨벳,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이 소속된 기획사의 약자이다. 10대들이 말하는 ‘SM’은 ‘SM 엔터테인먼트’를 뜻한다. 또 하나의 ‘SM’은 ‘르노삼성자동차’가 출시한 자동차 시리즈 명이다. 나머지 하나의 ‘SM’은 성적인 용어다. 사디즘(sadism)마조히즘(masochism)을 일컫는 말이다. 이 두 단어를 합쳐서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절판] 사드 《소돔 120일》 (고도, 2000)

* 사드 《소돔의 120일》 (동서문화사, 2012)

* 레오폴드 폰 자허마조흐 《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사디즘은 성적 대상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다. 사디즘의 반대는 마조히즘이다. 마조히즘은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 성적 쾌감을 얻는 성향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사도마조히즘을 성도착증으로 분류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도마조히즘은 변태 성욕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도마조히즘은 변태의 대명사로 알려졌고 지금도 ‘불경한 단어’로 존재하고 있다. 사도마조히즘을 성적 지향으로 인정하고, 문화적 소재로 쓰이는 미국, 유럽 등과 비교하면 우리 사회에서 사도마조히즘의 ‘커밍아웃’은 먼 나라 얘기다.

 

 

 

 

 

 

 

 

 

 

 

 

 

 

 

 

 

 

* [절판] 에스텔라 V. 웰든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사도마조히스트는 가죽옷을 입고, 눈가리개, 채찍, 수갑 등 다양한 종류의 기구를 사용하면서 파트너와 함께 성적 행위를 한다. SM 플레이가 다소 변태적이고 극단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지만, 한쪽이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고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다. 실제로 SM 플레이는 파트너 간의 신뢰와 합의가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다. SM 플레이를 실행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역할(지배자 또는 피지배자)이나 성적 행위의 수위에 대해서 상대방과 논의를 해야 한다. 고문 위주의 SM 플레이 특성상 뜻밖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SM 플레이어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인 ‘안전 구호’를 만든다. 따라서 SM 플레이는 ‘상호 합의’로 이루어지는 ‘역할 놀이(role-playing)다.

 

1970~80년대 미국의 보수 우파들은 SM을 음란하고 위험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SM 반대 운동을 펼쳤다. 여기에 반포르노 운동에 앞장서는 페미니스트들도 SM 반대 운동에 가세했다. 이들 세력은 SM을 ‘불법’, 또는 ‘위험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미지의 대상에게 불안을 느끼면 그것과 관련된 인과성을 찾아 해소하려는 심리가 있다. 불안은 공포가 되고, 점차 확산한 공포는 미지의 대상을 경계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SM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전혀 관련 없는 행위에 대한 호기심과 과도한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SM 클럽을 ‘변태 성욕자들의 모임 장소’ 또는 ‘게이들이 모여 변태 행위를 하는 불법 장소’로 오해한다. 과잉된 공포심과 무지의 편견은 SM 플레이어와 성소수자 모두를 공격하기 위한 빌미로 이용된다. 그리고 그들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비정상인’으로 규정한다.

 

 

 

 

 

 

 

 

 

 

 

 

 

 

 

 

 

* 게일 루빈 《일탈 : 게일 루빈 선집》 (현실문화, 2015)

 

 

 

게일 루빈(Gayle Rubin)『가죽의 위협 : 정치와 S/M에 관한 논평』이라는 글에서 SM 문화가 억압받는 상황의 사회적 맥락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녀는 보수 우파의 반포르노 운동에 힘을 실어준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한다. 루빈의 주장에 따르면 반포르노 운동에 뛰어든 페미니스트들은 SM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까지 억압했다. 루빈은 미국의 레즈비언 사도마조히즘 그룹 사모아(Samois)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다. 사모아는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존속되었는데, 이 시기에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SM 페미니스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 당시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SM 문화를 가부장제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었다. 일부 페미니즘 서점은 사모아 출판물 전시를 거부했고, 전미여성단체(NOW)는 1980년에 ‘레즈비언 게이 권리’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켜 SM과 포르노그래피를 공식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 삽 쇤마이어, 마틴 케셀 《쾌락도구사전》 (현실문화, 2003)

 

 

 

상호 합의 속에서 상대방과 신체적 학대를 주고받는 사도마조히즘은 조금 극단적인 성적 지향일 뿐이다. 사실 가죽옷을 입지 않아도, 채찍으로 파트너를 때리지 않아도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사디즘이 있다. 《쾌락도구사전》(삽 쇤마이어 · 마틴 케셀 공저, 현실문화, 2003)의 ‘사디즘’ 항목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디즘은 우리 자신의 일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거워해본 적이 없는 사람, 어릴 때 동물을 괴롭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주1]

 

 

남자라면 어린 시절에 사디즘과 유사한 놀이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만나면 남자아이들은 유치한 행동을 한다. 여자아이의 긴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팔을 꼬집고 도망친다. 이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시선을 자신에게만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여자아이를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아이는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여자아이의 괴로운 표정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보다 사디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가부장적 사회는 남성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란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는 사디스트가 되고, 여성은 마조히스트의 위치로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녀 권력의 불평등이 생기는데, 페미니스트들은 사도마조히즘의 불평등적 관계를 비판한다.

 

 

 

 

 

 

 

 

 

 

 

 

 

 

 

 

 

 

 

* 장 자크 루소 《고백》 (책세상, 2015)

* [품절] 리오 담로시 《루소 :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교양인, 2011)

 

 

 

마조히즘에 가까운 성적 환상도 유년기에 형성된다[주2]. 심리학자들은 마조히즘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는다. 유년기에 어머니나 아버지 등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 아이는 상대방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아이는 상대방에게 지배당하는 상황을 즐기면서 친부모가 채우지 못한 애정을 스스로 충족시킨다. 유년기의 마조히즘적 성향과 그 배경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어린 시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소의 어머니는 루소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계공인 아버지는 어린 루소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여자 가정교사가 루소의 양육을 맡는다. 그녀는 루소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루소의 엉덩이를 때리는 벌을 준다. 모성을 경험하지 못한 루소는 가정교사의 체벌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고, 엉덩이를 맞으면서 성적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엉덩이 부위에 고통을 극대화하는 마조히즘적 행동을 반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갖고 있다. 우리도 모르게 사도마조히즘이 꿈틀대고 있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변태다. 아니, 우리 모두는 퀴어(queer)하다!

 

 

 

 

[주1] 삽 쇤마이어 · 마틴 케셀 지음, 김봉규 옮김, 《쾌락도구사전》, 현실문화연구, 2003, pp. 95.

 

[주2] 에스텔라 V. 웰든 지음, 최정우 옮김, 《사도마조히즘》, 이제이북스, 2006, p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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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08-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의 관심사는 정말 넓군요. 게다가 늘 각자의 입장을 존중하려 노력하시는 듯해요. 한때 저는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나중에 깨달았죠.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요. 그냥 그들의 삶을 존중하면 된다는 사실을요.

지금껏 SM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시루스님 글을 읽으니 또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역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존중하면 되겠지요? 아니 이해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그냥 그들의 삶을 인정하면 될 일이겠지요.

cyrus 2018-08-06 17:30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잘 몰랐을 땐 여성혐오를 했고, 성소수자를 무시했어요.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과오를 반성하려고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가 몰랐던 것들이 계속 나오고, 반성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네요. ^^
 
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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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는 ‘이성’이라는 지적 능력으로 가장 찬란한 세계를 가꾸어 왔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성은 자연에 대한 더욱 거침없는 행보를 하게 된다. 자연에 대한 개발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만 같았던 과학기술 문명. 그러나 이에 대한 위기의 파열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서구의 지성계에서 울렸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성은 문명과 인간의 야만이 결합한 파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무력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성의 위기는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과학기술 문명이 초래한 위험은 이제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 위협이 되었다. 현재 인류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 의한 기상이변, 세계 경제를 장기 침체의 그늘로 몰아넣는 불평등, 종교 및 민족 간의 갈등에 의한 테러 등의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문명에서 시작됐다. 이를 다시 과학과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이 물음에 대해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한다. 그는 과학과 이성을 통해 인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왔으며 앞으로도 도덕이 진보한 세계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윤리학자들은 과학기술 문명의 위기를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인류는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기보다는 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도, 살인, 강간 등 수없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일부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는 민주주의 문제, 종교 분쟁, 테러 등 복잡한 현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분명 인류는 도덕이 퇴보하고 있는 시대를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셔머는 과학과 이성이 도덕 진보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덕의 궤적》(바다출판사, 2018)이라는 책에서 자신을 ‘낙관주의자’라고 칭했다[주1]. 그의 지나친 낙관에 경계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셔머는 이성적 논증과 경험적 증거가 동원된 정당한 근거를 대면서 과학과 이성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 감정을 갖고 태어나는 ‘감응적 존재(sentient being)이다. 감응적 존재는 감정, 지각, 감각, 반응, 의식이 있어서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감응적 존재는 ‘더 좋은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진보적인 삶’을 지향한다. 따라서 도덕의 진보는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이 달린 문제이다. 셔머는 “도덕의 궤적은 정의를 향해 구부러진다”라는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학과 이성이 도덕의 궤적을 점진적으로 구부러지게 만든 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서 전근대 사회를 지배했던 종교적 초자연주의, 미신, 마술에 대한 믿음이 약화하였다. 이 시기부터 ‘도덕의 진보’가 전개됐다. 대부분 사람, 특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교의 등장으로 도덕이 진보되었다고 생각한다. 셔머는 이 통념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역사적으로 종교가 일으킨 도덕적 실수, 즉 도덕적 퇴보의 사례들을 열거한다.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노예제도, 그리고 동성애 혐오. 종교는 오늘날까지도 과거에 일으켰던 도덕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있는 날에 모여 반동성애 집회를 연다. 바티칸시국은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이다.

 

이 책에서 셔머가 강조하는 과학은 ‘기술 중심의 과학’을 뜻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과학에 기반을 둔 도덕’이기도 하다[주2]. 도덕과학은 과학적 방법론(경험적 조사와 합리적 분석)을 활용하면서 어떤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진다. 그래서 도덕과학은 경험과학이다. 민주주의의 부상, 여권 및 성소수자 권리 신장, 동물권 옹호 등은 ‘도덕적 진보의 증거’이며 이러한 성취의 힘은 과학과 이성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도덕적 진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셔머는 종교가 인류의 전반적인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셔머는 ‘프로토피아(protopia)를 추구한다. 프로토피아는 단순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것, 즉 도덕이 꾸준히 진보하는 세계이다. 마틴 루서 킹이 말했던 대로 결국 도덕의 궤적은 정의로 향해 구부러지게 되어 있다. 셔머는 한발 더 나아가 ‘민족국가’와 ‘국경’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며 분권화된 수평적 위계의 도시국가가 등장하리라 전망한다. 저자의 전망이 실현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다만, 종교의 도덕적 퇴보를 비판하기 위해 기독교와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저자의 해석은 꼼꼼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종교학자들의 반론이 예상되는 대목이 보이는데, 저자는 성경이 ‘문학을 통틀어 가장 부도덕한 작품’이라고 말한다[주3]. 그리고 여성 억압과 노예제도를 정당화하는 성경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기독교를 가루가 되도록 깐다. 사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도덕과학에 대한 저자의 낙관적인 믿음이다. 과연 과학은 도덕의 진보를 위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글쎄, 과학의 역사를 돌아오면 윤리를 배신한 사례가 있었다. 우생학과 731부대의 생체 실험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감응적 존재’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차별과 살육을 정당화한 사례이다. '퇴보한 과학'의 어두운 면도 조명해야 한다. 정형화된 성과 평가에 눈이 멀어 실험을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는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도덕과학 정착은 머나먼 환상처럼 여겨진다.

 

 

 

 

※ Trivia

 

471쪽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대표작 《군중 심리(La Psychologie des foules)》를 ‘군중’으로 소개되었다. 원서명에 있는 ‘Psychologie(심리, 심리학)’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주1] 마이클 셔머, 김명주 옮김, 《도덕의 궤적》, 바다출판사, 2018, pp. 581.

 

[주2] 같은 책, pp. 25, pp. 270~271.

 

[주3] 같은 책, pp. 25, p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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