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한 권의 책만 읽고 ‘최고의 책’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기에 이릅니다. 저자가 과학혁명을 설명하는 주장은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을 탈피하는 역사가들에게 비판 받을 수 있습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 로버트 B. 마르크스의 책을 읽어보면 유럽이 세계의 주인으로 완전하게 자리 잡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 책 350쪽에 《립 밴 윙클》의 작가를 ‘어빙스턴’이라고 잘못 썼다. 워싱턴 어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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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3-1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행 땜에 큰 기대로 중요한 순간 읽으려고 아끼고 있는 책인데... ㅠㅠ

cyrus 2016-03-10 20:32   좋아요 0 | URL
충분히 일독할만한 책입니다. 아예 안 읽어도 되는 책은 아닙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3-1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마음만 먹고 있는 책입니다ㅎ

cyrus 2016-03-11 08:04   좋아요 1 | URL
시간 있을 때 천천히 읽어보세요. ^^
 

               

 

 

            

 

 

도원경 - 난 인형이 아니예요

 

 

 

고대 로마인들은 쾌락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 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로마제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을 만끽이라도 하듯 로마인들은 더 강도 높은 쾌락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예외였다. 여성의 몸은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로마의 일인자》를 읽어 보면 당시 사회 인식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마리우스는 집정관 자리에 오를 기회를 잡기 위해 첫 번째 부인 그라니아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라니아는 수십 년 동안 남편에게 애정을 받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다. 냉정한 남편의 부탁에 그라니아는 모욕감을 느끼지만, 남편의 정치적 야심을 이해하고 그를 포기한다.

 

 

 

 

 

 

 

 

 

 

 

 

 

 

 

 

 

마리우스와 그라비아는 25년 동안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왔다. 그녀는 ‘아이를 원해서’ 마리우스에게 다가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고대 로마의 부부들은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서 섹스를 했다. 부부 사이에 친밀한 에로티시즘이 공유되지 않았다. 《로마의 일인자》 1권에 술라와 율릴라의 첫날밤 장면이 나온다. 훗날 로마의 일인자가 될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거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라. 작가는 싱거울 정도로 두 사람이 섹스하는 장면을 야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마치 엄숙한 분위기 속에 부부만의 종교의식을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술라는 율릴라에게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하고 있어도 실제 로마 남편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서로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려면 전희(前戱) 시간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여성의 경우 전희 과정을 거쳐 서서히 성적 자극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믿는 성적 금기 중 하나가 남편은 아내에게 커닐링구스(cunnilingus)를 하지 않게 되어 있다. 작가 컬린 매컬로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첫날밤 장면을 상상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관능성이 떨어지도록 썼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술라는 커닐링구스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진 : 드루수스의 저택 내부도 (로마의 일인자 2213)

 

    

주인의 침실이 두 개나 있다. 침실을 많이 만든 이유가 있다. 이게 다 집의 주인인 남편의 성적 만족감을 높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로마 남자들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상한 기준을 내세웠다. 아내에게는 정숙한 섹스를 요구하는 반면에 첩이나 여자 노예를 거리낌 없이 품어 안았다. 남편은 아내보다 개인 침실을 여러 개 가질 수 있었다. 침실의 목적은 애인과 여자 노예들을 만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황제의 후계자로 지명될 뻔한 어느 로마인이 아내로부터 바람기에 지적받자 변명을 했다. “다른 여자들과 욕망을 발산하게 내버려두라. 아내의 동의어는 쾌락이 아니라 품위다.”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93쪽)  여자들은 태어나서면서 죽을 때까지 늘 정숙하게 행동하면서 다녀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원해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고른 신랑감을 만나야 했다. 소설에 나오는 로마 유행가에 보면 가장의 절대적인 권한 속에 갇힌 로마 여성들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여동생 피기 필러
방앗간 구스와 같이 있다 들켰어.
방앗간 탑 밑에
여동생의 꽃이 짓눌렸지.
아버지 말씀, 그만 됐다.
벌써 당한 게 뻔하구나.
어서 당장 시집가거라.
안 그럼 궁둥짝이 회초리맛을 보리라!

 

(《로마의 일인자 1》 364쪽)

 

 


고대 로마의 결혼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손 있는 결혼식’인데, 신랑은 신부의 결혼 지참금을 포함한 전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 반대로 ‘손 없는 결혼식’은 신부의 재산을 인정해주었다. 단, 신부는 친정아버지의 통제에 벗어나지 못한다. ‘손 있는 결혼’을 한 아내가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에게 적발되면 일종의 명예 살인으로 남편이 아내를 죽일 수 있었다. ‘손 없는 결혼’을 한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은 그녀를 죽일 권한이 없다.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친정아버지다. 로마 사회는 간통을 저지른 여자를 범죄자 정도로 취급한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 특히 명예를 중요시하는 상류 계층 가문의 여성이 결혼하기 전에 남자와 몰래 연애한다거나 결혼 생활 중에 바람피운 사실이 알려지면 가족들마저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무시했다. 《로마의 일인자》의 율릴라가 실존 인물이었으면,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일찍 생을 마감했다. 율릴라는 자신의 애틋한 감정을 담아 술라에게 풀잎관을 주게 되는데, 이 사실이 안 그녀의 부모는 크게 분노한다. 로마 여자는 결혼해도 아버지의 그늘에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술라와의 첫날밤을 보내고 난 뒤에 내뱉은 율릴라의 하소연처럼 로마 여자는 아버지의 그늘에 잠깐 벗어나 남편의 그늘 속으로 편입되면서 살아야 했다. 아버지와 남편 손이 이끄는 대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섹스 돌(sex doll)'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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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퍼센트 인간 -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로 보는 미생물의 과학
앨러나 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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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잇몸이 심하게 아플 때가 있다. 대부분 사람은 가벼운 통증으로 생각하면서 참는다. 그런데 치통이 하루 이틀 이상 계속된다면 증상의 원인을 의심해봐야 한다. 치주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치주염 환자가 겪는 고통은 우리와 생각한 것 상상 이상이다. 최소 10분 이상 지속하는 진통이 하루에 세 번 이상 일어난다고 상상해보시라. 엄청 고통스러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치주염은 치아와 잇몸 사이 경계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심하면 치아가 많이 흔들려서 음식물을 씹을 때 힘을 주지 못한다. 치아 관리가 허술할수록 뇌졸중이나 치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입안에 있는 세균들은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만나 치석으로 변한다. 그 속에 있는 세균들이 치주염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세균들은 잇몸 속 혈관으로 침투해 몸 구석구석에 위협을 가한다. 심하면 관절염, 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 치주염은 단순한 치과 질환이 아니다.

 

우린 건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틀리지 않은 믿음이다. 영양분 많은 음식을 섭취해서 몸을 활발하게 움직일수록 면역 체계가 높아져서 병을 유발하는 세균이 몸속에 침투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고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세균이 몸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면 건강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1초의 순간에 적지 않은 수의 세균들이 코와 입속으로 들어간다. 그들 중 일부는 몸속 환경에 적응해서 정착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 엄청나게 많은 세균이 장기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중에 못된 녀석이 말썽 한 번 일으켜서 우릴 집요하게 괴롭힌다.

 

생물학자 앨러나 콜렌은 인간과 체내 미생물의 동거 상태를 ‘10퍼센트 인간(10% Human)’이라고 표현했다. 청결에 강박관념이 있는 결벽증 환자들에게 상당히 애석한 말이지만, 자주 손을 씻는다고 해서 절대로 세균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신체 부위 또는 몸속 내부기관에 당신이 혐오하는 세균들이 득시글하다. 우리는 10퍼센트 인간이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인간의 몸 전체에 거주하는 세균 즉, 미생물로 구성되어 있다. 박테리아, 곰팡이, 기생충 등이 현재 우리 몸속에 거주 중인 가장 작은 거주자들이다. 콜렌은 자신의 책에 미생물에 곰팡이, 기생충도 포함해서 설명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세균 대신에 미생물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미생물을 오해하면서 살아왔다. 미생물이 지구 상 생물 중에서 가장 하등에 속하며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 체류자로 인식한다. 서민 교수처럼 미생물을 사랑하는 미생물학자가 있었더라면 몸속 미생물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앨러나 콜렌이야말로 미생물학계의 서민 교수 같은 존재다. 악의 한 축으로만 바라보던 미생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지우려고 한다. 다만 그녀는 서민 교수처럼 재미있게 글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서민 교수 팬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콜렌은 인간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여태껏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미생물의 실체를 밝혀내려고 미생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가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것이 ‘21세기형 질병’이다. 이전 세기에 없었던 새로운 질병(비만, 자폐증, 음식 알레르기 등)을 의미한다. 이 질병들은 의학자들이 개발한 백신과 치료제의 힘을 무력화한다. 콜렌은 항생제의 등장으로 몸속 미생물 절반이 사라지는 바람에 건강의 적신호가 생겼을 것이라 본다.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들의 무게를 재면 15kg가 나온다.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는 장에 거주하는 유익한 박테리아다. 비만과 제2형 당뇨병과 같은 대사질환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 박테리아의 수가 감소하면 비만에 걸리기 쉽다. 대변 속에 있는 4,000여 종의 박테리아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콜렌은 대변의 박테리아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대변에 있던 좋은 미생물을 자신의 장에 주입하는 치료법을 구상 중에 있다.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거쳐 간다. 그런데도 이들을 불결하게 여기는 인식 탓에 항생제 같은 각종 치료제를 몸속에 대량 투여했다. 이러면 우리 몸에 이로운 미생물마저 쫓겨난다. 신약이 계속 나와도 이전에 없었던 질병들이 발현돼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콜렌은 인간은 미생물과 함께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100%에 가까운 완벽한 건강’에 대한 집착은 90% 미생물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 그들이 몸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새로운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무게나 부피가 작을지 몰라도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직소(Jigsaw) 같은 존재다. 우리는 미생물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인간의 생존 전략을 밝혀 줄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열쇠를 찾기 위해 10%의 미생물이 주는 의학적 신호를 무시해선 안 된다.

 

 

 


※ 책 중간에 컬러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책 160쪽과 161쪽 사이에 천연두 환자가 있는 사진과 기생충에 감염되어 기형 다리를 가진 개구리 사진이 있다. 독자들에게 다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이므로 이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 유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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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9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미생물이 하나 있어요 ^^.

효모~~ ㅎㅎㅎㅎ
요놈이 알콜을 만들어 내거든요..
주신을 만나게 해주는 아주 좋아하는 녀석이죠~~~..

사랑해 효!~~모!

cyrus 2016-03-10 18:47   좋아요 0 | URL
쌀 막걸리 병 밑에 보면 하얀 덩어리가 가라 앉아 있습니다. 그게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소주보다 막걸리를 선호합니다. 그걸 핑계로 막걸리를 몇 병 더 마시고 싶은 부질없는 욕심도 생깁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3-09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박테리아, 바이러스와 달리 서민 교수님의 기생충은 미생물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ㅎ
2. 인류 수명 연장의 의학 최고 공신은 외과, 내과 등이 아닌 치과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결국 잘 먹어야 오래 사는 거 같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는 전제예요. ^^

cyrus 2016-03-10 18: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책에 기생충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기생충도 미생물류에 포함시켜서 설명했습니다.

지금도 치아 상태 안 좋은 사람들이 엄청 많을걸요. 아주 오래 전 사람들도 치통에 고생했다고 합니다. ^^

yamoo 2016-03-0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주염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나저나 어마어마하게 읽네요~ 사이러스 님이 안 읽으시는 분야는 뭔지 궁금합니다~^^;;

cyrus 2016-03-10 18:51   좋아요 0 | URL
제가 안 읽는 분야의 책이 많습니다. 한국소설, 한국 작가 에세이, 종교, 장르문학, 경제 분야의 책을 잘 안 읽습니다. ^^
 

 

 

배고픈 당나귀가 길을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건초 더미를 발견했다. 그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기는 순간, 그 옆에 있는 다른 건초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는군.’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모두 맛있어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 건초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이 먹고 싶어졌다. 밤새도록 갈팡질팡하던 당나귀는 굶어 죽고 말았다. 그는 건초 한 개도 입에 대지 못했다. 자기 앞에 놓인 두 개의 건초 더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줄곧 고민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 우화는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로 알려졌다.

 

당나귀가 말해주듯 때때로 선택의 자유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거나 개인의 삶을 좀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당나귀는 다른 건초 더미를 배제하고 어떤 한 건초 더미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될 뿐이었다. 어떤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고 남겨진 것이 곧바로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당나귀는 미련하고 욕심이 너무 많다. 우리 또한 당나귀처럼 무언가의 결정을 눈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우매한 모습을 드러낸다. 뷔리당은 당나귀를 통해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했다.

 

 

 

 

 

 

 

 

 

 

 

 

 

 

 

우화의 주연은 당나귀지만, 그의 최후에 영향을 준 건초 더미를 무시할 수 없다. 중세에 건초 더미는 인간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해석되었다. 그렇게 되면 뷔리당의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욕심이 자유의지의 힘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네덜란드에는 이런 유행가가 있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지상의 훌륭한 것들을 건초 더미처럼 쌓아 올렸는데, 사람들이 그 더미를 혼자 독차지하려고 서로 다툰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 노래에서 가장 유명한 가사 한 구절이 건초의 부정적 의미를 강조한다. 결국, 그것은 모두 건초일 뿐이다.” 욕심 많은 인간은 보잘것없는 건초마저 탐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건초 수레(1500, 삼면제단화 중앙 부분)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인간의 무력함을 풍자하기 위해 건초 더미 수레를 소재로 한 똑같은 그림 두 점을 제작했다. 엄청난 높이로 쌓아 올린 건초 더미 수레가 지나가자 온갖 직업과 계급의 사람들이 뒤따라온다.

 

 

 

                    

 

 

농부뿐만 아니라 왕과 왕비(혹은 귀족 부부), 교황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복장의 인물들도 행진에 동참한다.

 

 

 

                  

 

건초 더미 수레 위에는 노래를 연주하는 젊은 연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건초 더미 위에 올라가려고 시도한다. 이들의 행진은 즐겁고 유쾌하다기보다는 혼잡하다. 이와 중에 서로 싸우는 시민들도 있다.

 

 

 

                  

 

 

그림 오른쪽 밑에 시골 아낙네들이 건초 더미를 자루에 실어 넣는다. 뚱뚱한 수도원은 아낙네들의 일을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건초 더미 수레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괴상한 짐승처럼 생긴 악마들이 수레를 끌고 있다. 그들은 건초 더미에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을 유혹하여 지옥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감지한지 못한 채 행진한다. 하늘 위의 예수도 개판 5분 전인 속세의 상황을 말리지 못한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가 탐욕(Avaritia)이다. 보스는 죄악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건초는 소유하고 싶은 물화(物貨). 탐욕은 갈등을 초래한다.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고 강조하던 종교인들마저 악덕의 그림자에 점령당했다. 수도승은 아낙네들이 바치는 건초 더미를 받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건초 더미 꼭대기 위의 연인들은 환락의 잔치를 즐긴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한다. 재물이 많을수록 달콤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들의 욕심은 부질없다. 어차피 죽으면 소유할 수 없다. 하나뿐인 인생에 헛된 욕심만 부리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다. 탐욕은 자꾸만 우릴 부추긴다. 하나도 모자라서 하나 더를 원한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남이 가진 것을 노린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얼마나 가졌는지 비교해보기도 한다. 뷔리당의 당나귀 같은 사람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교하면 별반 차이 없는 두 개의 재물 앞에 생각이 많아진다. 둘 중 하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리석은 당나귀가 있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그 역시 두 개의 건초 더미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두 개의 건초 더미의 양은 동일하다. 양쪽 건초에 가격표가 있다. 왼쪽 건초의 가격은 5만 원, 오른쪽 건초의 가격은 천 원이다. 당나귀는 고민하지 않고, 왼쪽 건초를 먹는다. 건초의 양이 비슷해도 높은 가격으로 매겨진 건초가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당나귀는 5만 원짜리 건초 더미를 실컷 먹고 왔다고 동료 당나귀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당나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베블런(Veblen)의 당나귀. 당나귀 이름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되는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베블런 효과'를 검색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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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블런효과..이거 사진 찍다보면 뽀대주의자를 간혹 보게 됩니다.
사진 실력이 자신이 가진 카메라 가격과 동일시하는 착각....
돼지목에 진주인지는 고려한 바가 없었거든요..

cyrus 2016-03-09 14:20   좋아요 1 | URL
사진 찍는 일에도 베블런 효과가 작동되고 있었군요. 사진 실력이 그저 그런 수준인데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림스네 2016-03-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에는 건초더미를 인간의 탐욕의 대상으로 해석했네요.
그림 해석이 재미있어요.
베블런 당나귀도 재미있고,

cyrus 2016-03-09 14:24   좋아요 0 | URL
중세 역사를 공부할 때 재미있는 내용이 중세에 유행한 상징들에 관한 것입니다. 중세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자연과 사물이 신의 의미가 들어있는 피조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상징에 종교적 분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서니데이 2016-03-0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가 강조된 그림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3-09 20:2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세트]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 2부 세트 - 전6권 (본책 6권 + 가이드북) - 로마의 일인자 1~3 + 풀잎관 1~3 마스터스 오브 로마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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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선호하는 로마 남자가 더 있다. 시오노는 매력남의 조건을 ‘성공하는 남자의 조건’이라는 수필에 공개했다. 이 글은 《남자들에게》(한길사)라는 책에 있다. 시오노는 성공하는 남자의 몸 전체에 밝은 빛이 있다고 말한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동작 하나에서 은은한 분위기를 띠는 밝음을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를 이탈리아어로 ‘세레노(sereno)’라고 한다. 이탈리아어 사전에 찾아보면 ‘밝은, 평온한, 깨끗한’이라고 씌어 있다. 시오노는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을 그런 매력적인 성품을 들며 ‘담백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남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남자 중에 ‘세레노’에 가까운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오노는 ‘세레노’에 고뇌와 상처가 없는 산뜻한 매력을 부여한다. 뭐지? 이건 뭐 에피큐리언(epicurean)이 되라는 건가. 살면서 마주치게 될 온갖 정념(情念)을 완벽하게 피할 수만 있다면 심란하지 않은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오노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어서 로마 남자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앎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고대 로마 남자들의 진짜 성격을 알고 있으면 밝고 평온한 세레노를 다른 인물에게서 찾아야 했다. 스키피오는 물론이고, 로마 남자들은 세레노와 거리가 먼 종족들이다.
 
나는 로마 남자를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로마초(Romacho). 로마(Roma)와 마초(macho)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로마 남자들은 마초였다. 로마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키비스 로마누스(civis Romanus), 즉 ‘로마 사람’으로 살아간다. 특히 로마 남자들은 ‘로마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마음껏 표출했다. 어디든 가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기세당당한 자세로 상대방을 대면했다. 자신감이 넘친 로마 남자들은 여자보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여자뿐만 아니라 같은 남자들에게도 우월성을 과시했다. 남들 앞에 순종적인 자세나 행동을 보이면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와 《풀잎관》의 주연 마리우스와 술라는 ‘로마초’ 기질을 가진 로마 사람이다. 혹자는 마리우스가 세레노에 적합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설득력이 있는 인물평이다. 그는 자신의 신부가 된 율리아의 제안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는 율리아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재산을 공동 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대방 앞에서 굽히는 모양새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로마 남자다. 그의 남자다움은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을 복종하도록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의 큼직한 회색 눈은 대담하게도 아버지를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마리우스가 보기엔 예절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이 장난꾸러기 녀석에게, 아버지란 아들이 함부로 지배하고 조종할 사람이 아니라 존경하고 우러러봐야 할 사람임을 알려줄 작정이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0~311쪽)

 

 

마리우스는 시라아의 무녀 마르타의 예언에 집착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째 집정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결국, 자신이 로마를 이끄는 유일한 지휘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원로원에서 시커먼 오물 같은 권력욕의 온상을 여러 차례 목격했음에도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포르투나(fortuna)의 도움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것은 운명적인 힘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 한가운데 세워진 포르투나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빚어낸 어설픈 조각상에 불과하다. 마리우스는 한때 로마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조국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시절에 마리우스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최하층민들도 키비스 로마누스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여기서도 마리우스는 로마인 특유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외국으로 여행할 때면 사람들은 우리의 의견에 따릅니다. 비록 최하층민일지언정, 자신을 로마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조차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보다 낫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단 한 명의 노예도 없을지라도,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무리 중 하나입니다. 노예 한 명 없어 직접 천한 일을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로마인이다, 나는 그 외 다른 모든 인간들보다 낫다!’” (《풀잎관》 1권 373쪽, 글쓴이가 발췌 편집했음)

 

 

그의 정의로운 사자후는 늙은 오만한 여우로 변했다. 광기 어린 여우는 이성의 기운이 쇠약해진 늙은 마리우스의 심장을 물어뜯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늙은 지도자는 자신이 다른 모든 집정관을 능가하는 로마의 일인자라고 생각한다.

 

 

 

 

“등짝을 보자!”

로마 남자들은 동성애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술라는 마리우스보다 ‘로마초’ 기질이 심하다. 그는 젊은 시절에 남성성을 억눌린 채 살아왔다. 의붓어머니 클리툼나, 애인 니코폴리스와 함께 매일 방탕한 쾌락의 밤을 보낸다. 두 여자는 술라를 자신 곁에 두려고 적극적으로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두 여자의 기세에 지쳐버린 술라는 아름다운 소년 메트로비오스를 만난다. 술라의 동성애는 쾌락을 위한 남색 행위라기보다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로마 남자들의 남근은 남녀 불문하고 꼿꼿하게 솟았다. 침대 위에서도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복종해야 직성이 풀렸다. 술라는 메트로비오스를 만나 복종을 요구하는 남성성을 마음껏 표출한다. 술라는 한집에 사는 두 여자를 멀리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는 동시에 권력의 사다리로 올라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매컬로는 술라를 ‘뼛속까지 배우’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 않다. 마리우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 모두 ‘완벽한 로마 남자’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살아왔다. 모두가 ‘로마 사람’들이다(All the People of Rome). 이들은 상황에 따라 맞춰 쓸 수 있는 가면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로마 남자들에게 허세를 빼면 시체다. 남들 앞에 우월한 척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로마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 정력이 사라지는 것. 그렇게 자신만만한 남자들도 노화의 섭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어쩌면 자존심 많은 로마 남자들은 자신이 늙고 병들어가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우스의 장인 카이사르는 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인간 아니 로마 남성의 존엄성이 무너져버린 상황을 깨닫고 자결한다. 로마 남자들은 남들 앞에서 남성성의 가면을 벗는 걸 두려워했다. 아, 마리우스가 딱 한 번 가면을 벗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나서야 로마에 귀국했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서 율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1쪽) 그가 슬피 울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권위적인 가장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로마 남자들은 눈물을 함부로 흘리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면 나약한 남자로 놀림 받는다. 로마 사회에 성공하려면 남성성이 철철 넘치는 남자가 되어야 했다.

 

로마 남자들이 이토록 권력에 집착하고 과시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남성성을 공공연히 드러내야만 했던 특수한 사회 풍조 때문이었다. 시대가 영웅과 괴물을 키워내지 않았다. 로마 남자들은 그 시대 풍조에 적응하면서 살았을 뿐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영웅 혹은 괴물이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양쪽 길을 모두 포기하면 사회에서 낙오된다. 그들은 ‘두 얼굴을 가진 배우’로 살아가느라 고생했다. 24시간 내내 남성성의 가면을 쓰고 다녔다. 알고 보면 로마 여자들뿐만 아니라 로마 남자들도 괴롭게 살다가 진토가 되었다. 우린 정말 로마에 태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 이 글은 해당도서 서평 대회 참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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