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민음사 출판그룹 논픽션 브랜드 민음인입니다.

세계 주요 언론과 경영 석학이 극찬한 역작! 

우리가 모르는 아웃 라이어 이야기.

 『인비저블』이 민음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

#인비저블?


외부적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

 

고도의 전문성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며 일을 통해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


 

 



『인비저블』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월스트리트 저널》, 《퍼블리셔스 위클리》, 《커커스 리뷰》, 《북리스트》

 

와튼스쿨 애덤 그랜트 교수 등 세계 주요 언론과 경영 석학이 극찬한 역작!



일과 성공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인비저블’은 누구인가. 그들의 삶은 어떻게 성공적이면서도 행복한가?


모든 산업 분야에는 수백만 명의 인비저블들이 숨어 있다. 다방면에서 슈퍼스타와 천재가 난무하는 자기 과시와 명성의 시대에, 그들은 무명으로 남으면서도 일과 삶을 즐긴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데이비드 즈와이그는 『인비저블』을 통해 현대의 지배적인 풍조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을 통해 일과 성공의 참의미를 재고찰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

 

묵묵히 맡은 일에 몰입하는 것이 나를 위대하게 한다.”


사실 검증 전문가(fact checker)와 마취 전문의, UN 동시통역사, 초고층 빌딩의 구조공학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실수를 저지를 때, 조직은 대참사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일을 완벽하게 해낼 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잘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지만, 인비저블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오로지 뭔가 잘못되었을 때뿐이다.


사회에 팽배한 과시적 성공 문화에 반기를 들고, 외부적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만족스러운 경제적 보상을 받는 조용한 엘리트들. 저자는 모든 조직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 인력임에도 익명의 삶을 선택한 인비저블의 특성을 통해 이 시대 성공에 대한 재정의를 내린다.





자기 홍보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모든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으며, 어떤 이들은 그것을 원치도 않는다. 책 속 인비저블들은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으며, 오히려 자기 일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을 수월하게 해내며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풍요로운 삶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자세한 책소개 보기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173827 



▶ 『인비저블』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인비저블』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적어서 스크랩 링크와 함께 댓글로 올려주시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5년 2월 27일(금)부터 3월 8일(일)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은 10명입니다.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인원이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넷, 서평단 발표일은 2015년 3월 8일 월요일입니다.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3월 9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댓글로 적어야합니다.

3월 9일 까지 주소확인이 안되면 당첨이 자동취소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5년 3월 10일 부터 3월 19일까지(10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된 서평단 분들은 서평기간인 10일 안에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 후, 『인비저블』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알라딘 개인 블로그 및 그 외 블로그나 외부 채널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댓글을 작성하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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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하늘을 향해 나는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땅에 떨어졌으나 간 곳을 몰랐다.
너무도 빨리 날아가 버려
눈으로도 그 화살을 따를 수 없었다.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중에서)

 

 

인간은 살면서 무수한 시간의 화살을 허공에 날리는 숙명을 타고난듯하다. 어떤 화살은 목표물에 접근도 못했고, 어떤 화살은 아직도 날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이 재단한 시간의 흐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겠는가. 꽤 오랜 시간을 지난 뒤에서야 태초의 인간이 처음으로 쏜 시간의 화살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가슴 속에 있었다. 대다수 학자들은 “시간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발견으로 비로소 과학, 철학, 종교가 생겼고 이를 통해 인류는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초기 기독교도들을 시험에 들게 한 문제는 다름 아닌 시간의 창조였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시간 속에서 창조했을까, 아니면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공간과 시간의 모체를 먼저 창조했을까. 여러 세기 동안 지속한 이 논쟁의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 철학자들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에 인간이 그토록 정체를 알고 싶었던 시간은 얄밉게도 계속 흘러만 갔다. 이처럼 시간은 일상성과 더불어 추상성을 함께 갖고 있어서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운 주제이다. 매일 시간 맞춰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헐레벌떡 뛰어가면서도, 우리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인간은 우주의 광대한 시간 운행 속에서 작은 생명체로 살아간다. 밤과 낮의 교차에 따라 일하고 쉬고, 거대한 우주적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다. 우리가 해마다 먹는 이 나이란 것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말한다. 이렇듯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일치한다.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우리는 시간과 우주와의 연결고리 속에 살아왔다. 구석기인들은 시간을 거대한 우주 안에서 찾았다. 이때부터 태초 우주의 모습을 묘사한 고대 신화를 통해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우주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우주론은 우주의 창조와 진화, 미래의 운명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천문학이 대부분의 우주론을 다뤘다. 우주론의 역사는 대부분 천문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천문학의 등장은 시간의 역사와 거의 같다. 바로 밤과 낮의 구분을 인식하는 순간, 그것이 바로 천문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미스터리한 기계의 정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으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과 행성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해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혼돈의 우주에 사는 것이 아니다. 간결한 수식으로 우주의 구조와 물질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인 ‘조화의 우주’에 살고 있다. 우주(세상)의 근본물질을 탐구한 수많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 가운데 정교한 모델을 만드는 데 가장 부합되는 주장이 피타고라스학파다. ‘세상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신념은 지금은 엉뚱해 보일지라도 이 단순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원리 덕분에 본격적으로 삶의 질서를 분명하게 정해주는 우주론의 틀이 조금씩 만들어져가기 시작했다. 인류는 수와 기하학에 매료되었고, 플라톤도 진짜 현실은 우주 자체가 수학적인 원리로 설계되었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영향의 결과로 달력과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이 등장할 수 있었다. 초창기에 나온 달력은 세금 징수 시기나 축제의 시기를 알렸고,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은 정밀한 천문시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천문학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고정불변의 우주모델이었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가 잠시 끊어지게 되었고, 우주는 종교로 포섭되었다. 암흑시대는 과학자마저 우주모델을 함부로 논하다가 이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하늘의 주기에 따라 삶을 살았던 패턴은 점점 잊히기 시작하고, 시간의 역할도 미미해져만 갔다. 역설적이게도 우주의 시간을 신의 영역으로 재단했던 종교인들은 우주의 질서에 따른 시간에 맞춰 살았다. 수도승들은 수도원의 성무일과에 따라 하루를 보냈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에 숨겨져 있었네. 신이 말하길, ‘뉴턴이 있어라!’ 그러자 모든 것이 광명이었으니.”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만든 뉴턴의 묘비명처럼 신은 어두운 곳에 숨겨진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 번 이어줄 구원자를 이 세상에 보내줬다. 뉴턴은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의 개념에 기반을 둔 고전 물리학을 완성했다. 뉴턴의 등장으로 절대 시간을 지닌 시계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뉴턴은 자신을 신이 특별히 임명해준 ‘자연의 대제사장’이라고 여겼다. 그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인공을 불러들인 이유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완벽한 무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뉴턴이 직접 짠 우주론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은 신이었다.

 

뉴턴의 우주론을 진짜 과학의 무대로 옮겨 새롭게 각색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그가 다시 꾸민 우주론의 무대에 신을 하차시켰고, 대신 다양한 속도와 다양한 체계 속에서 흐르는 시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성의 권위를 부여한 뉴턴의 발상을 뒤엎고, 절대적 지배구조를 없앴다. 아인슈타인 우주론의 무대에서 시간은 상대적 운행에 따라 좌우된다. 그동안 인류가 세상을 피부로 느끼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생소했던 동시성은 물리학의 핵심이 되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등장으로 시간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시작된다. 시간도 공간과 동일한 물리적 차원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된 차원이라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거대한 우주에서는 절대시간이란 없다. 다만 상대적 시간만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가 아는 과학적 지식에 의하면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폭발로 우주가 생겼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빅뱅(Big Bang) 이론에서 빅뱅은 폭죽의 의미다. 밤하늘 불꽃놀이를 볼 때 한 점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퍼져 나가듯 우주도 그렇게 생겨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빅뱅 전에는 무엇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시간과 공간도 없는 진공’이라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비유해 온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데 불과하다. 빅뱅 이론이 우주에 단 한 가지 공간밖에 존재하지 않음을 가정하고 있을진대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점이 서로에 대해 똑같은 속도로 멀어져 가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빅뱅의 순간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편의상 그렇게 상상해왔을 뿐이다. 시간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한 여러 가지 우주론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후예들은 지금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를 계속 찾는 중이다.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의 연결고리는 아주 가깝고도 먼 우리 안의 원초적 본능이다. 고대인들은 시간의 큰 단위에 관심을 가지고 삶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았던 반면, 우리는 시간의 작은 단위인 분과 초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에 쫓기느라 삶을 충분히 느끼지도 못하고, 그것에 적응할 준비만 하다가 어영부영 세월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서두르느라 사랑이나 기다림, 신뢰, 결속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희생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만날 달고 사는 시간이 무엇이며 언제부터 또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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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도이야기라는 책에서 크로노미터에 반했었죠. 시간이란게 참 신기해요. 정말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지 개념같기도 하고 말이죠.

cyrus 2015-03-01 09: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시간 개념이 발견되는 과정의 역사를 보면 대단해요.
 
0시 1분 전 -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
마이클 돕스 지음, 박수민 옮김 / 모던타임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전후 미국의 외교정책 중 가장 참담한 실패 중의 하나가 1961년 4월 17일에 있었던 피그스 만 침공이다. 게릴라로 위장한 쿠바 난민들을 쿠바의 피그스 만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다. 그러나 CIA의 낙관적인 말만 믿고 피그스 만에 상륙했던 쿠바 난민들은 카스트로 혁명군에 의해 생포되거나 사살되었다. 피그스 만 침공 계획은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없었다. 카스트로 정권이 난민들에 의해 무너질 만큼 허약하지도 않았고, 성패와 관계없이 누구든 CIA를 그 배후로 지목하게 돼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케네디 정부의 외교적 손실은 막대했다. 국제사회에서 망신당한 것은 물론 미국이 반정부군을 지원한 것이 드러나, 케네디 대통령의 참신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쿠바는 소련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쿠바는 결국 소련의 핵미사일을 끌어들임으로써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했다.

 

케네디는 미국 코앞에 핵무기가 배치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타개하는 동시에 피그스 만 침공 계획 실패로 상실된 강대국으로서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를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로부터 면전에 굴욕을 당할 정도로 케네디의 입지는 흔들리고 있었다. 당시 정책실패를 통해 케네디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피그스 만 침공 계획은 ‘집단 사고’가 만든 무모한 정책 결정이었다. ‘집단 사고’란 정책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 간에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논쟁을 통해 좋은 결정을 도출하기보다는 쉽게 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버리는 현상이다. 이러면 잘못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공교롭게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피그스 만 침공 계획에 참여했던 정책 결정자들이 케네디 옆을 지키고 있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그리고 법무부 장관이자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애칭은 바비)까지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는 데 있어서 케네디는 이들을 믿고 국가안보회의를 열어 치밀한 전략회의를 했다. 하지만 서로 워낙 친했던 이들은 침공계획의 무모함을 집어내지 못했다. 전략회의가 수차례 열렸지만, 누구도 반대편에 서서 한 번쯤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쿠바의 반정부 군인들을 침투하면 카스트로 혁명군을 투항시킬 수 있다는 성급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케네디에게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했다. 문제점만을 지적해서 집단적 사고를 훼방하는 악마의 적임자로 자신을 가까이 지켜봤던 바비를 선택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상황을 분석한 일부 역사가들은 바비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했고, 그 덕분에 즉각 공습보다 온건한 해안봉쇄로 선회했던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를 했다. 지금도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을 논하면 젊고 용기 있는 미국 대통령과 대통령의 동생이 소련의 핵 위협을 놀라울 정도의 냉철한 판단으로 절묘하게 막아낸 것으로 묘사한다.

 

 

 

 

흐루쇼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핵무기를 초강대국간 경쟁에 있어서 한 가지 요소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전쟁을 원하면 “당장 해봅시다”라며 거칠게 몰아쳤다. 회담이 끝난 뒤 케네디는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에게 말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흐루쇼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26쪽)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공습을 옹호했던 사람은 바비였다. 그는 직함만 법무부 장관이었지 역할은 정부 내 2인자나 다름없었다. 오래전부터 쿠바 혁명군을 소탕하고,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CIA와 펜타곤 간부들을 긴밀하게 만나 비밀 위원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바비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흐루쇼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난처해진 자신과 대통령의 상황이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쿠바를 침공하고 싶은 마음은 형보다도 무척 강했다. 36살이라는 새파랗게 젊은 국무장관은 대통령의 귀에 쿠바 침공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귓속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통령은 동생보다 이성적이었고, 자칫 더 큰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었던 침공 결정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었다. 케네디 정부의 역사를 기록한 아서 슐레진저 2세는 반카스트로 작전에 관여했던 바비의 활동을 ‘가장 눈에 띄는 바보짓’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측근들은 바비의 ‘바보짓’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대통령의 동생이자 백악관의 두 번째 실세의 뜻을 함부로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3일 동안 이어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새롭게 조명한 마이클 돕스는 《0시 1분 전》에서 대통령과 바비의 관계를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고 비유한다. 케네디가 차분한 성격이라면, 바비는 쉽게 감정이 격앙되고 승부욕이 강한 거친 성격이다. 케네디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쿠바 기지에 대한 공습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바비의 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케네디의 이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던 바비는 애초에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줘야 할 ‘악마의 대변인’에 어울리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주연 중에 주연”이자 “편집증이 있는 과대망상증 환자”였을 뿐만 아니라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자 “정열적이고 머릿속이 복잡한 천재”였다. 세 명의 지도자 가운데 카스트로만이 특별한 임무를 위해 역사가 선택한 구세주적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137쪽)

 

그런데 바비 못지않게 ‘가장 눈에 띄는 바보짓’으로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간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카스트로였다. 흐루쇼프는 공산주의 국가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핵미사일을 빌미 삼아 쿠바에 엄포를 놓았다. 이미 먼저 터키에 미사일을 배치한 미국의 태도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흐루쇼프는 미국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했고,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여 핵전쟁으로 유도하도록 만들게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케네디와 흐루쇼프는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핵전쟁이 전 세계의 파괴를 부르는 ‘치킨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나라가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쿠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는 엄청난 치킨 게임에 승리하기를 갈망했고, 이 게임에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겁쟁이(chicken)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게임에 승리하면 쿠바 내부에 있는 정치적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 간의 팽팽한 눈싸움에 쿠바의 카스트로는 눈치 없이 끼어들었고, 소련의 비호를 받아 당당해진 카스트로는 미국을 쓰러뜨리려고 핵전쟁을 불사하는 기세였다. 흐루쇼프도 쩔쩔 맬 정도로 카스트로는 야심이 강했다. 하지만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힌 양국의 정치적 계산을 이해하지 못했다. 질색하는 이념만 달랐을 뿐이지 카스트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빅 터짓슨 장군과 비슷하다. 반대로 미국에는 호전적인 성격의 커디스 르메이 장군이 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미사일 위기가 지난 뒤에 개봉했는데 빅 터짓슨의 실존 모델은 르메이다)

 

《0시 1분 전》은 단순히 쿠바 미사일 위기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한 책이 아니다. 혼돈으로 치닫기 일보 직전인 쿠바 미사일 위기의 순간들 하나하나 조명함으로써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재연한다. 마이클 돕스가 재구성한 13일간의 신경전에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늘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승자로 기억되는 미국은 극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으며 소련은 공산주의와 쿠바를 지켜내기 위한 방어적 자세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세워 무모한 도박을 감행했다. 쿠바는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휩쓸려 미국을 로켓으로 날려버리고 싶어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기의 분열된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악의 역사다. 이때는 표면적으로 어떤 협상도 오갈 수도 없었다. 흐루쇼프는 팽팽하게 맞서는 대치 상황을 ‘너무 단단하게 묶어서 묶은 사람조차 풀지 못하는 매듭’에 비유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는 핵무기가 달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묶이고 말았다. 이미 갈 데까지 가게 된 위기 상황을 해소하기에 늦은 감도 있었지만, 미국과 소련은 냉전의 매듭을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풀어주기를 원했고, 계속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눈치 싸움이 길어질수록 대립의 긴장감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설상가상 쿠바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버린 알렉산더 대왕처럼 치킨 게임에 승리한 영웅이 되고 싶었다.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을 요구하는 친서를 내놓는다는 것은 치킨 게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흐루쇼프는 풀릴 방법이 없는 이 냉전의 매듭을 오래 놔두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미국에 먼저 친서를 보냈다. 하지만 오늘날 역사는 냉전의 매듭을 풀려고 앞장서서 해결한 나라로 미국을 제일 먼저 기억한다. 흐루쇼프의 친서를 ‘개소리’라고 헐뜯었던 르메이의 발언과 전쟁을 지지하는 강경파의 모습들은 어느 순간부터 싹 잊혀 버렸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공식적인 역사에 세계의 영웅으로 변신하기 위한 미국의 과장된 신화가 섞여 있다. 최근 쿠바는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흥분에 들떠 있다. 전 세계의 가슴을 쓸어내렸던 13일의 악몽이 너무 쉽게 잊어버린 듯하다. 인류의 멸망으로 향하는 ‘운명의 날’ 시계는 잠시 멈춘 상태다. 핵무기가 완전히 폐기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13일의 악몽은 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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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2-27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최근에 베트남 역사책을 읽는데 마지막 장이 베트남 전쟁이에요 거기서도 냉전이랑 쿠바랑 엮이는데 정말 극단가지 가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뭐 나아진점은 없지만 말이에요.

cyrus 2015-03-01 09:53   좋아요 0 | URL
지금은 북한과 IS가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는데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됩니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법정 「무소유」 중에서, 26쪽)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문장이다. 스님이 난초를 가꾸는 일은 집착임을 깨닫고 나서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여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을 다짐하는 대목이다. 새벽에 오랜만에 「무소유」를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했다. 흔히 독자들은 「무소유」의 마지막 문단에 나오는 문장을 스님이 설파하는 무소유의 의미라고 받아들인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법정 「무소유」 중에서, 임의 발췌, 27쪽)

 

 

소유욕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불편한 안대이다. 삶이 안정되고, 윤택할수록 투명한 안대를 쉽게 벗지 못한다. 소유욕이라는 안대 때문에 내 눈앞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싶어진다. 상대방이 가지고 싶은 걸 가져야 나와 상대방은 동등한 위치에 있고, 반면에 가지지 못한다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소유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남들이 갖지 못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행위를 공개하면서 자랑한다. 소유하는 물건을 사진으로 찍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소유하는 행위 자체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소유욕이 많아지자 소유하는 행위를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상황에 집착한다. 상대방은 당신이 어떤 것을 가졌는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또 소유욕을 지나치게 인증사진으로 과시하는 당신의 행동은 누군가가 모방한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그걸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고, 끝내 소유하고 만다. 만약에 소유하지 못한다면 상실감에 빠지게 되며 당신의 소유욕을 질투한다. 암세포가 증식하듯이 한 사람의 소유욕은 더 큰 소유욕으로 커진다. 심지어 당신의 소유욕은 서로 만나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에 깊숙이 침투하기도 한다.

 

스님은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유욕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간디는 소유를 범죄처럼 생각했다. 한정된 물건을 둘러싸고 모든 사람이 경쟁하게 되고, 상대방을 제거하려고 비열한 수단까지 동원한다. 한 사람이 포기하거나 사라져야만 원하는 물건을 소유할 수 있다. 소유 경쟁의 대열에 밀려 이탈하면 소유의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포기하면 된다. 그런데 소유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는 결핍을 견디지 못해 소유하는 척하기 시작한다.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짝퉁’을 소유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심지어 상대방의 소유욕을 인증하는 사진이나 기록마저 도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영화 <화차> 같은 내용이 가상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명인이나 상대방의 소유욕에 질투하거나 갈망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칭 행각은 범죄 행각이 될 수 있다. ‘SNS 사칭 현상’은 성공 가치를 좇는 현대인들의 욕구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자기 소유의 과욕을 범죄처럼 여기지 않는 왜곡된 소유 관념이 소유하는 행위로 속이는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SNS가 타인에게 ‘나의 소유욕 혹은 소유 상태’를 공개하는 공간이다 보니 남들에게 ‘보여주기’ 식 글을 올리다 보니 마냥 좋아 보이고, 소유욕을 분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자신의 삶으로 이입한다.
 
어디 물건만 소유하고 싶어 하는가. 이제는 사람도 소유하려 든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이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무소유」는 1971년에 쓰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넘쳐나는 소유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집착을 제대로 지적한다. SNS은 남들에게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수록 활성화되는 가상공간이다. 그래서 SNS상에 나를 바라보는 친구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사람도 SNS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과의 교류 횟수가 많을수록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자신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상대방의 정보도 쉽게 노출된다. 과도한 정보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런데도 100명, 1000명이 넘을 정도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마저 친구가 된다. 하루에 마우스 클릭 한 번 하면 친구 여러 명을 ‘소유’할 수 있다. 자신이 ‘소유’한 친구들의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인맥 관계를 과시한다. 사람을 친구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편안하고 흡족한 기분이 든다.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선 상대방과 싸워야 하지만, SNS 친구를 소유하는 데 상대방과 다투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SNS 안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동시에 접속하므로 조금만 마음이 맞거나 말이 통하면 간단하게 친구를 맺는다.

 

소유 관념은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1000명의 SNS 친구를 소유하면 그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치게 관심을 끌게 되고, 자신의 분수를 잊은 채 소유욕을 분출한다.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된다. 마음껏 물건을 소유하는 친구의 삶을 부러워하고, 어느새 심각한 질투심으로 변질된다. 사소한 질투심은 관계를 파괴하는 범죄를 유발한다. 한 소녀는 SNS상 친구의 대학 수시 합격 소식을 접하고 이에 질투심을 느껴 해당 친구의 개인 정보를 몰래 수집하여 해당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입학 취소를 시킨 사건이 있었다. 두 사람은 3년 전에 싸이월드에서 처음 만났고,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우리가 100세까지 살 수 있어도 한 번으로 주어진 인생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나도 많은데 소유욕의 안대를 오래 쓰다보면 육신이 병든다. SNS에 접속하면 우리들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넘치는데도 자꾸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이럴수록 집착은 심해지고, 우울한 분위기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다. 법정 스님은 크게 버릴수록 크게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스님처럼 외부 환경에 신경 쓰지 않을 용기가 있고, 정신적 자세가 올곧지 않는 이상, 집착을 야기하는 소유욕을 말끔히 비워내기 힘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님처럼 크게 버리는 사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하루 한 가지씩 버리는 것은 쉽다. 하루에 스팸메일이 몇 십 통씩 들어오는 이메일을 생각해보라. 하루에 받는 메일을 휴지통에 바로 버리면 메일함은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 반면 하루에 들어오는 메일만 확인하고, 휴지통에 버리지 않으면 무수히 많은 메일이 남는다. 오늘 경험해 봐서 느낀건데 거의 2년 동안 메일함을 비우지 않으면 메일을 삭제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결국 크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지배하는 소유욕이 어떤 게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면서 버려야 할 것을 정해본다. 하루에 한 가지 혹은 두세 가지도 괜찮다. 일단 매일 조금이나마 소유욕을 줄여보자. 나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페이스북 계정에 있는 친구를 한 명씩 친구 관계를 끊고 있다. 지금 페이스북 친구 수는 1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사실 50명 넘은 수도 많다. 이 중에 절반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죽을 때까지 책 소유욕을 줄이는 것은 힘들겠지만, 평생 만날 진짜 친구를 위해서 영혼 없는 친구들을 과감하게 보내기로 한다. 그러면 소유욕을 자극하는 환경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억지로 들이대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일단 가까이 다가와 보고, 상대방이 나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냥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게 낫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 정도로 잘못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내가 먼저 친구 관계를 끊는 행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을 미워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잖은가. 서로 관계가 소원해지니까 어색해서 헤어지는 것이다. 서로 만나지 않고, 상대방의 안부에 관심이 없다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소유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내가 없어도 나보다 좋은 사람들 잘 만나 잘 살 수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이곳 북플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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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2-25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나 하나씩 버리기` 읽고는 실천하고 있어요. 옷, 신발, 가방, 화장품, 학용품, 그릇... 무궁무진합니다.
북플의 친구도 고민할 문제! 자칫 글이 많아 절친(?)의 글을 읽지 못하고 넘어갈때가 있어요.
야근이 많으시군요. 이런!

cyrus 2015-02-25 20:08   좋아요 0 | URL
북플로 만난 분들은 `이웃`이라고 표현해요. 사실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상대방을 잘 모르는 점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웃님들이 선호하는 책들을 확인하고, 왠만하면 이웃님의 글을 읽으려고 합니다. 제 독서 편력이 좁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불타는 피라미드 바벨의 도서관 21
아서 매켄 지음, 이한음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흔히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의 대부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꼽는다. 그가 묘사하는 드림랜드와 그가 창조한 외계 고대신들은 너무나 끔찍하고 몽환적이어서 공포와 함께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독자들이 러브크래프트 코스믹 호러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원초적 본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러브크래프트는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본줄기로 인정받게 되며 오늘날까지 그 원류를 스티븐 킹이 이어받았다. 그렇지만, 공포문학의 계보를 제대로 정리한다면 러브크래프트 곁에는 로드 던세이니와 아서 매켄이 있어야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로드 던세이니의 시적 문장을 쓰고 싶었고, 궁극의 공포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려 연출하는 데 성공한 매켄의 발상을 꿈꿨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어 보면 그가 늘 동경했던 로드 던세이니와 매켄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 일부를 인용하거나 일부러 언급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매켄은 러브크래프트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매켄과 러브크래트트의 소설 속에는 금기에 가까운 미지의 공포에 접근하는 바람에 불가사의한 운명에 처하는 인물이 나온다. 인물이 죽거나 행방불명되면서 이야기는 공포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끝이 난다. 매켄의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이야기의 결말이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것이다. 국내에 유일한 매켄의 작품 선집이라 할 수 있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21번 《불타는 피라미드》에 처음으로 서평을 남긴 독자는 공포의 원인이 완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두루 뭉실 넘어가는 듯한 이야기가 아쉽다고 평을 했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매켄 호러의 특징이다. 공포의 실체와 관련된 단서를 살짝 보여줄 뿐, 독자에게 완전히 공개하지 않는다. 독자는 호기심에 이야기에 쉽게 몰입한다. 이러한 문학적 장치는 대중의 반응을 한 번에 주목하게 하는 신비주의 광고 전략과 비슷하다. 작가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미스터리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러면 독자는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공포의 여운과 긴장감을 쉽게 잊지 못한다. 마치 끔찍한 악몽을 꾸고 나서 그 장면을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구성 방식은 러브크래트프가 소설을 쓸 때 자주 사용했다. 

 

「불타는 피라미드」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검은 인장 이야기」와 「하얀 가루 이야기」)은『The Three Impostors; or, The Transmutations』에 수록된 것이다. 보르헤스는 작품집 중 마음에 드는 두 편의 작품만 골라 소개했다.

 

「검은 인장 이야기」의 그레그 교수는 웨일스 지방의 민간전승에서 전해 내려오던 ‘작은 인간들’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직접 만나는 극적인 순간에 이르지만, 행방불명이 된다. 교수는 떠나기 직전에 남긴 지금까지 추론한 ‘작은 인간들’  대해서 쭉 언급하지만, 교수가 행방불명되면서 편지는 무수한 의문만 남겼을 뿐이다. 이것만 가지고 독자는 ‘작은 인간들’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다. 「불타는 피라미드」에서 ‘작은 인간들’이 다시 등장한다. 주인공 다이슨은 다양한 형태로 배열된 부싯돌, 벽에 그려진 눈 모양 표시 등을 해독하여 황량한 길 한가운데 펼쳐지는 ‘작은 인간들’의 끔찍한 비밀 집회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작은 인간들’의 정체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나마 이 소설의 극적인 장면은 독자들에게  ‘작은 인간들’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살아있는 자들을 집어삼키는 화염 구덩이 속에 ‘작은 인간들’은 몸부림친다. 그들은 인간처럼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지만, 꿈틀거리고 흐느적거리는 무정형의 괴물체에 더 가깝다. 

 

태초부터 존재해오던 무정형의 괴물체 모티프는 러브크래프트가 외계 신들(아자토스, 요그 소토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러브크래프트의 외계 신들은 너무나도 끔직하다 못해 메스꺼울 정도로 혐오스럽다. 「하얀 가루 이야기」는 러브크래트프가 인상 깊은 매켄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에서 악마의 연회에 사용되는 하얀 가루를 과다 복용한 주인공 프랜시스 레스터가 괴물체로 변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곳을 쳐다본 나는 새하얗게 달구어진 쇠가 심장을 지지는 듯한 강렬한 공포심을 느꼈다. 악취를 내뿜는 검은 덩어리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끔찍하게 썩은 모습으로 부글거리는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눈앞에서 녹으면서 계속 모습을 바꾸고 있었고, 끓어오르는 역청처럼 기름기 있는 거품을 부글부글 내뿜고 있었다. (「하얀 가루 이야기」 중에서, 107쪽)

 

 

러브크래프트의 외계 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한 습기가 신체 감각을 자극하고,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한다. 괴물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등장을 알리는 불쾌한 신호를 보낸다. 이때부터 등장인물과 독자는 자신의 등 뒤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포의 압박감이 점점 심장을 조여 올수록 위험한 호기심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공포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깊숙이 다가오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금단의 영역에 침범한다. 죽음과 맞바꾸는 모험의 대가는 너무나도 비참하다. 끝내 공포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금단의 영역에 다가서는 인간은 돌연 사라지거나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된다.

 

매켄은 스티븐 킹과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가 사랑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덜 알려져 있다. 국내에 소개된 매켄의 작품은 열편도 채 안 되는 짤막한 단편이 전부다. 『The Three Impostors; or, The Transmutations』 이 완역되는 날은 과연 있을까. 얼마 안 되는 작품들만 가지고 독자들이 매켄의 흥미진진한 공포문학이 주는 매력을 느껴보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 국내에 번역된 아서 매켄의 작품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자유문학사, 2004)

- 「위대한 목신」

 

《세계 호러 걸작선》(책세상, 2004)
- 「악마의 뇌」(작가명이 ‘아서 메이첸’으로 표기되어 있음)


《세계 호러 단편 100선》(책세상, 2005)
-「궁수」(작가명이 ‘아서 메이첸’으로 표기되어 있음)


《톨긴의 환상 서가》(황금가지, 2005) - 「공포의 엄습」


《러브크래프트 전집 6》(황금가지, 2015) -「검은 인장의 소설」

(「검은 인장 이야기」와 동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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