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들리 부인의 비밀 부클래식 Boo Classics 78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 지음, 홍덕선.오은주 옮김 / 부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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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1837~1901)에 나온 소설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소설은 무엇이었을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백여 년 전에 살았던 영국인들이 생각한 ‘인기 소설’의 기준을 잘 모를뿐더러 그 시대에 나온 책들의 판매 부수가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가장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 인기가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람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코난 도일(Conan Doyle)의 소설이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소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두 작가 모두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아온 작품들을 남겼다.

 

지금부터 내가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Mary Elizabeth Braddon)이 쓴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라는 소설도 인기 많았어요’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런 소설도 있었나요?’라고 말하면서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 빅토리아 시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1862년에 잡지에 연재된 《오들리 부인의 비밀》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선정소설(sensation novel)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선정소설이란 말 그대로 선정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이다. 선정소설은 출생의 비밀, 불륜,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는 아침 드라마와 같다고 보면 된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에도 아침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요소들을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오들리 부인은 과거에 결혼한 이력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살인과 방화를 저지른다(사실 부인이 이름을 바꿔가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했던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오들리 부인의 원래 이름은 헬렌 몰던(Helen Maldon)이다. 그녀는 너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벌써 어린 나이에 궁핍한 현실에 무서움을 느낀다. 헬렌은 부잣집 외아들인 조지 톨보이즈(George Talboys)를 만나 결혼하지만,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조지는 돈을 더 벌어오겠다는 생각에 헬렌과 외아들(아버지의 이름과 같아서 ‘어린 조지’라고 부른다)을 남겨둔 채 호주로 떠난다. 혼자서 자식을 돌보면서 가계를 꾸려나가는 처지가 된 헬렌은 가출을 감행한다. 헬렌은 루시 그레이엄(Lucy Graham)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전처의 외동딸인 알리샤(Alicia)와 같이 살던 마이클 오들리 경(Sir Micheal Audley)과 결혼하면서 ‘루시 오들리’가 되고, 꿈에 그리던 신분 상승을 이룬다. 그러나 호주에 갔던 조지가 영국으로 돌아오고, 하필이면 조지의 절친한 친구가 마이클의 조카인 로버트 오들리(Robert Audley)였다. 로버트는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지 못한 신참 변호사지만, 정의감이 투철한 인물이다. 로버트와 조지는 부인을 만나러 직접 오들리 저택에 찾아갔으나 부인은 외출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두 사람은 알리샤의 도움으로 오들리 부인의 방에 가게 들어갔는데, 조지는 오들리 부인의 초상화를 보자마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조지는 사라져버리고, 행방불명이 된다. 로버트는 친구를 찾기 위해 친구와 관련된 지역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탐문 수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로버트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조지의 첫 번째 아내 헬렌과 오들리 부인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두 사람의 ‘연결고리’를 알아내기로 한다. 로버트는 헬렌 몰던, 루시 오들리 모두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는 부인과 대면하면서 자산이 알아낸 부인의 비밀을 모조리 밝힌다. 그러나 부인은 오히려 로버트를 정신병원에 보내거나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초강수를 던진다. ‘아름다운 귀부인’으로 묘사된 부인은 이때부터 ‘악녀’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는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 간의 양자 대립 구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로버트 오들리는 부인의 비밀을 밝히면서 오들리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하고, 사라진 친구를 대신해서 복수하려고 한다. 오들리 부인은 처음에 남편에게 순종하는 ‘집 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로 등장하지만,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악의를 서서히 드러내는 ‘집 안의 타락 천사’가 된다.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던 도덕적 규범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오들리 부인은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 사회를 위협하는 해로운 존재이고, 그녀에 맞서는 로버트는 가부장(로버트 오들리와 조지 톨보이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의감에 투철한 ‘수호천사’가 된다.

 

오들리 부인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모습과 다른 독특한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은 성적 욕망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을 가질 수 없었으며 순수한 ‘집 안의 천사’, ‘가정의 빛’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브래든은 오들리 부인을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악녀’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내용만 가지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려선 안 되고, 브래든을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에 굴복한 여성 작가’로 폄하하는 평가도 적절하지 않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은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은 인기 소설이었다. 남성 독자들은 묘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오들리 부인의 매력에 주목했겠지만, 여성 독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면서 살아가는 부인의 과감한 결단력에 주목했을 것이다. 비록 법을 어기긴 했지만, 오들리 부인은 자신의 삶을 죄어오는 갑갑한 현실을 거부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남편 없이 홀로 자식을 키우는 여성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약자였고, 하류층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오들리 부인의 비밀》은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이 선호하던 ‘집 안의 천사’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 여성들은 날개 꺾인 천사로 살아갔다.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 사회 전체는 거대하면서도 화려한 수정(水晶)으로 만든 천장[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기는 여성들이 마음대로 날고 싶어도 함부로 날 수 없는 곳이었다.

 

 

 

 

[주]

영국이 절정에 이르던 1851년에 런던만국박람회가 열렸고, 영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위엄을 유럽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수정궁(Crystal Palace)을 세웠다. 그래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 상승을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하는 ‘유리 천장’과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수정궁’을 합쳐서 ‘수정 천장’이라는 단어를 썼다.

 

 

※ Trivia

 

오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오류가 있는 역주도 있다.

 

 

* 101쪽 역주: 존 에버렛 밀레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 131쪽: 조지의 장인어른은 친구의 행동에 분개하는 로버트 달래주려고 애썼다.

 

 

* 270쪽 [‘니오베’에 대한 역주]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 니오베는 자만심에 들떠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자랑했다가 레토 여신의 분노를 얻었다. 여신의 부모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 의해 14명의 아이들이 화살을 맞아 모두 죽자 니오베는 슬픔으로 돌로 변했다.

 

→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레토가 낳은 자식이다.

 

 

* 306쪽: 빈세트 부인 → 빈센트 부인

 

 

* 394쪽: 루크레치아 보르자 루크레치아 → 루크레치아 보르자(Lucrezia Borgia)

 

 

* 583쪽 역주:

플로벨 → 플로베르

보드레르 → 보들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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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8-0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드라마 느낌이 나는 소설 같아요. ^^ 사이러스님 글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9-08-09 17:54   좋아요 0 | URL
분량이 꽤 많습니다. 책의 중반부가 지루했어요. ^^;;

레삭매냐 2019-08-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 클래식, 출판사가 의심스러워
기피하고 있습니다.

cyrus 2019-08-09 17:58   좋아요 0 | URL
부북스 출판사의 책을 많이 읽어본 적이 없어서 번역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일수록 그 출판사의 책을 안 읽게 되네요.. ^^;;

수이 2019-08-0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희빈 떠올라. 여성사 쪽에서 보자면 장희빈이 긍정적인 면모가 꽤 많더라_고 전해들었는데_ 앞으로 그 위치가 달라질 거라고 하더라구. 페이퍼 읽고 떠올라서 ^^

cyrus 2019-08-10 06:16   좋아요 0 | URL
악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에도 약간의 공로가 있다면 그것 또한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
 
임윤지당 평전 - 규방의 삶을 벗어던진 조선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경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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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을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조선 시대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화권에서 유교 문화를 경험하며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유지하면서 사회 발전을 이뤘다. 16세기 이전까지 조선 사회는 부계뿐만 아니라 모계 또한 중시하는 친족 관계, 아들딸 차별 없이 재산을 상속하는 관습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부터 조선 왕조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국가 정책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왕-아버지-장남을 중시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사회 저변까지 침투하게 된다.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가 성립되면서 남성이 경제권을 쥐고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혈통 계승의 역할을 담당한다. 남성들은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여성이 남편 이외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 때문에 여성은 결혼 전에는 순결해야 하고 결혼 후에는 정조를 지켜야만 했다. 유교 가부장제에 종속된 여성은 ‘현모양처’, ‘열녀(烈女)’가 되려고 했으며 그렇지 못한 여성은 악녀 또는 음란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가부장제의 한계는 비단 형식만 남은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권위적인 가부장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는 권위적인 가부장제를 의식에 내면화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에 일체화된 채 살아가는 여성은 가모장이 된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조선 시대 여성들의 일상사를 접하게 되면 유교와 성리학이 ‘여성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으로 느껴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유교와 성리학의 영향으로 조선 시대 여성들이 활동에 제약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양반 여성들은 유교 경전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고 제한적이지만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공부하면서 글 쓰는 양반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했고 오히려 장려하기도 했다. 유교와 성리학은 여성과 무관한 학문이 아니다. 유교와 성리학을 페미니즘과 완전히 상반된 적대적인 학문으로 본다면 우리는 유교 가부장제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간 여성들의 삶과 업적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임윤지당 평전》우리가 알지 못했던 위대한 여성의 일대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깰 조선 시대 양반 여성들의 생활 모습까지 보여준다. 임윤지당(任允摯堂) 조선 시대 중기에 활동한 성리학자다. 그녀는 유교 경전에 나오는 성인들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선비들처럼 학문과 수행에 몰두했다. 윤지당의 둘째 오빠 임성주는 윤지당에게 큰 영향을 준 지적 스파링 파트너였다. 그는 누이의 성품과 지적 열정을 높이 사 그녀에게 ‘윤지당’이라는 호를 만들어 주었다. 윤지당은 유교 경전을 재해석하거나 경전에 나오는 구절을 따져가면서 읽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임윤지당의 존재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던 것일까?

 

남녀의 위계질서를 중시한 조선 시대에 여성이 남성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성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양반 여성들은 남성들과 함께 경전을 공부하면서 토론하는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임윤지당은 여성에게 학문과 수양을 권장하는 가문에서 자랐으며 특히 그녀의 어머니 파평 윤씨 부인은 딸이 공부하는 것을 지지했다. 조선시대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남존여비’라는 일반적 인식을 확 뒤엎는 역사적인 사례이다. 많지 않지만, 조선 시대에 임윤지당처럼 공부하는 양반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남성 사대부들이 공부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여성들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거나 혹은 은폐된다. 남성 사대부들은 공부하는 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들의 능력에 한계를 그으려고 했다. 지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양반 여성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녀들이 쓴 글이 문집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거나 아예 사라지게 되면 후대에 알려지지 못한다. 문집 만드는 일은 남자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는 양반 여성이 쓴 글이 남성 친척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면 잊힐 가능성이 높다. 임윤지당의 글과 생애는 그녀의 문집을 편찬한 동생 임정주 덕분에 알려질 수 있었다.

 

임윤지당은 도전적인 자세로 임하면서 공부했다. 그녀는 성리학의 핵심인 이기심성과 사단칠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사대부들이 높이 평가한 인물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윤지당은 공자(孔子)가 칭찬한 제자로 성인으로 평가받은 안회(顔回)를 롤 모델로 삼으면서 공부했다. 그녀는 사대부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 중 하나인 성인과 범인(凡人)의 차이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고, 범인과 성인의 본성에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리하여 윤지당은 ‘범인’이자 ‘여성’인 자신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동안 남성 유학자들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하면서 배움의 길을 강조했는데, 윤지당은 여성도 극기복례를 실천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그녀의 파격적인 결론은 유교 이념에 충실한 주체나 학문적 경지에 이른 성인을 ‘남성’으로 한정해서 바라본 기존의 입장을 넘어선 것이다. 윤지당은 유교 윤리에 충실한 주체적 여성상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여성의 주체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을 근대 이후로 잡고 있다. 신문물과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은 한국 여성사에서 어떤 여성들보다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 시대의 양반 여성들은 유교 사회가 그어놓은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뚜렷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다. 그런데 우리는 양반 여성들의 주체성을 자세히 보지 못한 채 그녀들을 ‘집 안의 현모양처’로만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그녀들의 서사를 가리고 있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장옷[주]을 벗겨내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자기실현의 한 주체로 우뚝 서고자 했던 또 다른 임윤지당을 만날 차례가 왔다.

 

 

 

[주] 조선 시대에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쓴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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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0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사대부 타령!

아직도 성리학적 질서로부터 완전
히 탈피했다고 볼 수 없지 않나 싶
습니다만.

그나저나 대척점에 서 있는, 온라인
한겨레에서 읽은 현대판 걸그룹에
해당하는 여성가극단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cyrus 2019-08-09 18:15   좋아요 0 | URL
역사를 공부하면 아쉬운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들이나 결정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곤 해요. 이럴 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잊힌 역사들을 살펴보고 싶어요.. ㅎㅎㅎ
 

 

 

 

공포문학은 독자 성향에 따라 작품의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탐구하는 현실 밀착형 공포를 선호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미지의 존재나 귀신 같은 초자연적 공포만을 찾는 독자도 있다.

 

 

 

 

 

 

 

 

 

 

 

 

 

 

 

 

 

 

 

* 리처드 매드슨 《나는 전설이다》 (황금가지, 2005)

* 김은희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영사, 2019)

 

 

 

 

몇 년 전부터 ‘좀비(zombie)가 공포물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시리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2016년에 영화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형 좀비 영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판 좀비 사극 <킹덤(kingdom)>은 탄탄한 스토리와 액션, 화려한 영상미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리처드 매드슨(Richard Matheson)《나는 전설이다》(황금가지)는 좀비를 소재로 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읽을 때 좀비 떼들이 달아나는 인간을 쫓아가서 물어뜯는 잔혹한 영화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 《나는 전설이다》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인류 마지막 생존자의 고독과 절망적인 공포의 깊이를 묘사한 소설이다.

 

 

 

 

 

 

 

 

 

 

 

 

 

 

 

 

 

 

 

*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열린책들, 2009)

 

 

 

 

좀비물이 언제까지 유행할지 모르겠으나,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오컬트 소재가 등장하게 되면 좀비물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다. 좀비물이 유행하기 전에는 뱀파이어물이 많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장편소설 《드라큘라》는 20세기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뱀파이어물의 원본이다. <노스페라투(Nosferatu)>에서 프란시스 코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의 <드라큘라>에 이르는 뱀파이어 영화들은 스토커의 소설에 빚지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걸작선》 (책세상, 2016)

* [절판] 로렌스 A. 릭켈스, 정탄(=정진영) 옮김 《뱀파이어 강의》 (루비박스, 2009)

* 한혜원 《뱀파이어 연대기》 (살림, 2004)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나오기 전에 흡혈귀 전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스토커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동한 몇 몇 작가들은 흡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다. 흡혈귀가 처음으로 ‘뱀파이어(Vampire)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시인 조지 바이런(George Byron)의 주치의 겸 비서인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의 동명 단편소설에서였다.

 

폴리도리는 바이런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의 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1816년 스위스에서 메리 셸리(Mary Shelley)와 그의 남편이자 시인인 퍼시 B. 셸리(Percy Bysshe Shelley)를 만났다. 바이런과 폴리도리, 그리고 셸리 부부가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었던 기간의 날씨는 최악이었다. 며칠 내내 비가 내렸는데, 훗날 기상학자들은 1813년에 폭발한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에 나오는 화산재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1816년 스위스의 날씨가 나빠졌다고 보고 있다. 외출을 할 수 없었던 네 사람은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들 중에 누가 제일 무서운 이야기를 만드는지 내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폴리도리는 《뱀파이어》를, 메리 셸리는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만든다. 폴리도리의 소설에 뱀파이어로 나오는 루스벤 경(Lord Ruthven)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바람둥이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1819년에 발표되었다. 올해는 뱀파이어가 세계문학사에 처음으로 진입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뱀파이어》가 발표되기 일 년 전에 《프랑켄슈타인》이 메리 셸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그 이야기를 만든 폴리도리가 아닌 ‘조지 바이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실은 잡지의 편집자가 당시에 가장 유명한 시인이자 명사였던 바이런의 이름을 쓴 것이다. 《뱀파이어 연대기》(살림)에서 폴리도리는 ‘바이런의 명성에 의해 가려진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뱀파이어 영화와 관련 문학작품들을 비평하는 강의를 개설한 로렌스 A. 릭켈스(Lawrence A. Rickels)폴리도리가 바이런이 이미 구상한 작품[주1]을 표절했다고 주장한다. 《뱀파이어》를 처음으로 구상한 작가가 폴리도리인지 아니면 바이런인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로서는 《뱀파이어》의 원작자는 폴리도리로 알려지고 있다.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걸작선》(책세상)에 수록되어 있다.

 

 

 

 

 

 

 

 

 

 

 

 

 

 

 

 

 

 

 

 

* [e-Book]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왓북, 2019)

* [e-Book] 브람 스토커 《판사의 집》 (올푸리, 2019)

 

 

 

 

《드라큘라》가 워낙 유명해서 스토커는 ‘원 히트 라이터(one-hit writer)로 알려져 있다. 《드라큘라》를 쓰기 전에 이미 여러 편의 장편과 단편소설을 썼지만, 《드라큘라》만큼 성공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는 27년 동안 영국의 연극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의 비서 겸 어빙이 소유한 극장 지배인으로 일한다. 스토커가 영국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그를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토커는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인이다. 1912년에 스토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의 아내(스토커와 결혼하기 전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그녀에게 구애한 적이 있었다. 스토커와 와일드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며 대학 동문이다)가 남편이 쓴 중 · 단편을 모은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1914년에 출판한다. 이 소설집에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드라큘라의 손님(《뱀파이어 걸작선》에 수록), 『판사의 집』(《영국의 괴담》에 수록), 『스쿼(squaw,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 『쥐들의 장례』[주2] 등이다.

 

 

 

 

 

 

 

 

 

 

 

 

 

 

 

 

 

 

 

 

* 르 파뉴 《카르밀라》 (초록달, 2015)

* [e-Book] 르 파뉴《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 (올푸리, 2018)

 

 

 

 

『드라큘라의 손님』은 원래 《드라큘라》 초고의 초반부에 해당한 내용이었으나 초판에서 삭제되었다. 『판사의 집』은 17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악명 높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살았던 집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공포의 절정을 이룬다. 과거에 죽은 교수형 담당 판사가 무시무시한 유령으로 등장하는 플롯은 1851년에 발표된 조지프 셰리든 레 파누(Joseph Sheridan Le Fanu)《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대한 기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레 파누 역시 아일랜드 출신이며, 스토커는 레 파누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던 언론 매체의 연극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레 파누는 초자연적인 존재 및 현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1872년에 나온 《카르밀라(Carmilla)다. ‘카르밀라’는 소설에 나오는 ‘레즈비언 흡혈귀’의 이름이다. 《카르밀라》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품절]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걸작선》 (책세상, 2004)

* 정진영 옮김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

* 안길환 옮김 《영국의 괴담》 (명문당, 2000) [주3]

 

 

 

 

《드라큘라의 손님과 기이한 이야기들》 완역본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완역본에 수록된 아홉 편의 소설 중 단 네 편(『드라큘라의 손님』, 『판사의 집』, 『스쿼』, 『쥐들의 장례』)만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책에 있는 공포문학 작품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공포문학도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유행을 탄다.

 

 

 

[주1] 미완성 소설이라 ‘미완의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여지게 됐다. 《세계 호러 단편 100선》에 수록되어 있다.

 

[주2] ‘쥐의 매장’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호러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다. 종이책은 절판되었고, 현재는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주3] ‘판사의 집’이 수록된 단편 공포소설 선집. 영국,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쓴 단편 공포소설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번역체에 한문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진다. 참고로 이 번역본을 만든 ‘명문당’은 동양 고전을 많이 펴낸 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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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
제이미 캄플린.마리아 라나우로 지음, 이연식 옮김 / 시공아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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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독서의 역사는 곧 인류의 지성사이며 문화사다.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독서의 역사》에서 ‘독서’를 ‘책에 담은 의미를 알아내는 행위’라고 말했다. 세상을 이해하는 행위로 그만큼 독서의 의미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책은 애서가 또는 작가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반 고흐(van Gogh)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다독가였다. 책은 모든 장르의 그림에 카메오로 등장했다.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의 학식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지 암시해주고, 비싼 장식품으로도 그려지기도 했다. 몇몇 애서가는 농담으로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책들을 장식품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과거 예술가와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럽은 중세 이래 책을 아름답게 꾸미는 전통이 있었다. 그래서 책은 귀족이나 고위 성직자, 교수 등 극히 한정된 인텔리만 읽을 수 있고 소장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신분 과시용이요 유산계층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화려한 장식품이었다. 그림에 책을 그려 넣은 예술가들은 책이 장서가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해주는 소품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책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도판이 풍부한 독서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책의 원제는 ‘The Art of Reading’이다.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는 중세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독서의 거대한 역사를 예술가들이 남긴 다양한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의 공동 저자는 책이 그려진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책을 대하는 예술가들의 생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아본다.

 

책을 많이 읽은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와 책이 서로 무관한 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책의 등장으로 ‘무명의 장인’으로 취급받았던 예술가의 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화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1550년에 <예술가 열전>(국내에서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이라는 책을 썼다. <예술가 열전>은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물이다.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그림은 ‘작가 미상의 그림’으로 알려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을 것이다.

 

책이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은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 책의 황금기이다. 이때 책은 상류층의 권위를 발산하는 그림을 장식하는 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필수 소품이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하듯이 책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와 그 책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가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17세기 유럽에 인생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정물화인 ‘바니타스(vanitas)가 유행했다. 바니타스를 즐겨 그린 화가들은 책을 유한하고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인식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지식이 대중화되고, 책의 개인 소유가 가능하게 되면서 책은 상품으로 거듭났다. 아, 물론 이때도 여전히 책은 기득권층의 지위를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으로 활용되었다. 전근대의 책이 왕족, 귀족, 기독교 수도사들의 지위를 드러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근대의 책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다. 앞서 나는 책과 독서의 역사를 인류의 지성사라고 언급했는데,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면 책과 독서의 역사는 ‘기득권 중심의 지성사’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은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이용했다. 역사적으로 책은 기득권층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결국 책은 기득권층이 승인한 지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를 번역한 미술사가 이연식‘독서는 위험하다. 특히 예술가에게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독서 자체를 피해야 할 행위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은 분명 그저 읽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지식은 부당한 세상에 맞서는 무기를 만들 때 필요한 재료가 된다. 독서가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우리가 그 속에 있는 재료를 어떻게 쓰느냐(어떻게 읽고 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책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책은 위험하지 않다. 책 속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 Trivia

 

* 278쪽에 미국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동성 연인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앨리스 토클러’라고 되어 있다. ‘앨리스 토클러스/토클라스(Alice B. Toklas)라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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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3 11:4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사람도 문제고, 또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사람도 문제에요. 전자는 글 한 줄 못 쓴다면, 후자는 잘못된 신념을 강조하는 글을 너무 많이 써요.

라이너스 2019-08-0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체가 담고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수용자의 태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군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cyrus 2019-08-05 16:25   좋아요 0 | URL
주제와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초등학교[주]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엘뤼아르, 오생근 옮김, 『자유』 중에서)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가 쓴 유명한 시 『자유』의 원래 제목은 ‘단 하나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엘뤼아르는 이 시의 맨 마지막 문장에 자신이 사랑하는 두 번째 부인의 이름(Nusch, 뉘쉬)을 쓸려고 했다. 엘뤼아르에게 사랑이란 ‘자유’의 동의어다. 『자유』라는 이 시 한 편이 너무나 유명해서 대부분 사람은 엘뤼아르를 ‘저항 시인’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서 활동한 이력이다.

 

 

 

 

 

 

 

 

 

 

 

 

 

 

 

 

 

 

* [품절] 엘뤼아르 《이곳에 살기 위하여》 (민음사, 1994)

* 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미메시스, 2012)

 

 

 

 

초현실주의는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 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는 예술 운동의 하나였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 공상 등의 비현실적인 세계와 이성에 속박되지 않고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며 인간 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큰 목표로 하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삶도 예술의 연장선으로 여겼다. 자유연애는 기본이었고, 주목받기 위해 기행도 일삼았다. 1924년에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한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처음으로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려고 하였다. 그는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꿈, 광기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으로 인간의 원초적 무의식, 즉 꿈을 ‘해석’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 캐서린 잉그램, 앤드류 레이 그림 《This is Dali》 (어젠다, 2014)

* 돈 애즈 《살바도르 달리》 (시공아트, 2014)

* 크리스티아네 바이데만 《살바도르 달리》 (예경, 2009)

* 피오렐라 니코시아 《달리: 무의식의 혁명》 (마로니에북스, 2007)

* 장 루이 가유맹 《달리: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시공사, 2006)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몽상가는 아니었다. 의외로 그들은 정치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브르통은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1930년대 말에 멕시코를 방문해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를 만나기도 했다. 브르통 이외에도 시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등도 공산주의자였다. 이념에 심취하다 보니 초현실주의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고 이로 인해 불거진 갈등으로 인해 초현실주의 그룹을 떠나는 화가들이 속출했다. 브르통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돈에 환장한 사람(Avida Dollars)이라는 별명을 붙여가면서 비난했고, 그를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했다. 브르통이 달리를 조롱하면서 만든 별명은 달리 이름의 철자를 바꾼 것이다. 달리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와 파시즘을 찬양했다. 파시즘을 지지하는 달리의 망언은 파시즘에 반발하며 자유를 갈구하던 초현실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엘뤼아르는 스페인 내전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지켜보며 ‘저항 시’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쓰인 시에는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 엘뤼아르는 독일군에 맞서는 레지스탕스(Resistance)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작가 단체의 책임자가 돼 독일을 비방하는 비밀 출판물을 만들었다. 엘뤼아르는 『시는 구체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라는 시에서 저항 시를 쓰지 않는 동료 시인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자네들은 목적도 없이 걷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인간은

뭉쳐야 하고 희망하고 투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네

 

 

(엘뤼아르, 오생근 옮김, 『시는 구체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중에서)

 

 

엘뤼아르는 이 시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순수시를 쓰는 일에 몰두한 동료 시인을 ‘까다로운 친구들’이라고 부르면서 세계를 바꾸려는 희망과 투쟁심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들을 진짜 현실 속으로 걸어나가도록(참여시 또는 저항 시를 쓰는 일) 인도한다. 재미있는 건 반전이 있는 이 시의 구조다. 엘뤼아르는 1연부터 4연까지 순수시를 쓰는 척한다. 5연부터 시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5연은 저항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의 행보와 순수시를 쓰는 시인들을 비교한 내용이다. 엘뤼아르는 ‘조국을 거침없이 노래하고 있다면’, 동료 시인들은 ‘사막 같은 곳’으로 가려고 한다. ‘사막 같은 곳’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시인들이 원하는 유토피아 또는 공상의 세계이다. 엘뤼아르도 한때 초현실주의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사막 같은 곳’을 지향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7연에서 자신을 ‘힘이 없는 존재’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힘이 없는 존재’는 초현실주의에 심취했던 시인의 과거 모습을 의미한다. 전쟁의 참화를 목격한 이후로 엘뤼아르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신적 가치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을 해방해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시는 구체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자신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동료 시인들에게 바치는 시로 알려졌지만, 이 시는 초현실주의에서 시작해 현실주의(realism)로 변모하는 엘뤼아르의 참 모습이 그려진 ‘자화상’으로도 볼 수 있다.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 시인’과 ‘저항 시인’, 이 두 가지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한다. 그는 ‘초현실’ 속에 있는 인간과 ‘현실’ 속에 있는 인간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담아낸 시를 썼다. 그 공통된 가치란 바로 ‘자유’였다. ‘자유’는 엘뤼아르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가치였다.

 

 

 

[주] 민음사 번역본에는 ‘국민학교’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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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2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3 06:46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댓글을 통해 하신 말씀 중에 정말 좋았어요. 사유와 행동을 일치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와 행동이 서로 반대가 된 상태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변 인물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책을 읽으면 내가 믿고 싶은 생각들이 하나둘씩 많아져요. 그러면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성찰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