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 편집자는 후회한다 외 38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3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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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로버츠(Russell Roberts)가 쓴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 감정론》을 알기 쉽게 풀어서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을 통해서 말한 행복, 이타심, 정의 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진부한 말이지만, 로버츠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좋은 작가가 쓴 책들을 읽으라고 권한다. 당연하게도 그는 애덤 스미스의 책을 추천한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럼 자세를 낮춰 아이와 대화해보자. 이메일을 확인하지 말고 배우자와 기분 좋게 데이트를 즐기자. 애덤 스미스 혹은 작가 제인 오스틴이나 P. G. 우드하우스의 책을 더 많이 읽자.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277쪽)

 

 

P. G. 우드하우스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는 우드하우스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다. 숲에 있는 집, 아니면 재목을 보관하는 창고(Woodhouse)? 독특한 성(姓)이다. 여행지 숙박 시설 이름을 연상케 한다. P. G. 우드하우스는 아마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전체 이름은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Pelham Grenville Wodehouse)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다. 그가 주로 쓴 글은 통속적인 코미디 소설이다.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브스와 우스터(Jeeves and Wooster)’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은 우드하우스의 대표작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우드하우스는 ‘드론스 클럽(Drones Club)’ 시리즈, ‘유크리지(Ukridge)’ 시리즈 등을 연이어 발표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다작 작가로도 유명한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백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과 수십 편의 희곡 작품을 썼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 선집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를 포함한 총 3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온 ‘현대문학 세계 단편 단편선’ 시리즈 중에 쪽수가 가장 많은 책이다. 놀라지 마시라. 1천 쪽이 넘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분량이 가장 많은 단편 선집은 총 964쪽의 《그레이엄 그린》이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를 직접 보면 정말 놀랄 거다. 말 그대로 ‘벽돌 책’이다. 이 책을 한 손에 들면 무게감이 조금 느껴진다.

 

『지브스와 우스터』는 덜렁이 귀족 버티 우스터(Bertie Wooster)와 그의 집사 지브스를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소설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이 작품에 묘사된 우스터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호구(虎口)이다.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해서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스터는 일을 어설프게 처리해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집사 지브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위기 때마다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하고, 그는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게다가 내 친구들이 어느 모로 보나 궁지에 빠졌을 때도 언제나 지브스가 나서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지브스와 하드보일드 공작』, 69쪽)

 

 

『지브스와 우스터』의 묘미는 귀족 주인과 집사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상하 관계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점이다. 지브스는 주인을 돕는 조언자 역할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이다. 우스터는 서브 주인공(deuteragonist)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사건에 휘말린 우스터와 그 주변 인물들은 지브스가 알려준 대로 행동한다.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브스는 조언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조종자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우스터지만, 그는 지브스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이러한 역전된 관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우스꽝스러운 귀족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면서 귀족 사회를 풍자하는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우드하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귀족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순진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종종 위선적인 태도와 속물근성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어설퍼 보인다. 그래서 우드하우스의 작품에서 묘사된 인물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인물, 즉 ‘소설에 나올 법한 가공인물’이다. 개그와 코미디가 유발하는 웃음이 일회성이다. 코미디는 한번 물리고 나면 다시 통하지 않는다. 코미디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때 큰 사랑을 받았던 재미난 이야기나 우스꽝스러운 작중 인물이라 할지라도 유통기한이 지나고 나면 독자들의 반응은 냉랭해질 수밖에 없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에 실린 작품들은 1910~30년대에 나온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미 우드하우스가 보여준 웃음의 수명이 다 한 지 오래다. 게다가 우리나라 독자들은 너무나도 오래된 ‘영국식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을 처음 접해보거나 영국식 유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분간이 잘 가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우드하우스의 『지브스와 우스터』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인 나로서는 역자와 출판사(현대문학)가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줘서 고맙긴 하지만("고마워요, 현대문학 출판사"[주]), 역자가 작품의 코믹한 분위기를 살리지 못해서 아쉽다. 내가 보기엔 문학 작품의 구절을 인용해서 재미있게 표현했거나 언어유희로 추정되는 몇 개의 문장이 보이던데, 그걸 주석을 달아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벽돌 책’을 읽는 건 독자 당신의 몫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39편의 소설 중에 재미있다고 느낄 법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지루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절반쯤 읽다가 재미없어서 덮었다. 혹시 당신이 이 소설에 호기심을 느껴서 읽게 된다면 이 소설의 유머 코드가 당신의 취향에 맞길 바란다.

 

 

 

[주]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단편집이 1934년에 발표한 <고마워, 지브스(Thank You, Jeev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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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9-01-1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1000페이지... 그러나 이 글을 읽으니 읽고 싶다는 전투본능이 갑자기 생기네요 ㅋㅋㅋ

cyrus 2019-01-19 06:54   좋아요 0 | URL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라서 지루할 수도 있다고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돌이다 근데 벽돌을 사지 않고 빌려서 읽는 시루스님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cyrus 2019-01-19 06:58   좋아요 0 | URL
가격이 좀 비싼 ‘벽돌 책’을 사는 독자가 더 대단해요. 저는 새로 나온 ‘벽돌 책’을 사본 일이 거의 없어요. 알라딘 서점이나 헌책방에 파는 ‘벽돌 책’은 정가보다 조금 싸기 때문에 저는 주로 그런 책들을 사는 편입니다. ^^

목나무 2019-01-1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엄 그린도 읽다 중도포기 상태인데 ㅡ.ㅡ
벽돌책이라하니 헉하면서도 땡기는 이 마음은 뭘까나요. ㅋㅋ

cyrus 2019-01-19 07:04   좋아요 0 | URL
책이 상당히 두꺼워서 읽기가 조금 불편했어요. ^^;;

stella.K 2019-01-1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까 동서문화사 책들 생각난다.
저런 책이 두 권인 경우가 많잖아.
그래도 이건 단편모음이지 동서문화사 책들은 장편이야.
<장 크리스토프 1> 읽다가 일단 덮어둔 상태다.
그래도 장편이나 저런 두꺼운 책에 대한 로망이 있어.
난 가끔 펄벅의 <대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그것도 장왕록 박사가 번역한 거. 웃기지?
결국 덮어버릴 거면서.ㅋ

cyrus 2019-01-19 07:06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두꺼운 책을 한 번 보고 싶은 호기심과 도전의식... ㅎㅎㅎㅎ

syo 2019-01-1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 생각이 나는군요... 1000쪽....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던데요.

cyrus 2019-01-19 07: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쓰는 것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 해요. 책의 중간까지 쓰다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마무리 못 짓고 중단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특히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책을 완성되지 못한 경우는 정말 불행한 일이죠... ^^;;

보슬비 2019-01-18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에는 벽돌책만 보면 소장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소장보다는 읽기 편한쪽으로 성향이 바뀌어서 다행인것 같아요. 이제 넘 두꺼우면 손목 아파요.....하지만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단편집들은 소장하고 싶긴해요.^^

cyrus 2019-01-19 07:11   좋아요 1 | URL
이번에 나온 <우드하우스>는 무게감이 느껴져서 들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어요. ^^;;

2019-01-19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9 07:12   좋아요 0 | URL
책 읽다가 잠이 오면 바로 베개로 써도 됩니다.. ㅎㅎㅎㅎ

Falstaff 2019-03-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통기간이 지난 유머, 그것도 영국식 유머라는 말씀, 백퍼 공감입니다.
저 역시 이 이유 때문에 구입을 안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이제 생각에 말뚝 박았습니다. ^^;

cyrus 2019-03-15 16:36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는 소설이라서 당분간은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 - 21세기 포스트 휴먼을 위한
이규명 지음 / 동인(이성모)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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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문학 비평은 여성의 시각으로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 비평은 서구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분석 방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페미니즘 비평은 문학작품 속에 여성을 왜곡하는 이미지를 바로잡는 여성 이미지 비평, 남성 작가들이 주도한 문학사에서 소외된 여성 작가와 작품을 복원하는 일을 포함해 다양한 영역이 있다. 초기 페미니즘 비평은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이 겪는 ‘차별’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남성에게는 죄의식을, 여성에게는 분노를 강요하는 초기 페미니즘 비평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이를 극복하는 포스트 페미니즘 비평이 등장한다. 포스트 페미니즘 비평은 새로운 피를 수혈 받으면서 변화해왔다. 그것은 탈식민주의, 생태주의 같은 시대사조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이론을 구성하고 있다. 페미니즘 비평의 유형이 다양해지는 까닭은 여성 문제의 이슈가 시대에 따라 변하고, 하나의 이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21세기 포스트 휴먼을 위한 영미 여성시인과 여성이론》은 20명의 영미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초기 페미니즘 사상에서부터 포스트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 사상 및 비평의 모든 것을 간략하게 소개한 책이다. 책의 제목만 보면 영미 시작품과 영미 페미니즘 이론을 다룬 책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저자는 영미 여성 시인이 쓴 작품과 우리나라 여성 시인의 작품을 같이 읽으면서 비교하여 분석한다. 이 책에 나오는 ‘포스트 휴먼’은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양성평등(남성과 여성으로 나뉘는 젠더 이분법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을 지향하는 인간이다. 저자는 페미니즘 비평이 남성중심주의를 반성하게 만드는 도구로 보고 있으면서도 여성 고유의 경험에만 주목하는 여성 중심 비평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내비친다. 그는 또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여성 비평가가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페미니즘 비평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선 여성이 남성을 탄압하는 역전 현상으로 본다. 페미니즘 비평을 바라보는 저자의 반응은 상당히 온건하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페미니즘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페미니즘 사상과 문학 이론들을 아는 대로 쭉 나열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의 서문에 저자가 페미니즘에 무지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문장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편향의 여성상위의 이념 아니라 남성중심의 환경 개선을 위한 혹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면역력 증강을 위한 아울러 남성중심주의를 반성케 하는 일시적인 증상으로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

 

 

과연 저자는 페미니즘을 잘 몰라서 생각 없이 ‘증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일까. 페미니즘을 ‘일시적 증상’으로 보는 저자의 시선은 과거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페미니스트들을 ‘제정신이 아닌 사람’, ‘히스테리 부리는 여자’라고 조롱하던 반페미니스트들의 태도와 유사하다.

 

그리고 저자는 동양사상이 ‘남녀 조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학문이라고 말하면서, 동양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즘은 ‘일종의 열등의식이자 피해 의식’이라고 정의 내린다. 음양오행설에 비추어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건 좋으나 페미니즘을 동양사상과 비교하면서 깎아내리는 입장은 눈에 거슬린다.

 

이 책은 서구에서 수입된 어려운 이론에 치우친 채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있어서 독자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다. 저자는 현란한 언어로 무장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경도돼 텍스트를 분석하는 방편으로 프로이트(Freud), 라캉(Lacan), 들뢰즈(Deleuze), 데리다(Derrida)등의 이론을 끌어들인다. 심지어 저자는 라캉을 ‘페미니스트의 대부(代父)’라고 소개한다[주]. 라캉이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건 사실이나 그가 페미니스트들을 보호해주는 후견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의 대부’라는 표현에는 학문 세계 안에 서 있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체적인 위치를 한 단계 낮춰 보는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책의 편집 방식이 엉망이다. 영문 텍스트의 문장 일부를 번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가져와 주석으로 달아놓은 저자의 태도는 불친절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영문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 아닌 이상 일반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89쪽에 미국의 소설가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를 여성 작가로 잘못 소개한 내용이 있으며, 176쪽에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명작과 동일한 이름의 잡지사 「허영의 시장(Vanity Fair)」”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 또한 잘못된 내용이다. 《허영의 시장》은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William Thackeray)가 쓴 작품이다. 저자가 하디의 소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문학과지성사)과 새커리의 작품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두 작품에 공통으로 들어간 ‘시장’은 서로 다른 의미다.

 

페미니즘 비평은 남성 작가가 쓴 작품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부정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그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이야기에 가려진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남성 작가와 비평가들은 이제 높은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턱없이 부풀려진 자만심도 걸러져야 한다. 현란한 수사로 여성을 타자로 묘사하지 말라. 비평하는 감시자가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들로 채워져 있어도 그 문학은 썩어빠진 것이다. 페미니즘 비평이 없는 문단에 어찌 창작의 긴장감이 흐르겠는가? 페미니즘 비평이 없으면 문학이 썩어 죽는다.

 

 

 

 

[주] 『울스톤크레프트 & 핀치』,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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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落胎)‘태아(胎)를 떨어뜨려서(落) 죽인다’는 뜻의 단어다. 이 단어는 낙태를 범죄행위로 보게 만들고, ‘낙태죄’는 낙태한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1953년에 제정된 형법 제27장은 낙태를 한 자, 낙태하게 한 자, 의사 등에 대한 ‘낙태의 죄’를 규정한 내용이다. ‘낙태죄’는 형법 용어이고, ‘낙태’는 여성 자신의 임신 중지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여성 혐오 단어다. 페미니스트들은 낙태 대신에 ‘임신 중지(임신 중단)라는 단어를 쓴다. 의료적 개입으로 임신 중지를 하는 경우는 ‘인공 임신 중절’이라고 한다.

 

 

 

 

 

 

 

 

 

 

 

 

 

 

 

 

 

* 조은주 《가족과 통치》 (창비, 2018)

 

 

 

낙태죄가 강화된 이면에는 국가 정책이 있다. 1960년대에 정부는 ‘인구 증가가 가난의 원인’이라는 맬서스(Malthus)의 비관론적 진단을 수용하면서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폈다. 국가는 낙태를 눈감아주곤 했다. 모자보건법에 의하면 낙태는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시행되었다. 1973년에 제정된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불가피한 경우에만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다. 수술이 허용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모체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와 기형아가 태어나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다.

 

불임 대상자는 주로 여성들이었다. 물론 남성들도 국가 주도 가족계획정책에 자연스럽게 동원되었으며 예비군 훈련을 면제받으려고 정관수술을 하고 오는 남성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임 사업은 주로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당시 피임, 낙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몸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된 국가 주도 가족계획정책으로 말미암아 여성 몸의 건강이나 재생산 권리에 대한 인식은 미흡했다. 2000년대 이후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자 낙태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인구가 많을 때는 낙태죄를 무시하고 가족계획정책을 강요하다가, 출산율이 떨어지자 낙태죄를 처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임신 중지를 둘러싼 찬반양론은 ‘프로라이프(pro-life)‘프로초이스(pro-choice)로 구별된다. 프로라이프는 임신 중지를 반대하는 진영이다. 그들은 태아는 인간이므로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 우리나라에 출범한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낙태에 반대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낙태신고센터를 개설하고 낙태 수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는 등 낙태 처벌 강화 운동을 펼쳐왔다. 프로라이프에 맞서고 있는 프로초이스는 낙태죄를 폐지하여 임신 중지를 ‘여성의 선택권’ 또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시몬 베유, 이민경 옮김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갈라파고스, 2018)

 

 

 

임신 중지 투쟁은 여성해방운동에 대중적 차원을 부여함으로써 여성들을 결집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1973년은 프랑스가 낙태 합법화를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해이다. 앞서 1971년에 보부아르(Beauvoir),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등 여성 유명인사 343명이 낙태 합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낙태 경험을 공개했고, “우리도 법을 어겼으니 처벌하라”고 외치면서 낙태죄에 맞섰다. 1974년 보건부 장관에 오른 시몬 베유(Simone Weil)는 낙태 합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이 법안은 당시에는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보수 언론, 임신 중지에 반대하는 종교와 사회단체들은 그녀를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베유는 진심으로 의원들을 설득해 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이듬해에 ‘베유 법’이라고 불리는 법이 통과되었고, 프랑스 여성들은 모든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며 안전한 환경에서 임신 중지를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베유가 의회에 ‘베유 법’을 제출하면서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문 전문은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갈라파고스)에 수록되어 있다.

 

 

 

 

 

 

 

 

 

 

 

 

 

 

 

 

 

* 우유니게, 이민경, 정혜윤 외 《유럽 낙태 여행》 (봄알람, 2018)

 

 

 

임신 중지를 반대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몸가짐 제대로 하지 못한 여성들이 결혼해서 애 낳을 생각은 안 하고 애를 지운다고 힐난한다. 도덕성은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살인자라고 부르면서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음지에서 성행하는 임신 중지 시술 실태의 심각성에만 집중할 뿐, 그로 인해 혼자서 고통을 감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여성들의 비극에는 관심이 없다. 불법 임신 중지 시술로 죽어가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에 이른다는 사실도, 임신 중지 시술을 받기 위해 타지로 건너가는 여성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배틀그라운드》 (후마니타스, 2018)

*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 (오월의봄, 2018)

 

 

 

낙태죄는 낙태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다. 하지만 임신 중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다. 피임을 거부하는 남성, 혼전 임신에 대한 사회적 낙인, 맞벌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양육비 등 임신 중지 문제 속엔 여성 개인의 결정 권한을 넘어서는 훨씬 복잡한 요인이 숨어 있다. 이 모순들을 풀어내지 않은 채 반복되는 임신 중지를 둘러싼 논쟁은 윤리 논쟁으로 변질하며 허용과 금지의 문제로 접근하는 데 그치게 된다.

 

2016년에 결성된 이래 성과 재생산 문제에 대해 꾸준히 논의를 진행해온 성과재생산포럼은 임신 중지는 법, 정책, 종교, 문화 등 다양한 관점이 교차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성과재생산포럼은 국가의 개입과 통제에 종속된 여성의 몸을 ‘배틀그라운드’, 즉 전쟁터로 이해하고, 그에 맞설 수 있는 다양한 전략들을 모색한다. 성과재생산포럼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 여성의 재생산 문제’이다. 장여애성 인권단체인 ‘장애여성공감’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문제를 외면한 채 ‘비장애 여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 임신 중지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출산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장애 여성들은 출산하지 않을 권리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장애 여성의 경우 반대로 장애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이유로 강제로 불임을 당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모자보건법은 ‘정상성’을 갖춘 국민을 재생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법이다. 장애 여성의 출산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지속하면 장애 여성은 자신이 성적 주체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며 자신의 성과 관련된 지식과 피임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임신 중지 문제를 논할 때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병행해야 한다.

 

임신 중지 문제는 단순히 여성 개인의 선택 및 행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각기 다른 이름과 경험, 그리고 다양한 삶의 여성들을 관통하는 광범위하고도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임신 중지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더 많이 질문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장애 여성들도 출산, 재생산, 임신 중지에 대해 자유롭게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협소하게 구획된 ‘배틀그라운드’를 좀 더 넓게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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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8 12:20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일본 ‘위안부’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던데, 그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에 대해선 잘 모르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제가 아는 페미니스트와 여성 운동가들은 일본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전쟁 성폭력, 코피노 문제 등을 공론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추천한 영화,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고나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라면 페미니즘 독서 모임 멤버들과 함께 봐야겠습니다. ^^

독서괭 2019-01-17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팟캐스트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성과재생산포럼 소속 두분이 나와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습니다. 책도 읽어봐야지 하고 있는데 관련 책들 정리해주셔서 좋네요~~^^

cyrus 2019-01-18 12:24   좋아요 1 | URL
<배틀그라운드>는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하기가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여성문제를 보여주고 있어요. 장애여성의 재생산, 임신 중지 문제를 다룬 글은 정말 좋았습니다. ^^
 
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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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에 언어가 있다. 그 언어를 아는 사람만이 책(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언어가 바로 수학”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오는 수학을 자연의 기본 언어이자 자연 전체에 적용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수학과 물리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면 수학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수식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일상의 익숙한 사물에 빗대어 물리학 이론을 능숙하게 설명할 줄 알았다. 생전에 그는 수학의 도움 없이도 물리학의 모든 이론이 설명될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날이 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 대중 앞에 선보인 TV 방송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불행히도 수학을 모르면 자연의 가장 심원한 아름다움을 실제로 느끼기 어렵다고. 앞서 갈릴레오가 말했듯이 수학은 자연의 언어이며 물리학자들 또한 수식을 대체할 다른 언어로 복잡하면서도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떨림과 울림.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대체 이 책이 물리학의 어떤 측면을 어떻게 설명하려 하는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요즘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김상욱 교수는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떨림과 울림》을 썼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식으로 설명해야 하는 물리학은 ‘차가운 물리학’이다. 물리학은 인간이 보지 못하거나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는 자연 현상을 보이게 해준다. 그런데 ‘차가운 물리학’은 불친절하다. ‘차가운 물리학’은 자연 현상을 검증할 수 있는 간단한 수식을 보여주기만 한다. 그런데 수학과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수식이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수식이 아니라 알아먹기 힘든 ‘외계어’이다. 결국 이들은 물리학에 진절머리 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물리학’ 하면 복잡한 수식을 떠올린다. 우리가 수학 다음으로 물리학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 이유이다. 그리하여 ‘차가운 물리학’은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학문으로 남게 된다.

 

김상욱 교수는 독자들이 천천히 손발을 담글 수 있게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리학’을 데운다. 물리학이 어느 정도 미지근해지면 독자들은 그 속에서 전해지는 ‘떨림’과 ‘울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물리학의 ‘떨림’과 ‘울림’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재까지도 ‘떨림’과 ‘울림’이 반복되고 있는 거대한 물리의 세계이다. 이를테면 전자기파는 물이 떨면서 흐르는 것처럼 진동하는(물리학 용어로 ‘파동’이라고 한다) 빛의 일종이다. 1초 동안 많이 진동할수록,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높아진다. 진동수에 따라 전파기파의 종류는 다양하다. TV나 라디오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은 이 전자기파에서 흘러나온다. 전자기파가 계속 진동하지 못한다면 모든 가전제품의 작동은 멈췄을 것이다. 우리가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것은 소리가 일으키는 파동, 즉 울림이 만들어낸 근사한 효과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음악은 소리라는 물리적 현상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 뇌는 이 소리의 파동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인다. 김상욱 교수는 우주를 포함한 이 거대한 세상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떨림과 울림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미세한 진동으로 숨 쉬고, 말하면서 움직인다.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떨림’과 ‘울림’은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우리가 오감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 받아들인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만물의 ‘떨림’과 ‘울림’을 눈으로 보이게끔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떨림’과 ‘울림’이 남아 있다. 그래서 김상욱 교수는 이 책에서 ‘불투명한 세계’ 속에 사는 과학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를 언급하면서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다. ‘차가운 물리학’은 경험이나 증거를 들어가면서 어떤 현상의 실체를 증명하려고 한다. ‘차가운 물리학’에 익숙한 과학자들은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세상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리고 간결한 수식으로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들은 수식과 과학적 증거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비과학’으로 취급했다. 물리학이 차가우니 그것에 익숙해진 과학자들의 태도가 쌀쌀맞을 수밖에 없다. 이러면 과학자들은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은 무지를 인정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대중들 앞에서 복잡한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어려워한다면서 고백한 파인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파인먼은 세상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는 걸 알았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과학자들이 자기들이 보는(보고 싶은) 눈, 자기가 아는 언어(수식)로 세상을 설명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이 차가워질수록 그 속에 있어야 인간성은 시들게 된다. 일말의 인간성이 남아있지 않은 물리학은 ‘얼어 죽은 물리학’이다. 이런 학문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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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01-17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이 아마 팟캐스트 ‘과학하는 사람들‘에도 종종 나오시는 걸로 압니다. TV보다는 팟캐스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강의하셨고 ‘알쓸신잡‘에서는 편집이 좀 그랬는지 많이 나오지는 않더라구요. 이학과 공학은 제가 늘 어려운 분야라서 좀더 많이 읽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cyrus 2019-01-17 13:52   좋아요 0 | URL
김상욱 교수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글이 담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자가 물리학의 기본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엘리엇 평전을 언급하는 것을 깜빡했다. 국내에 출간된 엘리엇 평전은 3종이다.

 

 

 

 

 

 

 

 

 

 

 

 

 

 

 

 

 

 

 

* [품절] 피터 애크로이드 《엘리엇: 영혼의 순례자》(책세상, 1999)

* [절판] 폴커 초츠 《엘리엇》(한길사, 1997)

* [절판, No Image] T.S. 매튜우즈 《평전 T. S. 엘리어트》(탐구당, 1981)

 

 

 

가장 먼저 나온 게 《평전 T. S. 엘리어트》(탐구당)다. 워낙 오래된 책이라서 실물을 본 적이 없고, 알라딘에선 책표지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엘리엇을 ‘엘리어트’로 부르거나 쓰기도 했다. 그래서 알라딘 검색창에 ‘엘리어트’를 입력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와 주가의 움직임을 분석할 때 쓰는 ‘엘리어트 파동 이론’이다. 그래서 시인 엘리엇에 대한 책을 찾아보려면 번거롭더라도 ‘T. S. 엘리엇’으로 입력하면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철학자 폴커 초츠(Volker Zotz)가 쓴 《엘리엇》(한길사)‘로로로’ 평전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로로로’ 시리즈는 1950년대 말 독일 로볼트 출판사(Rowohlt Verlag)가 펴낸 평전 시리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길로로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평전이라기보다는 평전 형식의 입문서에 더 가깝다. 예전에 다른 ‘한길로로로 시리즈’ 몇 권을 본 적이 있는데, 늘 볼 때마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한 번 봐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문장도 보인다.

 

 

 

 

 

 

 

 

 

 

 

 

 

 

 

 

 

 

* 버트런드 러셀 《인생은 뜨겁게: 러셀 자서전》(사회평론, 2003)

* 버트런드 러셀 《러셀 자서전》(사회평론, 2003)

 

 

 

 

 

 

 

 

 

 

 

 

 

 

 

 

* [품절]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이후, 2009)

 

 

 

영국의 소설가 피터 애크로이드(Peter Aykroyd)가 쓴 《엘리엇: 영혼의 순례자》(책세상)는 ‘평전’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책이다. 저자는 엘리엇이 쓴 글뿐만 아니라 엘리엇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 회고록, 일기 등 여러 가지 사료들을 참고하여 엘리엇의 사적인 모습을 복원했다. 특히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보는 엘리엇의 모습이 흥미롭다. 

 

 

 

 

 

엘리엇은 하버드대학 철학과 조교로 일하면서 러셀을 처음 만났다. 러셀은 영국에 정착한 엘리엇과 그의 첫 번째 아내 비비안 헤이우드(Vivien Haigh-Wood)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스승이자 친구였다. 궁핍한 경제 형편으로 인해 엘리엇과 비비안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러셀은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러셀은 엘리엇과 비비안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을 자기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다. 세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의심할만한 이상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다. 러셀과 비비안은 ‘선을 넘은 관계’에 이르게 된다. 평소에 과묵할 정도로 내성적인 엘리엇은 이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엘리엇은 러셀과 아내의 불륜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굴욕감을 느껴 엄청 고통스러웠다고 울프에게 고백했다. 나중에 살펴봐야겠지만, 엘리엇을 가까이서 본 동시대 인물들의 생각을 알아보려면 러셀의 자서전과 울프의 일기를 부수적으로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이 두 사람이 쓴 기록을 많이 참고했다. 러셀의 자서전과 울프의 일기를 번역한 책에 엘리엇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엘리엇의 삶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시 작품과 희곡 작품을 소개하면서 자세히 분석한다. 우리나라에서 엘리엇은 ‘시인’으로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시인으로서의 엘리엇’이 엘리엇의 초 · 중기 문학으로 본다면, ‘극작가로서의 엘리엇’은 중기 · 말기 문학에 해당한다. 엘리엇은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했는데, 이 평전에서는 ‘문학비평가로서의 엘리엇’에 대한 내용이 다소 적은 편이다. 사실 이것까지 설명하게 되면 평전의 분량은 더 늘어날 것이다.

 

 

 

 

 

 

 

 

 

 

 

 

 

 

 

 

* 이철희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황무지 원본 연구》(L.I.E, 2012)

* [품절] 한국 T.S.엘리엇학회 엮음 《T. S. 엘리엇 시》(동인, 2006)

 

 

 

사실 애크로이드의 엘리엇 평전은 1984년에 나온 책이다. 당연히 이 책에 1990년대 이후부터 알려진 엘리엇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엘리엇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71년에 그의 두 번째 부인 발레리 플레처(Valerie Fletcher)한동안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삭제된 《황무지》 원고를 공개했다. 엘리엇의 절친한 동료이자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가 《황무지》를 첨삭했다. 이 원고에 파운드가 삭제한 내용뿐만 아니라 엘리엇이 스스로 삭제한 내용도 남아 있어서 엘리엇 연구가들은 이 초고본을 《황무지》의 집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보고 있다. '한국 T.S.엘리엇학회'에 소속된 학자들이 함께 엮은 연구서 《T. S. 엘리엇 시》(동인)에 수록된 ‘『황무지』 원고본 분석(글쓴이는 이창배)은 《황무지》 원고를 다룬 글이다. 이 논문도 나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황무지》 원고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황무지 원본 연구》(L.I.E)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애크로이드의 엘리엇 평전도 ‘최신’과 거리가 먼 책이 되었지만, 그래도 엘리엇을 알고 싶은 독자(과연 있을까?)라면 이 평전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그래서 번역본에 대한 오자와 오역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11쪽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친형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에게 보낸 편지 내용 일부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엘리엇이 1916년 가싱턴을 처음 방문했을 때 누구를 만났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손님들 중에는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 클리브 벨(Clive Bell),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가 섞여 있었다. 헉슬리는 자신의 형제인 줄리안(Julian)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는 엘리엇의 작품들을 꼭 읽어보아야 한다. 그 저자가 한 평범한, 유럽화된 미국인일 뿐이며, 아주 교양 있고,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 가장 덤덤한 투로 얘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작품들이 더욱 더 뛰어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줄리안은 1887년 생이고, 올더스는 1894년 생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올더스가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친형에게 ‘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

 

 

123쪽에 J. B. 예이츠’라는 이름이 나온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머리글자를 잘못 쓴 거라면 ‘W. B. 예이츠’로 고쳐야 한다.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도서출판 숲, 2007)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까치, 2001)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한겨레출판, 2003)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 (을유문화사, 2005)

 

 

 

427쪽에 엘리엇이 이탈리아의 네미 호수에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네미 호수의 전설이 언급되는데, 이곳 근처 숲에 신성한 ‘황금 가지’가 있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인 프레더릭 프로코시의 제안에 따라 오후 시간에 네미호 연안의 전설적인, 실제로는 볼품없는 참나무 고목인 ‘황금 가지(Golden Bough)를 함께 찾아가 보기도 했다.

 

 

황금 가지는 참나무 고목이 아니다. 이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가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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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6 17:51   좋아요 0 | URL
엘리엇의 시를 이해하려면 동서양 철학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엇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데도 인기가 없고, 그의 시를 읽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저도 러셀이 저지른 일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가 쓴 책 중에 ‘결혼과 도덕’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그 책을 아직 안 읽어봤지만, 만약 그 책을 읽게 되면 러셀의 불륜이 떠올릴 것만 같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16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엇과 그의 부인, 그리고 러셀... 이런 이야기가 있었네요!

cyrus 2019-01-16 19:52   좋아요 0 | URL
엘리엇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평전을 읽고 있던 저로서는 세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게 흥미진진했습니다... ^^;;

oren 2019-01-17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하워드 가드너가 쓴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에도 T.S.엘리엇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이 담겨 있더군요. 목차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황무지』의 재발견이나 『황무지』: 작시 과정과 배경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서, 엘리엇을 이해하는데 꽤나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 * *
1968년 뉴욕 공립도서관의 버그(Berg) 콜렉션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진 초고가 발견되었다. 대개는 타자로 친 54페이지 분량의 초고 뭉치였는데, 군데군데 육필 원고도 끼어 있었다. 별다른 표시가 없는 페이지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뚜렷한 페이지도 있었고, 아예 가위표로 삭제 표시가 그어진 페이지도 있었다. 타자로 친 부분은 다양한 언어로 쓰여 있었다. 구어체 영어로 쓰인 대목도 많았고, 우아하고 심원한 문체로 쓰인 대목도 많았다. 각종 유럽어에서 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쓰인 시행이 페이지 곳곳에 널려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초고와는 달랐다.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이라 할만한 『황무지』의 중간 초고였다. 세인트루이스 태생으로 영국에 정착한 시인이었던 T.S.(Tomas Steams) 엘리엇은 1914년 경에 이 작품(혹은 이 작품에 포함될 운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천 행에 이르는 초고를 완전히 끝낸 것은 1921년 말이었다. 그는 아내 비비언(Vivien)과 역시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 정착했던 시인으로서 가까운 친구 에즈라 파운드에게 초고를 보여주었다. 이 ‘우호적인 비평가들‘은 엘리엇과 함께 작품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다. 특히 에즈라 파운드는 원래 길이를 반으로 줄여버릴 정도로 가차없이 수정하라는 제안을 했다. 엘리엇 연구자인 헬렌 가드너의 말을 빌면, ˝파운드는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이 함부로 뒤섞인 초고 뭉치를 한 편의 시로 만들었다.˝(402쪽)

cyrus 2019-01-18 12:32   좋아요 1 | URL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에 엘리엇을 언급한 내용이 있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oren 2019-01-18 13:09   좋아요 1 | URL
2014년에 T.S.엘리엇에 관한 글을 아주 길게 한 번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황무지』라는 시를 주마간산 격으로나마 대충 한번 읽어봤었답니다. 그 뒤로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서 새로운 책으로 다시 한번 그 시를 읽어봤는데도 여전히 그 시를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아무튼 2014년에 엘리엇의 『황무지』에 얽힌 글을 쓰면서 (그보다 훨씬 전에 읽었던)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 말고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함께 인용한 적이 있었는데, cyrus 님의 이번 글에서도 그 책을 함께 언급해 주셔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7103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