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에 마키아벨리의 전술론을 읽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서 지금쯤이면 다 읽어야 한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역자 해제와 마키아벨리의 서문까지 읽은 상태다. 아직 본문을 읽어보지 않았다. 무식하게 네다섯 권을 한꺼번에 읽으려는 못된 버릇 때문에 전술론독서가 미뤄진 것도 있다. 그러나 역자 해제에 언급되지 않은 전술론속에 숨겨진 흥미로운 사연들을 찾느라 본문 읽기를 잠시 보류해야만 했다. 역자 해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마키아벨리의 생애, 마키아벨리 시대의 사회적 배경, 그리고 전술론의 개요와 구성. 해제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4쪽에 불과하다. 전술론군주론,로마사 논고와 함께 마키아벨리 3대 저작으로 알려졌음에도 군주론》의 유명세에 크게 밀려 전술론이 저평가 받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군주론,로마사 논고보다 한참 더 늦게 완역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동안 전술론군주론의 해설이나 마키아벨리의 삶을 조명한 책에 언급될 뿐, 제목으로만 알려졌었다.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오리 첼라리 정원 (출처: 위키피디아)

 

 

 

전술론은 마키아벨리가 살아있을 때(1521) 출판된 유일한 책이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공직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은둔했던 시기에 이 책을 준비했다. 전술론은 대화체로 구성되었다. 오리 첼라리 정원(Orti Oricellari)에 전투 경험이 많은 파브리지오 콜론나 을 초대하여 모임 참석자들이 그에게 전술 및 전쟁에 관해서 질문하고, 콜론나 경이 대답하는 형식이다. 대화라기보다는 토론에 가깝다. 오리 첼라리 정원 모임은 피렌체 명문가 자제들이 모이는 학술 모임이다. 정원은 루첼라이 가의 별장 근처에 있었는데, 루첼라이 가는 메디치, 피치, 스트로치 가와 함께 피렌체를 대표하는 명문가다. (전술론의 역자 이영남은 정원 모임을 루첼라이 정원 모임으로 썼고,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번역한 오정환은 오리 첼라리 정원의 모임이라고 썼다. 이탈리아 원어를 그대로 옮겨 쓰면 오리 첼라리 정원의 모임이 맞지만, 정원을 루첼라이 가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첼라이 정원 모임으로 쓰는 것이 틀리지 않는다고 본다. ‘루첼라이 정원 모임이 부르기 편해서 여기서는 이 명칭을 따르겠다)

 

 

 

                                     

 

 

베르나르도 루첼라이

 

 

루첼라이 정원 모임은 유서 깊은 학술 모임이다. 이 모임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원래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카데미아 플라토니카’(Accademia platonica)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코시모의 손자이자 로렌초 일 마니피코(il Magnifico, 우리말로 위대한 자라는 의미)’로 알려진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가 플라톤 철학 모임을 이어받게 되고, 이때부터 루첼라이 가 일원의 한사람인 베르나르도 루첼라이(1495~1514)가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로렌초의 누이와 결혼했다. 하지만 로렌초 데 메디치의 죽음으로 플라톤 철학 모임이 와해한다. 그 후로 피렌체 가는 피에로 메디치(1472~1509)의 무능과 전횡으로 인해 추방당하는 굴욕을 맞이하게 되었고, 공석이 된 피렌체의 실세 자리에 루첼라이 가가 들어서게 된다. 베르나르도 루첼라이는 플라톤 철학 모임과 비슷하게 자신의 정원에 지식인의 모임을 주최했다. 이 모임이 바로 루첼라이 정원 모임이다. 모임 주제는 철학, 문예, 역사, 정치 등 다양했다. 베르나르도 루첼라이가 사망한 후, 그의 젊은 손자(시오노 나나미의 설명, 전술론의 역자는 조카라고 썼다) 코시모 루첼라이가 모임을 이어받아 주최자가 된다. 모임의 단골은 주로 코시모와 나잇대가 비슷한 젊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차노비 부온델몬티, 루이지 알라만니, 바티스타 델라 팔라 이 세 사람은 코시모와 함께 실명 그대로 전술론에 등장한다.

 

마키아벨리는 루첼라이 정원 모임에 참석하면서 젊은 명문가 자제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처음으로 정원 모임에 참석한 시기는 불분명하다. 학자들은 1515년에서 1517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학자들이 유력하게 보는 ‘1516년 여름설을 지지했고, 마키아벨리 평전의 저자 로베르토 리돌피는 1516년 초 혹은 1517년 여름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라면 마키아벨리의 나이는 마흔일곱 또는 마흔여덟이 된다. 아들뻘 되는 젊은 귀족 청년들과 진지하게 학문을 토의하는 마키아벨리의 모습이 이채롭다. 그런데 루첼라이 가와 마키아벨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 반 메디치 가 음모에 연루되는 혐의를 받아 곤욕을 치른 후, 훗날 유명한 군주론을 쓰게 되는 시골 농장에 은둔 생활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루첼라이 가는 메디치 가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한 메디치 파에 가깝다. 어째서 마키아벨리는 친 메디치 파로 분류되는 가문이 주최하는 학술 모임에 버젓이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쉽게도 마키아벨리를 루첼라이 정원 모임에 초대하게 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지지 않다. 확실한 사료가 없으면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로 악명 높은 시오노 나나미는 루첼라이 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의 과거 전력을 신경 쓰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가 실각한 지 3년이 지났고, 모임 참석자들이 대부분 권세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귀족의 자식들이라서 마키아벨리를 위험인물로 간주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복직을 위해서 군주론우르비노 공작로렌초 데 메디치(1492~1519)에게 헌정하지만, 공작은 마키아벨리의 책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에 따르면 군주론원고를 코시모 루첼라이와 차노비 부온델몬티가 읽었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글쓴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젊은 귀족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공화주의 사상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와 예의 바른 젊은이의 태도에 마키아벨리는 탄복했다. 자신의 책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를 코시모와 차노비에게 헌정했다. 이 책을 읽은 차노비는 마키아벨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책에 대한 감상평을 전하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젊은 제자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배운 내용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공손하게 전하는 장면이 연상되지만, 차노비는 독자 입장에 서서 책에 대해 아쉬움을 솔직하게 밝히기도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남성을 언급하면 대놓고 호감을 드러낸다. 차노비가 귀족 출신인 데다가 머리가 좋고, 생각이 건전해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란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영원히 즐거울 것만 같았던 정원 모임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씁쓸하게 해체된다. 1522년에 메디치 음모 사건(추기경 줄리오 데 메디치를 살해하기 위해서 꾸민 음모였는데, 이듬해 줄리오는 교황으로 임명되어 클레멘스 7가 된다)이 발각되면서, 루첼라이 정원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진다. 운 좋게도 차노비, 루이지 알라만니, 바티스타 델라 팔라는 프랑스로 피신하여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이 음모는 1520년부터 은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반 메치디 음모 사건에 안 좋은 추억(혐의를 받은 마키아벨리는 심한 고문을 받았다)이 있는 마키아벨리는 또 한 번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때만 해도 마키아벨리는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과 친분을 형성하면서 과거의 일을 하나씩 지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복직과 명예 회복이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가 젊은 귀족 자제들을 끌어 들여 반 메디치 정서를 심어놓은 주동자로 의혹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혐의를 받지 않았다. 그는 음모 사건에 대해서 단 한 마디로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침묵했다. 열심히 쌓아놓은 입지가 또다시 한순간에 상실될까 봐 두려워서 입을 다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믿고 아끼던 젊은 제자들이 큰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실망해서 침묵한 것인지 마키아벨리의 심정을 알 수 없다. 아마도 제자들이 자신 몰래 위험한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해 미리 막지 못한 것에 슬퍼했을 것이다. 만약에 마키아벨리가 제자들의 수상한 태도를 간파했다면, 살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 제자들을 걱정했다. 그들이 자신처럼 야망의 날개가 일찍 꺾이는 비극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다.

 

마키아벨리가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점찍은 인재들은 너무 이른 나이에 운명했다.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군주 모델로 바라봤던 체사레 보르자도 그렇고, 루첼리아 정원 모임 최후의 주최자가 된 코시모 또한 요절하고 말았다. 사실 코시모는 어렸을 때부터 병치레가 잦을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그래서 정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정원 모임의 주최자가 될 수 있었다. 코시모가 1519년에 세상을 떠났고, 3년 뒤에 반 메디치 음모 사건이 터졌으니 마키아벨리는 소중한 친구들을 연달아 강제로 헤어지는 슬픈 일을 겪고 말았다. 마키아벨리는 전술론을 정원 모임 참석자인 로렌초 디 필리포 스트로치에게 헌정했지만, 코시모와 그 친구들 간의 우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전술론1장을 시작하는 첫 문단부터 마키아벨리는 코시모를 향한 자신의 본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도 아쉬웠으리라. 코시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전술론을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코시모 루첼라이가 사망했다. 따라서 아첨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나는 코시모 루첼라이를 칭찬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그 이름을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그는 그의 고향에서는 시민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좋은 친구로서 바람직한 자였기 때문이다. (올재, 20)

 

 

 

※ 《전술론의 역자 해제에서 베르나르도 루첼라이의 사망 연도를 ‘1519으로 잘못 표기되었다. 전술론을 읽기 전에 배경 지식을 쌓는 데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한길사, 2002)와 로베르토 리돌피의 마키아벨리 평전(아카넷, 2000)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내가 쓴 내용은 이 두 책을 참고해서 정리한 것이다. 루첼라이 정원 모임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인식에 미묘한 차이가 있으므로 반드시 두 사람의 책을 함께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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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 대한민국 네티즌이 열광한 KBS 화제의 칼럼!
박종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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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 주변에는 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거시경제를 분석한다는 경제학자부터 증권투자 전문가는 물론 부동산 전문가라며 나서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우리 살림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한숨만 나온다. 혹자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물가, 환율, 주식, 부동산 등 경제가 다양하게 맞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대부분 사람들의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우리나라가 어두운 절망의 터널 속에서 헤매던 1997년, 이 암울한 상황을 오히려 축복이라고 주장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 외환위기가 스스로 치유능력을 상실한 한국 경제를 한꺼번에 뜯어고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봤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기 열풍에 휩싸여 폭등하는 땅값과 집값은 서민생존을 위협하고, 경제를 피폐화하는 원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에 벗어난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국가적 재앙을 감내해서라도 고삐를 잡고자 했던 부동산은 어떻게 되었는가. 외환위기 탈출 이후 경제가 회복세로 들어서면서 국민의 실질 소득이 증가했고, 한때 급락했던 집값도 다시 상승했다. 강남권의 전셋값은 강북권보다 오름폭이 두 배 이상 커졌고, 전셋값이 폭등할수록 중산·서민층의 경제적 여건을 급속히 악화시킨다. 과도한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부동산에 투자하고, 집값 상승을 낙관적으로 믿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선택이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 못 해 서울을 빠져나가는 인구가 13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한다.

 

경제파탄의 비극이 점점 다가오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왜 부동산 투기와 폭등세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부동산이 경기를 띄우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건설경기의 미세한 변화도 즉각적으로 내수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버린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이 폐해 또한 막대하지만,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당장 먹기에는 역시 단 곶감이 먼저다.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은 10년 장기불황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1990년대 초반 일본경제의 복사판이다. 지금의 위기는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이 2~3%대로 추락하는 문제가 아니다. 성장잠재력이 소진되고 경제규율이 붕괴하는 경제 시스템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경제 시스템의 위기를 경기순환상 문제로 안이하게 대처, 장기불황을 좌초했던 전철을 우리나라가 재현할 조짐을 보인다.

 

일본 정부는 1992년 부동산 버블붕괴 후유증으로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지만, 근본적인 구조조정보다 손쉬운 단기부양으로 일관, 부실을 오히려 키웠다. 일본 대장성은 공적자금 투입을 단념했고 대신 123조 엔이 넘는 경기부양책에 매달렸다. 우리나라 정부도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가 외환위기를 초래했지만, 환란극복의 샴페인을 생각보다 빨리 터뜨리면서 장기 계획 없이 정책을 수행했다.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다는 업적에 대한집착이 1998년 말 이후 부동산 규제 장치들을 한꺼번에 무장 해제하면서 화를 불렀다. 한 달 사이에 몇 천만 원씩 뛰는 강남의 집값을 보면서 많은 사람은 “큰돈 벌기 쉬운 부동산”임을 절감한다. 부동산경기가 과열되어 투기가 발생해 사회문제로 번지면 역대 정부들은 그때마다 대증요법으로 화급하게 대책을 수립해서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부동산 경기는 과열 아니면 장기침체라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우리는 국민총생산(GNP)이 당연히 국민소득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경제원리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생산한 만큼이 바로 우리 소득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국민의 평균 소득이 우리의 2~3배가 되는 것은 바로 그 나라 국민이 같은 시간 일을 해도 우리보다 2~3배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국민이 잘살게 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생산적으로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나라 국민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생산적인가는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근로의식보다는 그 나라의 경제제도와 정책에 달려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장기침체되는 가운데 시중의 넘치는 돈이 부동산 쪽으로 몰려 거품이 커지고 있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성장을 주도해온 수출의 취업유발계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고, 일자리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투자가 부진해 투자의 고용창출력도 악화하고 있다. 성장잠재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소비나 건설투자, 부동산 경기 등에 의존해 경제를 지탱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옛날과 달리 성장을 해도 고용이 많이 늘어나지 않는다. 감세·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을 통해 고성장을 달성하면 고용은 자연스럽게 창출된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효과’(낙수효과)는 성장 우선주의가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이 효과의 허위가 증명되기 시작했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그 효과는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정부정책의 근본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KBS 경제전문기자 박종훈은 기업 투자가 성장을 촉진할거라고 믿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절대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대담한 경제 전략을 제안한다.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할 대상은 재벌이 아니라 일자리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특히 청년들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법인세 감세, 투자세액공제 등을 통해 대기업에 대규모 지원을 해줬지만, 대기업들은 오히려 고용을 계속 줄이고 있다. 이제는 그 돈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구직자와 실업자를 위한 고용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고용 중심주의’ 정책을 얼마나 힘 있게 추진해 나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이 문제는 다음 대선 혹은 총선을 앞두고 우리 경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치적 위기를 포퓰리즘으로 돌파하려는 의도로 내세우는 정책은 곤란하다. 경제문제는 하고 싶은 것 다 못 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못 가진다는 물질적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와 구호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의지보다는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는 생존기반을 확보하느냐 잃어버리느냐의 칼날 위에 서 있다. 국민은 투표권으로 한국경제의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박 기자의 칼럼을 읽는 기성세대는 그의 제안들을 보면서 ‘맞다, 맞아!’라고 감탄만 하지 마시라. 만약에 박 기자의 제안이 공약으로 제대로 나온다면 지지하는 마음을 표심으로 보여주시라. 누가 정말 우리를 더 잘살게 해 줄 수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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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1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오랜만이라 넘 반갑습니다. ^^
며칠 아프신 것은 어떠세요? 쾌차 하셨나요?

cyrus 2015-11-17 19:51   좋아요 0 | URL
약간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이틀 푹 쉬니까 금방 회복되었습니다. 밤 늦게 자는 일이 많아지니까 몸이 지친 것 같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yureka01 2015-11-1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절한 댓글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학자는 밥먹고 사는 게 경제 예측보다는
경제를 다룬 책팔아서 먹고 산다고 하더군요...
인간의 탐욕이 경제를 빙자한 화폐제도인데
차라리 심리학자가 경제를 더 꽤뚫지 싶더군요..

몸은 좀 괜찬으신건가요?

cyrus 2015-11-17 19:55   좋아요 0 | URL
경제학자 대부분은 책을 써서 팔거나 신문에 글을 실어서 정권이나 기업에 아부하는 부류일 겁니다.

크게 아픈 게 아니라서 감기에 걸리진 않았습니다. 요즘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이때 건강 조심해야 됩니다. ^^

인디언밥 2015-11-16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안올라오나 기웃기웃 했었는데, 아프셨군요. ㅠ

cyrus 2015-11-17 19:56   좋아요 0 | URL
그냥 스마트폰을 멀리했을 뿐인데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군요. 고맙습니다. 내일 또 비가 내리면 날씨가 쌀쌀할겁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AgalmA 2015-11-16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기업이 주주 중심 체제인 걸 생각해야 합니다. 이윤이 많이 나면 주주의 배당금으로 더 돌아가죠.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가 많은 것도 감안해야 하고요. 세제 혜택으로 기업의 투자확대를 도모한다? 그건 성장주의 시대 옛말이죠. 전세계적 경제 침체기에, 고도로 금융 자본화된 현재 시점에서 국내 내수를 활발히 하는 게 더 관건이죠. 기업 세제 혜택을 줄이고 그걸 노동자에게 가게 만들어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몰라서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아프셨다니 좀 나아지셨는지...

cyrus 2015-11-17 20:0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런데 요즘 노동자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것 같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약간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금방 나았습니다. 내일 비가 내리려고 해서 그런지 밤 공기가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붉은돼지 2015-11-1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뜸하시다고 생하고 있었는데...아프셨군요.... ㅜㅜ
cyrus 님의 건승 건필을 기원합니다.^^

cyrus 2015-11-17 20:02   좋아요 0 | URL
심할 정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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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또 인문학 타령인가?”

 

출판사가 보내준 신작 도서의 제목을 보자마자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책 제목은 이렇다. 《나를 위한 교양 수업》. 우리나라는 정말 인문학을 사랑하는가 보다. 독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아예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책 뒤표지에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와 기술의 교차를 강조하는 잡스의 말까지 책의 추천사처럼 나와 있다. 잡스로부터 시작된 인문학 열풍이 지난 지가 언젠데 잡스의 터틀넥 티셔츠 옷자락을 붙잡고 인문학 ‘장사’를 한다. 인문학을 논할 때 잡스를 추켜세우는 일은 곤란하다. 그가 죽어서도 생전에 남긴 아이디어 유전자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아이팟, 아이폰 등이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잡스의 위대한 유산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잡스의 이름에 기대는 인문학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준다. 잡스처럼 ‘성공한 장사꾼’이 되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삶을 성숙하게 해주는 인문학의 의미는 사라지고, 부를 거머쥐게 하는 인문학이 강조된다. 성공 지상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성공과 명예를 끌어모으는 마법의 자석이 된다.

 

잡스의 성공 신화가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런지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성공을 위한 인문학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리버럴 아츠를 소개하는 책의 앞표지에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저자 혹은 출판사의 의중이 심히 의심스럽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스티브 잡스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이 책에 스티브 잡스가 나오는 문장을 발견한 분이 있다면 댓글로 쪽수를 알려주시라. 확인되면 잘못된 내용을 삭제하고 바로 잡겠다) 리버럴 아츠는 원래 고대 그리스 귀족들이 배우는 기초 교양 과목을 의미했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갈고 닦는 데 도움이 되는 폭넓은 교양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자연과학, 철학, 문학, 음악 등 경계를 두지 않는 전방위로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다.

 

책을 쓴 사람은 법관을 지낸 적이 있는 세기 히로시다. 현재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많다. 그는 칠순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오프스프링(The Offspring)의 펑크 록을 즐겨 듣는다. 그래서 책에 드러내는 저자의 생각에 꼰대 느낌이 나지 않는다. 저자는 교양을 어렵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기도 한다. 교양을 난해한 용어를 써가면서 가르치는 학자와 미디어를 비판하면서 교양이 남에게 과시하는 수단을 전락해버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다. 이런 현상이 젊은이들이 교양을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저자는 권위에 속박되지 않으려면 무경계의 분야를 다루는 리버럴 아츠를 몸에 익혀 구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를 만하임의 ‘지식과 사상의 존재 피구속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틀에 박힌 사상이나 사고방식에 갇힌 협소한 시야가 아닌 자유롭게 수정과 보완을 실행하는 전체적인 시야를 가진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책의 2부는 자연과학(생물학, 뇌신경과학, 정신의학), 3부는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 4부는 예술(문학, SF, 영화, 음악) 등으로 구성되어 살아가면서 알아두면 좋은 리버럴 아츠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각 분야의 기초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각각의 장이 끝나면 저자가 추천하는 도서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의 관심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3부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역사학자는 필립 아리에스뿐이었고, 정신의학을 설명하는 장에 칼 융을 소개하는 비중이 프로이트와 아들러보다 너무 적다. 저자의 소개만으로 지적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 독자 스스로 해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책 제목이 ‘나를 위한 교양 수업’이다. 독자가 직접 교양(culture)이라는 이름의 밭을 경작할 줄 알아야 한다.

 

책 구성면에서 부족한 점이 역력하지만(스티브 잡스를 끌어들이는 홍보 문구가 아니었으면 심심한 책인데도 더 좋게 봐줄 수 있었다), 리버럴 아츠를 배우면서 얻게 되는 진짜 가치를 아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리버럴 아츠를 통해서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관철해 나아가는 힘, 그리고 살아가면서 생각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에 초점을 맞춘 인문학 풍조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충고하는 말처럼 들려진다. 리버럴 아츠를 배우려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 된다. 고전 한 권을 독파해서 베껴 쓰는 방법만 인문학을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인문학 장사꾼들이야말로 세기 히로시가 경계하는 ‘지식과 사상의 존재 피구속성’의 함정에 빠진 자들이다. 이들은 인문학을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선전으로 활용한다. 리버럴아츠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천재들만 배우는 교양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들도 생전에 악평을 받았으며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천재들이 만든 고전을 권위 있는 글로 이해하는 순간, 그걸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천재들의 특별 공부법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이 진짜 ‘생각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하는 이 모 작가와 무척 비교된다. 인문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 모 작가의 책이 아닌 세기 히로시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이 모 작가에게 세기 히로시의 인문학을 권한다.

 

 

 

 

 

P.s 1) 88쪽에 올리버 색스의 사망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2쇄를 만들 때 반영했으면 좋겠다.

 

 

P.s 2) 출판사가 제공하는 서평 도서가 새로 만들어진 출판법(도서정가제와 관련되어 있음)으로 인해 사라진다는 비보를 접했다. 아마도 이 책이 마지막 출판사 서평 도서가 될 것 같다. 출판사가 서평 도서를 무료로 준다고 해서 그에 대한 답례로 무조건 칭찬 일색으로 쓰는 건 옳지 못하다. 책을 읽다가 잘못된 점이 있으면 서평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출판사 서평 도서 제공이 금지된 원인을 무조건 도서정가제로만 돌릴 수 없다. 출판사가 선호하는 홍보용 독자 서평이 쓰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작지 않은 책임이 있다. 서평은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지 책 만드는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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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0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니, 어제 <코파기의 즐거움>보다 별점이 낮습니다. 그럼 이 책은 대체...^^
2. 이 모 작가가 누군지 급 궁금해집니다. 비밀댓글로 부탁드려요. ^^
3. 출판사 제공 서평 도서 제도가 사라진다는 비보에 저도 많이 아쉽습니다.
4. 오늘도 독자를 위한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15-11-08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1-0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위한 서평. 감사합니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는데.. 누가 저 혼자만을 위한 인문학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이기적으로 보이나봐요 ㅎㅎ
그런걸보면 인문학의 남발이 좋은것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cyrus 2015-11-08 16:33   좋아요 0 | URL
인문학이 좋다고만 열심히 말한 뿐, 현실은 시궁창에요.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푸대접하는 열악한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요즘 인문학은 그냥 개인의 감정을 달래고, 맞추기 위한 사탕에 불과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1-08 16:43   좋아요 1 | URL
달래고 위안하기 위한 그런것을 인문학이라고 할수는 없죠~ 인문학의 가면을 쓰고 있을뿐.. 인문학의 쓴 맛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책 많이 읽는다고 인문학을 한다고 할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요즘은 책 많이 읽으면 인문학한다고 하더군요~
다독은 그저 다독일뿐..

cyrus 2015-11-08 16:50   좋아요 0 | URL
저랑 생각이 비슷합니다. 인문학을 강조한답시고 독서를 권하는 상황이 불편해요. 인문학 열풍에 기댄다고 해서 평소에 책을 멀리 하던 사람들이 책을 읽을까요? 읽는다고 해도 유명 저자의 책만 찾아 읽을 겁니다. 우리 사회는 베스트셀러 몇 권 읽어주면 나름 책 좀 읽는 사람으로 둔갑하기 쉬워요.

2015-11-05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11-0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스가 에플폰을 인문학에서 도출했다고 하니....돈벌이를 위한 인문학이 불같이 일어 났던..동기가 참 씁슬한 인문학바람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 인문학이 진짜 인..사람을 위한 건지..속내는 돈을 위한 사람학문인지..분간하기도 어렵더군요,,

cyrus 2015-11-08 16:38   좋아요 0 | URL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돈을 위한 인문학이라면 곧 기업, 혹은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을 위한 학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어요. 기업을 위한 인문학과, 또 다른 한쪽에 노동자를 위한 인문학(얼 쇼리스 식 인문학)이 따로 갈라져 있는 현실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제 개인적 생각이지만, 인문학에도 계급 갈등으로 나눠지면 볼만 하겠습니다. 그러면 기득권자(대졸)들은 노동자를 위한 인문학을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할 겁니다.

인디언밥 2015-11-05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하군요. 흐~

그나저나 이xx님이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ㅋㅋ 저도 이씨인데 뜨끔.. ㅎ_ㅎ

정성듬뿍서평 잘 읽고 갑니당

cyrus 2015-11-08 16:39   좋아요 0 | URL
많이 궁금하셨을 텐데,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XX
X지X
XX성

fledgling 2015-11-05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결혼했죠~ 그분이 맞는듯..ㅎ

cyrus 2015-11-08 16:39   좋아요 0 | URL
잘 아시네요. ^^

stella.K 2015-11-0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당구 선수와 결혼했다는...!ㅋ
그런데 이 책 그 사람한테 권할 정도라면 평점이 높아야하는 것 아냐?
별 두 개 가지고 그 사람이 읽을까...?

cyrus 2015-11-08 16:46   좋아요 0 | URL
“이 모 작가에게 세기 히로시의 인문학을 권한다.”

이 멘트는 이지성 작가의 드립을 패러디한 겁니다. 개드립인거죠. 이지성 작가의 글 제목이 <지 드래곤에게 인문학을 권한다>(링크: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935#)거든요. 이지성 작가 비판론자들이 이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깐 적 있었어요. 제가 링크한 글의 댓글 한 번 보십시오. 댓글이 더 재미있을 겁니다.

페크pek0501 2015-11-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삶을 성숙하게 해주는 인문학의 의미는 사라지고, 부를 거머쥐게 하는 인문학이 강조된다. 성공 지상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성공과 명예를 끌어모으는 마법의 자석이 된다.˝
기억해 놓겠습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cyrus 2015-11-08 16:4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yamoo 2015-11-0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을 보니 막 짜증나려고 합니다...ㅋㅋ
계속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인문학자들은 죽어나가는데 말이죠..

근데 이 모작가 보고 바로 이지성 떠올렸더랬습니다..ㅎ

cyrus 2015-11-16 21:1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소위 본인 입으로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으로 강 씨와 이 씨가 제일 유명하죠. 이 두 사람이 많이 알려지니까 시류에 편승해서 아류작들을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씁쓸합니다.
 
코 파기의 즐거움 - 손가락 하나로 만나는 해방감
롤랜드 플리켓 지음, 박선령 옮김, 존 하이햄 그림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비염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요즘같이 선선한 날씨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콧물, 코 막힘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는 옆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소음이다. 조용한 독서실 같은 곳에서 유난히 코를 훌쩍거린다거나 코를 자주 풀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중력을 방해한다. 코가 막히면 코로 숨 쉬는 것이 불편하다. 특히 잠잘 때 입이 벌어져서 코를 심하게 곤다.

 

나는 비강 크기가 작은 데다가 비용 증세까지 있어서 콧속에 콧물이나 코딱지가 가득 있는 걸 싫어한다. 코가 막히면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코를 자주 팠다. 무조건 집에서만. 어린 시절에 어떤 친구는 코딱지를 파다가 다른 친구에게 들키는 바람에 놀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빼낸 코딱지를 눈에 잘 띄지 않은 책상 밑에 몰래 붙여놓는다. 나도 그랬었다.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사용한 책상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책상 밑에 살펴보면 굳어진 코딱지 덩어리가 있다.

 

지금부터 지저분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니 비위가 약한 분은 이 글을 끝까지 읽지 않길 바란다.

    

 

 

 

 

괴도 놈팡의 첫 번째 괴작 도서는 코 파기와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사람이 눈치 없이 자유롭게 코를 팔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코 파기의 즐거움(씨앗을뿌리는사람, 2005)이라는 황당한 책을 펴내게 된다. 이 책은 황당한 저자 소개로 시작한다. 책을 펼치기 전에 저자 이력을 꼭 확인해보시라.

 

 

저자: 롤랜드 플리켓

 

1934년에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성 코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가, 코 파기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소낭><점액>을 펴내게 되는데, 이는 그 때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코털의 위치를 사상 처음으로 비과학(鼻科學) 주요 주제의 첫머리로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76년에는 <머나먼 콧날>을 출간했고, 1979년에 영국의 의학 잡지 란셋'면봉-어디로 갔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코 풀기에 대한 고찰을 담은 연구 논문 '후루룩, 카악, '1989년에 나왔다. 모교의 코 고고학과 명예 교수이자, 2006 현재 옥스퍼드 코파막파 대학에 특별 연구원으로 초빙된 상태다. 결혼해서 아들을 한 명 두었는데 그 또한 열성적인 코 파기 애호가이다.

    

 

주황색 겉표지를 걷어내면 예사롭지 않은 그림이 있는 속표지를 만난다. 오른쪽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여자의 이름은 모나리자가 아니라 코나리자. 저자는 코 파기의 역사를 소개한다. 기원전 사람들은 옆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실컷 코를 팔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은 코파기 행위를 상형문자로 기록했다. 그러나 코 파기가 금기 행위로 인식하게 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의 웨섹스 지방을 통치하던 해럴드 왕은 코를 자주 파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코 파는 습관을 권장하기도 했다. 1066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왕 윌리엄과 맞붙은 헤이스팅스 전투 중에 해럴드 왕은 전사하고 말았는데, 그의 죽음이 황당하다. 적군과 싸우는 도중에 해럴드 왕은 코 파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날아오는 적의 화살을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 죽고 말았다. 해럴드 왕의 죽음으로 인해 노르망디 공국은 승리했고, 윌리엄 왕이 영국 왕위를 차지한다. 윌리엄 1세가 되어 노르만 왕조를 연 그는 과거 해럴드 왕이 내세운 정책을 모두 폐지했다. 공공장소에서 코 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선포했다. 이 법을 어기는 백성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이후로 영국인들은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실내에서 코를 파게 되었고, 다수 사람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에서 코를 파는 행위를 삼갔다.

 

 

 

 

 

 

여기까지 들으면 코 파기 행위가 억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라고 믿게 되겠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전부 이다. 코 파기의 역사를 다룬 책의 1장은 으로 시작해서 으로 끝난다.코 파기 애호가가 패러디 방식으로 만들어 낸 가짜 역사다. 저자는 우스꽝스러운 가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행위인 코 파기가 허위의식으로 인해 불결한 행위로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한다.

    

 

 

 

 

 

2장부터 코 파기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코 파기에 관한 특이한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질문 못지않게 저자의 답변도 특이하다. 코 파기의 기본적인 기술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뭉쳐서 튕기기. 코딱지를 둥그스름한 알갱이처럼 만들어서 튕기면 된다. 아니면 코딱지를 먹어도 된다. 코를 파려면 엄지, 검지만 있으면 된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코를 파기 시작했으면 특별한 훈련 없이 자연스럽게 코 파기 능력이 숙달된다고 주장한다. 다만, 코가 붉게 부어오를 정도로 과도하게 코를 파는 행위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타인의 코를 파는 행동을 금지한다. 그나마 이 내용이 정상적이다.

 

황당한 질문과 답변을 몇 개 골라봤다.

    

 

Q. 엄마에게 코 파는 법을 물어봐도 될까?

A. 귀싸대기를 맞고 싶지 않다면 참는 편이 낫다.

 

Q. 어째서 그런가?

A.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듯 여러분의 어머니도 자기가 코를 판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9)

 

Q. 코를 파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은 언제인가?

사실 하루 중 어느 때나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앞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 점심시간이나 차 마시는 시간, TV 시청 도중이 코 파기 제일 좋은 때이며 교실, 버스, 기차, 지하철 안이나 사무실 등이 코딱지를 튕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또 공식적인 만찬이나 환영회, 임관식, 무도회 등은 그야말로 코를 파기에 가장 완벽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60)

 

Q. 코 파기를 용인하는 조직들 중에 가입할 만한 곳이 있나?

A. 다음 단체들은 단순히 코 파기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국회, 덕수궁 보존 협회, 남산도서관 학생회, 한강고수부지 관리협회

 

(63)

 

 

국회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명은 번역자가 국내 독자의 웃음 코드를 맞추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국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조직명으로 바꿨다. 외국 만화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도록 번역할 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현지화 또는 로컬라이징(Localizing)’이라고 한다. 외국 단어를 억지로 한국 언어에 맞추다 보면 어색한 느낌이 날 때가 있다. 그 예가 바로 남산도서관 학생회.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에 학생 독서회는 있어도, 학생회는 없다. 학생회는 학교 내에 만들어지는 학생들의 모임이다 

 

Q. 누군가 코를 파지 말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 수 있을까?

A. 우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사람들에게 코 파기 장면을 목격 당했다면상황을 여러분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다음과 같이 대꾸하면 된다.

 

이 멋진 색깔/크기/모양을 좀 봐!”

조용히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 코딱지를 달라고 할 거야.”

넌 코가 끊임없이 근질거려서 계속 만지고 싶어지는 그런 날 없어?”

이렇게 나서주다니 고맙기도 해라. 안 그래도 내 코딱지는 다 떨어진 참이었어.”

    

 

 

 

 

 

 

저자는 독자가 코 파는 기술을 이해할 수 있게 글로 설명하는 대신 간단한 그림으로 만들었다. ‘코르시카식 찌르기는 프랑스의 코폴레옹(저자는 코를 파는 나폴레옹을 코폴레옹이라고 우습게 패러디했다)’이 선호하는 코 파기 방식이다. 참고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 파는 기술은 맴맴 하강법이다. 손가락을 소용돌이처럼 돌려서 코딱지를 빼낸다. 사실 맴맴 하강법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자주 하는 방식이다. 특이하게 코를 파고 싶다면 삼지창 공략법을 추천한다.

 

다음부터 코를 파다가 사랑하는 이성에게 들기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보라. “넌 코가 끊임없이 근질거려서 계속 만지고 싶어지는 그런 날 없어?” 이성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코 파기를 사랑해주는 진정한 반려자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성이 코를 만지고 싶어 하는 날이 있다고 인정하면 헤어지지말고 끝까지 잡아라. 당신의 코딱지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여자다. 반대로 당신의 질문을 듣고 이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당신의 뺨을 날린다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사람을 만나 보시길. 그리고 코 파는 모습을 연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항상 주위를 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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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0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연필보다 더 특이한데요,^^;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1-05 18:32   좋아요 0 | URL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연필 책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코 파기 책이 더 특이합니다. 정말 읽고 나면 황당한 웃음이 나올 겁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5-11-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내, 이런 책도 있었군요^^
쉬운듯 흥미를 끄는 내용은 모두 cyrus님 리뷰 덕분인 것 같습니다. ^^

cyrus 2015-11-05 18:33   좋아요 0 | URL
종이와 잉크가 아까운 책이었습니다. 빨리 절판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원서도 절판되었더라고요. ㅎㅎㅎ

yureka01 2015-11-0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넵 큰거 나오면 시원 하거든요 ㅎㅎㅎㅎ재밌는 책입니다..ㅎ

cyrus 2015-11-05 18:34   좋아요 1 | URL
큰 코딱지를 ‘왕건’이라고 부릅니다. ㅎㅎㅎ

인디언밥 2015-11-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진지하게 읽으면서 ˝헉 진짜야?! 사형?!˝ 이랬는데, 바로 밑에 뻥이라고 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림 엄청 웃기네욬ㅋㅋㅋㅋㅋ 코 후비는 사람 표정이 심각해서 더 웃긴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5-11-05 18:35   좋아요 0 | URL
글과 그림 모두 특이한 책입니다. 다 읽고 나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11-05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파기를...시도때도 없이...즐긴답니다..

cyrus 2015-11-05 18:36   좋아요 0 | URL
솔직하게 고백하실 줄이야... ㅎㅎㅎ

stella.K 2015-11-0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 파기나 귀 파기가 묘하게도 쾌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근데 귀 파기는 몰라도 코 파기는 정말 사람들 앞에서는 잘 못하겠더라.
근데 초등학교 때 대놓고 코를 파는 아이들이 몇있었어.
그들의 대범함과 자유로움이 혐오스러우면서도 부럽더라구.ㅋㅋ

cyrus 2015-11-05 18:3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순진해서 코를 파는 것과 코딱지 먹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님이 그걸 더러운 행위로 가르치는 순간, 아이들은 혼자서 몰래 코를 파요. 저도 코딱지 먹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
 
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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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 소리는 묻지 않고서도 듣기 좋아하면서, 그림만은 왜 그토록 물으려 하는가.”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책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저렇게 투덜대는 사람이 없다. 그림을 감상하는 대신 바삐 스마트폰을 꺼내 그림을 사진으로 찍고 저장한다. 인상 깊은 이미지를 고이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겠으나 그 순간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놓쳐버린다. 원하는 이미지를 언제 어디서나 저장하고 다시 열어 볼 수 있는 이면에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는다. 아름다움은 지식과 관계없는 직관에 의한 반응이다. 사물이나 감정은 그것이 무형의 것과 관계가 깊을수록 그 매력은 더욱 강하고 오래 지속한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속 깊은 곳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더 깊게 느껴질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 이것은 어렸을 때 보았던 상냥하고 온화한 색깔들로 동산이 그려져 있던 동화책 표지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 수 없는 아픔과 같이한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릴 적 책 속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움보다는 좀 가혹하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정지시켜 그 ‘껍질’만 마음 곳곳에 저장할 뿐, 진짜는 늘 놓치고 만다. 우리가 저장한 것은 사물의 잔영이고 기억일 뿐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우리는 그 잔영이 많고 적음에 따라 우리의 교양과 인격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는 그 잔영을 씻고 말리고 포장하여 쉽게 돈과 맞바꾼다. 사실 ‘예술’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바로 이 앎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색채는 건반이다. 눈은 현을 두드리는 망치다. 영혼은 많은 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서 사람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그림에 음악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누군가는 칸딘스키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면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사진을 보면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유병찬의 《소리 없는 빛의 노래》는 우리가 살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그가 카메라 렌즈에 담은 것들을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다. 건물 창문(「창문」), 누군가가 옷 수거함 위에 버린 곰 인형(「반전 곰돌이」)이 찍힌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침 바다, 산골짜기 같은 멋진 자연 풍경 사진도 몇 장 있지만, 전율과 감탄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작가의 사진은 내적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만나면서 특별한 노래가 된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여러 가지 빛의 음표로 이루어진 거대한 악보다. 작가의 카메라가 피아노라면, 셔터는 건반이다. 글은 감미로운 노랫말이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신선한 화음을 잘 구현해 낸 작품이 바로 「맛 좋은 연주」다. 작가는 닭 콩팥 꼬치가 불에 구워지는 과정을 보면서 노랫소리를 들었다.

 

 

노변(路邊)의 이름없는 피아노 연주자는 자극적인 향을 피웠다. 그의 건반은 쉴 새 없이 두드리듯 뒤집고, 리듬의 멜로디 대신 향이 가득한 연기로 익혀내며 단음으로 능숙한 손놀림의 연주를 한다. 어느 누군가가 꼬치로 된 건반의 연주를 듣고 군침을 흘려 본 적이 있었던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맛이 익어가는 연주의 유혹에 발걸음이 붙잡혔다. (「맛 좋은 연주」 중에서, 20쪽)

 


사진만 봐도 꼬치구이가 불에 익힐 때 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동안 군침을 돋게 하는 노변의 피아노 연주자의 꼬치 건반 연주 공짜로 들으면서, 꼬치구이를 음미하고 있었다. 노변의 연주자는 시즐 효과(Sizzle effect)의 힘을 알고 있었다. 꼬치 익는 소리만 내도 손님의 발길을 멈출 수 있다. 이런 맛 좋은 연주를 작가가 놓치지 않고, 피아노와 같은 사진기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만 봐도 ‘지글지글’ 꼬치 건반 소리가 들려오고, 입안에 침이 고인다.

 

작가가 부르는 사진 노래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조용하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 작가가 발견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작가에게 사진과 글은 그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이다. 농부가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쌀 한 톨이 주는 생존의 의미를 깨닫고(「쌀 한 톨의 의미」), 카메라 앞에서 기꺼이 자세를 잡아준 나무 한 그루에 애정과 존경심을 드러낸다(「애목」). 이러한 사진과 글은 작가의 내면에 오랫동안 남게 될 소중한 추억의 문신이다. 성찰의 계기로 나타나는 자연은 쉽게 사라져도 그것을 매개로 한 사진 작품은 오랫동안 빛이 난다. 작가가 카메라를 통해 모방하고자 하는 것은 피상적인 자연미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현실적인 자연 그 자체다. 유병찬 작가의 사진 작품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맑고 깨끗한 거울이다. 사진으로 부른 작가의 노래를 들었으니, 나도 그 노래를 한 번 불러본다. 감히 카메라를 목에 걸면서 허튼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빛의 음표를 찾아보련다.

 

 

 

※ 저자로부터 받은 책이라서 별점 다섯 개를 주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몇몇 분들이 있을까 봐 굳이 이 책에 대해 아쉬움 하나 알리고자 한다. 책 35쪽에 「침묵에 대한 저항」 사진은 입을 한껏 벌린 마른명태들을 찍은 것이다. 근접하게 찍어서 그런지 입 벌린 명태들의 모습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명태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을 분들에게 알린다. 35쪽을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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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01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론 시와 같고 한편으론 수채화 같은 리뷰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책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cyrus 2015-11-04 21:10   좋아요 0 | URL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

yureka01 2015-11-14 00:1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이웃인데..왜 주소를 안주셨어요? 재고 몇권있는데 보내드려야겠습니다..ㅎㅎㅎ(전문적 작가는 아니라 밥벌이로 하지 않고 나눠 볼려고 만든 책이라서 ^^_)

:Dora 2015-11-0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태사진 앞에 놓고 피아노 연주해드리고 싶네요

cyrus 2015-11-04 21:10   좋아요 1 | URL
어떤 음악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

2015-11-01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4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5-11-0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지만, 전 `명태`사진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ㅎㅎ

cyrus 2015-11-04 21:13   좋아요 0 | URL
저는 명태 사진의 글이 좋았어요. ^^

yamoo 2015-11-0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리뷰가 인상깊네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지만, 제겐 쌓여 있는 책이 산더미인지라...리뷰로 대신~^^;;

cyrus 2015-11-04 21:13   좋아요 0 | URL
분량이 얇아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 읽으면 좋습니다. ^^

인디언밥 2015-11-04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은 잘 알아볼 수 없는 아픔과 같이 한다는 말씀 참 와닿네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님을 만나고 온 뒤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 책 꼭 봐야겠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