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괴담
안길환 옮겨 엮음 / 명문당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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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당 출판사에서 나온 괴담 시리즈는 총 여덟 권이다. 20004월에 영국의 괴담, 중국의 괴담, 한국의 괴담이 나왔고, 그해 석 달 뒤에 프랑스의 괴담, 미국의 괴담이 나왔다. 다음 달에 러시아의 괴담이 나오고, 뒤이어 독일의 괴담, 일본의 괴담이 나왔다. 이 모든 책이 2000년 한 해에 출간되었다. 9년 뒤에 일본의 괴담이 새로 출간되었는데 2000년에 나온 구판과 다른 점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개정판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영국의 괴담이다. ‘괴담시리즈 전부 절판되기 전에 사 모을 생각이다. 명문당은 동양고전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다. 이런 출판사가 괴담 시리즈를 펴냈다니 출판 의도가 궁금하다. 구전 설화나 민담을 수록한 한국의 괴담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권의 책은 동서양 작가들의 공포 단편소설 선집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제목에 있는 괴담때문에 세계의 괴담을 모아 놓은 책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알라딘에 여덟 권의 책의 목차가 모두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작품명만 나와 있다. 작품을 쓴 작가를 알려면 이 책을 사서 봐야 한다. 무려 20년 전에 나온 책이 공공도서관의 터주 대감으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책 뒤에 원 작품명과 작가목록이 있다. 그런데 이 목록도 문제가 있는데 작품 발표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 작품명과 작가 이름, 그리고 발표 연도가 있는 목차를 써봤다.

    

 

 

* 판사의 집(The Judge’s House, 1891)

브람 스토커(Bram Stoker)

 

* 해리와 크리스(Harry, 1955)

로즈메리 팀펄리(Rosemary Timperley)

 

* 누구의 도움일까?(Special Delivery, 1912)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 오솔길 따라서 간 여인(Ahoy, Sailor Boy!, 1933)

A. E. 코퍼드(A. E. Coppard)

 

* 지상에서 못 이룬 사랑

(The Tale of Harry & Rowena, 1928) [1]

M. P. (M. P. Shiel)

      

* 떠나 버린 에드워드(The Passing of Edward, 1912)

리처드 미들턴(Richard Middleton)

 

* 상단(上段) 침대(The Upper Berth, 1885)

프랜시스 매리언 크로퍼드(Francis Marion Crawford)

 

* 피리를 불면 내가 가지(“Oh, Whistle, and I’ll Come to you, My Lad”, 1904)

몬터규 로즈 제임스(M. R. James)

 

* 망령 난동 사건(The Story of the Spaniards, Hammersmith, 1898)

E. 헤론 & H. 헤론(E. Heron & H. Heron)

 

* 사형수의 고백(The Confession of Charles Linkworth, 1912)

에드워드 프레더릭 벤슨(Edward Frederic Benson)

 

* 저주의 붉은 방(The Red Room, 1896) [2]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 유언의 저주(Squire Toby’s Will, 1868)

조지프 토마스 세리든 레 파누(Joseph Thomas Sheridan Le Fanu)

 

* 공포 속의 빈 집(The Empty House, 1906)

앨저넌 블랙우드(Algernon Blackwood)

 

 

 

번역문에 한문으로 된 단어가 너무 많다. 고전 공포 소설을 읽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동양고전의 문장 하나하나 독해하는 것처럼 읽고 있었다. 그렇게 한자어를 힘겹게 읽다가 핸섬하다라는 콩글리시가 있는 문장을 만났는데, 그거 보는 순간 실소했다. 20년 전에 나온 이 책의 번역도 핸섬하지 않다.

 

 

 동생 이상으로 떠들썩한 형 스클루프 매스튼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야외 스포츠에도, 전원생활의 즐거움에도 관심이 없었다. 스포츠맨도 아니었고 핸섬하지도 않았다.

 

(유언의 저주, 261)    

 

 

[1] 원제에 ‘Rewana’로 잘못 표기된 오식이 있.

 

[2] ‘The Empty Room’이라는 잘못된 원제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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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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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한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의해서 생긴 마음의 상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과거에 학대와 생명의 위협을 겪으며 나타나는 정신장애의 일종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몸은 회복됐어도 평생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 질환이 아니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전쟁, 학대,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빈곤, 차별을 겪은 사람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따라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고통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정식 병명으로 확정되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마음의 병만 걸리는 게 아니라 몸 상태를 악화시키는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반박하는 의학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질병을 일으킬 만한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처음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정신적 고통이었다. 지금 의학자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아동의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의 저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조사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네이딘 버크 해리스(Nadine Burke Harris)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 연구)의 권위자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겪는 부정적 경험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만난 어린이들은 신체 건강이 심하게 좋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육체를 손상하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한다. 조사 과정에서 그녀는 부정적 아동기 경험을 다룬 학술 논문을 발견한다. 그 논문에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신체 건강의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내용이 있었다. 이 논문에 감명을 받은 해리스는 아픈 아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한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심각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저자의 연구 과정이 담겨 있다. 부정적 경험을 반복해서 겪은 아동은 성인이 돼서 심장병과 뇌졸중,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높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면 마음과 몸에 병이 생긴다. 저자는 이를 유독성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단순히 어른들만의 문제로 한정해서 생각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성장하는 아동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독성 스트레스에 민감한 아동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지속되어야 한다. 아동이 가장 많이 겪는 부정적 경험은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모는 자녀가 스트레스에 혼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점점 회복된다고 해도 부정적 경험에 대한 수치심을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이 나빠진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나 스스로 극복해야 할 역경으로 미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더 큰 피해를 발생하게 만든다.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에 부정적 경험을 겪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심각성에 둔한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일로 다루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중보건 차원에서 아동의 정신 건강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동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한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부정적 경험이 우리 몸과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곳저곳 몸이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마음의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왜 우리가 그동안 의 아픈 경험을 낯설게 느끼면서 살아왔는지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아픔에 둔감해서 마음의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모르는 게 아니다. 마음과 몸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믿어주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는 개인의 부정적 경험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낯선 문제로 보게 만든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의료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고통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와 지속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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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1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 마음 아픈 얘기네요. 꼭 어린 시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겠죠. 결국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 대한 배려겠죠. 상처 받지 않도록, 기분 상하지 않도록 배려.
자식한테도 그런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리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부모의 자식 차별로 가슴속에 멍이 든 경우도 봤어요.

cyrus 2020-03-11 18:14   좋아요 0 | URL
부모는 가끔 나쁜 의도가 없어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사소한 말은 아이의 인생에 계속 따라옵니다. 아이가 혼자서 그걸 감당하면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병이 생길 거예요.
 

 

 

검은 머리에 하나로 이어지는 짙은 눈썹, 당당한 눈빛, 그리고 화려한 멕시코 전통 의상.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수백 점의 작품을 남겼고 그중 다수가 자화상이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멕시코 민중이 있는 풍경을 벽화로 그렸지만, 프리다는 자신의 체험과 감정을 소재로 내면의 풍경을 그렸다.

    

 

 

 

 

 

 

 

 

 

 

 

 

 

 

 

* 르 클레지오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다빈치, 2011)

* 휘트니 채드윅 뮤즈에서 예술가로(아트북스, 2019)

 

 

프리다와 디에고와 결혼했을 때 사람들은 비둘기와 코끼리의 결합이라고 놀렸다. 그를 너무나 사랑했던 프리다는 디에고를 나의 뚱뚱보(Me El Gordo)라는 애칭을 부르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한 디에고는 프리다의 동생과 불륜에 빠지기도 했다. 프리다의 삶은 줄곧 망가져 가는 육체와의 싸움이었다. 그녀는 서른 번 넘게 수술을 받았다. 그녀의 병실은 화실이 됐고, 그림의 모델과 소재는 자기 자신이 됐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에 끔찍한 교통사고까지, 고통으로 몸부림쳤던 그녀는 그림으로 자신의 슬픈 경험과 삶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Le Clezio)가 쓴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다빈치)는 결혼 이후 두 사람의 그림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서로의 그림으로 영감을 얻으면서 자신만의 예술관을 발전시키는 한편, 배우자의 예술적 영향력을 넘어서려고 노력했다.

 

초현실주의 그룹을 이끈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과 그의 아내 자클린 랑바(Jacqueline Lamba)는 멕시코에 가서 프리다 부부를 만난다. 이때부터 프리다와 자클린은 절친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프리다는 브르통을 좋아하지 않았다. 프리다의 작품을 평가한 브르통의 발언이 문제였다. 브르통은 그녀의 작품을 칭송하면서 그녀를 초현실주의자라고 선언했다. 프리다는 자신을 초현실주의자로 규정하는 평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프리다는 초현실주의 그룹의 여성 일원이라 볼 수 없지만, 자클린은 그녀의 그림을 좋아했다. 두 여인의 이야기는 여성 초현실주의들의 삶과 우정을 그린 책 뮤즈에서 예술가로(아트북스)에 있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두 여인이 프리다와 자클린이다. 이 둘이 친밀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매력적인 서로의 재능이었다.

    

 

 

 

 

 

 

 

 

 

 

 

 

 

 

 

* 정일영 내가 화가다(아마존의나비, 2019)

    

    

 

페미니즘 관점으로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주고,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 내가 화가이다(아마존의나비)에도 프리다가 언급된다. 페미니즘 미술과 여성 예술가 중심의 미술사를 논할 때 프리다가 빠져선 안 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프리다를 언급하면서 그녀에 대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한다.

 

 

 칼로는 자신을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한 비평가들에게 반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절 미술의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던 초현실주의자 호칭이 딱히 불편하거나 불리할 것은 없었다. (23)

 

 

프리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대장으로 알려진 브르통의 평가를 거부했던 사람이다. 또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이 공유한 예술에 동조하지 않았다. 저자는 무슨 근거로 프리다가 비평가들의 평가에 반발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 왜곡되게 전달돼 독자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 ‘프리다는 초현실주의자라고 말이다. 프리다는 프리다. 그녀의 예술은 어떤 사조로 규정할 수 없다.

 

 

 

 

Trivia

 

 

내가 화가이다111쪽에 제르미 벤담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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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9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9 21:05   좋아요 0 | URL
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예전에 읽은 책에 대한 글이 써지게 되네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안심해선 안 되지만, 다음 주에 대구 코로나 확진자 수가 점점 줄어들 것 같습니다.
 

 

 

 

 

로다 브로턴(Rhoda Broughton)의 단편 공포 소설 19세기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일에 보면 비핀 여사(Miss Biffin)라는 인물의 이름이 언급된 문장이 있다. 비핀 여사는 누구인가? 그녀가 누군지 설명한 역자의 주석은 이렇다.

    

 

 

 

 

 

 

 

 

 

 

 

 

 

 

* [e-Book] 로다 브로턴 19세기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일(올푸리, 2020)

 

 

 영국 화가 사라 비핀(1784~1850)은 선천적으로 팔이 없고 왜소증을 앓았지만 노력 끝에 입에 도구를 물고 글쓰기와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됐다. 후에 그림 그리는 법까지 배워 장터나 박람회에서 전시회를 열고 그림 그리기 공연을 하다가 스코틀랜드 귀족의 눈에 띄어 왕립 미술 아카데미 출신 화가에게 정식 미술 수업을 받았다. 이후 미술협회 메달 수여, 왕실의 초상화 의뢰 등 화가로서 명성을 쌓으며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소설 원문에는 ‘Miss Biffin’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비핀 여사의 이름은 ‘Sarah Biffen(사라 비펜)’, ‘Sarah Beffin(사라 베핀)으로 알려졌다. 위키피디아(Wikipedia) 영문판에 그녀의 일대기를 소개한 항목이 등록되어 있으며 ‘Sarah Biffen’으로 검색하면 된다. 이 글에서는 사라 비핀으로 쓰겠다.

 

왜소증을 앓았던 비핀의 키는 94cm였다. 그녀가 활동한 시기에 유럽에서는 프릭 쇼(Freak show)가 유행했다. 프릭 쇼는 장애인과 비유럽인(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등)들을 전시하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쇼다. 프릭 쇼는 20세기 초까지도 성행했으며 샴쌍둥이, 신체 일부가 없는 절단 장애인의 몸은 비장애인들을 위한 전시 대상이 되었다. 비핀의 가족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어린 비핀을 프릭 쇼 무대 위에 올렸다. 어느 날 비핀은 에마누엘 듀크(Emmanuel Dukes)라는 공작의 눈에 띈다. 듀크는 비핀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알려준 인물이다. 비핀은 상아에 그림을 그리거나 미니어처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유료 전시회가 열렸으며 비핀이 그린 그림들은 판매되었다.

 

비핀의 실력과 작품을 눈여겨 본 조지 더글러스(George Douglas) 백작(역주에 언급된 스코틀랜드 귀족’이)은 비핀이 왕립 미술 아카데미 출신 화가에게 그림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후원을 해줬다. 그러나 백작이 1827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비핀에게 경제적 위기가 찾아온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은 비핀을 위해 연금을 수여한다. 화가 일을 그만둔 비핀은 라이트(Wright)라는 남자와 결혼하고(결혼 이후에 그녀에게 ‘Mrs E. M. Wright’라는 호칭이 생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지내다가 66세에 세상을 떠났다.

    

 

 

 

 

 

 

 

 

 

 

 

 

 

 

 

 

 

 

 

 

 

 

 

 

 

 

 

 

* 찰스 디킨스 작은 도릿(한국문화사, 2014)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Nicholas Nickleby(1839), Martin Chuzzlewit(1844), 작은 도릿(Little Dorrit)(1855~1857)에 비핀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고 한다.

    

 

 

 

 

 

 

 

 

 

 

 

 

 

    

 

* [절판] 앨리슨 래퍼 앨리슨 래퍼 이야기(황금나침반, 2006)

* 조이한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한겨레출판, 2019)

 

    

 

사라 비핀과 비슷한 영국의 여성 장애인 화가로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가 있다. 양팔이 없는 채 태어난 그녀는 입과 짧은 다리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그녀의 자서전 ‘My life in my hands’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었다.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Marc Quinn: 자신의 피를 뽑아 냉각해 만든 두상 셀프(Self)’는 그의 대표작이다)은 임신 9개월의 앨리슨을 모델로 만든 5m 높이의 조각상을 제작했고, 이 조각상은 2005년에 런던 트래펄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전시되었다. 트래펄가 광장은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장군의 트래펄가 해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그곳에 넬슨 장군의 전신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크 퀸이 만든 조각상이 공개되자 예술성이 부족하다’, ‘아름답지 않라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앨리슨은 조각상에 대한 반대 여론을 반박하면서 장애 여성의 몸이 흉하지 않다는 사실을 비장애인들이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부분 비장애인은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인의 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장애인들은 밀로의 비너스(Milo-Venus)와 같은 토르소(torso)를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작품으로 칭송한다. ‘비장애인 백인 남성의 신체 비례와 몸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는 몸의 아름다움을 비장애인의 모습에서만 찾는다. 임신한 장애인 여성의 몸을 모델로 한 마크 퀸의 작품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미적 기준을 거부하고, 다양한 몸들이 모두 아름다울 수 있음을 말한다.

 

전쟁 중에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은 넬슨 장군은 장애인이다. 마크 퀸의 작품을 보면서 장애인의 몸은 아름답지 않다라고 반발한 사람들은 왜 넬슨 장군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장애인의 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에도 성차별적 인식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장애 여성의 몸이 아름답지 않다고 보는 것은 장애인 차별과 성차별이 교차한 경우다. 차별 문제의 원인은 한 가지로만 볼 수 없다.

    

 

 

 

 

 

 

 

 

 

 

 

 

 

 

 

 

 

 

 

 

 

 

 

 

 

 

 

* 버나드 덴버 툴루즈 로트레크(시공아트, 2014)

* 엔리카 크리스피노 로트레크: 몽마르트르의 밤을 사랑한 화가(마로니에북스, 2009)

* 앙리 페뤼쇼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다빈치, 2009)

* 마티아스 아놀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마로니에북스, 2005)

* 클레프 프레셰 툴루즈 로트레크(시공사, 1996)

    

    

 

사라 비핀은 생전에 명성을 얻은 뛰어난 화가였으나 미술사에 언급되지 않았다. , 생각해 보니 파리 유흥가의 풍경을 그린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는 장애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 예술가들에 주목한 미술사를 쓰는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그래도 다시 쓴 미술사는 여전히 반쪽짜리다. 비장애인 예술가 중심으로 구성된 미술사.

    

 

 

 

 

 

Trivia

    

 

앨리슨 래퍼와 마크 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한겨레출판)에 나온다. 덧붙여, 이 책에 있는 오류를 언급하겠다.

 

 

  서양미술에서 여성의 음모가 그려진 그림은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처음이다. 그전까지는 성인 여자를 그릴 때조차 음모를 그리지 않았다. (235)

 

 

쿠르베(Gustave Courbet)세상의 기원1866년에 제작되었다. 나는 여성의 음모가 그려진 최초의 그림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쿠르베가 태어나기 전에 나온 여성의 음모가 그려진 그림이 뭔지는 안다. 그 그림은 바로 18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옷을 벗은 마하. 따라서 쿠르베의 그림은 여성의 음모가 그려진 최초의 그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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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9세기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일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13
로다 브로턴 / 올푸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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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1840년에 웨일스에서 태어난 로다 브로턴(Rhoda Broughton)은 유명 작가인 친척 레 파누(Le Panu)로부터 인정받아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은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던 도서 대여점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영국에 정착한 브로턴은 결혼하지 않고, 말년에 자매와 함께 살다가 1920년에 세상을 떠났다.

 

1868년에 발표된 브로턴의 단편소설 19세기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일(원제: The Truth, the Whole Truth, and Nothing but the Truth)서간체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두 명의 여성이 주고받은 편지글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형식의 공포 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엘리자베스 드윈트세실리아 몬트레서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 세실리아는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남편과 함께 런던으로 이사하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불볕 아래 런던 절반을 돌아다녔고, 수십 명 이상의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났다고 한다) 세실리아와 남편이 살 집을 구한다. (우와! 정말 멋진 친구다)

 

엘리자베스는 메이페어 XX32번지에 있는 좋은 집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이 살 집을 구하는 것처럼 집 내부를 꼼꼼하게 살핀다. (우와! 정말 멋진 친구다X2) 엘리자베스는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지만, 전세금이 상당히 비쌀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알아 보니 생각보다 전세금은 비싸지 않았다. 그녀는 이 집에 거주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어서 전세금이 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 관리인은 집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이 집을 사기로 한다.

 

세실리아와 남편은 좋은 친구 덕분에 메이페어 XX32번지에 정착한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엘리자베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끔찍한 집’을 얼른 가고 싶다고 말한다. 세실리아의 하녀는 집에 무서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을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세실리아에게 알린다. 귀신의 존재를 믿는 세실리아는 불안에 떨지만, 그녀의 남편은 유령은 없다면서 코웃음을 친다. 세실리아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아델라(이 여성이 누군지 본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아델라를 언급하는 내용의 문장에 ‘본가라는 단어가 있는 거로 봐서는 세실리아의 여동생인 것 같다)를 위해 방 하나를 준비한다. 그런데 어린 하녀는 아델라가 쓸 방에서 귀신을 목격해 의식을 잃는다. 그녀는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이상한 말들을 쏟아낸다. 이상한 소동을 알린 세실리아의 편지를 본 엘리자베스는 세실리아에게 답장을 보낸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도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2주가 지나서 엘리자베스는 세실리아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세실리아는 끔찍한 집을 떠나게 되었다면서 근황을 알린다그러면서 그 집에서 또 일어난 무서운 소동을 들려준다.

 

소설은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작가가 살았던 19세기 영국에 실화 같은 무서운 이야기가 유행했다. 특히 어떤 집에서 귀신을 목격했던 사람이 미쳤다거나 죽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 이런 이야기는 작가가 꾸며낸 것이다. 그래도 이 허구의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실리아라는 여성이 편지로 무서운 경험담을 들려주는 방식은 독자들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작가는 집에 나타난 귀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끝내 밝히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묘사를 생략한 작가의 의도적인 글쓰기는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러한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자 반응이다.

 

 

    

 

 

Trivia

 

 

* 4

 

 

 

하늘하하늘하늘하늘의 오식이다. ‘하늘하늘은 조금 힘없이 늘어져 가볍게 잇따라 흔들리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 32

    

 

 

 

이 소설에 랠프 고든이라는 남성이 나온다. 세실리아의 묘사에 따르면 그는 잘생긴 청년이다. 랠프 고든은 집에 나오는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면서 오늘 밤 그 문제의 방에 혼자서 지내겠다고 말한다. 자신감 넘치는 이 청년이 그 방에 들어간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랠프 고든은 방에 들어가기 전에 아델라에게 장난으로 유언을 남긴다(복선). 이 남자는 조지 G. 바이런(George G. Byron)의 시구를 읊으면서 허세를 부린다. 고든이 읊은 시구(“그대여 안녕히, 만약에 영원이 있다면 그때엔 영원히 안녕히”)그대여 안녕히(Fare Thee Well)의 시구를 살짝 바꾼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조지 G. 바이런의 가운데 이름 ‘G’는 고든(Gordon)의 첫 글자. 랠프 고든이 조지 고든 바이런의 시구를 읊는 모습은 작가가 설정한 재미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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