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조선에는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등장했다. 나혜석, 허영숙(한국 여성 최초의 개업의, 춘원 이광수의 부인), 황애시덕(애국부인회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등이 일본에서 공부하고 귀국해 여자유학생친목회를 결성하고, 여성 독자를 위한 교양지 <여자계(女子界)>를 창간한 것은 한국 여성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손꼽힌다. 조선의 문학계와 미술계를 대표하는 유명한 신여성이 나혜석이라면, 음악계에는 윤심덕이 있다. 예술가로서의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여성해방론과 신념은 시대를 앞서 있었다. 1920년대 조선에는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다.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신여성이 지향하는 자유 연애론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권 신장에 앞장선 두 사람으로서는 그 시절을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치 않았다.

 

 

 

 

 

 

 

 

 

 

 

 

 

 

 

 

 

 

* [우주지감 9월의 책] 나혜석, 장영은 엮음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민음사, 2018)

* [품절] 나혜석 경희 ()(종합출판 범우, 2006)

* [품절] 이상경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 2009)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예술의전당 에디션)(민음사, 2018)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민음사, 2010)

*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열린책들, 2010)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소설과 시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1918<여자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 경희는 구시대적 통념에 저항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 여성주의 텍스트이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조선에 돌아온 경희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주체이자 결혼의 주체라고 한다. 나혜석은 경희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또 여성 스스로가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 · 외부적 갈등도 소설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결국 경희는 입센(H.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Nora)처럼 가부장제가 작동하는 가정을 등지기로 결심한다.

 

 

 

 

 

 

 

 

 

 

 

 

 

 

 

 

* 김경일 신여성, 개념과 역사(푸른역사, 2016)

 

 

 

인형의 집은 나혜석을 포함한 신여성들에게 영향을 준 희곡이다. 19211월부터 <매일신보>인형의 집인형의 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연재되었다. 나혜석은 신문에 연재되는 희곡을 위해 직접 삽화를 그렸다. 제일 마지막 회에 나혜석이 쓴 동명의 노랫말이 실렸다. 나혜석의 인형의 가경희()(종합출판 범우)에 수록되어 있다. 윤심덕은 도쿄음악학교 졸업발표회를 위한 인형의 집공연에 노라 역을 맡았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 사는 삶을 거부하고,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노라를 찬미하고 동경하고 있다.

 

신여성, 개념과 역사(푸른역사)의 저자 김경일은 나혜석과 윤심덕을 2세대 근대 여성으로 분류한다. 2세대 근대 여성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통해 사회전반에 걸친 개조와 개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녀들의 꿈은 여성의 개성과 평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라는 조선의 특수한 시대적 환경은 그녀들의 신념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게 만드는 유리 장벽이었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봉건적 가족제도와 결혼제도를 비판하면서 여성의 개성과 평등을 강조했고, 자유연애를 서슴없이 말했다. 특히 나혜석은 1934년에 이혼 고백장-청구(靑邱) 씨에게라는 글을 써서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통해 나혜석은 자신이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전 남편 김우영이 보인 편협함, 그리고 남성 이기주의 등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이혼 고백장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공개적인 도발이었다. 그러나 이글이 발표되자 대중은 격렬하게 그녀를 비난했다. 전근대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 벗어나지 못한 남녀 모두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졌다. 나혜석은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녀는 잠시 붓을 내려놓고 펜이라는 날카로운 무기를 들어 여성을 억압하는 시대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자유주의 계열의 신여성에 속한 나혜석과 윤심덕을 제외한 일부 신여성들은 여성 해방보다는 민족 해방을 먼저 생각했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여성의 자유를 강조하는 여성해방론이 설 자리는 축소되었다. 남성 지배의 사회 분위기를 질타한 나혜석은 주류 남성 지식인들의 비방과 냉소에 시달렸지만, 사회주의 계열 신여성은 남성 지식인들의 비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회주의 계열의 신여성들의 목표는 민족 해방이었고, 그녀들은 새로운 공산주의 국가를 만드는 대의에 헌신하는 존재로 인정받았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남성 지식인들의 눈에는 나혜석과 같은 자유주의 계열의 신여성을 안 좋게 보였을 것이고, 그녀들은 이기적이고 속물 같은 부르주아 여성으로 인식되었다.

 

나혜석은 이혼 고백장에서 이혼 후 자신을 향한 비난과 냉대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처절한 심정을 토로한다.

 

 

 

 세상의 모든 신용을 잃고 모든 공분 비난을 받으며, 부모 친척의 버림을 받고 옛 친구를 잃은 나는 물론 불행하려니와 이것을 단행한 씨[김우영]에게도 비탄, 절망이 적지 아니 할 것입니다. 오직 나는 황야를 헤매고 암야에 공막(空漠, 텅 비고 쓸쓸함)을 바라고 자실(自失, 자기 존재를 잊을 정도로 얼이 빠져)하여 할 뿐입니다.

 떨리는 두 손에 화필과 팔레트를 들고 암흑을 향하여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광망(光芒)의 순간을 구함인가. 너무 크고 너무 중한 상처의 충격을 받는 내게는 각각으로 절박한 쓸쓸한 생명의 부르짖음을 듣고 울고 쓰러지는 충동으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사외다.

 

(나혜석 이혼 고백장중에서,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157)

 

 

 

 

황야를 헤매고 암야에 공막을 바라고 자실한 상태에 이른 나혜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속을 파고드는 암울함과 처절함이 우러나오는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가 떠오른다. 윤심덕은 이 노래를 취입한 레코드가 나오기 전에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이혼 고백장에 있는 자실이라는 단어가 자살로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러나 나혜석은 절망을 딛고 다시 한 번 갱생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조소와 질책을 감수하면서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1)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2)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3)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윤심덕의 불꽃 같은 삶은 짧고도 강렬했다. 세상은 그녀의 용감한 신념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상은 오로지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 했고, 그녀와 김우진과의 관계에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느꼈다. 주류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 언행으로 인해 나혜석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살다가 행려병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나혜석과 윤심덕은 세상에 안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원대한 꿈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삶을 선택했다. 그녀들은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을 알면서도 각자가 원하는 삶을 찾으려고 열중한 칼 위에 춤춘 자들이었다.

 

 

 

Trivia

 

신여성, 개념과 역사85(초판 1)오자가 있다. 2세대 근대 여과 급진주의라고 적혀 있다. ‘2세대 근대 여성과 급진주의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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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5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8 15:29   좋아요 0 | URL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요. 저는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로 못 하겠어요.. ^^;;

stella.K 2019-09-2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희> 범우사에서 나왔네.
애석하게도 절판이야. 다른 책도 봤는데 읽고 싶은 게 많더군.
기획을 잘 했던 것 같은데 잘 안 알려진 것 같아.
나도 이제 처음 알았다.
옛날에 범우사 알아 줬는데. 처음 책을 읽는 사람들은
범우사 아니면 삼중당이었는데 지금은 그 명성이 완전 묻혔지?
난 옛날에 냈던 책으로만 먹고 살려나 했더니
그래도 최근 간간이 책을 내긴 했더군.
나혜석은 희곡이 있어 함 읽어보려고 해.

cyrus 2019-09-28 15:33   좋아요 0 | URL
범우사의 행보가 너무 조용해서 지금도 새 책을 내놓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지금도 범우문고가 나오네요.. ㅎㄷㄷ 그런데 예전에 나온 책들의 일부는 절판됐어요. 나혜석의 희곡을 따로 실은 책이 있을 거예요. ^^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철학자이다. 혹자는 그녀의 글이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녀의 이론을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글을 어렵게 쓰는 이유가 있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 2015)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6)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한국학술정보, 2007)

* 사라 살리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앨피, 2007)

* 조현준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 2014)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김은주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봄알람, 2017)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행성B, 2018)

 

 

 

버틀러는 명료하면서도 확정적인 문체에 느껴지는 권위성을 경계한다. 권위적인 문체는 진리를 뚜렷하게 드러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론도, 글도 간결하고 명료하게 쓸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철학 명언에 따르면 어떤 사실 또는 진리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설명은 면도날로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한 권위적인 문체가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 또 다른 진리(를 설명하는 문체)가 나올 가능성을 방해한다.

 

버틀러는 권위적인 문체가 반복과 인용을 통해서 규범이 되고, 더 나아가 규범은 권력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글로 표현된 자신의 입장이 규범과 권력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문장을 어렵게 쓴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쥔 사람들은 버틀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의 글을 잘라내려고(무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오컴의 면도날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진리의 문체를 이론이나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명료한 글이나 진리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면도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그들의 행보는 권위적이면서도 폭력적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쥔 자들은 버틀러의 글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녀의 글에 어디부터가 불필요한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틀러의 글쓰기 방식은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는 오컴의 면도날을 조롱하고 저항하는 탈권위적인 글쓰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글이 읽기 어렵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읽기 힘들고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힘든 글은 버틀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들도 난감하게 만든다. 버틀러는 지금도 학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칼럼과 책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버틀러의 책 몇 권이 있다. ‘레드스타킹 페미니즘 스쿨전임 강사로 초빙된 전혜은 선생님의 증언에 따르면 어떤 역자가 번역을 착수했으나 끝내 출판하지 못한 버틀러의 책이 있다고 한다.

 

 

 

 

 

 

 

 

 

 

 

 

 

 

 

 

* [품절] 주디스 버틀러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 2003)

 

 

 

버틀러의 글과 책은 젠더와 퀴어를 연구한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 젠더와 퀴어에 문외한 역자가 버틀러의 글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 최악의 사례를 보여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바로 절판된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이다. 원제는 <Bodies That Matter>이다. 이 책은 젠더 트러블(문학동네)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를 이어주는 중요한 버틀러의 전기 저작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섹스와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버틀러의 논의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전혜은 선생님은 이 책을 최악의 번역본이라고 언급했다. 버틀러 전공자가 확인 사살’을 했으니 번역본을 읽을 필요가 없고, 중고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조현준 교수가 쓴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성문화이론연구소),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한국학술정보),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를 사서 읽었다. 이것 말고도 버틀러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들 몇 권이 나와 있으나 그 책들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버틀러의 문장을 오독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과 버틀러가 책에서 언급한 개념을 잘못 설명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수업 내용을 지식재산권을 가진 전혜은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내가 함부로 인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스쿨에서 배운 버틀러와 관련된 내용은 전혜은 선생님이 쓰고 있는 책에 나올 예정이다.

 

주디스 버틀러에 대한 개론서 중에 읽을 만한 것을 추천하라고 하면, 나는 그 부탁을 정중히 거부할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을 여러 번 봐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론서도 어렵다. 개론서는 버틀러에 입문한 독자와 버틀러를 많이 공부한 독자들이 잠깐 기댈 수 있는 임시 보조대일 뿐, 영원히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개론서가 읽기 어렵다고 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단 시도해봐라. ‘버틀러 혼자 읽기버틀러 독학보다는 버틀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전공자라든가 버틀러를 공부한 대학원생과 함께 읽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버틀러의 책은 혼자서 맨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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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9-09-24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어려운 문장이라도 그 속에 다채로운 사상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거겠죠. 중언부언으로 번잡하고 애매함만 있는 거면 결국 사상이 빈곤한 거고요.

cyrus 2019-09-25 16: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채로운 사상이 들어있는 문장은 어려워 보여도 계속 읽어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9-09-25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유로 어렵게 쓰는 사람도 있군요. 저는 확신할 수 없거나 자신 없는 글을 쓸 때 ~~ 한 것 같다, 라든지 ~~ 라고 생각한다, 로 씁니다. 내 생각이 맞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어떤 때는 ‘사견‘이라고 덧붙이기도 하죠. ㅋ

cyrus 2019-09-25 16:1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떤 의견을 말할거나 글로 쓰기 전에 신중해야 돼요. 정말로 애매한 내용은 언급을 안 하려고 해요. ^^;;
 
보통이 아닌 몸 - 미국 문화에서 장애는 어떻게 재현되었는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4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지음, 손홍일 옮김 / 그린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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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기형(畸形)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기이한 몸을 떠올리는 기형대신 이형(異形)이라는 단어를 쓸려고 했다. 이형은 완전한 몸’, ‘건강한 몸’, ‘정상적인 몸을 뜻하는 전형(全形)의 반대말이다. 이형은 말 그대로 (전형과) 다른 몸이다. 그러나 이 단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차이(다름)다양성이 아닌 차별과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면 이형도 비정상적인 몸을 떠올리게 하는 기형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형을 대체할만한 단어는 과연 있을까? 새로운 대안 언어에 한계가 있더라도 그 단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기형이형을 대신할 만한 단어를 발견했다. 장애학 이론으로 미국 문학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한 영문학과 교수 로즈마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이다. 그녀가 쓴 보통이 아닌 몸장애학에 여성주의 이론을 접목한 책이다.

 

extraordinary’기이한’, ‘놀라운’, ‘보기 드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extra’‘ordinary’의 합성어인데 ‘ordinary’보통’, ‘평범한을 뜻한다. ‘ordinary’평범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비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면, extraordinary’는 기이한 몸을 가진 장애인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다. 그런데 ‘ordinary’의 반대말은 ‘unordinary’. 톰슨은 왜 ‘unordinary’ 대신에 ‘extraordinary’에 썼을까. 보통이 아닌 몸의 역자는 톰슨이 평범하지 않은(unordinary) 장애인의 몸에 함축된 부정적 의미를 극복하고, 장애인의 몸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단어‘extraordinary’을 선택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역자는 저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extraordinary’보통이 아닌 몸으로 의역했다. 보통이 아닌 몸기형의 몸’, ‘불구’, ‘결핍된 몸으로 보이고 설명되는 타자화된 몸이 아니다.

 

보통이 아닌 몸은 비장애인의 몸과 비교당하는 장애인의 몸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책이다. 프릭 쇼(freak show)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기형 인간 쇼는 1800년대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어져 왔다. 저자는 프릭 쇼를 장애인의 몸을 구경거리로 만든 문화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프릭 쇼는 사라졌지만, 지금도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몸을 열등한 상태 그리고 개인적인 불행으로 간주하면서도 그것을 신기한 몸으로 의식한다.

 

저자는 미국 문학작품 텍스트 속에 장애인의 몸과 삶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분석한다. 그녀가 언급한 미국 문학작품에서 장애인은 주로 주변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이 역할 안에서 기이하면서도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타자로 그려졌다. 장애인을 문화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내러티브(narrative)는 그들을 있지만 없는 존재로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인식을 생산한다.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대표작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의 비장애인 여성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장애 여성은 무력하고 절망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특정한 정체성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전형적인 그림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은 그 정체성에 대한 매우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이 편견으로 굳어져 버리면 차별과 배제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장애인은 건강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라든가 장애인은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의 삶을 축소하게 만드는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보통이 아닌 몸은 장애인의 몸과 삶에 투과되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하면서 다양한 장애인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장애를 재현하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시선, 그리고 장애를 간과해온 비장애인 중심의 여성주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Trivia

 

수용의 논리는 장애란 그저 사람들 사이의 많은 다름 중의 하나일 뿐라고,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환경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9)

 

뿐이라고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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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9-2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가 말했듯 모든 것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잘못된 에피스테메를 다시 심도있게 포스팅 해주셔서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9-09-22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이 아닌 몸」에 푸코의 이론이 나와요. 제가 리뷰에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쿠키님이 잘 파악하셨어요. 엄지 척 👍입니다! ^^
 
낙인찍힌 몸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음 / 돌베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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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차별하는 것을 인종주의라고 한다면, 문화 · 종교 등을 이유로 삼아 타자를 차별하는 것은 변형된 인종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종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역사적 뿌리가 깊은 현안이다. 낙인찍힌 몸인간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에서 시작된 인종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우생학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우생학은 열등한 인종의 몸을 분리해내고 낙인찍는 학문이다. 우생학 열풍은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생학은 제국주의 바람을 타고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흑인을 배제하는 인종주의는 지금도 백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다. 히틀러(Hitler)와 나치 독일(Nazi-Deutschland)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은 난데없이 툭 튀어나온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은 유럽의 오랜 반유대주의 전통에 기반을 둔 우생학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다. 뾰족한 코를 가진 유대인은 열등 인종의 전형으로 정의되었고, 아리안인(Aryan)의 뛰어난 내적 자질은 출중한 외모를 통해 증명된다는 학설이 전파됐다.

 

과학적인 이론으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생학은 타자의 몸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 인종 차별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 및 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인종주의는 외모, 피부색, 골격 등의 생물학적 속성을 기준으로 타자에게 우열을 매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인종적 타자의 몸을 먹고 자란 히드라(Hydra)로 비유한다. 히드라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물뱀이다. 히드라는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이 목을 잘라내면 베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목이 생긴다.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는 여전히 강력하다.

 

인종(raza)이라는 단어는 원래 동물의 품종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이 단어는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우리가 익숙한 인종(race)이 만들어졌다. 분류학이 발전하면서 동물의 품종을 의미하던 인종(raza)은 인간을 분류하는 개념(race)으로 자리 잡았다. 스위스의 박물학자 린네(Linne)는 동물과 식물의 범주를 나누고 속과 종을 분류하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이명법을 도입했다. 그는 인류의 피부색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린네의 분류법에 따르면 유럽인은 백색, 아메리카인은 홍색, 아시아인은 갈색, 아프리카인은 흑색이다. 린네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을 공식적으로 정의한 학자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떠받들던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Winckelmann)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을 아름다움의 척도로 삼았다. 저자는 린네의 분류학과 빙켈만의 미학을 인종주의 발전의 시작점으로 본다.

 

낙인찍힌 몸은 인종주의의 역사는 서양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흑인과 유대인, 무슬림 차별 담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서양의 인종주의 문제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저자는 히드라 같은 인종주의가 신인종주의(new racism)또는 문화적 인종주의(cultural racism)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라고 있다고 말한다.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면, 오늘날의 인종주의는 신인종주의다. 신인종주의는 타자의 정치적 성향, 종교, 문화에 우열을 매길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편견을 부여한다. 새로운 히드라의 머리는 다문화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 자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인은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주목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도 종종 인종 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타자를 낙인찍고 배제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민, 외국인노동자, 난민, 무슬림들에 가해지는 인종 차별은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히드라의 머리다. 이제는 문화적 지표가 인종주의의 표적이 되고 있다. 생물학적 인종주의라는 이름이 붙여진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면 그 자리에 신인종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머리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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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21 11:29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책을 읽는 분을 만나니 정말 반갑네요. 책에 제가 몰랐던 내용과 사례들이 많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 생각거리가 많아질 거예요. ^^
 
나우 : 시간의 물리학 -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강형구 옮김, 이해심 감수 / 바다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한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지금 뭐 하고 있어? 한가하면 술 한잔하자. ○○○ 앞에서 보자.” 나는 친구에게 답장 메시지를 바로 보낸다. “지금 내 방 청소하고 있어. 청소 끝내고 갈게.”

 

나와 친구는 평범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내가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잘 살펴보면 어색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친구에게 답장 문자를 보내는 중인데, 지금내 방을 청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지금말하는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 내가 방을 청소한 행위는 과거의 일이다. ‘지금의 본래 의미에 충실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지금 너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쓰고 있어.”

 

우리는 말할 때 가끔 지금이라는 단어를 과거의 일을 포함해서 쓰는 경우가 있다.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알아듣고 넘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된다. ‘현재지금의 의미와 같다. 그러나 현재지금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이다. 현재 지금은 순식간에 과거가 되어버린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실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Richard Muller)지금이라는 단어가 무척 단순하면서도 신비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옷깃을 살짝 스치듯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지금과거가 된다. 그러므로 지금을 정의하는 일은 시간의 흐름을 연구한 이론물리학자들도 어려워한다. 뮬러는 나우(Now): 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지금과 시간의 흐름을 물리학적 관점으로 살펴보고,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든 시간과 관련된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는 개념에 맞서고 있다. 시간의 화살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방향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을 뜻하고 있기도 하다. 시간의 화살은 왜 미래로만 향할 수밖에 없는가.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예외 없이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엔트로피는 변해버린 물질을 다시 원 상태로 만들 수 없게 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온전한 형태의 물질과 질서 체계가 각각 무 형태와 무질서 체계로 가게 된다는 뜻이다. 노화는 열역학 제2 법칙과 시간의 화살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의 소설에 나오는 벤저민 버튼(Benjamin Button)처럼 시간이 거꾸로 가는 삶을 살 수 없다. ‘시간의 화살을 처음으로 언급한 영국의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은 엔트로피가 시간을 앞으로 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뮬러는 시간의 화살에 대한 에딩턴의 설명이 확실히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전적인 시간의 화살의 결점을 보완해줄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 번째 대안은 양자물리학으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는 것, 두 번째 대안은 새로운 공간을 끊임없이 팽창하는 빅뱅(big bang)에 의해 시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빅뱅과 더불어 태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우주론에서는 시간의 기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우주의 미래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뮬러는 두 가지 대안을 설명하면서 엔트로피 개념을 버리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두 가지 대안에 각각 양자 화살’, ‘우주론적 화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과거의 물리학자들은 예측 가능한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법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뉴턴(Newton)의 고전물리학을 뒤엎은 아인슈타인(Einstein)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결정론적 세계와 시간관념을 무용하게 하는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자물리학자들은 불확정성 원리를 내세워서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화살을 부러뜨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의 화살에 매달리는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뮬러는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양자역학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시간지금이다. ‘시간지금이라는 개념을 파악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여정이 남아 있다. 과학자도 그렇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도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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