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생의 묘약』 (L'Elixir de longue vie, 1831년,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
** 이야기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후안은 여자 없이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방탕한 귀족이다. 그의 눈빛과 몸짓에 여심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그의 유혹에 홀렸던 여인이 전 유럽에 걸쳐 2000명에 달한다. 15세기 이후 수많은 작가는 돈 후안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재료로 다양한 인격의 돈 후안을 만들어냈다. 17세기 스페인의 신부 출신 작가 티로스 데 몰리나는 1630년에 《돈 후안 : 석상에 초대받은 세비야의 유혹자》(을유문화사, 2010)라는 희곡을 썼고, 그다음에 오늘날 가장 많이 연극 무대에 오른 몰리에르《동 쥐앙 또는 석상의 잔치》(기린원, 2010)가 나왔다.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몰리나의 돈 후안에 영향을 받았지만, 주인공의 면모에 차이가 있다. 몰리나의 돈 후안은 전형적인 바람둥이, 호색한의 대명사다. 그는 수많은 여성을 유혹하고 파멸시킨다. 그가 목표로 한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오직 정복일 뿐이다.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끝까지 자유를 원하고 굴복하지 않는 시대의 반항아로 등장한다. 그의 바람기는 속박을 넘어서려는 저항 행위다. 사회제도, 종교의 규범, 귀족의 권위 같은 것은 중요치 않다. 오로지 사랑할 수 있는 자유만을 숭배한다. 길들지 않는 자유인 동 쥐앙은 17세기 이성주의에 반기를 든다. 이러한 파격적인 설정 때문에 《동 쥐앙》은 당시 초연 2주 만에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발자크의 단편소설 『영생의 묘약』 역시 돈 후안 전설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지만, 감각의 쾌락을 더 누리려는 욕심에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싶은 존재로 나온다. 기존의 돈 후안 이야기가 엽색 행각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발자크의 돈 후안은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는 악마적 면모가 강하다. 또한, 발자크의 돈 후안은 스페인의 세비야가 아닌 이탈리아 도시 페라라에 거주한다. 돈 후안의 아버지 바르톨로메오는 곧 죽음을 앞둔 나이에 접어들자 삶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 돈 후안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에게 위로하는 척하면서 내심 그가 얼른 죽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죽으면 유산은 고스란히 자신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아들에게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긴다.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영생의 묘약’을 자신의 몸에 바르라고 부탁한다. 아버지의 기묘한 유언을 믿지 못한 돈 후안은 시험 삼아 ‘영생의 묘약’을 아버지의 시체에 발라보기로 한다. 아버지의 오른쪽 눈에 묘약을 바르자 놀랍게도 그 눈이 번쩍 뜨인다. 부활의 조짐을 알리는 눈물방울이 공포에 떠는 돈 후안의 손등에 떨어진다. 아버지가 완전히 부활한 줄 알았던 돈 후안은 아버지의 눈을 뽑아버린다. 아버지의 유언을 거역한 돈 후안은 급하게 아버지의 시신을 땅에 묻고 장례식을 치른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마음껏 호화로운 방탕을 누린 돈 후안이었지만, 그도 세월의 변화를 비껴갈 수 없다. 점점 늙어가는 돈 후안은 아버지처럼 온갖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허망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에게 당부한다.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묘약을 자신의 몸에 바르게 해달라고. 그런데 아들은 묘약을 돈 후안의 얼굴과 오른쪽 팔에 바르고 말았다. 돈 후안의 부활을 기리는 시성식이 진행되는 과정에 돈 후안의 얼굴만 죽은 몸통에 떨어져 나와 살아난다. 얼굴만 움직이는 돈 후안이 자신의 시성식을 주관하는 사제의 머리를 물어뜯으면서 소설은 이렇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끝이 난다.

 

 

 

 

 

오귀스트 로댕  「우골리노」 (1882년)

 

 

돈 후안의 머리가 사제의 머리를 물어뜯는 엽기적 결말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 등장하는 우골리노 백작 이야기와 흡사하다. 우골리노는 자식과 함께 감옥에 갇혀 굶어 죽는 형벌을 당한 후,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먹는다. 지옥에 간 우골리노는 자신을 감옥에 갇히게 한 대주교를 다시 만나, 그의 머리를 물어뜯는 끔찍한 복수를 한다. 발자크는 단테의 《신곡》 한 장면을 패러디하면서 머리만 살아남은 돈 후안을 반종교적 악마로 그려냈다. 머리가 신체에 분리되어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형되는 설정 하나로 『영생의 묘약』은 섬뜩한 공포 효과를 주는 데 성공했다. 마치 결말에 이르러서야 충격적 장면 하나로 관객의 심리를 압도하는 단편 공포영화를 보는 듯하다. 정말 결말이 인상적이다. 원래 돈 후안이라면 지옥 불에 떨어져 천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발자크의 돈 후안은 영생의 꿈이 도달하지 못하여 끔찍한 괴물이 되는 벌을 받지만, 끝까지 참회를 거부한다.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종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도덕 윤리마저 잘근 씹어 먹는 악마 본성을 드러낸다. 괴물이 된 돈 후안에게서 ‘승리자 같은 오만방자함’(《시지프 신화》 중에서, ‘카뮈 전집 특별판 2권’, 347쪽)이 느껴진다. 

  

돈 후안은 사랑도 언젠가는 내 몸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달콤한 감정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종말에서 비롯되는 허무감을 피하기 위해서 여성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그는 이천 명이나 되는 여성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여성과의 만남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평생 죽을 때가지 누리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카뮈는 돈 후안에게서 부조리한 인간의 면모를 발견한다. 죽음에 직면하는 발자크의 돈 후안은 온 몸을 다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어도 아직까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모른다. ‘영생의 묘약’의 효과를 믿고 오로지 현재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그렇지만, 임종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게 되자 영생이라는 헛된 욕망을 드러낸다. 현재에 누누릴 수 있는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 삶은 죽음의 두려움에 끝까지 침묵하기 위한 반항이다. 발자크는 카뮈보다 먼저 돈 후안의 운명을 통해 실존의 부조리를 역설했다. 유한한 삶의 한계를 벗어나고 싶은 돈 후안. 카뮈는 돈 후안의 죽음을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무모한 웃음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발자크의 돈 후안은 죽지 않았고, 신이 내린 벌을 받은 것도 아니다.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허세다. 어쩌면 발자크는 자신이 각색한 돈 후안을 괴물로 변신함으로써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허세를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발자크도 돈 후안처럼 부조리한 세상을 살다 갔으니까.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수백 수천수만 번이나 밀어 올리는 행위를 해야만 했던 시시포스처럼 발자크는 평생 해도 완성하기 힘든 <인간 희극> 을 쓰기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에서 종이와 씨름을 했다. 글을 써야하는 와중에도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발자크는 ‘문학의 시시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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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이 책은 서울의 현대사를 횡단하는 데 최단 거리의 이동 경로를 제시해주는 일종의 내비게이션이다.” ?박해천(디자인 연구자, 『아파트 게임』 저자)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임동근, 김종배

인구통계가 확립된 1965년 이후 지난 50년간 서울(수도권)의 인구는 10배로 늘어났다. 1975년부터 1995년까지 20년간 매년 50만 명이 수도권으로 이주했다. 정부의 입장에서 이들은 경제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적자원인 동시에 물, 전기, 가스, 교통, 주거, 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기도 했다. 늘어나는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행정, 교육, 치안, 경제, 병원, 도로 등의 다양한 시설들을 배치하는 통치의 전략들은 서울(수도권)이라는 독특한 메트로폴리스를 만들어냈고, 또 그만큼 독특한 ‘서울 사람’의 삶을 만들어냈다. 


이 책은 그런 독특한 통치술, 독특한 선택들을 하나 하나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며 그 효과와 부작용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가령 동사무소라는 독특한 한국적 행정기관은 왜 생겼으며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린벨트는 왜 만들었고 어떤 기능을 했고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아파트는 어떻게 전 국민의 로망의 되었으며 또 어떻게 지배적인 주거 양식이 되었는지,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왜 그렇게 많아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왜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는지, 왜 마포가 아니라 테헤란로가 대표적인 오피스 지구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등등 의문점들에 대한 흥미로운 답이 펼쳐진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8월 10일 ~ 8월 16일 (당첨자 발표 : 8월 17일)

발송: 8월 19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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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행복의 비밀》

(La Paix du Menage, 1830년,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의 ‘사생활 장면’에 수록)

 

 

 

 

발자크가 글을 쓰던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사회는 가장 긴박한 변화의 흐름에 직면해 있었다. 나폴레옹의 등장과 연이은 왕정복고라는 정치적 격변기 속에 귀족 사회는 붕괴하였고, 누구나 글을 읽을 줄 아는 부르주아와 노동자 계층이 등장했다. 이제는 영웅이 아니라 일반대중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인식이 보편화하였다. 발자크는 당시 급변하는 사회 속의 복잡한 인간상과 환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인간 희극>을 구상하게 된다. <인간 희극>은 프랑스 사회 풍속사의 전모를 보여주는 거대한 벽화다. 그래서 발자크의 소설에서 당대 사회에 공유된 대중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사랑과 행복의 비밀》(La Paix du Menage)의 원제는 ‘가정의 평화’다.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 중 「사생활 장면」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발자크의 초창기 작품에 속한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군과 맞선 바그람 전투에 승리하여 유럽 패권을 차지하기 시작한 1809년 이후이다. 이 시기는 나폴레옹의 절정기였다. 소설은 나폴레옹 전성기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발자크는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가 벌어지는 파리를 ‘완전히 취해버린 제국의 두뇌’라고 표현하면서 사치스러운 향락에 빠진 사회 풍조를 묘사했다. 그리고 군인에 열광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광적인 행동'이라고 썼다. 나폴레옹 전성기에 최고의 신랑감은 군인이었다.

 

군인을 그렇게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일찌감치 혼자 몸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이었을까? 죽은 남편이 남겨 놓은 연금이었을까? 아니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소망이었을까? 가슴에 숨겨 둔 연정을 전쟁터에 묻겠다는 남자의 강한 의지 때문에, 여자들이 그렇게 군인에게 이끌렸던 것일까? 아니면 한 여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용기라는 매력으로 남자들의 그런 광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모든 이유가 복합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과 행복의 비밀》 중에서, 14쪽)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프랑스는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지는 국민 개병제를 채택했다. 징병제를 통해 종래의 10배인 200만 명 규모의 상비군을 키워냄으로써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는 군인에게 훈장과 연금이 지급되었다. 또한, 공을 세운 뒤에 전사한 군인의 가족도 국가가 주는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금전적 혜택 덕분에 군인을 선호하는 남자들이 늘어났고, 군인 출신의 귀족들은 상류사회에 당당하게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일등 신랑감의 조건도 달라졌다. 화려했던 나폴레옹의 시대는 저물고, 부르봉 왕조의 샤를 10세를 향한 민중의 불만이 7월 혁명을 알리는 불씨를 피웠다. 혁명으로 인해 복고 왕정은 무너지고, ‘시민왕’ 루이 필리프를 왕으로 맞이한 7월 왕정이 성립하면서 귀족 세력의 부귀영화는 막을 내렸다. 혁명의 주체인 부르주아, 즉 자본가 계급은 산업 자본주의 시대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이 되었다. 학력이 높고, 돈 잘 버는 상인자본가들이 일등 신랑감으로 급부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자크 자신도 귀족이 되기를 원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귀족들처럼 흥청망청 노는 것을 좋아했다. 책상에 앉아 펜을 잡기 시작하면 상류사회를 냉소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 상류 사회에 편입하고 싶은 ‘귀족 발자크’(de Balzac)로 변신했다. 발자크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를 돈과 신분을 차지하려고 귀족 미망인을 유혹하는 속물로 묘사했다. 그렇지만 작가의 이중적인 삶은 <인간 희극>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발자크는 《나귀 가죽》(문학동네, 2009)의 서문에서 작가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풍속과 성격에 친숙할 정도로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한 권의 책을 쓰기 이전에 모든 성격을 면밀히 분석하고 모든 풍속을 겪어보며 지구 전체를 주유하고 모든 열정을 느껴보아야 한다. 혹은 정념의 나라, 풍속과 성격, 본성에 관한 일과 도덕에 관한 일, 이 모든 것이 그의 생각 속에 들어와야 한다. (《나귀 가죽》 서문 중에서, 17쪽)

 

상류 사회 진출을 노리기 위해서 파리로 몰려오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르주아들이 선호하는 유행문화도 잘 알았다.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처럼 맨몸으로 파리에 정착하여 성공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발자크의 소설을 읽었다. 그들은 발자크의 소설에 나오는 세련된 부르주아들처럼 흉내를 냈고,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발자크의 비범한 관찰력은 사회의 풍경을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하게 만들어준 윤활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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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0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파상의 벨아미도 그런 인물중 하나죠~ 상류층으로 진입하기 위해 미모를 파는~~ 옴므파탈~

사이러스님~ 계속 발자크로 유혹하고 계세요~~ 😆😆

cyrus 2015-08-10 21:42   좋아요 0 | URL
프랑스 근대문학을 요약하면 ‘스탕달, 발자크 → 플로베르 → 모파상, 에밀 졸라’로 이어져요. 발자크 전 작품을 다 읽으면 플로베르, 모파상, 졸라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요. ^^

stella.K 2015-08-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내가 호강한다.
그렇지 않아도 발자크란 작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작심하고 한 작가의 작품을 몰아서 읽을 줄 아는 네가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다.ㅋ

cyrus 2015-08-10 21:45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고리오 영감>만 읽으면 발자크를 다 안다고 착각했어요. 인내심이 언제까지 갈지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전작주의 독서를 해보려고 합니다. ^^
 
사랑과 행복의 비밀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강주헌 옮김 / 큰나무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발자크의 단편소설 ‘사랑과 행복의 비밀’(원제: 가정의 평화)‘아듀’가 수록되어 있다. 두 편 모두 <인간 희극>에 포함된 단편소설이다. 발자크의 초창기 작품이라서 원숙기에 나온 장편소설들보다 덜 알려진 점이 아쉽다. ‘사랑과 행복의 비밀’은 1830년에 발표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발자크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두 편의 이야기는 나폴레옹 전성기(‘사랑과 행복의 비밀’)와 그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의 시대(‘아듀’)를 배경으로 한다.

 

 

 

 

 

오토 폰 파버 두 파우르  「베레지나 강 건너기」 (19세기경)

 

 

‘아듀’는 1812년 베레지나 전투 때문에 생이별을 하는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베레지나(Beresina)는 강 이름이다. 빅토르 페랭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철수하는 과정에서 베레지나 강을 건너려고 하다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바람에 수많은 병력을 잃고 말았다. 이 소설에 나오는 ‘빅토르 원수’가 바로 빅토르 페랭이다. 이야기의 슬픈 결말보다 러시아군의 공격과 추위 앞에 두려워하는 프랑스군을 묘사한 장면이 더 인상적이다.  서로 살아남으려고 강을 건너는 뗏목 위에서 동료를 밀치는 프랑스군의 이기적인 행동은 전투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랑과 행복의 비밀》의 역자는 발자크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할 뿐, 두 편의 작품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지 않았다. 역자는 발자크의 소설이 ‘재미있다’, ‘지루하지 않다’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크게 띄워주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작품 해설이 너무 빈약하다. 나폴레옹이 등장했던 프랑스 역사를 모른다면 나폴레옹 시대를 설명하는 발자크의 서술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발자크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프랑스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발자크의 소설에는 당대 사회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 언급되는 문장이 많이 나온다. 이런 문장에 역자가 주석을 달아서 설명하지 않으면 독자는 발자크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한다. 독자가 발자크의 소설을 재미없어하는 또 다른 이유가 번역에 임하는 역자의 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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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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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 Peau de Chagrin (1831년,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에 수록)

 

 

 

여기저기에서 갖가지 욕망이 유령처럼 떠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욕망의 존재다. 욕망은 삶의 기본 조건이지만, 때때로 존재론적 절제를 거치지 않을 때 자신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괴물이 된다. 우리는 늘 절제와 자기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대개 승자는 후자다. 많은 사람이 욕망을 인위적으로 억압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욕망이 사라질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으로 추방당할 뿐이다. 무의식 속으로 숨은 욕망은 의식으로 떠오르는 길을 차단당한 채 점차 정신적 상처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심리적 콤플렉스는 신경증이나 정신분열과 같은 증세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욕망의 억압은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간은 욕망이라는 동력에 힘입어 행동하기 때문에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제거하라고 강조하는 꼰대 느낌의 가르침만으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발자크의 소설 《나귀 가죽》에 나오는 주인공 라파엘은 열정적인 삶을 꿈꾸었으나 겨결국에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그에게 인생이란 한 판의 도박이다. 라파엘은 도박에 빠져 마지막 한 푼까지 다 날려 쪽박을 차게 된다. 회한 끝에 삶을 마감하기로 작정하고, 센 강에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다가 강변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나귀 가죽을 얻게 된다. 이 가죽은 마법의 부적이다.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준다. 그야말로 우연히 도깨비 방망이를 얻게 된 형국이다. 그 대신 소원 하나 이루어질 때마다 가죽의 크기뿐만 아니라 라파엘의 목숨도 줄어든다. 빈털터리가 된 라파엘은 가죽의 영적인 힘을 체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다. 가죽 덕분에 라파엘은 단숨에 부자가 되고, ‘라파엘 드 발랑탱’이라는 귀족 이름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라파엘은 더 많이 욕망했다. 가죽과의 거래가 계속될수록 그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진다.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몸의 이상 신호를 느끼게 되자, 불안한 라파엘은 가죽을 늘이는 방법을 찾아보지만 허사였다. 라파엘이 삶을 욕망할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나귀 가죽의 역설은 파우스트가 그 자신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에게 거래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욕망을 좇는 사람들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행복한 삶의 잣대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오로지 물질적인 부만을 욕망하면서 삶 전체를 그 욕망 충족에 맡긴다. 라파엘은 물질적인 부를 얻기 위한 야망이 과도하게 넘친다. 가죽을 얻게 된 그 날 저녁에 라파엘은 친구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얘기한다.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는 대목이 장황해서 지루하긴 하지만, 그가 욕망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그는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눈총과 학대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학 공부를 하기를 원했고, 아들의 일상을 사사건건 개입했다. 아버지의 지나친 관심에 부담을 느낀 라파엘은 3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돈과 명성을 안겨다 주는 소설을 쓸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상류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러던 중 라스티냐크(<인간 희극>의 특징인 ‘인물의 재등장 수법’이 적용되어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이 《나귀 가죽》에서도 등장한다)의 도움으로 페도라 백작 부인과 허망한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의 상심 끝에 도박에 빠져든다. 라파엘의 고백이 지루하게 느껴져도, 작가의 암울한 과거를 생각한다면 주마간산 격으로 읽을 수 없다. 가죽을 얻기 전, 라파엘의 삶은 발자크의 젊은 시절과 상당히 흡사하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어머니는 소설을 쓰기를 원하는 아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머니의 경제적 지원이 끊긴 발자크는 금욕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썼다. 자신도 라파엘처럼 훌륭한 걸작을 남겨서 어머니 앞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발자크는 문학적 성공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명예의 맛을 너무나도 간절했기에 그 맛에 중독되고 말았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발자크는 돈과 여자들을 향해 열심히 쫓아 따라갔다. 발자크에게도 자신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수명을 단축하는 마법의 나귀 가죽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학이었다. 발자크는 정열적인 글쓰기를 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욕망이 컸다. 어쩌면 그는 명예의 보상이 따라오는 문학에 대한 욕망이 남다른 문학적 열정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라파엘이 가죽을 늘리고 싶었던 것처럼 발자크는 자신의 작품들을 <인간 희극>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전집으로 만들려고 했다. 비록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다행히 발자크의 나귀 가죽은 줄어들지 않았다. 세계문학사에 ‘발자크’라는 이름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가진 물욕은 끝이 없는 것인가. 그 욕망의 한계는 어디인가. 쾌락, 소유의 욕망이 정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떨쳐낼 수 없는 숙명의 늪이다. 비록 물질적인 풍요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인간다운 삶은 말할 것도 없고 건강한 삶의 토대마저 잃어버리고 내면의 황폐함만 남게 된다. ‘인간의 내면’까지 해부하여 관찰하고 싶었던 발자크는 그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욕망이 한 사람을 파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잡히지 않는 욕망을 바라보는 라파엘은 마치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굶주림의 천형을 받은 탄탈로스를 떠올리게 한다. 탄탈로스의 죄명은 욕심이다. 신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라파엘 역시 상류층 사람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끝없는 욕망의 끝은 허무의 끈이다. 그 끈을 자르지 않는 한 인간은 늘 좌절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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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0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어디서 보던 표지가 보여 깜짝 놀랐어요 ㅎㅎ
도둑이 제발 저린셈~
다시는 보지 말아야지 하고 봉인해 뒀는데 사이러스님덕분에 다시 볼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ㅎㅎ

cyrus 2015-08-08 20:18   좋아요 0 | URL
라파엘이 고백하는 대사를 끝까지 참고 읽으셨다면 소설의 절반을 다 읽으신 겁니다. 그 다음 장면부터는 이야기 진행이 빨라져서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

yamoo 2015-08-07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 모으고 있슴다. 한 열 댓권 모았는데, 발자크의 이 작품은 아직이네요. 리뷰를 보니, 구입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흠...그러고 보니 발자크 작품은 아직까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네요. 어여 구입하여야 겠습니다~ 덕분에 컬렉션 추가 항목이 늘었어요!^^ 감솨~

cyrus 2015-08-08 20:20   좋아요 0 | URL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의 인기에 가려진 발자크의 최고 작품입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이 비교해서 읽어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

페크pek0501 2015-08-07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망이 있어야 삶의 성공도 있지만, 욕망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욕망의 포로가 되고 나면 행복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그 삶은 망가진 인생을 향해 가고 있기 마련이죠.
어느 정도의 욕망만 가져야 하는지 어느 선에서 만족이란 깃발을 꽂아야 하는지, 그걸 아는 게 어렵습니다.
˝‘인간의 내면’까지 해부하여 관찰하고 싶었던 발자크는~~˝ -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 문장에 있군요. ^^

성실함이 느껴지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5-08-08 20:2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요즘 인문학을 강조하면서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욕망을 절제하라고 말하는데, 말이야 쉽죠.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