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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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떻게 늙어 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위대한 예술에서 가장 어려운 장이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흰머리는 천천히 피어난다. 드문드문 새치에서 시작해 희끗희끗 귀밑을 파고들다 슬금슬금 정수리로 올라가며 중원을 장악한다. 은빛 중년이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탓일 게다.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는 중년은 생일이 더 이상 반갑지 않다. 삶도 계절처럼 순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의 고사부터 최근 눈부시게 발전해가고 있는 유전자 연구나 생명복제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생명의 영속성을 갈구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노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되고 특히 갱년기에 들어서면 누구나 신체변화를 절감하게 된다.

 

노령인구의 부양을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대응법이라고 할 수 없다. 노년에 닥친 개인이 인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인생론적 차원의 접근법 또한 필요하다. 특히 ‘노인’은 있어도 ‘원로’는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된 지 오래인 우리 현실에서 잘 늙어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 2015)는 이런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가완디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늙음’과 ‘죽음’이다. 이렇게 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먼저 늙음에 대해 말한다. 노화에 성공한 사람은 편안하게 죽음을 맞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에 대한 미련 때문에 불안과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일단 노인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는 자신이 노년기에 접어들었고 멀지 않아 죽음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여한 없는 일생을 살아왔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리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노화는 항시 보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체에게 있어서 다른 특별한 과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이 죄가 아니듯, 늙어감 역시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노년의 위축되고 초라한 모습을 편안한 심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절대 고독이므로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기가 전혀 쉽지는 않다. 현대 의학이 발달한 덕택에 수명을 오래 연장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현대 의학은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가완디는 의학적 싸움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다’라는 희망적 기대에 의문을 가진다.

 

암 투병 중인 저자의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명유지만을 위한 치료를 멈추고 호스피스를 택한 그는 거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의사들은 노화과정을 자연스러운 삶 일부로 보기보다 ‘질환’으로 취급해 치료하려고만 한다. 고작 한 달을 더 살기 위해 환자는 병실에서 죽음과 고통스러운 전쟁을 선택한다.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남은 생만 비참해질 뿐이다. 의사는 환자를 살릴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의료인 입장에서는 죽음을 돕는 일보다 개인의 우선순위를 도출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더 어렵다. 의사인 가완디는 의학적 충동과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환자의 고통과 죽는 순간을 가까이 보는 의사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고독과 소외이다. 자식이 보험이 아닌 세상이 되어 이제는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노인들은 세상과 시대를 원망하고 자학하며 후회와 절망 등 해로운 감정으로 노화를 가속하고 있다. 환자나 주변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노화가 슬프고 믿어지지 않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성장과 노화는 한 뿌리에서 시작된 것, 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읽어낸 노년은 그래서 참 아프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신의 가치와 믿음을 찾고, 연장된 생애를 보다 의미 있고 소중하게 인식하여 심리적 성숙 안정을 꾀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담을 주는 값비싼 수술로 생명을 조금 늘리기보다는 환자를 잘 보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죽음을 유예하는 일일 뿐이다. 우리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나누어 가질 것이다. 주름은 더 깊어질 것이고, 몸은 더 약해질 것이다. 그 주름과 그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늙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이렇게 책 한 권에서 나는 배운다.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잘 살아내기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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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22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아버지의 죽음을 격은 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암투병 8개월만에 가셨는데.. 가시고 남은 자리가 깨끗한걸 보고.. 아버지가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셨구나. 그래서 정리를 다 하셨구나~ 라는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자식된 입장에서는 서운하고 안타깝지만 생을 마감하는 당사자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일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마지막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져계시다는 느낌보다 이제 편안해지겠구나하는 안도의 표정이 아버지의 얼굴에서도 읽혔었어요. 저희는 생명연장안한다고 동의서에 사인해서
당신 가는 길을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병실에서 그래도 자연스럽게 맞이할수 있었던것도 다행이라 싶구요.
아직 젊을때 여유가 있을때 죽음을 충분히 생각하고 잘 죽고싶다는 생각해요. 아이들하고도 이렇게 죽고싶다고 이야기도 나누고요~~
잘 늙고 잘 죽어야할텐데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더 공 들여야할것 같아요~~

cyrus 2015-08-22 21:25   좋아요 0 | URL
행복님의 선택 덕분에 아버지께서 아주 편안하게 좋은 곳을 가실 수 있게 되었군요. 죽음을 생각한다는 게 어찌 보면 어둡게 보일 수 있지만,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일이기에 여생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습니다.
 

 

 

 

 * 이미지는 열린책들 공식 카페(클릭)에서 가져왔습니다.

 

 ** 5등은 '문화상품권 1만원 + 세계문학 1권'입니다. 이미지 글자가 작습니다. 카페에 접속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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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8-2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금 타이포그래피는 영락없이 <스타워즈> 자막효과ㅎ;; SF 장르가 아닌 데서 이런 차용을 보면 재밌기도 합니다. 센스 있네요.

cyrus 2015-08-22 21:27   좋아요 0 | URL
저는 스타워즈 자막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전 처음에 5등 상품 자막이 왜 저렇게 작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아갈마님의 눈설미가 상당히 좋은데요. ^^
 

 

 




짝짓기_홈피배너.jpg

 

 

작년 이맘때 출간되었던 <멸종>을 기억하시나요?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멸종>은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중 

5부 <모든 것의 끝 혹은 시작, 멸종>을 도서화한 책인데요.

이에 이어서 1부 <소리 없는 지배, 식물>과

4부 <반쪽을 위한 전략, 짝짓기>를 엮은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짝짓기>가 도서화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전작 <멸종>을 통해 대중을 위한 과학 글쓰기 능력을 검증받으신

박재용 작가님과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이 함께 한 <짝짓기>.

<짝짓기> 역시 진화나 생물에 대한 깊은 배경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는 도서이니 서평단에 많이 지원해주세요 :)


 

아래에 목차를 첨부합니다!

서평단을 신청하실 분들께서는 여기에서 댓글로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서평단 모집은 8월 23일 일요일까지 진행되니 참고해 주세요 :)



 

추천사: 다양성 시대에 만나는 다채로운 성의 파노라마

들어가며

 

PART 1 | 성의 기원과 진화

성의 시작

성의 진화

 

PART 2 | 암컷과 수컷

생물, 암수로 나뉘다

경쟁

짝짓기가 뭐라고

 

PART 3 | 성의 무지개

가족의 다양성

생물 세계의 무지개

성을 포기한 생물들

 

PART 4 | 인간의 성

동물로서의 인간

인간, 동물을 넘어서나

 

마치며 

참고 도서


 

 

서평단은 총 20분을 모실 예정이며,

모집기간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8월 23일 일요일까지입니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신 분들은 8월 31일 월요일까지 서평을 남겨주셔야 합니다.

우수서평자는 8월 29일 토요일까지 서평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선정할 예정입니다.



 

서평단 신청은 댓글로 가능합니다!

그럼, 이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서평단 신청시에 명심하셔야할 아래 내용! 꼭 확인하세요 :)



<짝짓기>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신 분들은

1) <짝짓기>의 증정본을 무료로 받으시고,

2) 배송받으신 도서를 즐겁게 읽고 서평을
인터넷 서점(교보문고,YES24,알라딘,인터파크 등) 중 한 곳 이상, 
개인 SNS(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 중 한 곳 이상에 글로 남겨주시고,

3) 서평단 선정작업이 끝난 이후 만들어질 서평 완료 알림페이지에 
서평의 완료사실을 알려주시면 됩니다.



서평완료 사실을 알려주시면 엠아이디에서는

1) 우수서평자의 서평을 엠아이디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에 노출시키고,

2) 우수서평자 중 두 분을 선정하여 
엠아이디의 출간도서나 다음에 출간될 도서(선정자가 선택) 
1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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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 그랑데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조명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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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5] 외제니 그랑데

 

 

* 위대한 속물 발자크를 추모하며...

 

** Eugénie Grandet (1833년,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 ‘지방생활 장면’)

 

 

 

“우리는 돈을 왜 벌어야 할까요?” 매우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마도 다양한 답변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집을 사기 위해서, 결혼하기 위해서, 여행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 대개들 이런 대답이 나온다. 그런데 자칫하면 평생 돈에 끌려다니며 사는 인생이 될 수 있다. 현재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배제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돈이 최고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노심초사하는 사이 그 밖의 가치는 뒷방 신세다. 돈에 상당한 집착을 보여 돈을 아끼는 정도가 심한 사람, 때로는 맹목적으로 돈을 수집하는 사람을 ‘수전노’라고 한다.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절약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상식에서 이탈될 정도로 과도하게 아끼려고 한다면 바람 잘 날이 없다.

 

서양 문학에서 ‘돈의 노예’라고 하면 샤일록(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스크루지(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가 먼저 떠오른다. 온정이라는 단어와 아주 거리가 먼 수전노 한 사람을 더 소개하자면, 그랑데 영감이 있다.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에 나오는 이 영감은 황금, 금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에게는 외동딸이 있다. 외제니 그랑데는 파리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시골 아가씨다. 그녀는 사촌 샤를 그랑데를 사랑한다. 샤를은 부유한 아버지(그랑데 영감의 친동생) 덕택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파리지앵이다. 시골 여자와 도시 남자의 사랑은 갑작스러운 불행으로 인해 살짝 어긋나게 된다. 샤를의 아버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은행의 파산 소식에 절망하여 자살하고 만다. 한순간에 무일푼이 된 샤를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 인도로 떠나서 돈을 벌기로 한다. 외제니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아버지가 준 금화 전부를 샤를에게 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영감은 자신의 피와 같은 금화가 너무 아까워서 분노한다. 외제니는 영감의 명령으로 방에 감금되어, 물과 빵으로 연명한다. 가족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는 영감의 권위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랑데 영감은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새로운 사회지배층으로 급부상한 신흥 부르주아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폴레옹 실각 이후, 왕정복고 체제로 들어서는 즈음에 신흥 부르주아지는 파리에 진출하여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랑데 영감은 때를 잘 만나서 돈을 잘 벌 수 있었는데 그를 자수성가형 부자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내의 지참금을 사업 투기 자금으로 사용하여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감은 아내에게 고마워할 줄도 모르며 재산 소유하는 권리를 독단적으로 가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가부장제와의 환상적인 조합은 그랑데 영감의 권위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는 돈의 힘으로 가정을 군림한다. 외제니와 영감의 아내는 재산 소유에 간섭할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영감은 딸에게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는 권리를 포기하도록 종용한다. 돈을 통해 권력을 과시하려고 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가 저변에 깔렸다. 한편으로는 남성 위주의 경제권이 두꺼운 시대에 축소되었던 여성의 경제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정도면 그랑데 영감이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보다 더한 최악의 수전노다. 영감은 죽음의 신이 가까이 찾아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질적 탐욕을 쫓은 삶에 대한 반성하는 마음도 전혀 없다. 영감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신부의 은빛 십자가를 금붙이로 착각하고 욕심내면서 손을 뻗치다가 숨을 거둔다. 중국 속담에 ‘관 속에서도 손을 뻗친다’라는 말이 있다. 돈이라면 죽어서도 관 속에 든 사람까지도 관 밖으로 손을 내민다는 뜻이다. 영감의 최후는 중국 속담의 의미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그랑데 영감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마몬(Mammon)에게 손을 뻗쳤다. 특히 영감이 죽으면서 딸에게 남긴 유언은 돈 욕심의 끝을 보여준다. 영감은 자신의 보물을 끝까지 잘 지켜서, 저승에서 만나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당부한다. 발자크는 영감의 최후를 통해서 종교의 교화가 돈의 힘 앞에 무색하게 된 세태를 비꼰다.

 

“참말이지 돈은 살아 있는 것이야. 인간들처럼 우글우글 들끊기도 하지. 가는가 하면 오고, 땀 흘려 수고하고, 새끼를 치기도 하니까 말이야.”(《외제니 그랑데》 중에서, 116쪽)

 

 

그랑데 영감은 인간의 탐욕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자라는 돈의 번식력을 알고 있었다. 탐욕 유전자는 감염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며 마몬의 자식들을 양산한다. 7년간 인도에서 일하면서 돈의 맛을 알게 된 샤를 그랑데 역시 마몬의 족보에 포함된다. 그는 외제니와의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백작의 딸과 결혼하려고 한다. 영감의 탐욕 유전자는 친딸이 아닌 조카가 물려받는다. 돈의 메커니즘을 알아차린 샤를의 모습은 제2의 그랑데 영감의 등장을 암시한다. 돈이 넉넉하게 있다면 우리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돈의 마력에 짓눌린 채 오직 돈만을 모으기 위해서 살아가는 돈(돼지, 豚)이 될 수 있다.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늙어 죽을 때가 되면, 한평생 누리던 부귀는 물론 명예마저도 짐이 되어 버려야 한다.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은 지독한 독선이며 광적인 집착이다.

 

 

 

 

※ 《외제니 그랑데》는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런데도 아직 완역본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번역본은 1977년 삼중당문고에서 나온 책을 참조했다고 한다. 삼중당문고 번역본이 완역인지 궁금하다. 사실 발췌 번역한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면 지루하지 않다. 지만지의 《외제니 그랑데》는 이야기 진행에 상관없는 장광설 같은 긴 문체가 일부 삭제되었다. 책 앞에 있는 역자의 줄거리 소개만 읽어도 이야기의 주요 사건과 결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장편소설을 중편 수준의 분량으로 축약해버린 탓에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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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15: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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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2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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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교실 벽이 모조리 무너지고 내가 모르는 어떤 들판에 서 있는 듯한 그런 순간이 있어. 굉장히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지. 하늘을 나는 새처럼 마음껏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루이 랑베르》 중에서, 47쪽)

 

 

 

우리나라 부모, 특히 어머니의 교육열은 미국의 대통령이 칭찬할 정도로 알아준다. 사실 좁은 땅에, 지하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수준으로 살 수 있게 된 저변에는 바로 이 교육열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과열은 역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에는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엄마를 '돼지엄마'라고 부른다. 엄마 돼지가 새끼 돼지들을 데리고 다니듯, 여러 학부모를 몰고 다니면서 고액 과외에 관련된 정보를 알린다. 또한, 같은 또래의 아이를 둔 학부모들을 모아 팀 수업을 편성하는 일도 책임진다. 부모의 과잉 기대는 아이들을 강요와 통제의 감옥으로 인도한다. 그들을 가두는 학교와 학원 역시 아이들을 입시 기계로 만들어버린다. 학생은 많고 대학의 문은 좁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과연 아이들은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학교생활에 얼마나 만족하며 다니고 있을까.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인식하는 정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막막한 공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곳으로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 앞에 주어진 교과목들. 흔히 사회에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라고 말하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는 건 사회에 나가보면 알게 된다. 대학입시를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다. “이런 걸 왜 배워야 하는 거죠?” 학습의욕이 없는 학생들의 불평불만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모순투성이로 가득한 것이 교과서이고 교육과정이다. 아이가 말없이 학교와 학원 수업을 잘 받고 있는데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자녀들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저항성이 어느 정도인지 관심 가질 여유가 없다.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눈물과 아픔 속에 학원을 전전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과도한 학원 수강과 수능시험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학습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심각한건지 잘 모르는 눈치 없는 부모에게 세 권의 소설을 권하고 싶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현대문학, 2013),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문학동네, 2010),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민음사, 2001). 이 세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 모두 공통으로 엄격한 통제와 규율로 작동되는 교육에 민감하다. 그리고 세 작품 모두 작가의 문학적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전적 색채가 강하다. 헤세, 발자크, 조이스는 자신들이 쓴 소설을 통해서 진정성이 없는 가르침만 강요하는 교육 현실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의 정서 상태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학창 시절을 다 겪어 본 어른들도 주인공의 학교생활을 묘사한 작가의 필력을 확인하는 순간, 숨이 막혀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헤세는 부모님 곁을 떠나 혈혈단신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감성이 예민한 문학 소년은 신학교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결국, 신경쇠약증이 심해져서 학교에 입학한 지 일 년 만에 중퇴한다. 학교의 그늘에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헤세는 안정적인 삶을 찾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한다. 한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행히 헤세는 시인이 되는 데 성공했지만, 《수레바퀴 밑에》의 주인공이자 헤세의 분신인 한스 기벤라트는 자신의 운명에 가중되는 억압의 수레바퀴 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한다.

 

발자크도 헤세와 같은 운명으로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발자크의 어머니는 매정하게도 어린 발자크를 좋아하지 않았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느껴보지 못한 발자크는 수도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돔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발자크는 기숙학교 생활을 거대한 감옥에 갇힌 듯한 기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런 '주옥' 같은 시절을 재구성한 소설이 바로 《루이 랑베르》이다. 한스와 마찬가지로 루이 역시 아주 영특한 아이로 촉망받지만,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엄격하고 따분한 수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독서, 명상, 사색이 루이의 유일한 낙이다. 한스와 루이는 서로 감정을 공유하면서 함께 지낼 수 있는 믿음직한 단짝(《수레바퀴 밑에》의 헤르만 하일너, 《루이 랑베르》에서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설의 화자)을 만나지만, 이 행복한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한다. 관계의 단절은 두 사람의 깊은 고립과 파멸을 초래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조이스의 유년시절은 헤세와 발자크보다 조금 밝은 편이다. 학교 모범생에다가 실제로 전교 학생회장까지 맡은 적도 있는 '엄친아' 같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작가의 유년 시절이 반영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나름대로 공부 잘하는 '문제아'로 등장한다. 그는 예수회 신부가 되기 위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종교의 길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티븐의 마음에 이단의 새싹이 조금씩 자라게 되고, 금욕을 중시하는 기독교 교리를 어기면서까지 사창가에 가기도 한다. 스티븐은 한스와 루이처럼 자유와 억압 사이에서 고민하고, 자유로운 사고 능력마저 말살하는 기성 교육제도에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두 인물의 태도와 완전히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 스티븐은 자신의 삶을 가두려는 종교, 교육이라는 사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진짜 자아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발버둥을 친다. 한스와 루이는 동료 학생들과 교사의 외면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움츠리는 저자세를 취했다면, 스티븐은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상황의 모순을 끊임없이 지적하여 맞서려고 한다. 교사로부터 부당하게 매를 맞은 스티븐이 교장에게 직접 찾아가서 논리정연하게 호소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아주 명료하게 설명한 덕분에 스티븐은 교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요즘 아이들이 교사의 부당한 행동 및 언행에 조금이라도 지적을 한다면, 교내에서 반항아로 낙인찍힐 것이다. 물론 모든 교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교사는 상식적인 수위를 넘는 발언과 행동으로 아이들을 곤란하게 만든다. 엄격한 교사의 지시는 무조건 따른다고 믿는 아이들은 잘못된 상황을 알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묵인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학교에 갇힌 아이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누려야 할 자유가 사회규범에 어긋난 비행청소년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청소년 시절은 가장 반항하기 쉬운 때고 고민이 많다. 아이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었던 고민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 정도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 모두에게 '수능시험' 뒤에 가려진 성공만 바라보도록 가르친다. 어른들의 고집과 욕심이 중노동에 가까운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더욱 지치게 한다. 조금이라도 튀는 발언이나 공부와 전혀 관련 없는 취미 생활을 하는 학생을 ‘문제아’로 바라보고, 최대한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보는 어른들의 교육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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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1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길 희망하며, 한편 나는 어떤지 반성되는 글입니다.

cyrus 2015-08-18 21:27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을 앞두는 젊은 사람들도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교육 문제에 무관심 하는 저도 반성합니다.

AgalmA 2015-08-22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가에 갇힌 국민과, 민족에 갇힌 집단심리....사람은 참 많은 것에 갇혀 있죠. 하나하나 다 인지하지도 못하기도 하고, 인지해도 어쩌지 못하기도 하면서... 교육은 특히나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쪽도 다 노력해야 하는데, 한국은 너무 일방적인 게 늘 안타까워요. 사제적이지도 않은 완전 군대식에 관료식에 나쁜 것 일색의 짬뽕... 왕따 문화나 대학에서 기수 앞세워 기 잡고 하는 거 보면 그 자세부터 참 교육의 길은 먼 거 같았습니다.

cyrus 2015-08-22 21:30   좋아요 1 | URL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대학교에 가면 자유롭게 공부한다고 선생님에게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전공 학과 선배들, 심지어 대학교수의 기분에 맞춰야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보고 어이가 없었어요. 집단에 어울리지 못한 사람을 이상하게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