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헐, 브뢰겔, 브뢰헬. 이 위대한 플랑드르 화가에 대한 글을 쓰면 성(姓)을 어떻게 써야 할지 헷갈린다. 네덜란드 원어명은 ‘Brueghel’이다. 특이하게 브뤼헐은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남길 때 ‘h’를 뺀 ‘Bruegel’로 적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영어식 발음에 가까운 ‘브뢰겔’이 더 많이 알려졌다. 네덜란드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Bruegel’은 ‘브뤼헐’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성의 발음만 복잡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브뤼헐이라는 성을 가진 화가가 한 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가로 활동해서 이름을 알린 브뤼헐이 모두 네 명이나 있다. 이들은 브뤼헐 집안(家)사람이다. 브뤼헐 가는 플랑드르를 대표하는 화가 집안으로 명성을 떨쳤다. 사람들은 여러 명의 브뤼헐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별명을 만들었다.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도 브뤼헐이 그린 그림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혼동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 브뤼헐이 그린 그림을 그의 아들이 그린 것으로 착각한다. 오늘날 현존하는 그림에 ‘Bruegel’이라는 서명이 있으면 아버지 브뤼헐이 그린 것인지 아니면 아들이 그린 것인지 한 번에 구별하기가 어렵다. 브뤼헐의 그림이 유명해서 모사작품도 많이 나왔는데, 아들 브뤼헐이 아버지 브뤼헐의 그림을 모사한 작품도 있다. 

 

 

브뤼헐 가의 계보와 그들의 별명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1. 피터르 브뤼헐 / 대 브뤼헐
(네덜란드: Pieter Brueghel de Oude, 영어: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5?~1569)

 

 

 

 

 

피터르 브뤼헐(대 브뤼헐) 자화상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62년경)

 

 

 

 

 

피터르 브뤼헐 『눈 위의 사냥꾼』 (1565년)

 

 

 

 

피터르 브뤼헐 『농민의 결혼식』 (1568년)

 

 

농민의 생활 장면이나 네덜란드 전통 풍습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농민 브뤼헐’이다. 한때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화풍에 가까운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서 ‘도깨비 브뤼헐’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the Elder’는 나이가 많은 사람의 이름 뒤에 붙는 형용사구다. 성이 비슷한 부자(父子)를 구별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the Elder’를, 아들은 ‘the Younger’를 쓴다. 우리말로는 ‘대(大)’와 ‘소(小)’를 사용한다. ‘농민 브뤼헐’로 알려진 피터르 브뤼헐은 ‘대 브뤼헐’로 부르기도 한다.


 

 

 

2. 피터르 브뤼헐 / 소 브뤼헐
(네덜란드: Pieter Brueghel de Jonge, 영어: Pieter Brueghel the Younger, 1564~1638)

 

 

 

 

 

안토니 반 다이크 『피터르 브뤼헐(소 브뤼헐)』

 

 

 

 

피터르 브뤼헐(소 브뤼헐) 『새덫이 있는 겨울 풍경』 (1601년)

 

 

‘농민 브뤼헐’의 장남이다.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괴물이 등장하는 공상적인 세계의 풍경화를 그렸다. 별명은 ‘지옥의 브뤼헐’이다.

 

 

 


3. 얀 브뤼헐 / 대 얀 브뤼헐
(네덜란드: Jan Brueghel de Oude, 영어: Jan Brueghel the Elder, 1568~1625)

 

 

 

 

피터르 파울 루벤스 『얀 브뤼헐 가족』 (1612~1613년)

 

그림 오른쪽에 있는 소년은 커서 화가가 됩니다. 

 

 

 

 

 

 

얀 브뤼헐, 피터르 파울 루벤스 『후각의 알레고리』 (1618년) 

 

 

 

대 브뤼헐의 차남이자 소 브뤼헐의 동생이다. 다행히 차남의 이름은 ‘얀’이다. 얀 브뤼헐은 꽃과 동물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별명은 ‘꽃의 브뤼헐’이다. 사람들은 지옥을 생생하게 묘사한 형과 구분하려고 얀에게 ‘천국의 브뤼헐’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얀은 루벤스와 함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4. 얀 브뤼헐 / 소 얀 브뤼헐
(네덜란드: Jan Brueghel de Jonge, 영어: Jan Brueghel the Younger, 1601~1678)

 

얀 브뤼헐의 아들은 ‘소 얀 브뤼헐’로 부른다. 아들도 화가로 활동했으나 그가 그린 그림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대 브뤼헐)와 큰아버지(소 브뤼헐) 그리고 아버지의 명성이 높아서인지 얀 브뤼헐 아들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자,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요약한 것만 외우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피터르 브뤼헐 (1525?~1569) – 대 브뤼헐, 농민 브뤼헐
피터르 브뤼헐 (1564~1638, 대 브뤼헐의 장남) – 소 브뤼헐, 지옥의 브뤼헐
얀 브뤼헐 (1568~1625, 대 브뤼헐의 차남) - 꽃의 브뤼헐, 천국의 브뤼헐
얀 브뤼헐 (1601~1678) - 얀 브뤼헐의 아들

 

 

 

 

 

 

 

 

 

 

 

 

 

 

 


 

 

 

 

 

 

《관능미술사》 31쪽에 얀 브뤼헐이 그린 그림이 있다. 여기서는 ‘얀 브뤼헐(아버지)’로 적혀 있다. 이 그림은 얀 브뤼헐이 혼자 그린 것이 아니라 피터르 파울 루벤스와 공동 제작한 것이다. 얀 브뤼헐의 아들이 화가로 활동한 사실을 모르는 독자들은 ‘얀 브뤼헐(아버지)’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한다. ‘얀 브뤼헐(아버지)’로 쓰려면 얀 브뤼헐과 그의 아들에 대한 짤막한 언급을 추가했어야 한다.

 

 

 

 

 ※ 딴죽걸기 하나 더

 

 

 

 

책을 만드는 사람은 이 사소한 내용을 절대로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책의 오점이 그대로 남는다. 사진 속 문장은 레옹 보나의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잔혹미술사》 96쪽에 있다. 여기서 잘못된 문장 한 줄이 있다.

 

[라울 뒤피나, 조르주, 브라크 등 개성 넘치는 제자들을 길러냈다.]

 

두 개의 쉼표(,)를 빼야 한다. 그러면 화가의 이름이 정확하다. 쉼표를 빼면 라울 뒤피(Raoul Dufy)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가 올바르다. 서양미술사에 ‘라울 뒤피나’라는 이름의 화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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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3-2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뢰헬의 <아이들의 놀이>는 <아동의 탄생>에서 <교수대의 까치>는 아마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책에서 근래 만나서 친숙하고 몹시 반갑네요. ^^

cyrus 2016-03-29 15:29   좋아요 0 | URL
브뤼헐의 그림은 특별한 상징과 의미가 숨어 있어서 재미있어요. 그래서 플랑드르 출신 화가 중에서 브뤼헐을 제일 좋아합니다. ^^

yureka01 2016-03-2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름이 어려울만합니다..ㅎㅎㅎㅎ우엉..

cyrus 2016-03-29 15:32   좋아요 0 | URL
네덜란드어 발음이 영어식 발음과 달라서 읽을 때 어렵게 느껴져요. 학창시절에 과학교과서에 나온 물리학자 호이겐스를 요즘에는 ‘하위헌스’라고 발음하더군요. <중세의 가을>의 저자 호이징가는 ‘하위징아’로 부릅니다.

cyan 2016-03-2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 집안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이렇게 정리된 내용은 처음 보아요. 감사합니다~

cyrus 2016-03-29 15:34   좋아요 0 | URL
저도 브뤼헐을 구분하지 못해서 알기 쉽게 어제 글로 정리해봤습니다.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붉은돼지 2016-03-2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옛날부터 브뢰겔,,브뤼헐,,브뢰헬.... 이름이 참 헷갈리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너무 감사해요...`브뤼헐` 이 올바른 표기법이군요...그래도 왠지 조금 어색합니다. 입에 익지 않아서...

`곤두박질`인가 뭔가 브뢰헬(아마 대 브뤼헐)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도 기억납니다. 읽다가 중간에 포기했지만 말입니다. ^^

cyrus 2016-03-29 15:3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브뢰겔’이 더 친숙했습니다. <곤두박질> 표지에 나오는 그림이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입니다. 그 그림은 대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겁니다. 저는 그 소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

표맥(漂麥) 2016-03-2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내용이군요. 눈요기 공부하고 갑니다.^^

cyrus 2016-03-29 15:36   좋아요 0 | URL
또 헷갈리면 제가 썼던 글을 다시 보면 됩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3-2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사람들 다 다른 사람이었군요. 대충 읽는 버릇 좀 고쳐야겠어요. ㅠㅠ 프랑드르 화풍하면 뭔가 항상 연출된 느낌이 들어요. 사진찍힐 때 과도하게 의식해서 굳은 것 같은... 묘하게 매력이 있어요.ㅎㅎ

cyrus 2016-03-29 15:38   좋아요 0 | URL
브뤼헐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 자신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일종의 암호인거죠.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현실적으로 맞지 않거나 과장된 장면이 있는데,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화가가 관객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의도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

qualia 2016-03-29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⑴ 네덜란드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Bruegel’은 ‘브뤼헐’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

→ 위 문장에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로 발음하는” 부분은 문장 자체의 의미에 따르자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로 표기하는”으로 쓰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왜냐면 표기법에 관한 얘기를 해놓고 끝에 가서 발음법 얘기로 결론 짓는 것은 앞뒤가 호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표기하는”은 “음역하는”으로 하면 더 정확하고요. “적는”다고 해도 괜찮겠죠.

⑵ 농민의 생활 장면이나 네덜란드 전통 풍습에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 “전통 풍습에 소재로”에서 “에”는 오타인가요? “전통 풍습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고 해야 맞겠죠.

⑶ ‘the Elder’는 나이가 많은 사람의 이름 뒤에 붙는 형용사다.

→ “the Elder”를 형용사라고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Pieter Brueghel the Elder”에서 “the Elder”가 형용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형용사라고 하신 것인데요. “the Elder”가 형용사 역할을 한다고 해도 형용사 자체는 아닙니다. ‘형용사구’라고 해야 맞겠죠. 그리고 “the Elder”는 해석하기에 따라 명사구로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정관사 the + 형용사’ 형태는 일종의 명사구로 인정되거든요. 이 경우, Pieter Brueghel과 the Elder를 동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걸 형용사구 아니면 명사구로 보는 문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릴 것이라 봅니다. 아무튼 ‘정관사 the + 형용사’ 형태의 구를 단순히 형용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⑷ 아들도 화가로 활동했으나 그가 그린 그림이 많이 알려지지 않다.

→ “알려지지 않다.”에서 “았“을 빼먹었군요. 그리고 위 문장을 더 정확하게 쓰자면 “~ 그가 그린 그림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로 해야 합니다. 즉 조사 “-이”를 “-은”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cyrus 2016-03-30 14:13   좋아요 0 | URL
틀린 곳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qualia님이 아니었으면 제가 글자 하나를 빠뜨리면서 글을 쓴 사실을 몰랐었을 겁니다. qualia님이 알려 주신대로 수정했습니다.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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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를 찾습니다!

 

.

.

.

 

 

 

 

‘응팔’ 선우가 아닙니다.

 

 

 

 

 

 

‘시그널’ 선우도 아닙니다.

 

 

 

 

 

노래 부르는 선우도 아니에요.

 

 

 

 

 

 

야구(해설)하는 선우 또한 아닙니다. 

 

.

.

.

 

 

제가 찾는 선우가 누구인지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시렵니까?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백석 ‘함주시초-선우사’ 중에서, 《정본 백석 시집》 83쪽)

 


‘맛은 육신과 정서에 사무친다. 먹을 때는 생활이고 먹고 싶을 때는 그리움이다. 맛은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고 삶과의 맞대면이다.’ 작가 김훈은 소래섭의 《백석의 맛》에 붙인 꼬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사실이다. 어느새 우리는 이런 궁핍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옛 맛을 찾게 되니 말이다. 음식에도 사연이 곁들여지면 그악스럽게 먹어도 부끄럽지 않고 조악한 푸성귀 몇 잎에조차 행복해진다. 백석‘반찬 친구(선우, 膳友)’는 가자미다. 백석은 가자미 반찬을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친근한 대상처럼 묘사했다. 시인에게 반찬은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 되고 고독을 잊히는 친구가 된다.

 

맛에 대한 기억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맛은 각자의 혀에 코와 기억으로만 느낄 수 있다. 백석은 이 오묘한 상황을 불현듯이 실감했다. 우리에게 흰밥과 가자미는 어쩌다 먹는 별미지만, 백석에게 그것은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행복의 기억을 덤덤하게 곱씹는데 이만큼의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보다. 백석에게 가자미가 있다면, 황석영에게는 굴비가 그런 음식일 게다. 고추장에 담근 굴비는 기억 속에 희미해진 작가와 어머니의 소중한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무더운 여름날에 입맛이 없을 때 찬물에 밥을 말아서 찢어놓은 구운 굴비와 열무김치를 먹으면 식욕이 왕성해졌다고 기억한다. 이만한 밥도둑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황석영의 밥도둑》에서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유혹하는 밥도둑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진짜 주인공이 따로 있다. 바로 밥도둑들의 유혹을 그리워하는 우리다. 백석은 ‘쓸쓸한 저녁’을 맞이하면서 진짜 밥도둑이 실은 가자미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밥도둑은 원래 일하지 않고 놀고먹기 만하는 한량을 의미한다. 시인은 밥상에 오른 가자미를 보면서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반찬 선(膳)’은 ‘희생’을 의미하는 한자다. 가자미는 시인의 입맛을 살리기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했다. 어머니는 까다롭고 철없는 어린 미식가를 위해 부엌에서 적지 않은 희생의 시간을 보냈다. 싱크대가 없던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수만 번 도마 위에 칼질하고, 수만 번 쌀을 씻고 밥을 안쳤다. 어린 밥도둑이었던 황석영은 굴비 반찬이 그렇게 맛있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 50여 년이 걸렸다. 작가의 어머니는 고추장 범벅이 된 갈비를 직접 손으로 찢었다. 이런 희생과 정성의 손맛이 굴비 조각 속으로 배어 들어가면 별식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아무리 까다로운 미식가라 하더라도 최고 음식을 꼽으라면 유명한 조리사가 만든 음식이나 산해진미가 아닌, 어머니 손맛을 꼽는 것을 봐도 그렇다.

 

부모는 우리 모두 미식의 스승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부모의 맛을 닮아간다. 작가는 연인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일 좋아했던 장아찌를 먹어본다. 그 과정에서 궁핍 속에서 살아남은 아버지가 흘러내렸던 짭짤한 땀 맛을 안다. 그러면서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유별난 사랑을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장아찌와 밥 한 덩이는 고통의 맛을 잊게 해주는 아버지의 유일한 반찬 친구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배워 온 기억의 재현을 통해 우리는 맛을 알아간다. 아니 단순히 맛을 알아간다는 차원을 넘어 부모님을 이해하고 닮아가고 있는 것이고, 동질감을 느낀다. 부모와 자식 간 정이 음식으로 통하는 것을 보면, 음식만큼 정을 나누고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작가에게 음식은 ‘음식’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바로 ‘우정’과 ‘나눔’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김용태와 함께 먹었던 부대찌개, 감자탕, 낙지볶음은 작가의 추억을 뜨끈하게 하는 반찬이다. 소주와 곁들인 이 저녁 음식들에는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충만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 속에 친구의 이야기가 채워져 있다. 작가는 날이 추워지면 부대찌개를 찾는다. 친구는 작가의 결핍을 채워주는 반찬(膳) 친구를 선물(膳)로 주고 떠났다. 오랜만에 만난 반찬 친구는 또 다른 친구의 추억을 낳는다. 추억이라는 놈은 그것이 기쁜 것이었든 슬픈 것이었든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기에 불쾌한 녀석이 아니다.

 

백석의 「선우사」 마지막 두 행은 험한 세상과 대면하려는 시인의 자존심이 드러난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함주시초-선우사’ 중에서, 《정본 백석 시집》 84쪽)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밥을 잘 먹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다시 숟갈을 들게끔 식욕을 생기게 한다. 아마도 백석과 황석영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다만, 백석이 정다운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방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황석영은 맛을 보면서 입 안에 맴도는 추억을 더듬는다. 맛있는 음식에는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과의 친밀성이 담겨 있다. 그것이 맛의 기억을 최상으로 만든다. 아무리 배불러도 맛있던 기억은 소박한 밥상을 그립게 한다. 먹는 행위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거나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매 순간 살아있음을 생의 의욕을 잃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친구 같은 음식에 대한 사람의 감정에는 권태가 없다. 내 마음을 훔치는 밥도둑과 함께 하면 누구 하나 부럽지 않다.

 

그런데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혀 치열하게 살다 보니 음식의 진정한 소중함을 잊고 지냈다. 음식이 풍족한데도 나를 즐겁게 해준 밥도둑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 외로운 우리는 텔레비전에 갇혀 남이 먹는 행위를 보면서 위로받으려고 한다. 텔레비전 화면에 ‘어머니의 손맛이 있는 음식’을 먹는 연예인의 모습을 본다고 해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없다. 우린 이제 그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먹방 열풍’과 유명 음식점을 알리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맛있는 추억을 공유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회피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먹고 노느라 바빴던 밥도둑(한량)은 이제야 맛있는 추억을 간직한 밥도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럴수록 경제적 여유 걱정하지 않고도 정겨운 추억을 나눌 수 있는 반찬 친구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보고 싶다, 내 밥도둑 선우야!

 

 

 

 

※ 서평대회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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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북 2016-03-2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문드문 접하기만 했던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문득 아이들이 좋아하는, 백석 시인의 [개구리네 한솥밥]도 떠오릅니다^^

cyrus 2016-03-28 15:29   좋아요 0 | URL
<정본 백석 시집>을 추천합니다. 옛 말이나 북쪽 방언 풀이가 잘 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좋습니다. ^^

yureka01 2016-03-2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히 먹는다는 것이상의 먹기에 대한 이야기.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3-28 15:31   좋아요 1 | URL
살면서 먹어왔던 음식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습니다. ^^

단발머리 2016-03-28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표지는 많이 보았는데 정말 따뜻한 내용이군요.
어제 저녁에 피자시켜준 이 엄마는... 웁니다.

좋은 리뷰예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래요~~

cyrus 2016-03-28 15:33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 점심으로 라면, 저녁에는 족발을 먹었어요. ㅎㅎㅎ
저보다 서평을 잘 쓰신 분들이 많습니다.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습니다. ^^

세실 2016-03-28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음식에는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과의 친밀성` 이 말이 와닿네요.
선.우! 반찬과 친구라니.....시인의 감성은 역시!!!
참 깔끔하면서 명쾌한, 찡한 리뷰네요^^ 베리 굿!

cyrus 2016-03-28 15:36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혼밥 먹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어딜 가든 주위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그래도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먹는 식사 시간이 제일 좋아요. 백석 시인은 얼굴도 잘 생겼고, 감수성도 풍부해요. ^^

표맥(漂麥) 2016-03-2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수상권 리뷰군요... ^^

cyrus 2016-03-28 15:39   좋아요 0 | URL
제가 출판사 서평대회에 응모하면 징크스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칭찬한 글은 낙선되었습니다. ㅎㅎㅎ

비로그인 2016-03-2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문의 알찬 글이네요.
서평대회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래요.

cyrus 2016-03-28 21:19   좋아요 0 | URL
일반 독자가 서평대회용 글을 보는 것이 심사하는 분이 보는 것과 차이가 있어요. 두 사람 모두 만족시키는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이 글을 칭찬하는 분들이 많아서 낙선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
 

 

 

 

 

 

 

 

 

 

 

 

 

 

 

 

 

《우울과 몽상》 번역의 심각한 상태를 잘 보여주는 문장. 이렇게 무성의한 번역은 처음 본다. 진짜 《우울과 몽상》은 절판되어야 한다.

 

 


사실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대단히 많습니다. 그 행성의 기후에 대해서도 말씀드릴 것이 많습니다. 추위와 더위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2주일 간 혹독하게 이글거리는 태양과 다음 2주일간의 북극보다 더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대해서. 마치 진공 상태처럼 태양 아래서 증발하여 먼 곳까지 끊임없이 순환하는 습기에 대해서. 물이 흐르는 다양한 지역에 대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의 관습과 예절과 정치 형태에 대해서. 그들의 특이한 육체에 대해서. 그들의 못생긴 얼굴에 대해서. 특이하게 변한 기후에는 전혀 쓸모 없는 부착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퇴화한 귀에 대해서. 따라서 언어의 사용법에 대한 그들의 무지에 대해서. 언어 대용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독특한 방법에 대해서. 달의 개개인과 지구의 몇몇 개개인이 이해할 수 없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지구 궤도와 달의 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또 이것에 의해 한쪽 별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과 다른 별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이 떼어놓을 수 없게 얽혀 있는 연관성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 바깥쪽 우주에 있는 위성의 자전운동에 대해서. 또 이 위성이 지구를 도는 공전운동이 거의 기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에 대해서. 그렇기에 아직 한 번도 인간의 망원경에 포착된 적이 없고 신의 뜻대로 앞으로도 한 번도 포착되지 않을 달 반대편 지역의 어둡고 소름끼치는 수수께끼에 대해서.

 

이 모든 것들을 기꺼이 학장님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울과 몽상》 88~89쪽)

 

 

 

사실 그렇습니다. 전해드릴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달의 기후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려볼까요? 달에는 2주 동안 이글이글 불타는 태양 빛과 다음 2주 동안 북극보다 더 혹독한 추위가 번갈아 나타나고, 진공 속에서 증류되듯 태양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까지 끊임없이 수증기가 이동합니다. 물이 흐르면서 토양이 계속 변화하는 지역과 달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관해, 그 사람들의 생활 방식, 관습, 정치 제도. 신체 구조에 관해서도 알려드릴 내용이 엄청납니다. 달 사람들의 못생긴 얼굴에는, 한정된 대기 속에 쓸모없는 부속물이 된 까닭에 귀가 없습니다. 귀가 없으니 언어 능력이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르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특이한 방법을 씁니다. 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마치 행성과 위성의 관계처럼,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이 다른 사람의 삶과 운명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총창님과 부총장님은 무엇보다 이 내용을 가장 환영할 것 같습니다. 신의 자비인지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기적적으로 일치하여 여태 인간의 망원경으로 고개를 돌린 적이 없는 지역, 앞으로도 인간이 관찰하기 불가능한 어둡고 오싹하고 신비로운 지역, 달의 뒷면에 관해서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상세히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포 전집 3 : 환상 편》 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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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7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7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6-03-2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명이 쩌르르 하더군요. 저 책.

cyrus 2016-03-28 15: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다른 독자들의 지적을 눈으로 봤을 때만 해도 심각성을 못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제대로 읽어보니까 잘못된 번역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정말 화가 났습니다.

alummii 2016-03-28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 대해서.... 갑이네요 !

cyrus 2016-03-28 15:42   좋아요 0 | URL
부끄럽지만, 저 책을 구입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엉터리 번역을 알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에세이 분야의 책이 있는 책장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옆에 두 명의 아가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의 수다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고운 목소리는 내 귓가로 흘러 들어갔다.

 

 

 

 

 

 

 

 

 

 

 

 

 

 

 

 

 

아가씨 A : 너 《오체불만족》이라는 책 알아?

              아니 글쎄, 책을 쓴 사람이 불륜을 저질렀대.

 

아가씨 B : 웬 열? 나 어렸을 때 그 책 감명 있게 읽었는데.

              완전 개실망이다.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선천적으로 팔다리 없이 태어난 장애인이다. 아시다시피 《오체불만족》으로 그는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은 그의 도전 의식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 책이 나왔던 1999년은 IMF 위기로 장기적으로 우울했던 시절이었다. 모든 사람의 삶이 좌절 속에 산산이 조각난 상태였다. 사람들은 힘들 때 마음의 위안처를 찾는다. 대한민국 사회는 《오체불만족》을 통해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를 얻으려고 했다.

 

닉 부이치치의 삶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모든 사람에게 추앙받는 위대한 장애인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의 일화를 아는 정도다. 나는 《오체불만족》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선생님이 20여 분 동안 열정적으로 오토다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오체불만족》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그 때 당시 나는 지금처럼 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한자로 된 책 이름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냥 한쪽 귀로 흘러 버렸다.

 

 

 

 

 

 

 

한동안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가 어제 그의 근황을 들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체불만족’이라고 되어 있어서 나는 오토다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줄 알았다. 궁금해서 확인해보니까 그의 불륜 스캔들이 일본에서 터진 것이다. 작년 말에 오토다케는 파리에서 한 여성과 여행을 한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혼 생활 중에 무려 다섯 명의 여성과 불륜 행각을 한 사실까지도 알려졌다. 오토다케는 자신의 불륜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고, 그의 아내는 이 스캔들에 자신도 책임이 있다면서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인간이므로 성욕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바람을 피우는 건 그가 예전부터 강조했던 행복하게 사는 방식과 완전히 어긋나는 행동이다. 성욕을 채우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행위 중 하나다. 오토다케는 쾌락이 주는 행복에 중독되었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집착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오처(五妻, 다섯 명의 아내) 불만족’이었다.

 

 

 

 


내 불륜 인생은 내가 만든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 간다

 

 

 

 

 

 

오체는 불만족, 불륜은 대만족

(부제: 내가 다섯 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늘 행복하게 사는 이유)

 

 

 

오토다케의 불륜 행위에 실망한 사람들은 그를 비아냥거리는 별명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오체불만족’ 신화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 자리에 ‘성욕 불만족’이라는 불미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일본 열도 못지않게 우리나라도 그의 불륜 스캔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자들이 이런 선정적인 뉴스를 그냥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수많은 언론은 어제부터 계속 오토다케와 관련된 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자신의 글이 튀고 싶어서 환장한 기레기들은 잘살고 있는 닉 부이치치까지 거론한다.

 

오토다케에 크게 실망한 독자들이 중고서점으로 향하고 있다. 한 손에 《오체불만족》을 든 채로.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한순간에 소장할 가치가 없는 종이 폐품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 아무도 그 책을 사는 사람이 없다. 베스트셀러 저자도 인간이다.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인기가 엄청 많을 뿐이지 그들도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한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성이 와르르 무너진다.

 

 

 

 

 

 

 

 

 

 

 

 

 

 

 

 

 

 

 

 

 

 

 

 

 

 

 

 

 

 

 

 

 

청조사판 《우동 한 그릇》은 1989년에 처음 나왔다. 그 후터 지금까지 표지만 바꿀 채 줄기차게 《우동 한 그릇》을 펴냈다.  

 

 

 

혹시 오토다케가 쓴 책들을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에 파려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책장을 확인해보시라. 책장에 《우동 한 그릇》이 꽂혀 있다면, 그 책도 같이 처분해도 된다.

 

《우동 한 그릇》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겠다.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줄거리가 다 나온다. 아무튼 《우동 한 그릇》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가. 《우동 한 그릇》의 저자 구리 료헤이는 왜 책 한 권 달랑 내고, 후속작을 내놓지 않고 있을까? 그는 《우동 한 그릇》만 내고 홀연히 사라진 출판계의 ‘원 히터 라이터(one-hit writer)인가?

 

 

 

 

 

 

NTR : 오타쿠(오덕)의 세계에서 네토라레(寝取られ)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은어. 정확한 의미는 자신의 아내 혹은 남편을 타인에게 빼앗기는 상황이다. 즉 구리 료헤이도 오토다케처럼 다른 사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

 

 

그가 ‘원 히터 라이터’라는 이유로 동정하지 않아도 된다. 구리 료헤이의 근황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나무위키에 ‘구리 료헤이’를 검색하면 그의 근황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충격적인 실체까지 확인할 수 있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구리 료헤이는 '행동이 구린 료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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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3-25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그것도 능력인 건가? 결혼하고 잘 사는 모습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쩌자고...ㅉ

cyrus 2016-03-26 11:25   좋아요 0 | URL
오토다케가 정계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던데 스캔들 때문에 불가능할 겁니다.

원더북 2016-03-2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처불만족...ㅎㅎ;;; cyrus님의 책제목 센스에 한참 웃었습니다~

cyrus 2016-03-26 11:28   좋아요 0 | URL
오토다케가 아내와 첩 두 명만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2016-03-25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26 11:30   좋아요 1 | URL
오토다케를 만난 여성들은 그의 됨됨이를 좋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그의 부와 명성이 좋아서 따라다녔을 겁니다. 다섯 명의 여자도 잘한 게 없습니다.

alummii 2016-03-25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오처불만족 대박! ㅋㅋ

cyrus 2016-03-26 11:31   좋아요 1 | URL
오토다케 관련 뉴스 댓글에 보면 네티즌들이 만든 웃긴 별명들이 참 많습니다. ^^

syo 2016-03-25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란 참 대단하죠?
갖가지 의미에서요.

cyrus 2016-03-26 11:3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스스로 파멸하는 무시무시한 능력도 가지고 있죠.

akardo 2016-03-26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전 살아있는 사람의 자서전은 안 사고 안 읽습니다. 언제 그 감동을 깨줄지 몰라서요.

cyrus 2016-03-26 11:43   좋아요 1 | URL
평전도 그렇습니다. 평전의 주인공이 평전을 집필하는 과정에 개입할 수도 있거든요. 남아공 출신의 작가 나딘 고디머가 생전에 자신의 평전 이 나오기 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한엄마 2016-03-26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행복전도사였던 분이 자살하신 사건도 기억나요.ㅠㅠ

cyrus 2016-03-26 11:47   좋아요 1 | URL
스캔들 때문에 정계 진출이 좌절되었는데, 다음 행보가 걱정스럽긴 하네요.
 

 

 

 

 

 

 

 

 

 

 

 

 

 

 

 

 

 

 

 

 

 

* 종탑 속의 악마 (《우몽》 : 종루 속의 악마)

 

 

Blunderbuzzard “De Derivationibus,” pp. 27 to 5010, Folio Gothic edit., Red and Black character, Catch-word and No Cypher (원문)

 

➡ 블룬더부차드가 지은, 붉은색과 검은색 문자, 표제어와 암호가 금지된 2절 고딕판 <파생어에 대하여> 중 27쪽부터 1050쪽까지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코너스톤 120쪽)

 

➡ 붉은색과 검은색의 글씨로 씌어진 고딕 판 폴리오, <전기 분류에 대하여>의 27페이지부터 5,010페이지까지를 살펴보라. (《우몽》 199쪽)

 

 

코너스톤 판에는 ‘27쪽부터 1050쪽까지’라고 잘못 적혀 있다. 숫자가 틀렸다.

 

 

 

* 아른하임의 영토

 

The negative merit suggested appertains to that hobbling criticism which, in letters, would elevate Addison into apotheosis. (원문)

 

➡ 자연 방식에 대해 제시한 소극적인 장점들은 문자 그대로 애디슨을 떠받들어 신격화하는 어색한 평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네. (코너스톤 166~167쪽)

 

➡ 내가 말한 부정적인 특성은, 문자 그대로 에디슨을 떠받들어 신격화할 수 있을 절름발이 비평에 해당하는 것이지. (《우몽》 167쪽)

 

 

 

‘Addison’은 영국의 수필가 조지프 애디슨(Joseph Addison, 1672~1719)을 가리킨다. 《우몽》은 ‘에디슨’으로 잘못 썼다. 에디슨은 미국의 발명왕(T. A. Edison, 1847~1931)이다. 포가 살아 있을 때 발명왕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 랜더의 별장

 

It is not the purpose of this paper to do more than give, in detail, a picture of Mr. Landor’s residence — as I found it. How he made it what it was — and why, with some particulars of Mr. Landon himself — may, possibly form the subject of another article. (원문)

 

➡ 나는 우연히 찾게 된 랜더 씨의 별장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 이 글을 썼고 독자들이 별장의 전경을 생생하게 느꼈다면 목적을 다 이룬 셈이다. 랜더 씨가 어떻게 별장을 짓게 되었으며 랜더 씨에게 별장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는 아마도 다른 글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코너스톤 197쪽)

 

➡ 랜더 씨의 별장을 내가 보았던 그대로 독자들에게 상세히 그림처럼 보여주었다면, 나는 이제 이 글의 목적을 다 이룬 것이다. (《우몽》 124쪽)

 

 

소설 마지막 부분. 《우몽》에 소설 마지막 문장 한 줄이 누락되었다.

 

 

 

* 말의 힘

 

Its brilliant flowers are the dearest of all unfulfilled dreams, and its raging volcanoes are the passions of the most turbulent and unhallowed of hearts.

 

➡ 이 별의 아름다운 꽃들은 이루어지지 못한 소중한 꿈들이며, 성난 화산들은 난폭하고 부정한 열정이다. (코너스톤 240쪽)

 

➡ 저 아름다운 꽃들은 이루어지지 못한 가장 소중한 꿈들이며, 저 격렬한 화산은 더없이 격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의 열정이다. (《우몽》 170쪽)

 

 

《우몽》 번역자의 영어 실력이 의심된다. ‘hallowed’‘소중한’, ‘신성한’을 의미한다. 형용사 앞에 접두사 ‘un-’을 붙이면 형용사의 반대 의미가 된다. ‘unhallowed’가 ‘순수한’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 폰 켐펠렌과 그의 발견

 

After the very minute and elaborate paper by Arago, to say nothing of the summary in ‘Silliman’s Journal,’ with the detailed statement just published by Lieutenant Maury, it will not be supposed, of course, that in offering a few hurried remarks in reference to Von Kempelen’s discovery, I have any design to look at the subject in a scientific point of view. (원문)

 

➡ 모리 경위가 발표한 세부 성명은 <실리만의 잡지>에 요약본이 실린 것은 물론이고 아라고가 매우 정확하고 상세한 논문으로 발표한 터라, 폰 켐펠렌의 발견에 관한 짧은 언급에서까지 그 주제를 과학적 관점으로 살펴보지는 않을 것이다. (코너스톤 191쪽)

 

 

소설이 시작되는 첫 문장.《우몽》에는 첫 문장이 삭제되었다.


 

 

I am pleased in being able to state positively, since I have it from his own lips, that he was born in Utica, in the State of New York, although both his parents, I believe, are of Presburg descent. The family is connected, in some way, with Mäelzel, of Automaton-chess-player memory. [If we are not mistaken, the name of the inventor of the chess-player was either Kempelen, Von Kempelen, or something like it. — ED.] In person, he is short and stout, with large, fat, blue eyes, sandy hair and whiskers, a wide but pleasing mouth, fine teeth, and I think a Roman nose.

 

➡ 기쁘게도 폰 켐펠렌의 입으로 직접 들어 분명히 말하는데 부모님은 모두 프레스부르크 태생이지만, 폰 켐펠렌은 뉴욕 주 유티카에서 태어났다. 집안사람 중에는 자동 체스 게임기에 쓰이는 메모리를 개발한 멜첼이 있다. 폰 켐펠렌은 작은 키에 다부진 체구를 가졌으며, 크고 두툼한 파란 눈에 엷은 갈색 머리와 구레나룻, 크지만 매력적인 입과 고른 치아, 오뚝한 콧날을 지녔다. (코너스톤 265쪽)

 

➡ 나는 그의 입으로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프레스부르크 출신이지만 자신은 뉴욕 주 유티카에서 태어났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기쁘다. 그는 키가 작고 땅딸막했다. 커다랗게 튀어나온 푸른 눈, 모래색 머리카락, 구레나룻, 웃는 듯한 넓은 입, 하얀 치아, 그리고 매부리코였던 것 같다. (《우몽》 193쪽)

 

 

멜첼(Mäelzel, 1772~1838)은 메트로놈을 고안한 독일의 발명가다. 《우몽》에 멜첼이 언급되는 문장이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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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03-25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전집세트로 가야하는 것이군요..`우몽`도 꽤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에러가 엄청나게 많은 듯 합니다. 포를 숭배(?)하는 저는 전집을 보관함에 담아버렸습니다...-_-: 이담에 잠잘 방, 부엌, 화장실 빼고는 책으로 꽉 찬 집에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cyrus 2016-03-25 17:59   좋아요 0 | URL
코너스톤 포 전집도 오류가 몇 개 있지만, 그래도 <우몽>보다 낫습니다. 포의 작품을 제대로 읽으려면 포 전집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우몽>을 중고로 샀지만, 지금 생각하면 후회됩니다. ^^;;